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세리의 영접 받은 세 가지
이치영2015-01-09조회 255추천 42
바리새인과 세리가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고
기도의 결과로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세리는 죄인이었지만 바리새인보다 의롭다 함을 받고 내려갔습니다.
바리새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는
자기가 자기 된 것이 하나님으로 인한 것임을 알지 못한 것,
주신 장점으로 오히려 자기 높이고 자랑하고 남을 멸시한 것,
하나님을 표준하여 자기를 고치지 않고 사람을 표준하여 오히려 교만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세리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은 세 가지 때문입니다.
자기의 단점만 찾아 죄인됨을 발견하고 애통한 것
죄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발견하고 두려워 떤 것
뒤로 물러가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나아온 것입니다.
1. 단점만 찾고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천하의 그 누구라도 장점만 있는 사람 없고 단점만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장점만 뽑으면 성자 성녀 아닌 사람 없고, 단점만 살피면 천하의 죄인 아닌 사람 없습니다.
사람은 대개 자기 장점을 찾고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단점은 최대한 감추고 장점은 최대한 드러내어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그런 경우였고, 세리는 그 반대였습니다.
세리는 자기 장점은 아예 생각지 못했습니다. 세리이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그 당시 자타가 다 알고 있는 죄인 중에 죄인이었습니다.
점령군인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는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리라고 하여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마태도 세리였고,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이들이 세리였기 때문에 죄인이었지만 그러기 때문에 더 갈급을 가졌습니다.
세리였기 때문에 죄인이고, 죄인인 줄 알기 때문에 의에 대해서 더 갈급을 가졌고,
그래서 늘 주님을 향한 의의 갈급을 가지고 있다가 마태는 주님이 부르시니까 바로 주님을 따랐고,
삭개오는 주님을 보고 싶어 하다가 뽕나무에 올라가 주님을 만났고 영접했습니다.
비유에 나타난 세리 역시 이런 경우입니다.
자기는 세리였고 죄인이었습니다. 머리를 들 수 없었습니다.
세리였지만 사람들을 기준하면 얼마든지 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리였지만 정당하게 했을 수도 있고, 거둔 세금을 남몰래 베풀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세리도 자기 의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지만
자기 의를 찾아 드러내고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핑계 대려 하지 않고
세리였기 때문에 죄인인 줄 알고, 자기의 죄인 된 면, 단점만을 찾아 주님 앞에 섰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낌 된 것이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자세로 주님 앞에 섰을 때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이 이치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신 죄인의 구주십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은 죄를 찾고 단점을 찾아 고치기를 원하는 자를 찾는 주님이십니다.
의를 드러내고 의로 인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주님께 버림당하고
죄를 찾고 단점을 찾아 고쳐 온전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찾아가시는 주님이십니다.
2. 하나님 두려우심을 알고
세리가 죄인됨을 알고 주님 앞에 나아왔으니 주님의 사랑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긍휼의 하나님이며 용서의 하나님이심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 면만 알았다면 하나님의 긍휼도 인정도 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리가 발견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소멸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진노의 하나님, 죄는 결코 용납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죄를 멸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죄만 가진 죄인으로 섰으니 두려워서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고 하나님게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한 죄를 지은 후
나단이 찾아와 하나님의 진노를 말했을 때 다윗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지은 죄가 두렵고 하나님이 두려워 일주일을 주야로 금식하며 울어 침상을 다 적셨습니다.
다윗이 지은 죄보다 다윗이 행한 의는 훨씬 많습니다.
자기가 행한 의를 드러내고 죄를 무마하려 했다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때까지 행한 의는 간 곳 없고, 하나님을 진노케 한 죄만 보였습니다.
죄를 소멸하시는 하나님이 두려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비유의 세리와 같은 면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사람들의 내면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사도 바울도 다 그러했습니다.
3. 긍휼을 구하며 나아온 것
죄를 찾아 발견하고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죄를 멸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 떨어도
그것뿐이면 공포심만 커지고 낙망만 커질 뿐일 것입니다.
여기서 세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소망 중에 나아왔습니다.
죄인됨의 자세로 머리를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했습니다.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 두려우심을 깨달아 뒤로 물러가고 도망쳤으면 멸망받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죄를 정하고 멸망시키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죄인을 회개시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이 긍휼을 믿고 소망 중에 하나님께 나아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도 이 이치는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소망이 완성입니다.
사죄를 죄를 멸하고, 칭의로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과 화친한 아들 삼으신 후
영원토록 하나님을 향하여 자라가고 온전케 되어지는 영생의 소망이 예수님의 대속의 완성입니다.
>누가복음 18:9-14
>바리새인과 세리의 신앙중에
>세리가 하나님에게 인정받은 이유는 3가지라고 배웠습니다
>
>첫째는 자기의 잘못한 점만 생각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거리낌이 된 것을
>애통하는 것이고
>
>둘째는 그 잘못에 대한 값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이에 대한 두려운 책임감에서
>하나님 앞에 감히 낯을 들지 못했고
>
>셋째는 그러나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불쌍히 여겨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 배웠는데 이세가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기도의 결과로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세리는 죄인이었지만 바리새인보다 의롭다 함을 받고 내려갔습니다.
바리새인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유는
자기가 자기 된 것이 하나님으로 인한 것임을 알지 못한 것,
주신 장점으로 오히려 자기 높이고 자랑하고 남을 멸시한 것,
하나님을 표준하여 자기를 고치지 않고 사람을 표준하여 오히려 교만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세리가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은 세 가지 때문입니다.
자기의 단점만 찾아 죄인됨을 발견하고 애통한 것
죄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발견하고 두려워 떤 것
뒤로 물러가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여 나아온 것입니다.
1. 단점만 찾고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천하의 그 누구라도 장점만 있는 사람 없고 단점만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장점만 뽑으면 성자 성녀 아닌 사람 없고, 단점만 살피면 천하의 죄인 아닌 사람 없습니다.
사람은 대개 자기 장점을 찾고 나타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단점은 최대한 감추고 장점은 최대한 드러내어 자기를 높이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그런 경우였고, 세리는 그 반대였습니다.
세리는 자기 장점은 아예 생각지 못했습니다. 세리이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그 당시 자타가 다 알고 있는 죄인 중에 죄인이었습니다.
점령군인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는 나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리라고 하여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마태도 세리였고,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이들이 세리였기 때문에 죄인이었지만 그러기 때문에 더 갈급을 가졌습니다.
세리였기 때문에 죄인이고, 죄인인 줄 알기 때문에 의에 대해서 더 갈급을 가졌고,
그래서 늘 주님을 향한 의의 갈급을 가지고 있다가 마태는 주님이 부르시니까 바로 주님을 따랐고,
삭개오는 주님을 보고 싶어 하다가 뽕나무에 올라가 주님을 만났고 영접했습니다.
비유에 나타난 세리 역시 이런 경우입니다.
자기는 세리였고 죄인이었습니다. 머리를 들 수 없었습니다.
세리였지만 사람들을 기준하면 얼마든지 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세리였지만 정당하게 했을 수도 있고, 거둔 세금을 남몰래 베풀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세리도 자기 의를 찾으려면 찾을 수 있었지만
자기 의를 찾아 드러내고 자기 합리화를 하거나 핑계 대려 하지 않고
세리였기 때문에 죄인인 줄 알고, 자기의 죄인 된 면, 단점만을 찾아 주님 앞에 섰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거리낌 된 것이 죄송해서 어쩔 줄 모르는 자세로 주님 앞에 섰을 때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이 이치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신 죄인의 구주십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은 죄를 찾고 단점을 찾아 고치기를 원하는 자를 찾는 주님이십니다.
의를 드러내고 의로 인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는 주님께 버림당하고
죄를 찾고 단점을 찾아 고쳐 온전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찾아가시는 주님이십니다.
2. 하나님 두려우심을 알고
세리가 죄인됨을 알고 주님 앞에 나아왔으니 주님의 사랑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긍휼의 하나님이며 용서의 하나님이심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이 면만 알았다면 하나님의 긍휼도 인정도 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세리가 발견한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소멸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동시에 진노의 하나님, 죄는 결코 용납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죄를 멸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 앞에 죄만 가진 죄인으로 섰으니 두려워서 벌벌 떨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고 하나님게 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그 아내를 취한 죄를 지은 후
나단이 찾아와 하나님의 진노를 말했을 때 다윗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지은 죄가 두렵고 하나님이 두려워 일주일을 주야로 금식하며 울어 침상을 다 적셨습니다.
다윗이 지은 죄보다 다윗이 행한 의는 훨씬 많습니다.
자기가 행한 의를 드러내고 죄를 무마하려 했다면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때까지 행한 의는 간 곳 없고, 하나님을 진노케 한 죄만 보였습니다.
죄를 소멸하시는 하나님이 두려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비유의 세리와 같은 면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사람들의 내면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사도 바울도 다 그러했습니다.
3. 긍휼을 구하며 나아온 것
죄를 찾아 발견하고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서고,
죄를 멸하시는 두려우신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 떨어도
그것뿐이면 공포심만 커지고 낙망만 커질 뿐일 것입니다.
여기서 세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소망 중에 나아왔습니다.
죄인됨의 자세로 머리를 들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했습니다.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 두려우심을 깨달아 뒤로 물러가고 도망쳤으면 멸망받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죄를 정하고 멸망시키지만
하나님의 긍휼은 죄인을 회개시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이 긍휼을 믿고 소망 중에 하나님께 나아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도 이 이치는 같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소망이 완성입니다.
사죄를 죄를 멸하고, 칭의로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과 화친한 아들 삼으신 후
영원토록 하나님을 향하여 자라가고 온전케 되어지는 영생의 소망이 예수님의 대속의 완성입니다.
>누가복음 18:9-14
>바리새인과 세리의 신앙중에
>세리가 하나님에게 인정받은 이유는 3가지라고 배웠습니다
>
>첫째는 자기의 잘못한 점만 생각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거리낌이 된 것을
>애통하는 것이고
>
>둘째는 그 잘못에 대한 값이 반드시 있을 것이니 이에 대한 두려운 책임감에서
>하나님 앞에 감히 낯을 들지 못했고
>
>셋째는 그러나 뒤로 물러가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불쌍히 여겨 용서해 달라고
>간구한 것이 배웠는데 이세가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