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일 주일 오후 (엡1:7~1:10)
2026년 11월 1일 주일 오후 (엡1:7~1:10)
찬송: 12장
본문: 에베소서 1장 7절 ~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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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자존자시며 완전자시기 때문에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무한하다는 말은 끝이 없다는 뜻이고 알 길이 없다는 분이십니다. 자존도 어렵고 완전도 어렵고 영원 불변도 단일도 어렵습니다. 지음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건 불가능한데, 우리를 하나님의 대상자로, 영원토록 계시기를 원하셔서 하나님께서 알리시기 때문에 알려주시는 만큼은 알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고 구원역사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구원은 근원이 어떻게며, 결과는 어떻게 되어지느냐, 하나님의 목적 마지막 이루어진 것 이걸 다 담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역사와 목적 강령으로 기록해주셨기 때문에 다 관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 역사가 다 들어있기 때문에 성경 전체를 열 세 가지를 중앙에 놓고 다 풀리게 되어있습니다. 척추와 같은 겁니다. 뼈대가 있으면 갈라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세 가지인데 첫째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자체를 말씀하시기를 영원자존 하나님인데 어떤 하나님, 언제부터 영원자존하신 하나님 어떤 하나님인데 불변 사랑, 왜 불변 사랑이 되는데 자존 하나님닙니까. 또 어떤 지능이냐, 전지전능이냐, 앞에 일번부터 4번까지 다 붙어있습니다 자존이. 그래서 자존의 뜻을 네 가지로 말씀드렸죠. 스스로 계시는 스스로 존재하는 그런 뜻이고 원인과 근본 원인이 먼저입니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면 근본보다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자존이므로 모든 것의 원인되시고 모든 것의 원인 되심으로 그분이 능동이니까 어떤 것에서도 피동이나 간섭이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거지요. 그 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분의 의지가, 어떤 의지냐, 사람에게도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 세계할 때 그 말입니다. 하고자하는 바, 마음에 하고자하는 바 그걸 의지라고 말합니다. 영원자존 하나님 의지가, 의지가 그랬으니까 하나님은 없느냐, 이런 것은 설명 안 드려도 알아야하는데 인격자게에 붙어있는 속성입니다. 따로 떨어져서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역시 스스로 있는 것이고 원인 되는 것이고 영향 피동 간섭 받는 것이고 이래 우리 구원이 알게 되는 겁니다. 어떤 방편으로 성격으로 했느냐, 우리 여반에 한 번, 영원 자존 하나님 의지가 그 목적을 어떤 방편으로 이루시며 어떤 성격으로 이루십니까. 그리스도적인 방편으로 하나님의 형상과 꼭 같은 사람,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거다. 그 내면을 보니까 하나님을 닮은 사람인데 하나님은 아니고 내면을 보다보니까 영광의 찬미가 되기까지 중보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찬미가 됩니다. 우리는 만물에게 찬미가 됩니다. 그리고 또 모습 보니까 귀하게 아름답게 이렇게 만드시기로 목적을 정하셨다.
경치 좋은 곳에 털을 닦아서 어떤 구조로 그렇게 될지 그래서 연못도 파고 어떻게 하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세운 것처럼 이런 존재를 만들어야겠다고 뜻을 세운 겁니다. 그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유일무이한 목적 그 목적을 위해서 뜻을 정하신 그것을 위해서 설계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전하셨고 다윗은 찾아갔고 사람의 충성은 찾아들어가는 충성입니다. 첫째 뭘 설계했습니까. 영계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의, 천체에 있는 해와 달과 수 많은 별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수많은 것들과 지나지 않다는 건데 산천초목과 모든 것과 모든 것들 모든 존재들과 활동의 영혼을 주권 의지로 예정하셨다, 예정한 그대로 강조하는데 하나님의 예정은 절대 예정인데 예정 속에 있는 예정은 실제 물질 세계에 펼쳐진겁니다. 뜻 속의 머리 속에 있는 것처럼 오만 것을 다 담아놔도 그것을 내놓지 않으면 머리 속에만 있는 겁니다. 예정의 순서란 예정에 되어있는 겁니다. 그 예정 속에는 영계 우주 영원도 들어었으니까 창조도 들었고 인간의 범죄 타락도 들었고 사망도 들었고 도성인신도 들었고 사활의 대속 공로도 들었고 교회도 들었고 우리 구원도 들었고 다 들어있다 그 말입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영계와 우주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의 영혼을 목적을 정한 그때부터 그 목적에서 필요한 세월도 그렇고 영원까지 다 예정이 되어있는데. 이해가 되시는 분 손 들어달라고 하고 싶은데, 이해가 되십니까.
예정이란 목적을 이루기에 필요한 영계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의 영원 활동과 결과까지 영원토록 벌어질 펼쳐질 이어질 전개될 전부가 하나님의 예정 속에 완성되어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절대예정이고 다른 말로 말하면 완전 예정이고 불변 예정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허락지 않으시면 허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참새 한 마리도 그냥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머리털 나고 빠지는 것 희고 검어지는 것도 다 아시고 개미 한 마리 그 수염이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다. 이렇게 말하면 코웃음을 칩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런 걸 따져 들어가봐야합니다. 개미 수염 한 마리, 움직이는 것도 하나님의 예정이고 완전 예정 절대예정이므로 불변적으로 이 세상에서 구현이 된다는 거지요. 완전 예정이므로 절대 예정이므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땅에서 펼쳐져 가는 것이 역사들입니다. 하나님의 머리 속에만 있는 건데 의지 속에 들어있는 것이 사람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것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완전자이므로 그 예정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목적을 이루기에 필요한 영계와 우주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의 영혼을,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오면서 희로애락이 있고 선이 이있고 전부 하나 하나 하나님의 예정 속에 들어있는 것을 펼쳐지라는 겁니다.
자유성 가진 나는 꼭두각시 아닌가, 맞습니다. 그런데 절대 예정과 자유 의지는 다르지 않습니다. 물고기나 화초나 참 좋은데, 어릴 때 물고기 키우면 정서적으로 참 좋습니다. 생명을 아끼는 그런 것도 있고 한 자 되는 어항에 금붕어 길러놓으면 작은 금붕어 구피같은 거 그런 것들은 평생 삽니다. 그게 자기 세상인 줄 알고 삽니다. 그 안에다가 고기를 집어놓으면 상어같은 거 아니면 평생 마음껏 먹고 자고 놀고 다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다 삽니다. 왜 나를 가둬놨냐 이런 말 안합니다. 물고기니까, 또 다른 말로 진흙을 가지고 토기장에 가 만들면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깨 부셔버리고 만들어버립니다. 그럴 때 진흙이 마음에 안됐다고 부셨다가 장난치는건다, 그 진흙이 주인한테 그런 생각을 합니까 말을 합니까. 왜 그 진흙은 토기장이한테 가만히 있습니까. 진흙하고 사람은 존재의 차원이 다른겁니다. 진흙이 사람에게 해봐야 닿질 않습니다. 진흙이라기에 무시하시죠, 만물입니다. 만물이 호소한다고 했습니다. 무생물에게도 생명이 없다고 단정을 못합니다. 싹씨소리 지른다,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절대 예정 속에 꼭두각시처럼 살고 있으나 존재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닿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원하는대로 살아라, 너 마음대로 살던지 죄를 짓든지 하고 싶은대로 살아라, 하나님이 계시고 말씀이 계시니까 그것도 자유다 알아서해라, 마음대로 하게 하시는 겁니다.
영을 통해서 간곡하게 하는 겁니다. 너의 자유성을 네 마음대로 쓰지말고 경외하고 순종으로 살아라, 하거나 말거나 자유입니다. 자유에는 뭐가 따라갑니까, 책임 따라갑니다.
예정된 그대로 모든 존재가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일곱 번째, 읽어보실까요, 같이 합니다. 우주와 영계의 전부를 홀로 보존 관리 섭리하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 보면 영원 자존 한 것이 있습니다. 자존하신 하나님이 이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5번에는 뭐가 붙어있지요. 예정인데 뭐가 붙어있습니까. 5번 앞에 예정 앞에 뭐가 있습니까. 앞에 보시지요. 예정인데 예정이신 하나님 아닙니까. 무슨 예정입니까. 뭘 위한 목적을 위한 예정입니다. 창조는 무슨 창조입니까.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러면 섭리는 뭐가 붙어야겠습니까. 목적을 위해 예정대로 창조된 모든 것들을 붙어야겠지요. 모든 것들을 생략되어있을수록 무엇을 위한 것이냐 목적을 위한 것이고 보존 관리 속에서 우주와 영계의 전부를 영계는 우리가 가서 살 나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 세계입니다. 나와 멀든지 가깝든지 지구와 태양의 거리가 1억 5천 킬로미터. 그 열이 여기까지 미치는 겁니다. 그 빛이 지구까지 에너지가 이 지구상 곳곳에 다 미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직접 하시는 것입니다.
바다가 밀물 썰물 바람 태풍 돌아가서 육지를 휩쓸고 피해가 일어나고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예정대로 하는 것을 홀로 보존 관리하시는 역사다 라는 겁니다. 전염병이 돌아서 다 되는 거, 김일성이라는 사람이 남한을 잡아먹어야겠는데,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뻥터진 게 625전쟁입니다. 그 625전쟁을 하게 된 사람을 그 사람이 마음이 떨어져서 모두 주일날이고 휴가가고 그 시점에 라인을 밖으로 빼내서 맞아서 625전쟁을 터지게 된 겁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다 짜여가지고. 작은 것도 전부 다 그렇습니다.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사람 예외 없습니다. 모든 상황 예외없습니다. 위로 올라가니까 어디 속에요 예정 속에 들어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니까 목적을 위한 겁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이 펼쳐보여서 닥치게 만든 겁니다. 주권 섭리입니다. 그래서 이 섭리 속에는 우리들에게 대한 섭리도 있고 이 섭리는 직접 우리와 간접도 있고 이 섭리 가운데 일어나신 하나님의 가장 큰 역사가 뭐냐, 도성인신입니다. 보내사 하나님 아버지는 삼위일체입니다. 예정 속에 된 그대로 주권 섭리 속에서 선악과 범죄하고 그랬습니다. 살려야겠는데 하나님 죄의 결과를 체험하시기 위해서 그랬는데 버려두면 안되니까 살리려면 누군가 인간을 대신해서 인간이 지은 죄값을 대행해봐야하는데 한 명만 대신하지 천만명을 살리려면 죄 없는 사람이 천만명 죽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내가 가야겠다, 성부 하나님은 아무래도 가야겠다, 아버지 뜻이 이거니까 내가 가야겠다. 하나님 아버지는 보내셨고 원하고 원함으로 오셨고.
하나님 아버지 구원 전체를 측면에서 기록한 것이 8번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원하고 원하는 것이고 죄 원수 이 모든 것을 담당시켰습니다. 다 대신하시되 택자 전부의 모든 죄, 몇 가지가 들어있지요. 두 가지가 들어있습니다. 택자 전부의 모든 죄,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서 신인 양성 일위로 도성인신하신 겁니다. 이걸 가르켜서 우리의 모든 죄, 하나님의 말씀의 죄, 하나님 말씀을 거역할 뿐 아니고 자주장의 죄, 하나님과 벌어져서 원수된 죄, 하나로 더 붙이면 이 모든 것을 해결할려고 하니까 십자가 죽음으로 죄를 담당하시므로 사죄를 주셨고 불의를 담당하시므로 칭의를 주셨고 화친의 공로를 설명하셔서 우리 아버지다 그 말입니다. 9번부터는 주님에 대한 겁니다. 하나님 자체와 하나님 아버지 역사고 실제 도성인신 하신 주님의 역사입니다. 대형의 사죄 대행의 칭의 대화친의 공로를 하심으로 가르켜서 대형의 사죄라고 합니다. 우리 죄의 형벌을 주님이 대신 받으심으로 죄를 다 없애주신 걸 대형의 사죄라고 합니다.
우리 죄는 그 죄는 지어도 천국 갑니까. 사람을 미워하는 죄 시기하는 죄 낙망하는 죄는 지어도 괜찮습니까. 우리들의 평생을 통해서 온갖 종류의 죄를 짓고 그 죄 중에 하나라도 걸리면 지옥가야합니다. 그런데 그걸 대신 짊어지고 형별 다 받으셨기 때문에 평생에 죄를 지어도 우리는 지옥에 안 가는 겁니다. 오전에 견인을 물어보셨는데 그 견자가 아니고 견인을 끌 견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데 그 결은 굳셀 결자 참을 인자라고 합니다. 칼빈이 서양 사람인데 중국어를 알았을까. 그때 중국어는 명나라였거든요. 명나라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모르겠지만 배웠을까, 그 견인교리를 세웠을 때 그렇게 굳셀 견 참을 인, 칼빈의 제자가 붙였을까. 그래서 칼빈의 견은 일반적으로 굳셀 견에 참을 인자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그걸 가만보니까 충촐이 될 거 같습니다. 굳셀 견자에 참을 인자 쓰면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굳게 참아서 은혜를 져버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맞습니까. 그런 그건 건설 구원인데. 끌 견 자 끌 인자가 맞지 않을까.
어쨌든 대형의 사죄가 있습니다. 대신 받으시고 형벌 받으시고 우리가 평생을 통해 지은 죄를 짊어지고 다 주셨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지옥을 안 가는 겁니다. 못 가는 겁니다. 그래서 형벌을 대신 받았을 때 무한한 우주적인 것을 받았었고 양심이 살아있을 때 이런 교리를 알고나서 죄를 지으면 스스로 돌아볼 때 배은망덕한 놈이다.
죄의 형벌만 받았다, 그거나 그거나, 그거나 그거나 같은 건데, 주님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라서, 형벌은 대신 받으셨고 다시 살아나시는데 부활할 때 인성을 훌훌 벗어버리고 원래 하나님으로 돌아갑니다. 인성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 승청하셨네는 희생이다, 감사가 아니라고 했죠. 비유가 안되는데 사람이 당나귀가 되었다가 벌을 다 벗고 벗어버리게 되었는데 다시 당나귀가 되어서 평생을 살아야한다, 인성이 있어서 그래서 신인양성일위로 부활하사 현재와 미래의 것까지 현재 미래 영원까지 구약 성도들은 미래의 소망을 두고 과거를 당겨서 세상 사람 현재에서 천국까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역사는 겁니다.
만물 안에서 만물이 싸고 있고 교회가 있고 몸이 있고 마음 안에 영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영을 통해서 나타낸 것처럼 성도의 바른 생활이 바로 하나님의 충만으로 나타나게 된 겁니다. 모든 것이 성도 통해 나타내는 겁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사랑으로 지혜로 충만으로 하게 된다, 공자의 유교 경전을 읽으면 공자를 닮아갑니다. 불경을 자꾸 읽으면 불교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충만으로 모습으로 펼쳐져나가면 그 만물들도 점점 닮아가는 그런 만물들이 되어질 거 같다. 하나님 형상만 보이는 그렇게 될 거 같다. 이것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하늘나라 뭘 하고 사느냐,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으로 만물에게 하는 충만을 하면서 사는 게 영원한 하늘나라다. 겨자씨 믿음의 계속입니다. 생명이 자라가는 것처럼 현실을 다 잡아먹고 연결된 생명으로 자라가는 이게 주님이다, 은혜로운 것이다. 앞에는 설명을 자세하게 했고 뒤에는 말씀드렸는데 새벽에 밤에 살펴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