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요셉의 애굽 생활
이치영2013-03-31조회 280추천 47
'요셉의 애굽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생각해 본 말씀입니다.
1. 현실을 주신 분은 하나님
요셉이 애굽에 가게 된 것은 요셉의 자의는 먼지만큼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하는 요셉을 시기하던 형들이
죽이려 하다가 르우벤과 유다의 만류로 죽이지는 못하고 애굽에 팔아먹은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간 것은 외부로 보기에는 전적 형들의 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45:5, 7-8에 보면
요셉은 자기를 애굽에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닌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45:5)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창45:7-8)
위의 말씀을 살펴 보면 요셉의 신앙은
단순히 자기를 애굽에 보낸 것만이 아니고,
세상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지으신 세상을 주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고 믿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원론을 믿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일원론이란 모든 존재나 존재 활동의 원인이 하나님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일원론을 믿는다면 모든 현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지 아니한 존재가 세상에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이 하시지 아니한 역사가 세상에 있을 수가 없으니
내 현실이라는 시간도 장소도 관련된 존재도 현상태의 상황도
하나님이 만들어 내게 주셨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며 당연한 일이며 필연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믿는 사람이고, 이것을 안 믿으면 믿는다 하나 사실은 안 믿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이 모든 사실을 사실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믿어도 믿는 사람에게 근심 걱정 원망 불평 낙망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모든 생활의 원동은 하나님
원동이라는 말은 움직임의 원인라는 뜻입니다.
모든 활동의 원인, 이유라는 뜻입니다.
이 설명을 읽으시면서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질문을 왜 했는가? 질문한 이유가 무엇인가?
당연하겠지만 신앙생활에 알고자 하는 것이 있어 했으면
그게 바로 하나님 때문에 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왜 밥을 먹느냐, 왜 잠을 자느냐, 왜 일을 하느냐, 왜 그 옷을 입느냐,
왜 거기를 가느냐, 왜 그 사람을 만나느냐, 왜 그 말을 하느냐, 왜 웃느냐 왜 우느냐 왜 화를 내느냐...
이런 것을 가리켜 그 활동의 원인,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살아간 모든 생활의 원동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종살이 하고, 하나님 때문에 종살이를 성심성의껏 정직하게 하고,
하나님 때문에 부지런히 하고, 하나님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 쓰도 참고 감옥 가고...
범사 만사를 전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 때문에 산 것이 요셉의 생애였습니다. 이는 애굽에서만이 아니고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 생의 법칙은 말씀
요셉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신약은 물론 구약도 없을 때입니다.
따라서 명문된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 없을 때입니다.
그러나 조상들을 통해 배운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양심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 영감 역사가 있었으므로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고 아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말씀을 어기는 것은 죄고
죄가 있으면 하나님은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요셉의 모든 생활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으니
이는 요셉이 죄가 없었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이는
요셉이 모든 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을 법칙으로 삼아 살았다는 말입니다.
모든 현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 낙망하면 안 된다는 것도 말씀입니다.
비록 애굽 사람이지만 보디발은 상전이기 때문에 충성으로 섬기는 것도 말씀입니다.
정직하게 충성하여 그 가정의 총무가 되었지만 교만하지 않고 잘 감당하는 것도 말씀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미혹할 때 뿌리친 것도 말씀입니다.
말씀에서 길을 찾고, 말씀에서 답을 찾고, 말씀으로 빛을 삼고,
말씀으로 연구하고, 말씀을 근거하고, 말씀으로 확정하고
말씀을 법칙으로 삼아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으로 산 것이 요셉의 생애였습니다.
4. 소망은 오직 가나안
요셉의 소망이 오직 가나안에 있었다는 근거를 하나 생각해 보면,
당시 요셉이 속한 이스라엘 집안은 한 가족, 한 집안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은 자기들이 뿌리 내리고 번식할 만한 마땅한 땅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아버지 이삭과 아버지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대대로 약속하신 그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요셉,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을 알고 믿는 요셉에게
언젠가 가나안 땅이 자기들의 소유가 되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고
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아 그리로 돌아가는 것은
요셉의 필생의 소원과 소망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죽을 때 마지막 유언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자기의 해골을 메고 가라는 것이었고, 그 유언은 모세에 의해서 지켜졌습니다.
유언은 사람이 죽으면서 남기는 가장 중요한 당부입니다.
요셉의 유언이 자기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올라가라는 것이라는 말은
요셉의 평생 소원이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으로 인도하여 몸은 비록 애굽에 있었고
애굽에서 산 세월이 93년이나 되어 평생의 대부분이었지만
요셉의 일편단심 소망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에 있었습니다.
소망과 목적이 애굽이 아닌 가나안에 있으니
요셉의 애굽생활은 나그네 생활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자연히 애굽에서의 권세나 부요나 명예나 대우는 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고
애굽에 욕심 없는 요셉의 애굽 생활은
애굽을 전부로 사는 애굽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별세계의 사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이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세상에 살지만
믿는 사람의 소망은 오직 하늘나라 천국이라야 합니다.
목적과 소망과 모든 소원이 천국에 있으니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살기는 살되
세상 부귀영화 권세 명예 향락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
세상에 살지만 하늘의 사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보았습니다.
참고로 요셉의 신앙에 대해서는
pkist.net의 '활용자료' -> '확정본'에서
81. 2. 22. 주일 오전 오후 말씀을 재독해 보시면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현실을 주신 분은 하나님
요셉이 애굽에 가게 된 것은 요셉의 자의는 먼지만큼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의 편애와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고하는 요셉을 시기하던 형들이
죽이려 하다가 르우벤과 유다의 만류로 죽이지는 못하고 애굽에 팔아먹은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간 것은 외부로 보기에는 전적 형들의 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45:5, 7-8에 보면
요셉은 자기를 애굽에 보낸 것은 형들이 아닌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45:5)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창45:7-8)
위의 말씀을 살펴 보면 요셉의 신앙은
단순히 자기를 애굽에 보낸 것만이 아니고,
세상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지으신 세상을 주권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고 믿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일원론을 믿는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일원론이란 모든 존재나 존재 활동의 원인이 하나님 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일원론을 믿는다면 모든 현실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지 아니한 존재가 세상에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이 하시지 아니한 역사가 세상에 있을 수가 없으니
내 현실이라는 시간도 장소도 관련된 존재도 현상태의 상황도
하나님이 만들어 내게 주셨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며 당연한 일이며 필연입니다.
이것을 믿으면 믿는 사람이고, 이것을 안 믿으면 믿는다 하나 사실은 안 믿는 사람입니다.
요셉은 이 모든 사실을 사실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 믿어도 믿는 사람에게 근심 걱정 원망 불평 낙망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2. 모든 생활의 원동은 하나님
원동이라는 말은 움직임의 원인라는 뜻입니다.
모든 활동의 원인, 이유라는 뜻입니다.
이 설명을 읽으시면서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질문을 왜 했는가? 질문한 이유가 무엇인가?
당연하겠지만 신앙생활에 알고자 하는 것이 있어 했으면
그게 바로 하나님 때문에 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왜 밥을 먹느냐, 왜 잠을 자느냐, 왜 일을 하느냐, 왜 그 옷을 입느냐,
왜 거기를 가느냐, 왜 그 사람을 만나느냐, 왜 그 말을 하느냐, 왜 웃느냐 왜 우느냐 왜 화를 내느냐...
이런 것을 가리켜 그 활동의 원인,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살아간 모든 생활의 원동은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종살이 하고, 하나님 때문에 종살이를 성심성의껏 정직하게 하고,
하나님 때문에 부지런히 하고, 하나님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 쓰도 참고 감옥 가고...
범사 만사를 전부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 때문에 산 것이 요셉의 생애였습니다. 이는 애굽에서만이 아니고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 생의 법칙은 말씀
요셉 당시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신약은 물론 구약도 없을 때입니다.
따라서 명문된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 없을 때입니다.
그러나 조상들을 통해 배운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양심을 통해서 알려 주시는 영감 역사가 있었으므로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고 아는 대로 순종했습니다.
말씀을 어기는 것은 죄고
죄가 있으면 하나님은 함께하실 수 없습니다.
요셉의 모든 생활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셨으니
이는 요셉이 죄가 없었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이는
요셉이 모든 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을 법칙으로 삼아 살았다는 말입니다.
모든 현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것도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원망 불평 낙망하면 안 된다는 것도 말씀입니다.
비록 애굽 사람이지만 보디발은 상전이기 때문에 충성으로 섬기는 것도 말씀입니다.
정직하게 충성하여 그 가정의 총무가 되었지만 교만하지 않고 잘 감당하는 것도 말씀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미혹할 때 뿌리친 것도 말씀입니다.
말씀에서 길을 찾고, 말씀에서 답을 찾고, 말씀으로 빛을 삼고,
말씀으로 연구하고, 말씀을 근거하고, 말씀으로 확정하고
말씀을 법칙으로 삼아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으로 산 것이 요셉의 생애였습니다.
4. 소망은 오직 가나안
요셉의 소망이 오직 가나안에 있었다는 근거를 하나 생각해 보면,
당시 요셉이 속한 이스라엘 집안은 한 가족, 한 집안에 지나지 않았고
그들은 자기들이 뿌리 내리고 번식할 만한 마땅한 땅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과 할아버지 이삭과 아버지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대대로 약속하신 그 말씀은
하나님을 아는 요셉,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을 알고 믿는 요셉에게
언젠가 가나안 땅이 자기들의 소유가 되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고
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아 그리로 돌아가는 것은
요셉의 필생의 소원과 소망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의 죽을 때 마지막 유언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자기의 해골을 메고 가라는 것이었고, 그 유언은 모세에 의해서 지켜졌습니다.
유언은 사람이 죽으면서 남기는 가장 중요한 당부입니다.
요셉의 유언이 자기 해골을 메고 가나안으로 올라가라는 것이라는 말은
요셉의 평생 소원이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으로 인도하여 몸은 비록 애굽에 있었고
애굽에서 산 세월이 93년이나 되어 평생의 대부분이었지만
요셉의 일편단심 소망은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에 있었습니다.
소망과 목적이 애굽이 아닌 가나안에 있으니
요셉의 애굽생활은 나그네 생활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자연히 애굽에서의 권세나 부요나 명예나 대우는 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고
애굽에 욕심 없는 요셉의 애굽 생활은
애굽을 전부로 사는 애굽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별세계의 사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의 세상 생활이 바로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세상에 살지만
믿는 사람의 소망은 오직 하늘나라 천국이라야 합니다.
목적과 소망과 모든 소원이 천국에 있으니
세상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열심히 살기는 살되
세상 부귀영화 권세 명예 향락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
세상에 살지만 하늘의 사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해 보았습니다.
참고로 요셉의 신앙에 대해서는
pkist.net의 '활용자료' -> '확정본'에서
81. 2. 22. 주일 오전 오후 말씀을 재독해 보시면 자세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