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극존칭 '비나이다. 비나이다...'
연구부2015-12-16조회 243추천 47
pkist 홈의 답변 설명을 그대로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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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세 많은 분들, 그 위로 수천 년간 우리 주변 어머니들이 평생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산신령에게 용왕에게 어디에다 대고도 그 마음의 한을 풀고 생존의 처절한 몸부림을 할 때, 마치 우리가 늘 '주님'을 평생 입에 달고 다니듯 그러했습니다. 불교 어법은 모르겠으나 절에 가는 분들도 부처에게 비나이다를 반복했을 듯합니다. 이 글을 적는 저희들 마음에도 이 표현이 나오면 그 때를 기억하고 그런 분들이 읽힙니다.
그래서 '비나이다'는 저희 연구부로서도 국문법의 특별한 지식은 없지만 한 눈에 볼 때 극존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자에게 비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또 엡3:15에서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되어 있는데 1백 년 전의 한글성경 번역진은 어법의 정확성에도 오늘 학자나 오늘 전문가들이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뛰어 났다고 합니다.
>'권찰회' 란에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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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
>후렴부에 [예수여 비노니] 하는 표현을 [예수여 비오니]로 고치는 것은 어떨는지요?
>예전 새찬송가 시절 부터 이 부분이 좀 거슬렸는데, 제가 아는 지식이 일천하여 모르겠습니다만,
>비노니 라는 단어는 좀 하대가 있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비오니]라는 표현으로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통일찬송가에서는 이 부분을 [비오니]로 고쳐서 부르고 있기는 합니다.
>정확한 표현이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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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연세 많은 분들, 그 위로 수천 년간 우리 주변 어머니들이 평생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산신령에게 용왕에게 어디에다 대고도 그 마음의 한을 풀고 생존의 처절한 몸부림을 할 때, 마치 우리가 늘 '주님'을 평생 입에 달고 다니듯 그러했습니다. 불교 어법은 모르겠으나 절에 가는 분들도 부처에게 비나이다를 반복했을 듯합니다. 이 글을 적는 저희들 마음에도 이 표현이 나오면 그 때를 기억하고 그런 분들이 읽힙니다.
그래서 '비나이다'는 저희 연구부로서도 국문법의 특별한 지식은 없지만 한 눈에 볼 때 극존칭이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자에게 비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또 엡3:15에서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되어 있는데 1백 년 전의 한글성경 번역진은 어법의 정확성에도 오늘 학자나 오늘 전문가들이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뛰어 났다고 합니다.
>'권찰회' 란에서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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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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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렴부에 [예수여 비노니] 하는 표현을 [예수여 비오니]로 고치는 것은 어떨는지요?
>예전 새찬송가 시절 부터 이 부분이 좀 거슬렸는데, 제가 아는 지식이 일천하여 모르겠습니다만,
>비노니 라는 단어는 좀 하대가 있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비오니]라는 표현으로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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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찬송가에서는 이 부분을 [비오니]로 고쳐서 부르고 있기는 합니다.
>정확한 표현이 어떤 것이 옳은지 판단을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