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3일 수밤
2026년 6월 3일 수밤
찬송: 109장
본문: 요한복음 18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잠언 27장 말씀을 재독하고 살펴나가다가 하나님께서 필요한 현실을 주셨고 현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이 말씀이 필요하다 싶어서 그랬습니다. 우라에게 전부 다가 필요한 말씀인데 그때 그때에 따라서 달라지겠습니다. 본문 말씀도 과정은 다를지라도 들어보면 같습니다. 네 가지 면으로 생각해봅시다. 공과 제목을 구원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내용 중에서 무엇에 해당됩니까. 무리가 구원입니다. 양의 복음자리인데 양의 우리가 양의 복음자리고 양은 우리가 양이고 우리의 복음지라입니다. 천국이라 그런 뜻도 됩니다. 천국은 우리에게 복음자리고 구원이다. 또 다른 말로 하면 구원의 성취다라고 하는 겁니다. 장소적인 말을 한다면 천국이 공간의 개념을 초월하지만 우리 구원이고 행위적으로 활동적인 면으로 말하면 구원의 성취가 구원이다. 우리 모든 생활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 과정입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면 이루어가는 겁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현실마다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 이루어지는 구원은 승패가 있습니다. 성공 실패 승리와 패전이 현실에서 결정이 되고 성공하면 구원이 되고 이기면 구원이 되고 실패 패전하면 구원은 안됩니다.
내가 실패하고 패전하면 무리에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천국에 못 들어간다 그것이지요. 기본 구원 건설구원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500년 칼빈의 기본 구원, 확정, 이걸 가지고 천년 천주교의 미혹을 다 끊어버려서 대개혁을 이루었고 500년 세월에 수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여낸 참 하나님의 종이 되었고 예수 믿으면 천국 가면은 다 되는 것이냐. 현실을 살아가면서 적용이 되기 때문에 반복 안할 수가 없는 겁니다. 믿는다고 이름만하고 가지면 살아가면서 실제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몸에 모든 활동이 있어서 평생을 통해서 수도 없이 이루어지는데 활동 작용을 따져보니까 죄도 있고 의도 있는데 죄를 짓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이냐, 믿는 사람인데 죄를 짓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지옥간다 이게 지금까지의 교리였습니다. 그래서 중생된 사람은 죄를 못 짓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를 때는 몰랐는데 믿는데, 여기 다 예수 믿으시지요, 하나님 믿으시지요. 죄 안 짓습니까. 그러면 사도바울보다 나은 분이고 에녹 정도 되는 분입니다.
살아가다 보니까 믿는 내가, 오늘은 아침에는 죄 안 지었는데 예배 시간에는 죄 안 지었는데 마치고 가서 아침먹고 출근하다보니 또 죄를 짓는데, 그러면 지옥갑니까. 또 천국갑니까. 하루 수십번씩 천국갔다 죽었다 살았다, 말이 됩니까. 그래서 기본 구원 건설 구원이 그렇게 중요한 겁니다. 이번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구원의 문입니다. 구원과 문 두 가지 입니까. 이 둘이 가장 중요하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야하는데 우리에 가야하는데 우리가 양의 집이고 보금자리입니다. 먹기도하고 잠도 자고 새끼도 낳고, 우리입니다. 우리는 양에게 보금자리다. 우리 보금자리는 천국입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는 우리는 주님 대속으로 하나님의 택함으로 천국으로 가게 되어있는데 천국 가는 과정 과정 천로역정에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안 지을 수도 있고, 우리는 못 들어가는 것이고 건설구원 성화구원적으로 의를 행하면 들어가는 것이고, 천국이면서 구원이면서 구원의 성취가 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학생들이 시험을 치면 월말고사에서 평균 90점, 그러면 그 학생이 전부 다입니까. 기말 고사에서는 80점, 연말에는 95점 그 다음에는 75점, 평균 내보니까 점점 변하는 거지요. 한 번 구원받았으면 변동없는 구원이다. 기본 구원입니다. 구원 받았어도 죄 지으면 구원이 안되는 겁니다. 건설구원 성화구원 행위구원. 그 기능화 된 것만 줄여서 하늘나라 가게 된다는 거지요. 양은 우리에 들어가야합니다. 양은 우리로 가야합니다. 믿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 신앙 생활하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하나는 이미 정해져있는 겁니다. 예수님 믿고 천국가려고, 그래서 다니는 겁니다. 교회는 복 받으러 온다, 사탕발림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복 받으러 온다 이건 사탕 주면서 오는 겁니다. 쓴 약에다가 달콤한 거 입힌 거처럼, 예수님 믿어서 천국가려고, 그래서 믿는 겁니다.
왜 교회를 다니느냐, 진리를 배워서 참사람이 되려고, 예배를 드리려고, 예배시간에 진리를 들어야하니까 그래서 예배시간에 찬송을 아무리 불러도, 찬송을 잘 부르면 찬송 가사 속에 진리가 들어있습니다. 가사를 통해서 깨달아서 고치면 됩니다만 그건 감성이기 때문에, 찬송 가사는 한정이니까. 아무리 찬송 불러서 눈물 흘리고 마음이 뜨겁고 울고 불고해도 찬송이 고치지 않으면 암만 불러도 헛일입니다. 그래서 고치기 위해서 고치려면 뭐부터 해야합니까. 고치기 위해서 뭐부터 해야합니까. 뭐하자 뭐하자 뭐하자. 첫째, 배우자. 배우는 게 뭐하는 거지요. 안다는 말입니다. 의사가 돌팔이인데 왜 아프지, 돌팔이입니다. 진짜 의사는 보면 아프네 걸렸네 안답니다. 알아야 그 다음 고치지요. 알기 위해서는요, 읽어야 알지요. 들어야하지요. 그래서 듣는 겁니다. 그래서 예배시간이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예배를 못 듣게하는 잠마귀는 왕마귀고 내 머리 속에 다른 걸 집어넣는 마귀도 대마귀입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도 오전 마치고 뛰어놀지 말고, 은득 집사님이나 몇 분은 학생들 때문에 돌아다녀야하니까. 양면이 있습니다.
중간반 반사들에게 학생 데려오다고 외치시다가 졸면 학생 데려온다고, 제가 졸아, 남 구원하고 저는 죽어. 예배 시간에 피곤할만큼 졸려고 하면 안 조는 게 낫습니다. 그래서 내 구원이 먼저다. 어느정도 장성하면 그게 다 되지만 신앙 생활의 목적은 천국입니다. 천국의 참사람입니다. 오늘 날 이게 가장 기본인데 교회의 기본이고 신앙의 기본이고 믿는 사람의 기본인데 천국이 되어서 내가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가지고 지금 세상이 천국인데 뭐가 필요해. 맛있는 거 꽉 찼지요 편리한 거 꽉 찼지요, 불편한 게 없는데 그래서 예수믿어서 천국 가십시오, 그게 세상 사람들이고 세상에는 점점 뭐가 많아지죠. 미국나라 무신론이 절반입니다. 우리나라는 더할겁니다. 한때는 사람들 비위 맞춘다고 노래하고 다 하다가, 문제는 시대 자체가 교회들이 덕을 못 끼친 게 크고 너무 좋은 시대가 되어서 이 세상에 천국이니까 다른 천국은 없어도 되는 거지요. 믿는 사람들도 보험을 드는 거지요. 자동차 생명 보험,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보험으로 믿을 겁니다. 그래서 믿기는 믿는데 건설 구원에 대해서는 허무하게 되어지는 겁니다. 시대가 그러기 때문에 감안은 하실겁니다. 그때 시대와 지금 시대는 시대가 다릅니다. 다른 차원으로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때 죄는 죄고, 어려운 데 짓는 죄는 죄가 아닌가요.
지금은 기본이 다 무너진 때입니다. 신앙의 기본이 천국가는 거, 하나님 뜻에 맞는 그 나라 사람되는 거. 이게 기본입니다. 이게 없는 시대가 지금입니다. 우리도 돌아봐야합니다. 두 번째, 우리는 구원입니다. 우리에 들어가려면 구원을 얻으려면 문으로 들어가야한다, 양의 우리에는 문으로 가야하지 다른 데로 넘어간다, 그러면 담 넘어가는 거고 도둑이지요.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다. 우리에는 반드시 문으로 들어오는 거다. 우리로 들어가는 문이란 방편이 문이지요. 우리로 들어가려면 그 만든 목장 주인이 우리를 만들어 놓고 우리에 들어가는 다른 건 다 막아놓고, 사람 사는 모든 건물, 목적을 가지고 놓은 모든 건물은 창고든 뭐든 다 있습니다. 문으로 들어가야 무리에 들어갑니다. 활동적으로 구원 성취입니다. 구원이 이루어지려면 구원 성취가 되려면 문으로 들어가야한다. 나는 우리의 문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문이다, 아버지께로 내가 곧 길이오 진리오 생명이니까 주님을 통하지 않고는 근거하지 않고는 바탕삼지 않고는,
열심히 계약서를 썼습니다. 그런데 보니까 계약서 가지고 구청이나 법원에 서류내려니까 이건 못 씁니다 합니다. 다 바르게 썼는데 도장이 없네요, 싸인이 없네요, 도장 찍지 않은 계약서를 잘못 썼습니까. 그거 잘못썼습니다. 그러면 아 잘못썼습니까 합니까. 잘못 계약서를 쓰고 싸인을 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도장이라는 것은 자기를 거는 겁니다. 책임이고, 그 도장이 없으면 아무 효력이 없는 겁니다. 주님으로 통하는 대속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그래서 혼인잔치에 길거리에 가서 아무나 다 데려오라고 했는데 조건이 예복을 다 입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예복을 안 입었습니다. 그래서 쫓아내버려라. 그 예복이 뭐냐, 도장입니다. 주님 대속입니다. 주님 대속입지 않고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게 문입니다. 반드시 예수를 믿어야 천국 가는 겁니다.
입질 하는데, 말하자면 분위기를 보는 거지요. 던지고 파악하고 차별금지법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던져보고 안되겠으면 거두고 그래서 살살 만들어서 통과시켜버립니다. 그래서 또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여론이 심하면 그냥 해본 소리야 하고 또 꺼냅니다. 거기는 다른 종교에는 구원없습니다 그러면 지옥갑니다. 설교 마음대로 못합니다. 차별금지법, 그리고 왜 남자끼리 결혼하냐 라고 하면 처벌시킵니다. 법적으로 남자끼리 여자끼리 결혼하는 걸 나쁘다고 못하는데. 그래서 태반 넘는 사람들이 따라가는 겁니다. 정치가들 중에서 현재 나라에 상황 보고 바른말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반드시 문으로 들어가야합니다. 다른 데로 넘어가지 않는자는 절도며 강도입니다. 다른 방법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하면 절도며 강도입니다.
예수만 천국인데, 부처믿어 천국갑니다 하면 도둑인데, 그래서 선지자가 많은 고초를 겪었는데 저도 그렇고 젊은 분들도 그렇게 설교를 하셔야겠는데 아마 죽이진 않을텐데 감옥에는 갈 수 있습니다. 예수는 대속입니다. 기본 구원이고 건설 구원도 대속을 떼놓고 건설구원은 없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문을 통하지 않고는 사활의 대속이라는 문을 통하지 않고는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능 구원이 뭐냐, 죄를 안 짓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이 세상이 뭐라하던 말든 그렇게 되는 거지요. 그게 문입니다, 양의 무리, 문, 양과 목자가 있습니다.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문을 열어줍니다. 열어주면 목자가 문을 열고 양은 목자음성을 듣습니다. 그래서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냅니다.
양 목자는 반드시 불러내고 앞서가는 겁니다. 앞서가면 양들이 듣고 따라오는데 앞서 따라오지 않으면 양들은 따라오지 않습니다. 목자로써 양을 인도해서 가면 우리로 먼저 가고, 골 주로 앞서가고 앞서가면 양들이 듣고 따라오고, 그래서 주님이 목자장으로써 가장 먼저 앞서가는 겁니다. 그래서 열 두 제자가 따라갔고 선지자들이 따라갔습니다. 우리도 내가 앞서가면, 내가 된만큼, 교회가 된만큼 되는 것이고 반사 선생님이 된만큼 약간 거리가 있을 수 있으나, 주일학교 부장이 된 만큼, 중간반장이 된 만큼 그렇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관계로도 맺어주시는 것은 혈육이던지 동류 관계던지 심지어 이해 관계로 맺어져도 내 주변에 하나님께서 맻혀주신 것은 뭔가 뜻이 있는 겁니다. 거래관계로 맺어진 것이라도 사업하다 보니까 그러면 나 믿는 사람인 줄 압니다. 그래서 나를 보고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면 내게 속한 양이 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맺어준 것이 아닙니다. 그 양은 책임이 있기 때문에 내가 된만큼 그 사람도 변화가 된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가는 것은 그렇게 되는 겁니다. 보디발 집에서도 총리가 된 다음에도 바뀌어버립니다. 앞서가니까 가는 거지요. 그래서 믿는 사람이 학교를 다녀도 공부를 하지만 공부 목적이 아니고 하나의 방편이고 학교라는 현실에서 양의 목자로써 앞서가는 생활, 믿는 사람으로써 살아가는 생활을 하게 되면은 거기서 그 사람에게 속한 양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직장생활 잘해서 돈 받으려고 하는 걸 목적으로 하면 안되고 그래서 이용당해서 아니고 살펴가면서 진실하게 정확하게 하는 그런 사람으로써의 생활이 잘 보이면 자기의 속한 양은 구원이 되는 겁니다. 제가 참 그렇게 많이 못해서 큰소리를 못하는데 그런 분들이 많았습니다. 앞서가면, 내가 된만큼 하시면 된다. 양은 우리 신앙 생활의 목적입니다. 이걸 잃어버리면 다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기억해야합니다. 과연 그렇게 믿고 있는가. 이 우리는 반드시 문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예수 빼는 구원은 없습니다. 그래서 문지기 도움이 있습니다. 내게 속한 양이 있습니다. 어디 있든지 내 양, 말을 따라옵니다. 내가 된 만큼 되는 겁니다. 내가 된만큼 된다, 네 가지를 기억하면서 제목을 기억하고 우리 신앙을 한 번 더 돌아보십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