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바벨탑에서 깨달을 몇 가지
이치영2014-12-11조회 270추천 42
사람의 가장 큰 복은 예수 믿어 하나님을 아는 복이고
사람의 둘째 큰 복을 생각한다면 진리를 바로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설교록이 꿀같이 달다 하시니 참으로 큰 은혜며 귀하고 큰 복입니다.
그 복이 계속되고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며 넓어지고 높아지기를 소망하며,
우리 모든 교인들도 설교록에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는 이 귀한 복을 함께 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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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의 가치, 행위의 가치
사람의 가치가 하나님께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는 만큼, 두려워하는 만큼,
하나님을 알고 믿고 경외함으로 순종하는 만큼 사람의 가치는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면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되어집니다.
사람 중에 가장 귀하고 아름다우며 존영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며 모든 활동의 근원이십니다.
모든 존재도 모든 존재의 활동도 전부 하나님 한 분에게서 다 나온 것입니다.
모든 복도 존귀도 영광도 권위도 전부 하나님 한 분에게서 다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연결되면 하나님의 모든 지능과 존영과 권위가 그의 것이 됩니다.
겉은 사람인데 속은 하나님이 그 속에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주장하시게 되니
그 사람은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또한 사람의 가치입니다.
행위의 가치는 진리에 있다는 말은
진리대로 되어진 행위, 진리가 주장한 행위를 말합니다.
진리는 참된 이치입니다.
이치는 물질로 말하면 과학입니다.
나무는 물 위에 뜨고 돌은 물속에 가라앉습니다.
가연성 물질은 다 탑니다. 철도 용광로에 넣으면 녹습니다.
솥에 쌀을 넣고 물을 적당히 붓고 불을 알맞게 때면 밥이 됩니다.
이런 것들은 다 과학이며, 물질과학은 물질계 안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물질 세상이 알고 있는 범위에서도 과학은 변하지 않으며
물질과 물질의 관계에 있어서 과학을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과학은 이치이며 모든 물질은 이치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진리는 인간 구원의 이치입니다. 물질로 말하면 과학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인간 구원의 유일한 이치이며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의 절대 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진리대로 되어진 사람의 행위는 절대 변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해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행위는 심신의 언행심사입니다.
마음과 몸의 말과 행동 마음과 생각을 말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의 모든 언행심사가 진리대로 되고
진리가 그 사람의 언행심사를 주장하게 되면 이는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그 행위는 하나님의 뜻대로 된 행위이고 영원 불변입니다.
사람의 행위로서는 가장 가치 있는 행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 말에 '안 봐도 안다. 해 보나마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과를 안 봐도 현재 그의 행동이나 태도를 보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결과를 알 수 있다는 말이겠습니다.
그 사람의 앞날, 그가 하는 일의 결과를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현재 그 사람의 하나님과의 관계, 그의 행위와 진리와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진리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으면 결과를 안 봐도 그 앞날은 형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현재 아무리 형통하고 잘하고 잘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 진리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그 앞날은 결코 형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단정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목적은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만 보고 일시만 보면 달리 보일 수 있으나 그 결과는 절대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이며
하나님 없는 그들의 언행심사의 행위 또한 진리에 삐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보나 안 보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안 된 사람들이 안 되는 일을 했고 결과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2. 바벨탑의 죄악
바벨탑을 쌓은 것은 노아 홍수 이후이고 주로 함의 자손들입니다.
시날 땅을 기업으로 받은 함의 자손들이 주축이 되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함의 자손들은 세상의 처음 영걸이 날 만큼 세상적으로 잘난 사람들이지만 구원의 계통에서는 저주 받은 족속입니다.
노아 시대 홍수 멸망의 원인은 온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아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짝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노아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방주를 예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전인류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께 멸망받았고, 노아 가족은 하나님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멸망도 구원도 전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홍수에서 구원 받은 노아의 후손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노를 쌓지 않도록 노력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인데,
노아의 아들 중에 저주받은 함의 자손들은
세월 속에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또 다시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속에 홍수로 멸망받은 조상들이 생각나게 되었고,
혹시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를 홍수에 멸망받지 않을 방법을 생각한 것이 바벨탑이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또 다시 홍수를 내려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면
이번에는 자기 조상들처럼 어리석게 멸망하지 않고 홍수를 이기기 위하여 탑을 쌓았는데,
탑 꼭대기를 하늘까지 닿게 하면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설마 하늘 꼭대기까지야 오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이나 계획 속에 하나님은 조금도 없었고
인간들의 능력과 노력으로 똘똘 뭉치면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인간을 높인 죄악이며, 하나님 없이 인간들만 단합한 멸망받을 죄악인 것입니다.
3. 언어의 혼잡
바벨탑을 쌓을 당시 세상의 언어와 구음은 하나였습니다.
한 족속인 데다 온땅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더욱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바벨탑을 쌓게 된 원인도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복되게 사용합니다.
복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복 없게만 사용합니다.
병에 물이 절반 남아 있는 것을 두고
물이 절반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비관적,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과 긍정적 희망적으로 보는, 사람과 사람의 차이일 것입니다.
머리가 좋으면 하나님께서 좋은 머리를 주셨으니
그 좋은 머리로 공부하여 배운 것을 신앙생활에 유익하게 인간 구원에 사용하면 좋을 것인데
머리가 좋으니 공부를 잘하고 많이 하여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고
머리가 좋으니 그 좋은 머리를 악용하여 세상에서도 범죄에 빠지는 사람이 허다하게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족속인 데다 언어도 하나요 구음도 하나이니까
더욱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온 족속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면 더욱 하나 되도록 복을 주실 것인데,
한 족속이요 언어와 구음이 하나라 모든 것이 하나로 단합되게 되니까
그 하나 된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인간끼리 단합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데 사용하니까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냥 두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은 그 죄로 인하여 세상에는 언어가 수도 없이 많아지게 되었고,
오늘날도 나라마다 민족마다 언어와 구음이 다르고, 한 나라에서도 지방마다 언어가 다른 곳이 얼마나 많으며
이로 인하여 들어가는 수고와 비용 또한 상상할 수 없이 되어졌으니, 이는 순전히 바벨탑을 쌓음으로 받은 저주로 할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과 뜻과 소원과 목적 또한 갈갈이 찢어져서
하나님 없는 인생으로서는 두 사람도 뜻을 모으기 어려울 만큼 흩어진 세상이 되어졌으니
이 역시 선악과 따 먹고 악으로 타락한 데다 바벨탑을 쌓은 죄까지 더해져 받은 저주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바벨탑 설교를 듣던중에 질문을 드립니다.
>첫째로 백목사님은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에게 있고, 행위의 가치는 진리에 있다며 그 형통이 참 형통인지 멸망으로 가는 형통인지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나 진리와의 관계로 따져 보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부분을 알고싶습니다.
>
>둘째로 그 당시 두 가지 죄악 중에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사람 자기들을 높인 것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 빼고 사람단합만으로 승리와 성공을 하려고 한 죄악이라고 말씀하는 부분을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
>셋째로 2가지 죄악으로 온 멸망은 언어의 혼잡과 흩어짐으로 완전한 멸망이 왔는데 이 두가지 멸망을 알고싶습니다.
>
>급한 질문은 아닙니다. 목사님 여유있을때에 답변해주셔도됩니다.
>설교록이 꿀처럼 답니다.
>피곤하신데 죄송합니다.
>
사람의 둘째 큰 복을 생각한다면 진리를 바로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설교록이 꿀같이 달다 하시니 참으로 큰 은혜며 귀하고 큰 복입니다.
그 복이 계속되고 날이 갈수록 더 깊어지며 넓어지고 높아지기를 소망하며,
우리 모든 교인들도 설교록에 눈이 뜨이고 귀가 열리는 이 귀한 복을 함께 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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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의 가치, 행위의 가치
사람의 가치가 하나님께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만큼, 믿는 만큼, 두려워하는 만큼,
하나님을 알고 믿고 경외함으로 순종하는 만큼 사람의 가치는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면 점점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되어집니다.
사람 중에 가장 귀하고 아름다우며 존영한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며 모든 활동의 근원이십니다.
모든 존재도 모든 존재의 활동도 전부 하나님 한 분에게서 다 나온 것입니다.
모든 복도 존귀도 영광도 권위도 전부 하나님 한 분에게서 다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이 되고,
하나님과 연결되면 하나님의 모든 지능과 존영과 권위가 그의 것이 됩니다.
겉은 사람인데 속은 하나님이 그 속에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주장하시게 되니
그 사람은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또한 사람의 가치입니다.
행위의 가치는 진리에 있다는 말은
진리대로 되어진 행위, 진리가 주장한 행위를 말합니다.
진리는 참된 이치입니다.
이치는 물질로 말하면 과학입니다.
나무는 물 위에 뜨고 돌은 물속에 가라앉습니다.
가연성 물질은 다 탑니다. 철도 용광로에 넣으면 녹습니다.
솥에 쌀을 넣고 물을 적당히 붓고 불을 알맞게 때면 밥이 됩니다.
이런 것들은 다 과학이며, 물질과학은 물질계 안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물질 세상이 알고 있는 범위에서도 과학은 변하지 않으며
물질과 물질의 관계에 있어서 과학을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과학은 이치이며 모든 물질은 이치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진리는 인간 구원의 이치입니다. 물질로 말하면 과학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인간 구원의 유일한 이치이며 변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의 절대 법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진리대로 되어진 사람의 행위는 절대 변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해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행위는 심신의 언행심사입니다.
마음과 몸의 말과 행동 마음과 생각을 말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과 몸의 모든 언행심사가 진리대로 되고
진리가 그 사람의 언행심사를 주장하게 되면 이는 하나님과 동행입니다.
그 행위는 하나님의 뜻대로 된 행위이고 영원 불변입니다.
사람의 행위로서는 가장 가치 있는 행위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 말에 '안 봐도 안다. 해 보나마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과를 안 봐도 현재 그의 행동이나 태도를 보면,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결과를 알 수 있다는 말이겠습니다.
그 사람의 앞날, 그가 하는 일의 결과를 결과가 나타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현재 그 사람의 하나님과의 관계, 그의 행위와 진리와의 관계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진리와의 관계가 바로 되어 있으면 결과를 안 봐도 그 앞날은 형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현재 아무리 형통하고 잘하고 잘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과 진리와의 관계가 잘못되면 그 앞날은 결코 형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절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단정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목적은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만 보고 일시만 보면 달리 보일 수 있으나 그 결과는 절대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은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이며
하나님 없는 그들의 언행심사의 행위 또한 진리에 삐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는 보나 안 보나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안 된 사람들이 안 되는 일을 했고 결과도 그렇게 된 것입니다.
2. 바벨탑의 죄악
바벨탑을 쌓은 것은 노아 홍수 이후이고 주로 함의 자손들입니다.
시날 땅을 기업으로 받은 함의 자손들이 주축이 되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함의 자손들은 세상의 처음 영걸이 날 만큼 세상적으로 잘난 사람들이지만 구원의 계통에서는 저주 받은 족속입니다.
노아 시대 홍수 멸망의 원인은 온 세상에 죄악이 관영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아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과 짝이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노아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의인이었고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따라 방주를 예비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전인류는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께 멸망받았고, 노아 가족은 하나님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멸망도 구원도 전부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홍수에서 구원 받은 노아의 후손들은
당연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의 노를 쌓지 않도록 노력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인데,
노아의 아들 중에 저주받은 함의 자손들은
세월 속에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또 다시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속에 홍수로 멸망받은 조상들이 생각나게 되었고,
혹시 앞으로 또 있을지 모를 홍수에 멸망받지 않을 방법을 생각한 것이 바벨탑이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또 다시 홍수를 내려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면
이번에는 자기 조상들처럼 어리석게 멸망하지 않고 홍수를 이기기 위하여 탑을 쌓았는데,
탑 꼭대기를 하늘까지 닿게 하면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설마 하늘 꼭대기까지야 오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나 사고방식이나 계획 속에 하나님은 조금도 없었고
인간들의 능력과 노력으로 똘똘 뭉치면 하나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인간을 높인 죄악이며, 하나님 없이 인간들만 단합한 멸망받을 죄악인 것입니다.
3. 언어의 혼잡
바벨탑을 쌓을 당시 세상의 언어와 구음은 하나였습니다.
한 족속인 데다 온땅의 구음이 하나요 언어가 하나였기 때문에
더욱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고 바벨탑을 쌓게 된 원인도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복되게 사용합니다.
복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을 복 없게만 사용합니다.
병에 물이 절반 남아 있는 것을 두고
물이 절반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비관적,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과 긍정적 희망적으로 보는, 사람과 사람의 차이일 것입니다.
머리가 좋으면 하나님께서 좋은 머리를 주셨으니
그 좋은 머리로 공부하여 배운 것을 신앙생활에 유익하게 인간 구원에 사용하면 좋을 것인데
머리가 좋으니 공부를 잘하고 많이 하여 세상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고
머리가 좋으니 그 좋은 머리를 악용하여 세상에서도 범죄에 빠지는 사람이 허다하게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한 족속인 데다 언어도 하나요 구음도 하나이니까
더욱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향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여
온 족속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면 더욱 하나 되도록 복을 주실 것인데,
한 족속이요 언어와 구음이 하나라 모든 것이 하나로 단합되게 되니까
그 하나 된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인간끼리 단합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반하는 데 사용하니까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서 그냥 두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은 그 죄로 인하여 세상에는 언어가 수도 없이 많아지게 되었고,
오늘날도 나라마다 민족마다 언어와 구음이 다르고, 한 나라에서도 지방마다 언어가 다른 곳이 얼마나 많으며
이로 인하여 들어가는 수고와 비용 또한 상상할 수 없이 되어졌으니, 이는 순전히 바벨탑을 쌓음으로 받은 저주로 할 수 있을 것이고,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과 뜻과 소원과 목적 또한 갈갈이 찢어져서
하나님 없는 인생으로서는 두 사람도 뜻을 모으기 어려울 만큼 흩어진 세상이 되어졌으니
이 역시 선악과 따 먹고 악으로 타락한 데다 바벨탑을 쌓은 죄까지 더해져 받은 저주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백목사님의 바벨탑 설교를 듣던중에 질문을 드립니다.
>첫째로 백목사님은 사람의 가치는 하나님에게 있고, 행위의 가치는 진리에 있다며 그 형통이 참 형통인지 멸망으로 가는 형통인지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나 진리와의 관계로 따져 보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부분을 알고싶습니다.
>
>둘째로 그 당시 두 가지 죄악 중에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을 높이지 않고 사람 자기들을 높인 것이요, 또 하나는 하나님 빼고 사람단합만으로 승리와 성공을 하려고 한 죄악이라고 말씀하는 부분을 자세히 알고싶습니다.
>
>셋째로 2가지 죄악으로 온 멸망은 언어의 혼잡과 흩어짐으로 완전한 멸망이 왔는데 이 두가지 멸망을 알고싶습니다.
>
>급한 질문은 아닙니다. 목사님 여유있을때에 답변해주셔도됩니다.
>설교록이 꿀처럼 답니다.
>피곤하신데 죄송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