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7일 주일 오후
2026년 9월 27일 주일 오후
찬송: 16장
본문: 시편 27편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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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다보면 그런 존재들에게 관계된 깨달음 느낌이 생겨지게 되고 그런 것을 기록을 하면 시가 되는데 그런 신앙 시들은 인위적으로라도 한번씩 해보는 게 괜찮습니다.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다윗의 시편을 절반 가까이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사무엘상부터 사무엘상화 역대상까지가 다윗의 기록인데 아브라함보다도 다윗에 대한 기록이 더 많습니다. 성결적으로 깨끗한 그런 면으로 성화적인 면으로 보는 건 에녹이지요, 300년 동행한 하나님께서 맡긴 사명과 최고 인물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평생 그렇게 살았고 많은 시를 지었다 그 말은 많은 깨달음 느낌이 있었다, 많은 작용이 있었다, 기도가 많았고 감탄이 많았다 그런 뜻이 되는 거지요. 백목사님도 시집으로 많이 남겼습니다. 저작권 때문에 마음 놓고 찬송하지 못해도 좋은 시가 많이 있고 손양원 목사님도 시가 있습니다. 찬송가 36장은 주님 고대가, 손 목사님 시입니다. 유재헌 목사님도 시가 있고 깊은 신앙 세계로 명상 속에 들어간 그런 분들이 들어가는 겁니다. 흉내를 내다보면 신앙 생활은 흉내를 내는 겁니다. 흉내내고 따라가는 모방하는 걸 안 좋아하나 알고보면 세상 발전도 모방이 되는 것이고 창의라는 것도 모두 그때까지 된 걸 기초로하기 때문에 모방이라고 볼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인간 세계에서 창존 창의의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앞선 분들 보고 따라가는 게 신앙 생활이기 때문에 적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오늘 말씀의 전체 흐름을 말씀드리면, 우리의 신앙 생활은 감사, 기쁨, 말하자면 좋아서 하는 그런 게 있고, 좋아서, 기뻐서, 즐거워서 거기까지 가는 게 목표고 거기 전까지는 한 단계 밑으로는 의무감 책임감 사명감에 맡기겠고, 다윗도 구원받은 사람이고 꼭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와 같은 태어나시기를 잉태가 되셨는데 뭐만 다르냐, 종자만 다릅니다. 아담의 종자가 아닌 하나님께서 잉태하신 2차 둘째 아담의 예수님은 첫째아담의 자손이 아니라고 말씀을 드렸죠, 예수님은 첫째 아담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걸 보면 뭐라고 그러지요. 첫째 아담의 자손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둘째 아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라는 겁니다. 아담의 게통이 아닙니다. 그래서 아담의 계통 자손이 아니지만은, 사람의 몸을 입으셨고 잉태되었고 정확하게 달수 안 나왔으나 10달만에 나오셨다 보고 어린 시절이 있었고 점점 키가 자라가면서 사랑스러워가시더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겁니다. 태아 때가 있었고 유아 때가 있었고 소년 때가 있었고 점점 자라갔는데, 본죄는 없고 자라가시는 것처럼 다윗은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주 젖먹이는 안 나옵니다. 어린 시절이 나옵니다. 뭐했던가요, 성경에 나오는 것은 목동이었습니다. 양을 염소를 따라다니면서 양의 똥을 치우고 거름을 치우고 그런 양치기 목동 그게 어린 시절입니다.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가 청년 시절에서 표시가 납니다.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골리앗이 나타났을 때 내가 저놈 처단하겠습니다. 너는 소년이고 양치기고 용사라고 해서 못 이긴다고 하니까 제가 아비 양을 쳤는데 양을 치다보니까 늑대나 곰이 와서 쫓아가서 쳐죽이고 뭘 쳐죽이고요, 뭘 쳐죽이고요, 늑대와 곰을 쳐죽이고 새끼를 구했습니다. 늑대 안 만나봤지요. 곰은 봤습니까. 얼마 전에 처음 들었는데 상어 한 마디 나타났다고 하지요. 상어 한 마리 보겠다고, 유별나다고 그렇다면은 한 3~4미터 된다던가요. 곰 본 사람 없지요. 굉장히 크다고 합니다. 곰에게 맞으면 죽어버립니다. 늑대에게 물리면 죽어버리고 죽이고 구해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이 있는 겁니다. 다윗은 그때가 소년이었을 것인데, 왕이 됐을 때 다윗이 몇 살요. 서른 다섯입니다. 그때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왕될 때 아마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에 왕이 됐을 겁니다. 헤브론에 7년 예루살렘에 34년을 했으니까 골리앗을 잡을 때가 있고 사울 밑에서 있을 때가 있었고 장관이 되어서 장군이 처리한 때가 있었고 그리고 쫓겨 도망다니는 시대도 있었으니까 10대 후반 20대 초반 정도 되었겠지요.
그런 것이 어린 다윗이 어린 시절을 어떻게 살았는지, 어린 시절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 생애가 다윗의 심신의 기능으로 익숙해져서 골리앗을 죽인 청년으로 되어졌고 중단되거나 변질되지 않고 그것이 왕이 된 그런 생활이 되어졌고 왕이 되고 난 다음에 한 번 넘어졌으나 다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게 노년까지 이어지면서 언제 지었는지 모르겠으나 많은 환란을 겪고 난 다음에 지은 시입니다. 그런 생활 중에 나타난 것 중에 하나가 본 시인데 다윗이 4절에 기록한 걸 말씀 그대로 한 가지를 구했다고 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을 고하리니 나로 그 나로가 다윗 자신입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달란트 비유할 때 충성을 말했는데 충신은 자기 생활이 없는 겁니다. 자기가 없고 자기가 없으니까 가족도 없는 겁니다. 주군을 위해서 나당 연합군 5만명이 백제를 향해서 공격하니까 아무리봐도 끝이겠구나 해서 백제 장군 대표로 나가면 처자식 불러놓고 나라가 망하겠다 그러니 나는 목숨 구걸은 안하는데 종되고 수치 받은 거 생각하니 아내와 자식들을 처단하고 결사대 몇 명 끌고요, 5000명 이끌고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 백제, 맞나요. 방금 제가 설명드린 거 아는 사람.
이순신 장군은 역사의 위대한 건데 그 못난 선조, 시기해 죽이려고 한 그 선조를 위해 바쳤는데 알고보니 바봅니다. 역사가 유지되는 한 영웅이라고 하겠지만 아닙니다. 그때 조선 시대 때 복음이 없었다는 말 못합니다. 일본 사람 믿었거든요. 왜장 중에서 그때 제가 들은 이름이 기리스도입니다. 그 사람들이 믿은 사람이 있거든요, 그런 거 모르고 왕 위해서 세상인데 충신은 자기가 없는 겁니다. 나를 이런 사람들에게 되게 해주옵서서, 나로 내 생전에 내가 살아있을 때 살아 있을 때는 뇌사상태도 살아있는 겁니다. 나이가 많아서 머리도 안 돌아가고 몸도 말 안 듣고 정신을 혼동해서 그런 겁니다. 그때보다는 좀 더 젊을 때 80대 보다는 60대, 60대 보다는 50대, 50대 보다는 40대, 30대, 조금 이라도 더 젊을 때 혈기 왕성할 때 그때가 내 생전에 그런 뜻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모든 게 다 약해집니다. 그래서 전염병이 돌면 정부에서 격리시키는 겁니다. 65세 노약자들은 조심하십시오. 조금만 무례하면 쓰러져버리고 그렇기 때문에 내 생전입니다. 나로 내 생전에, 그 생전이라는 세월은 참 소중한 때입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때입니다.
말씀으로 사는 생활 그리 되게 해주옵소서, 그러면서 집에 거하여 하나님의 계약이 말씀이고 쌍방 계약이니까 한쪽이 어기면 어기는대로 지키면 지키는대로, 묶인 계약이 아니고 고정된 문서만이 아니고 살아 역사한 역사적인 계약 활동적인 계약으로 역사적인 계약이다, 활동적인 계약이다, 작용적인 계약이다. 지금은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변질되어서 사람 중에 아름다운 사람 만나기가 어려운 때입니다. 이것도 또 듣고 오해하겠지만 공회 안에는 사람 다운 그런 분들이 더러더러 있습니다. 우리 공회 학생들은 아이 다운 모습을 가진 보배들이 있습니다. 밖에 나가면 환경따라 변질변성되어가지고 아이들 같지 았습니다. 원래 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자존자적인 모습, 완전자적인 모습, 주권자적인 모습, 모든 모습이 계약 이행의 역사를 통해 나타니까 다윗이 표현하기를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 앙망하며.
자기가 그렇게 되기 위한 소원이 있습니다. 내가 나도 저처럼 되길 원하는 사모라는 것은 그리운 것이고 가다리는 것인데 나도 좀 다르고 이런 성경에 나온 것은 내 주님처럼 되기 원한 소원이 들어있는 표현입니다. 글자 그대로 말하면 우러러 바라보는 건데,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게 전부면 영원토록 창조물 피조물이니까 앙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처럼 그렇게 성화되어져가는 그런 면을 닮고 있는 겁니다.
자기한테 맞는 곳을 찾아갑니다. 그런 곳을 골라서 찾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또 한 번 김유신이라는 장군이 내 기생집에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어머니한테 꾸지럼 듣고, 기생 집에 다니냐 하니까 정신이 들어서 마음 먹고 안 가는데, 어느 날 늦게까지 공부하고 돌아오니까 말 위에서 조니까 그 말이 우리 주인이 항상 가더라고 기생집에 가니까 목을 탁 처버렸다고 합니다. 그게 진짜인지 모르겠으나 사람이라는 것은 말도 그런데, 서당개도 자기가 결정한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기억하고 기능화되고 사람이 되고 그런 곳에 머무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런 것을 하나님이냐 자기냐, 천국이냐 세상이냐, 말씀이냐 현실이냐 둘 중에 하나입니다. 명절 며칠 앞부터 대목이라고 합니다. 저는 젊을 때 많았거든요, 시대가 변해서 예사로 지금은 모릅니다. 명절 앞두고 대목장, 시장에 장사한 사람이 바빠서 밥먹을 시간도 없습니다. 사장님은 직원은 보니까 짜증을 냅니다. 왜 짜증을 내지요. 돈은 같이 받는데 바빠 죽으니까, 사장님은 돈이 벌리니까 싱글벙글 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피곤하니까 아플 때는 원함으로 되는 겁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내 진정 사모하는 주님이 되고 싶어서 찬송이 나오고 말씀이 듣고 싶고 생각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좋아지는 사람이 되기 까지 성화되어져 나가야겠다. 그 사람의 이름을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사람이 되자.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