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7일 주일 오전
2026년 9월 27일 주일 오전
찬송: 5장, 115장
본문: 시편 27편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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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던가, 사람은 다 같은 사람이고 비슷한 사람인데 사람은 또 서로 다른 겁니다. 겉모습은 같아도 속에 들어가면 많은 차이가 있어서, 예수 믿는 우리들은 안 믿는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믿는 사람은 어떤 것이며 안 믿는 사람은 어떤 것이며 말씀을 가지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부터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 연대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옛날을 기억하지만 그냥 기억하진 않습니다. 믿는 사람도 옛날을 기억을 해야겠는데 옛날을 가르켜서 과거라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던가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죽었던 사람들이다. 성경을 깨달은 교리를 잘 모르면 이해가 안됩니다. 죽었던 사람이 뭐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열 두 제자들에게 인자가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고난을 받고 죽고 살아날 것이라고 하니까 부활이 무엇인가 생각하였습니다. 지금도 안 믿는 사람들도 안 믿지만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 부활은 살아났다가 죽는 게 아닙니다. 영원히 생명으로 사는 게 부활입니다. 죽었던 사람들이다.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건데 그 다음은 없는 건데 죽은 사람에게 과거가 있다. 살아있어야 현재가 있어야 과거가 있는 건데, 현재가 없는데 과거가 있다 말이 안되지요. 상식으로 생각하면 넘어갈 수 있으나 이해가 안될 수 있습니다. 영이 죽었던 우리들, 죽었던 영을 살려주셔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가르켜서 중생이라고 어려운 교리라고 합니다.
불교 믿는 사람들의 중생은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의 중생은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걸 중생이라고 합니다. 영이 다시 살아나면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믿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영이 죽어있으면 하나님이 안 믿어집니다. 영이 살아나야 믿게 되는데 안보이고 믿기도 어렵습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이 생각이 나고 하나님이 믿고 싶고 겁이나고 천국에 가고 싶은 겁이 나는 생각이 생기면 영의 작용입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실 거 같다. 믿어지고 천국이 믿어져서 지옥갈까 무섭고 천국에 가고 싶고 다 살지는 못해도 양심의 가책을 받고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어가면 그게 바로 영의 작용입니다. 그게 영의 작용입니다. 영이 없는 사람은 심한 말로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런 생각이 안 들어갑니다. 주일을 지키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찬송을 하고 주님을 구주로 믿고 부리고 감사하고 천국 소망 가지고 잘못살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우리도 옛날에는 영이 죽었을 때는 그 영을 살려주지 않았다면 안 믿는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없고 천국이 없고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근본이 없는 겁니다. 무가 되는 겁니다. 그럴 수가 없는데, 실상은 안 그런데 자초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무신론 주의자들은 들어가보면 밑에가 붕 떠있습니다.
생명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복이 되는 길이고 동시에 멸망을 막아주는 가시와 담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가시도 뭐냐, 옛날에 가시와 담, 팬스라고 합니까. 낭떠러지 같은 곳에 가시와 담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떨어져 죽습니다 믿는 사람은 말씀을 어기면 낭떠러지에 떨어진다, 이런 말씀이 있어서 조심을 하는데 영이 죽은 사람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런 조심이 없습니다. 남북 사이에 가로지르는 경게선을 휴전선이라고 합니다. 그거 넘어가면 북한에서 죽여버립니다. 경계선을 넘었다고, 경계를 모르면 타고가다가 고속도로 100키로 가다가 요즘은 좋아서 그렇게 중앙 분리를 해놨는데, 반대쪽으로 달리면 마주오는 차하고 쾅, 죽고 죽이는 겁니다. 그런 걸 가르켜 선이라 경계라고 합니다. 경계를 모르고 넘어가면 자타를 파멸 시키는 겁니다. 그걸 없는 사람을 가르켜서 불신자라고 합니다. 안 믿으니까 자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금은보화 가득차도 돌멩이로 생각하면 진수성찬을 차려놔도 독이 있는지 모르면 도망치는 겁니다. 말씀은 생명의 길인데 불신자들은 없습니다. 말씀은 멸망의 낭떠러지를 선이 없으니까 마구 넘어갑니다. 그러면서 좋다고 웃고 춤추면서 갑니다.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춤추고 그런 거 보고 부르고 따라가면 안됩니다. 그런게 다 그런겁니다. 우리도 옛날에는 그랬던 사람이고 이 도리를 깨닫고 깨달은 믿음의 종들은 웬 은혜입니까 웬사랑입니까. 그럽니다. 그래서 날 구원하신 예수를 영원히 찬송하게 되는 겁니다. 다시는 옛날로 돌아가지 말아라, 믿는 사람은 풍속을 따라가지 말자, 구원을 위해서 선용하자를 생각해봤습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하는 중에 느낀 바가 있어서 삼손의 말씀으로 돌아가야하는데 느껴져서 생각해봅니다. 본문은 시편입니다. 시를 하나씩 모아놓은 것이 시입니다. 시편이 모두 상식으로 몇 편이지요. 시편이 몇 편이지요, 150편입니다. 150편에 다윗이 지은 시가 정확한 사람들은 73편이라고 그러는데 절반 가까이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나머지는 여러 사람들이 지은 시고, 다윗은 성경 인물들 중에 최고입니다. 만왕의 대왕이고 예수님을 표상하는 사람입니다. 특별한 이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에 시인이 있는데 일본 가있어서, 와야할텐데, 시라는 것은 사람이나 사물이나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느끼지 못하는 그런 것을 보고 느끼고 아주 간단하게 간결하게 시라고 합니다. 시편이 그런 건데 성경의 시편은 신앙 시가 있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관계에 대해서 역사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은혜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하나님과 하나님 역사와 자기 신앙과 관련된 모든 것들 깊은 명상 중에서 깊은 사색 중에서 특별하게 깨달아지고 느껴지는 그것을 가르켜서 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편이 시고 아가서가 시고 잠언 같은 욥 시편 잠언까지도 시로 포함이 되지요. 전도서까지는 모르겠고 그래서 시에 속한 것들입니다. 시를 지을 수 있는 신앙 시를 쓸 수 있는 시는 그만큼 신앙이 깨어있다는 것이고 하나님과 관계가 깊이 들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게 신앙의 시가 있는 것이고 시를 적을 수 있는 그런 때는 하나님과 관계에 교제에 되어있는 그런 게 나오기 때문에 신앙의 깊이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절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믿는 사람이 충성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고 사람 인도도 하고 설교도 하고 봉사도 하고 열심히 다 잘하는데 정작 남을 위해서 하는데 자기 자신이 엉망이 되어있으면 너는 걸레네, 너는 청소기네, 너는 빗자루네 너는 도구네 이런 것을 사람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 구원하는데 자본이나 대주는 출물꾼이라고 합니다. 나로, 믿는 사람이 기억해야합니다. 모든 사람 중에서 위치 입장에 따라 다르지만 누구의 기도 누구의 기도 하나, 내가 바로 살아야합니다. 나를 고치지 않는 건 헛일입니다. 우리 아들 딸들로 내 부하로 신하로 그러지 않고 나로,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으로 그 누구보다 누가 가장 먼저 바로 서야한다고, 내가 바로 서야합니다.
말씀의 생활 말씀의 언행심사 모든 것이 모든 활동이 판단과 처리 결정이 전부 다 다윗은 하나님의 계약에 말씀 따라서 말씀 입각해서, 말씀에 가르침을 따라서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싸움하러 가도 적군을 죽여도 왕을 세워도 그게 전부 다윗의 소원입니다. 나로하여금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말씀으로 살려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뭐든지 고하라. 주님 안에 거하는 게 말씀 안에 거하는 겁니다. 그게 말씀으로 사는 겁니다. 이 계약의 말씀이 내 속의 나의 주인이 되어서 이 말씀이 나를 지도하고 가르치고 이끌고 주장하고 지배하고 나는 그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순종하는 이게 말씀에 거하는 것이고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겁니다. 다윗의 평생은 그 생활이었습니다. 그 모든 연습이었고 익숙해진 사람이 다윗입니다. 평생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게 다윗의 소원이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연류관, 노인의 아름다운은 어른스러운 것을 가질 때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른스러운 사람이 될 때 아름다운 사람이되는 겁니다. 젊은이의 아름다움은 힘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이 펄펄 뛰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땀흘리는 노동은 아름다움입니다. 아이의 아름다움은 맑고 밝고 순수한 겁니다. 아이가 지나치게 어른스러우면 정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은 꽃은 꽃 다워야합니다. 인공으로 아무리 아름답게 만들어놔도, 자연의 꽃을 못 따라갑니다. 자연의 꽃을 못합니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아름다운 겁니다. 그렇다고 인공적인 것은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은 추한 겁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뭘까, 여호와의 아름다움은 어떤 것일까. 여호와 하나님의 계약이 있는데 그 계약인 것이 있고 법이 힘이 있는 것은 살아 있어야 힘이 있는 겁니다. 법이 죽어있으면 아무도 겁내지 않는 것처럼 왕인데 왕이 뭐 있으나 마나한 왕인데 겁내지 않습니다. 그 계약이 작용이 없으면 그 계약은 죽은 계약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약을 맺었는데 목석이 아니고 사람들이 만든 허상이 아니고 살아계시면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하나님으로써 역사하시는데 믿는 사람에 대해서 살펴보시면서 사랑할 자를 사랑하시고 징계할 자를 징계하시면서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이 전해주신 계약의 말씀을 깨달아서 너무도 철두철미하게 공평되게 섭리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경험하고 또 느낀겁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실제 계약의 성취가 섭리가 너무도 세밀하고 정확하고 철저하고 공평되고 은혜롭고 사랑이고 수도 없이 경험하고 경험하다보니까 말하자면 하나님 답다. 왕은 왕 답다 정말 참 왕답다.
하나님이시니까 위를 보고 닮아가야하는 바라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도 그와같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들어있는 겁니다. 나도 저분처럼 그리 되면 좋겠다, 그걸 가르켜서 앙망한다고 하는 겁니다. 다시 돌아갑니다. 4절에 여호와께 청하였던 것 중에 그것을 구하리니 내 생전에 앙망하는 것 하나님의 실제 역사와 그 전 그래서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려면 역사를 통해서 봐야하고 여호와의 집에 들어가야합니다. 귀하게 말씀으로 살아봐야합니다. 살아봐야 며칠 전 새벽기도 때 베드로가 주님 찾으러 오실 때 믿으려고 순종하니까 결과가 이루어지듯이 말씀으로 살아봐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지 순종해보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사모하고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보고 싶고 노력해서 나도 하나님처럼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게 다윗의 한 가지 소원이었습니다.
말씀의 사람이 되고 나니까 가장 잘 맞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집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 주신 하나님의 계약을 앙망하며 그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여호와를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사람이 되자. 앙망하는 사람이 되자, 오후에 이어가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