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8일 수밤
2026년 7월 8일 수밤
찬송: 117장
본문: 잠언 27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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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함축성이 있습니다. 다 기록하려고 하면 온 세상에 두어도 안될만큼 많은 분량의 말씀을 요약해서 기록하신 것이고, 많은 것을 농축을 하면, 풀면은 아주 많은 분량이 되는 것처럼 많은 이치가 들어있는게 성경입니다. 설탕이든지 소금이던지 이런 것은 아주 굉장히 많은 것을 담아서 다져서 농축을 해 놓으면 구슬만한, 농축 함축 그런 뜻입니다. 한 말씀 속에 많은 이치를 담아놨다는 겁니다. 이게 성경입니다. 언제든지 공부할 때에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고 원리를 가르치는 겁니다. 실제 적용되는 것은 살아가는 모든 것이 적용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한 말씀은 하나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고 많게 되는 겁니다. 말하자면 사람 익명이 있지요. 지칭하는 그런 단어가 13절에 무엇 무엇이 있습니까. 타인, 외인이 있고 14절에 누가 있지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 이웃이 있습니다. 15절에는요, 부녀가 있지요. 타인이 있고 외인이 있고 이웃이 있습니다. 13절에 외인과 타인은 나 말고 다른 사람, 외인은 더 멀리 바깥사람, 부녀는 여성들 여자 분들 그러면 이 말씀은 타인입니까. 나 외에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이 되느냐, 사람에게만 적용이 되느냐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사건에도 해당이 되고 그런 경우에도 해당이 된다는 겁니다. 보증이라는 것은 책임인데 책임진다는 말은 그런 사건 경우 형편 처지 어디든지 원리가 있다는 소립니다.
14절도 방편이 잘못되는 것도, 사람 관계가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이걸 넓히면 하나님과의 나의 관계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 불택자 불신자들은 인간관계가 최우선이고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 사람 중심 인본주의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고, 마지막은 인본주의가 그들의 완성입니다.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그러면 사람이 우선입니다. 종교보다 경제보다 정치보다 문화보다 어떤 것 보다 사람이 먼저다. 그게 최종의 종착점입니다. 인본주의입니다. 모든 것의 세상도 정치도 종교도 꼭대기 보면 그렇게 되게 되어있습니다. 굉장히 좋은 것이고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기독교를 깨닫지 못하면 그렇게 깨닫게 되는 것이고 온 세상이 최종적으로 향해 나아가는 인본주의가 참된 신앙의 최후의 적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참된 기독교는 마지막에 올라가다 보면 박멸해야하는 적이 뭐냐, 온 세상이 정치를 만나고 그래서 물리쳐야할 하나의 적이 뭐냐, 참된 기독교 신본 주의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불택자 불신자들은 위로 끊어져서 좌우로 아래로 좋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나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한 몸인 부부가 한 개, 온갖 종류 인간 관계들이 좌우되고 결정이 되게 되는 겁니다. 이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있어야하고 경험이 되어야하는 겁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있고 나를 중심으로 내가 아는 모든 것이 관계나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결정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런 말씀이 논리적으로 있게 되고 경험적으로 이게 있어야 되는 건데, 그래야 참 기도가 되고 생활이 바로 되게 되는 건데 이것을 모르고 느끼지 않으면 기도도 붕 뜬 기도 뭐가 뭔지 모르고 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어떻게 압니까. 성경이 참인지 거짓인지 어떻게 압니까. 신학교 교수님들이 성경을 안 믿는답니다. 목사님들도 많은 분들이 성경 안 믿는답니다. 어떻게 믿습니까 진짜인지 가짜인지, 나는 성경을 참인지, 그걸 보고 믿는 건데 하나님이 없으면 왜 합니까 던져버리지. 영생의 하늘나라 있으니까 그걸 어떻게 압니까. 성경 보고, 성경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궤변자들의 기록인지 어떻게 압니까. 사과가 신지 단지 어떻게 알 수 있죠. 먹어보니까 느낄 거 아닙니까. 먹어보니까 시네 다네, 실행해보니까 그 다음은요, 성경 말씀대로 되더라, 그렇게 하는 거지요. 그런 게 있습니까. 기도하니까 정확하게는 모르겠는데 들어주시는 거 같더라.
말씀을 어기니까 안되더라, 십일조를 하니까 경제복을 받더라, 믿는 사람이 연보를 제대로 안하면 연보해야할 신앙이 안하면, 엉뚱한데 다 나가버립니다. 또 돈을 잘못 쓰면 엉뚱한 돈 다 나가게 해버립니다. 차라리 뭐라하지. 그 많은 돈, 죄짓고, 다른 사람 죄짓게 만들고 재산 다 날려버리고, 어리석어도 그렇게 어리석습니다. 총공회 교인 우리 교회 교인 중에서도. 몇 천 만원을 억 단위를 한 두 달 사이에 날려버립니다. 믿어지십니까. 그렇게 어리석고 바보같은 게 인간입니다. 그 돈 차라리 연보를 하지, 연보해야할 분이 연보를 안하면 엉뚱한데에 다 날아갑니다. 변호사 비용 소송비 치료비로 사건 처리비로 다 나가버리던지. 뼈빠지게 번 돈 아무 유익없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정신 차려서 연보 생활 제대로 하는 거지요. 주일을 어기니까 일이 잘 안되더라, 죄를 지으니까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더라. 복을 받고 어기니까 화를 받더라. 이걸 경험해보고 또 해보고 그러면 쌓여서 말씀이 다 믿지는 못해도 거짓말 아니구나.
아브라함도 그렇게 된 겁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고, 그래서 우리는 원리를 말씀드리면서 불신자들은 성경에 죽은자라고 그랬습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르니까 인간이 전부입니다. 마지막에는 자기가 하나님입니다. 악의 최고봉입니다. 모든 수평과 관계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그렇게 기인된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기인되어있다. 가족 사이도 형제관도 이웃관계도 인관 관계도 건강까지도 전부 다가 바로되면 바로되게 되고 이게 잘못되면 흐트러지게 되는 겁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입니다.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책임지는 게 하나도 없느냐, 부모나 자녀는 책임져야합니다. 부부는 서로가 책임질 범위가 있습니다. 형제도 그렇습니다.
무조건 안하느냐, 그래서 잘 살펴야합니다. 이 세상은 무질서한 세상이 아닙니다. 인간 세상도 자연 만물도 질서적이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입니다. 잘 짜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진화론자들의 말이 다 엉터리인겁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진화론 그것이 양심으로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부인하면 이 우주 자체가 성립될 수 없으니까 말이 될 수 없는 겁니다. 합리적으로 하면 말이 안되는 엉터리입니다. 그렇게까지 세상이 이 세상에 나와 있는 어느 존재 하나도, 이 세상이 운영되는 자연의 원리를, 바람이 부는 것도 어떤 것도 질서 체계가 없이 되는 건 없습니다. 우리는 다 모르는데, 여름의 소나기를 몰아칠 때 이런 것도 원리가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게 있는 겁니다. 수십억도 넘을 모래알이 그 자리에 있을 예정을 두고 원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은 세상은 철저히 순서적입니다. 그래서 질서란 상하지요, 수평을 두고, 사람 사는 세상도 질서적이라서 상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특히나 공산주의자들은 평등을 원하는데 애초부터 말이 안되는 말입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고 어떤 동물은 평등하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부한 사람 가난한 사람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 만드는 거 안에서 차이를 차별하신 것이 아니고 차이를 두시고 질서로 운영해나간 것이기 때문에 그 질서는 영원을 계시하는 것이고 가르치는 것이고 그런거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있을 수 없게 되고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사람은 다 하나님이 지으셨고, 높은 사람, 귀한 사람 낮은 사람 천한 사람 각각 자기 정도에서 하나님께서 전해준 그게 있습니다. 질서 속에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에 자유성적이고 주권적이고 독립적이면서 무조건하고 남을 책임지지 마라 그게 아닌 겁니다. 내게 책임지지 않은 사람은 그러지 말라는 겁니다. 내게 책임을 지어준 사람은, 세 살 짜리 아이는 보살펴야합니다. 세 살 짜리 천방지축 아이는 던져놓고 하면 무책임 합니다. 세 살 짜리 아이의 공부를 대신해주는 것은 책임 범위 밖입니다.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원리를 살펴야합니다. 내게 책임지워주지 않은 책임은 성경에 금지한 것은 보증을 금지했습니다. 사람으로써 또 뭐가 있습니까. 맹세하지 말아라. 무조건 하면 안되는거지요. 약속입니다. 언약이고 서약입니다. 결혼식입니다. 이렇고 이렇게 해서 사랑하겠느뇨, 아니요. 그러면 결혼 안 해야죠.
최종적으로 주권자가 되지 말아라, 그런 뜻이지, 약속도 조심하라는 뜻이지, 또 하나는요. 원망하지 말아라. 모든 원망하는 건 마지막에 원망합니다. 믿는 사람의 원망은 마지막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보증을 하신 것은 무조건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 그런 범위 그런 일 그런 사건 그런 경우 할 수도 없고 하지 말아라, 하지 말라는 것은 내가 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게 많습니다. 보증이라는 것은 할 수 없는 겁니다.
세월 허비라는 거, 신풍교회 새벽기도 설교를 김은득 집사님이 하셨는데, 나한테 하는구나 그렇게 받았습니다. 은득 집사님이 저보고 하지 않았을 건데 나한테 하는 설교, 제 설교를 받았습니다. 충성의 밀도가 있습니다. 참된 종들의 충성의 밀도는 촘촘하고 높습니다. 밀도가 낮을수록 허틀어지는 겁니다. 분 단위로 쪼개서, 그래서 허비가 되지 않습니다. 충성하는 분들은 그렇게 살죠. 참된 종들의 충성 참 알차게 밀도높게 그겁니다. 내 생활이 하나님께서 맡기지 않은 상황과 경우와 전부 다가 허비가 되는 게 됩니다. 누가 가져갔는지 그렇게 되는 겁니다. 이게 옷을 취하라 그런 뜻입니다. 더욱이 나와 무관한 겁니다. 모르는 사람이니까 내가 모르는 사람의 보증을 왜 서야하는 겁니까. 이런 것을 가르켜서 지나가는 개의 귀를 잡아당긴다. 그러면 물리지요. 전혀 상관없는 그게 뭡니까. 사람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은 보증서줄 사람이 있습니까.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라. 바깥, 모르는 사라인데 보증 서줄 사람이 있을까. 정신나간 사람 그럴 수 있습니다. 언제부터 생겼느냐, 타락 전 에덴 동산에서부터 미혹이 있었습니다. 하와의 큰 죄 중 하나가 아담을 미혹한 죄, 선악과를 따 먹은 죄, 뱀에게 미혹을 당한 죄. 미혹 받는 거 그거는 되는 겁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 그런 분이 계십니다. 좋은 겁니다. 세상 그렇게 신앙도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외인들 보증 서줄 사람이 있습니까. 해당이 안되지요. 믿는 사람에게 외인은 세상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이 아는 사람일지라도 친구 친척 가족이라서 안 믿는 사람이면 외인인데 보증서지 말아라 그럴까 되겠습니다만은 외인은 사람인데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상황 경우 사건, 그래서 세상 사람도 해당이 되고 세상을 말하는 겁니다. 이 세상을 책임지려고, 신앙을 내주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그래서 직장을 붙들기 위해서 주일을 양보하지 말알. 직장에서 잘해서 승진하기 위해서 예배를 담보로 하지 말아라. 자기 자신을 담보로 해주는 겁니다. 이 세상 붙들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담보로 내줬으니까, 인질입니다. 포로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럴 겁니다. 북한 같은 데에서는 다른 나라의 자유 진영에 가까운 나라를 보낼 때는 가족들은 안 보낸다고 하지요. 뭐든지 재물이던 학업이든 뭐든지 그것을 위해서 신앙을 양보하면 포로로 잡힌 것이다. 이미 죽은 겁니다. 자유가 없는 거지요.
14절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하면 말씀을 가지고 원리를 가지고 적용하는 겁니다. 이름을 축복하는데, 다른 사람 고쳐주는 것도 일을 하는 것도 일에서 이렇게 때와 장소 방법이 잘못되면 부작용 역작용이 생겨지게 되는 겁니다. 큰소리로 그 사람을 축복하면 복을 빌어주는 게 좋은 겁니다. 요즘은 심방도 참 가기 어렵습니다. 심방을 갔는데, 80년도 저희들 서부교회 반사할 때는 시대가 그런 시대니까. 심방가면 그냥 뭐 보통 서부교회 반사 선생님들이 새벽기도 마치고 기도하고 바로 갑니다. 그러면 캄캄 겨울에는 한 밤 중입니다. 가면 차마 이름을 부를 만한 집은 부릅니다. 안 그런 집은 돕니다 기도하면서. 날이 되면 좀 퍼르는데 시간 급하면 불러서 문 열고 데리고 가버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이불 덮고 자고 있습니다. 요즘 그랬다간은 신고 들어옵니다. 말도 못 붙입니다.
전도도 시대 따라 달라야합니다. 요즘은 길거리에서 전도지 나누고 메가폰 들고 예수 믿읍시다 하면 잡아버립니다. 전도한다고, 버스 안에서 열차 안에서 전도한다고 그러면 오히려 복음을 막아버릴 수 있습니다. 접대를 하고 싶은데, 받는 사람을 하지 말고 선물을 줘버리면 난처할 수 있고 미안할 수 있습니다. 안 받으면 상관이 없는데 접대비로 준다. 참 민망하죠 받는 사람. 그런 경우 다 해당이 되는 겁니다.
비오는 날에 이어떨어지는 물방울 맞는 말일지도, 절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남편 마음이 아내 마음이 어떤지도 몰라도 필요한 말이니까 설교까지도 열 세 시간 하지만, 오전 예배는 11시 기준으로 2-3분, 짧게 하면 우리 전체 손해될까 싶어서 맞추고 길면 제가 알면 3시 7분까지 간 적은 있을겁니다. 그런 것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하는데까지 그래서 마태복음 18장 기어코 해 나가는 것은 돈 많은 엄마들이 막 뺑뺑이로 하는데 자식을 위해서 자기 체면을 세우는 겁니다. 자기 성격, 자기 성향, 그 사람이 성경이라고 그렇게 한 적 있습니다. 그건 잘못된거죠. 절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최선은 다하되 하나님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제어한다.
이른 아침에 때와 장소, 절제가 필요하다. 세 가지를 기억하고 사람 관계도 그렇고 전부 필요한 말씀들 기억하십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