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심히 애통할 것들(약4:9)
이치영2015-01-13조회 255추천 45
1.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
예수 밖에 있는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 하셨습니다.
예수 밖에 있는 것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진 것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가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것과 같은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으로 근심으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웃음과 즐거움은 무엇이며, 왜 그것을 애통으로 근심으로 바꾸어야 하는가?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행복은 한 말로 말하면 다 세상 것을 말합니다.
세상 것이라는 말은 세상으로 끝나는 것들, 세상을 떠날 때는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다.
좋은 직장, 사업 성공, 잘나고 똑똑한 자녀, 행복한 가정, 좋은 학벌, 명예, 권세... 같은 것들이 다 세상 것이며,
이런 것들을 가리켜 예수 밖에 있는 것들이라 하고, 이런 것들로 인한 행복을 예수 밖에 있는 행복이라 합니다.
예수 밖에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세상을 떠나면 전부 두고 가야 될 것들이며, 하나님의 심판과 천국에서는 전혀 상관도 쓸모도 없는 것들인데
이런 것들을 마련하느라고 천국의 구원은 이루지 못하고 주신 한정된 심신의 힘과 노력과 세월을 허비하기 때문에
그 상태로 죽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가면 영원히 부끄러움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그 실상을 알고 보면 예수 밖에 있는 세상의 모든 웃음은 애통이며, 즐거움은 근심이기 때문에 바꾸라 하신 것입니다.
바꾸라는 말은 그 실상을 바로 알고 바른 것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웃음은 그 결과를 알고 보면 웃음이 아니라 애통이니 애통해야 마땅하고
예수 밖에 있는 즐거움은 그 결과를 알고 보면 즐거움이 아니라 근심거리이기 때문에 근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웃음이 웃음 아닌 애통인 줄 알면 그 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웃음을 찾아 가지려 하게 될 것이고
즐거움이 실상은 근심인 줄 알면 가짜 즐거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즐거움을 찾아 가지게 될 것이니,
짧은 세상만 보고 웃고 즐거워하지 말고, 멀리, 길게, 전체적으로 영원까지를 보면서 바른 웃음과 즐거움을 찾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2. 세상 것 위한 생애를 애통하라
인생은 영원 불멸의 존재라 합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인생 자체도 그러하지만 인생의 생애에 살아가는 모든 선악의 행적은 그대로 쌓이게 되고,
세상 사는 동안 선악간에 살아가며 쌓아 놓은 그대로 심판 받아 영원 무궁 상벌의 보응이 결정됩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고 인생의 세상 생애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때가 되면 불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땅이 도래하게 되며,
세상이 더 오래 유지되어도 세상에 사는 인생은 세상을 떠나 가야 합니다.
따라서 인생이 그 무엇이든 세상만을 위한 생애는 다 헛되고 맙니다.
부요도, 성공도, 행복도, 향락도, 명예도, 권세도 결국은 다 두고 가야 할 것들이며 자기와 상관없게 됩니다.
세상에서 모든 면으로 가장 성공하고 행복의 조건을 다 가졌던 솔로몬의 최종 결론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주어진 세상 생애는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영원 무궁세계 천국을 마련하는 기회인데
천국을 준비해야 하는 세상 생애를 없어질 세상 것 마련에 다 허비하게 되니 이를 애통하라는 말씀입니다.
고3 수험생이 고교 3년, 혹은 1년의 기간을 친구들과 놀고 자고 허비했다면
수능 시험 칠 날이 다가올수록 놀고 보낸 세월이 아깝고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
수능 시험이야 재수를 하든, 안 되면 진로를 달리 잡으면 되지만
우리의 생애는 한 번뿐이고, 그 한 번에서 영원히 결정되기 때문에 심히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3. 구하지 않음을 애통하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천지보다 무거운 불변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구걸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구걸하여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전 문에 앉아서 메다 놓는 사람에게 메여 가서 날마다 성전 문에서 구걸했습니다.
앉은뱅이는 구걸했고, 성전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무언가를 주었습니다.
매일 구걸했고 매일 주었지만 그 생활은 그대로 계속되는 한 평생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구걸했고, 앉은뱅이보다 좀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앉은뱅이가 구하는 것을 줬습니다.
가진 분량의 차이가 있어 한 사람은 없으니 구걸하고 다른 사람들은 가졌으니 주었지만 내면을 보면 같은 유의 사람들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들어갈 때 여전히 같은 것으로 구걸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가 구하는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는 은과 금을 구했고,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에게 은과 금이 없는 이유는 은과 금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했습니다.
사도들은 은과 금을 사람들에게 구하고 마련하는 대신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것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졌고 그것으로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습니다.
병을 고침 받으니 더 이상 구걸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자립할 수 있습니다. 구걸의 원인이 해결된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사람에게, 사람의 것을 구했지만 사도들은 하나님께 구하여 가진 것을 주었습니다.
믿는 사람은 구하면 주신다는 하나님의 계약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사람에게 구하거나 받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받고 구하는 것을 구걸이라 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대로 함으로 오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많이 주시면 많이 받아 함께 쓰고, 적게 주시면 적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구했는데 안 주시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없는 대로 살면 됩니다.
구하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사람에게 구하여 구걸하는 거지처럼 사는 것을 애통하라는 말씀입니다. 심히 애통할 일입니다.
4. 구해도 받지 못함을 애통하라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불변자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도 가감도 변함도 없는 절대입니다.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계약이며 그 계약은 절대성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구하면 주신다는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왜 구하지 않으며, 구하여도 받지 못하게 되는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정욕이라는 말은 육체의 소욕을 말합니다.
성령의 소욕 아닌 모든 욕심이 육체의 소욕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믿지 않으니 구하지 않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사람은 보이고 사람의 활동은 보이니 사람에게 구하게 됩니다.
믿고 구하는데도 받지 못한다면 구하는 사람의 동기와 목적이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심히 많고 자기는 너무 어리고 부족하니 하나님의 백성 다스릴 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의 구한 것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습니다.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않고 부와 장수도 부하지 않고 이 백성 다스릴 지혜를 구하니
지혜롭과 총명한 마음을 주실 뿐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함께 주셨습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기도를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합니다.
무조건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은 주신다고 착각합니다.
기도해서 되면 감사하고 안 되면 시험에 들고 신앙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예정대로 되고 있고
하나님의 모든 예정은 목적을 위해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도라는 제도를 내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닮은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원죄와 본죄로 죽은 죄인, 죄로 인하여 흠과 점과 실수 투성이인 불완전한 사람들을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하여
세월 속에, 현실을 통하여, 말씀으로 평생을 가르치고 길러 하나님 같은 사람을 만들어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는 이 일을 위해서 필요할 때 구하는 것이고 이 동기와 목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르고, 이것은 잊어버리고 생각지 아니하고 세상 것, 자기 위한 것, 자기 정욕을 위해서 구하기 때문에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도 없고, 응답 있는 경우는 아주 어린 신앙을 위해 보여주시는 표적이거나 자기 착각일 뿐인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나면 몰랐던 것, 착각했던 것, 욕심대로 구했던 것들을 심히 애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5. 심지 못함을 애통하라
세상은 영원의 흔적이며 종자입니다.
성도의 세상 생활은 영원을 마련하는 터전이며 심는 기간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고 준비했느냐에 따라 영원이 결정됩니다.
콩을 심었으면 콩을 추수하고 팥을 심었으면 팥을 거두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내신 인과응보의 필연적인 역사입니다. 변할 수 없습니다.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날리가 없고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날리도 없습니다.
심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안 나는 것이고, 심어도 가꾸지 않으면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100원짜리 동전과 5만원짜리 지폐가 있을 때
어린 아기들은 동그랗게 반짝거리는 100원짜리 동전을 가져갑니다.
예닐곱살이 되어 조금이라도 아는 아이는 단번에 5만원짜리를 취합니다.
100원보다는 5만원짜리가 훨씬 크다는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필연입니다.
봄에 파종을 하고 여름에 잘 가꾸면 가을에 추수가 있습니다.
심으면 심는 것의 수백배 수천 배 수만배 넘은 추수를 하는 줄 알기 때문에 심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떻게 좋은 것을 많이 가졌다 할지라도
세상은 두고 갈 것이며 없어질 것이며 썩어질 것이고
인생에게는 내세가 있어 부활과 심판과 영원 무궁세계가 있고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주와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살고 투자했느냐에 따라 영원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세상의 모든 것알 주와 복음을 위해서 심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심지 못하는 것이고 믿지 않기 때문에 심지 않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여 심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심지 않는 이 무지와 불신을 심히 애통하라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설교록의 깊이는 백 목사님의 생애의 깊이며 백 목사님의 성화의 깊이입니다.
설교록 속에 있는 도리도 알기 어렵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 성화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성경이나 설교록이나 말씀을 깨닫는 유일한 방법은 아는 대로 실행하는 것뿐입니다.
아는 대로 실행하면 하는 만큼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되게 되고
자기가 변화된 만큼 말씀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더욱 깨달아지게 되고 실감이 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족하지만 이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소망 중에 힘써 노력하고 있는 줄 압니다.
>설교록질문입니다.
>첫째 약4장 9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고 말씀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가져야 할 기쁨도 있고, 바꾸어야 할 잘못된 웃음과 즐거움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진리 밖에서 세상적인 것을 취하여 그것으로 인한 행복과 기쁨을 애통과 근심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예수밖에있는 행복을 어서 빨리 애통과 근심으로 바꾸어 가지라는것
>
>둘째는 세상것을 소망하여 분투노력하는 생애를 애통하라
>
>셋째는 주께 구하면 얻을 수 있는데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으로 사건으로 분쟁만 하고 힘써 얻지 못하는 생활을 애통하라
>
>넷째는 주께 구하면 주는데 우리가 얻지 못하는 생활을 애통하라
>
>다섯째는 주께 구하여 얻은 것을 심지 못하는 생애가
>애통해야 할 생애요, 애통으로 돌아서야 할 생애라고 배웠는데
>이 다섯가지를 자세히 알려주면 고맙겠습니다.
>말씀의 또가 깊어 저와의 생활과는 거리가 너무 멀게느껴집니다.
>
>
예수 밖에 있는 웃음을 애통으로,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꾸라 하셨습니다.
예수 밖에 있는 것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진 것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가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것과 같은 웃음과 즐거움을 애통으로 근심으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이 가진 웃음과 즐거움은 무엇이며, 왜 그것을 애통으로 근심으로 바꾸어야 하는가?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 안 믿는 사람들이 가지는 행복은 한 말로 말하면 다 세상 것을 말합니다.
세상 것이라는 말은 세상으로 끝나는 것들, 세상을 떠날 때는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것입니다.
좋은 직장, 사업 성공, 잘나고 똑똑한 자녀, 행복한 가정, 좋은 학벌, 명예, 권세... 같은 것들이 다 세상 것이며,
이런 것들을 가리켜 예수 밖에 있는 것들이라 하고, 이런 것들로 인한 행복을 예수 밖에 있는 행복이라 합니다.
예수 밖에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세상을 떠나면 전부 두고 가야 될 것들이며, 하나님의 심판과 천국에서는 전혀 상관도 쓸모도 없는 것들인데
이런 것들을 마련하느라고 천국의 구원은 이루지 못하고 주신 한정된 심신의 힘과 노력과 세월을 허비하기 때문에
그 상태로 죽고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에 가면 영원히 부끄러움으로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그 실상을 알고 보면 예수 밖에 있는 세상의 모든 웃음은 애통이며, 즐거움은 근심이기 때문에 바꾸라 하신 것입니다.
바꾸라는 말은 그 실상을 바로 알고 바른 것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웃음은 그 결과를 알고 보면 웃음이 아니라 애통이니 애통해야 마땅하고
예수 밖에 있는 즐거움은 그 결과를 알고 보면 즐거움이 아니라 근심거리이기 때문에 근심하라는 말씀입니다.
웃음이 웃음 아닌 애통인 줄 알면 그 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웃음을 찾아 가지려 하게 될 것이고
즐거움이 실상은 근심인 줄 알면 가짜 즐거움에서 벗어나 진정한 즐거움을 찾아 가지게 될 것이니,
짧은 세상만 보고 웃고 즐거워하지 말고, 멀리, 길게, 전체적으로 영원까지를 보면서 바른 웃음과 즐거움을 찾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2. 세상 것 위한 생애를 애통하라
인생은 영원 불멸의 존재라 합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인생 자체도 그러하지만 인생의 생애에 살아가는 모든 선악의 행적은 그대로 쌓이게 되고,
세상 사는 동안 선악간에 살아가며 쌓아 놓은 그대로 심판 받아 영원 무궁 상벌의 보응이 결정됩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고 인생의 세상 생애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때가 되면 불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땅이 도래하게 되며,
세상이 더 오래 유지되어도 세상에 사는 인생은 세상을 떠나 가야 합니다.
따라서 인생이 그 무엇이든 세상만을 위한 생애는 다 헛되고 맙니다.
부요도, 성공도, 행복도, 향락도, 명예도, 권세도 결국은 다 두고 가야 할 것들이며 자기와 상관없게 됩니다.
세상에서 모든 면으로 가장 성공하고 행복의 조건을 다 가졌던 솔로몬의 최종 결론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주어진 세상 생애는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영원 무궁세계 천국을 마련하는 기회인데
천국을 준비해야 하는 세상 생애를 없어질 세상 것 마련에 다 허비하게 되니 이를 애통하라는 말씀입니다.
고3 수험생이 고교 3년, 혹은 1년의 기간을 친구들과 놀고 자고 허비했다면
수능 시험 칠 날이 다가올수록 놀고 보낸 세월이 아깝고 애통하게 될 것입니다.
수능 시험이야 재수를 하든, 안 되면 진로를 달리 잡으면 되지만
우리의 생애는 한 번뿐이고, 그 한 번에서 영원히 결정되기 때문에 심히 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3. 구하지 않음을 애통하라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은 천지보다 무거운 불변의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구걸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구걸하여 살 수밖에 없습니다.
성전 문에 앉아서 메다 놓는 사람에게 메여 가서 날마다 성전 문에서 구걸했습니다.
앉은뱅이는 구걸했고, 성전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게 무언가를 주었습니다.
매일 구걸했고 매일 주었지만 그 생활은 그대로 계속되는 한 평생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구걸했고, 앉은뱅이보다 좀 더 많이 가진 사람들은 앉은뱅이가 구하는 것을 줬습니다.
가진 분량의 차이가 있어 한 사람은 없으니 구걸하고 다른 사람들은 가졌으니 주었지만 내면을 보면 같은 유의 사람들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들어갈 때 여전히 같은 것으로 구걸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가 구하는 것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는 은과 금을 구했고,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에게 은과 금이 없는 이유는 은과 금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했습니다.
사도들은 은과 금을 사람들에게 구하고 마련하는 대신 하나님께 직접 받은 것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졌고 그것으로 앉은뱅이를 고쳐 주었습니다.
병을 고침 받으니 더 이상 구걸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자립할 수 있습니다. 구걸의 원인이 해결된 것입니다.
앉은뱅이는 사람에게, 사람의 것을 구했지만 사도들은 하나님께 구하여 가진 것을 주었습니다.
믿는 사람은 구하면 주신다는 하나님의 계약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사람에게 구하거나 받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받고 구하는 것을 구걸이라 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대로 함으로 오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 많이 주시면 많이 받아 함께 쓰고, 적게 주시면 적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구했는데 안 주시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없는 대로 살면 됩니다.
구하면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되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도 않고,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사람에게 구하여 구걸하는 거지처럼 사는 것을 애통하라는 말씀입니다. 심히 애통할 일입니다.
4. 구해도 받지 못함을 애통하라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완전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불변자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도 가감도 변함도 없는 절대입니다.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계약이며 그 계약은 절대성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구하면 주신다는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왜 구하지 않으며, 구하여도 받지 못하게 되는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정욕이라는 말은 육체의 소욕을 말합니다.
성령의 소욕 아닌 모든 욕심이 육체의 소욕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의 말씀을 믿지 않으니 구하지 않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사람은 보이고 사람의 활동은 보이니 사람에게 구하게 됩니다.
믿고 구하는데도 받지 못한다면 구하는 사람의 동기와 목적이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심히 많고 자기는 너무 어리고 부족하니 하나님의 백성 다스릴 지혜를 구했습니다.
솔로몬의 구한 것이 하나님 마음에 맞았습니다.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않고 부와 장수도 부하지 않고 이 백성 다스릴 지혜를 구하니
지혜롭과 총명한 마음을 주실 뿐 아니라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함께 주셨습니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기도를 도깨비 방망이로 생각합니다.
무조건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은 주신다고 착각합니다.
기도해서 되면 감사하고 안 되면 시험에 들고 신앙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모든 역사는 예정대로 되고 있고
하나님의 모든 예정은 목적을 위해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도라는 제도를 내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닮은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원죄와 본죄로 죽은 죄인, 죄로 인하여 흠과 점과 실수 투성이인 불완전한 사람들을
하나님을 찾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하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하여
세월 속에, 현실을 통하여, 말씀으로 평생을 가르치고 길러 하나님 같은 사람을 만들어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는 이 일을 위해서 필요할 때 구하는 것이고 이 동기와 목적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르고, 이것은 잊어버리고 생각지 아니하고 세상 것, 자기 위한 것, 자기 정욕을 위해서 구하기 때문에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도 없고, 응답 있는 경우는 아주 어린 신앙을 위해 보여주시는 표적이거나 자기 착각일 뿐인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나면 몰랐던 것, 착각했던 것, 욕심대로 구했던 것들을 심히 애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5. 심지 못함을 애통하라
세상은 영원의 흔적이며 종자입니다.
성도의 세상 생활은 영원을 마련하는 터전이며 심는 기간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을 어떻게 살고 준비했느냐에 따라 영원이 결정됩니다.
콩을 심었으면 콩을 추수하고 팥을 심었으면 팥을 거두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이 내신 인과응보의 필연적인 역사입니다. 변할 수 없습니다.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날리가 없고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날리도 없습니다.
심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안 나는 것이고, 심어도 가꾸지 않으면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100원짜리 동전과 5만원짜리 지폐가 있을 때
어린 아기들은 동그랗게 반짝거리는 100원짜리 동전을 가져갑니다.
예닐곱살이 되어 조금이라도 아는 아이는 단번에 5만원짜리를 취합니다.
100원보다는 5만원짜리가 훨씬 크다는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필연입니다.
봄에 파종을 하고 여름에 잘 가꾸면 가을에 추수가 있습니다.
심으면 심는 것의 수백배 수천 배 수만배 넘은 추수를 하는 줄 알기 때문에 심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떻게 좋은 것을 많이 가졌다 할지라도
세상은 두고 갈 것이며 없어질 것이며 썩어질 것이고
인생에게는 내세가 있어 부활과 심판과 영원 무궁세계가 있고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주와 복음을 위해서 얼마나 살고 투자했느냐에 따라 영원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세상의 모든 것알 주와 복음을 위해서 심지 않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심지 못하는 것이고 믿지 않기 때문에 심지 않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여 심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심지 않는 이 무지와 불신을 심히 애통하라는 말씀입니다.
참고로
설교록의 깊이는 백 목사님의 생애의 깊이며 백 목사님의 성화의 깊이입니다.
설교록 속에 있는 도리도 알기 어렵지만 그 말씀대로 살아 성화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성경이나 설교록이나 말씀을 깨닫는 유일한 방법은 아는 대로 실행하는 것뿐입니다.
아는 대로 실행하면 하는 만큼 말씀의 사람으로 변화되게 되고
자기가 변화된 만큼 말씀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는 더욱 깨달아지게 되고 실감이 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족하지만 이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소망 중에 힘써 노력하고 있는 줄 압니다.
>설교록질문입니다.
>첫째 약4장 9절에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고 말씀했는데 여기서 우리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가져야 할 기쁨도 있고, 바꾸어야 할 잘못된 웃음과 즐거움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진리 밖에서 세상적인 것을 취하여 그것으로 인한 행복과 기쁨을 애통과 근심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예수밖에있는 행복을 어서 빨리 애통과 근심으로 바꾸어 가지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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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는 세상것을 소망하여 분투노력하는 생애를 애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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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는 주께 구하면 얻을 수 있는데 구하지 아니하고
>사람으로 사건으로 분쟁만 하고 힘써 얻지 못하는 생활을 애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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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는 주께 구하면 주는데 우리가 얻지 못하는 생활을 애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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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는 주께 구하여 얻은 것을 심지 못하는 생애가
>애통해야 할 생애요, 애통으로 돌아서야 할 생애라고 배웠는데
>이 다섯가지를 자세히 알려주면 고맙겠습니다.
>말씀의 또가 깊어 저와의 생활과는 거리가 너무 멀게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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