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7-주후(레1:1-9)
제사 생활2014-04-28조회 367추천 37
본문: 레1:1-9
제목: 제사 생활
요점:
1. 레위기 성경
- 창세기는 세상의 시작, 인류의 시작에 대한 기록
- 출애굽기는 애굽에서의 번식과 출애굽, 하나님의 인도, 성막에 대한 기록
- 레위기는 애굽에서 나온 후 성막 생활에 대한 기록
- 성막 생활의 중심은 지성소 안의 법궤
- 성막 생활의 실제 생활은 제사 생활, 레위기의 기록은 제사 제물에 대해서
2. 제사에 대한 상식
- 제사의 유례는 창3:21의 짐승의 가죽 옷
- 제사의 의미는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 범죄한 인간에게 주신 구원의 법칙
- 제사의 종류는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 제사의 방법은 화제, 요제, 거제, 전제
3. 본문 분석
1)제물의 조건
- 자격은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나
- 제물은 생축 중에서, 생축이란 제물로 쓰이는 짐승
- 생축은 준비된 짐승이라는 의미로, 우리는 제물임을 늘 기억
- 반드시 흠없는 수컷,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칠 때는 섞임없는 동기와 목적으로
2)제사의 순서와 기억할 것
-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여 잡고
-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 안수, 잡는 것, 가죽 벗기고 각을 뜨는 것은 본인이
- 자기를 바쳐 드리는 일이므로 자기가 해야 되는 자유성
- 제사장은 본인이 하는 일에 돕는 역할
4. 제사 생활
1)의미
- 기독교는 제사가 중심, 신앙 생활은 제사 생활
- 제사 없는 기독교는 없는 것, 신앙 생활은 곧 제사 생활
- 제사는 하나님께 드림을 받는 역사
2)방법
-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하고
- 제물은 반드시 잡아서 피를 흘려야 하는 것
3)실제
- 제사는 크게 분류하면 3가지이니
- 구약의 예표, 그림자 제사, 예수님 대속 제사, 신약의 우리 제사
- 제사는 자기를 바쳐 드리는 생활이니
- 하나님 뜻을 위해, 형제 구원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
- 양보, 손해, 희생, 수고... 주를 위핸, 형제 구원 위한 이런 것들이 곧 제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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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40427 주후
레위기 1:1-9
레위기는 창세기, 출애굽기 다음 세 번째 성경입니다. 주전 1500년쯤, 지금부터 3500년전쯤에 기록된 성경이고 기록한 사람은 모세라고 했습니다. 창세기라는 성경의 이름은 세상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라는 말은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창’자가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시작 그게 창세기입니다. 인류의 시작이라는 말도 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이 세상이 어떻게 해서 시작이 되어졌는가 하는 세상의 근본, 인류의 근본을 창세기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세상 인간의 범죄, 타락 그 이후가 어떻게 진행되어져 왔는지를 창세기에 기록을 해두셨습니다.
창세기 내용을 보면은 첫째, 천지창조가 있고 그다음 인간의 범죄와 타락이 있고 그다음 뭐가 나옵니까? 창세기 정도는 좀 흐름을 알고 있어도 되겠지요. 천지창조가 있고 그다음 범죄 타락이 있고 에덴동산 쫓겨남이 있고 그다음에는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이 나오고, 그다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이 나오고, 6장부터는 노아의 사적이 기록되서 6,7,8,9장까진가 노아 홍수가 기록되고 그 이후에 노아의 자손들이 기록이 되고 그리고난다음에 바벨탑이 있고 그리고 아브람의 그 행적이 나옵니다.
그러면 인류의 시작과 범죄 타락 그다음 죄가 세상에 가득차서 온세상이 다 멸망하는 그 멸망과 그다음 새로 시작된 세상에서 믿음의 조상들의 행적이 기록됐는데 크게 말하면 아브람의 기록과 이삭의 기록과 야곱의 기록과, 요셉의 모든 행적을 성경은 야곱의 약전이라 그리 기록되있습니다. 구분한다면 요셉의 생애와, 거기까지가 창세기 기록이고. 그다음 상황으로 들어가면 요셉이 애굽나라에 들어가고 그다음 요셉을 출발로 해서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모든 자손들이 애굽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창세기가 끝이 납니다. 애굽나라 들어가고 요셉이 죽는 것으로 끝이 나지요. 요셉이 죽는 것으로 창세기가 끝이 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이라는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창세기 기록이 끝이 되고.
그다음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크게 많이 번성하고 번식하는 그 기록과 애굽나라에 백성들의 그 왕과 식민들의 학대와 출애굽 과정, 그리고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가는 그 과정에는 그 광야의 생활에 들어가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의 그런 모든 역사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십계명 기록과 하나님 계명, 그리고 마지막에 기록되는 것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출애굽에 마지막 기록이 성막 짓는 그게 출애굽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어떻게 성막을 지을 것인가를 세밀하게 말씀하셔서 기록이 되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레위기로 이어지면 이제는 아직까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이지만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구속의 법칙을 본격적으로 말씀을 하신게 제사법칙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라는 성경은 세상의 시작과 인류의 시작 그게 중심이고, 이름이 그렇습니다. 창세기 ‘창’자가 시작한다는 뜻이라 그랬습니다. 세상의 시작, 인류의 시작. 그게 창세기고,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나온다는 뜻이지요. 애굽에서 나왔다. 출(出)애굽기. 그래서 애굽에서 나온 그 기록 그게 출애굽기의 중심인데, 전체흐름인데 끝에 가서는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성막을 지어라 그래서 성막 짓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성막짓는 것으로 끝을 맺고 그다음 레위기 성경은 이름이 레위지파, 레위지파는, 레위지파 그러면 얼른 떠오르는게 제사입니다. 그래서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제사를 책임졌고 또 하나님의 성막과 관련된 모든 일을 책임 맡은게 레위 지파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와 성막에 관련된 일을, 그 성막안에는 법궤가 있고 법궤위에 그룹이 있고 성소 지성소 안에 법궤 그룹, 하나님이 계시는 성막 성소, 거기 관련된 모든 일을 책임 맡은 그 지파가 레위지파 그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레위지파는 대표적으로 제사장 지파고 제사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고 성막을 책임지고, 성막은 또 법궤가 중심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책임진 그 사람들이 레위지파라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제사라는 것은 레위지파가 맡아서 하는 것이었는데, 제사의 유래가 어떠하냐? 제사의 유래는, 제사는 그 의미가 범죄한 인생들에게 구원 받는 길을 주신게 제사기 때문에 그 제사의 유래는 범죄후에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범죄하고 타락하기 전에는 제사가 있을 필요가 없고 실제 없었습니다. 창세기 1장, 2장까지 또 3장에도 범죄하기 전까지는 제사가 없고, 창세기 3장 21절에 가서 비로소 제사의 하나 표시가 되어지는 짐승의 가죽을 가지고 범죄한 아담 하와에게 옷을 입혀준 보호해준 그게 제사의 하나의 가장 상징적인 일이고 그게 가장 첫출발이고 유래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사의 의미는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 같이 해보실까요? ‘예표’. 무슨 뜻입니까? 예표라 말이 무슨 뜻이지요? 미리 표시한다 그뜻입니다. 미리 나타내는 ‘예표’. 그걸 예표가, 예수님의 대속을 미리 행하는 그 의식 그게 제사고, 범죄한 인간이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제사. 제사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제사가 중심이고 제사 빼놓고 나면 기독교는 없습니다. 제사가 바로 예수님 대속이고, 예수님 대속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거는. 대속이 바로 기독교고, 그 대속은 구약으로 말하면 바로 제사고, 그게 바로 기독교며 신앙생활은 다 이겁니다.
제사종류를 참고로 공부한다면, 제사 종류 크게 말하면, 제사 종류가 크게 몇가지였습니까? 오전에. 000 몇가지였던가요? 몇가지? 4가지? 하나 더 있었는데, 다섯가지. 네가지는, 진짜 중요한 건 네가지고 한가지 속했고. 첫째가 무슨 젭니까? 속죄제. 속죄, 지은죄 이거는 모든 죄가 다 포함되겠지요. 죄를 지은 것. 속죄제. 두 번째는 속건제. 자기가 실수로 모르고 지은죄, 허물. 이걸 사함받는 제사. 세 번째는 화목제. 네 번째는 자기 전부를 다 드리는 번제. 그다음 마지막 다섯 번째, 좀 하나님 앞에 제사가 다 그렇지만은 그래도 비교적으로 좀 작은 제사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제사가 바로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 이 다섯가지 제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화목제 안에 감사제 서원제 낙헌제가 있다 그러는데 이거는 그냥 다른걸 문서에서 봤기 때문에 살펴봐야되겠고.
제사 지내는 방법은 크게 네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화제, ‘불 화’자. 불로 태워가지고 바치는 화제. 두 번째는 흔들어서 드리는 ‘요제’, 세 번째는 들어올려서 드리는 ‘거제’, 네 번째는 부어서 드리는 ‘전제’. 네가지 방법이 제사 드리는 방법이고 형식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구약시대때 이렇게 드렸는데 이걸 우리가 연구해보면, ‘불로 태워서 제사를 드린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또 ‘하나님 앞에 흔들어서 드린다’ 이건 또 무슨 뜻일까? ‘들어서 드린다’ 이거는 뭘까? ‘부어서 드린다’ 이거는 뭘까? 그 이치 의미를 좀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다음 본문에서 레위기 1장은 번제에 대한 기록입니다. 마지막 전부 다 받쳐드리는 번제를 제일 먼저 기록하셨는데, 범죄에 대해서 예물에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수 있는 그 예물, 그다음 자격을 본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면 누구나 다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본문에 보니까,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구하여 이르라 너희중에 누구든지’ 그랬으니까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누구나 다 예물을 가져와서 하나님앞에 제사를 드릴 수 있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자격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은 누구든지. 그다음 두 번째, 예물은 무엇인가? 예물은 제사 제물을 말하는데 반드시 무엇이라야 된다 그랬습니까? ‘너희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뭐라야 된다 그랬습니까? ‘생축’이라 그랬습니다, 생축. 생축이라는 말은, 생축은 이거 사전에도 나오는 말인데 제물에 쓰여지는 짐승, 제사 드리기 위해서 예비해둔 짐승을 생축이라 그리 말합니다. 반드시 제물로만 쓰여지는 그 짐승을 생축이다 그리 말합니다. 그러면 이거는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받치기 위해서 예비된 생축, 이걸 하나만 꼽는다면 하나님 앞에 제사에 쓰여지는 제물로 예비된 생축이면 그게 무엇입니까? 생축이면 이거 좀 표현이 그런데 어린양이고, 어린양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근본적인 하나님 앞에 받쳐지는 제물은 생축을 하나만 딱 꼽는다면 예수님만 제물이 된다 그뜻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제사드린 모든 제사는 생축이라야 되고 그리스도 예수라야 되고 그 예수님을 통한 모든 제사라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되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지 않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제사가 됩니다. 반드시 생축이라야 됩니다.
우리에게 적용시키고, 구약시대로 적용시킨다면 준비된 제물, 예비되고 준비된 제물이라야 된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칠때는 준비된 자기를 드려야 된다 그런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고, 그다음 또 하나 자격은 흠없는 것이라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종교말년에 하나님 앞에서 예물로 받쳐드리는 모든 것을 전부다 성경은 흠없는 걸 바치라 그랬는데 흠 있는 것, 눈 먼 것, 다리 저는 것, 병든 것 이런 찌끄래기는 하나님 앞에 갖다바치고 온전하고 구비하고 값나가는 좋은 것은 전부다 뒤로 빼가지고 자기들 치부하는데 다 써먹으니까 그것이 그 자체도 큰 죄가 되지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기 때문에 큰 진노를 종교말년에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 주의 일을 하던지, 주님 위해서 뭘 할때는 준비된 것이라야 되고 주로 말미암은 것이라야 되고 흠 없는 온전한, 자기로써는 가장 좋은 귀한 그런 것을 받치는 것이지 쓰고 남은 찌끄래기 이런 것, 사람들 생각할 때 이거는 중심이 문제고 제물 많은 부자들, 실력있는 사람들은 쓰고 남은걸 바쳐도 온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물건 자체만 두고는. 또 반대로 실력없고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모아봐야 다른 사람이 버리는 찌끄래기만도 못한 그런것을 바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체는 자기기 때문에 자기가 문제입니다. 내가, 내가 가진 내 범위 내 실력 중에서 나로서는 어떤 것이 하나님 앞에 가장 최고며 최귀며 온전한 것이 되어지는가를 뽑아서, 그걸 뽑아서 드려야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그렇게 따져본다면 실력있고 출중한 많은 사람은 그만큼 더 어려울 것이고 무능하고 가진게 적은 사람은 오히려 쉬울 수 있겠지요. 그렇게 힘드는게 아니니까. 그런면이 있습니다. 이게 예물과 자격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번제 드리는 소를 가지고 대표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이 순서 그 과정을 보면은 첫째 장소가 있습니다. 예물을 드릴때. 소를 드릴때 어디서 드리느냐. 흠없는 수컷을 가지고 어디서 드립니까? 회막문에서 드려라. 회막문. 회막문이면 성전 문앞에다가 제단을 차려놓고 거기서 번제를 드려라 했으니까 이게 무슨 의미인지. 그다음 양이나 소를 드릴때는, 그 뒤에 가서 보면 단 북편에서 드려라 그래놨습니다. 또 이게 장소가 없는 것도 있고. 그러면 소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제물중에 가장 뛰어난 것, 말하자면은 가장 많이 가진 사람, 실력있는 사람, 가장 크고 좋은 것 대표적인 그게 바로 소고 송아지입니다. 이걸 가지고 드릴때는 회막문에서 드려라. 회막문은 회막에 들어가고 나오는 출입구가 되겠고 모든 사람이 다 보는 그런 것이 되겠지요. 문에서 드리는 겁니다. 회막문에서 드리고 그다음 두 번째 할 일은, 제사 드리는 제물 드리는 그 사람이 할 일은 첫째 그제물의 머리에 뭐합니까? 안수하라 그랬습니다, 안수. 안수는 자기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시키는 겁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므로 내가 죽어야 되는데 나 대신에 소 니가 대신 죽는 거다. 양 염소 니가 대신 죽는거다. 그런데 소와 양이 염소가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가 없지만은, 앞으로 사람을 입고오실, 그래서 사람인 내 죄를 대속하실 어린양 예수님을 소망하고 예표로 미리 표시로 어린양을 대신해서, 어린양을 표시하는 소와 양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되 잡기전에 거기다가 내 죄를 다 거기 맡기는 겁니다. 소에게 양에게 내 죄를 다 전가시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누구한테 전가시키는 겁니까? 예수님에게 내 죄를 다 맡기는, 그냥 지우는 그런 것이 되는 겁니다. 이게 안수라는 겁니다, 안수. 안수하고 그다음 두 번째는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다음 5절에 ‘그는 여호와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안수하고 난 다음에 잡습니다. 잡는다는 말은 어떻게 한다고요? 참 많은 분 앞에서 표현하기그런데 이거는 그 짐승을 잡는다는 말은 도살한다 그말이지요. 죽인다는 말입니다. 죽이고 잡고 그러고나면, 안수하고 잡고나면 제일 먼저 제사장이 피를 다 받아가지고 그 제사드리는 그 주변 사변에 피를 다 뿌렸습니다. 단 사면에 피를 다 뿌리고, 그다음 그러고나면 피를 뿌리고나면 그다음에 제물 갖다바치는 그 사람이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가죽을 벗겨내고 이제 토막토막을 말하자면은 다리 어디 다 잘라내는 겁니다. 그러면 짐승의 가죽을 벗겨낸다 이게 무슨 뜻일까. 좀 각각 생각 한번 해보시지요. 가죽옷을 입었고 또 가죽을 벗겨내고 그다음 각을 뜨고,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은, 가죽껍데기를 홀딱 벗긴다 그럴때 그 말은 그 사람의 속속들이 모든 걸 다 드러낸다는 그런 뜻이 되겠지요. 그러면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것은 다시 말하면 누구 가죽을 벗기는 겁니까? 자기 가죽을 벗기는 것하고 같은 거지요, 제물인데. 그러면 자기 모든 죄를 속속들이 전부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다 맡기는 거다 그런 의미가 될 수 있을런지. 또 가죽을 벗겨내는 거니까 그 가죽을 벗겨서 자기가 입는 보호가 될런지. 이런 몇가지 의미로 생각해보십시다.
또 각을 뜬다는 말은 토막토막 잘라낸다는 말이니까 우리들의 모든 죄를 하나하나 세밀하게 따져서 낱낱이 다, 속속들이 낱낱이 이게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이런 의미로 좀 생각해볼 수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고나면 제사장은 그 짐승 바쳐 드리는 단 위에다가 나무를 펼쳐놓고 불을 붙여놓고 그리고난다음에 뜬 각하고 머리하고 기름을 그 단위에 불에 다 얹어서 태우고 얹어놓고 그리고난다음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어가지고 전부를 불에 살라서 번제를 삼으라 그렇게 해놨습니다. 여기서 하나 생각해볼 것은 역할이 있다는 겁니다. 이 번제를 드릴때, 소를 가지고 번제 드릴때 4절에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이 ‘그’라는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려거든 그래놓고 이어서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그리고난다음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랬으니까 이 그라는 말은 누구겠습니까? 제사를 드리는 그 본인입니다, 당사자. 그 본인이 짐승머리 제물의 머리에 본인이 안수합니다. 자기 죄니까, 내 죄를 그에게 맡깁니다. 본인이 안수하고, 또 그다음 잡는거는 누가 잡습니까? 잡는 것도 자기가 잡습니다. 본인이 잡고, 가죽 벗기는 건 누가 벗깁니까? 가죽 벗기는 것도 그사람이 벗기고 각을 뜨는 것도 그 사람이. 그러면 실질적으로 제단에 바쳐지는, 제물을 가지고 제단에 바치는 실질적인 그런 것, 이게 제사장이 이 모든 걸 하는걸로 그렇게만 알아왔는데 다른 것 살펴봐야 되겠습니다만은, 이번에 이걸 하면서 살펴보니까 적어도 여기 레위기 1장에 번제소, 소를 가지고 번제드리는 여기는 안수는 본인이 합니다. 잡는 것도 그가 본인이 잡습니다. 그다음 가죽을 벗기는 것도 본인이 합니다. 각을 뜨는 것도 본인이 합니다. 그러면 제물을 바치는 실질적인 모든 것은 자기가 한다 그말이지요. 자기를 이 제사는 결국 제물을 바치는 건데 누구를 바치는 겁니까? 자기를 바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나 자신을 바쳐 드리는데 나를 대신해서 짐승을 바쳐 드린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를 바치는 거기서 안수하는 것도 자기가, 잡아죽이는 것도 자기가, 가죽을 벗기는 것도 자기가, 각을 뜨는 것도 자기가, 그러면 결국 이거는 하나님 앞에 제물 바치는 것은 자기 책임, 자의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제단앞에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책임지고 자의로 하는 것이지 타에 의해서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게 아니라 그뜻이지요. 내가 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쳐 드리는 것은 자기 죄를 대속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드려야 되기 때문에 내가 안수해야 되고 내가 잡아야 되고 내가 가죽 벗기고 내가 각을 떠야 된다, 그리고 난다음에 하나는 구별해놨습니다. 보니까 4절에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절에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잡고나면 그다음에 그 사람이 잡아두면 그다음에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고’ 6절에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고’ 그리고나면 7절에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고 내장과 정강이를 씻어서 다 태우라’ 그러면 직접 짐승 제물을 안수하고 잡고 가죽 벗기고 각을 뜨는 것은 본인이 하고, 그 해놓은 것을 가지고 처리하는 것은 제사장들이 한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본문에 맞습니까? 그렇게 되있지요 지금 본문에 보니까. 그러면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드리는 이 제물 생활은 결국 구원받는 생활인데, 주님 대속이, 예수님의 그 당신을 대속 제물로 다 받쳐진 그 제사가 완성이 되어져 있으니까 우리는 그 주님의 십자가 대속 그 제사를 근거해서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인데 이미 기본적으로는 다 되어있으나 지금 제사생활, 그래서 구약시대때 그들이 제사드린 그 제사는 예정 속에는 다른 차원이 있지만은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같이 들어있는 그런 제사 생활이었다고 볼 수 있겠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기본 구원과 그들이 행한 제사 생활의 건설구원이 완전히 결제가 되어진 것이다 그리 볼 수 있겠고,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과거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이미 기본구원적인 면은 다 완성이 되어져있고 우리들의 제사생활은 건설구원적인 면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은 제사생활(자기를 드리는 생활) 그렇게 해놨는데,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쳐 드리는 그 생활은 전부 건설구원과 관련된 생활인데 그 제사 생활은, 자기를 바쳐 드리는 그 생활은 이거는 건설구원에 속한 생활이나. 건설구원이라 말은, 자 또한번 돌이켜 생각해보십시다. 건설구원은 어떤걸 건설구원이라 말합니까? 건설구원이라는 표현 쓸때는 어떤걸 말합니까? 각도가 좀 많은데, 건설구원은 어떤것이 건설구원입니까? 기본구원과 관련시킨다면, 어떤 것이 건설구원입니까?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사는 것이 바로 건설구원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속으로 완성된 제사, 그걸 우리는 다 받았는데 그 제사생활을 계속하므로 그 대속의 제사를 실질적으로 내것 삼는, 그리고 그 생활을 계속 하는 것이 바로 제사생활이고 그게 바로 건설구원이다 그말입니다. 이 생활에 있어서 이게 바로 자기를 바쳐드리는 생활인데 이 생활은 전부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겁니다. 자기의 자의로 하는 것이고,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이고 자기가 가죽을 보호 입는다 그러면, 그 짐승 가죽으로 자기가 벗겨서 자기가 보호를 받는 것이고 자기 모든 생활 낱낱이, 자기 생애와 자기 현실 생활을 바쳐 드리는 그게 제사 드리는 생활입니다. 여기서 제사장들 하는 거, 제사장은 당사자가 아니고 객관이고 돕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나온걸로는. 그러면 제사장은 오늘로 말하면 교역자들, 설교자들, 교회집사님들, 장로님들, 반사선생님들 이런 분들이 다 제사장 역할인데 그 제사장들이 본인들도 그 제사 드릴때가 있고 당사자들이 제사를 드릴때 주변에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본인이 드리는 그 제사를 돕는 역할만 하는 겁니다. 도와서 제사가 바로 될 수 있도록 돕는 역사를 하는 것이 제사장들이 하는 일이다, 본문에 보면은.
하나님 앞에 직접적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제사장이 집도 하겠지만은, 개인 개인이 이렇게 드릴때는 그거는 그 개인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이고 자의에 의해서, 자기를 바치고, 자기 죄를 속함받는, 자기를 드리는 그게 제사다 그말입니다. 여기 본문에서 이걸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하고 또 결론적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제사생활에 대해서 기독교는 제사가 중심이다, 다시말하면 무엇이 중심입니까? 다시 말하면 무엇이 중심입니까? 제사가 중심이라 말은 무엇이 중심이라고요? 대속이 중심이다 그말이죠. 대속이 중심이다. 현대 자동차는 뭐하는 회사입니까? 비유가 안맞지만은 현대자동차는 뭐하는 회사입니까?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거기서 자동차 만드는 걸 빼고나면 현대자동차는 없는 겁니다. 이름을 바꾸던지 다른걸 만드려면, 현대 예를 들면은 거기서 휴대폰을 만들든지, 아니면 전자부품 만들면 현대 전자라 그러면 맞겠는데 현대 자동차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자동차를 안 만들고 휴대폰을 만들면 뭐가 잘못된 겁니까? 이름이 틀린겁니다 그거는. 현대 자동차를 적어놓고 그 회사 들어가보니까 휴대폰을 만들어? 업이 잘못됐든 이름이 잘못되든 잘못된 거지요 그거는, 바꿔야 되는 겁니다. 아무아무 어학원 그렇게 적어놓고, 어학원은 주로 영어일꺼니까, 그렇게 적어놨는데 들어가보니까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거는 간판이 틀렸던지 가르치는 내용이 틀렸던지 둘중에 하나가 틀린 겁니다. 어학원이라 그러면 영어를 가르치던지 중국어를 가르치던지 말에 대해서 어학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지 무슨 어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쳐? 과학을 가르쳐? 틀린 겁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대속이 중심이다 그말입니다. 대속. 대속은 제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생활에 전부는 대속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대속 없는 믿음, 믿음 아닙니다. 대속 없는 기도, 해당 없습니다. 대속 없는 충성, 그거 신앙 아닙니다. 대속 없는 봉사 희생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대속이, 대속은 바로 제사입니다. 그 제사가 기독교 신앙에 중심입니다. 전부입니다. 말하자면은 현대 자동차는 자동차 만드는 회사인 것처럼, 예를 들자면 아무아무 어학원은 어학을 가르치는 곳인것처럼,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예수교 기독교는 대속이 중심이고 그러기 때문에 대속을 알리고 대속을 전하고 대속을 입고 전파하고 대속으로 사는 그거 전파하는 곳이 기독교고 교회입니다. 대속이 중심입니다. 대속이 다시 말하면 뭐라고요? 제사입니다. 이 논리가 이해가 되십니까? 전체 이 논리가 맞습니까? 대속이 중심이다. 대속의 주체가 누굽니까? 자 그러면 좀 들어가서, 그래서 신앙생활은 전부다 대속생활이고 다시 말하면 제사 생활이고 자기를 바쳐 드리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자기 바쳐 드리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의식입니다. 섬기는 의식이다. 내면은 하나님 섬기는 것이고 구원받는, 그다음 의식은 드러나는 외형이고, 제사는 대속의 예표며 그림자적인 것이고, 또 하나 한다면 하나님 앞에 드리므로 하나님의 모든 걸 받는 것이 제사입니다. 내것을 바쳐드리므로 받는 겁니다. 자기를 바쳐드려서 나를 제물로 바쳐 드려서 받는 첫째가 뭡니까? 나를 대속의 제물 바쳐 드려서 하나님께 받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제사는 드리므로 하나님 앞에 드리므로 받는 건데, 나를 바쳐드리므로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속주를 받는겁니다, 대속주를. 나를 드리므로 구주를 받는 것이고 대속주를 받는 겁니다. 기본구원적으로 되어있는데 건설구원에서,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은 상점에 가서 물건있는데 물건을 집어서 옵니다. ‘이보세요, 왜 그 물건 가져가요? 돈도 안주고’. ‘가져가거나 말거나 내거 내가 가져가는데’ ‘이게 어떻게 당신거요?’ ‘우리 상점건데.’ ‘내것 내가 가져가는데.’ ‘야이 도둑놈아 가져가려면 값을 내야지. 물건값을 내고 가져가야지.’ 물건값을 내고 가져갑니다. ‘그러면 그것 왜 가져갑니까?’ ‘여기 돈 냈잖아. 물건 값을 냈으니까 내것 아니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 값은 무엇이 값입니까? 자기를 바쳐드리는 것이 값이고, 내가 가져오는 거는요? 주님 대속입니다. 대속을 내것 삼으려면 나를 드리는 게 법리고 마땅한 도리입니다. 나를 바쳐드리지 않고 대속을 가져오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내가 너를 라오디게아 교회에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어떻게 하라고요? 사서 부요하게 하고 또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 사라 값을 내라. 그 값은 나 자신을 드리는 겁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므로 대속주를 내것 삼는 이게 가장 큰 드림으로 받는 것이고 그다음 실질적으로 나를 드리므로 대속으로 인한 모든 그 대속의 효력을 바쳐드리므로 현실에서 계속 드리므로 효력을 계속 받아서 그 대속의 역사에 능력을 실력을 내가 받아가지는 그것이 드리므로 받는 그런 역사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제사라는 제사의 의미입니다. 기독교는 제사가 중심이다. 신앙생활은 제사 생활이다. 제사는 하나님 섬기는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의식이다. 제사는 예수님의 대속의 예표며 모형이다. 제사는 하나님 앞에 드리므로 받는 역사다.
그다음 제사 드리는 방법은, 제사는 첫째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는 그 제물은 반드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죽어야 됩니다. 제물이 있어야 되고 죽어야 되는게 제사 드리는 방법.
제물은 크게 말하면 셋입니다. 성경 전체를 두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치는 제사의 제물은 크게 말하면 세종류입니다. 첫째 뭡니까? 이거는 잘 모르실 것 같아요 보니까. 전체 아는 분들은 아실 것 같은데. 자, 구약 신구약 두고 구약 성경 오늘까지 두고, 구약시대 오늘까지 두고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제물은 크게 세종류입니다. 첫째는요? 000 선생님 아시겠습니까? 흐름을 생각해보면.. 첫째는요? 구약시대 그림자로 드렸던 모든 짐승 한종류, 소 양 염소 비둘기 하나, 두 번째는요? 제물 두 번째는요? 예수님, 세 번째는요? 나 자신. 이렇게 드리는 것이 제물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짐승이 제물이고, 실상으로 오신 주님이 제물이고 그다음 오늘날 내가 바치는 나 자신이 제물입니다. 가장 중요한 제물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 세종류 제물은 반드시 죽어야 됩니다. 죽어야 제사가 온전히 되지 죽지 않으면 제사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약시대 제사는 이미 다 지나갔고 예수님 제사도 완성되어졌고 남은 것은 현재 살아있는 우리들이 제사를 드리는 건데 나를 실제로 바쳐 드리는 제사는 어떻게 하는가? 오늘의 제물은 바로 나인데, 제사라는 것은 제물을 바쳐 죽이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자신을 바쳐 제물로 바쳐 죽으셨듯이 나를 제물로 바쳐 죽여야 비로소 온전한 제사가 되는데, 나를 죽인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나를 죽인다는 말은 마지막에 육신의 생명까지도 제물로 받쳐져야 됩니다. 자기 생명을 제물로 바치는 걸, 백목사님이 평생, 평상 소원 노래 불렀던 뭡니까? 그게 바로 우리는 참 꿈도 꾸기 어려운 ‘순교’고, 그런데 참 설교해보면 그때 들을때, 집회때 이번에도 순교 많이 나오는데 들을때 그때는 ‘순교 순교’ 예사로 생각했지요. 지금 설교하려고 하면은 저는 우리 교회에서 ‘순교’ 설교한 적 있습니까, 제가? 순교해야 됩니다, 합시다 한게 별로 없지요? 너무 거리가 멀어서 감히 입에 담기가 어렵습니다. 순교, 평생 소원이 순교였는데 우리는 그게 너무 거리가 멀어서.. 그렇게 되어야 되는데. 마지막에 목숨까지 하나님 앞에 주를 위해 다 바치는 게 재물로 다 받쳐지는 순교입니다. 최종, 최후의 완성이고 거기 가기까지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게 바로 자기 일상생활, 평소생활, 현실생활에서 자기를 바쳐 드리는 건데 자기를 바친다 말은 쉽게 말하면 내가 손해본다는 뜻입니다. 내가 희생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할 것을 못하고 나 대신 내가 말하자면은 양보한다는 겁니다. 내가 참는다는 겁니다. 내가 가져올 것을 못 가져오고 준다는 거지요. 내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못하고 손해보고 양보하고 내놓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못하는 거지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해야 되느냐. 이웃을 위해서, 인간 도덕 때문에, 자기 앞날의 출세 때문에, 가족애 때문에, 사람들 이목 때문에 이거 다 인본입니다. 이거 말하자면은, 전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 말씀, 하나님 뜻 때문에, 형제 구원 때문에, 그래서 전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 말씀 지키고 말씀 순종하기 위해서, 형제 구원을 위해서 내가 마음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물질이든 생활이든 어떤 것이든 손해 보는 것, 양보하는 것, 참는 것, 희생하는 것, 견디는 것, 누르는 것, 못하는 것, 이런게 전부다 희생이고 손해고 양보인데, 이게 전부다 말하자면은 토막토막의 자기를 바쳐 드리는 희생이고 이게 전부 제사생활의 실제입니다. 이런 작은 현실 생활에 제사들이 모여서 자기를 변화시키고 큰 제사로 바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제사가 없으면 다시 말하면 희생이 없으면 자기 손해 자기 희생 자기 양보 자기 십자가가 없는 성화는 없습니다. 사람이 성화되는데는 주님을 자꾸 만나는 기도, 많이 성화가 되어지는데 그것도 희생이고 제사입니다 일종에. 그러기 때문에 쉬운말로 말하면 자고 싶은 잠을 다 자고 건설구원의 성화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잠을 많이 참아야 됩니다. 하고 싶은 말 전부 다하고 성화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말을 굉장히 많이 참아야 됩니다. 속에 있는 분을 다 쏟아내고 성화는 없습니다. 분을 굉장히 많이 삭이고 참아야 됩니다. 가고 싶은 곳에 다 가는 성화는 없습니다. 온갖 곳이 다 가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 구원 때문에, 맡은 책임과 의무 때문에 바빠서 못 가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가기 싫은 곳도 또 어떨때는 가야 됩니다.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하기 싫은 말도 해야 됩니다. 그런 말하자면 그게 말하자면은 기준이 있습니다. 원칙이 있고. 하나님 때문에, 말씀 계명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온전히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형제 구원을 위해서 이런 몇가지,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참고 견디고 손해보고 양보하고 희생하고 손해보는, 자기 현실 생활에 많이 있지 않습니까? 신앙 있는 아내, 아내는 집사님이고 남편은 교회는 나오는데 신앙이 어립니다. 그러면 남편이 돈을 못 벌고 빈둥거리며 놀아도 아내가 그 남편에게 속에 있는 말 다 쏟아부으면 남편 구원을 못할 거니까 좋게 말하고 사람을 베리면 안되기 때문에 사정도 하고 설득도 하고 하지만은 속에 있는 걸 다 못 내놓고 속이 푹푹 썩습니다. 그게 바로 제사생활입니다. 그냥 그만 돈도 못 버는 그 남편 화가 나서 퍼붓고 바가지 긁고 무시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다 해버리면 그거는 제사생활 아니고 거기는 남편 구원도 없고 자기 성화도 없습니다 거기는. 이게 제사생활, 바로 자기를 바쳐드리는 희생의 생활이고 다른 말로 말하면 십자가고, 여기서 모든 구원, 건설구원은 다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이러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이렇게 자기 바쳐 드리는 제사생활 하면은 그 부부 사이가 어찌 되겠습니까? 그 부부 사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그런 부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가족들이 다 이렇게 살면 그 가정은 천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사는 가정을 보고 그리 보다가 막사는 세상 사람들 가정 보면은 이거는 완전히 딴 세상 사람입니다. 하나는 천사고 하나는 악귀고 그런 모습이 됩니다. 그런 거 안보시는가요? 저 화장터에 영락공원에 가면은 우리 교회 장례식은 가면은 은혜가 됩니다.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찬송을 하고 기도 하고 은혜롭게 막 그렇게 보내는데, 한쪽에서는 막 울고 불고 악을 쓰는데 얼른 드는 느낌이 하나는 천국이고 하나는 지옥이구나. 거기서부터 판가름이 납니다. 그사람들은 어찌볼지 몰라도 객관에서 봐도 이거는, 내가 속한 기독교 아닌 객관에서봐도 하나는 참 보기에 엄숙하고 고요하고 은혜롭고 참 좋고, 이거는 그냥 뭐 악을 쓰고 죽는다고 난리를 치는데 하나는 천국이고 하나는 지옥이고 여기서부터 판가름이 나는구나. 제사생활로 사는 그 가족들이 있는 그 가정은 천국이 되고 이거 전혀 없는 그런 생활, 그런 가정은 악귀들이 모인 지옥의 모형 그런 세상 생활이 되고 맙니다. 기독자의 모든 생활은 제사 생활, 자기를 바쳐 드리는 생활이 제사 생활입니다. 모든 생활이 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거 오늘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이 없듯이 희생 없고 손해 없는 제사의 성격, 제사 없는 성화구원도 건설구원도 복음 전파도 없습니다. 나를 바쳐 드리지 않고 나를 희생하지 않고는 기독교 구원은 되지 않습니다. 깊이 좀 생각해보십시다.
제목: 제사 생활
요점:
1. 레위기 성경
- 창세기는 세상의 시작, 인류의 시작에 대한 기록
- 출애굽기는 애굽에서의 번식과 출애굽, 하나님의 인도, 성막에 대한 기록
- 레위기는 애굽에서 나온 후 성막 생활에 대한 기록
- 성막 생활의 중심은 지성소 안의 법궤
- 성막 생활의 실제 생활은 제사 생활, 레위기의 기록은 제사 제물에 대해서
2. 제사에 대한 상식
- 제사의 유례는 창3:21의 짐승의 가죽 옷
- 제사의 의미는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 범죄한 인간에게 주신 구원의 법칙
- 제사의 종류는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번제
- 제사의 방법은 화제, 요제, 거제, 전제
3. 본문 분석
1)제물의 조건
- 자격은 이스라엘 백성이면 누구나
- 제물은 생축 중에서, 생축이란 제물로 쓰이는 짐승
- 생축은 준비된 짐승이라는 의미로, 우리는 제물임을 늘 기억
- 반드시 흠없는 수컷,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칠 때는 섞임없는 동기와 목적으로
2)제사의 순서와 기억할 것
-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여 잡고
-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 안수, 잡는 것, 가죽 벗기고 각을 뜨는 것은 본인이
- 자기를 바쳐 드리는 일이므로 자기가 해야 되는 자유성
- 제사장은 본인이 하는 일에 돕는 역할
4. 제사 생활
1)의미
- 기독교는 제사가 중심, 신앙 생활은 제사 생활
- 제사 없는 기독교는 없는 것, 신앙 생활은 곧 제사 생활
- 제사는 하나님께 드림을 받는 역사
2)방법
- 제사에는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하고
- 제물은 반드시 잡아서 피를 흘려야 하는 것
3)실제
- 제사는 크게 분류하면 3가지이니
- 구약의 예표, 그림자 제사, 예수님 대속 제사, 신약의 우리 제사
- 제사는 자기를 바쳐 드리는 생활이니
- 하나님 뜻을 위해, 형제 구원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
- 양보, 손해, 희생, 수고... 주를 위핸, 형제 구원 위한 이런 것들이 곧 제사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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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40427 주후
레위기 1:1-9
레위기는 창세기, 출애굽기 다음 세 번째 성경입니다. 주전 1500년쯤, 지금부터 3500년전쯤에 기록된 성경이고 기록한 사람은 모세라고 했습니다. 창세기라는 성경의 이름은 세상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라는 말은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창’자가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시작 그게 창세기입니다. 인류의 시작이라는 말도 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는 이 세상이 어떻게 해서 시작이 되어졌는가 하는 세상의 근본, 인류의 근본을 창세기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세상 인간의 범죄, 타락 그 이후가 어떻게 진행되어져 왔는지를 창세기에 기록을 해두셨습니다.
창세기 내용을 보면은 첫째, 천지창조가 있고 그다음 인간의 범죄와 타락이 있고 그다음 뭐가 나옵니까? 창세기 정도는 좀 흐름을 알고 있어도 되겠지요. 천지창조가 있고 그다음 범죄 타락이 있고 에덴동산 쫓겨남이 있고 그다음에는 4장에는 가인과 아벨이 나오고, 그다음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이 나오고, 6장부터는 노아의 사적이 기록되서 6,7,8,9장까진가 노아 홍수가 기록되고 그 이후에 노아의 자손들이 기록이 되고 그리고난다음에 바벨탑이 있고 그리고 아브람의 그 행적이 나옵니다.
그러면 인류의 시작과 범죄 타락 그다음 죄가 세상에 가득차서 온세상이 다 멸망하는 그 멸망과 그다음 새로 시작된 세상에서 믿음의 조상들의 행적이 기록됐는데 크게 말하면 아브람의 기록과 이삭의 기록과 야곱의 기록과, 요셉의 모든 행적을 성경은 야곱의 약전이라 그리 기록되있습니다. 구분한다면 요셉의 생애와, 거기까지가 창세기 기록이고. 그다음 상황으로 들어가면 요셉이 애굽나라에 들어가고 그다음 요셉을 출발로 해서 하나님의 백성 아브라함의 모든 자손들이 애굽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창세기가 끝이 납니다. 애굽나라 들어가고 요셉이 죽는 것으로 끝이 나지요. 요셉이 죽는 것으로 창세기가 끝이 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이라는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창세기 기록이 끝이 되고.
그다음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크게 많이 번성하고 번식하는 그 기록과 애굽나라에 백성들의 그 왕과 식민들의 학대와 출애굽 과정, 그리고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가는 그 과정에는 그 광야의 생활에 들어가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의 그런 모든 역사들. 그리고 난 다음에는 십계명 기록과 하나님 계명, 그리고 마지막에 기록되는 것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출애굽에 마지막 기록이 성막 짓는 그게 출애굽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어떻게 성막을 지을 것인가를 세밀하게 말씀하셔서 기록이 되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레위기로 이어지면 이제는 아직까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이지만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구속의 법칙을 본격적으로 말씀을 하신게 제사법칙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라는 성경은 세상의 시작과 인류의 시작 그게 중심이고, 이름이 그렇습니다. 창세기 ‘창’자가 시작한다는 뜻이라 그랬습니다. 세상의 시작, 인류의 시작. 그게 창세기고,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나온다는 뜻이지요. 애굽에서 나왔다. 출(出)애굽기. 그래서 애굽에서 나온 그 기록 그게 출애굽기의 중심인데, 전체흐름인데 끝에 가서는 애굽에서 나와가지고 성막을 지어라 그래서 성막 짓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성막짓는 것으로 끝을 맺고 그다음 레위기 성경은 이름이 레위지파, 레위지파는, 레위지파 그러면 얼른 떠오르는게 제사입니다. 그래서 레위지파는 하나님의 제사를 책임졌고 또 하나님의 성막과 관련된 모든 일을 책임 맡은게 레위 지파입니다. 하나님의 제사와 성막에 관련된 일을, 그 성막안에는 법궤가 있고 법궤위에 그룹이 있고 성소 지성소 안에 법궤 그룹, 하나님이 계시는 성막 성소, 거기 관련된 모든 일을 책임 맡은 그 지파가 레위지파 그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레위지파는 대표적으로 제사장 지파고 제사 직분을 맡은 사람들이고 성막을 책임지고, 성막은 또 법궤가 중심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책임진 그 사람들이 레위지파라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제사라는 것은 레위지파가 맡아서 하는 것이었는데, 제사의 유래가 어떠하냐? 제사의 유래는, 제사는 그 의미가 범죄한 인생들에게 구원 받는 길을 주신게 제사기 때문에 그 제사의 유래는 범죄후에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범죄하고 타락하기 전에는 제사가 있을 필요가 없고 실제 없었습니다. 창세기 1장, 2장까지 또 3장에도 범죄하기 전까지는 제사가 없고, 창세기 3장 21절에 가서 비로소 제사의 하나 표시가 되어지는 짐승의 가죽을 가지고 범죄한 아담 하와에게 옷을 입혀준 보호해준 그게 제사의 하나의 가장 상징적인 일이고 그게 가장 첫출발이고 유래다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제사의 의미는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 같이 해보실까요? ‘예표’. 무슨 뜻입니까? 예표라 말이 무슨 뜻이지요? 미리 표시한다 그뜻입니다. 미리 나타내는 ‘예표’. 그걸 예표가, 예수님의 대속을 미리 행하는 그 의식 그게 제사고, 범죄한 인간이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제사. 제사의 의미는 중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제사가 중심이고 제사 빼놓고 나면 기독교는 없습니다. 제사가 바로 예수님 대속이고, 예수님 대속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거는. 대속이 바로 기독교고, 그 대속은 구약으로 말하면 바로 제사고, 그게 바로 기독교며 신앙생활은 다 이겁니다.
제사종류를 참고로 공부한다면, 제사 종류 크게 말하면, 제사 종류가 크게 몇가지였습니까? 오전에. 000 몇가지였던가요? 몇가지? 4가지? 하나 더 있었는데, 다섯가지. 네가지는, 진짜 중요한 건 네가지고 한가지 속했고. 첫째가 무슨 젭니까? 속죄제. 속죄, 지은죄 이거는 모든 죄가 다 포함되겠지요. 죄를 지은 것. 속죄제. 두 번째는 속건제. 자기가 실수로 모르고 지은죄, 허물. 이걸 사함받는 제사. 세 번째는 화목제. 네 번째는 자기 전부를 다 드리는 번제. 그다음 마지막 다섯 번째, 좀 하나님 앞에 제사가 다 그렇지만은 그래도 비교적으로 좀 작은 제사 그렇게 표현할 수 있는 제사가 바로 곡식으로 드리는 소제. 이 다섯가지 제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화목제 안에 감사제 서원제 낙헌제가 있다 그러는데 이거는 그냥 다른걸 문서에서 봤기 때문에 살펴봐야되겠고.
제사 지내는 방법은 크게 네가지 였습니다. 첫째는 화제, ‘불 화’자. 불로 태워가지고 바치는 화제. 두 번째는 흔들어서 드리는 ‘요제’, 세 번째는 들어올려서 드리는 ‘거제’, 네 번째는 부어서 드리는 ‘전제’. 네가지 방법이 제사 드리는 방법이고 형식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구약시대때 이렇게 드렸는데 이걸 우리가 연구해보면, ‘불로 태워서 제사를 드린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또 ‘하나님 앞에 흔들어서 드린다’ 이건 또 무슨 뜻일까? ‘들어서 드린다’ 이거는 뭘까? ‘부어서 드린다’ 이거는 뭘까? 그 이치 의미를 좀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그다음 본문에서 레위기 1장은 번제에 대한 기록입니다. 마지막 전부 다 받쳐드리는 번제를 제일 먼저 기록하셨는데, 범죄에 대해서 예물에 하나님 앞에 제사드릴 수 있는 그 예물, 그다음 자격을 본다면 하나님의 백성이면 누구나 다 제사를 드릴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본문에 보니까,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구하여 이르라 너희중에 누구든지’ 그랬으니까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누구나 다 예물을 가져와서 하나님앞에 제사를 드릴 수 있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 그말입니다. 자격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은 누구든지. 그다음 두 번째, 예물은 무엇인가? 예물은 제사 제물을 말하는데 반드시 무엇이라야 된다 그랬습니까? ‘너희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뭐라야 된다 그랬습니까? ‘생축’이라 그랬습니다, 생축. 생축이라는 말은, 생축은 이거 사전에도 나오는 말인데 제물에 쓰여지는 짐승, 제사 드리기 위해서 예비해둔 짐승을 생축이라 그리 말합니다. 반드시 제물로만 쓰여지는 그 짐승을 생축이다 그리 말합니다. 그러면 이거는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받치기 위해서 예비된 생축, 이걸 하나만 꼽는다면 하나님 앞에 제사에 쓰여지는 제물로 예비된 생축이면 그게 무엇입니까? 생축이면 이거 좀 표현이 그런데 어린양이고, 어린양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인 근본적인 하나님 앞에 받쳐지는 제물은 생축을 하나만 딱 꼽는다면 예수님만 제물이 된다 그뜻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제사드린 모든 제사는 생축이라야 되고 그리스도 예수라야 되고 그 예수님을 통한 모든 제사라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되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지 않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제사가 됩니다. 반드시 생축이라야 됩니다.
우리에게 적용시키고, 구약시대로 적용시킨다면 준비된 제물, 예비되고 준비된 제물이라야 된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칠때는 준비된 자기를 드려야 된다 그런 의미로 생각해볼 수 있고, 그다음 또 하나 자격은 흠없는 것이라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종교말년에 하나님 앞에서 예물로 받쳐드리는 모든 것을 전부다 성경은 흠없는 걸 바치라 그랬는데 흠 있는 것, 눈 먼 것, 다리 저는 것, 병든 것 이런 찌끄래기는 하나님 앞에 갖다바치고 온전하고 구비하고 값나가는 좋은 것은 전부다 뒤로 빼가지고 자기들 치부하는데 다 써먹으니까 그것이 그 자체도 큰 죄가 되지만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기 때문에 큰 진노를 종교말년에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 주의 일을 하던지, 주님 위해서 뭘 할때는 준비된 것이라야 되고 주로 말미암은 것이라야 되고 흠 없는 온전한, 자기로써는 가장 좋은 귀한 그런 것을 받치는 것이지 쓰고 남은 찌끄래기 이런 것, 사람들 생각할 때 이거는 중심이 문제고 제물 많은 부자들, 실력있는 사람들은 쓰고 남은걸 바쳐도 온전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물건 자체만 두고는. 또 반대로 실력없고 가난한 사람은 아무리 모아봐야 다른 사람이 버리는 찌끄래기만도 못한 그런것을 바칠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주체는 자기기 때문에 자기가 문제입니다. 내가, 내가 가진 내 범위 내 실력 중에서 나로서는 어떤 것이 하나님 앞에 가장 최고며 최귀며 온전한 것이 되어지는가를 뽑아서, 그걸 뽑아서 드려야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그렇게 따져본다면 실력있고 출중한 많은 사람은 그만큼 더 어려울 것이고 무능하고 가진게 적은 사람은 오히려 쉬울 수 있겠지요. 그렇게 힘드는게 아니니까. 그런면이 있습니다. 이게 예물과 자격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번제 드리는 소를 가지고 대표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이 순서 그 과정을 보면은 첫째 장소가 있습니다. 예물을 드릴때. 소를 드릴때 어디서 드리느냐. 흠없는 수컷을 가지고 어디서 드립니까? 회막문에서 드려라. 회막문. 회막문이면 성전 문앞에다가 제단을 차려놓고 거기서 번제를 드려라 했으니까 이게 무슨 의미인지. 그다음 양이나 소를 드릴때는, 그 뒤에 가서 보면 단 북편에서 드려라 그래놨습니다. 또 이게 장소가 없는 것도 있고. 그러면 소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제물중에 가장 뛰어난 것, 말하자면은 가장 많이 가진 사람, 실력있는 사람, 가장 크고 좋은 것 대표적인 그게 바로 소고 송아지입니다. 이걸 가지고 드릴때는 회막문에서 드려라. 회막문은 회막에 들어가고 나오는 출입구가 되겠고 모든 사람이 다 보는 그런 것이 되겠지요. 문에서 드리는 겁니다. 회막문에서 드리고 그다음 두 번째 할 일은, 제사 드리는 제물 드리는 그 사람이 할 일은 첫째 그제물의 머리에 뭐합니까? 안수하라 그랬습니다, 안수. 안수는 자기죄를 그 제물에게 전가시키는 겁니다. 내가 죄를 지었으므로 내가 죽어야 되는데 나 대신에 소 니가 대신 죽는 거다. 양 염소 니가 대신 죽는거다. 그런데 소와 양이 염소가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가 없지만은, 앞으로 사람을 입고오실, 그래서 사람인 내 죄를 대속하실 어린양 예수님을 소망하고 예표로 미리 표시로 어린양을 대신해서, 어린양을 표시하는 소와 양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되 잡기전에 거기다가 내 죄를 다 거기 맡기는 겁니다. 소에게 양에게 내 죄를 다 전가시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누구한테 전가시키는 겁니까? 예수님에게 내 죄를 다 맡기는, 그냥 지우는 그런 것이 되는 겁니다. 이게 안수라는 겁니다, 안수. 안수하고 그다음 두 번째는 ‘안수할지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그다음 5절에 ‘그는 여호와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안수하고 난 다음에 잡습니다. 잡는다는 말은 어떻게 한다고요? 참 많은 분 앞에서 표현하기그런데 이거는 그 짐승을 잡는다는 말은 도살한다 그말이지요. 죽인다는 말입니다. 죽이고 잡고 그러고나면, 안수하고 잡고나면 제일 먼저 제사장이 피를 다 받아가지고 그 제사드리는 그 주변 사변에 피를 다 뿌렸습니다. 단 사면에 피를 다 뿌리고, 그다음 그러고나면 피를 뿌리고나면 그다음에 제물 갖다바치는 그 사람이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가죽을 벗겨내고 이제 토막토막을 말하자면은 다리 어디 다 잘라내는 겁니다. 그러면 짐승의 가죽을 벗겨낸다 이게 무슨 뜻일까. 좀 각각 생각 한번 해보시지요. 가죽옷을 입었고 또 가죽을 벗겨내고 그다음 각을 뜨고,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은, 가죽껍데기를 홀딱 벗긴다 그럴때 그 말은 그 사람의 속속들이 모든 걸 다 드러낸다는 그런 뜻이 되겠지요. 그러면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것은 다시 말하면 누구 가죽을 벗기는 겁니까? 자기 가죽을 벗기는 것하고 같은 거지요, 제물인데. 그러면 자기 모든 죄를 속속들이 전부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다 맡기는 거다 그런 의미가 될 수 있을런지. 또 가죽을 벗겨내는 거니까 그 가죽을 벗겨서 자기가 입는 보호가 될런지. 이런 몇가지 의미로 생각해보십시다.
또 각을 뜬다는 말은 토막토막 잘라낸다는 말이니까 우리들의 모든 죄를 하나하나 세밀하게 따져서 낱낱이 다, 속속들이 낱낱이 이게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뜨고 이런 의미로 좀 생각해볼 수가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러고나면 제사장은 그 짐승 바쳐 드리는 단 위에다가 나무를 펼쳐놓고 불을 붙여놓고 그리고난다음에 뜬 각하고 머리하고 기름을 그 단위에 불에 다 얹어서 태우고 얹어놓고 그리고난다음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어가지고 전부를 불에 살라서 번제를 삼으라 그렇게 해놨습니다. 여기서 하나 생각해볼 것은 역할이 있다는 겁니다. 이 번제를 드릴때, 소를 가지고 번제 드릴때 4절에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이 ‘그’라는 것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예물을 드리려거든 그래놓고 이어서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그리고난다음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랬으니까 이 그라는 말은 누구겠습니까? 제사를 드리는 그 본인입니다, 당사자. 그 본인이 짐승머리 제물의 머리에 본인이 안수합니다. 자기 죄니까, 내 죄를 그에게 맡깁니다. 본인이 안수하고, 또 그다음 잡는거는 누가 잡습니까? 잡는 것도 자기가 잡습니다. 본인이 잡고, 가죽 벗기는 건 누가 벗깁니까? 가죽 벗기는 것도 그사람이 벗기고 각을 뜨는 것도 그 사람이. 그러면 실질적으로 제단에 바쳐지는, 제물을 가지고 제단에 바치는 실질적인 그런 것, 이게 제사장이 이 모든 걸 하는걸로 그렇게만 알아왔는데 다른 것 살펴봐야 되겠습니다만은, 이번에 이걸 하면서 살펴보니까 적어도 여기 레위기 1장에 번제소, 소를 가지고 번제드리는 여기는 안수는 본인이 합니다. 잡는 것도 그가 본인이 잡습니다. 그다음 가죽을 벗기는 것도 본인이 합니다. 각을 뜨는 것도 본인이 합니다. 그러면 제물을 바치는 실질적인 모든 것은 자기가 한다 그말이지요. 자기를 이 제사는 결국 제물을 바치는 건데 누구를 바치는 겁니까? 자기를 바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나 자신을 바쳐 드리는데 나를 대신해서 짐승을 바쳐 드린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를 바치는 거기서 안수하는 것도 자기가, 잡아죽이는 것도 자기가, 가죽을 벗기는 것도 자기가, 각을 뜨는 것도 자기가, 그러면 결국 이거는 하나님 앞에 제물 바치는 것은 자기 책임, 자의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기를 제단앞에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책임지고 자의로 하는 것이지 타에 의해서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게 아니라 그뜻이지요. 내가 해야 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바쳐 드리는 것은 자기 죄를 대속하는 것이고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드려야 되기 때문에 내가 안수해야 되고 내가 잡아야 되고 내가 가죽 벗기고 내가 각을 떠야 된다, 그리고 난다음에 하나는 구별해놨습니다. 보니까 4절에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 5절에 ‘그는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를 잡을 것이요’ 잡고나면 그다음에 그 사람이 잡아두면 그다음에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가져다가 회막 문앞 단 사면에 뿌릴 것이고’ 6절에 ‘그는 또 그 번제 희생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뜰 것이고’ 그리고나면 7절에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단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을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고 내장과 정강이를 씻어서 다 태우라’ 그러면 직접 짐승 제물을 안수하고 잡고 가죽 벗기고 각을 뜨는 것은 본인이 하고, 그 해놓은 것을 가지고 처리하는 것은 제사장들이 한다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본문에 맞습니까? 그렇게 되있지요 지금 본문에 보니까. 그러면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쳐드리는 이 제물 생활은 결국 구원받는 생활인데, 주님 대속이, 예수님의 그 당신을 대속 제물로 다 받쳐진 그 제사가 완성이 되어져 있으니까 우리는 그 주님의 십자가 대속 그 제사를 근거해서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인데 이미 기본적으로는 다 되어있으나 지금 제사생활, 그래서 구약시대때 그들이 제사드린 그 제사는 예정 속에는 다른 차원이 있지만은 실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기본구원과 건설구원이 같이 들어있는 그런 제사 생활이었다고 볼 수 있겠고, 예수님의 대속으로 기본 구원과 그들이 행한 제사 생활의 건설구원이 완전히 결제가 되어진 것이다 그리 볼 수 있겠고, 우리는 예수님의 대속을 과거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이미 기본구원적인 면은 다 완성이 되어져있고 우리들의 제사생활은 건설구원적인 면을 두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은 제사생활(자기를 드리는 생활) 그렇게 해놨는데,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바쳐 드리는 그 생활은 전부 건설구원과 관련된 생활인데 그 제사 생활은, 자기를 바쳐 드리는 그 생활은 이거는 건설구원에 속한 생활이나. 건설구원이라 말은, 자 또한번 돌이켜 생각해보십시다. 건설구원은 어떤걸 건설구원이라 말합니까? 건설구원이라는 표현 쓸때는 어떤걸 말합니까? 각도가 좀 많은데, 건설구원은 어떤것이 건설구원입니까? 기본구원과 관련시킨다면, 어떤 것이 건설구원입니까? 기본구원을 입은 자로 사는 것이 바로 건설구원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속으로 완성된 제사, 그걸 우리는 다 받았는데 그 제사생활을 계속하므로 그 대속의 제사를 실질적으로 내것 삼는, 그리고 그 생활을 계속 하는 것이 바로 제사생활이고 그게 바로 건설구원이다 그말입니다. 이 생활에 있어서 이게 바로 자기를 바쳐드리는 생활인데 이 생활은 전부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겁니다. 자기의 자의로 하는 것이고,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이고 자기가 가죽을 보호 입는다 그러면, 그 짐승 가죽으로 자기가 벗겨서 자기가 보호를 받는 것이고 자기 모든 생활 낱낱이, 자기 생애와 자기 현실 생활을 바쳐 드리는 그게 제사 드리는 생활입니다. 여기서 제사장들 하는 거, 제사장은 당사자가 아니고 객관이고 돕는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나온걸로는. 그러면 제사장은 오늘로 말하면 교역자들, 설교자들, 교회집사님들, 장로님들, 반사선생님들 이런 분들이 다 제사장 역할인데 그 제사장들이 본인들도 그 제사 드릴때가 있고 당사자들이 제사를 드릴때 주변에서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본인이 드리는 그 제사를 돕는 역할만 하는 겁니다. 도와서 제사가 바로 될 수 있도록 돕는 역사를 하는 것이 제사장들이 하는 일이다, 본문에 보면은.
하나님 앞에 직접적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제사장이 집도 하겠지만은, 개인 개인이 이렇게 드릴때는 그거는 그 개인 자기가 책임을 지는 것이고 자의에 의해서, 자기를 바치고, 자기 죄를 속함받는, 자기를 드리는 그게 제사다 그말입니다. 여기 본문에서 이걸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하고 또 결론적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제사생활에 대해서 기독교는 제사가 중심이다, 다시말하면 무엇이 중심입니까? 다시 말하면 무엇이 중심입니까? 제사가 중심이라 말은 무엇이 중심이라고요? 대속이 중심이다 그말이죠. 대속이 중심이다. 현대 자동차는 뭐하는 회사입니까? 비유가 안맞지만은 현대자동차는 뭐하는 회사입니까?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거기서 자동차 만드는 걸 빼고나면 현대자동차는 없는 겁니다. 이름을 바꾸던지 다른걸 만드려면, 현대 예를 들면은 거기서 휴대폰을 만들든지, 아니면 전자부품 만들면 현대 전자라 그러면 맞겠는데 현대 자동차라는 간판을 걸어놓고 자동차를 안 만들고 휴대폰을 만들면 뭐가 잘못된 겁니까? 이름이 틀린겁니다 그거는. 현대 자동차를 적어놓고 그 회사 들어가보니까 휴대폰을 만들어? 업이 잘못됐든 이름이 잘못되든 잘못된 거지요 그거는, 바꿔야 되는 겁니다. 아무아무 어학원 그렇게 적어놓고, 어학원은 주로 영어일꺼니까, 그렇게 적어놨는데 들어가보니까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거는 간판이 틀렸던지 가르치는 내용이 틀렸던지 둘중에 하나가 틀린 겁니다. 어학원이라 그러면 영어를 가르치던지 중국어를 가르치던지 말에 대해서 어학에 대해서 가르치는 것이지 무슨 어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쳐? 과학을 가르쳐? 틀린 겁니다. 기독교라는 것은 대속이 중심이다 그말입니다. 대속. 대속은 제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생활에 전부는 대속과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대속 없는 믿음, 믿음 아닙니다. 대속 없는 기도, 해당 없습니다. 대속 없는 충성, 그거 신앙 아닙니다. 대속 없는 봉사 희생 그것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대속이, 대속은 바로 제사입니다. 그 제사가 기독교 신앙에 중심입니다. 전부입니다. 말하자면은 현대 자동차는 자동차 만드는 회사인 것처럼, 예를 들자면 아무아무 어학원은 어학을 가르치는 곳인것처럼, 기독교라는 이름을 가진 예수교 기독교는 대속이 중심이고 그러기 때문에 대속을 알리고 대속을 전하고 대속을 입고 전파하고 대속으로 사는 그거 전파하는 곳이 기독교고 교회입니다. 대속이 중심입니다. 대속이 다시 말하면 뭐라고요? 제사입니다. 이 논리가 이해가 되십니까? 전체 이 논리가 맞습니까? 대속이 중심이다. 대속의 주체가 누굽니까? 자 그러면 좀 들어가서, 그래서 신앙생활은 전부다 대속생활이고 다시 말하면 제사 생활이고 자기를 바쳐 드리는 게 신앙생활입니다, 자기 바쳐 드리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가장 중요한 의식입니다. 섬기는 의식이다. 내면은 하나님 섬기는 것이고 구원받는, 그다음 의식은 드러나는 외형이고, 제사는 대속의 예표며 그림자적인 것이고, 또 하나 한다면 하나님 앞에 드리므로 하나님의 모든 걸 받는 것이 제사입니다. 내것을 바쳐드리므로 받는 겁니다. 자기를 바쳐드려서 나를 제물로 바쳐 드려서 받는 첫째가 뭡니까? 나를 대속의 제물 바쳐 드려서 하나님께 받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제사는 드리므로 하나님 앞에 드리므로 받는 건데, 나를 바쳐드리므로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속주를 받는겁니다, 대속주를. 나를 드리므로 구주를 받는 것이고 대속주를 받는 겁니다. 기본구원적으로 되어있는데 건설구원에서, 백목사님 설교록에 보면은 상점에 가서 물건있는데 물건을 집어서 옵니다. ‘이보세요, 왜 그 물건 가져가요? 돈도 안주고’. ‘가져가거나 말거나 내거 내가 가져가는데’ ‘이게 어떻게 당신거요?’ ‘우리 상점건데.’ ‘내것 내가 가져가는데.’ ‘야이 도둑놈아 가져가려면 값을 내야지. 물건값을 내고 가져가야지.’ 물건값을 내고 가져갑니다. ‘그러면 그것 왜 가져갑니까?’ ‘여기 돈 냈잖아. 물건 값을 냈으니까 내것 아니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 값은 무엇이 값입니까? 자기를 바쳐드리는 것이 값이고, 내가 가져오는 거는요? 주님 대속입니다. 대속을 내것 삼으려면 나를 드리는 게 법리고 마땅한 도리입니다. 나를 바쳐드리지 않고 대속을 가져오는 것은 도둑질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 내가 너를 라오디게아 교회에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어떻게 하라고요? 사서 부요하게 하고 또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 사라 값을 내라. 그 값은 나 자신을 드리는 겁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바치므로 대속주를 내것 삼는 이게 가장 큰 드림으로 받는 것이고 그다음 실질적으로 나를 드리므로 대속으로 인한 모든 그 대속의 효력을 바쳐드리므로 현실에서 계속 드리므로 효력을 계속 받아서 그 대속의 역사에 능력을 실력을 내가 받아가지는 그것이 드리므로 받는 그런 역사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제사라는 제사의 의미입니다. 기독교는 제사가 중심이다. 신앙생활은 제사 생활이다. 제사는 하나님 섬기는 가장 기본이며 중요한 의식이다. 제사는 예수님의 대속의 예표며 모형이다. 제사는 하나님 앞에 드리므로 받는 역사다.
그다음 제사 드리는 방법은, 제사는 첫째 반드시 제물이 있어야 되고, 두 번째는 그 제물은 반드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죽어야 됩니다. 제물이 있어야 되고 죽어야 되는게 제사 드리는 방법.
제물은 크게 말하면 셋입니다. 성경 전체를 두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바치는 제사의 제물은 크게 말하면 세종류입니다. 첫째 뭡니까? 이거는 잘 모르실 것 같아요 보니까. 전체 아는 분들은 아실 것 같은데. 자, 구약 신구약 두고 구약 성경 오늘까지 두고, 구약시대 오늘까지 두고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리는 제물은 크게 세종류입니다. 첫째는요? 000 선생님 아시겠습니까? 흐름을 생각해보면.. 첫째는요? 구약시대 그림자로 드렸던 모든 짐승 한종류, 소 양 염소 비둘기 하나, 두 번째는요? 제물 두 번째는요? 예수님, 세 번째는요? 나 자신. 이렇게 드리는 것이 제물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 짐승이 제물이고, 실상으로 오신 주님이 제물이고 그다음 오늘날 내가 바치는 나 자신이 제물입니다. 가장 중요한 제물이 되겠지요. 그리고 이 세종류 제물은 반드시 죽어야 됩니다. 죽어야 제사가 온전히 되지 죽지 않으면 제사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약시대 제사는 이미 다 지나갔고 예수님 제사도 완성되어졌고 남은 것은 현재 살아있는 우리들이 제사를 드리는 건데 나를 실제로 바쳐 드리는 제사는 어떻게 하는가? 오늘의 제물은 바로 나인데, 제사라는 것은 제물을 바쳐 죽이는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자신을 바쳐 제물로 바쳐 죽으셨듯이 나를 제물로 바쳐 죽여야 비로소 온전한 제사가 되는데, 나를 죽인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나를 죽인다는 말은 마지막에 육신의 생명까지도 제물로 받쳐져야 됩니다. 자기 생명을 제물로 바치는 걸, 백목사님이 평생, 평상 소원 노래 불렀던 뭡니까? 그게 바로 우리는 참 꿈도 꾸기 어려운 ‘순교’고, 그런데 참 설교해보면 그때 들을때, 집회때 이번에도 순교 많이 나오는데 들을때 그때는 ‘순교 순교’ 예사로 생각했지요. 지금 설교하려고 하면은 저는 우리 교회에서 ‘순교’ 설교한 적 있습니까, 제가? 순교해야 됩니다, 합시다 한게 별로 없지요? 너무 거리가 멀어서 감히 입에 담기가 어렵습니다. 순교, 평생 소원이 순교였는데 우리는 그게 너무 거리가 멀어서.. 그렇게 되어야 되는데. 마지막에 목숨까지 하나님 앞에 주를 위해 다 바치는 게 재물로 다 받쳐지는 순교입니다. 최종, 최후의 완성이고 거기 가기까지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은 어떤 것인가? 그게 바로 자기 일상생활, 평소생활, 현실생활에서 자기를 바쳐 드리는 건데 자기를 바친다 말은 쉽게 말하면 내가 손해본다는 뜻입니다. 내가 희생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할 것을 못하고 나 대신 내가 말하자면은 양보한다는 겁니다. 내가 참는다는 겁니다. 내가 가져올 것을 못 가져오고 준다는 거지요. 내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못하고 손해보고 양보하고 내놓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나는 못하는 거지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해야 되느냐. 이웃을 위해서, 인간 도덕 때문에, 자기 앞날의 출세 때문에, 가족애 때문에, 사람들 이목 때문에 이거 다 인본입니다. 이거 말하자면은, 전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 말씀, 하나님 뜻 때문에, 형제 구원 때문에, 그래서 전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하나님의 계명, 말씀 지키고 말씀 순종하기 위해서, 형제 구원을 위해서 내가 마음이든 말이든 행동이든 물질이든 생활이든 어떤 것이든 손해 보는 것, 양보하는 것, 참는 것, 희생하는 것, 견디는 것, 누르는 것, 못하는 것, 이런게 전부다 희생이고 손해고 양보인데, 이게 전부다 말하자면은 토막토막의 자기를 바쳐 드리는 희생이고 이게 전부 제사생활의 실제입니다. 이런 작은 현실 생활에 제사들이 모여서 자기를 변화시키고 큰 제사로 바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만들어지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는 제사가 없으면 다시 말하면 희생이 없으면 자기 손해 자기 희생 자기 양보 자기 십자가가 없는 성화는 없습니다. 사람이 성화되는데는 주님을 자꾸 만나는 기도, 많이 성화가 되어지는데 그것도 희생이고 제사입니다 일종에. 그러기 때문에 쉬운말로 말하면 자고 싶은 잠을 다 자고 건설구원의 성화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잠을 많이 참아야 됩니다. 하고 싶은 말 전부 다하고 성화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말을 굉장히 많이 참아야 됩니다. 속에 있는 분을 다 쏟아내고 성화는 없습니다. 분을 굉장히 많이 삭이고 참아야 됩니다. 가고 싶은 곳에 다 가는 성화는 없습니다. 온갖 곳이 다 가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 구원 때문에, 맡은 책임과 의무 때문에 바빠서 못 가는 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가기 싫은 곳도 또 어떨때는 가야 됩니다. 하고 싶은 말도 못하고 하기 싫은 말도 해야 됩니다. 그런 말하자면 그게 말하자면은 기준이 있습니다. 원칙이 있고. 하나님 때문에, 말씀 계명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온전히 이루어드리기 위해서, 형제 구원을 위해서 이런 몇가지, 이런 것들 때문에 내가 참고 견디고 손해보고 양보하고 희생하고 손해보는, 자기 현실 생활에 많이 있지 않습니까? 신앙 있는 아내, 아내는 집사님이고 남편은 교회는 나오는데 신앙이 어립니다. 그러면 남편이 돈을 못 벌고 빈둥거리며 놀아도 아내가 그 남편에게 속에 있는 말 다 쏟아부으면 남편 구원을 못할 거니까 좋게 말하고 사람을 베리면 안되기 때문에 사정도 하고 설득도 하고 하지만은 속에 있는 걸 다 못 내놓고 속이 푹푹 썩습니다. 그게 바로 제사생활입니다. 그냥 그만 돈도 못 버는 그 남편 화가 나서 퍼붓고 바가지 긁고 무시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다 해버리면 그거는 제사생활 아니고 거기는 남편 구원도 없고 자기 성화도 없습니다 거기는. 이게 제사생활, 바로 자기를 바쳐드리는 희생의 생활이고 다른 말로 말하면 십자가고, 여기서 모든 구원, 건설구원은 다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이러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이렇게 자기 바쳐 드리는 제사생활 하면은 그 부부 사이가 어찌 되겠습니까? 그 부부 사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그런 부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가족들이 다 이렇게 살면 그 가정은 천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사는 가정을 보고 그리 보다가 막사는 세상 사람들 가정 보면은 이거는 완전히 딴 세상 사람입니다. 하나는 천사고 하나는 악귀고 그런 모습이 됩니다. 그런 거 안보시는가요? 저 화장터에 영락공원에 가면은 우리 교회 장례식은 가면은 은혜가 됩니다. 며칠후 며칠후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찬송을 하고 기도 하고 은혜롭게 막 그렇게 보내는데, 한쪽에서는 막 울고 불고 악을 쓰는데 얼른 드는 느낌이 하나는 천국이고 하나는 지옥이구나. 거기서부터 판가름이 납니다. 그사람들은 어찌볼지 몰라도 객관에서 봐도 이거는, 내가 속한 기독교 아닌 객관에서봐도 하나는 참 보기에 엄숙하고 고요하고 은혜롭고 참 좋고, 이거는 그냥 뭐 악을 쓰고 죽는다고 난리를 치는데 하나는 천국이고 하나는 지옥이고 여기서부터 판가름이 나는구나. 제사생활로 사는 그 가족들이 있는 그 가정은 천국이 되고 이거 전혀 없는 그런 생활, 그런 가정은 악귀들이 모인 지옥의 모형 그런 세상 생활이 되고 맙니다. 기독자의 모든 생활은 제사 생활, 자기를 바쳐 드리는 생활이 제사 생활입니다. 모든 생활이 다 이렇게 되어야 되는 거 오늘 기억하십시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이 없듯이 희생 없고 손해 없는 제사의 성격, 제사 없는 성화구원도 건설구원도 복음 전파도 없습니다. 나를 바쳐 드리지 않고 나를 희생하지 않고는 기독교 구원은 되지 않습니다. 깊이 좀 생각해보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