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0일 주일 오후
2026년 5월 10일 주일 오후
찬송: 61장
본문: 잠언 27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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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다 연결이 되어있습니까. 오늘 작은 1번 했고 2번까지 할지 모르겠는데 천국의 소망이다, 내 양을 치라 이어지느냐 연결이 되는 거지요. 가장 어려운게 말씀이 어려운 게 어떻게 연결이 되어지지, 목사님께서 만드셨는데 제목과 큰 가지와 중간 가지와 작은 가지와 뿌리까지 전부 이어져서 나온겁니다. 누군가를 굉장히 마음에 안 맞아하는데 마음에 안 드는데 목사님 설교 시간에 잘못되었다고 해도 아멘하고 은혜를 받는 겁니다. 그런 은혜를 무슨 은혜라고 합니다. 설교시간에 들어보니까 그렇게 틀렸습니다하고 나오면 틀렸다 하는 그 사람은 아멘하고 은혜를 받는 겁니다. 그런 은혜를 주관적 은혜라고 합니다. 진짜 은혜가 아닌 겁니다. 은혜라는 것은 내가 옳든 그르든 성경 말씀을 근거해서 이치를 깨닫는 게 첫 번째고 그걸로 살아가는 게 진짜 은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은혜는 어떻게 이어지냐 참은혜가 되는데 이걸 연결시보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배운 말씀들이 제목과 소제목과 어떻게 이어지냐고 설명을 드렸는데 저도 아직 완전하게 안 되기 때문에 설명이 좀 복잡했는데 그렇게 찾아들어가는 겁니다. 나무를 땅밑에 뭐가 있습니다. 뭐가 있지요.
나무 땅 밑에 뭐가 있지요. 나무의 뿌리. 봤습니까. 나무 뿌리 본 학생 손 들어봅니다. 도시 사니까 나무 뿌리를 안 봤답니다. 풀뿌리는 봤나요. 주차장에 나무 있죠. 그거 뽑으면 사방에 다 퍼져 있습니다. 수만개 될 걸요. 성경은 전부 특별 계시고 그건 뭘로 깨닫습니까. 그런데 나무 뿌리는 자연 계시입니다. 학교 공부 백날 해봐야 자연을 모르면 깨닫는 건 어렵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 도시 출신은 거의 없습니다. 뿌리는 깊고 숫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 뿌리를 전부 다 하고, 전부 따라 올라오면 수많은 것이 올라오면 뭐가 되는 것인가요, 둥치가 올라가서 가지로 올라가지요. 수많은 뿌리가 올라가서 가지로 뻗어올라가는데 그 가지 숫자가 굉장히 많지요. 잎사귀로 뻗어나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그런 겁니다. 느티나무 제대로된 많이 베어서 오른쪽에 있는 느티나무는, 굉장히 많습니다. 수만개 있는 나무 뿌리가, 큰 둥치가 있는 잔뿌리는 실같습니다. 실뿌리, 잔뿌리 그걸 한자로 세근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 연결되어있습니다. 위에 있는 가지, 잎사귀 하나까지 전부 연결이 되어있지 않으면 그 부분은 죽은 겁니다. 전부 다 연결이 되는 겁니다.
사람의 몸을 봅니다. 머리털의 숫자가 몇 개. 모르지요. 수많은 머리카락 하나가 내 발가락 끝하고 연결되어있습니다. 새끼발톱하고 연결이 다 되어 있습니다. 끊어지면 죽는 겁니다. 사람의 몸이 그렇듯이 마음이 그렇듯이 전체가 연결이 되어있을 겁니다. 천국이 그렇다 그런 것이고 제목과 소제목과 교재 안에 다 적혀져 있습니다. 그 적어놓은 전부 다가 이어져야합니다. 연결이 되어져야합니다. 우리가 볼 때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거지 그걸 자꾸 연결을 드리는 겁니다. 천국만 소망하고 생명관하고 생명관이란 생명을 어떻게 보느냐 그게 생명관인데, 생명관과 고치는 복과 인인관계와 잠언 27장 말씀이 어떻게 연결이 되느냐. 이걸 연결 시켜볼려니까 설명이 복잡하고 어려운 겁니다. 이런 말씀 설교하는 방향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잠언이라는 말의 뜻, 지혜의 교훈이라는 말입니다. 지혜라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좋은 길이 지혜가 되는 것이지요.
말은 교훈입니다. 잠언이라는 말씀은 사람은 참사람,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어가는 그게 지혜다. 영어 선생님이 학원에서 영어 강의를 합니다. 뭘로 하지요, 말로 합니까. 영어를 가르쳐 잘하게 하는 말입니다. 도둑놈이 제자를 기를려고 이렇게하고 가르치면 그 말은 도둑놈을 만드는 말입니다. 잠언은 무엇을 만든다고요, 참사람을 만드는 날, 성경 전부에서 강조해놨습니다. 27장은 고치는 복의 말씀 서로 고쳐주는 인인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천국만 소망하고 신앙의 속성이 나오고 양을 치는 것이 나오고, 천국만 소망하는 큰 대지인데 그 안에 생명관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이어지느냐, 그러면 중요한 것은 생명이 뭐냐, 어떤 생명을 말하느냐, 교재에는 안 나오는데 교재에 생명관인데 그 생명이 어떤 생명을 말하냐를 집회 때 말씀하셨지요.
어떤 생명을 말하느냐, 그 생명이 무엇이 생명이냐 이건 안나와있습니다. 생명은 살아있는 거지요. 사람도 생명 강아지도 생명 고양이도 생명 나무도 생명 바퀴벌레도 생명 생명입니다.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입니까. 우리도 사람이고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사람이고 사기꾼도 생명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명이 아닙니다. 생명이 주체가 되는 겁니다. 그 그런데 그걸로 본문에 보니까, 너가 바로 생명이다. 들어보시고 교재를 보시면서 아닌 거 같은데, 다른 게 있는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시면 알려주셔야합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나무토막이 아니지요. 생명은 살아있는 겁니다. 집회 교재의 생명을 말하니까 너를 누구를 읽어야하느냐 나 자신입니다. 너가 누구냐, 너가 누구며 내가 누구냐, 내가 생명이다. 그리하면 됩니다. 생명이 뭔데, 생명은 살아가는 것이다. 활동하는 것이다. 작용하는 것이다. 너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천국만 소망하고 고치기를 소망하는 너는 그 말입니다. 온전을 향해 나아가야하는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내일은 스물 네 시간이 아니고 이 시간 이후가 내일입니다.
과거는 지나왔고 그런데 내일은 미래는 우리가 모른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마라, 내일 일을 언제 자랑할지 아는 겁니다. 언제 자랑하지 말라는 겁니까. 내일에 있을 일의 자랑을 자랑하지 말아라 그 말입니까. 내일 자랑하지 말아라는 겁니까. 지금을 기준으로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러지 말아라고 합니다. 현재를 기준으로 지금 너의 상태를 자랑이라는 것은 교만이 밖으로 나온 게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벗어난 거지요. 현재 시험 공부를 했으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유비무환인가요. 일반적으로 보편적으로 그렇겠지요. 우리나라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그 농사가 어마어마하게 잘 지냈답니다. 산업화가 되지 않을 때입니다. 잘못되면 굶는 겁니다. 그런데 너무너무 잘해서 추석 명절에 떡을 해서 돌리고 우리집에 오십쇼 그랬는데 추석 지나고 나서 추수하기 전에 태풍이 와서 다 쓸어버렸습니다. 대풍된 그때 흉년이 되어서 굶어죽는 사람이 많이 생겼답니다. 너무너무 잘됐고 다 된거지요. 그러니까 농사 잘되었습니다. 선물도 하고 대접도 하고 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그 말입니다. 내일 일은 모르는 겁니다. 실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만큼 시험 공부했으니까 내일 100점 받을거야. 수능 시험 고득점 받아서 좋은 대학 들어갈거야라고 해서 그런데 배탈이 났다던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으나 성경에는 일곱 머리가 깨졌다가 나은 게 나오지요. 일곱 머리가 너무너무 깨져 상하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낫는 것만 보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저것도 깨지는구나. 그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 내일 일을 판단하지 말고 확정하지 말아라. 살아가며 자라가는 과정에는 뭐가 많다고요, 변동이 많습니다. 최종 마지막이 문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쳐가라, 고치면서 자라가라, 죽는 날까지 계속해가라, 고치는데에 있어서는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아라 무슨 일을 할지 알지 못하리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라간다, 변동이 많다 그래서 잘 살면서 고쳐가면서 자라가야한다. 그런데 고쳐가야하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고쳐가야하냐. 알아야 고치는 거 아닙니까. 알아야 고치는데 알면 어떻게 합니까. 배가 더부룩합니다. 병원에 가면 청진기를 갖다대고 안되면 큰 병원에 가셔서 내시경을 해보십시오. 안에 카메라를 집어넣어서 보는거지요. 빛이 있어야 보지요. 무엇이 빛이라, 무엇이 모든 것을 바로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빛을 주실 때는 하나님과 생명으로 자라가야한다. 변동이 많다. 그러므로 온전함이 있다. 어떻게 무엇을 고칩니까. 내가 본문에 뭐라고 되어있습니까. 나를 어떻게 봅니까. 뭘로 봐라,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보게하고 네 스스로 보게 하는 것을 판단하지 말아라, 우리를 만드시기 위해서 모든 생명은 자연 생명도 모든 생명도 잉태될 때부터 어떻게 됩니까. 잉태될 때부터 모든 생명이란 주관은 객관에 의해서 잉태가 되고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은 존재는 누가 있습니까.
딱 한 분, 하나님 그래서 그분 이름이 자존자입니다. 객관으로 말미암아 태어나고 객관으로 인해서 자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주관을 뺀 전부가 객관입니다. 나라는 사람 말고 모든 생명은 객관에서 나왔고 자라가는 겁니다. 이치가 맞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의 생명도 그렇고 하나님과 연결된 신앙 인격의 생명도 그런 겁니다. 내 속의 주체는 영입니다. 그 영이 내 심신을 연결시켜서 그 영에게 백퍼센트 복종하게 만드는 겁니다. 나라는 자아입니다. 이 자신이 생겨진 것도 하나님으로 인해 생겨졌고 객관에 의해서 자라가고 자라기는 자라는데 반대로 이름은 누가 짓습니까. 사람 이름을 짓기는 누가 짓지요. 아버지 어머니 부모님. 부모님 주관입니까 객관입니까. 김민준은 주관입니다. 그런데 만들기는 내가 만듭니다. 그래서 착한 사람 정직한 사람 반듯한 사람 그렇게 될 수 있고, 남을 괴롭히는 놈 그럴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이름을 만드는 것은 자기가 만들고 반대로 모든 생명은 전부 다 객관으로 생겨졌고 자라기는 주관이 자랍니다.
나라는 주관이 자라는데 객관으로 생겨졌고 자라가는 겁니다. 공기를 마셔야하고 자라가게 되는 것처럼 그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연결되는 믿는 사람이라는 너 생명이 바로 자라가려면 그래서 현재까지 살아온 너 자신, 네가 현재 이렇게 되었으니까 사람이란 자라가야하고 고쳐야하는데 너를 바로 보고 바로 알아서 고치리면 객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말씀하기를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가 너를 보고 아는 것은 엄밀하게 따져보면 그런 건 있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군가요. 하나님 빼놓고 마귀 빼놓고, 누구지요. 나 자신이지요. 그런데 내가 자랑하는 걸 두고는 내가 나를 알면 정말 자기를 알면 그런 것이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자랑을 했습니다. 그리스도 위해서 자랑했고 그런 것이지 나는 떳떳하고 그럴 때 한 점 부끄럼 없을 분이 계십니까. 그렇게 자신하면 하나님께서 데려가 버립니다. 너 다 고쳤으니까 세상에 있을 필요가 없네.
자기 스스로를 자라가는 것은 심히 어리석다는 겁니다. 내가 나를 자랑하는 것은 어리석은 겁니다. 그런데 내가 나를 나타내는 것은 이게 겸손이 아니고 자기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부족하고 모자랍니다. 우리 공회 특징이 못났습니다. 배우겠습니다. 노래를 불러놨습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잘 모릅니다. 어립니다. 배우겠습니다. 이게 고등 교만이 아니고 겸손이 아니고 실제 돌아보니까 그런 겁니다. 공회 노선을 보고 그렇다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분들이 고생 많으셨습니다 훌륭하십니다 그러니까 부끄러워서 얼굴도 못 들겠습니다. 겁이 났다던지 그런 게 있었겠지요. 정말 자기를 아는 사람은 자기를 칭찬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너를 살펴라. 그래서 내가 나를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깊이 들어가면 바로 아는데 칭찬이라는 면을 두고는 참 어렵습니다. 그 중에서도 타인도 울타리 안에 형제라고 했습니다. 원래는 형제는 몇이었습니까. 한 몸입니다. 형제는 누구한테 난 걸 형제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한 분입니다. 한 아버지 밑에서 김진우, 신우, 영우 삼형제지요. 형제입니다. 그런데 삼형제가 한 아버지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삼형제는 원래 하나였습니다.
원래는 한 몸이었다. 그래서 나를 살필 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게 더 정확하다. 적어도 드러나는 것은 그렇습니다. 내 깊은 속에 있는 그걸 나만 알지, 드러나는 모든 생활을 보고 아는 거지요. 다른 사람들 타인이 너를 보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아라, 여러 관계로 인해서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인으로 하여금 네 입으로 너를 말하지 말아라. 맡은 일은 내가 하고 칭찬은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을 온전하게 길러가시려고 내게 주신 환경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관이 있고 객관이 있다는 거지요. 객관을 통해서 나를 살피면서 전부 함께 한 몸이 되라고 주신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자기 중심이 되어버리면, 거기서 손해가 많은 겁니다. 오후에 3절 보겠습니다. 1절 2절은 생명관이었습니다. 어떻게 연결이 되어지며 그런 것인가. 돌은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아니하거니와. 생명관하고 현실관이 이어집니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고쳐야하는데 객관을 주셨는데 그걸 두고 말씀하기를 현실을 당면할 때 돌도 무겁고 모래도 가볍지 않다. 성경에 몇 종류가 나오지요. 가장 큰 돌이 있습니다. 만세반석, 또 있습니다. 건물의 주춧돌, 그리고 말씀을 하신 씨를 뿌렸는데 첫 번째 뿌리 씨앗은 길가밭, 두 번째는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그 돌을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서 누군가 나를 건드리면 내 심기를 건드리면 내 자존심을 건드리면 내 마음을 건드리면, 나한테 뭐가 안 맞으면 그거 때문에 말씀을 져버리고 온갖 죄를 다 짖는 그게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가 왕이 되어서. 자존심 상해서 속이 상해서 사람마다 그게 있습니다. 그것을 건드리지 못하는, 그게 자기 중심이란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그것만 건드리면 못 보는 거지요. 너무 무겁고 자기 중심 무거워서 자기 중심에 바탕 성격은 같은 건데 사람마다 그게 다 다른겁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겁니다. 별별게 다 있습니다. 내개 있어서 내 중심의 돌, 성격도 있고 습성도 있고 오만 것이 다 있는데 내게서 이걸 뽑아버릴 게 뭐냐, 돌은 무겁다. 모래도 가볍지 않다. 모래라는 것은 작은 돌입니다. 그런데 쉽게 보고 가볍게 보이지만 결코 만만치 않다. 돌은 무겁고 돌은 자기 중심 작은 자기 중심같은데 그런 거. 그런데 미련한 자의 분노는 이것보다 더 무겁다.
모르면서 행동하는 게 그런 거지요. 미련한 자의 분노는 감정이지요. 미련한 자의 분노는 돌보다 더 무겁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은 무겁다, 미련한 자의 분노는 더 무겁다. 미련이라는 것은 모르고 행동하는 게 미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1절 2절 말씀을 기반으로 생각하십시다. 우리는 생명입니다. 생명된 내가 자라가야하는데 잘못 자라가면 문제가 생기니까 고쳐가라. 보는 것을 너의 눈으로 보지 말고 객관의 눈으로 보고 고쳐가라, 정말 어려운 것은 자기 중심이 있고 그보다 더한 것이 분노인데 투기라는 것이 있다. 그 마지막에 질투라는 건데, 고칠 거 하나씩 하고 고치도록 힘을쓰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