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8일 주일 오후
2026년 6월 28일 주일 오후
찬송: 59장
본문: 잠언 27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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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전체 제목은 고치는 복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므로 그분에게 맞춰야하는 것이고 많은 백성이 살아나가야하니까 서로 나가야하니까 이질적인 거, 이성적인 거 그런 거 안되기 때문에 동질 동성의 그런 사람으로, 하나님 같은 천국에 맞는 본질 본성, 그 중심은 하나님이고 하늘나라고 진리의 말씀이고 돕는 그런 조력의 역사들은 진리와 성경이고 이런 가운데에서 온전하게 나오는 것이고 우리의 구원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기 위해서 혼자가 아니고 하늘 나라 많은 사는 그 나라에 이질되지 않고 안 맞지 않고 한 몸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많은 세포 생명들이 모여서 이루고 있으나 이질되지 않고 유기적으로 맞아서 한 몸으로 작용하고 움직여지게 되는 겁니다. 남의 살을 내 살에 붙이면 안 붙는 겁니다. 거기에 맞춰 나가는거 그러도록 만들어가는 거 살아가다 보니까 안 맞는 마음과 생활과 습성이 생기니까 이게 구원이고 복이고 고쳐가는데에는 많은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 주변에 여러 면의 관계적인 사람들을 맺어놓으신 겁니다. 여러 명의 관계로 맺어주신 것은 어떻게 하라고요, 뭐하라고 맺어주셨습니까. 서로 고쳐가라고, 서로 고쳐가는 인인관계 이게 부제입니다. 본문에 보니까 친구도 나오고 아버지 친구도 있고 형제도 나오고 친구도 인인 관계 아버지 친구도 인인 관계 형제도 이웃도 인인관계입니다. 이게 잘못되면 거기 많은 문제가 생겨지는 겁니다.
관계란 연결되는 뜻도 있습니다. 파이프를 잘못 연결 시키면 맞는 거 있어야겠죠. 비뚤게 연결시키면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인인관계를 맺어가야한다 그런 게 중심 내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나를 고치기 위해서 인인관계를 바로 맞춰야한다.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주일을 어기는 사람은 주일 어기는 걸 고쳐야합니다. 예배 시간을 예사로 빠지는 사람은 그거 안됩니다. 새벽 기도 빠지는 사람은 고쳐야합니다. 새벽 기도 빠지는 건 안 고쳐도 됩니까. 필수입니까 선택입니까. 필수입니다. 새벽기도는 나오는 게 정상입니다. 안 나와도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신앙이 다르니까 강요하지 않을 뿐입니다. 안 나오면 그 기능은 그럴만한 하나님 보실 때 공위의 심판을 볼 때 잠잔다고 안 나오면 그 기능은 천국에 못 갑니다.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어서 본의 아니가 잠든 그건 어쩔 수 없으나, 나올 수 있는데 안 나오는 것은 예사로 포기하는 것은 천국갈까 하는 겁니다.
기도 안 하는 거 고쳐야합니다. 예배 때마다 고쳐야합니다. 고쳐 나가는 겁니다. 지난 주 월요일이지요. 제가 설교하면 이렇게 앉습니다. 재독을 하면 앞에 텅 비워놓고 뒤에 앉습니다. 월요일에 새벽 기도 많이 나오시거든요. 뒤에 앉은 자리가 없으니까 앞으로 들어오니까. 그렇게 고치면 되는 겁니다. 아이들이 예배당에서 뛰고 굴리는 것도 고쳐야합니다. 김목인 어딨습니까. 안 보이네, 저기 있구나. 삼촌 옆에 있네 지난 주에도 차하고 부딪칠 뻔했고 손가락 찢여서 다쳤고. 성경에 두 번은 실행입니다. 한 아이가 두 번 다치면 특별히 조심하라는 겁니다. 어릴 때부터 사랑도 많이 받았고 소망도 큰데 고쳐나가야하는 거지요. 정신없이 뛰어다는 것도 고쳐야하고 탕탕 열고닫고 예배당 지하실에 엉망을 만드는 것도 안 고치면 됩니까. 아무렇게나 고쳐놓고 그런 거 다 고치는 겁니다. 그런 생활 하나 하나를 다 고쳐가는 겁니다. 뭘 고치는 게 사람을 고치는 겁니까.
말, 행동을 해야 사람이 고쳐집니다. 생활 안 고치면 평생 가도 안 고쳐집니다. 행동 습성 고치는 게 사람을 고치는 것이고 우는 얼굴을 3년을 그리면 우는 상이 된다. 그러면 웃는 상이 된다. 자꾸 그러니까 그렇게 되는 거죠. 자기도 모르게 찡그립니다. 사람은 언행입니다. 생활로 그렇기 때문에 집에서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우리 학생은 아이는 100점입니다. 그런데 예배 끝나고 나서 예배 때 너무 잘하니까 놔주는데 그때 지나치게 방종이 되어버리면 안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중이 되고 헛일이 됩니다. 예배시간 잘 하면서 실제로 적용해 고쳐야 사람이 고쳐지게 되는 겁니다. 고치는 겁니다. 1절에 정의는 고치는 것에 만족하지 말아라, 내일 일을 모른다. 고치는 기준은 너 자신이 아니고 외인과 타인이다. 그게 기준이다. 친구의 통책은 참된 사랑입니다. 배가 부르면 꿀도 싫습니다. 주리면 쓴 것도 달게 먹습니다. 고치는 게 주리면 고치고 싶은데 잘 모르면 어떤 말 해도 달게 받습니다. 고치는 것에 주리면 이 정도 하면 됐지 그러면 아무리 좋은 말도 듣기 싫어합니다.
고치는 환경이라는 것은 한 것은 옮기지만은 직장이든 직원이든 교회든 고쳐나가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이게 아주 중요한 겁니다. 현실을 임의로 바꾸지 마라, 환경을 떠나는 것은 불행입니다. 고치는 게 중심이 되어있습니다. 바로 잡도록, 10절에 내 친구와 내 아비의 친구, 친구는 두 가지로 정의를 해봤지요. 나를 잘 아는 사람 나와 비슷하면서 나를 아는 사람, 오래 함께 지냄으로 아는 사람, 나이도 그럴 것이고 형편도 그럴 것이고 그런 관계, 다르면 많아지면 안 친해지죠. 함께 가깝게 지내면서 나를 잘 아는 동시의 나의 장단점을 알고만 있고 말을 안해주면 안됩니다. 고칠 것은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주변에 있습니까, 고쳐야합니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내 장점을 고쳐주는 것이 지적해주는 사람이 있나, 돌아봐야합니다. 이게 친구입니다. 이런 친구 없으면 사람 사는 세상에 80억이 살고 출석 교인이 140명 되고 많잖습니까. 잘못을 지적해줄, 친구가 없다. 아는 사람은 많을 건데, 주변에 내 가정 형편 경제형편, 네 실력 주변에 있지요. 있습니까, 있는지 봐야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말을 해주나, 고칠 점을 말을 해주나, 말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으면 고쳐주는 인인관계가 잘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듣기 싫은 해주는 사람은 없다. 나에게 고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고치라고 말해주면 화를 내니까, 성을 내니까 나중에는 안 나와도 원수가 될 거 같으니까. 그 사람은 친구 없는 사람이 됩니다. 달게 받는 사람은 자꾸 알려주니까 복입니다. 친구가 많은 사람인데 나를 아는 사람을 많은데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고쳐주는 인인관계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성격부터 고쳐야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첫째가 하나님 관계고, 하나님을 삼는 것이 신앙의 첫째고 사람을 수입하는 게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끊어놓고 자기 사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함께 가는 그런 신앙의 사람들이 많으면 복입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면, 진주를 밟고 물려고 달려듭니다. 진주를 모르니까, 옳을 걸 말해주는데 성내는 사람은 진주인데 성내는 사람은 진주를 밟고 달려드는 돼지죠. 심각하게 돌아봐야합니다. 내 아비의 친구를 하지 말아라, 더 귀한 그런 분들입니다. 신앙의 연조라던지 경험 체험이라든지 나보다 위에 있으면서 나보다 더 잘 아는데 주일 학생들은 말씀 잘 들어야합니다. 자기보다 부모님이 자기를 더 잘 아니까 그런 분들은 잘 순종하고 모셔야하는데 그런 분들 말씀도 안 들으면 틀려먹은 거지요.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아라. 잘 순종을 하고 버리지 말아라, 그리고 두 번째 환란 날에 고치다 보면 못 고쳐서 환란오고 고치려하니까 환란이 오고, 자원에서 일부러 환란을 만들지 않으나 옳은 길 만들다보면 사고가 안 나는데 좁은 길을 가다보면 사고 날 확률이 많아집니다. 환란이라는 말은 어렵다는 겁니다. 여러 모로 곤란을 겪을 때 고쳐 나가려고 할 때 연단시키니까 어려움 만나고 원인 만날 때 형제 집에 들어가지 말아라, 원래 한 몸이었다. 가까운 이웃이 누구보다 낫다고요, 그 먼 형제를 말합니다. 멀리된 원래는 하나였는데 그래서 오전에 말씀드린대로, 한 사람은 믿게되고 안 믿었습니다. 안 믿은 형제는 에서는 신앙의 곁길로 나갔는데 야곱도 부자가 되었지만 야곱이 잘못되었다면 실패했다면 에서에게 가서 형님 나도 도와주십시오 하고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는 겁니다.
옛날에 모친에게 들은 말, 모래 밭에 혀를 박고 죽어도 거기는 안 간다.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느 집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게 있습니다. 벌어졌는데 잘못되었는데 사이 벌어진 그 사람에게 신세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안 믿는 사람도 말하는 겁니다. 일본이 이건 다를 수 있으나 한국을 잡아먹고 독립군들을 고문하면서 차라리 죽여라 이런 원리인겁니다. 회개해서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이고 고난 받는 거지, 고난 피하려고 혈통이라고 혈육이라고 친구라고 신세지지 말아라, 그겁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대환란날에 형제 집에 들어가지 말아라, 그래서 위에 할아버지인가 이분이 예수믿고 다 부수다가 집안 사람들에게 몰매맞고 쫓겨났다고 그리고 순교하시고 쫓겨나서 갈 데가 없는데, 험한 집안에 가면 되겠지만 안 갔닸지요. 그곳을 신앙 떄문에 벗어나서 안 가는 겁니다. 이삭의 아내를 아브라함이 보낼 때 어디로 했지요. 거기를 보냈습니다. 가서 만났는데 데려오면 되는데 안 올라고 하면 다시하고 갈까요, 돌아가는 거 아니다. 신앙 걸음을 돌아갔는데 그건 아니다. 돌아가는 거 아니다. 탈선된 길에서 나와서 옳은 길에 섰으면 거기 끝까지 가는 거지 팔아먹는 건 신앙의 정조를 팔아먹는 겁니다. 옛날에 밥 팔아서 똥사먹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운 이웃이 형제보다 낫다, 함께 살다보니까 멀리 가버린 형제보다 나은 겁니다. 서부교회 총공회 출신입니다. 모태로부터 그렇습니다. 백 목사님에게 배웠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목사님 가시고 됐는데 대부분 교인들은 형제지요. 그런데 먼 형제입니다. 여기 원래 분들은 이웃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하다 보니 가까운 이웃이 되었습니다. 이게 낫지요.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은 겁니다. 한 공회 안에 있다가도 살아가다 보니까 나눠지는 거지요. 신앙의 노선이 없어서 먼 형제가 되었습니다.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먼 형제보다 나은 겁니다. 11절, 내 아들에 지혜를 얻고 아들은 내일의 자기라고 했지요. 오늘의 나를 이어갈, 내일의 내가 아들이다. 대가 끊어지는 겁니다. 딸을 다 좋아하고 그러는데 신앙으로 이어지면 상관이 없으나 일반적으로 대를 이어가지 못하는 게 딸입니다. 백 목사님 생전에 가까운 분들은 거의 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신풍목사님 딸이 몇이지요. 딸 없습니다 아들만 넷입니다. 지금은 나갔지만 편집실 소장이었던 분 아들 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는 아들 딸 구별이 없습니다. 천국에는 장가도 안가고 시집도 안 가고. 이번에 그 질문해서 부활에 대해서 설명하시는데 꼭 읽어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나를 기뻐하시는 겁니다. 사람의 온전을 도덕을 기준으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어떤 조사님이 목회하시는데 설교 평소에 말이 있어서 기도해보니까 기도하는 중에 입에서 시커먼 머리카락 같은 게 계속 나온답니다. 그 분이 설교하는데 머리카락 같은 게 나오는데 이걸 받아먹고 앉았더랍니다. 하고 들어보니까 전부 공명의 도를 전한다고 하덥니다. 성경 말씀 진리의 도가 아니고 공명의 도를 전하고 있었다고. 어떤 사람이든지 기준 잣대가 있었더라면 온전한 사람이란, 공자처럼 되는 겁니다. 삼강오륜이지요. 이런 걸 기준가지고 있고 나는 삼강오륜에 틀린 게 없다. 그러면 그 사람은 못 고칩니다. 고치는 기준 목표는 뭐냐,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말씀으로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탄하사, 하나님의 한탄은 후예가 아니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한탄하게 만든 사람들을 만든 겁니다. 그래서 사랑의 표현을 하신 겁니다.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는 없습니다. 어떤 근거 가지고 달려드느냐, 아무게씨 예사로 빼놓고 계명도 안 지키는데 복을 지키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회의를 하시는데 사단도 왔다고 했습니다. 네가 어디갔다 오느냐, 세상 돌아오다 왔느냐, 욥을 봤느냐, 그만큼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렇게 복을 주시는데 저라도 그러겠습니다. 욥을 시험해봐라, 그래서 사탄에게 욥을 마음껏 치도록 했습니다. 그래도 원망하지 않으니까 몸을 쳐봐라, 생명 건드리지 말고 만신창이 만들었지요. 다 나와버려서 마귀에게 할 말이 없는데 회개시키니까 그때는 하이고 뭐 두드려맞고 그 지경되어도 할 말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걸 가지고 신앙의 세계를 가지는 겁니다. 천국의 세계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우리 공회의 장점 중 하나가 이걸 가져간다는 거지요.
시무투표도 이런 것도, 한 사람이 반대해서 50명을 데려다가 부정투표인데 그래도 한 명이 그만큼 반대하는데 있으면 되겠냐, 옮겨라. 원수가 와서 샅샅이 살펴도 트집 잡을 거리를 만들지 마라, 욥을 봐라 다윗을 봐라 아브라함 이삭을 봐라. 할 말이 있지 않으냐. 그 비방이 하나님의 아들들 때문에 그런데 마귀가 할 말이 없는거지요. 부모가 자식을 잘 길러놓으면 영화가 됩니다. 잘못 길러놓으면 안됩니다. 어떤 유치원에서 꼬맹이 가방에다가 자식 농사 잘 지었네 그렇게 만들어놨더만요. 달려드는 그 원수 마귀에게 할 말이 있겠다. 슬기로운 자는, 기름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자입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준비하는 자입니다. 시험 준비, 환란 준비, 재림 준비.
안 믿는 사람들은 뭐가 없다고 그랬던가요. 무엇이 없다고 그랬던가요, 믿는 사람은 불가능이 없다고 했습니다. 나폴레옹이 그랬는데 그건 거짓말이고. 믿는 사람은 불가능이 없다. 하나님과 결합되면 다 되는 겁니다.
주관에 갇히고 그러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현재를 벗어나고 자기를 벗어나고 멀리를 보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고쳐서 재앙을 피합니다. 어리석은자는 고치지 않고 미련 부리다가 밟는 겁니다.
크게 세 가지. 친구와 아버지 친구를 버리지 말아라, 잘못된 걸 지적해주고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던가, 지혜를 얻고 고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면 좋겠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고 피합니다. 말씀 가지고 고치는 우리가 되고 인인 관계를 맺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