0511-주전(계3:1-3)
하나님의 의2014-05-11조회 287추천 32
본문: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요약/2014.05.11.주일)
제목: 하나님의 의
1. 구원 도리
1)일곱 교회: 신약시대 모든 교회들
2)사데 교회: 오늘 우리 교회, 가정, 개인
3)기록 목적: 우리 구원을 위한 도리, 이치
2. 사데 교회
1)주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잡으시고
2)행위: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
3)할일: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살리는 일
4)방법: 받은 것 생각, 들은 것 지켜, 잘못된 것 회개
3. 살았다는 이름
1)살았다는 의미: 3단계(산 자가, 죽었다가, 다시 산 것)
2)살려주신 역사: 하나님의 의
①인생의 범죄(세 가지 범죄) 영원한 사망
②하나님의 가장 큰 근심 걱정 고통
③신인양성일위의 대속 역사, 지극한 희생, 대속의 역사
④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만족하신, 모든 것을 다 맡기신(마28:18)
3)살았다는 이름
①단순 이름만이 아닌 실제 산 자, 산 자에 속한
②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라는 말씀
4. 죽은 자
①산 자: 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
②기본적으로 산 자, 산 자가 된 것
③산 자 되었으니 산 자로 살면 영생
④산 자가 죽은 자로 사니 죽은 자
⑤의인이 죄인으로 사니 죽은 자
5. 우리들의 모습
①사데 교회는 나 자신
②하나님의 의를 입은 의인
③의인 되었으니 의인으로 살면 영생
④의인이 의를 벗고 사니 죽은 자 된 우리
6.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①남은 바: 남은 생애, 살아 있는 동안
②죽게 된 것: 지금까지 살아온 죽은 자 그대로 살면
③굳게 하라: 의인 되었으니 이제는 의인으로 살아라
7. 의인 되었으니 의인으로 살자
①하나님의 진노, 근심 걱정을 다 해결하신 하나님의 의
②신인양성일위의 지극한 희생으로 완성하신 하나님의 의
③완성하신 의를 입혀 주셨으니 의인된 우리
④의인 되었으니 의인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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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설교
3절 끝에 보니까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하는 그 노력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 그 말은 도적은 보면 몽땅 털어가는데 도둑맞게 되는데 언제올지 알 수 없는 그 면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개인의 죽음도 도적같이 오게 되고 주님 재림도 도적같이 오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늘 깨어서 살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사회하는 우리 김집사님께서 몸이 좀 많이 안좋아서 사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위해서 모두 좀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도 집회 앞두고 이 말씀을 생각해봤고 지나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집회를 했는데 우리 교인들 중에서 아마 장년반은 절반 조금 넘게 참석을 하셨고 중간반 주일학교는 그만큼 안되고 그래서 우리교회 제적이 장년반 중간반 주일학교 합하면 2백명쯤 될건데 집회 참석하신 분들은 78명인가 그랬습니다. 반이 못되게 참석을 했는데 8월 집회때는 지금부터 소망을 하고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런것도 다 천국을 준비하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노력 중 하나입니다. 집회가 있어도 으레히 직장 때문에 학교 때문에 못간다고 그렇게 포기할 것이 아니고 무리할 순 없지마는 하는 데 까지는 노력을 하고 그래도 안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안주시는 것이니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의 노력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얼마만큼 노력했느냐를 살펴보시는 겁니다.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걸 다 해도 안되면 그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우리 책임이 없고 할 일을 다 하는겁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노력을 남겨두고 으례히 안해버리면 그 때는 자기 책임이 상당히 크고 무겁게 되어집니다. 모든 신앙생활이 다 그러합니다. 8월에는 다 미리부터 소망하고 기도하고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사데교회에 대한 말씀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사데교회는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 중에서 다섯번째 교회지요? 다섯번째 교횝니다. 신약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교회는 신약시대에 모든 교회들을 상징을 합니다. 일곱교회 한 번 짚어 볼까요. 1. 에베소 교회 2 서머나 교회 3 버가모 교회 4 두아디라 교회 5 사데교회 6 빌라델비아 교회 7 라오디게아 교회 이래 7교회입니다. 이 7교회는 신약시대 - 신약시대라 말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를 신약시대라고 하는데 신약시대에 있어왔고 있는 모든 교회를 전부 다 상징해서 일곱교회로 기록을 해주신겁니다.
그러면 7교회에 기록된 모든 내용들은 신약시대 오늘 우리들 교회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 부족한점과 고칠점 잘못된 점 이런 것들을 7교회에 기록해서 오늘 우리들 교회의 장점 단점 부족한점 잘못된점 고칠점 이런 것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곱교회 중 하나인 사데교회는 오늘 우리 교회를 가르치고 있고 각 가정교회를 가르치고 있고 좁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개인 나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겁니다. 사데교회는 좁게는 바로 우리들 나 자신이 사데교회입니다. 여기 계시는 저도 교인 한 분 한 분 사데교회와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데 교회에 찾아 가셔서 사데교회에 하신 그 말씀을 듣고 오늘 우리 교회에 찾아오셔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살펴 보면 되겠습니다.
이 교회를 기록해주신 목적은 이 땅에 사는 오늘 신약시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구원도리 구원 이치로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데교회 보니까 사데교회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그러면 사데 교회에 찾아 가셨던 주님은 어떤 주님으로 찾아 가셨는가? 일곱 영과 일곱 별을 장중에 잡으신 주님으로 찾아 가셨습니다. 사데교회 찾아가신 주님은 일곱 영과 일곱 별을 장중에 잡으신 주님으로 찾아 가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교회 찾아가실 때 찾아가신 하나님의 모습에 따라 그 교회에 대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고 역사가 있는데 사데교회는 일곱 영과 일곱 별 일곱 영은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면을 다 책임진 그래서 온전케 하시려는 그 책임을 지고 가신 영을 일곱 영이라 그러는데 성령을 가리켜 말합니다. 성령을 오른 장중에 붙드시고 또 일곱 별은 하나님의 교회에 사자들 종들을 말하는데 말하자면 교역자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데교회에 찾아가실 때 일곱 영 성령 사데교회를 전면적으로 전체면으로 온전케 만드시려는 책임을 지신 그 성령을 붙드시고 또 사람으로 사데 교회에 책임자로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붙드시고 그 교회를 주님이 찾아가셨다. 그런 주님으로 그 교회에 찾아 가셨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찾아가신 사데교회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가 보니까 사데교회가 내면과 외면이 달라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라 그랬습니다. 사데교회의 행위를 보니까 사데교회는 원래 산 교횐데 살았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는 교횐데 그들의 행위, 말과 행동 생활을 보니까 죽은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게 사데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데교회는 오늘 누구를 가리켜 말한다고 했습니까? 여기있는 우리들을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인데 그 교회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가? 나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진 산잔데 산자로 살지 아니하고 죽은자로 사는것은 아닌가를 돌아봐야 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산자는 어떤잔가? 산자가 죽은자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어쨌든 사데교회는 행위를 보니까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교회에 지금까지 사데 교회 너희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져 산 자가 되어 있는데 실제 살기는 죽은자로 살고 있구나. 그러니까 이제 지금까지 너희들의 산 과거 생활은 다 죽었고, 남은 바가 있는데 그 남은 바도 지금까지처럼 살면 다 죽게 되니까 남은 바는 지금까지 산 것 처럼 그리 살지 말고 남은 바는 죽지 아니하도록 그렇게 살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데교회가 할 일, 우리가 할 일은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죽지 않도록 살리는 그 일입니다. 어떻게?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받은 것을 생각하고 들은 말씀을 지키고 잘못된 것은 회개하는 세 가지가 방법입니다. 받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들은 말씀은 지키고, 잘못된 것은 회개하고. 이래 하면 어떻게 된다 말입니까? 남은바 죽게 된 것은 살릴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사데교회에 주님이 말씀하신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죽은자라'고 말씀하신 살았다는 이름이 무엇인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단계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다 그 말씀은 살았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살았다는 말이 아니고 원래 모든 사람은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었고 지으신 사람에게 생명을 주셔서 모든 사람은 다 산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1단계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없는 가운데 하나님이 지어서 생겨났고 지으신 존재에게 생명을 주셨으므로 모든 존재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산 자가, 살아 있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죽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2단계입니다.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받아 살아 있었는데 1단계, 다 살아 있었는데 이 살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하나도 빠짐없이 다 죽었습니다. 영원한 사망을 당해버렸습니다. 2단계. 죽어 있는 여기서 하나님이 사람되셔서 죽은 가운데서 살려낸자가 있습니다. 사데교회처럼.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살아있는 이름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신겁니다. 살았다 말은 단계가 몇 단계입니까? 몇 단계인가요? 1단계는 하나님의 지음받아서 다 살았습니다. 누구나 다 살았습니다. 2단계는 살아 있었는데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다 죽었습니다. 2단계. 다 죽은 가운데서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으로 살려내신 사람이 있습니다. 이게 산잡니다. 이 사데교회는 3단계 산 자가 되어 있고, 우리도 3단계로 산 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모두 다 전 인류로 났다가 범죄함으로 다 죽은 여기가 2단계입니다. 여기까지는 다 동일합니다. 꼭 같습니다. 그런데 3단계에 가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살아난 3단계까지 진행이 된 사람도 있고, 3단계는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3단계까지 있는 사람이 살았다는 이름은 가진자고 2단계 죽음에서 머물러 있는 사람이 모든 일반 사람들 특수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다 거기서 머물러 가지고 그 상태로 있는겁니다. 우리는 3단계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3단계까지 올라온 사람이 그대로 계속 가면 영생이 되는 것이고 3단계 있는 그 사람이 4단계로 나아가면 그 4단계는 죽은자로 사는겁니다. 그게 4단계가 되는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다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아서 생명받아 다 살아 있었습니다. 다 산자 되어 있었는데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전 인류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죽었습니다. 2단계죠 다 죽었습니다. 이 죽음 가운데 있는 이것이 영원한 사망이고 영원한 지옥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큰 고통이고 근심걱정이고 문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다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신데는 목적이 있고, 모든 사람을 다 꼭같이 만들지 아니하시고 일반인과 특수인입니다. 두 종류로 만들었는데 두 종류 다 어떤 의미에서는 해당되지마는 궁극적으로는 한 종류의 사람은 죽어도 어차피 지옥에 갈 것이니까 큰 문제될, 고민될 것이 없는데 특수인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죽어 있으면 안되는겁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소원이 다 깨지고 엉망이 되어지는 겁니다. 약간 곁가지로 나가서 자존하신 하나님은 자존잡니다. 그 하나님은 완전잡니다. 완전이라 말은 전지 전능입니다. 무한입니다. 불변입니다. 그분은 없는게 없고 모자라는 것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완전잡니다. 그런데 그분이 혼자 계시니까 외롭습니다. 하나님이 완전잔데 외롭지 않게 할 수 있지않을까? 사람 생각에 완전자 전능자면 외롭지 않다 그래만 단순히 생각하는데 완전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도 못하는게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완전입니다. 혼자 계시니까 외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혼자 계시지 않도록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엿새 동안에 우주와 영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꼭 같은 존재가 하나님을 알아주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 사람과 꼭 같은 모습의 로보트 기계 인형을 만들어 놓고 그 인형에다가 인공지능을 심어 놓고 온갖 과학의 발달 장치를 가지고 조작을 다 해놔도 그런 것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 놔도 그것은 하나의 기계지 사람이 아니고 그 기계 속에는 자의적인 유기적인 그런 요소가 없는겁니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닮은 로봇을 만들어 놔도 사람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조작되는 것이고 조종되는 것이지 자발적으로 되는게 아닌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거 아무리 많아도 자기 몸에서 난 자식 사람, 그 사람과는 비교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 보다 나은 것이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기계보다는 나은 것이 뭡니까? 기계보다는 낫고 사람보다는 못한 존재가 바로 동물이니까 사람들이 기계보다 강아지를 기르고 고양이를 기르고 지능있는 동물을 기르는 겁니다. 사람 수준은 안되도 제대로의 움직임이, 인간같은 자의성이 아닐지라도 글너게 있기 때문에 그리 되는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꼭 닮아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스스로 자기가 판단하고 좋고 좋고 원하고 원해가지고 하나님을 알아주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요런 존재를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소원이고 하나님이 그에게 당신이 가진 완전을 전지전능을 다 주고 줌으로 그것을 받는 자유성 가진 자의성 유기적인 그 인격체는 받으니까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앞에 영광 돌리는 이런 천국 건설을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드실 때 한 종류를 그 목적을 가지고 한 종류 사람을 만드신 겁니다. 그게 바로 특수인이고 구속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법을 어겨 죽은 그 속에 하나님께서 만드시고자 했던 그 특수인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 닮은 사람들 까지도 범죄함으로 죽은 그 속에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전부가 되어지는 하나님의 소원 뜻이 죽은 자가 되어 있으니까 이룰 수가 없는 겁니다. 소원 목적이 다 깨져서 아무것도 없게 되어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고민 고통 근심 걱정 되어 있었는데 해결할 사람이 누군가? 아무도 ㅇ벗어서 그래서 부득이하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가지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 한문글자로 뭐라고 하는가요? 다같이 하십시다.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두 성품 양성이 한 인격체처럼 한 격위 한 사람 한 존재처럼 되어진 요걸 일위라 그러는데 하나님과 사람 두 성품이 한 존재가 되어진 것을 가리켜서 신인양성일위라 그리 말하고 요래 되어짐으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이제는 범죄함으로 영원히 죽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만들고자 했던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을 알아줄 자유성 적이고 유기적인 그 존재 택자들 그들의 죄의 값인 그들의 모든 죽음의 원인된 죄를 하나님이 사람되신 그분이 짊어지고 대신 형벌 받아 대신 영원한 죽음을 죽으심으로 모든 하나님의 택자들의 죄를 도말하시고 그들을 죽은자 가운대서 살려내 주신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되신 이 분이 이 모든 하나님의 고민 고통 근심 걱정꺼리를 해결해 주신겁니다. 이런 죽음의 원인되는 죄를 도말하시고 또 영원한 가난의 원인되는 자기 중심 자주장의 값을 대신 치르고 행하시고 하나님 배반하고 마귀 세상과 짝된 이걸 대신 형벌 받아 값을 내시고 하나님과 화친하심으로 세 가지 공로 베풀어 주신, 그래서 대형과 대행과 대화친의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주신 이게 하나님의 역사인데 이 공로를 인해서 하나님의 고통 근심 걱정 완전히 다 해결해주셨으니 이걸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그리 말합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ㅐ서 사람되어 오신 성자 하나님이 신인양성 일위 되셔서 하나님의 근심걱정 고통을 다 해결해주신 하나님의 의를 완성해주신 그 주님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전부 다 맡겼다고 말씀을 하신겁니다. 그래서 사데교회 말씀하시기를 네가 살았따 하는 ㄴ이름은 가졌다는 말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큰 고민 근심 걱정 고통을 해결하시고 완성해주신 하나님의 의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이름만 가진게 아닙니다. 이름만 가진것이 아니고 실제 그러하다는 겁니다.
명예라는 말이 있습니다. 박사 학위 중에서 명예박사라는 말도 있고, 또 명예교수라는 말도 있고 명예라는 것은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명예박사라 말은 실제 박사 학위, 논문을 내고 통과해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이 아니고 그의 공로가 있던지 지대한 공로가 있어서 이름으로 그에게 박사 학위를 명예를 주는 겁니다. 논문이나 이런게 있어 되는게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명예 이런 것은 실제보다 더 귀하고 훌륭한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할 때 요 이름이라 말은 이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 살았다는 겁니다. 처음에 하나님께 지음받은 산자 되었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범죄함으로 다 죽었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죽었는데 이 상태 속에 하나님의 목적인 택자까지 들어 있으니까 하나님의 큰 고민입니다. 이걸 살려 내야 되는데 고민이고 고통이고 근심 걱정인데 이것을 신인 양성 일위 예수님께서 대신 형벌 받아 죽으심으로 죄를 다 도말하셔서 죽은자를 살려 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고민고통을 다 해결해 주셨으니 고해결하신 걸 가리켜 하나님의 의라 그랬고 그 의를 입어서 2단계 죽어 있던 자가 살아났기 때문에 산 자가 되었다 사데교회 말씀하시기를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이 말은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2단계 까지 죽은 자에 있던 거기서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살아났다 산 자가 되어졌다. 말하자면 범죄함으로 영원한 사망 되었던 그 죄 값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자기 중심으로 산 죄, 하나님을 배반한 세 가지 죄를 대신 다 형벌 받아 죽으심으로 완성해서 입혀주신 사죄를 받은 자다. 그래서 죄 없는 자가 되었고, 없는 의를 대신 하나님의 법을 다 이행함으로 의를 만들어 우리에게 입혀서 의롭다 하신 우리가 되었으므로 의인이 되어진 칭의를 받은자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영원한 절망 속에 지옥의 자식 되었던 우리를 대신 형벌 받아서 값을 내시고 하나님과 화친하심으로 우리와 화친시켜 주신. 그래서 우리는 사죄 받은 자고, 칭의 받은 자고, 화친을 받은 자라서 오늘 우리는 사데교회는 죄가 없는 자가 되었고, 의로운 의인이 되어졌고, 하나님과 화친한 아들이 되어 졌으니 요 세 가지를 가리켜 하나님의 의라 그러고, 요 세 가지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을 가리켜서 살았다는 이름은 가진 자라 그러고 이걸 다른 말로 그러면 의인이라 그럽니다. 사데 교회는 요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들이고 받은 교회고 산자고 의인이 되어 있는 잡니다. 이게 살았다는 이름입니다. 단순히 이름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라 살아난 자라 2단계 까지의 죽은 자로 있는 거기서 한 단계 더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난 자라 하나님의 의로 살아난 자라 하는 뜻을 가리켜서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다 그 말입니다.
그랬는데 사데교회의 생활을 보니까, 행위를 보니까, 옛날에 우리나라 대한 민국 서기 전에 조선있는데 이씨 조선 5백년인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그 다음 두 번째 왕자리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는데 그 똑똑한 이성계 아들 중에서 태종이라는 이방원이 그 사람이 아주 강하게 왕권주의를 확립을 해서 나라를 굳게 세웠는데, 그 사람이 나라를 굉장히 튼튼하게 아주 기틀을 완전히 다져 놨습니다. 그 사람의 장자가 이름이 양녕대군이라 그러는데 그 사람이 자기 아버지가 할아버지하고 부자지간에 싸우는 걸 보고 아버지가 이복 형제들 죽이는 거 보고 왕궁이 싫고 왕이되기 싫어서 그만 세자 자리 올라갔는데 왕이 되기 싫어가지고 온갖 비행을 다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그 사람은 이름은 세잡니다. 세자는 왕이 될 사람입니다. 왕이 될 사람은 말도 행동도 생활도 왕이 될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자기가 된 것이 보니까 그 사람이 아마 종교를 가졌으면 잘 믿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는데 아버지하고 할아버지하고 부자지간에 그 이방원이가 굉장히 효잔데 아버지가 마음이 안들어서 함흥차사가 되고 그랬습니다. 그게 싫고 형제들 간에 피비릿내 나는 그게 싫어서 왕이 되기 싫어서 온갖 비행을 다 저지르고 기이하게 그리 살았습니다. 결국 왕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는데 세자로 살았지마는 그의 행동 생활 보니까 이거는 엉망 친창입니다. 그것처럼 예를 들자면 사데교회가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이 사람 되셨으니까 말할 수 없는 큰 희생입니다. 고난입니다. 큰 수곱니다. 우리들이 형언하기 어렵고 상상하기 어려운 큰 하나님의 희생과 수고로 완성하신 하나님의 의를 만들어서 그 의를 다 입혀가지고 죄를 다 없이하고 의를 입혀서 의인을 만들고 하나님과 화친시켜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삼아서 산 자로 만들어 주셨고 의인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런데 사데 교회가 생활하는 거 보니까 살아가는 모습 보니까 의인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산 자라는 것은 보이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것이 전부 죽은자로 살아있다 그말입니다. 의인인데 죄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사데교회 찾아가셔서 내가 네 행위를 보니까. 그 사데교회에 찾아가신 목적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은자로 살고 있으니까 그대로 두면은 남은바 다 죽어버릴꺼니까 하나님이 그 교회를 사랑하셔서 살리기 위해서 찾아가실 때 사데교회 남은 바를 살릴 수 있는 전체를 책임지신 성령을 붙들고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붙들고 그 교회에 찾아가서 남은바 죽게된 것을 살리기 위해서 찾아가신 겁니다. 그래서 사데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죽은자라 그 말은, 산 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를 입은자라는 뜻이고 산 자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산 자가 되었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산 자가 되었으니까 산 자로 살면 영생이 되어지고, 산 자로 그대로 유지가 되는데 산 자가 산 자가 아닌 죽은자로 사니까 죽은자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의를 입은 의인이 의인으로 살지 아니하고 죄인으로 사니까 죽은자가 되어진 것입니다. 이게 사데교회의 모습이었고,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양면을 생각을 하고 신령한 면으로 좀 생각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죽었다 그럴때 육신의 죽음은 이성에서 끝이 나니까 함께 있던 사람이 두번다시 함께있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하니까 슬픔이 북받치고 죽음이 괴롭고 고통스럽고 슬픔인줄 앎니다. 그래서 전 인류가 6천년 역사에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죽음은 피하고 싶고 면하고 싶고 피할 수 없고 면할 수 없다면 최대한 늦추고 싶고 이것이 전 인류의 가장 큰 욕망이고 노력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이 죽음은 고통인줄 알고 이거는 괴로운 것인줄 알고 피하고 싶은줄 알고 안당하고 싶으면서, 우리의 영원한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가 별로 생각이 없고 인식이 없습니다. 지난 주 깨달음의 은혜라, 말씀 깨달음을 은혜를 받아야 된다고 했는데 이런 것이 우리에게 성경에 말씀하신 그대로 느껴지는 것을 깨달음이라 합니다. 육심의 죽음이란 어차피 한 번 죽는 죽음이고 영원한 죽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았다는 이름은 가진 자가 또 다시 죽어버리면 그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 되는겁니다. 사데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오랜 세월 죽은자로 살았고 죽은자로 산 과거는 영원토록 회복하지 못합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는 사데교회 처럼 하나님의 의를 입었기 때문에 산 자가 되었습니다. 살았다는 이름을 가진 산 자가 되었는데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산 자가 산 자로 산 것은 많지 못하고 죽은자로 산 세월이 우리에게 너무 많고 그런 요소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우리들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 대해서는 우리들이 별로 인식도 생각도 중요성도 근심 걱정 고민도 별로 없는 것이 우리들이니 깨달음이 부족한 우리들이 아닌가? 깊이 좀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남은 바가 있습니다. 남은 바 죽게 된 것. 남은바라 말은 살아 생전 주신 기간입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릅니다. 사데교회도 주님이 찾아 가셨을 때 얼마나 남았었는지. 오늘 우리도 남은 바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남은 바 죽게 된 것,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산 자가 산 자로 살아온 것도 있을 것이고 죽은 자로 산 것도 있을 것인데 산 자가 산 자로 산 세월 그대로 남은 때를 살면 그대로 살게 되는 것이고 사데 교회를 책망하신 것 처럼 산 자가 죽은 자로 사는 세월 그대로 남은 때를 살면 우리 남은 바도 다 죽게 되니까 이거는 살리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하는겁니다. 그것이 바로 산 자로 사는 것이 의인으로 사는겁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은 의인으로 사는 것. 의인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의인으로 사는 것이고 그리 살면 남은 바는 죽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겁니다.
정리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일차적으로 살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지음받아 다 살아 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범죄함으로 다 죽었습니다. 다 죽은 그 속에는 택함 받은 특수인도 들어 있었습니다. 다 죽어 있는 거기서 하나님이 사람되신 신인양성일위 도성인신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서 입혀서 하나님의 택한 특수인들은 살려 주셨으니까 산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입은 우리들이 되어 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이 되었으니까 의인으로 살아야 되겠고 의인으로 살면 이제는 산 자가 되는 것이고 영생이 되어지는 겁니다. 의인으로 사는 것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의인으로 사는 것이다 하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입은 의인이니까 의인으로 살아야 되겠다. 같이 한 번 해보십시다. 하나님의 의. 의인으로 삽시다. 우리는 산 자가 되었으니까 산 자로 살아야 되겠고 의인이 되었으니까 의인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의인으로 사는 것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의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데교회 찾아가셨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찾아 오십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다. 오늘 우리는 그런 모습이 아닌가? 돌아보고 산 자가 되었으니까 의인 되었으니까 산 자로 의인으로 성경 말씀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제목: 하나님의 의
1. 구원 도리
1)일곱 교회: 신약시대 모든 교회들
2)사데 교회: 오늘 우리 교회, 가정, 개인
3)기록 목적: 우리 구원을 위한 도리, 이치
2. 사데 교회
1)주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잡으시고
2)행위: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
3)할일: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살리는 일
4)방법: 받은 것 생각, 들은 것 지켜, 잘못된 것 회개
3. 살았다는 이름
1)살았다는 의미: 3단계(산 자가, 죽었다가, 다시 산 것)
2)살려주신 역사: 하나님의 의
①인생의 범죄(세 가지 범죄) 영원한 사망
②하나님의 가장 큰 근심 걱정 고통
③신인양성일위의 대속 역사, 지극한 희생, 대속의 역사
④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만족하신, 모든 것을 다 맡기신(마28:18)
3)살았다는 이름
①단순 이름만이 아닌 실제 산 자, 산 자에 속한
②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라는 말씀
4. 죽은 자
①산 자: 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
②기본적으로 산 자, 산 자가 된 것
③산 자 되었으니 산 자로 살면 영생
④산 자가 죽은 자로 사니 죽은 자
⑤의인이 죄인으로 사니 죽은 자
5. 우리들의 모습
①사데 교회는 나 자신
②하나님의 의를 입은 의인
③의인 되었으니 의인으로 살면 영생
④의인이 의를 벗고 사니 죽은 자 된 우리
6.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①남은 바: 남은 생애, 살아 있는 동안
②죽게 된 것: 지금까지 살아온 죽은 자 그대로 살면
③굳게 하라: 의인 되었으니 이제는 의인으로 살아라
7. 의인 되었으니 의인으로 살자
①하나님의 진노, 근심 걱정을 다 해결하신 하나님의 의
②신인양성일위의 지극한 희생으로 완성하신 하나님의 의
③완성하신 의를 입혀 주셨으니 의인된 우리
④의인 되었으니 의인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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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설교
3절 끝에 보니까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하는 그 노력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주님이 도적같이 오신다 그 말은 도적은 보면 몽땅 털어가는데 도둑맞게 되는데 언제올지 알 수 없는 그 면을 가리켜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 개인의 죽음도 도적같이 오게 되고 주님 재림도 도적같이 오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늘 깨어서 살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사회하는 우리 김집사님께서 몸이 좀 많이 안좋아서 사회를 보지 못했습니다. 위해서 모두 좀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도 집회 앞두고 이 말씀을 생각해봤고 지나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집회를 했는데 우리 교인들 중에서 아마 장년반은 절반 조금 넘게 참석을 하셨고 중간반 주일학교는 그만큼 안되고 그래서 우리교회 제적이 장년반 중간반 주일학교 합하면 2백명쯤 될건데 집회 참석하신 분들은 78명인가 그랬습니다. 반이 못되게 참석을 했는데 8월 집회때는 지금부터 소망을 하고 참석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런것도 다 천국을 준비하는 신앙생활의 중요한 노력 중 하나입니다. 집회가 있어도 으레히 직장 때문에 학교 때문에 못간다고 그렇게 포기할 것이 아니고 무리할 순 없지마는 하는 데 까지는 노력을 하고 그래도 안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안주시는 것이니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의 노력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얼마만큼 노력했느냐를 살펴보시는 겁니다.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걸 다 해도 안되면 그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우리 책임이 없고 할 일을 다 하는겁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노력을 남겨두고 으례히 안해버리면 그 때는 자기 책임이 상당히 크고 무겁게 되어집니다. 모든 신앙생활이 다 그러합니다. 8월에는 다 미리부터 소망하고 기도하고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사데교회에 대한 말씀을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사데교회는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 중에서 다섯번째 교회지요? 다섯번째 교횝니다. 신약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곱교회는 신약시대에 모든 교회들을 상징을 합니다. 일곱교회 한 번 짚어 볼까요. 1. 에베소 교회 2 서머나 교회 3 버가모 교회 4 두아디라 교회 5 사데교회 6 빌라델비아 교회 7 라오디게아 교회 이래 7교회입니다. 이 7교회는 신약시대 - 신약시대라 말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를 신약시대라고 하는데 신약시대에 있어왔고 있는 모든 교회를 전부 다 상징해서 일곱교회로 기록을 해주신겁니다.
그러면 7교회에 기록된 모든 내용들은 신약시대 오늘 우리들 교회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장점과 단점 부족한점과 고칠점 잘못된 점 이런 것들을 7교회에 기록해서 오늘 우리들 교회의 장점 단점 부족한점 잘못된점 고칠점 이런 것들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일곱교회 중 하나인 사데교회는 오늘 우리 교회를 가르치고 있고 각 가정교회를 가르치고 있고 좁게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개인 나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겁니다. 사데교회는 좁게는 바로 우리들 나 자신이 사데교회입니다. 여기 계시는 저도 교인 한 분 한 분 사데교회와 같은 입장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데 교회에 찾아 가셔서 사데교회에 하신 그 말씀을 듣고 오늘 우리 교회에 찾아오셔서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신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살펴 보면 되겠습니다.
이 교회를 기록해주신 목적은 이 땅에 사는 오늘 신약시대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서 구원도리 구원 이치로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사데교회 보니까 사데교회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그러면 사데 교회에 찾아 가셨던 주님은 어떤 주님으로 찾아 가셨는가? 일곱 영과 일곱 별을 장중에 잡으신 주님으로 찾아 가셨습니다. 사데교회 찾아가신 주님은 일곱 영과 일곱 별을 장중에 잡으신 주님으로 찾아 가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교회 찾아가실 때 찾아가신 하나님의 모습에 따라 그 교회에 대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있고 역사가 있는데 사데교회는 일곱 영과 일곱 별 일곱 영은 하나님의 교회의 모든 면을 다 책임진 그래서 온전케 하시려는 그 책임을 지고 가신 영을 일곱 영이라 그러는데 성령을 가리켜 말합니다. 성령을 오른 장중에 붙드시고 또 일곱 별은 하나님의 교회에 사자들 종들을 말하는데 말하자면 교역자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데교회에 찾아가실 때 일곱 영 성령 사데교회를 전면적으로 전체면으로 온전케 만드시려는 책임을 지신 그 성령을 붙드시고 또 사람으로 사데 교회에 책임자로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붙드시고 그 교회를 주님이 찾아가셨다. 그런 주님으로 그 교회에 찾아 가셨다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찾아가신 사데교회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가 보니까 사데교회가 내면과 외면이 달라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라 그랬습니다. 사데교회의 행위를 보니까 사데교회는 원래 산 교횐데 살았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는 교횐데 그들의 행위, 말과 행동 생활을 보니까 죽은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게 사데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사데교회는 오늘 누구를 가리켜 말한다고 했습니까? 여기있는 우리들을 지금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인데 그 교회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떤가? 나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진 산잔데 산자로 살지 아니하고 죽은자로 사는것은 아닌가를 돌아봐야 됩니다. 그렇다면 먼저, 산자는 어떤잔가? 산자가 죽은자로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를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어쨌든 사데교회는 행위를 보니까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 교회에 지금까지 사데 교회 너희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져 산 자가 되어 있는데 실제 살기는 죽은자로 살고 있구나. 그러니까 이제 지금까지 너희들의 산 과거 생활은 다 죽었고, 남은 바가 있는데 그 남은 바도 지금까지처럼 살면 다 죽게 되니까 남은 바는 지금까지 산 것 처럼 그리 살지 말고 남은 바는 죽지 아니하도록 그렇게 살아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데교회가 할 일, 우리가 할 일은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죽지 않도록 살리는 그 일입니다. 어떻게?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받은 것을 생각하고 들은 말씀을 지키고 잘못된 것은 회개하는 세 가지가 방법입니다. 받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들은 말씀은 지키고, 잘못된 것은 회개하고. 이래 하면 어떻게 된다 말입니까? 남은바 죽게 된 것은 살릴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사데교회에 주님이 말씀하신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죽은자라'고 말씀하신 살았다는 이름이 무엇인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다. 여기서 생각해볼 수 있는 단계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다 그 말씀은 살았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처음부터 살았다는 말이 아니고 원래 모든 사람은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지었고 지으신 사람에게 생명을 주셔서 모든 사람은 다 산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1단계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없는 가운데 하나님이 지어서 생겨났고 지으신 존재에게 생명을 주셨으므로 모든 존재는 살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산 자가, 살아 있었던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죽은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2단계입니다.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1차적으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지음받아 살아 있었는데 1단계, 다 살아 있었는데 이 살아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하나도 빠짐없이 다 죽었습니다. 영원한 사망을 당해버렸습니다. 2단계. 죽어 있는 여기서 하나님이 사람되셔서 죽은 가운데서 살려낸자가 있습니다. 사데교회처럼.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살아있는 이름을 가졌다고 말씀을 하신겁니다. 살았다 말은 단계가 몇 단계입니까? 몇 단계인가요? 1단계는 하나님의 지음받아서 다 살았습니다. 누구나 다 살았습니다. 2단계는 살아 있었는데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범죄함으로 다 죽었습니다. 2단계. 다 죽은 가운데서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으로 살려내신 사람이 있습니다. 이게 산잡니다. 이 사데교회는 3단계 산 자가 되어 있고, 우리도 3단계로 산 자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모두 다 전 인류로 났다가 범죄함으로 다 죽은 여기가 2단계입니다. 여기까지는 다 동일합니다. 꼭 같습니다. 그런데 3단계에 가서 예수님의 대속을 입어서 살아난 3단계까지 진행이 된 사람도 있고, 3단계는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3단계까지 있는 사람이 살았다는 이름은 가진자고 2단계 죽음에서 머물러 있는 사람이 모든 일반 사람들 특수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은 다 거기서 머물러 가지고 그 상태로 있는겁니다. 우리는 3단계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그런데 3단계까지 올라온 사람이 그대로 계속 가면 영생이 되는 것이고 3단계 있는 그 사람이 4단계로 나아가면 그 4단계는 죽은자로 사는겁니다. 그게 4단계가 되는겁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다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아서 생명받아 다 살아 있었습니다. 다 산자 되어 있었는데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전 인류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죽었습니다. 2단계죠 다 죽었습니다. 이 죽음 가운데 있는 이것이 영원한 사망이고 영원한 지옥인데 이것이 하나님의 큰 고통이고 근심걱정이고 문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신,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다 만드시고 사람을 만드신데는 목적이 있고, 모든 사람을 다 꼭같이 만들지 아니하시고 일반인과 특수인입니다. 두 종류로 만들었는데 두 종류 다 어떤 의미에서는 해당되지마는 궁극적으로는 한 종류의 사람은 죽어도 어차피 지옥에 갈 것이니까 큰 문제될, 고민될 것이 없는데 특수인으로 지음받은 사람은 죽어 있으면 안되는겁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소원이 다 깨지고 엉망이 되어지는 겁니다. 약간 곁가지로 나가서 자존하신 하나님은 자존잡니다. 그 하나님은 완전잡니다. 완전이라 말은 전지 전능입니다. 무한입니다. 불변입니다. 그분은 없는게 없고 모자라는 것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완전잡니다. 그런데 그분이 혼자 계시니까 외롭습니다. 하나님이 완전잔데 외롭지 않게 할 수 있지않을까? 사람 생각에 완전자 전능자면 외롭지 않다 그래만 단순히 생각하는데 완전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도 못하는게 있습니다. 그러기때문에 완전입니다. 혼자 계시니까 외롭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혼자 계시지 않도록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엿새 동안에 우주와 영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과 꼭 같은 존재가 하나님을 알아주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서 사람과 꼭 같은 모습의 로보트 기계 인형을 만들어 놓고 그 인형에다가 인공지능을 심어 놓고 온갖 과학의 발달 장치를 가지고 조작을 다 해놔도 그런 것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 놔도 그것은 하나의 기계지 사람이 아니고 그 기계 속에는 자의적인 유기적인 그런 요소가 없는겁니다. 아무리 탁월한 사람닮은 로봇을 만들어 놔도 사람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조작되는 것이고 조종되는 것이지 자발적으로 되는게 아닌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거 아무리 많아도 자기 몸에서 난 자식 사람, 그 사람과는 비교를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 보다 나은 것이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기계보다는 나은 것이 뭡니까? 기계보다는 낫고 사람보다는 못한 존재가 바로 동물이니까 사람들이 기계보다 강아지를 기르고 고양이를 기르고 지능있는 동물을 기르는 겁니다. 사람 수준은 안되도 제대로의 움직임이, 인간같은 자의성이 아닐지라도 글너게 있기 때문에 그리 되는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그러합니다. 하나님을 꼭 닮아서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평가하고 스스로 자기가 판단하고 좋고 좋고 원하고 원해가지고 하나님을 알아주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는 요런 존재를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소원이고 하나님이 그에게 당신이 가진 완전을 전지전능을 다 주고 줌으로 그것을 받는 자유성 가진 자의성 유기적인 그 인격체는 받으니까 감사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앞에 영광 돌리는 이런 천국 건설을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드실 때 한 종류를 그 목적을 가지고 한 종류 사람을 만드신 겁니다. 그게 바로 특수인이고 구속받은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법을 어겨 죽은 그 속에 하나님께서 만드시고자 했던 그 특수인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 닮은 사람들 까지도 범죄함으로 죽은 그 속에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전부가 되어지는 하나님의 소원 뜻이 죽은 자가 되어 있으니까 이룰 수가 없는 겁니다. 소원 목적이 다 깨져서 아무것도 없게 되어진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큰 고민 고통 근심 걱정 되어 있었는데 해결할 사람이 누군가? 아무도 ㅇ벗어서 그래서 부득이하게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가지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 한문글자로 뭐라고 하는가요? 다같이 하십시다. 도성인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두 성품 양성이 한 인격체처럼 한 격위 한 사람 한 존재처럼 되어진 요걸 일위라 그러는데 하나님과 사람 두 성품이 한 존재가 되어진 것을 가리켜서 신인양성일위라 그리 말하고 요래 되어짐으로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이제는 범죄함으로 영원히 죽어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만들고자 했던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을 알아줄 자유성 적이고 유기적인 그 존재 택자들 그들의 죄의 값인 그들의 모든 죽음의 원인된 죄를 하나님이 사람되신 그분이 짊어지고 대신 형벌 받아 대신 영원한 죽음을 죽으심으로 모든 하나님의 택자들의 죄를 도말하시고 그들을 죽은자 가운대서 살려내 주신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되신 이 분이 이 모든 하나님의 고민 고통 근심 걱정꺼리를 해결해 주신겁니다. 이런 죽음의 원인되는 죄를 도말하시고 또 영원한 가난의 원인되는 자기 중심 자주장의 값을 대신 치르고 행하시고 하나님 배반하고 마귀 세상과 짝된 이걸 대신 형벌 받아 값을 내시고 하나님과 화친하심으로 세 가지 공로 베풀어 주신, 그래서 대형과 대행과 대화친의 사죄 칭의 화친의 공로를 주신 이게 하나님의 역사인데 이 공로를 인해서 하나님의 고통 근심 걱정 완전히 다 해결해주셨으니 이걸 가리켜서 하나님의 의라 그리 말합니다. 같이 해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을 하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ㅐ서 사람되어 오신 성자 하나님이 신인양성 일위 되셔서 하나님의 근심걱정 고통을 다 해결해주신 하나님의 의를 완성해주신 그 주님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전부 다 맡겼다고 말씀을 하신겁니다. 그래서 사데교회 말씀하시기를 네가 살았따 하는 ㄴ이름은 가졌다는 말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큰 고민 근심 걱정 고통을 해결하시고 완성해주신 하나님의 의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이름만 가진게 아닙니다. 이름만 가진것이 아니고 실제 그러하다는 겁니다.
명예라는 말이 있습니다. 박사 학위 중에서 명예박사라는 말도 있고, 또 명예교수라는 말도 있고 명예라는 것은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명예박사라 말은 실제 박사 학위, 논문을 내고 통과해서 박사학위 받은 사람이 아니고 그의 공로가 있던지 지대한 공로가 있어서 이름으로 그에게 박사 학위를 명예를 주는 겁니다. 논문이나 이런게 있어 되는게 아니고 어떤 면에서는 명예 이런 것은 실제보다 더 귀하고 훌륭한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할 때 요 이름이라 말은 이름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 살았다는 겁니다. 처음에 하나님께 지음받은 산자 되었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법을 어겨서 범죄함으로 다 죽었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죽었는데 이 상태 속에 하나님의 목적인 택자까지 들어 있으니까 하나님의 큰 고민입니다. 이걸 살려 내야 되는데 고민이고 고통이고 근심 걱정인데 이것을 신인 양성 일위 예수님께서 대신 형벌 받아 죽으심으로 죄를 다 도말하셔서 죽은자를 살려 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고민고통을 다 해결해 주셨으니 고해결하신 걸 가리켜 하나님의 의라 그랬고 그 의를 입어서 2단계 죽어 있던 자가 살아났기 때문에 산 자가 되었다 사데교회 말씀하시기를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이 말은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2단계 까지 죽은 자에 있던 거기서 하나님의 의를 입어서 살아났다 산 자가 되어졌다. 말하자면 범죄함으로 영원한 사망 되었던 그 죄 값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 자기 중심으로 산 죄, 하나님을 배반한 세 가지 죄를 대신 다 형벌 받아 죽으심으로 완성해서 입혀주신 사죄를 받은 자다. 그래서 죄 없는 자가 되었고, 없는 의를 대신 하나님의 법을 다 이행함으로 의를 만들어 우리에게 입혀서 의롭다 하신 우리가 되었으므로 의인이 되어진 칭의를 받은자다. 하나님과 원수 되어서 영원한 절망 속에 지옥의 자식 되었던 우리를 대신 형벌 받아서 값을 내시고 하나님과 화친하심으로 우리와 화친시켜 주신. 그래서 우리는 사죄 받은 자고, 칭의 받은 자고, 화친을 받은 자라서 오늘 우리는 사데교회는 죄가 없는 자가 되었고, 의로운 의인이 되어졌고, 하나님과 화친한 아들이 되어 졌으니 요 세 가지를 가리켜 하나님의 의라 그러고, 요 세 가지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을 가리켜서 살았다는 이름은 가진 자라 그러고 이걸 다른 말로 그러면 의인이라 그럽니다. 사데 교회는 요 하나님의 의를 받은 사람들이고 받은 교회고 산자고 의인이 되어 있는 잡니다. 이게 살았다는 이름입니다. 단순히 이름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를 입은 자라 살아난 자라 2단계 까지의 죽은 자로 있는 거기서 한 단계 더 예수님의 대속으로 살아난 자라 하나님의 의로 살아난 자라 하는 뜻을 가리켜서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다 그 말입니다.
그랬는데 사데교회의 생활을 보니까, 행위를 보니까, 옛날에 우리나라 대한 민국 서기 전에 조선있는데 이씨 조선 5백년인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그 다음 두 번째 왕자리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는데 그 똑똑한 이성계 아들 중에서 태종이라는 이방원이 그 사람이 아주 강하게 왕권주의를 확립을 해서 나라를 굳게 세웠는데, 그 사람이 나라를 굉장히 튼튼하게 아주 기틀을 완전히 다져 놨습니다. 그 사람의 장자가 이름이 양녕대군이라 그러는데 그 사람이 자기 아버지가 할아버지하고 부자지간에 싸우는 걸 보고 아버지가 이복 형제들 죽이는 거 보고 왕궁이 싫고 왕이되기 싫어서 그만 세자 자리 올라갔는데 왕이 되기 싫어가지고 온갖 비행을 다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그 사람은 이름은 세잡니다. 세자는 왕이 될 사람입니다. 왕이 될 사람은 말도 행동도 생활도 왕이 될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야 되는데 자기가 된 것이 보니까 그 사람이 아마 종교를 가졌으면 잘 믿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보는데 아버지하고 할아버지하고 부자지간에 그 이방원이가 굉장히 효잔데 아버지가 마음이 안들어서 함흥차사가 되고 그랬습니다. 그게 싫고 형제들 간에 피비릿내 나는 그게 싫어서 왕이 되기 싫어서 온갖 비행을 다 저지르고 기이하게 그리 살았습니다. 결국 왕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는데 세자로 살았지마는 그의 행동 생활 보니까 이거는 엉망 친창입니다. 그것처럼 예를 들자면 사데교회가 오늘 우리들이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이 사람 되셨으니까 말할 수 없는 큰 희생입니다. 고난입니다. 큰 수곱니다. 우리들이 형언하기 어렵고 상상하기 어려운 큰 하나님의 희생과 수고로 완성하신 하나님의 의를 만들어서 그 의를 다 입혀가지고 죄를 다 없이하고 의를 입혀서 의인을 만들고 하나님과 화친시켜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삼아서 산 자로 만들어 주셨고 의인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런데 사데 교회가 생활하는 거 보니까 살아가는 모습 보니까 의인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산 자라는 것은 보이지 아니하고 살아가는 것이 전부 죽은자로 살아있다 그말입니다. 의인인데 죄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사데교회 찾아가셔서 내가 네 행위를 보니까. 그 사데교회에 찾아가신 목적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은자로 살고 있으니까 그대로 두면은 남은바 다 죽어버릴꺼니까 하나님이 그 교회를 사랑하셔서 살리기 위해서 찾아가실 때 사데교회 남은 바를 살릴 수 있는 전체를 책임지신 성령을 붙들고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을 붙들고 그 교회에 찾아가서 남은바 죽게된 것을 살리기 위해서 찾아가신 겁니다. 그래서 사데교회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죽은자라 그 말은, 산 자라는 말은, 하나님의 의를 입은자라는 뜻이고 산 자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산 자가 되었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산 자가 되었으니까 산 자로 살면 영생이 되어지고, 산 자로 그대로 유지가 되는데 산 자가 산 자가 아닌 죽은자로 사니까 죽은자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의를 입은 의인이 의인으로 살지 아니하고 죄인으로 사니까 죽은자가 되어진 것입니다. 이게 사데교회의 모습이었고,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양면을 생각을 하고 신령한 면으로 좀 생각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죽었다 그럴때 육신의 죽음은 이성에서 끝이 나니까 함께 있던 사람이 두번다시 함께있지 못하고 돌아오지 못하니까 슬픔이 북받치고 죽음이 괴롭고 고통스럽고 슬픔인줄 앎니다. 그래서 전 인류가 6천년 역사에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죽음은 피하고 싶고 면하고 싶고 피할 수 없고 면할 수 없다면 최대한 늦추고 싶고 이것이 전 인류의 가장 큰 욕망이고 노력입니다. 그런데 이거는 이 죽음은 고통인줄 알고 이거는 괴로운 것인줄 알고 피하고 싶은줄 알고 안당하고 싶으면서, 우리의 영원한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가 별로 생각이 없고 인식이 없습니다. 지난 주 깨달음의 은혜라, 말씀 깨달음을 은혜를 받아야 된다고 했는데 이런 것이 우리에게 성경에 말씀하신 그대로 느껴지는 것을 깨달음이라 합니다. 육심의 죽음이란 어차피 한 번 죽는 죽음이고 영원한 죽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았다는 이름은 가진 자가 또 다시 죽어버리면 그 죽음은 영원한 죽음이 되는겁니다. 사데교회는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는데 오랜 세월 죽은자로 살았고 죽은자로 산 과거는 영원토록 회복하지 못합니다. 영원한 죽음입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는 사데교회 처럼 하나님의 의를 입었기 때문에 산 자가 되었습니다. 살았다는 이름을 가진 산 자가 되었는데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면 산 자가 산 자로 산 것은 많지 못하고 죽은자로 산 세월이 우리에게 너무 많고 그런 요소가 우리에게 너무 많은 우리들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 대해서는 우리들이 별로 인식도 생각도 중요성도 근심 걱정 고민도 별로 없는 것이 우리들이니 깨달음이 부족한 우리들이 아닌가? 깊이 좀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남은 바가 있습니다. 남은 바 죽게 된 것. 남은바라 말은 살아 생전 주신 기간입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릅니다. 사데교회도 주님이 찾아 가셨을 때 얼마나 남았었는지. 오늘 우리도 남은 바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남은 바 죽게 된 것,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산 자가 산 자로 살아온 것도 있을 것이고 죽은 자로 산 것도 있을 것인데 산 자가 산 자로 산 세월 그대로 남은 때를 살면 그대로 살게 되는 것이고 사데 교회를 책망하신 것 처럼 산 자가 죽은 자로 사는 세월 그대로 남은 때를 살면 우리 남은 바도 다 죽게 되니까 이거는 살리는 우리들이 되야 되겠다 하는겁니다. 그것이 바로 산 자로 사는 것이 의인으로 사는겁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은 의인으로 사는 것. 의인으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는 겁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나님의 말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의인으로 사는 것이고 그리 살면 남은 바는 죽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겁니다.
정리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일차적으로 살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지음받아 다 살아 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범죄함으로 다 죽었습니다. 다 죽은 그 속에는 택함 받은 특수인도 들어 있었습니다. 다 죽어 있는 거기서 하나님이 사람되신 신인양성일위 도성인신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서 입혀서 하나님의 택한 특수인들은 살려 주셨으니까 산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입은 우리들이 되어 졌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의인이 되었으니까 의인으로 살아야 되겠고 의인으로 살면 이제는 산 자가 되는 것이고 영생이 되어지는 겁니다. 의인으로 사는 것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의인으로 사는 것이다 하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입은 의인이니까 의인으로 살아야 되겠다. 같이 한 번 해보십시다. 하나님의 의. 의인으로 삽시다. 우리는 산 자가 되었으니까 산 자로 살아야 되겠고 의인이 되었으니까 의인으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의인으로 사는 것은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의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데교회 찾아가셨던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찾아 오십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다. 오늘 우리는 그런 모습이 아닌가? 돌아보고 산 자가 되었으니까 의인 되었으니까 산 자로 의인으로 성경 말씀으로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