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208-주전(마16:13-24)
신앙 실패의 두 길과 성공의 조건2013-12-09조회 513추천 39
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24절
제목: 신앙(信仰) 실패의 두 길과 성공의 조건
요약문답:
1. 본문-1
- 예수님이 가신 곳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
- 예수님이 물으신 것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 제자들의 대답은?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 본문-2
- 다시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베드로의 대답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영감으로 대답한 베드로에게 주신 복은?
①너는 (베드로)라
②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고
③(천국 열쇠)를 주리니
④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3. 본문-3
- 예수님께서 비로소 말씀하신 것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
-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한 것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 예수님의 말씀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①자기를 (부인)하고 ②자기 (십자가)를 지고
4. 본문에서 가르치는 3가지
1)신앙 (실패)의 길 2가지
2)신앙 (성공)의 길
3)신앙 성공의 (조건)
5. 신앙 실패의 길 1: (사람 보고 믿는 것-여론 신앙)
- 예수님에 대한 당시 여론은? 위대한 (사람) 중에 한 분
- 여론 신앙이란? (사람) 보고 믿고 (사람)에게 피동되는 것
- 여론 신앙이란? (현실)에 (영향)받고 (피동)되는 것
- 여론 신앙의 결과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
- 예수님을 직접 보고 싶었던 사람은? (삭개오)
- 당나귀 팔러 가던 부자(父子)의 교훈은? (사람) 말만 듣는 어리석음
6. 신앙 실패의 길 2: (자기 주관대로 믿는 것-주관 신앙)
-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난을 만류한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해서
-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한 바탕은? 자기 (주관)
- 예수님의 고난을 만류한 베드로의 신앙은? (주관 신앙)
- 주관 신앙이란?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주관대로 믿는 것
- 주관 신앙의 결과는? (십자가)를 싫어하고 (도망)
7. 신앙 성공의 길: (말씀, 양심, 영감)
-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바로 알게 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
- 예수님을 바로 알았던 베드로의 신앙은? (영감 신앙)
- 성공하는 신앙은? (영감 신앙)
- 영감 신앙이란? (말씀)→ (신앙 양심)→ (영감)
8. 신앙 성공의 조건
- 영감 신앙이 되려면?
①(여론 신앙)을 버리고
②(주관 신앙)을 버리고
③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④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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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3.12. 08.주일오전
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24절
제목: 신앙 실패의 두길과 성공의 조건
오늘 예배 찬송에 169장과 173장을 했는데 그 찬송은 우리 하늘나라 소망에 관련된 찬송입니다. 소망이란 것은 죽음 너머 있는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예수 믿는 소망의 사람들이고, 그래서 소망에 관련된 찬송은 언제든지 은혜롭고 좋습니다. 더욱이 가끔 한 번씩 있는 장례식에 그런 찬송을 하면 그 가사라든지 곡이 은혜롭고 느껴지는 게 많아서 대개는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아주 좋은 찬송이 소망의 찬송입니다. 우리 교회 찬양대들에게 제가 좀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이 소망에 관련된 찬송을 좀 자주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아쉬움을 가끔 한 번씩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를 시작할 때라든지 마칠 때. 너무 자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좀 종종 하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이란 것은 현재에 바라보는 미래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게 소망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사는데 그 소망의 실제는 미래에 있는 것이고 그 실제를 이루는 것은 오늘 현재이니까 현재를 바로 살아야 미래가 바로 이루어지는 이 면을 사람들은 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열매는 먹고 싶고, 열매는 보면 먹음직스럽고 맛있게 먹는데 그 열매가 맺기까지의 농사의 과정들은 사람들이 생각지 아니하고 또 정작 닥치면 힘들어하고 다 싫어합니다. 그게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을 생각하면 참 좋은데 그 소망의 실제가 바로 오늘 우리 현재 생활이고 그러므로 우리 현상의 현실의 모든 생활은 소망이라는 열매를 이루는 농사 짓는 과정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힘들고 어려운 것인데 이거는 사람들이 생각지를 잘 아니합니다. 양면을 늘 함께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런 면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소망에 좋은 결과를 맺으려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농사짓는 우리들의 인생 생애의 과정이 어떠해야 되겠는가 하는 한 면을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신앙 실패의 두 길과 성공의 조건이라 그렇게 제목을 붙여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데 그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대개 보면 좋은 회사에 좋은 대학에 시험을 치면 경쟁률이 10대 1이라 그리 높지요, 대개. 얼마 전에 삼성그룹에 입사시험을 쳤는데 경쟁률이 몇 대 일이던가요, 우리 청년들? ooo선생님 봤습니까? 그런 것은 청년들이, 앞으로 취직할 사람들이 봐야지요? 경쟁률이 100대 1이든가요? 그 정도 높았지요, 아마? 100 대 1이라 말은 100명이 시험 치면 1명만 붙고 나머지 99명은 떨어진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 성공의 확률은 좋은 것일수록 성공의 확률은 적고 실패할 확률이 많다 그 말입니다. 우리 신앙은 어느 것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앙의 길은 많은 사람이 걸어가나 성공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실패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오셨는데 그때 세상을 두고 말씀하시고 앞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이 역사세계를 두고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 세상에서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나님을 참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을 성경이 말씀하신 그대로의 하나님인 것을 인정을 하고 그분을 바로 섬기는 그런 사람을 말세 마지막 시대에 볼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은 믿는 사람이 흔하다 말입니까, 귀하다 말입니까? 예수님 그 말씀은 말세가 되면 믿는 사람이 흔하다 말입니까 귀하다 말입니까? 많다는 말입니까, 적다는 말입니까? 적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간판이 교회라 그러지요? 수퍼마켓 다음으로 교회라, 일반 잡화상 다음으로는 교회가 제일 많답니다. 한 교회에 예수 믿는 사람이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입니다. 전국에 예수 믿는 사람 다 모으면, 기독교 불교 종교 다 모으면 그렇다든가요? 우리나라 인구보다 훨씬 많다 그러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천만명이 많답니다. 우리 나라만. 그렇다면 예수님 말씀이 틀렸다는 말입니까? 예수님 말씀이 틀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믿는 사람은 많은데 참 믿는 사람은 흰쌀의 뉘처럼 드물다 그 말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이 많은 사람 가운데 예수님 말씀을 생각해 보니까 믿는 자를 보겠느냐 그러셨으니 나는 참 믿는 자에 속했을까, 믿는 것 같은데 사실은 안 믿는 자에 속했을까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리 신앙을 점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니까 일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건강 검진을 자주 받으면 어지간한 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약이 좋고 의술이 좋으니까 치료 받으면 100세 시대가 왔다 그리 말합니다. 보통 요즘 사는 분들은 어지간하면 90세, 100세까지 사는 분들이 드물지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90세까지 사는 분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건강 검진을 자주 하면 건가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신앙 검진을 자주 하면 그 신앙이 병이 들지 않고 바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건강 검진은 자주 하고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자주 정비를 하고 내가 사용하는 기계들은 자주 점검을 하고 우리 학교 공부하는 아이들은 제대로 하는지 시험을 자주 쳐 보면서 우리 신앙 점검은 거의 하는 사람들이 드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십시다.
여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수께서 어느 지방에 가셨는데 예수님께서 어느 지방에 가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습니다. 거기 가셔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 당시 예수님이 유명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그 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모두 짐작을 하고 들어 알고 서로서로 알고 아는 것이 있는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당시 시대에 예수님에게 대한 여론을 물어 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 많은 사람들의 판단, 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분을 어떻게 알고 생각하는지 제자들에게 물어보니까 제자들이, 예,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 그럽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왔던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다시 왔다 그럽니다. 엘리야는 구약시대에 아주 위대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 그렇게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에 그 지방에 그 주변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지식, 예수님에 대한 인식, 예수님에 대한 관이 어떻게 알았느냐? 예수님을 알기를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세례요한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엘리야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예레미야나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게 모두들 알고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대답들이 맞았습니까 틀렸습니까? 이 모든 대답들은 다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도 아니고 또 엘리야도 아니고 예레미야도 아니고 선지자 중의 한 사람도 아니고 다 틀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그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나를 세례요한이다 또 엘리야다 예레미야다 혹은 그보다 위대한 선지자다 그렇게 모두들 알고 있다면, 그들이 그렇게 주고받고 대화하고 가르치고 말하고 그러는데 그러면 내게 직접 배우고 있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그래 물으시니까 그 중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래 대답을 했습니다. 이 대답이 정답이고 100점짜리 대답입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래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바요나라 말은 요나라는 사람, 요나의 아들아 그 뜻입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 사실을 너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혈육이 아니라 그 말은 사람이 아니라 그 뜻입니다. 어떤 위대한 스승이나 박사나 어떤 신학자 그런 사람들, 대제사장 서기관들이 아니고 이 사실을 너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알게 하셨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베드로라, 성경 보십시다.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찬양대 학생들,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이 뭐라고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반석이 뭔가요? 만세반석 열리니, 반석이 무엇입니까? 반석이라는 것은 굉장히 넓고 평평한 돌, 그 위에 무엇이든지 얹을 수 있고 기초 닦을 수 있는 그런 아주 넓고 편편한 돌을 반석이라,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아주 단단한 돌을 반석이라 그리 말하는 것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 또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렇게 아주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고 21절에 보니까 이때부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는데 뭘 가르쳤는고 하니 예수님 자신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장로, 교회 어른들, 대제사장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 서기관들 성경 박사들 그런 사람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그때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주님이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많은 말씀을 가르쳐도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말씀하지 않고 있다가 요때부터 예수님께서 당신이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있다가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예수님이 많은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임 당하는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그리 하지 마옵소서, 뭐 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고난 받지 마옵소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지 마옵소서 그 말입니다.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 세 가지인데, 하나는 믿는 사람의 신앙에 실패하는 길이 둘이 있습니다. 신앙 실패의 길이 둘이 있고 또 신앙 성공의 길이 하나가 있고, 그런데 신앙 성공을 하려면 어떤 조건이 있어야 되는가를 여기 본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 실패의 길 두 가지, 신앙 성공의 길 한 가지, 신앙 성공의 조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로, 신앙 실패의 첫째 길은 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나를 보고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그 당시 예수님이, 그 당시 예수님을 아는 많은 사람들의 여론을 물어 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그분을 누구로 알고 있느냐 누구라고 알고 섬기고 있느냐 말씀하실 때 그때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입니다, 엘리야입니다, 혹은 예레미야나 그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 말의 공통점은 뭐이냐 하면, 예수님은 세례요한입니다, 엘리야입니다,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입니다 하는 이 말의 공통점은 예수님은 위대하기는 위대한데 사람이라 그 뜻입니다. 예수님도 위대하기는 위대한데 예수님도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식이, 모든 사람들의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그 지식에 따라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믿음의 길이 예수님을 위대한 사람 중의 하나라 그리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오신 이후 지금까지 2천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신약시대 예수님 오신 후 지금까지 예수님을 아는 사람, 2천년 역사에 수천억의 인구가 왔다 갔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를 예수님은 역사에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4대성인을 꼽으라 그러면 첫째, 예수님 둘째 석가모니 세 번째 공자 네 번째 소크라테스 이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래 네 사람을 꼽는다 그러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석가모니하고 예수님은 같은 성자이다, 공자하고 예수님은 같은 성자이다 요게 역사세계의 예수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그러니까 얼른 생각하면 예수님이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구나 좋은 것 같은데 이게 바로 대단히 간교하면서 아주 나쁜 귀신 악령의 술수고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석가모니하고 동급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공자하고 동급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역사에 왔다간 수천억의 수조의 어떤 인간의 그보다 그보다 천 배 만 백 억억만배의 위대한 사람이다, 틀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지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두고 그냥 좀 못난 사람이라 칩시다. 못난 사람이 있는데 그 못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야 그 사람 참 훌륭한 똑똑한 잘 생긴 강아지 같다 그러면, 그 사람 참 잘 생겼다 똑똑하다, 아주 위대하다, 참 잘났다 그런데 결론은 강아지 같다 그러면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사람에게 그보다 더한 욕이 있습니다. 씻을 수 없는 욕이지요.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왔으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좀 있으면 성탄절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인데 사람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요게 정답인데 그때 당시 모든 사람들의 아는 것은, 인식은 예수라는 분은 훌륭하다, 위대하다, 성자 성인이다 다 그랬는데, 그래서 말하기를 세례요한 같다, 엘리야 같다, 예레미야 같다, 위대한 선지자 같다 그랬는데 속에 들어가 보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간으로 끌어내렸습니다. 다 틀린 겁니다. 요게 그 당시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의 여론이었습니다.
이래 알면, 예수님 알기를 요래 알면 예수님 섬기기를 그래 섬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실패한 사람들의 신앙의 첫째는 뭐냐?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데 그 중에서 실패하는 신앙의 첫째는, 오늘 말씀의 첫째는, 본문의 첫째는 그 사람 신앙이 여론 신앙이라는 겁니다. 여론 신앙이 뭐냐? 여론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을 보고 믿는다 그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되 주일을 지키되 성경 읽되 기도하되, 전도하고 심방하고 주의 일을 많이 하되 그 하는 바탕이, 동기가, 원인이, 발족이 사람들의 이목을 보고 사람들 때문에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살펴보니까 그래서 사람 보고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로 인해서 사람들에 의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여론 신앙입니다.
또 하나 여론 신앙은 다시 말하면 사람 보고 믿는 그것도 좀 넓히면 자기 환경에 피동되는 겁니다. 현실에 피동되는게 말하자면 여론 신앙입니다. 환경이 좋으니까 감사가 나오고 찬송이 나오고 환경 열악하니까 원망 짜증이 나오고 요 신앙이 들어가 보면 결국 여론 신앙이 되고 마는 겁니다. 요 신앙은 실패하는 걸음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많을 때는 7천명, 5천명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떡을 직접 먹인 그 숫자가 어떤 때는 5천명 4천명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참 바로 알고 바로 믿지 아니하고 사람들 소문 듣고 말 듣고 그래 예수님을 믿었고 섬겼지 정말 예수님을 바로 안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되, 야, 예수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있다더라, 그분 가르침은 참 특별하다더라, 능력 있다더라, 그분은 소경의 눈도 띄운다더라, 그분은 문둥이도 치료한다더라, 그분은 죽은 자도 살린다더라, 위대하다더라 이런 말을 듣고 전부 그 소문에 휩쓸려서 따라다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면서 오병이어 떡도 먹어 보고 고기도 먹어 보고 가르침도 받았습니다마는 마지막까지 주님을 따라간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주 높은 고위직에 있던, 국세청장급 되는 삭개오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구름같이 몰려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이해를 못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적어도 얼굴은 한 번 봐야 되고 음성은 들어봐야 되는데 7천명이 모이면 그 구름같이 뺑 둘러 싸여 있으면 예수님 얼굴 본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전부 앞사람 뒤꼭지만 보고 따라다니지요. 그래서 나는 저래 따라다니고 싶지는 않고 예수님을 직접 한번 만나봐야 되겠다 해서 예수님을 만나 보려 그러는데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라고요? 예수의 얼굴을 한번 보고 보고 싶은데 뭐가 어떻다고요? 삭개오가 키가 작아서 볼 수가 없습니다. 키가 크면 볼 건데. 그래서 삭개오가 예수님 가시는 길목에 먼저 지름길로 달려가서 어디 올라갔습니까? 뽕나무, 우리나라 학생들 뽕나무, 옛날 분들 아시지요? 지금은 뽕나무가 잘 없고, 시골에 있을 건데 도심에는 잘 없습니다. 저 시골 가면, 신풍에는 뽕나무 있는가요? 저 어릴 때 시골에는 뽕나무가 많았습니다. 그 뽕나무 잎사귀가 뽕잎인데 누에가 먹고 자라는 누에 먹이이고, 거기서 나는 열매가 오디라고 그거 먹으면 그때는, 요즘은 잘 안 먹지요. 그때는 그것 새카맣게 익은 것 따 먹으면 참 맛있습니다. 입이 새카맣게 될 만큼. 그런데 그 뽕나무가, 제가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는데 초등학생 때 그 오디 열매를 따 먹었거든요. 그만큼 그 나무가 작습니다, 키가.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그 뽕나무가 굉장히 크다 그러지요, 고목나무처럼? 우리나라 큰 느티나무처럼 그렇게 큰 나무가, 은행나무처럼 그렇게 큰 나무가 그 나라 뽕나무랍니다. 거기 올라가서 내려다 보고 있으니까 예수님이 오셨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보고 영접해서 구원 받은 사람이 삭개오인데 그 삭개오의 특징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 알지 않았고 사람보고 따라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기가 직접 주님을 봐야 되겠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기신 분인지 어떤 분인지 내가 직접 만나봐야 되겠다, 요게 신앙의 굉장히 중요한 사상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직접 만나는 게 신앙이지, 사람들 말 듣고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여론 신앙은 그래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마지막에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 몇 사람이 시기해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일 때 여론 형성해서 예수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다고 몇 마디 고함 지르니까, 우리나라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수입된 소고기 먹으면 다 죽는다고 일부 사람이 여론 조장하니까 우리나라 국민들 몇만명, 몇십만명이 동원되어서 광우병 파동이 났었지요? 하나의 우스운, 한두 사람의 말 몇 마디에 수십만명이 놀아났지요? 그게 군중입니다, 군중. 정치가들이 그래 군중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어리석다 우민정책이라 그래 말하지요. 많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어서, 그래서 핵심적인 뭐가 있으면 수많은 사람을 관심을 그리 끌어 놓고 하나 콕 찔러서 통과시키고,
그러기 때문에 사람 보고 따라가고 사람들 말 듣고 따라가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한 가지 이솝 우화를 하나 해 볼까요? 여러분들 우리 모두 잘 아는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 두 부자가 당나귀를 팔러 갑니다. 당나귀 팔러 가니까 사람들이 있다가, 두 부자가 당나귀를 팔러 털래털래 걸어가니까 사람들이 있다가 말하기를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구나 당나귀는 사람이나 짐을 태우는 건데 당나귀를 그냥 걸려가? 타고 가지, 그러니까 그말 듣고 그럴싸 하거든요. 그래서 그 말 듣고 아버지가 당나귀를 탔습니다. 아버지가 당나귀를 타고 한참 가니까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들이 있다가 말하기를 참 무정한 아버지일세, 자기는 타고 가고 아들은 걸려 가다니? 그럴 수가 있나? 그러니까 그 말을 들으니까 그럴 듯 하거든요. 아 맞네. 네가 타고 가라. 아들이 타고 갑니다. 타고 가니까 좀 가니까 이번에는 노인들이 앉아 있다가 말하기를 참 말세로다, 늙은 아버지는 걸려가고 젊은 놈이 타고 가다니, 그러니까 그 말이 또 맞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둘이 다 타고 갑니다. 둘 다 타고 가는데 이번에는 누가 나타납니까? 동물 애호가들이 나타납니다. 참 잔인한 사람들일세, 아무리 짐승이지만 두 사람이나 나귀에 타고 가면 견디겠나? 그래서 이번에는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어서 당나귀를 거꾸로 매고 지고 갑니다. 지고 가다가 나중에는 나중에 다리 지나가다가 다리에 퐁당 빠져서 다 실패하고 말았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지요. 그 말이 뭘 가르칩니까? 그 말이 사람들이 자기 주관이 없고 남의 말만 듣고 남의 말 들으면 따라가는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세상 교훈입니다.
이것처럼 믿는 사람의 신앙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말 듣고 사람들 보고 따라가는 것은 이것은 여론 신앙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고, 그래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마지막에 몇 사람이 여론 조작을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 7천명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함께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자고 데모했습니다. 몇 사람 여론에 수십만명 나와서 데모하고 나라가 뒤집어질 만큼 그렇게 만들었듯이 그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이런 일은 허다하게 있습니다. 지금도, 안 봐도 귀신 마귀는 탈을 바꿔 쓰고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꼭 같은 그런, 성질은 꼭 같은 일인데 제목만 딱 바꿔 가지고 드러내면 여전히,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수천명 수만명 데모에 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나오면 또 나옵니다, 그 사람들. 지나간 역사에 보니까 참 어리석었다, 몇 사람의 말장난에 놀아났다 이게 밝혀져도 그 몇 년 뒤에 다른 것 가지고 나오면 그 사람들 또 나갑니다. 그러니까 남의 말에 영향 받고 피동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어디 가든지 영향 받고 피동되게 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이게 여론 신앙이고, 요 여론 신앙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동참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 속에서 신앙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이게 신앙인데,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변하지 않으니까 환경이 어떻게 변해도, 사람이 어떻게 변해도 상관이 없는 것인데 요게 없이 내 속에 말씀이 없고 말씀을 통한 신앙 양심이 없고 그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니까 자기 신앙이 없으니까 환경에 의해서 영향 받고 피동되어서 결국 주님을 배반하고 마는 겁니다. 이것이 여론 신앙의 결과입니다. 실패의 길입니다.
또 하나 실패의 길은 베드로가, 베드로가 주님을 바로 알고 고백하고 난 다음에 크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고 천국 열쇠를 너에게 주겠고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 했는데, 이런 큰 복을 받았는데 바로 그 다음 주님이 사실, 앞으로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있다가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아주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고난 받지 마옵소서 죽지 마옵소서 왜 그런 고난의 길과 죽음의 길을 가시려 하나이까 가지 마옵소서,
그 베드로의 주님에게 간청한 그 간청은 주님을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주님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그 주님을 향한 사랑과 아낌에서 진심으로 베드로는 주님을 만류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이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만류해서 고난 받지 마옵소서, 죽는 길로 가지 마옵소서 간곡하게 청했으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베드로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말을 듣고 말씀하시기를 뭐라 그랬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세상에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제자의 그렇게 애절한 간절한 절절한 그 간청을 사탄이라니요? 또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주님 고난 받고 십자가 죽으러 가시겠다는 그 주님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간곡한 사랑으로 아끼는 마음으로 주님에게 청했다가 졸지에 사탄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마귀가 되어버렸습니다. 주님 말씀이 틀렸습니까? 예수님 말씀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정확무오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향한 그 베드로의 사랑에 의한 그 간절한 간청은 뭐냐? 순전히 베드로 자기 생각이고 자기 판단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신앙이란 것은, 그래서 이때까지의 베드로의 신앙은 다른 사람들처럼 남의 말 듣고 따라가는 여론 신앙은 피했는데 베드로 신앙은 반대쪽으로 치우쳐서 자기 주관 신앙을 가졌습니다. 주관 신앙이라 그 말은 주관 신앙이라 말은 자기 신앙이라 그 뜻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주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 말입니다. 이거 잘 기억해야 됩니다, 특히 우리 교인들. 신앙이란 것은 사람들 말만 듣고 보고 따라가는 것도 실패합니다. 이거는 객관성이 너무 많아서 주관이 없는 겁니다. 반대로 남의 말 전혀 듣지 아니하고 남은 보지 아니하고 자기 주관대로만 하는 것도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주관 신앙의 결과는 뭐냐? 예수님을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길이었고 마지막 결과는 베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그게 자기 주관적인 신앙입니다.
그러면, 요 두 신앙은 실패합니다. 사람들의 말 듣고 따라는 것은 실패다, 또 사람들 말 안 들어도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 판단대로만 믿는 것도 실패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가? 베드로가 그 앞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할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요 대답은 사람들의 말도 아니고 베드로 자기 주관도 아닙니다. 이거는 어디서 배운 겁니까? 예수님에게 배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 배운 말씀 요 말씀대로 고백했습니다. 고 말씀이 베드로의 신앙 양심을 움직였고 그 양심 속에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 받는 신앙 양심된 베드로의 신앙 양심에게 알려 주실 때 고 알려 주시는 고대로 베드로가 고백하니까 그 고백이 바로 영감 고백이 된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가 알게 하시는 것을 베드로가 입으로 말하니까 진리가 된 것입니다. 절대 불변의 진리가 된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의 신앙이 바로 반석이 될 수 있고 그 위에 교회 세울 수 있는 그런 신앙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은 옳은 신앙의 첫 걸음은 잘났든지 못났든지 많이 배웠든지 무식하든지, 오래 믿었든지 이제 믿었든지 옳은 신앙의 첫 걸음은 뭐냐? 그 누구라도,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평신도도 그 누구라도 옳은 신앙의 첫 걸음은 반드시, 같이 해 보실까요? 말씀! 말씀! 옳은 신앙의 첫 걸음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전도되어 믿고 나서 앞으로 잘 믿을 것인가, 그 사람의 출발이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 사람은 대개 보면 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전도 많이 하려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연보 많이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첫째는 성경을 많이 읽어서 말씀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요게 신앙의 첫 걸음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자기 속에 들어 있고 요 말씀이 자기 속에 온갖 것을 움직이는데 가장 마음 속에 밝은 부분인 자기 양심을 옳은 말씀이 붙들어서 양심을 지배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양심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이니 그게 우리들이 고백할 고백이고 걸어갈 길입니다. 베드로의 신앙은 바로 요 신앙을, 어려운 말로 영감 신앙이라 그래 말하는데, 요 영감 신앙이 되려면 여론 신앙을 버려야 되고 주관 신앙을 버려야 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 그래야 말씀을 바로 들을 수 있고,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 말씀대로 살면 말씀이 그 양심을 지배할 수 있고 그러면 그 속에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그 걸음을 걸어갈 수 있다 하는 겁니다.
주의할 것은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는데 왜 실패했느냐?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은 실패 했는데 왜 실패했느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세상에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베드로까지 도망쳐 버렸습니다. 할 수 없는 여반들 몇 사람 좀 떨어져서 울면서 애만 태우고 있었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잘 믿는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도망쳐 버렸지, 여론 신앙으로 사람들 말 듣고 따라가는 사람은 함께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손들고 동참했습니다. 베드로는 주관 신앙이었기 때문에 예수님 가는 길을 막았고 예수님 배반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교회를 다니고 성경 들고 다니고 예수 이름을 말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에 적어도 수백만 명이 전국에서 예배를 드릴 것이고 온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 수천만 명 중에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그 신앙은 몇 사람이나 될까? 주님 말씀은 내가 믿는 자를 보겠느냐? 안 보인다 그 말입니다. 그 수천만 명 중에서, 수억만 명 중에서 참 믿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고 참 믿는 사람 속에 속해 들어가려면 우리 신앙 걸음이 첫째 사람의 말을 듣고 믿는 것을 배격해야 됩니다. 사람이 뭐라 그러든지 위대한 목사가 위대한 신학자가 설교가가 뭐라 그러든지 사람의 말을 듣고 영향 받으면 신앙 걸음은 걸어갈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말은 뭘로 삼습니까? 우리가 존경하는 백 목사님의 말씀은 고대로 따라가야 됩니까? 아닙니다. 백 목사님 말씀은 뭘로 삼아야 됩니까? 옳은 진리의 말씀은 그대로 삼고, 백 목사님 말씀도 내 신앙 걸음에 교훈으로 삼되 성경 진리는 아닙니다. 그것도 따져 봐야 됩니다. 옳으냐 아니냐, 내 양심에, 내가 깨달은 그 양심에 옳으면 따라가는 것이고 백 목사님 교훈도 내 양심에 틀리면 못 따라가는 겁니다, 성경에 틀리면. 그런데 문제는 내 양심이 틀릴 수 있으니까 그게 문제지요. 내 양심이 성경대로 된 바른 양심이면 그 양심대로 가는 겁니다. 이게 신앙의 길입니다. 그래서 신앙 걸음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가는 길이지 그 누구도 그 사이에 끼일 수 없습니다.
이걸 가리켜서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고, 신랑과 신부 사이에 어떤 사람이든지 끼이면 그 끼이는 그놈은 나쁜 놈입니다. 여자면 나쁜 여자이고. 간부 아니면 음녀입니다, 그거는. 신랑과 신부는 붙어야 합니다. 그래서 천하에 사람이 붙어 좋을 것 없지만 신랑과 신부만큼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떨어지면 그만큼 손해입니다. 붙어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붙어야 되고 힘들어도 붙어 살아야 되고 함께 사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주님과 우리 성도는 부부 사이입니다. 하나입니다. 요 사이에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 사이를 붙여 주는 역할을 가리켜서 뭐라 그러지요? 신랑 신부를 붙여 주는 그 역할을 가리켜서 중매쟁이라 그러고, 세례요한의 가장 위대한 신앙은 요겁니다. 그는 흥해야 되겠고 나는 쇠해야 되겠다, 신랑이 왔으니까 나는 물러간다, 너희들은 신랑에게 붙어라, 세례요한의 많은 신앙 중에 가장 위대한 신앙은 모든 자기 제자들을 전부 끌어 붙인 겁니다. 중매쟁이 역할을 바로 한 겁니다. 이게 원래 세례요한의 자기 임무였고 그 임무를 세례 요한은 완벽하게 한 겁니다. 그게 다른 것 때문에 죽은 것보다 가장 위대한 신앙이 세례요한의 신앙의 바로 그 면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말은 그 누구의 말이라도 참고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생활과 행동은 참고만 할 겁니다. 그걸 보고 따라가거나 영향 받고 피동될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중심되는 내 현실 환경은 하나님이 조성해 주신 내 환경이고 그 속에서 내가 나를 만드는, 마치 쇠를 연단하는 풀무불 같은 환경이지 거기 내가 피동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말에 영향 받고 피동되고 환경에 영향 받고 피동되면 그게 바로 여론 신앙이고 그 여론 신앙의 결과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일에 동참을 하고 말았지요.
여론 신앙의 반대는 주관 신앙입니다. 주관 신앙은 객관을 안 보는 겁니다. 주변 사람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말씀도 모르고 오로지 자기 생각입니다. 내가 좋으면 하는 것이고 내가 싫으면 안 하는 것이고 내가 맞으면 맞는 것이고 내가 틀리면 틀리는 것이고, 그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 신앙이 주관 신앙이고 베드로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얼마나 간곡하게 간청을 했으니까, 눈물겨운 사랑이니까, 제자의 스승 사랑의 얼마나 간절하고 절절한 그런 사랑에 상을 줘도 모자랄 판인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주님 말씀이 틀리지 않았으니까, 네 신앙 너의 사랑은 주관적인 사랑이지, 네 신앙은 네 주관이지 그 주관은 마지막에 주님 배반하고 도망쳐 버립니다. 믿는 사람 중에 수많은 사람들은 사람 말 듣고 사람보고 믿는 사람이 제일 많고 또 다대수는 자기 생각대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자기 주관 그 신앙은 실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을까? 이 둘을 버리고, 신앙은 말씀으로 믿어야 됩니다. 말씀. 하나님의 말씀, 말씀을 가지고 옳은 것을 찾아가는 겁니다. 말씀에 옳으면 사람이 뭐라 그러든지 가는 겁니다. 말씀에 옳으면 내 생각에 어떻든지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끝까지 따라갈 수 있지 자기가 살아 있고 십자가를 싫어하면 주님은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오전에 신앙 실패의 두 길, 성공의 조건 기억하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나 자신의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십시다. 내 신앙은 여론이냐, 주관이냐, 아니면 말씀에 입각한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바른 길이냐 생각해 보고, 우리는 사람의 말 듣고 사람보고 믿는 이 신앙 버리고,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고집대로 믿는 이것도 버리고, 말씀에 입각해서 옳고 바른 신앙 걸음을 걸어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제목: 신앙(信仰) 실패의 두 길과 성공의 조건
요약문답:
1. 본문-1
- 예수님이 가신 곳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
- 예수님이 물으신 것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 제자들의 대답은?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 본문-2
- 다시 예수님의 질문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베드로의 대답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 영감으로 대답한 베드로에게 주신 복은?
①너는 (베드로)라
②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고
③(천국 열쇠)를 주리니
④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3. 본문-3
- 예수님께서 비로소 말씀하신 것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
-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한 것은?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 예수님의 말씀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①자기를 (부인)하고 ②자기 (십자가)를 지고
4. 본문에서 가르치는 3가지
1)신앙 (실패)의 길 2가지
2)신앙 (성공)의 길
3)신앙 성공의 (조건)
5. 신앙 실패의 길 1: (사람 보고 믿는 것-여론 신앙)
- 예수님에 대한 당시 여론은? 위대한 (사람) 중에 한 분
- 여론 신앙이란? (사람) 보고 믿고 (사람)에게 피동되는 것
- 여론 신앙이란? (현실)에 (영향)받고 (피동)되는 것
- 여론 신앙의 결과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음
- 예수님을 직접 보고 싶었던 사람은? (삭개오)
- 당나귀 팔러 가던 부자(父子)의 교훈은? (사람) 말만 듣는 어리석음
6. 신앙 실패의 길 2: (자기 주관대로 믿는 것-주관 신앙)
- 베드로가 예수님의 고난을 만류한 이유는? 예수님을 (사랑)해서
-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한 바탕은? 자기 (주관)
- 예수님의 고난을 만류한 베드로의 신앙은? (주관 신앙)
- 주관 신앙이란?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주관대로 믿는 것
- 주관 신앙의 결과는? (십자가)를 싫어하고 (도망)
7. 신앙 성공의 길: (말씀, 양심, 영감)
-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바로 알게 하신 분은? (하나님 아버지)
- 예수님을 바로 알았던 베드로의 신앙은? (영감 신앙)
- 성공하는 신앙은? (영감 신앙)
- 영감 신앙이란? (말씀)→ (신앙 양심)→ (영감)
8. 신앙 성공의 조건
- 영감 신앙이 되려면?
①(여론 신앙)을 버리고
②(주관 신앙)을 버리고
③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④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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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문)
2013.12. 08.주일오전
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24절
제목: 신앙 실패의 두길과 성공의 조건
오늘 예배 찬송에 169장과 173장을 했는데 그 찬송은 우리 하늘나라 소망에 관련된 찬송입니다. 소망이란 것은 죽음 너머 있는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 관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예수 믿는 소망의 사람들이고, 그래서 소망에 관련된 찬송은 언제든지 은혜롭고 좋습니다. 더욱이 가끔 한 번씩 있는 장례식에 그런 찬송을 하면 그 가사라든지 곡이 은혜롭고 느껴지는 게 많아서 대개는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을 만큼 아주 좋은 찬송이 소망의 찬송입니다. 우리 교회 찬양대들에게 제가 좀 아쉬운 게 하나 있다면 이 소망에 관련된 찬송을 좀 자주 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아쉬움을 가끔 한 번씩 가지고 있습니다. 예배를 시작할 때라든지 마칠 때. 너무 자주 하는 것도 그렇지만 좀 종종 하면 좋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이란 것은 현재에 바라보는 미래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그게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게 소망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사는데 그 소망의 실제는 미래에 있는 것이고 그 실제를 이루는 것은 오늘 현재이니까 현재를 바로 살아야 미래가 바로 이루어지는 이 면을 사람들은 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열매는 먹고 싶고, 열매는 보면 먹음직스럽고 맛있게 먹는데 그 열매가 맺기까지의 농사의 과정들은 사람들이 생각지 아니하고 또 정작 닥치면 힘들어하고 다 싫어합니다. 그게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을 생각하면 참 좋은데 그 소망의 실제가 바로 오늘 우리 현재 생활이고 그러므로 우리 현상의 현실의 모든 생활은 소망이라는 열매를 이루는 농사 짓는 과정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힘들고 어려운 것인데 이거는 사람들이 생각지를 잘 아니합니다. 양면을 늘 함께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런 면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소망에 좋은 결과를 맺으려면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농사짓는 우리들의 인생 생애의 과정이 어떠해야 되겠는가 하는 한 면을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신앙 실패의 두 길과 성공의 조건이라 그렇게 제목을 붙여 놨습니다. 그러면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길을 걸어가는데 그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대개 보면 좋은 회사에 좋은 대학에 시험을 치면 경쟁률이 10대 1이라 그리 높지요, 대개. 얼마 전에 삼성그룹에 입사시험을 쳤는데 경쟁률이 몇 대 일이던가요, 우리 청년들? ooo선생님 봤습니까? 그런 것은 청년들이, 앞으로 취직할 사람들이 봐야지요? 경쟁률이 100대 1이든가요? 그 정도 높았지요, 아마? 100 대 1이라 말은 100명이 시험 치면 1명만 붙고 나머지 99명은 떨어진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 성공의 확률은 좋은 것일수록 성공의 확률은 적고 실패할 확률이 많다 그 말입니다. 우리 신앙은 어느 것과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신앙의 길은 많은 사람이 걸어가나 성공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실패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생전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에,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오셨는데 그때 세상을 두고 말씀하시고 앞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이 역사세계를 두고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다시 올 때 세상에서 믿는 자를 보겠느냐, 하나님을 참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하나님을 성경이 말씀하신 그대로의 하나님인 것을 인정을 하고 그분을 바로 섬기는 그런 사람을 말세 마지막 시대에 볼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은 믿는 사람이 흔하다 말입니까, 귀하다 말입니까? 예수님 그 말씀은 말세가 되면 믿는 사람이 흔하다 말입니까 귀하다 말입니까? 많다는 말입니까, 적다는 말입니까? 적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간판이 교회라 그러지요? 수퍼마켓 다음으로 교회라, 일반 잡화상 다음으로는 교회가 제일 많답니다. 한 교회에 예수 믿는 사람이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만명입니다. 전국에 예수 믿는 사람 다 모으면, 기독교 불교 종교 다 모으면 그렇다든가요? 우리나라 인구보다 훨씬 많다 그러지요? 예수 믿는 사람이 천만명이 많답니다. 우리 나라만. 그렇다면 예수님 말씀이 틀렸다는 말입니까? 예수님 말씀이 틀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답은? 믿는 사람은 많은데 참 믿는 사람은 흰쌀의 뉘처럼 드물다 그 말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이 많은 사람 가운데 예수님 말씀을 생각해 보니까 믿는 자를 보겠느냐 그러셨으니 나는 참 믿는 자에 속했을까, 믿는 것 같은데 사실은 안 믿는 자에 속했을까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우리 신앙을 점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니까 일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건강 검진을 자주 받으면 어지간한 병은 초기에 발견하면 약이 좋고 의술이 좋으니까 치료 받으면 100세 시대가 왔다 그리 말합니다. 보통 요즘 사는 분들은 어지간하면 90세, 100세까지 사는 분들이 드물지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90세까지 사는 분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건강 검진을 자주 하면 건가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신앙 검진을 자주 하면 그 신앙이 병이 들지 않고 바로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건강 검진은 자주 하고 내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는 자주 정비를 하고 내가 사용하는 기계들은 자주 점검을 하고 우리 학교 공부하는 아이들은 제대로 하는지 시험을 자주 쳐 보면서 우리 신앙 점검은 거의 하는 사람들이 드뭅니다.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십시다.
여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수께서 어느 지방에 가셨는데 예수님께서 어느 지방에 가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셨습니다. 거기 가셔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누구라고 하느냐? 예수님 당시 예수님이 유명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그 분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모두 짐작을 하고 들어 알고 서로서로 알고 아는 것이 있는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당시 시대에 예수님에게 대한 여론을 물어 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 많은 사람들의 판단, 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분을 어떻게 알고 생각하는지 제자들에게 물어보니까 제자들이, 예,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났다 그럽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왔던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다시 왔다 그럽니다. 엘리야는 구약시대에 아주 위대한 하나님의 종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 그렇게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리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에 그 지방에 그 주변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지식, 예수님에 대한 인식, 예수님에 대한 관이 어떻게 알았느냐? 예수님을 알기를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세례요한이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엘리야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예레미야나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렇게 모두들 알고 있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대답들이 맞았습니까 틀렸습니까? 이 모든 대답들은 다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도 아니고 또 엘리야도 아니고 예레미야도 아니고 선지자 중의 한 사람도 아니고 다 틀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그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이 나를 세례요한이다 또 엘리야다 예레미야다 혹은 그보다 위대한 선지자다 그렇게 모두들 알고 있다면, 그들이 그렇게 주고받고 대화하고 가르치고 말하고 그러는데 그러면 내게 직접 배우고 있는 너희들은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 그래 물으시니까 그 중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래 대답을 했습니다. 이 대답이 정답이고 100점짜리 대답입니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래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바요나 시몬아, 바요나라 말은 요나라는 사람, 요나의 아들아 그 뜻입니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 사실을 너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혈육이 아니라 그 말은 사람이 아니라 그 뜻입니다. 어떤 위대한 스승이나 박사나 어떤 신학자 그런 사람들, 대제사장 서기관들이 아니고 이 사실을 너에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알게 하셨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너는 베드로라, 성경 보십시다.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이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찬양대 학생들, 베드로라는 이름의 뜻이 뭐라고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반석이 뭔가요? 만세반석 열리니, 반석이 무엇입니까? 반석이라는 것은 굉장히 넓고 평평한 돌, 그 위에 무엇이든지 얹을 수 있고 기초 닦을 수 있는 그런 아주 넓고 편편한 돌을 반석이라,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아주 단단한 돌을 반석이라 그리 말하는 것입니다. 너는 베드로라 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 또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그렇게 아주 큰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말씀을 하시고 21절에 보니까 이때부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는데 뭘 가르쳤는고 하니 예수님 자신이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장로, 교회 어른들, 대제사장들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 서기관들 성경 박사들 그런 사람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그때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면 그 동안에 주님이 제자들을 가르쳤지만 많은 말씀을 가르쳐도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을 말씀하지 않고 있다가 요때부터 예수님께서 당신이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있다가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예수님이 많은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임 당하는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렇게 간청을 했습니다. 그리 하지 마옵소서, 뭐 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고난 받지 마옵소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지 마옵소서 그 말입니다.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 세 가지인데, 하나는 믿는 사람의 신앙에 실패하는 길이 둘이 있습니다. 신앙 실패의 길이 둘이 있고 또 신앙 성공의 길이 하나가 있고, 그런데 신앙 성공을 하려면 어떤 조건이 있어야 되는가를 여기 본문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 실패의 길 두 가지, 신앙 성공의 길 한 가지, 신앙 성공의 조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첫째로, 신앙 실패의 첫째 길은 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이 나를 보고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그 당시 예수님이, 그 당시 예수님을 아는 많은 사람들의 여론을 물어 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라는 그분을 누구로 알고 있느냐 누구라고 알고 섬기고 있느냐 말씀하실 때 그때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요한입니다, 엘리야입니다, 혹은 예레미야나 그보다 더 위대한 선지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이 말의 공통점은 뭐이냐 하면, 예수님은 세례요한입니다, 엘리야입니다,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입니다 하는 이 말의 공통점은 예수님은 위대하기는 위대한데 사람이라 그 뜻입니다. 예수님도 위대하기는 위대한데 예수님도 사람 중의 한 분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식이, 모든 사람들의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그 지식에 따라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믿음의 길이 예수님을 위대한 사람 중의 하나라 그리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오신 이후 지금까지 2천년이 지나가고 있는데, 신약시대 예수님 오신 후 지금까지 예수님을 아는 사람, 2천년 역사에 수천억의 인구가 왔다 갔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를 예수님은 역사에 인류역사에 가장 위대한 4대성인을 꼽으라 그러면 첫째, 예수님 둘째 석가모니 세 번째 공자 네 번째 소크라테스 이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래 네 사람을 꼽는다 그러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석가모니하고 예수님은 같은 성자이다, 공자하고 예수님은 같은 성자이다 요게 역사세계의 예수님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맞습니까 틀렸습니까? 그러니까 얼른 생각하면 예수님이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인물이구나 좋은 것 같은데 이게 바로 대단히 간교하면서 아주 나쁜 귀신 악령의 술수고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석가모니하고 동급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공자하고 동급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역사에 왔다간 수천억의 수조의 어떤 인간의 그보다 그보다 천 배 만 백 억억만배의 위대한 사람이다, 틀렸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지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두고 그냥 좀 못난 사람이라 칩시다. 못난 사람이 있는데 그 못난 사람이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야 그 사람 참 훌륭한 똑똑한 잘 생긴 강아지 같다 그러면, 그 사람 참 잘 생겼다 똑똑하다, 아주 위대하다, 참 잘났다 그런데 결론은 강아지 같다 그러면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사람에게 그보다 더한 욕이 있습니다. 씻을 수 없는 욕이지요.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왔으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좀 있으면 성탄절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인데 사람을 입고 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요게 정답인데 그때 당시 모든 사람들의 아는 것은, 인식은 예수라는 분은 훌륭하다, 위대하다, 성자 성인이다 다 그랬는데, 그래서 말하기를 세례요한 같다, 엘리야 같다, 예레미야 같다, 위대한 선지자 같다 그랬는데 속에 들어가 보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간으로 끌어내렸습니다. 다 틀린 겁니다. 요게 그 당시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의 여론이었습니다.
이래 알면, 예수님 알기를 요래 알면 예수님 섬기기를 그래 섬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실패한 사람들의 신앙의 첫째는 뭐냐? 예수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데 그 중에서 실패하는 신앙의 첫째는, 오늘 말씀의 첫째는, 본문의 첫째는 그 사람 신앙이 여론 신앙이라는 겁니다. 여론 신앙이 뭐냐? 여론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을 보고 믿는다 그 뜻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되 주일을 지키되 성경 읽되 기도하되, 전도하고 심방하고 주의 일을 많이 하되 그 하는 바탕이, 동기가, 원인이, 발족이 사람들의 이목을 보고 사람들 때문에 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살펴보니까 그래서 사람 보고 사람들 때문에 사람들로 인해서 사람들에 의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여론 신앙입니다.
또 하나 여론 신앙은 다시 말하면 사람 보고 믿는 그것도 좀 넓히면 자기 환경에 피동되는 겁니다. 현실에 피동되는게 말하자면 여론 신앙입니다. 환경이 좋으니까 감사가 나오고 찬송이 나오고 환경 열악하니까 원망 짜증이 나오고 요 신앙이 들어가 보면 결국 여론 신앙이 되고 마는 겁니다. 요 신앙은 실패하는 걸음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많을 때는 7천명, 5천명 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떡을 직접 먹인 그 숫자가 어떤 때는 5천명 4천명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참 바로 알고 바로 믿지 아니하고 사람들 소문 듣고 말 듣고 그래 예수님을 믿었고 섬겼지 정말 예수님을 바로 안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되, 야, 예수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있다더라, 그분 가르침은 참 특별하다더라, 능력 있다더라, 그분은 소경의 눈도 띄운다더라, 그분은 문둥이도 치료한다더라, 그분은 죽은 자도 살린다더라, 위대하다더라 이런 말을 듣고 전부 그 소문에 휩쓸려서 따라다녔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따라다니면서 오병이어 떡도 먹어 보고 고기도 먹어 보고 가르침도 받았습니다마는 마지막까지 주님을 따라간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주 높은 고위직에 있던, 국세청장급 되는 삭개오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구름같이 몰려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이해를 못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적어도 얼굴은 한 번 봐야 되고 음성은 들어봐야 되는데 7천명이 모이면 그 구름같이 뺑 둘러 싸여 있으면 예수님 얼굴 본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전부 앞사람 뒤꼭지만 보고 따라다니지요. 그래서 나는 저래 따라다니고 싶지는 않고 예수님을 직접 한번 만나봐야 되겠다 해서 예수님을 만나 보려 그러는데 삭개오가 어떤 사람이라고요? 예수의 얼굴을 한번 보고 보고 싶은데 뭐가 어떻다고요? 삭개오가 키가 작아서 볼 수가 없습니다. 키가 크면 볼 건데. 그래서 삭개오가 예수님 가시는 길목에 먼저 지름길로 달려가서 어디 올라갔습니까? 뽕나무, 우리나라 학생들 뽕나무, 옛날 분들 아시지요? 지금은 뽕나무가 잘 없고, 시골에 있을 건데 도심에는 잘 없습니다. 저 시골 가면, 신풍에는 뽕나무 있는가요? 저 어릴 때 시골에는 뽕나무가 많았습니다. 그 뽕나무 잎사귀가 뽕잎인데 누에가 먹고 자라는 누에 먹이이고, 거기서 나는 열매가 오디라고 그거 먹으면 그때는, 요즘은 잘 안 먹지요. 그때는 그것 새카맣게 익은 것 따 먹으면 참 맛있습니다. 입이 새카맣게 될 만큼. 그런데 그 뽕나무가, 제가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는데 초등학생 때 그 오디 열매를 따 먹었거든요. 그만큼 그 나무가 작습니다, 키가.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그 뽕나무가 굉장히 크다 그러지요, 고목나무처럼? 우리나라 큰 느티나무처럼 그렇게 큰 나무가, 은행나무처럼 그렇게 큰 나무가 그 나라 뽕나무랍니다. 거기 올라가서 내려다 보고 있으니까 예수님이 오셨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보고 영접해서 구원 받은 사람이 삭개오인데 그 삭개오의 특징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 알지 않았고 사람보고 따라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기가 직접 주님을 봐야 되겠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기신 분인지 어떤 분인지 내가 직접 만나봐야 되겠다, 요게 신앙의 굉장히 중요한 사상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직접 만나는 게 신앙이지, 사람들 말 듣고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여론 신앙은 그래서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마지막에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 몇 사람이 시기해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일 때 여론 형성해서 예수는 나사렛 이단의 괴수다고 몇 마디 고함 지르니까, 우리나라 몇 년 전에 미국에서 수입된 소고기 먹으면 다 죽는다고 일부 사람이 여론 조장하니까 우리나라 국민들 몇만명, 몇십만명이 동원되어서 광우병 파동이 났었지요? 하나의 우스운, 한두 사람의 말 몇 마디에 수십만명이 놀아났지요? 그게 군중입니다, 군중. 정치가들이 그래 군중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군중은 어리석다 우민정책이라 그래 말하지요. 많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어서, 그래서 핵심적인 뭐가 있으면 수많은 사람을 관심을 그리 끌어 놓고 하나 콕 찔러서 통과시키고,
그러기 때문에 사람 보고 따라가고 사람들 말 듣고 따라가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짓입니다. 한 가지 이솝 우화를 하나 해 볼까요? 여러분들 우리 모두 잘 아는 이야기, 아버지와 아들 두 부자가 당나귀를 팔러 갑니다. 당나귀 팔러 가니까 사람들이 있다가, 두 부자가 당나귀를 팔러 털래털래 걸어가니까 사람들이 있다가 말하기를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구나 당나귀는 사람이나 짐을 태우는 건데 당나귀를 그냥 걸려가? 타고 가지, 그러니까 그말 듣고 그럴싸 하거든요. 그래서 그 말 듣고 아버지가 당나귀를 탔습니다. 아버지가 당나귀를 타고 한참 가니까 아이들을 사랑하는 어머니들이 있다가 말하기를 참 무정한 아버지일세, 자기는 타고 가고 아들은 걸려 가다니? 그럴 수가 있나? 그러니까 그 말을 들으니까 그럴 듯 하거든요. 아 맞네. 네가 타고 가라. 아들이 타고 갑니다. 타고 가니까 좀 가니까 이번에는 노인들이 앉아 있다가 말하기를 참 말세로다, 늙은 아버지는 걸려가고 젊은 놈이 타고 가다니, 그러니까 그 말이 또 맞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둘이 다 타고 갑니다. 둘 다 타고 가는데 이번에는 누가 나타납니까? 동물 애호가들이 나타납니다. 참 잔인한 사람들일세, 아무리 짐승이지만 두 사람이나 나귀에 타고 가면 견디겠나? 그래서 이번에는 두 사람이 어쩔 수 없어서 당나귀를 거꾸로 매고 지고 갑니다. 지고 가다가 나중에는 나중에 다리 지나가다가 다리에 퐁당 빠져서 다 실패하고 말았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지요. 그 말이 뭘 가르칩니까? 그 말이 사람들이 자기 주관이 없고 남의 말만 듣고 남의 말 들으면 따라가는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세상 교훈입니다.
이것처럼 믿는 사람의 신앙이라는 것이 사람들의 말 듣고 사람들 보고 따라가는 것은 이것은 여론 신앙이기 때문에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고, 그래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마지막에 몇 사람이 여론 조작을 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그 7천명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이 함께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자고 데모했습니다. 몇 사람 여론에 수십만명 나와서 데모하고 나라가 뒤집어질 만큼 그렇게 만들었듯이 그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역사에 이런 일은 허다하게 있습니다. 지금도, 안 봐도 귀신 마귀는 탈을 바꿔 쓰고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꼭 같은 그런, 성질은 꼭 같은 일인데 제목만 딱 바꿔 가지고 드러내면 여전히,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수천명 수만명 데모에 나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나오면 또 나옵니다, 그 사람들. 지나간 역사에 보니까 참 어리석었다, 몇 사람의 말장난에 놀아났다 이게 밝혀져도 그 몇 년 뒤에 다른 것 가지고 나오면 그 사람들 또 나갑니다. 그러니까 남의 말에 영향 받고 피동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어디 가든지 영향 받고 피동되게 되어 있다 그 말입니다. 이게 여론 신앙이고, 요 여론 신앙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데 동참을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 속에서 신앙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이게 신앙인데, 이것을 가지고 있으면 내가 변하지 않으니까 환경이 어떻게 변해도, 사람이 어떻게 변해도 상관이 없는 것인데 요게 없이 내 속에 말씀이 없고 말씀을 통한 신앙 양심이 없고 그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니까 자기 신앙이 없으니까 환경에 의해서 영향 받고 피동되어서 결국 주님을 배반하고 마는 겁니다. 이것이 여론 신앙의 결과입니다. 실패의 길입니다.
또 하나 실패의 길은 베드로가, 베드로가 주님을 바로 알고 고백하고 난 다음에 크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반석이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고 천국 열쇠를 너에게 주겠고 네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 했는데, 이런 큰 복을 받았는데 바로 그 다음 주님이 사실, 앞으로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있다가 말하기를 주여 그리 마옵소서 아주 간곡하게 말했습니다. 고난 받지 마옵소서 죽지 마옵소서 왜 그런 고난의 길과 죽음의 길을 가시려 하나이까 가지 마옵소서,
그 베드로의 주님에게 간청한 그 간청은 주님을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주님을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그 주님을 향한 사랑과 아낌에서 진심으로 베드로는 주님을 만류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이니까 진심으로 주님을 만류해서 고난 받지 마옵소서, 죽는 길로 가지 마옵소서 간곡하게 청했으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베드로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말을 듣고 말씀하시기를 뭐라 그랬습니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세상에 그럴 수가 있습니까? 제자의 그렇게 애절한 간절한 절절한 그 간청을 사탄이라니요? 또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주님 고난 받고 십자가 죽으러 가시겠다는 그 주님의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간곡한 사랑으로 아끼는 마음으로 주님에게 청했다가 졸지에 사탄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마귀가 되어버렸습니다. 주님 말씀이 틀렸습니까? 예수님 말씀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정확무오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향한 그 베드로의 사랑에 의한 그 간절한 간청은 뭐냐? 순전히 베드로 자기 생각이고 자기 판단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셨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신앙이란 것은, 그래서 이때까지의 베드로의 신앙은 다른 사람들처럼 남의 말 듣고 따라가는 여론 신앙은 피했는데 베드로 신앙은 반대쪽으로 치우쳐서 자기 주관 신앙을 가졌습니다. 주관 신앙이라 그 말은 주관 신앙이라 말은 자기 신앙이라 그 뜻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주관대로 하나님을 믿는다 그 말입니다. 이거 잘 기억해야 됩니다, 특히 우리 교인들. 신앙이란 것은 사람들 말만 듣고 보고 따라가는 것도 실패합니다. 이거는 객관성이 너무 많아서 주관이 없는 겁니다. 반대로 남의 말 전혀 듣지 아니하고 남은 보지 아니하고 자기 주관대로만 하는 것도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주관 신앙의 결과는 뭐냐? 예수님을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길이었고 마지막 결과는 베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세 번이나 부인하고 도망쳤습니다. 그게 자기 주관적인 신앙입니다.
그러면, 요 두 신앙은 실패합니다. 사람들의 말 듣고 따라는 것은 실패다, 또 사람들 말 안 들어도 자기 생각 자기 주관 자기 판단대로만 믿는 것도 실패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어떻게 믿어야 할 것인가? 베드로가 그 앞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할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요 대답은 사람들의 말도 아니고 베드로 자기 주관도 아닙니다. 이거는 어디서 배운 겁니까? 예수님에게 배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에게 배운 말씀 요 말씀대로 고백했습니다. 고 말씀이 베드로의 신앙 양심을 움직였고 그 양심 속에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알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 받는 신앙 양심된 베드로의 신앙 양심에게 알려 주실 때 고 알려 주시는 고대로 베드로가 고백하니까 그 고백이 바로 영감 고백이 된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가 알게 하시는 것을 베드로가 입으로 말하니까 진리가 된 것입니다. 절대 불변의 진리가 된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의 신앙이 바로 반석이 될 수 있고 그 위에 교회 세울 수 있는 그런 신앙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라는 것은 옳은 신앙의 첫 걸음은 잘났든지 못났든지 많이 배웠든지 무식하든지, 오래 믿었든지 이제 믿었든지 옳은 신앙의 첫 걸음은 뭐냐? 그 누구라도,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평신도도 그 누구라도 옳은 신앙의 첫 걸음은 반드시, 같이 해 보실까요? 말씀! 말씀! 옳은 신앙의 첫 걸음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전도되어 믿고 나서 앞으로 잘 믿을 것인가, 그 사람의 출발이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서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씁니다. 그 사람은 대개 보면 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전도 많이 하려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연보 많이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첫째는 성경을 많이 읽어서 말씀을 바로 가져야 합니다. 요게 신앙의 첫 걸음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자기 속에 들어 있고 요 말씀이 자기 속에 온갖 것을 움직이는데 가장 마음 속에 밝은 부분인 자기 양심을 옳은 말씀이 붙들어서 양심을 지배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양심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이니 그게 우리들이 고백할 고백이고 걸어갈 길입니다. 베드로의 신앙은 바로 요 신앙을, 어려운 말로 영감 신앙이라 그래 말하는데, 요 영감 신앙이 되려면 여론 신앙을 버려야 되고 주관 신앙을 버려야 되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됩니다. 그래야 말씀을 바로 들을 수 있고,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 말씀대로 살면 말씀이 그 양심을 지배할 수 있고 그러면 그 속에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그 걸음을 걸어갈 수 있다 하는 겁니다.
주의할 것은 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는데 왜 실패했느냐?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은 실패 했는데 왜 실패했느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세상에 올 때 믿는 자를 보겠느냐,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 따라다녔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베드로까지 도망쳐 버렸습니다. 할 수 없는 여반들 몇 사람 좀 떨어져서 울면서 애만 태우고 있었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잘 믿는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도망쳐 버렸지, 여론 신앙으로 사람들 말 듣고 따라가는 사람은 함께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데 손들고 동참했습니다. 베드로는 주관 신앙이었기 때문에 예수님 가는 길을 막았고 예수님 배반하고 도망쳤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교회를 다니고 성경 들고 다니고 예수 이름을 말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이 순간에도 우리나라에 적어도 수백만 명이 전국에서 예배를 드릴 것이고 온 세계에서 수천만 명이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그 수천만 명 중에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그 신앙은 몇 사람이나 될까? 주님 말씀은 내가 믿는 자를 보겠느냐? 안 보인다 그 말입니다. 그 수천만 명 중에서, 수억만 명 중에서 참 믿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고 참 믿는 사람 속에 속해 들어가려면 우리 신앙 걸음이 첫째 사람의 말을 듣고 믿는 것을 배격해야 됩니다. 사람이 뭐라 그러든지 위대한 목사가 위대한 신학자가 설교가가 뭐라 그러든지 사람의 말을 듣고 영향 받으면 신앙 걸음은 걸어갈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말은 뭘로 삼습니까? 우리가 존경하는 백 목사님의 말씀은 고대로 따라가야 됩니까? 아닙니다. 백 목사님 말씀은 뭘로 삼아야 됩니까? 옳은 진리의 말씀은 그대로 삼고, 백 목사님 말씀도 내 신앙 걸음에 교훈으로 삼되 성경 진리는 아닙니다. 그것도 따져 봐야 됩니다. 옳으냐 아니냐, 내 양심에, 내가 깨달은 그 양심에 옳으면 따라가는 것이고 백 목사님 교훈도 내 양심에 틀리면 못 따라가는 겁니다, 성경에 틀리면. 그런데 문제는 내 양심이 틀릴 수 있으니까 그게 문제지요. 내 양심이 성경대로 된 바른 양심이면 그 양심대로 가는 겁니다. 이게 신앙의 길입니다. 그래서 신앙 걸음은 하나님하고 나하고 둘이 가는 길이지 그 누구도 그 사이에 끼일 수 없습니다.
이걸 가리켜서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고, 신랑과 신부 사이에 어떤 사람이든지 끼이면 그 끼이는 그놈은 나쁜 놈입니다. 여자면 나쁜 여자이고. 간부 아니면 음녀입니다, 그거는. 신랑과 신부는 붙어야 합니다. 그래서 천하에 사람이 붙어 좋을 것 없지만 신랑과 신부만큼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떨어지면 그만큼 손해입니다. 붙어야 합니다. 돈이 없어도 붙어야 되고 힘들어도 붙어 살아야 되고 함께 사는 게 가장 좋은 겁니다. 주님과 우리 성도는 부부 사이입니다. 하나입니다. 요 사이에 아무것도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 사이를 붙여 주는 역할을 가리켜서 뭐라 그러지요? 신랑 신부를 붙여 주는 그 역할을 가리켜서 중매쟁이라 그러고, 세례요한의 가장 위대한 신앙은 요겁니다. 그는 흥해야 되겠고 나는 쇠해야 되겠다, 신랑이 왔으니까 나는 물러간다, 너희들은 신랑에게 붙어라, 세례요한의 많은 신앙 중에 가장 위대한 신앙은 모든 자기 제자들을 전부 끌어 붙인 겁니다. 중매쟁이 역할을 바로 한 겁니다. 이게 원래 세례요한의 자기 임무였고 그 임무를 세례 요한은 완벽하게 한 겁니다. 그게 다른 것 때문에 죽은 것보다 가장 위대한 신앙이 세례요한의 신앙의 바로 그 면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말은 그 누구의 말이라도 참고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모든 생활과 행동은 참고만 할 겁니다. 그걸 보고 따라가거나 영향 받고 피동될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중심되는 내 현실 환경은 하나님이 조성해 주신 내 환경이고 그 속에서 내가 나를 만드는, 마치 쇠를 연단하는 풀무불 같은 환경이지 거기 내가 피동될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말에 영향 받고 피동되고 환경에 영향 받고 피동되면 그게 바로 여론 신앙이고 그 여론 신앙의 결과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일에 동참을 하고 말았지요.
여론 신앙의 반대는 주관 신앙입니다. 주관 신앙은 객관을 안 보는 겁니다. 주변 사람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고 말씀도 모르고 오로지 자기 생각입니다. 내가 좋으면 하는 것이고 내가 싫으면 안 하는 것이고 내가 맞으면 맞는 것이고 내가 틀리면 틀리는 것이고, 그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 신앙이 주관 신앙이고 베드로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얼마나 간곡하게 간청을 했으니까, 눈물겨운 사랑이니까, 제자의 스승 사랑의 얼마나 간절하고 절절한 그런 사랑에 상을 줘도 모자랄 판인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주님 말씀이 틀리지 않았으니까, 네 신앙 너의 사랑은 주관적인 사랑이지, 네 신앙은 네 주관이지 그 주관은 마지막에 주님 배반하고 도망쳐 버립니다. 믿는 사람 중에 수많은 사람들은 사람 말 듣고 사람보고 믿는 사람이 제일 많고 또 다대수는 자기 생각대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자기 주관 그 신앙은 실패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을까? 이 둘을 버리고, 신앙은 말씀으로 믿어야 됩니다. 말씀. 하나님의 말씀, 말씀을 가지고 옳은 것을 찾아가는 겁니다. 말씀에 옳으면 사람이 뭐라 그러든지 가는 겁니다. 말씀에 옳으면 내 생각에 어떻든지 자기를 부인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끝까지 따라갈 수 있지 자기가 살아 있고 십자가를 싫어하면 주님은 따라갈 수가 없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오늘 오전에 신앙 실패의 두 길, 성공의 조건 기억하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 드리겠습니다.
나 자신의 신앙을 한번 점검해 보십시다. 내 신앙은 여론이냐, 주관이냐, 아니면 말씀에 입각한 하나님이 알려 주시는 바른 길이냐 생각해 보고, 우리는 사람의 말 듣고 사람보고 믿는 이 신앙 버리고,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기 고집대로 믿는 이것도 버리고, 말씀에 입각해서 옳고 바른 신앙 걸음을 걸어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