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9일 주일 오후
2026년 8월 9일 주일 오후
찬송: 34장
본문: 사사기 13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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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가 없으니까 지도자가 없으니까 강제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자기 생각대로 자기 소견대로, 자기 생각대로 좋은대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자유가 있었다는 게 됩니다. 사사기 그 뒤에 보면 삼손이 어느 지파 사람이지요, 어느 지파 사람입니까, 무슨 지파지요. 이거 답이 안 나오면 곤란하지요. 어느 지파요, 단 지파입니다. 단 지파가 뒤에 보면 17장인가 나오죠. 미가라는 사람이 나오고 레위 지파가 들어가고 단 지파가 기업을 받지 못해서 다니다가 어느 지역에 가서 한 곳을 발견했는데 아주 장소도 좋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가서 점령해서 기업을 삼아버립니다. 그런데 그 집안이 왕이 없었고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고 간섭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왕은 통치자가 바르면 세금을 받으면서 보호를 받으려고 합니다. 자유롭게 사는데 조직과 제도가 없으니까 자유는 좋은데 아무도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 되는 거지요. 왕이 없고 자유가 있으면 장단점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속성이 뭐지요, 자유성. 독립성, 주권성, 자주성 이런 게 자유성과 연결이 되는 거지요. 자유성은 마지막 최종적으로 올라가면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그 속성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갈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 한 분만 머리로 삼고 모든 것에게는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어야 정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민주주의냐 독재주의냐, 그거 자체가 우문입니다. 기독교가 민주주의인 사람들은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하나님 한 분의 독재주입니다.
천주교가 타락을 해서 머리 되는 사람을 교황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교황이 권력이 없지만 그 교황은 완전 독재자입니다. 그래서 교황 독재 주의가 교황입니다. 그런데 천주교에서 가장 많이 주장하는 것이 뭡니까. 민주주의를 부르짖습니다. 천주교가 독재주의인데, 그 천주교가 변질이 되어서 잘못된 것이지 원래는 그런 겁니다. 모세 시대 때 민주주의를 했습니까 독재주의였습니까. 총공회는 백 목사님이 다 했습니다. 그래서 잘난 사람들이 못 견디고 튀어나갑니다.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윗도 독재했는데 성경적으로 태평적인 시대는 다 독재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민주주의라는 것은 핵심이 뭐지요, 민주주의의 핵심이 뭡니까. 종다수가결이지요. 많은 사람들을 따라가는 겁니다. 자유성이 없습니다. 숫자가 많으면 너의 의견을 꺾어놓고 따라와라, 다수가 옳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민주주의입니다. 성경은 기독교는 독재주의인데, 그 독재주의를 들여다보면은 사람마다 전부 다 주셨습니다. 생명이 자유성이라, 그게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다, 잘 길러나가서 자기가 그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고 강제당하지 않고 원하고 원하고 깨닫고 자아가 보고 듣고 비판하고 평가하고 판단해서 최고의 길을 너 스스로가 판단해서 걸어가라는 게 기독교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위해서. 그래서 우리 공회는 총회가 없습니다. 총회장 자리가 없습니다. 노회가 없습니다. 노회장, 당회도 없습니다. 당회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은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 있는데, 이름만 붙여놓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를 공회라고 하는 겁니다. 공회는, 설명을 많이 드렸기 때문에 그게 계교회입니다. 자기 개인과 하나님과 직통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과 직통입니다. 주일 학생이 뭘 주장할 때 목사님이 말하는데 꺾어버리면 틀린 겁니다. 주일 학생이라도 목사가 강제할 수 없다 그게 공회입니다. 옳은 것만 참가하고 주장하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강한 힘이 진리의 힘입니다. 옳은 것만 주장하라 그게 힘입니다. 이게 계교회고 공회입니다. 그 개인의 자유 의지를 누구도 꺾을 수가 없는 그래서 질의가 없습니다. 다른 교단은 법이 있습니다. 헌법 기관이 하는 게 뭐지요, 법을 판단하는 거지요. 그래서 재판국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인이 잘못하면 취조를 합니다. 검사 목사 장로가 있던지 그럽니다. 교회 안에서 치리하는 게 교회에서 치리를 한다, 서부교회에서도 했습니다. 서부 교회 결혼식에는 축의금 안 받고 그런 원칙이 있거든요, 구역 식구 한 사람이 어기고 피고인을 했나 싶어서 치리 받았는데 어떻게 받았느냐, 밤예배 때 일어서시오, 이 권사님이 어겨서 치리합니다. 그렇게 말합니다. 일어서시오 앉으시오. 그게 치리입니까.
하나님을 이겼던 야곱이라는 조상입니다. 유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피하지 못하고 속이지를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묘하게 만들어놓으신 겁니다. 부전자전, 아들은 아버지를 고대로 닮아가는 겁니다. 자손은 닮아갑니다. 야곱입니다. 하나님을 이겼던 야곱입니다. 고집쟁이 하나님을 요소, 자손들에게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이 택한 백성인데 믿음의 자손들인데, 백성들인데, 그 속에 하나님을 복종하지 않고 싸워서 이겼던 그 요소가 있던 것입니다. 그게 다시 또 다시 에덴 동산에 따먹었던 그 죄를 지었고 가인이 되었던 그 죄를 지은 것이고 아담 속에는 가인 요소도 있고 아벨 요소도 있습니다. 아담이라는 속에는 같이 있는데 가인에게 타락한 요소가 간 거지요. 노아 시대 때로 내려오면 수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 그들은 지옥간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홍수로 그렇게 된 게 아닙니다. 노아의 아들 중에서도 함이 나옵니다. 노아의 아들들입니다. 그런 죄악성이 이어집니다. 롯이 함께 하다가도 조건이 나오니까 탈선의 길을 가서 소돔 고모라로 갔습니다. 이삭의 아들, 둘 다 리브가의 아들이고 쌍둥이인데 에서는 탈선을 가고 야곱이 옳은 길 갔는데 그래서 고집을 씌우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애굽에 갔을 때 출애굽 할 때부터 모세에 대해서 하나님이 너희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신단다 하니까 좋아하니까 바로가 탄압을 해서 벽돌을 만들 때 무엇을 주고 만들라고 했지요. 짚을 만드는 노역을 하는데, 뭘 주고요 짚을 섞어서 만드는데 모세가 가서 내 백성 보내라고 하니까 바로가 앞으로 너희들 제사 지낸다하니까 보니까 시간이 남는 거 같다. 짚을 구해서 만들어라.
삼손에서 내용이 나오지요. 나귀 턱뼈로 일천명을 죽이고 나서 유다 사람 몇 명이 모이지요. 삼손이 나귀 턱 뼈로 일천명을 처 죽이고 나니까 왜 우리에게 처들어오냐, 유다가 삼손이 이렇게 죽여서 잡으러 왔다, 유다 사람 3천명이 누구에게 갑니까. 삼손한테 옵니다. 뭐하러, 잡아서 팔아먹으려고, 그래서 유다 사람들이 머리가 정상이 아닌 거지요. 왜 대장을 도로 팔아먹습니까. 저것들 살려고 사사를 팔아먹는 겁니다. 그게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여호와의 목전에 반복이 됩니다. 내면을 들여다볼 때 왜 반복이 되는지를 원인을 말하자면 생각되는 그런 원리적으로 생각해봤었습니다. 다람쥐는 뱅뱅 돌면 다람쥐 채바퀴 돌 듯이 그런 거겠죠. 그거 밖에 없으니까, 뛰어다니지요. 그런데 가둬놓고 갖다 놓으니까 뱅뱅뱅 돕니다. 인간이라는 게 다 그런 겁니다. 세상 역사가 반복이 되는데 아담의 원죄성이 다 들어가 있어서 그래서 원죄성이 모태가 되어서 사람마다 죄악성을 가지는데 그 종류는 다 다르지만 몇 가지 죄악, 사람이 수 십 가지 죄악을 짓는 게 아닙니다. 몇 가지에 걸처서 반복에 반복을 해서 평생을 절단내고 마는 겁니다.
하나님이 안 보이니까 착각을 하는 거지요. 내 눈에 안 보인다고 내 눈에 안 보이면 없는 겁니까. 자기 눈에 안 보이는 존재는 없는겁니까. 자기 귀에 안 들리는 소리는 모르는 겁니까. 다 듣는데, 귀가 어두우니까, 다 보는데 어두운 사람 눈에는 안보이는 겁니다. 성경에 보이는데 어두우니까 안보이는 거지요. 모르면 안 보이는 겁니다. 여러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십니다. 인간 세계를 보고 살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CCTV 카메라 보다도 예리한 눈초리로 살펴보시는데 그 아래서 하는 인간들은 그걸 모르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방마다 좋기는 스물 네 시간 돌려놓고 한 달 정도 촬영해놨다가 그러던지 그런겁니다.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음으로, 악행입니다. 어감이 참 강합니다. 큰 죄다.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모든 죄 모태, 거기서 나오는 건데 그게 바로 악입니다. 악으로 행하는 걸 악행이라고 합니다. 설교도 자기 중심으로 하면 악행입니다. 기도도 자기 중심으로 하면 악행입니다. 찬송도 자기 중심으로 하면 악행입니다. 어디까지 들어가야할까, 파고 들고 그런 기독교는 그렇게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 내 속에 있는 내 마음을 내가 다 점령해야하는데 내가 점령하지 못한 그 부분 그게 블레셋이다. 이 세상에게 붙들리면 전능하지 못하면 종살이하고 마는 겁니다. 돈에 붙들리면 종이 됩니다. 취미를 다스리지 못하면 종이 되고 마는 겁니다. 사업을 다스리지 못하면 사업의 종이 됩니다. 자존심을 점령 못하면 자존심의 종이 됩니다. 뭐든지 이 세상에서 그게 옛사람인데 다스리지 못하면 자기에게 그것에게 종이 되고 마는 겁니다. 어떤 블레셋에게 들어있는지 해야하겠습니다. 삼손의 출생을 두고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 삼손의 아버지, 어머니 이름은 기록이 안 나왔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중요한데 기록이 안 되어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 삼손의 어머니인데,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함으로 생산치 못하더니, 아기가 안 생깁니다. 요즘도 그런 부부, 애를 태우는데 있어야하는데 있어야하고 없어도 되는 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인 이런 거면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있어야하는데 되어야하는데 안되는데,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고 중요한 것이면 이 세계에는 여인으로써 사람 취급을 못 받는 시대입니다. 한나가 아이를 못 낳았습니다. 사무엘의 아버지 이름이 뭐지요, 엘가나, 엘가나가 아들이 둘이었지요, 아이가 있습니다. 있으니까 한나를 보고 나는 아들이 없다 너는 없지 계속 그러는겁니다. 그러니까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을 하면서 그럽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을 하면서 소원을합니다. 하나님이여, 아들을 주시면, 지금도 비슷하지요. 그때 아들 못 낳으면 야곱 때도 야곱의 아들 중에 언니는 넷 낳고 몇 낳을 때까지 안 주시는데 어떻게 하라고, 통곡하면서 서운해합니다. 있어야하는데 되어야하는데 해야하는데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안될 때 애가 타는 거지요. 이 시대는 가장 중요한 게 아이입니다. 아이가 없으면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그러는 겁니다. 한나가 그랬듯이, 아내가 그랬습니다. 아내가 잉태하지 못함으로, 생산치 못하더니, 애가 타는 겁니다. 다 기록 안 되어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그런 가정이 되었던 겁니다. 귀한 아들 주시려고 굶겨놓는 거지요. 배가 부르면 반찬이, 반찬 투정 밥 투정하면 굶겨버리면 됩니다. 저절로 아무거나 다 먹습니다. 인간 욕심은 열어 놓는 순간, 옷을 찾는 것도 그렇습니다. 처녀들이 남자 찾는 그런 것도 그렇습니다. 직장 보고, 키는 커야하고, 인물, 차, 그런 사람은 있습니까. 그런 여자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그렇게 사람 찾더니, 사람만 좋으면 되는데, 일주일만 지나면 전부 거기서 거기입니다. 인물은 변합니다. 아무리 예뻤던 사람도 이상하게 됩니다. 늙은 모습 보십시오,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하게 살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고 아브라함이 애굽이 내려갔을 때, 사라하고 나이가 열 살 차이 나던가요. 90세입니다. 애굽의 왕이 반해서, 그래서 너무 아름답게 보여서, 누이 동생이라고 그렇게 숨겼습니다. 그냥 하는 말 같죠. 그러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애타게 기다렸는데 기다리니까 굶주렸고 아이가 귀하게 깨달아졌고 굶겼으니까 그러니까 간절한 만큼 귀한 것이고 준비도 된 것이고 귀하게 되는 거지요. 우리 공회 주일학생들은 정말 정말 귀한 보배들입니다. 아무리 귀해도 늘 보면 귀한 줄 모릅니다. 한 사람 한 명 한 명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우주보다 귀한 생명. 그런 사람들이겠지요, 삼손을 주시려고, 부부에게 아이를 안 주셨습니다. 많이 굶겼다가 사모하게 만들었다가, 나타나는 게 여기 보면 제일 처음에 이 아내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사람인데 천사였습니다. 다시 보니까 누구로 나와있지요. 뒤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게 사자였습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니까 우리가 누구를 보았으니요, 하나님만 보았습니다. 사람인데 천사였고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이 천사로, 천사가 사람으로 그래서 지금도 이런 모습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삼손이면 삼손 만들 어머니에게 세 가지 당부했습니다. 설교하면서 이해가 되어야하고 그러니까 의문을 하니까 연결되어야하고 찾아야하는 겁니다. 삼손을 주시려고 어머니에게 찾아가서 세 가지를 금해라. 그 삼손이 내가 삼손이다, 내가 태어난다, 삼손이 태어난다, 삼손으로 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세 가지를 금했다. 삼손될 나의 어머니는 어디있습니까. 삼손이면 내가 삼손이다. 나의 무엇이 삼손이겠습니까. 삼손이 들어있습니다. 그 삼손은 무엇이 삼손이었을까, 조심스럽게 세 사람 중생된 새 사람 주격이 뭐냐, 그 영이 새 사람이 노릇을 하는 것이 삼손의 역할입니다. 그 심신이, 내 심신이 세 가지를 금하는 거지요. 내 심신이 삼손의 어머니다. 내 심신이 포도주를 금할 때 참사람이 삼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 그래서 믿는 사람이, 삼손이 주시려고 세 가지를 주의를 했습니다. 그게 내가 삼손입니다. 그래서 노릇을 할려면 삼손이 있는데 삼손 역할을 하려면 중생된 사람은 믿는 사람 그래서 삼손이 있는거지요, 그래서 삼손으로 삼손 역할을 하려면 이 세상을 좋아하면 삼손은 안 태어납니다. 깨끗할 때 삼손으로 출생이 되는 겁니다. 이건 집회 때 해석이 안 나왔는데 다 못하니까 원론적으로 들어가면 그렇습니다.
오늘은 두 가지입니다. 역사는 반복이 됩니다. 죄악성은 반복입니다. 반복되는 죄악성을 끊어야 세상의 종이 되지 않습니다. 오늘까지 반복해온 그것을 하면 죄를, 종이 됩니다. 이게 첫 번째 그래서 끊어야합니다. 한나는 통곡했습니다. 배가 고파야 음식이 맛있게 되는 것처럼 정말 가치관을 가지고 믿는 사람들이 천국 발견을 하고 그러는데 안가니까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생각하면서 삼손이라는 내 속에 있는 것은 애절한 간절함의 삼손의 출생이 많아지게 되겠고, 삼손되기를 원하냐 그러면 세상을 좋아하지 말아라, 빠지지 말아라, 이거 세 가지가 없으면 삼손은 안되는 겁니다. 말씀하신 거지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바처서 우리가 다 나실인이니까 이런 말씀 삼손이 출생해서 되기 위해서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