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5-주후(계17:3-7)
세상에 대한 연구2013-08-27조회 539추천 44
----------------------------------------------------------------------------------------------------------------------------
(설교 원문)
본문: 요한계시록 17:3-7
제목: 세상에 대한 연구
성령에 붙들려서 성령으로 사도요한을 광야로 데려갔습니다. 광야에 가서 보니까 사도요한의 눈이 밝아졌는데 이 눈은 심령의 눈이고 영안입니다. 육신의 눈이 아니고 영안입니다. 근데 이 영안인데 영안으로 보니까 사도요한의 눈에 비춰진 모습이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여자가 보였고 그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짐승의 색깔이 붉었고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했고, 참람되다는 말이 무슨 뜻이라 했습니까? 참람되다 그말은 분수에 넘치는 말을 한다 그뜻입니다. 제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게 참람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 이름은 뭘 말합니까? 이름은? 제가 이런 거는 수백 번도 더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질문을 드리면 머릿속에 바로 탁탁 떠올라야 됩니다 우리 학생들도. 이름은 무엇을 말합니까? 역사 또는 이력을 말하지요. 그러면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 참람된 역사들, 참람된 활동들, 참람된 그런 지나간 이력들이 가득하다 그 짐승의 몸에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고, 머리가 일곱 개. 머리는 지식이지요. 사상입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인간 사상이 전부 다 나왔다 그 말입니다. 뿔은 힘입니다. 열 뿔이 있으며 이게 짐승의 모습이었고 붉은 색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한 것, 일곱 머리 열 뿔 네 가지가 짐승의 모습이었고 그다음 이 짐승을 타고 앉은 음녀가 있는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자주 빛은 아주 무게 있는 붉은 색깔 또 붉은 빛은 화려한 색깔. 빨간색은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지 못하나 빨간색은 사람의 이목을 확 끄는, 빨간색도 그렇고 노란색도 그렇고 파란색도 그렇고 이런걸 무슨 색이라 그럽니까? 빨갛고 노랗고 파란 걸 무슨 색이라 그럽니까? 원색이라 그러지요 삼원색이라 그래 말하지요. 원색은 그만큼 진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고 옵니다. 그게 붉은 그래서 자주 빛과 붉은 빛 이 말은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원색은 유혹의 성질 그 중에 붉은색은 더합니다. 술집 여자들 입술을 빨갛게 칠하지요? 붉은색 그게 사람을 미혹하는 미혹의 요소를 가진 것이 붉은색입니다.
여자가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옷을 입었으니까 자기를 나타내는 겁니다. 화려하게 무게도 있으면서 화려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말하자면 왕들이 입는 그런 아주 값비싼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는 금잔을 들고 있고. 근데 그 금잔에는 온갖 모든 가증한 것과 가증한 물건과 가증스럽다 그말은 이게 좀 세상말로 말하면 밉상스럽다 그 말인데, 하나님의 그 역사에 어긋나는 하나님의 주권에 어긋나는 이런 행동, 이런 일들 그런 것들을 가증스럽다 그리 말한다 그럽니다.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금잔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됐는데 이름이란 것은 여기 이름은 뭘 말하겠습니까? 금잔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그 이마에, 이마는 표시지요? 가장 잘 보이는, 가장 사람들 눈에 확 먼저 들어오는 이마 얼굴 위에 이마. 이마에 부쳐라. 이마에 표를 받는다 그 이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됐답니다. 여기 이름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000? 여기 이름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앞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다, 그 이름은 역사, 이력, 활동이라 그랬습니다. 여기 그다음에 5절에 그 이마에 이름이 요 이름은 무슨 의미겠습니까?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그것을 알리는, 소개하는 그거겠지요? 그 금잔이 무엇이냐 그걸 알리는 소개하는 이름입니다.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첫째 비밀이라. 음녀가 손에 들고 있는 금잔은 비밀이다.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 그 말입니다, 비밀이다. 두 번째는 큰 바벨론. 바벨론은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바벨론은 요것도 기억하십시다. 바벨론은 세상인데 멸망할 세상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바벨론은 멸망받을 세상. 화려하고 찬란하고 아주 왕성한 그런 도시인데 멸망할 나라. 바벨론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땅의 음녀를 낳았고 온갖 가증한 것들을 낳은 어미가 바로 무엇이라고요? 그게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있는 땅의 음녀, 음녀가 뭐라 그랬습니까? 세상 문화, 온갖 가증한 것들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나는 온갖 그런 역사들 그런 일들 그런 행위들 이런 것들을 낳은 그 어미가 무엇이라고요? 이게 어디서 나왔다고요? 금잔입니다 금잔. 그러면 이 금잔은 뭐냐? 금잔은 음행의 포도주 잔입니다. 이게 다른 말로 말하면 이 세상에 가득 찬 인간 지식입니다. 6천년 역사 쌓여 내려온 인간 지식. 이런 것들이 광야에 가있는 사도요한의 눈에 보였습니다. 보였습니다.
보였는데 이 보여진 크게 말하면 음녀가 타고 앉은 짐승 그다음에 짐승을 타고 앉은 음녀 크게 이 둘이 보였고 그다음 음녀의 손에 잡혀있는 음녀가 손에 들고 있는 금잔이 보였고. 그러면 한번 구별해보십시다. 사도요한이 광야에 가서 밝은 심령으로 눈에 보여지는 것을 보니까 음녀가 타고 앉은 짐승이 보였습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 짐승을 타고 앉은 음녀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음녀의 손에 들고 있는 금잔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보니까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그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면 존재하고 그 모습하고 다 합해서 크게 말하면 네 가지가 되겠지요?
사도요한이 본 것은 첫째는 음녀가 타고 앉은 짐승 두 번째는 짐승을 타고 앉은 음녀 세 번째는 음녀의 손에 들고 있는 금잔 네 번째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음녀의 취한 모습. 요 네가지가 광야에 있는 사도요한의 눈에 보였습니다. 그러면 광야에 가지 않았으면 안 보였을 건데 광야에 가니까 보여졌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 믿는 사람들은 평소 자기 생활에서 광야생활을 좀 자주 해야 되겠다. 광야 생활을 자주 해야 되겠다. 광야 생활은 모든 것을 다 떠나가는 겁니다. 다 떠나고 다 포기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사모하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에게만 다 맡기는 이걸 좀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그래서 광야 생활은 아무리 분주하고 바쁜 속에서도 한번씩 자기를 돌아보는, 이 광야 생활을 다른 말로 무슨 생활이라 그랬습니까? 골방생활이죠. 광야는 넓은 곳인데 골방은 좁은 곳이지요. 골방에 들어간다 그러면 골방에는 좁은데 은밀한 곳을 말하고 아무도 업는 곳을 말하지요. 골방 속으로 찾아 들어갑니다.
그러면 광야 생활을 하고 골방 생활 하는데 이 광야 생활 골방 생활하려면 사람이 어디로 가야 됩니까? 광야 생활하고 골방 생활은 다른 의미가 있지만은 같은 의미로 또 보고. 그러면 광야 생활을 하자 골방 생활을 하자 그러면 우리가 광야 생활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됩니까? 나주 평야로 가야 됩니까? 김제 평야로 가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저 몽골 같은 그런 지평선이 다 보이고 하늘에 별이 다이아몬드 쏟아지듯이. 한번 그 말 듣고 나서부터는 그 나라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미국에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드는데 안 가봐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몽골 그 나라 가면 들판이 워낙 평야가 넓어서 보면 그만 밤에 누워있으면 하늘에 별이 그냥 다이아몬드 쏟아지듯이, 다이아몬듭니까? 쏟아지듯이 그렇게 막 쏟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보인답니다. 그 말 듣고 보니까 거기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리 가야 됩니까?
광야 생활하려면 어디 가야 됩니까? 아니면 골방 생활하려면 다락방? 골방? 그리 가야 됩니까? 어디로 가야 됩니까? 골방 생활하려면? 이거는 어떻게 하는 겁니까? 골방 생활 광야 생활을 복잡한 도심에 사는 우리가 사는 생활하는 광야 골방 생활하는 그 방편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습니까? 어디로 들어가야 됩니까? 제일 처음 들어갈까요? 생각 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생각. 생각을 타고.
그런데 그 생각이 무엇을 타야 됩니까? 생각을 타고 들어가는 통로가 무엇입니까? 길을 잘못 잡으면 생각의 길을 잘못 잡으면 망상, 공상, 허상 전혀 엉뚱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이 생각 속으로 들어갈 때 생각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뭘로 잡아야 됩니까? 말씀으로 잡고 말씀의 길을 타고 자기 생각속으로 들어가야 됩니다. 그리고 그 생각 속에서 말씀을 따져보는 그런 이성 그 속으로 들어가고 그리고 양심 속으로 들어가 보고
그래 가지고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생각해 보고 옆에 사람을 생각해보고 사람 중에도 좋은 사람 친한 사람 실력 있는 사람 잘난 사람 존경한 사람 위대한 사람 쭉 생각해보고 그 사람의 현재와 옛날 사람 같으면 그 사람의 일생을 전기 읽어봤으니까 생각해 보고 현재 사람 같으면 앞날을 모르지만은 보나 안 보나 그 사람의 사람이 사람인지라 가는 길이 뻔하지 별 거 있겠습니까? 아무리 뛰어봐야 벼룩이라는 것처럼 뛰어봐야 날아봐야 세상에서 뛸 것이고 날 것이고 인간 지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인간 활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까 사람도 생각을 하고 이 세상의 사람들이 저는 6천년 자주 말했는데 알고 보면 4천년이지요? 노아 홍수 때 한번 싹 쓸었으니까. 전체로 6천년이고. 그 6천년 4천년 역사에 인류들이 전부다 머리 싸 짜매고 건설해 놓은 최첨단의 문화도 한번 생각해 보고 그 문화들의 온갖 편리한 것 매력성 화려한 거 좋은 거 다 한번 생각해보고. 재미도 생각해보고 낙도 생각해 보고 생각해 보고 그리고 그 다음에 결말도 생각해보고.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천국도 하나님도 주님 대속도 이리 다 생각을 해보고 생각 속으로 들어가면 그 속으로 들어가면 인간이 보여지고 세상이 보여지고 결과가 보여지고 우리 갈 길이 보여지는 그러면 심령이 좀 밝아지는 이런 생활이 바로 골방 생활이고 광야 생활입니다. 사도요한은 성령에 붙들려서 광야로 간 겁니다.
그러면 광야로 갔다 말은 요게 계시니까 빈 들판에 갔다 그리 볼수 있겠지만 요 빈 들판이 계시하는 내용은 이 사도요한이 깊은 명상의 세계 기도의 세계 속에 들어갔다 그리도 볼 수 있겠지요. 그리 가보니까 눈에 환하게 그려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여지는 것이 사도요한의 눈에 보여진 것이 뭐가 보여졌느냐? 오전에 말씀 드렸지요? 무엇이 보여졌다고요? 사도요한이 성령에 붙들려서 광야로 들어갔는데 광야로 들어갔다 그 말은 깊고 깊은 신령한 기도의 명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 볼 수 있고 그리 들어가니까 사도요한의 머릿속에 뭐가 촥 보여지고 말하자면 이 뭐 그림 그려 환상 보이듯이 영상 보이듯이 그런 게 사도요한의 머릿속에 보여졌습니다.
그 보여진 것이 음녀가 타고 앉은 짐승이 보였고 짐승을 타고 앉은 음녀가 보였고 금잔이 보였고 취한 음녀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 보인 모습이 바로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그게 바로 말세에 세상의 모습입니다. 말세에 되어질 그 세상의 모습 그게 사도요한의 머릿속에 눈에 환하게 보여졌다 그 말입니다. 마치 백 목사님께서 해방 전에 저 깊은 기도산에 기도속 에 들어가니까 뭔가 신문처럼 이래 신문지가 보이듯이 이래 딱 보이더랍니다. 신문지 보이듯이 환상이 딱 보여지는데 거기 보여지니까 완벽하게 또렷하게 보이진 않는데 흐릿하게 보여지는데 거기 보니까 북한 쪽에는 이북 쪽에는 암흑이 이리 있고 이남 쪽에는 광명이 있고 그래서 조만간에 해방이 되는데 남북이 갈라지겠구나 이걸 목사님 보셨고 그리고 난 다음에 미국에서 저 미국땅에서 큰 구렁이가 한 마리 오더니 남한을 집어삼키는 걸 보고는 미국 나라에서 신신학이 들어와서 우리 한국 교회를 다 삼키겠구나 그런 걸 목사님께서 계시로 보고 기록을 해놨다 그러지요. 말하자면 그것처럼 사도요한은 더 또렷하게 말세의 모습이 보여진 겁니다. 이 세상의 모습이 보였다 그 말이지요. 참된 성도들이 사는 세계하고 우리들의 사는 세계가 많이 다르지요. 이런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광야 생활을 자주 할수록 그 사람은 잘못하면 불건전한 신비주의자가 되어서 몹쓸 사람이 되고 말씀에 붙들려서 광야 생활을 자주 하면 심령이 밝아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많이 만나고 정신없이 바쁜 생활을 하다보면 기도에 소월하기 쉽고 광야 생활 골방 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지고 그리되면 신령한 눈이 어두워져버립니다. 근데 활동성이 빈약하고 모든 게 참 그래도 기도의 깊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면, 기도를 많이 하다 보면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심령의 눈이 밝아지는 그런 걸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뭐 특별한 그런 건 아닐지라도 광야 생활 자주해서 우리 심령의 눈을 좀 밝히는 그런 게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본 모습이 말하자면은 사도요한이 본 것을 기록했는데 짐승, 음녀, 금잔 이런 것들은 한말로 말하면 이 세상의 정체를 숨겨서 기록한 겁니다. 계시로 묵시로 기록한 겁니다. 세상이 음녀 같은 세상이다, 이 세상은 짐승 같은 세상이다, 어떤 짐승입니까? 호랑입니까? 늑댑니까? 곰입니까? 사잡니까?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은 세상을 표현하기를 곰발바닥 같다, 표범 같다 그래놨습니다. 이 세상을.
세상이란 것은 여기 보니까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짐승의 모습은 기록 안됐는데 어쨌든 짐승이니까 사람은 아니고 생긴 모양 설명을 보니까 괴물처럼 생겼습니다. 붉은 빛이다, 몸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다, 머리가 일곱 개다, 뿔이 열이다 요런 짐승. 세상이란 놈은 요래 생겨먹은 놈이구나. 세상은 악령이 주인이 되어서 이 세상을 이용해서 성도들 향해서 잡아먹으려고 노기를 띄고 있는 세상이구나. 이 세상은 하나님을 넘어서려는 그런 참람된 그런 말들과 그런 인식과 역사들이 6천년 역사에 가득찬 것이 세상이구나. 이 세상에는 일곱 머리가 있구나. 열 뿔이 있구나. 요것들이 성도를 어쨌든 삼키려고 하겠구나 이 세상. 또 이 세상은 음녀처럼 생겼구나. 문화라 그러지만은 세상 문화가 바로 다시 말하면 세상입니다. 음녀처럼 생겨서 이 음녀가 붉은 옷을 입고 자주 빛 붉은 옷을 입었으니까 이 세상은 참 찬란하겠구나, 화려하겠구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겠구나.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으니까 온갖 값비싼 치장을 전부 다 하고 있겠구나. 또 손에 금잔을 들고 있다. 그 금잔에 오만게 다 들어있다. 요게 세상의 모습이다 그 말이지요.
그러면 여기서 좀 하나 좀 파고 들어가 보십시다. 세상은 어떤 것이냐 파고 들어가 보십시다 다른 각도로 해서. 자 그러면 세상인데 이 세상을 오전에 말씀드리기를 세상은 물질계 우주라 그랬습니다. 이 세상을 지은 시기가 언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는데, 창조하셨는데 언제쯤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가 언제쯤입니까? 대답 소리가 안 나오면.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신 시기가 언제쯤이냐 그 말이죠. 지금부터 대략 약 6천년 전쯤입니다. 6천년 전쯤에 하나님이 세상을 지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이걸 도무지 안 믿고 이걸 안 믿으니까 온갖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그거 해결해보려고 온갖 역사를 다 아는데 죽는 날까지 세상 끝 날까지 해도 그들은 회개를 못하지요. 답이 나와 있는데 답을 정답을 두고 오답을 찾아 헤매니까 오답 속에 정답을 찾으면 정답이 나옵니까? 안 나오지요. 죽는 날까지 파고가도 안 나오는 겁니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고.
6천년 전쯤에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영계는 언제쯤 지었습니까? 영계는 하늘나라 천국이지요. 영계는 언제쯤 지었습니까? 천국은 언제쯤 지었습니까? 세상은 물질계 우주는 약 6천년 전 쯤에 지었습니다. 천국도 하나님이 지었는데 천국은 언제쯤 생겼을까요? 이것도 설교시간에 제가 종종 말씀드린 건데. 천국이 생긴 시기는 지금부터 약 6천년 전쯤입니다 천국도. 그래서 마태복음 25장에 보니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그랬으니까 창세라 말은 세상을 지을 때 그때부터 너희를 위해서 예비된 나라. 그러면 천국이 6천년전쯤 천국은 영원 전에 생긴 것이 아닌가? 영원전에는 하나님이 자존하셨고 그 자존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예정은 영원전에 있었고 그 예정속에 천국은 영원전에 있었지만은 하나님이 영계를 지으신 것도 물질계를 지으신 것도 영원전에 지으셨고 그러면 짐작해보건데 천국은 물질계를 지을때 같이 지었다 그리 말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그리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계와 물질계를 동시에 같이 정확하게 그건 알 수 없지만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해서 예비된 나라라 그랬으니까 같이 지었다 그래 볼 수 있겠고 그러면 같이 지은 그 천국과 물질계 우주에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천국은 그 가치가 말하자면은 하나로 묶어야 되겠네. 천국은 무한한 곳이고 가치가 높은 곳 그래서 천국이다 하늘나라다 그리 말할 때 이거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평가적인 개념이고 평가라 말은 가치평가라 그 말이지요. 가치 평가적인 개념으로 천국을 말한다. 그래서 천국은 영원하고 무한한 가장 좋은 나라 그 나라가 천국이고 반대로 이 물질계 세상은 우주라는 세상은 천국보다는 유한하고 낮은 곳이 이 물질계 세상이다. 그래서 세상에 그 범위를 말하면 이 세상이라는 물질계 우주는 우리 사람들이 영계와 비교해서 유한하다 그러지 영계를 빼놓고 우주만 말한다면 무한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만큼 우주는 넓습니다. 굉장히 넓습니다. 그래서 영계는 무한하고 영원하고 물질계 우주 세상은 유한하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일시적인 겁니다. 가치도 그렇습니다.
마치 예를 들자면 이게 꼭 같지는 않으나 사람의 몸, 몸은 이게 물질이고 물질이지만은 좀 저급의 물질이라서 사람의 인체란 것은 상당히 신비스럽고 고급적인 고등적인 그런 물질 조직으로 되어있지만은 이 사람의 몸보다는 마음속에 들어가면 이 마음은 벌써 형체가 없는 물질로서 신비한 물질이 되어지니까 몸과 마음은 다른 차원의 존재로 가치 차이가 나게 되는 겁니다. 몸과 마음은. 거기다가 또 영의 세계를 말하면 영은 벌써 존재 자체가 물질이 아니고 영물이기 때문에 이거는 사람의 언어로 물질의 입에서 나오는 사람의 말로 영은 설명할 수가 없는 존재가 영이다 그리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처럼 또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안 보이는 것이 대개는 고급이고 더 가치가 있고 형체를 가진 것 보다는 형체 없는 것이 더 고급이고 가치가 있는 더 고차원의 존재로 그렇게 취급이 되는 것처럼, 이 세상은 물질계 세상이고 이 세상도 넓고 크고 광대하고 화려하고 그러나 이 세상과 천국을 비교하면 천국은 이 세상과 비교 못 할 고차원의 나라가 천국이다. 그래서 첫째 세상을 지금 연구합니다.
첫째 세상은 언제 생겼느냐? 약 6천년 전에 하나님이 만들어서 세상 물질계가 생겼습니다. 그때 영계도 같이 지으셨다 참고로 기억을 하고 두 번째 이 가치를 생각해본다면 물질계 우주라는 이 세상도 굉장히 넓고 가치있고 큰 것인데 그러나 영계와 비교해보면 이거는 아주 낮은 단계에 세상이다. 그리고 세 번째 같은거지만 시기를 말한다면 그 기간은, 존재 기간은 천국이라는 그 나라는 존재 기간이 시작되기는 지금부터 6천년 전쯤에 시작됐지만은 그 존재기간은 영원토록 계속이 되는 나라가 천국이고 완전의 나라고 물질계는 6천년 전쯤에 시작되서 끝날이 있어서 곧 주님 재림하시면 이 물질계 우주 세상은 끝이 난다는 겁니다. 기간이 다르지요? 천국은 영원하고 영원무궁세계고 물질계 세상은 이거는 일시적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하룻밤 나그네라 그러고 사람들이 말하기는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 제가 지금 뭘 설명합니까?
제가 지금 뭘 설명하고 있지요? 세상을 설명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 보면은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있느뇨 사람들이 잔 후로부터 이 세상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상이 언제까지든지 이대로 계속 굴러가고 이대로 존재하리라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물질계 세상은 유한한 세상이고 일시적인 세상으로 때가 되면 다 끝이 나고 없어지는 겁니다. 없어진다는 말이 존재 자체가 없어진다기보다 완전히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되니까 지금 하늘 땅 지금 세상은 없어지는 거죠. 끝나는 세상이 이 세상. 그래서 가치적으로 말하면 이 물질계도 대단히 가치 있는 것이지만은 영계와 비교하면 가치가 낮은 것이고 기간으로 말하면 영계 천국은 영원 무궁인데 이 세상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시적인 세상이다 그리 말할 수 있고
그다음 네 번째, 세상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목적. 다시 말하면 세상의 용도가 있습니다. 용도. 이 세상을 왜 만드셨느냐? 세상을 만드는데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워낙 넓어서. 그런데 이 광활하고 광대한 물질계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이 무엇이냐? 만드신 목적은 이 세상은 유한하고 일시적인 것이라 그랬지요? 유한하고 일시적인 세상을 만드신 목적은 무한하고 완전하고 영원한 하늘나라 천국 건설을 위해서 천국을 준비하고 천국을 건설하고 천국을 천국으로 더욱 천국 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 장소로 그런 모든 환경으로 그런 도구들로 만들어두신 것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여기는 물질계 세상에 여기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면 세상이란 것은 지금부터 약 6천년 전쯤에 생겨났다 하나님이 지으셨다. 이 세상은 굉장히 귀하고 가치 있고 보배로운 그런 좋은 넓고 큰 세상이지만은 영계에 비해서는 가치가 형편없이 낮은 세상이다. 또 이 세상은 벌써 6천년 동안 내려왔으니까 오래 내려왔고 사람들이 이 세상에 언제까지든지 계속 되리라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대개 보면 전쟁이 없이 계속 가면 그 나라가 나중에는 썩어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그리 되지요.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환난 없이 오랜 세월 교회가 계속 되면 교회가 속화되고 타락이 됩니다. 그래서 또 개혁이 일어나고 그게 세상 모든 역삽니다 회사든지 그래서 부자가 3대 내려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경주 최 부자는 몇 대 갔답디까? 몇 백 년요? 4백년쯤 내려왔다 그러지요. 경주 최부자의 그 사람이 낸 돈이 대구 영남대학교 뭐 그런 말이 있던데 모르겠습니다만은. 4백년 내려왔으니까 굉장하다 그 말이지요. 어느 회사를 일으켜서 그 회사가 백년 동안 가업으로 내려왔다 그러면 세계 역사에 이름이 날만큼 유명한 그런 회사가 되는 겁니다. 그게 어느 정도 가면 다 무너지고 변해지고 또 망하고 새로 일어나고 그리 되지요. 다윗이 세운 그 하나님의 군대 같은 그 이스라엘 나라가 솔로몬 시대에 제법 쪼그라들고 그 손자 시대 가서 많이 쪼그라들고 그래 가다 결국 다 망하고 물질계니까. 다 그래 되어지는 거니다.
백 목사님께서 세운 서부교회라는 그 교회가 세계 참 그런 단체가 없다 할 만큼 그런 표현이 그렇습니다. 이만한 자생력을 가진 단체는 역사에도 드물고 세계에도 드뭅니다. 그래 말한 분이 어지간히 공부도 많이 한 분이고 세계를 꾀뚤어 보는 눈을 가진 분인데 그분이 그리 말합니다. 이만한 자생력 가진 단체는 역사에도 별로 없고 세계에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가지고 그걸 가지고 한번 뭔가 해보려 그랬는데 그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니까 안됐지요. 그런데 그런 튼튼한 그런 교회도 그분 가시고 불과 몇 십년 지나고 나니까 사람이 바뀌어버리니까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되고 있지요. 갈수록 점점 더해질것이고. 뭐든지 그래서 교회는 변질이 되니까 교훈이 남아야 된다 그래가지고 목회연구소에 주력하는 그런 게 되어졌지요. 어쨌든 세상은 다 그런 겁니다. 그래서 세상은 일시적인 것이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실 때는 그 지으신 목적이 뭐냐 용도가 뭐냐? 이 세상을 만드신 용도는 천국을 위해서 만드신 겁니다. 세상을 위해서 세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믿는 사람이 살아가다보면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예수 믿는 사람이 받은 복은 이 세상 복이 복으로 오해하고 착각을 하는데 오해고 오판입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그거는 다 일시적인 겁니다. 영원한 천국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고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세상을 천국을 위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세상에 빠져 세상을 마련하면 그 사람은 주신 걸 가지고 전혀 엉뚱하게 지금 오용을 하고 남용을 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은 천국을 위해서 천국을 배우고 연습하고 준비하고 건설하고 마련하라고 주신 것이 이 세상입니다. 용돕니다. 세상이라 말은 하늘도 땅도 바다도 태양도 또 달도 별도 사계절도 모든 비바람도 또 더운 것도 추운 것도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도 가정도 전부다 어떤 것이든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은 전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영원한 천국을 위해서 그 천국을 마련하고 준비하고 건설하고 연습하고 배우라고 주신 일시적인 하나의 그냥 자본이고 도구고 환경이고 그런 기간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다섯 번째 세상의 가치는 어딨느냐? 세상의 가치는 천국을 건설하는 자본으로 쓸 때 세상은 가치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치는 천국 자본이다 거기 가치가 있는 것이지 그것을 떠나면 세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억억만금을 걸어놔도 벌어놔도 억만금 벌어놓은 그 억만금이 천국 자본에 씨와 양식으로 쓰여지면 가치 있고 억만금을 벌어놔도 천국자본으로 쓰이지 않으면 그 억만금은 자기를 멸망시키는 음녀나 그런 것은 될지언정 추어도 자기에게 유익은 없는 가치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머리 싸매고 초중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해서 머릿속에 그 사람 머릿속이 쓰레기장이 될 만큼 도서관이 될 만큼 그렇게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어서 모르는 것이 없다 할 만큼 많이 알아도 그 머릿속에 든 수많은 지식이 천국 건설에 무엇으로요? 자본으로 쓰여지면 귀하고 가치 있는 지식이 되고 보배가 되고, 그것이 아니면 천국 건설에 자본으로 쓰지 않는 지식은 자기를 멸망시키는 음행의 포도주 여인의 손에 든 금잔이 되고 마는 겁니다 결국은. 그리되고 마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돈이든지 지식이든지 건강이든지 가정은 만들어야지요. 결혼해야지요?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는데 그 만든 가정이 가정 만들기 전보다 천국 건설에 더 좋은 넓고 구비한 그런 자본이 되어졌으면 가정이란 세상은 보배가 됐고 가정을 만들었는데 그 가정을 만들므로 이전보다 더 못한 그런 신앙적으로 후퇴하는 그런 가정이 되어졌으면 그 가정은 자기에게 아무 가치없는 그런 가정이 되고 마는 겁니다. 어떤 것이든 예외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가치는 천국의 자본으로 활용하는 거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저 우리 집회 장소 있는 거창 쪽에 그중에서 백 목사님 계시던 주산 그 위로 올라가면 산이 있는데 거창 산들은 거의 다 돌산이라 그랬습니다. 돌산. 옛날에는 돌산은 나무를 심을 수 있습니까? 개간 할 수 있습니까? 돌산이니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산이 돌산인데 시대가 변해서 돌 대리석을 아주 갖다 붙여서 비싸게 만든 돌 시대가 되니까 거창 그 산들이 전부 돌산이니까 거창 지방을 먹여살릴 만큼 그런 돈 덩어리가 전부 되었습니다. 그 산들이. 그 돌이 그냥 산속에 묻혀서 식물을 심는데 식물 자라는데 뿌리 내리지 못하게 방해하는 그런 것이 되면은 돌은 아무 가치가 없지요. 그런데 그 돌이 집을 짓는 건축자재로 쓰이니까 돌이 그만큼 가치 있게 비싸게 되는 겁니다. 사람의 대변도 그 대변이란 것도 약으로 쓰면 귀한 겁니다. 산삼 보약이란 것도 잘못 쓰면 아무 가치가 없는 겁니다. 뭐든지 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전부 다는 어떤 것이든 그 전부는 다 용도에 맞게 바로 써야 가치가 있는 것이지 용도에 틀려버리면 그것이 가치는 커녕 사람을 해롭게 만드는 그런 것이 되고 맙니다. 부엌칼은 음식 만드는데 쓰는 음식 썰고 하는 거기 써야 되지 그 부엌칼을 가지고 강도짓 하는데 쓰면 그 칼이 들어서 사람을 다 망치는 게 되지 않습니까? 배운 그 지식 가지고 많이 배운 그 지식 아는 지식 가지고 어떻게 하면 은행을 털어먹을까? 은행에 있는 정보망을 뚫고 들어가서 돈을 빼내올까 그래 써먹으면 그 많이 배운 지식이 그 인간을 다 망쳐버리게 됩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그 짓은 안하지요.
그러니까 뭐든지 물질이든 지식이든 권력이든 권세든 가정이든 공부든 무엇이든지 전부다 용도에 맞게 바로 쓰면 무엇이 있고요? 용도에 맞게 바로 쓰면 뭐가 있고요? 가치가 있고 용도에 틀어지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고 오히려 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도를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근데 소문이 만일 맛을 잃으면 어디 쓰겠느냐?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밖에 버려서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소금이 되지 못하면 세상에 소금이 되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못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처럼 이 세상이란 모든 세상은 천국의 건설의 준비의 자본으로 쓸때 모든 세상은 가치가 있는 것이지 천국자본 아닌 세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상대할 때 가질 때 쓸 때 주의할 것은 세상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없어선 안될 선물 보배 이런 자본이 있고 또 하나는 세상은 우리 믿는 사람을 미혹하는 죄악성을 가졌다, 음녀성. 또 두 번째는요? 음행의 포도주 세 번째는요? 일곱머리 네 번째는요? 열 뿔. 이런 죄악성 가지고 성도를 미혹해서 넘어뜨리는 요런 속성을 가지고 있는게 세상이다. 이 세상이 저절로 그리 됐습니까? 하나님이 그리 만드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부터 고래 만드신 겁니다. 이세상은 우리 성도에게 굉장히 필요한 천국의 가치 있는 자본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드셨고 동시에 그 세상의 한면에는 그 세상에다가 아주 죄악성을 심어놔서 성도를 미혹하게 또 음행의 포도주로, 일곱머리 열뿔로 그래가지고 성도를 미혹하도록 유혹하도록 그래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세상이다. 그래서 이걸 알고 주의를 해야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이 세상의 주인이 누구냐? 세상의 주인은 누굽니까? 이 세상의 주인은 우리 구속 받은 성도들입니다. 우리가 바로 세상의 주인입니다. 에덴동산의 주인은 아담과 하와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담 하와가 마귀에게 져서 세상에 주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빼앗겼는데 주님이 다시 마귀로 더불어 싸워서 마귀를 물리쳐 이겼기 때문에 우리 성도는 이 세상 전체로 말하면 타락한 세상의 주인이 마귄데,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 세상은 내가 주인 노릇하면 그것들이 나를 주인으로 모시고 내게 이용이 되야되지 내가 그것을 쓰겠다는데 항거하는 세상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주인은 우리들이 주인입니다.
그러니까 나만 주인 노릇하면 모든 세상은 다 내게 종이 되는 겁니다. 내 밥이 되는 것이고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애굽을 속량물로 주셨다. 이 세상은 우리의 이용물이고 종이고 우리 밥이고 우리는 그들의 주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뒤바껴가지고 주인이 세상에 보니까 주인이 자기 비서로 하인으로 데려써라고 사람을 하나 데려주니까 그 사람 인물이 너무 좋으니까 매력있으니까 거기 폭 빠져가지고 그 여자의 사람이 되든지 남자의 사람이 되든지 주인이 제가 써야 될 그 사람의 사람이 되고 종의 사람이 되버리면 진자는 이긴자의 종이니까 종이 되고 마는 거지요. 돈이란 것은 사람이 주인인데 사람이 돈에게 삼켜버리면 돈은 사람의 주인이 되고 사람은 돈의 종이 되는 겁니다. 지식은 사람이 주인인데 그 지식을 사람이 주인으로 써먹지 못하고 지식에게 삼켜지면 사람은 지식의 종이 되고 지식은 사람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이런 것이 다 뒤바껴지고 혼돈되는 걸 가리켜서 말세라 그러고 세상이 패괴했다 그래 말합니다. 언제가 그랬습니까? 노아시대 때 그랬습니다. 땅이 패괴하고 다 그랬습니다. 뒤죽박죽이 되어진 거. 위아래가 없고 질서가 없고 아무런 선후가 없는. 세상의 주인은 우리 성도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세상은 그 세상이 우리 눈에 보여지는 전부는 세상인데 그 세상이 어떻게 크던지 화려하든지 높든지 귀하든지 아름답든지 찬란하든지 가치가 비싼거든지 어떤 것이든지 내 눈에 보이고 나와 관련된 모든 세상은 전부다 나의 이용물이다. 우리는 그것에 주인이다 요걸 우리가 기억을 해야 됩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이든 내가 주인이지 그것들이 내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뀌어서 내가 주인인데 주인이 주인 노릇 못하고 주인이 이용물 그것에게 져버리면 그게 바로 음녀가 되는 겁니다. 나를 끌고가는 음녀가 되고 또는 간부가 되고 우상이 되어지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에게 음녀가 될 때는 언제 음녀가 되느냐? 성도가 그것에게 종이 될 때 혹은 미혹이 될 때, 유혹될 때 그때는 세상이 음녀가 되고 우리만 정신을 바짝 차리면 이 세상은 전부 우리의 이용물이고 내 종이고 우리 밥이다.
그런데 하나 더 오늘 좀 할라 그랬는데 그건 시간이 없어서, 그래서 오늘 오후에는 크게 하나 말씀드린 것은 본문에 이걸 생각을 하고 하나님께서 사도요한을 통해서 보여주신 게 뭐냐? 사도요한이 본 것은 한 말로 말하면 세상을 본 겁니다. 말세에 되어질 세상,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말세에 되어질 세상을 본 것이고 그 세상과 성도의 관계 이런 걸 본 겁니다. 이걸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니까 우리는 요걸 알아야 되겠고 요걸 보게 된 그 직접적인 것이 광야생활에서 눈이 밝아졌으니까 우리는 광야 생활 골방 생활을 자주 좀 해 봐야 되겠다.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일곱 가지를 한번 연구해 봤습니다.
세상은 언제 생겼느냐? 약 6천년 전쯤에. 세상에 가치는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 이 세상의 가치는 영계에 비해서 현저하게 떨어지는 유한한 불완전한 그런 것이다. 세 번째 이 세상은 기간이 언제까지 계속 되느냐? 이거는 일시적이다 영원하지 않다. 네 번째 세상의 이용가치는 어딨느냐? 세상의 이용 가치는 천국 건설의 자본으로 쓸 때 이용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빼먹었습니다. 네 번째는 세상을 하나님이 주신 목적이 뭐냐 용도가 뭐냐 이거는 천국 준비 연습 장소로 주신 것이고 자본으로 주신 것이고 그러므로 다섯 번째 세상의 가치는 천국 자본으로 쓸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고 여섯 번째 주의할 것 이 세상은 보배성과 음녀성 양면성을 가진 것이 세상이다 요걸 기억하고 마지막 일곱 번째 세상의 주인은 우리들이기 때문에 나만 주인으로 바로 서 있으면 세상은 전부 내 밥이고 이용물이 되는데 내가 세상에 미혹되면 세상은 우리에게 음녀가 되고 나는 그것에 끌리는 음행의 아녀자가 되고 만다.
요걸 기억하면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세상을 선물로 사용하는, 상대하는 그런 우리가 되어야 되는데 나는 무엇을, 어떤 세상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한번 살펴보십시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좀 복잡하고 어려울지 모르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도 않습니다. 세상의 정체, 세상의 모습을 좀 파고 들어가봤습니다. 세상이 무엇인지. 우리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세상을 바로 아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