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31일 주일 오후
2026년 5월 31일 주일 오후
찬송: 156장
본문: 요한복음 10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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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으나 양의 우리 비유입니다. 이 비유로 말씀을 하셨는데 비유니까 바로 이해하진 못해도 왜 이들은 몰랐을까. 비유로 말씀하셨으나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못함이라, 제자들도 모를 때가 많았습니다. 알기 쉬운 것도 모르는 게 많았습니다. 왜 모를까. 들어도 모르는 거 많이 있겠습니다. 말을 듣는데 어렵고 힘드는 거 과학의 원리 수학의 공식 영어나 외국어를 말하면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런데 상식적인 걸 말하면 알아야하는데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을 말해도 모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 말씀 하신 것은 그런 뜻이 더러 있다고 하겠습니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목자다. 다른 데로 넘어가는 사람은 주인이 아니고 목자도 아닙니다. 도둑입니다. 문으로 들어가야 양의 목자다. 문지기가 문을 열어줍니다. 문을 열어주면 목자가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서 인도하여냅니다. 익숙하니까, 강아지는 주인을 알아보지요. 소도 주인을 알아봅니다.
소 얼굴 우리는 구별 못하는데 소를 자꾸 보면 가리게 될 줄 알겁니다. 양의 무리에 들어가서 문으로 들어가서 목자니까, 문지기가 문을 열어줍니다. 양은 목자의 목소리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김진우 김신우 김동건 김민준 엄재현 이름을 부르면 양들이 음성을 듣고 따라나옵니다. 목사가 따라 나오니까 그렇습니다. 목자가 양을 불러내서 푸른 곳에 가겠죠. 다 먹고 나면 다시 데리고 우리를 나오겠지요. 그렇게 합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고 앞서가면 따라가는데 다른 사람이 낯선 사람이 부르면 양들이 누구지, 음성을 모르기 때문에 따라가지 않고 도리어 도망을 친다. 이게 어렵습니까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안 어렵지요. 그런데 이 어렵지 않은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듣는 사람이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안의 뜻은 어려운데, 왜 모를까. 들어도 모르는 이유, 읽어도 모르는 이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전체적으로 안 듣고 안 보면 모릅니다. 들었는데, 듣는데 말하는데 안 듣는 겁니다. 안 듣고 보이는데 안 보이는 겁니다. 그러면 모릅니다.
말을 해도 소리가 나고 안 듣고 안 보면 모릅니다. 안 들리고 안 보입니다. 무관심하면 안 들리고 안 보입니다. 자기하고 상관이 없으면 아무리 말해도 안 들리고 안 보입니다. 원리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안 들으면 안들리고 안 보면 안 보입니다. 상고하지 않으면, 들으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들리고 안 보입니다. 이것이 그러한가 하고 상고하면 되는데 안 그러면 안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들어서 봐서 아는대로 실제 살아보지 않으면 안보입니다. 유대인들이 주님 말씀 듣고 한 겁니다. 그래서 안 보였습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행을 안하니까 안 들린 겁니다. 오늘도 이 원리는 꼭 같습니다. 들어도 안 들리고 봐도 안 보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들어도 안 들리고 봐도 안 보입니다.
귀가 들리는데 귀머거리고 눈을 뜨고 보는데 소경입니다. 우리도 소경인가, 그러면 죄가 없을 것인데 보지 못하면서 소경이면서 본다고 하니까 죄가 있는 거다. 죄를 짓고 있는 겁니다. 모르면서 안다고 하면 미련한자가 되고 엉터리가 되는 거지요. 안 들리는데 듣는다하니까 죄가 그냥 있게 되는 겁니다. 이 상식을 우리도 기억을 하고 기억하시겠습니다.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우리가 뭐냐, 양의 복음자리다. 양의 복음 자리로 우리로 말하면 천국입니다. 천국으로 우리의 건설 구원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품안, 하나님의 은혜 안, 하나님 계시는 곳, 그곳이 우리입니다. 양으로 말하면 우리고 복음자리, 구원의 실상되는 곳입니다. 오전에는 오전만 나오는 그 말씀을 들어야하는 분들이 많이 빠졌지만, 어린 신앙들에게 맞도록 생각을 해봤습니다. 교회를 왜 다니느냐 신앙생활을 왜 하느냐, 모든 하늘 일에 있어서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교회를 왜 다니지, 예수를 왜 믿지, 예배를 왜 드리지, 공회를 다니지, 교회를 왜 다니지. 이 생활을 왜하지, 공부를 왜 하지, 직장 생활을 왜하지, 내가 왜 살고있지. 가장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생각을 질문을 스스로 가지는 것을 가르켜서 철학 종교성이라고 합니다. 철학보다 종교가 위에 있습니다. 가장 궁극을 찾는 거, 시간으로 말하면 끝, 장소적으로 하면 최종, 최 가장 근본 출발과 근본 최고 최후 최종 최귀 이런 것을 찾는 게 종교입니다. 꼭대기를 찾아가는 겁니다. 가장 먼 곳, 가장 강한 건, 가장 귀하고 아름답고 좋고 영광스러운 것, 끝이 영원한 것 그게 종교입니다. 이게 왜 그렇게 되는 것인가. 종교성이 있어서 그런 거 찾고 있습니다. 왜 교회를 다니는가. 오전에는 두 가지 말씀을 드렸지요. 왜 교회를 다니느냐, 왜 신앙 생활을 하느냐, 왜 예수를 믿느냐, 많은 종교 중에서 왜 예수교를 믿느냐, 교파 중에서 왜 장로교를 믿느냐, 장로교 교파가 수백개인데 한국 충공회를 다니느냐. 총공회 교회가 부산에 제법 많은데 동천교회를 다니느냐. 이런 걸 찾아 들어가봐야 합니다.
불교를 믿으면 편합니다. 어려움이 없고 환란이 없습니다. 불교 환란 있을 때는 고려시대도 불교였지요. 조선 초기가 이성계도 중한테 지도받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실질적으로 숭불정책이었는데 조선시대는 숭유업불이라고 합니까.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독교는 종교 때문에 핍박 받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기독교는 6000년 역사에 핍박으로 이어져 온 겁니다. 왜 하필이면 예수교냐. 왜 예수교입니까. 이 답이 어려우면 참 곤란하지요. 천하 인간의 구원 얻을 만한 다른 게 없으니까. 예수교만 구원의 길이니까, 그래서 첫째 기본적으로, 예수 믿는 게 교회를 다니는 겁니다. 교회 다니는 목적 이유 첫 번째가 뭐지요. 예수 믿는 첫 번째 이유가 뭐지요. 예수님 믿어서 천국 가려고, 이게 첫 번째입니다. 그래서 너 왜 교회 다녀라고 하면 천국 가려고. 예수님만 믿어야 천국 가냐, 예. 천하 인간의 구원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러셨습니다. 어디있는데 성경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입니까. 거기 있습니다. 어떻게 믿는데, 믿어지네요. 나는 안 믿어지는데 믿어지는데요. 선생님이 안 믿어지는 거 그거 왜 안 맏어집니까 그러면 됩니다.
이 논리로 나가면 누가 이길까요. 당신이 안 믿어지는거나 내가 믿어지는거나 같지요. 당신 부모님이 당신 부모님인 줄 왜 압니까. 예수 믿는 목적은 천국가려고, 아마 이걸 가지고 믿는 분들은 오늘 더러 있을겁니다. 믿어야 천국가니까. 대부분 그렇겠지요. 예수 믿어서 천국 가는데 왜 교회를 다닙니까. 참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진리 배우겠다는데 나쁩니까 그게. 왜 교회를 못 가게 합니까. 흉봅니까. 진리를 배우겠다는데 나쁜사람 될가요 도둑놈 될까요 참사람 되는데 두 번째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 겁니다. 왜 교회를 세우고 개척을 하고 왜 전도하고 예배를 드리느냐, 믿어야 천국 가니까. 우리는 구원을 바로 배워서 믿는 거 안 믿는 걸 알고 많은 교회들이 구원이 뭔지 모릅니다. 어지간한 권사님들한테 물어보면 모른답니다. 30대 선생님들 다른 교회 가면 권사님 다 될걸요. 장로급 다 될걸요. 집사 장로 권사가 흔합니다. 이걸 가르켜서 매관매직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직분이 흔하게 돌아가게 되면 망하는 겁니다. 그래서 집사도, 우리 교회 집사님 중에서 속으로 생각하는 집사님 몇 안 됩니다. 이름은 집사님인데 실제 그 신앙 되는 분은 몇 분 안 되십니다. 왜 교회를 다니느냐, 다른 교회 집사 권사 장로님들은 모른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 믿고 천국 가려고, 진리를 배워서 참사람 될려고. 오늘 주일 학교 때 몇 가지 가르치던가요. 배우자 고치자 자라자. 배워야하고 살아서 고쳐야하고 자라야하고.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 믿어서 천국 가려고, 진리를 배우려고, 그러기 때문에 교회에 가서 뭘 합니까. 노래 부르고 모여서 이런 저런 차마시고 다과회하고 친목회하고 그거 교회에서 하는 거 아닙니다. 교회는 뭐 하는 곳이라고요. 진리를 전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뭐하러 다닌다고요. 진리를 배워서 그래서 교회에서 진리를 전하지 않으면 간판 내려야합니다. 진리가 뭔데,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이지요. 진리를 배워서 그러면 교인들이 교회 오는 것은 진리를 배우러 옵니다. 강단에서는 뭘 해야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빌리 그레이엄이라는 세계적인 목사님이 여의도에 왔습니다. 100만명 교회들이 모였는데 백 목사님 직접 가셨다고 했는데 서부교회 주일학생만큼 못하더라. 설교하는데 우리 아들 아내가 그렇습니다. 요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 우리 아내 우리 아들 그런 이야기만 합니다. 진리를 전하는 겁니다. 진리를 배우려고, 참사람 되려고 하는 겁니다. 오늘 날 우리들은 신앙 목적을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겁니다. 기본적인 것은 가장 쉽습니다. 가장 쉬운 것은 어떠합니까. 가장 어렵습니다. 가장 쉬운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기본을 가지고 유지하면 되게 되어있습니다. 모든 사람도 공부도 단체도, 공산주의 국가의 기본, 사회주의 국가의 기본, 자본주의 국가의 기본,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헌번에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북한이 자유 자본주의가 되면 북한은 망하는 겁니다. 왕정,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이란 같은 나라가 신정 국가가 바뀌면 망하는 겁니다. 기본이라는 겁니다. 가장 근본입니다. 왜 교회를 다니느냐 신앙 생활을 하느냐, 두 번째는 진리를 알아서 배워서 참사람이 될려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이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겁니다. 물건너 생명줄 던져라. 기본구원이지만 건설구원 중에서도 되는 겁니다. 교회가 많은데 참 교회가 드물고 믿는 사람이 많은데 참 신자가 드뭅니다. 제 말입니까. 누구 말씀이지요. 믿음을 보겠느냐, 천만명이 넘는데요. 노아 홍수 때 믿는 사람이 없어서 홍수를 다 쓸었습니까. 진리와 공의를 찾는 자가 한 명만 있으면 사한다. 소돔과 고모라도 10명이 없어서 타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전부 이 세상을 따라갑니다. 세상화 되어집니다. 이 세상을 천국으로 삼는 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 좋고 세상 편리하게 편안하게 아름답게, 자기 좋게 자기 왕 되는 게 세상이다 그리 되듯이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게 되고 있지 않은가. 기본입니다. 우리도 나를 고치기 위해서 신앙 생활하는 겁니다.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겁니다. 진리를 배워서 참사람 되는 방법이 뭐냐는 거지요. 그게 본문에 뭐가 됩니까. 우리가 되는거죠. 문으로 들어간다. 천하 인간의 구원은 반드시 예수를 통해서 있다. 아니면 없는 것이다. 문이 있는데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 믿는 사람에게 해당 없습니다. 기본구원적으로는 건설 구원과 연결 시키면 천국가는데 천국가면은 어떤 존재가 있는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 세상과 천국은 어떤 면에서 크게 차이가 없다고 보면 됩니다.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 필요없고 지옥에 갈 거 뽑아내면 천국이 아닐까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이런 빈부와 귀천이 상황 따라 변동이 됩니다. 천국은 이게 없다는 거지요. 한 번 천국은 부자면 영원토록 부자입니다. 그렇기 떄문에 이거 때문은 아닌데 이거 때문에 달려가는 것은 저학년 수준입니다. 정말 고차원의 수준은 뭔가요. 목적이 원인이 무엇이라야할까요. 주님 나 위해서 다 바쳐서 사랑하심으로 죽으셨으니까 나도 주를 위해서 사랑함으로 다 바치는, 주 사랑에 감격해서 다 바치겠습니다. 이게 고차원의 신앙으로 주님과 연애하는 거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은 아직 어리지요. 그런데 실제 하늘나라의 빈부귀천 이건 실존하고 있으니까. 이 세상에서 잘못 마련하는 것은 못하게 되고 무능하게 되는 것이고 바로 마련하면 영원토록 천국 1등은 영원 1등입니다. 천국꼴찌는 영원 꼴찌입니다. 이게 문제이지요. 이 세상은 그런게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부지런히 바꾸지 않으면 고정이 되는 겁니다.
하늘나라는 완전 고정입니다. 배운 만큼 고쳐서 참사랑 되는 만큼 고정하는 겁니다. 이 비유로 말씀하셨으나 몰랐다. 우리로 들어가야합니다. 진리를 배워서 참사랑, 신앙 생활에 목적이 되는, 이 목적의 성취에 방편이 뭐냐, 근거해야합니다. 그 대속이 바탕이 되어야합니다. 그 대속 위에서 건설해 나가야합니다. 예수를 건설하는 겁니다. 문이라는 말은 주님을 통해서 들어간다는 말인데 예수의 사활의 대속을 빼놓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사활의 대속 때문에 도성 인신은 사활의 대속의 출발입니다. 완성이 아닙니다. 도성인신 하셨을 때 다 기뻐하신 것은 드디어 오셨으니까 완성이 아닙니다. 주님이 오셔서 33년 4개월 사시고 십자가에서 이루었다하고 돌아가신 게 완성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을 때 그때 비로소 무엇이 완성되었습니까. 대속이 비로소 완성된 겁니다. 예수가 구주가 된 겁니다. 도성인신만 가지고 구주 안됩니다. 자격 가지고 출발이 완성은 아닙니다. 완전히 죽으신 그게 구주의 완성이 되는 겁니다. 성전 휘장이 갈라졌고 많이 일어나서 보이다가 다시 무덤으로 돌아갔고. 그런 걸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문이 뭔데, 예수입니다. 대속입니다. 네 가지가 뭔데, 그 네 가지로, 네 가지 바탕 위에서 자기 것으로 건설해 나가는 겁니다. 쌓아 나가는 겁니다. 살아가다보면 입혀주신 의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출발선에 세워둔 겁니다. 자격증을 준 겁니다. 서울대 의대 입학하면 대단한 건데 의사가 됩니까 안 됩니까. 로스쿨 입학하면 대단합니다. 변호사 판사 검사 되는 겁니까. 공부하고 배우고 하면 6년 8년 배워야 의사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의사입니다. 서울대 의대 입학했다고 의사 되는 거 아닙니다. 의인은 의인인데 죄없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하늘나라가서 죄 없는 의인으로, 실제로는 아닌겁니다. 자기가 입혀주신 사죄가 자기 것이 되어야합니다. 사죄로 상금만 죄없이 상금만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는 겁니다. 그게 건설 구원입니다. 반드시 문으로 들어가야합니다. 대속을 입은 사람이 살아갈 때 문으로 들어가는 생활이고 문으로 들어가니까 누가 오지요.
문지기는 성령입니다. 진리가 뭔데, 대속을 알게합니다. 하나님 말씀 진리 속에 대속이 들어있습니다. 그 진리 안에 대속이 있고 진리 안에 대속으로 인해서 와서 피와 성경과 진리인데 대속의 공로로 안내하고 인도하고 안내하는 그것은 성령이 대속으로 살게 만들고, 내가 주님 대속을 입은 사람으로 현실을 살아가며 눈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감정으로 죄로 안 지을 때 성경이 도와주십니다. 문지기가 문을 열어서 들어가게 합니다. 이런 관계가 있습니다. 대속을 통해서만 기독교는 사활의 대속이 전부라, 그런데 그 대속이 뭐냐 진리의 대속으로 되겠습니다. 그리고 문지기에서 문을 열어주면 목자가 안에 문을 열어놓고 각각 불러냅니다.
목자는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목자다. 죄는 지으면 안되는 겁니다. 이런 겁니다.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 목자입니다. 그 목자에게는 아내도 있고 아들도 있고 딸도 있고 교회 식구도 있는데 그들이 양입니다. 한 사람이, 아버지가 가정에 살아가는데 아버지는 신앙이 좋고 아내는 어립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목사고 아내와 자식들은 양입니다. 그때 하나님 앞에 죄지을까 싶어서 말도 조심하고 보는 것도 조심하고 먹는 것도 조심하고 생활도 조심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구나. 말도 화나면 함부로하고 함부로 먹고 생활 아무렇게나 합니다. 그러면 저런가, 하고 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에서 언행심사는 하나하나와 양들의 관계가 보고 접촉하는 것이 됩니다. 자기 양들의 이름이 되는 겁니다. 자기 생활 전부 다가 불러내는거.
자녀에 선생님에 집사에 구역장님의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는 보고 듣고 접촉하면서 영향을 받고 피동이 되는 전부 다가 양들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관계가 맺어지는거. 앞서 가면 목자가 가는 겁니다. 그래서 앞의 목사가 앞서서 바른 길으로 가면 따라옵니다. 푸른 초장 가다가 호기심이 생겨서 물먹겠다고 내려가다가 낭떠러지로 내려가면 양들도 따라가버립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은 몰라도 계속 그러다 보면 목자를 압니다. 목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네, 그래서 목자가 처음에 한 두 번 정도 가면 바른 길 가겠지요. 그런데 안 그러면 탈선입니다. 그러다가 도망쳐버립니다. 타인을 따르지 않고 도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 신앙 생활은 예수 믿어서 천국가려고 합니다. 진리를 듣고 배워서 참사람 되는 겁니다. 그게 무리입니다. 그게 구원의 성취고 완성입니다. 그리 된만큼 되는 겁니다. 주님 대속만 유일한 길입니다. 그 대속을 그래서 입고 삽니다. 입은자로 알아서 실제 살아가면서 죄를 안 지어야합니다. 이 죄 많은 세상에 이런 세상에서 죄를 안 짓고 살 때 대속이 자리가 되고 목자가 되는 겁니다. 대속을 전하고 되어가면서 인도할 때 참된 목자가 되는 것이고 다른 걸 전하면 하나님 말씀 외에 설교하다가 보면 현실 세상도 말할 수 있고, 그런 거 말할 수 있지만 목적이 그게 되어리면 그건 목자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절도며 강도도 될 수 있습니다. 목적, 구원입니다. 참사람되는 겁니다. 주님 대속 밖에 없습니다.
목자인 우리는 보호하고 가르치는 겁니다. 이렇게 되어질 때 바로 되어지고 양도 바로 되게 되는 것이고 가정이 바로 나가면 가정도 바로 되고 가정의 목자된 사람이, 어떻게 길 잃은 양이 되어서 헤메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참 길 잃은 양떼 불쌍하게 되는 거지요. 가장이 잘 되면 다 잘 되게 되어있는 겁니다. 앞서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