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3일 수밤
2026년 5월 13일 수밤
찬송: 34장
본문: 잠언 27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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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서 들어서 배워서 외부에 있는 걸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세상의 자연만물과 사물들을 보고 듣고 전하고 알아서 내 지성 속에 담아놓은 것이 지식입니다. 알아야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크든 작든 중요하든 그렇지 않든, 세상 생활이든 뭐든 알아야합니다. 알고 싶어도 하나님께서 주신 분량이 적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만은 자기 받은 분량만큼은 알아야합니다. 아는데 우선적으로 총력을 기울여야합니다. 학생은 어릴 때 부지런히 공부해놔야합니다. 나쁜 것은 안 배우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어야합니다. 도둑질은 나쁜 겁니다. 그런데 도둑질을 하는 그런 심리라던지 방법까지는 몰라도 알아야 도둑질을 막을 수 있습니다. 거짓말은 안해도 할 줄은 알아야합니다. 하면 나쁜 겁니다. 너무 나갈 수 있는데 거짓말을 하면 아주 나쁜 겁니다. 십계명 중에 몇 계명이죠.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지니라. 구계명입니까. 우상 숭배, 음행죄, 거짓말하는 자가 있는데 그건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래서 거짓말하면 안되는데 거짓말하는 그 사람들의 심리 방법은 알아야 막을 수가 있습니다.
강조를 지나치게 하다보면 잘못될 수도 있는데 신앙 생활,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든 것은 신앙 생활입니다.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연결이 되어있어서 믿음으로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다. 밥을 먹어도, 반찬을 먹어도, 서 너 가지가 있습니다. 어느 반찬을 먹어야할까도 잘못될 수 있습니다. 이러면 치우칠 수 있는데 조심해야합니다. 하품하는 것도 죄가 될 수 있고 가려운 것을 긁는 것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전부 다는 죄입니다. 꿈을 꾸는 것도 죄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잠을 자고 꿈을 꿔도 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자기가 중생이 된 이후로 진리를 깨달아 건설 구원의 도리를 아는 것부터,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은 것은 심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데 엄밀하게 따지고보면 알 수 있는데 자기가 알지 않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도리를 알고나서부터 모든 생활 전부다가 구원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다 대동소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런데 너는 왜 그러냐. 참, 혼인잔치를 하고 예복을 입혀서 들어왔는데 한 사람이 예복을 안 입고 들어왔습니다. 왜 안 입고 들어왔냐고 하니까 저가 유구무언이거들, 입은 있는데 말은 못합니다. 쫓아내버려라. 하나님 앞에 심판 받을 때 우리가 다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로써는 양심에 거리낌 없도록 힘을 다해서 알아야합니다. 집회를 마치고 복습을 할 수 있습니다. 예배 시간에 복습을 하던지 재독을 하던지 의무적으로 공회 교인이니까 당연히 재독을 해야한다. 재독은 꼭 해야하는가요. 의무가 아닙니다. 그런데 집회 때 놓친 말씀 배우지 못한 게 있을까 그렇게 재독을 하는 겁니다. 유익을 위해서 복습도 마찬가지. 그런데 이게 의무가 되고 의례적이 되고 습성적이 되면 의미가 없는 겁니다.
잠언을 공부하고 있는데 연결이 어렵습니다. 집회 때는 은혜를 받는데 실제 그 말씀을 가지고 내 지식을 삼고 내 복음을 삼으려고 하다 보니까 연결이 어렵고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교재 그대로 설교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운 말씀 바탕으로 해서 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배웠으니까 들었으니까 말씀을 배울 때 자세는 베뢰아 사람들처럼 그리고 간절한 자세로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이렇게 들었는데 배웠는데 이렇게 듣고 있는데 이것이 그러한가 하고 자아가 자기 자의사가 들으면 생각을 해야합니다. 사람이 생각없는 사람은 생각 없는 사람이 미련이라는 생각 없이 하는 것도 미련 중 하나입니다. 구별도 생각이고 따져보는 것 생각이고 상고하는 게 생각입니다. 이게 참 중요한 겁니다.
그렇게 상고하면서 들으면서 말씀이 그러하면 고치는 복이니까 고쳐야하는데 왜 고쳐야하지는 많이 배웠습니다. 무엇을 고칠 것인가. 이걸 고치는 그게 될 때 내가 말씀을 듣는 중에서 설교자가 하는 강단 설교는 원리를 정합니다. 오늘 하는 말씀은 중요합니다. 고치는 것은 굉장히 많지요. 말하는 거 듣는 거 보는 거 먹는 거 입는 거 행동하는 거 잠자는 거 가정생활 직접생활 인인관계 예배보는 태도 고칠 게 수도 없이 많은데 내가 당면할 것은 뭐냐, 이걸 실제로 듣고 그래야겠습니다. 너는, 너라는 것은 나 자신입니다.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개인이 되면 나가 되지요. 나가 있고, 우리가 있습니다. 나가 있고 너가 있으면 우리가 되는 거지요. 내가 있고 상대방이 있으면 우리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둘 이상이지요. 성경에 너는 개인입니다. 약간 옆으로 나가는 거지만 항상 우리 속에 있는 나라는 걸 기억해야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나.
우리란 우리, 복수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이 우리인데, 예수님 대속에 근거대고, 내가 없는 우리는 우리가 아니지요. 내가 반드시 들어가야 우리가 되는 거지요. 내가 들어가야 우리가 됩니다. 나 안 들어간 여러 사람은 너희들, 당신들입니다. 너가 누구냐, 우리인데, 나인데, 우리 전부니까 우리라고 하는데 나는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야할 하나님의 목적 대상, 이걸 구원이지요. 우리의 구원인데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이 나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시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런 우리를 만들어서 참 느끼기 어렵지만은 무궁세계 천국을 가르키는 이런 실력자를 만드는 게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고 우리 구원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목적은 이루어 가는 겁니다.
목적을 성취해가는 것이고 달성해 가는 것이고 이루어 가는 건데, 이루어 가는 것이라는 것은 목적 자체가 부수적이지만, 하나님의 뜻 우리를 나를 길러 가는 겁니다. 나를 길러가는 것이고 나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목적이고 구원입니다. 이 관계는 나라는 사람 자체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인격이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생명이고 하나님과 연결된 생명이고 자라가는 겁니다. 하나님과 관계된 우리의 구원이고 내가 자라가며 내가 점점 만들어져 가는 것이기에 이걸 생명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 생명의 성장이다, 우리 인격의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생명의 성장은 잠시도 고증, 중단이 없습니다. 생명이 중단되면 죽는 겁니다. 활동을 우리말로 풀면 뭐라고 하지요. 활동이라는 한문글자를 우리말로 하면 살아서 움직이는 걸 활동이라고 합니다. 생명이 살아서 움직이는 거 그게 활동입니다. 생명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고증이 없습니다. 끊임없는 성장과 끊임없는 변동이 있는 겁니다. 그게 생명의 작용이고 성장입니다. 이 생명의 성장은 육의 생명은 육신은 스무 살이 되면 성장이 멈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는 늙어간다고 하는 거지요. 서서히, 그런데 서서히 늙으니까 표가 안 나다가 40이 넘으면 좀 나다가 그런 겁니다. 마치 기계를 사용하다가 5년 지나니까 고장나다가 7년 지나니까 더 자주나다가 좀 되어버리니까 못쓰게 되어버리는 것처럼 그것과 같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있는 한, 20대 펄펄 살아있던지 60이 되어서 늙었던지 80이 되어서 늙어있어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내일은 할 일이 있는 겁니다. 내일이 있는 건 할 일이 있는 겁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오늘을 기준으로 해서 끊임없이 고정되지 않고 자라가면서 고쳐가야하는데 현재를 기준으로 이만하면 되었다고 단정 짓고 그러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말아라, 끊임없이 고쳐가고 배워가고 자라가야하는 게 우리 생활인데 이만하면 됐다. 이만큼 고쳤으니까, 이만큼 충성했으니까 됐겠다 그러지 말아라.
살아있는 동안에 평생을 통해서 긴장하고 조심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이게 1절입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자체를 두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성장하고 가야할 것이 사람인데 어느정도 선에서 이만하면 되었다고 내일을 중단하는 그런 거 하지 말아라. 그러니까 오만한 자의 자리, 교만한 자의 자리에 서는 겁니다. 하루 동안에 살아가는 동안에 네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2절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쳐갑니다. 그런데 자기가 자기를 고쳐가는 것이 이 세상에서도 하늘나라 가서도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존자고 완전자므로 혼자여도 되나, 사람은 혼자 자존할 수도 없고 자생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라는 주관이 객관으로 함께 살게 되어있습니다. 객관을 살고 먹고 사는 것이 사람입니다. 너 자신을 돌아보고 배우고 아는 것이 고치는 것이 너는 그렇다고 하는 겁니다. 너혼자 천국에 가는 거 가지고 객관과 나와의 관계가 어찌 되느냐.
2절에는 하나님을 이런 자세고 고쳐가는 내가 내 울타리에 가까운 주변 사람들까지 전부 다, 나 아닌 나의 아는 지식이 나의 고침이 나의 성장이 내가 살아온 그 생활이 어떻게 되느냐 그들이 나를 인정하느냐, 관계를 바로 가져라 그 말입니다. 관계, 타인으로 칭찬하게 하고 스스로 칭찬하지 말아라, 너는 너를 고쳤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과 관계맺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요. 말 행동 경제 생활 수도 많습니다. 2절은 자라가며 고쳐가는 너가 너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혼자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펴봐라는 겁니다. 나를 고치는 것 내가 나를 고치는 것은 내가 나를 고쳐주지 못합니다. 외부적인 것만 압니다. 내가 나를 가장 잘 압니다. 고치는 그 주체 기준은 다른 사람이 칭찬하는 걸 가지고 나를 고치는 게 아닙니다. 나를 고치는 것은 말씀이 있고 내 양심이 있고 내가 있으니까 내가 나를 보면서 나 스스로를 고쳐가는 겁니다. 그런데 고침받은 내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질 때 어떻게 되느냐. 고친 나의 모습이 외부로 나타날 때 그 모습은 내가 판단하지 말라는 겁니다.
고치는 것은 내가 너를 고칩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보고 사람들의 말을 따라서 내가 너를 고칠 수는 없는 겁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나 자신입니다. 고쳐진 나의 고친 너 자신이 언행심사하고 사리판단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관계가 맺어지니까 내 기준으로 하지 말고 다른 사람 기준으로 해야한다는 겁니다. 남편이 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아내가 보니까 안 고쳤습니다. 안 고친 겁니다. 다른 관계에서, 내 아이하고 남의 아이하고 싸움을 했습니다. 내가 판단하면은 내 아이가 있으니까 그게 바로 되기는 어렵습니다. 그럴 때는 그 판단은 다른 사람 판단이 정확하다. 부모 판단도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계 맺는 사람이 되어갈 때 너 자신 주관 가지고는 되는 게 아니다. 객관이 바로 되기까지. 원수까지, 만물까지, 마귀까지도 나의 모든 생활, 모든 관계가 그들을 모두 인정할 때까지 그게 되어야한다. 그래야 바로되는 것이다. 그게 2절입니다. 그래서 1절은 자기 자신 주관이고 주님을 두고 하늘에 있는 자 땅 아래 있는자까지 하라고 하는 그게 되어야합니다. 네 입으로는 말아라.
1절 2절까지만 생각해봤습니다. 생각해보면서 스스로 돌아보면서 고칠 걸 찾고, 나는 고쳤는데 고침 받은 내가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어떻게 되는지, 그래야 비로소 되는 겁니다. 나는 고쳤는데 객관을 가지고 하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알아서 고치는 거하고 구별해야합니다. 내가 나를 고치는 것은 남의 이목을 가지고 내 밖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나 자체를 고치는 것은 스스로 고쳐나가는 겁니다. 그러면서 넓혀가면서 온전해져가는 것입니다. 복잡할 수 있으나 생각해보십시다. 예배 후에 찬양 연습이 있어서 이정도까지 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