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kist 에서 발췌, 요약한 내용입니다.
사회자2010-03-24조회 483추천 105
아래 내용은 pkist 홈에서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발췌하여 요약한 것입니다.
이번 질문에 대한 pkist 답변 내용을 살펴 보면서 크게 느낀 것은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믿은 세월이 오래고 맡은 직책이 있으면 하나님의 간섭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믿은 세월이 오래고 맡은 책임이 중할수록 하나님의 간섭은 더욱 철저하다는 것을 한 번 더 무서운 마음으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실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좋은 질문을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발췌 내용을 하단에 첨부했습니다. 보시면 자세하고 깊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앞에서는 간단하게 몇 가지만 요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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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은 원인 없고 이유 없고 필요 없는 일을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발원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유 없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대상이 이스라엘이고 거기에 다윗이 주동을 했으니,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다윗에 인해서 건설되었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은 단순히 많은 왕 중에 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한 다윗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곧 다윗이고 다윗은 곧 이스라엘 전체라고 할 수 있는 있습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모세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모세는 한 사람의 지도자이지만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은 모세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진노하실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은 곧 다윗에게 그 요소가 있다는 말이고 그것이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계수한 것으로 나타났으니, 짐작컨대 다윗에게 교만의 요소나 혹은 하나님보다 강대해진 이스라엘의 숫자를 의지할 수 있는 요소가 그 속에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통계 조사를 한 것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통치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고 난 다음 다윗이 하나님 앞에 심히 미련하게 큰 죄를 범했다고 자복했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크게 진노하시고 징계하신 것을 보면 다윗의 이 일은 단순히 통치 행위가 아닌 그 속에 다른 요소가 있었다고 스스로 자복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 요소가 더 커지기 전에 다윗을 감동시켜 이 일이 드러나도록 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당신과 가까울수록 더욱 세밀하고 철저하게 간섭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세밀하고 철저하게 간섭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을 계수한 이때의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절정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어릴 때의 목동 시절, 골리앗을 죽이고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고, 사울의 신하로 수많은 전쟁을 이기며 승승장구하다가 사울의 시기를 받아서 오랜 세월 쫓겨 다니던 시절, 사울이 죽고 갈라진 이스라엘을 통합하고 국내외의 수많은 적들을 다 물리치고 강대한 나라를 만들고,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은 일, 그로 인하여 자식들 간, 부자지간의 골육상쟁이 있었던 시절 등 수많은 과정을 다 거치고 이제 모든 면으로 신앙의 최절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던 다윗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은 세밀하고 철저할 수밖에 없고,
동시에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왕이기 때문에 다윗의 생각 하나는 곧 이스라엘 전체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각 하나, 있을 수 있는 요소 하나에 대해서 이렇게 세밀하고 철저하게 징계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다윗의 이 행위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얼른 보면 그들의 죽음은 순전히 다윗 때문이고 그들은 잘못 없는 억울한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어떤 사람에게도 억울하게 하지 않는 분이시며, 실수도 없는 분이심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죽음 역시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죄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혹 그런 죄가 없는데 죽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억울한 것이 아니고 더 큰 수입을 보는 것이 될 것인데, 그 내용이 하나님의 진노로 죽은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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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ist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감동시키사'라고 되어 있는 본문의 표현은, 앞뒤 사건 전개를 통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한 단어 단어의 뜻을 살피는 방법은, 원어로 된 원문을 살펴서 아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단순히 참고에서 그치는 것이 좋고, 차라리 그것보다는 그 사건 전체와 앞뒤 전개 내용을 살펴서 그 단어의 표현을 정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호와께서 치시려고 다윗을 움직였습니다. 그것을 한자로는 '감동'이라고 표현합니다. 일반적으로 '감동'이라는 단어는 좋은 뜻으로 느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앞뒤 사건 전개는 '감동'이라는 그 단어가 비록 지워져서 오늘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그 곳에 어떤 단어가 있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다윗을 잡으려고 미끼를 던지고 덪을 놓았다가 걸려들어오니까 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을 하기 위해 배를 월맹쪽에다 들이대어 공격을 유도해놓고, 적이 마지못해서 치니까 그다음부터는 수백대의 폭격기를 동원해서 거의 매일 월맹을 초토화시키던 것과 꼭같은 외형을 가졌습니다.
미국은 월맹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이기고 싶어 그렇게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다윗에 대하여 조처한 것은 그 목적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닮도록 만드는 큰 구원 역사 중의 한 단계일 뿐입니다. 백목사님의 자녀 교육 중에 그런 전언이 있습니다. 제일 착해서 도무지 꾸지람 한 번도 할 기회가 없었던 아들이 있었답니다. 한번씩 매를 맞아야 사람이 되는데 매를 때릴 기회가 없으니까 일부러 건수를 만들어가지고 때리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맞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만일 그런 배경을 알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도저히 그 아이로서는 알 수 없는 더 깊은 아버지의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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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상21장 전체를 요약하면
①역대상21장에 이르게 되면, 그야말로 다윗대왕의 천하가 열렸던 때였습니다.
남다른 어려움과 역경이 많았던 다윗이었습니다. 부모도 버리다시피 했던 목동이었고, 골리앗을 죽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였고, 사울왕의 미움을 받아 수없이 쫓겨다녔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 사울집안이 다스리던 세력을 통합하였고 외국 정벌을 하여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통치자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으로 다윗을 표시해 두고 있었습니다. 밧세바로 범죄하자 압살롬을 통해 징벌하여 세상 조롱이 되었으나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던 그 거룩과 진실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했고 내 마음에 합한 다윗이라고 수도 없이 말씀했던 다윗이었습니다.
②더 이상 흠이 없는 때라 할 순간에도, 선 줄로 생각하면 바로 넘어지는 법입니다.
모든 과정을 다 겪으며 이제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최전성기에 올려놓았을 때 다윗은, 예수믿는 사람이 그 신앙생활에서 닥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상황을 다 알고 겪었고 다 초월할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다윗이 그렇게 큰 죄도 아니고 순간적인 생각 하나에서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에 큰 죽음의 재앙이 닥치도록 했습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큰 칼을 들고 수없는 사람을 죽여야 그것이 큰 죄가 되고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장성하여 참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을 때는 남몰래 잠깐 손댄 것도 마구 밖으로 드러나고 천하가 요동치도록 난리가 났습니다. 신앙의 최전성기 가장 존귀한 자리에 있을 때에는 마음에 생각 한 번 해 본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또 자신이 여러 사람의 구원을 책임 맡는 자리에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빛이 제곱비례로 밝아지며 그 사람 속을 마구 들추어내게 됩니다. 이전에는 육안으로 검사하던 것을 이제는 X-ray검사로 속을 들여다보고 심지어 CT 촬영이나 MRI장비로 그 사람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이전에는 팔이 부러져야 부상인 줄 알았던 사람에게 이제는 전자현미경으로도 보일까 말까 한 지극히 세미한 것으로 죽고 사는 문제가 되게 하십니다.
나무 밑둥치에서는 넘어져도 박이나 깨지고 말지만, 높이 올라간 나무 꼭대기에서는 찰나에 뼈도 못추리도록 낙하하게 됩니다. 500여명이 타고 있는 비행기 조종간을 붙든 사람의 손끝은 순간순간 움직임은 컴퓨터 게임하는 아이들의 손놀림과는 그 차원이 아주 다릅니다.
말씀하신 성구는 평소 그냥 읽을 때는 성경공부를 하면서 상식적으로 외워두고 또 익혀두는 기록들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 성경에 묻어둔 이런 면 저런 면이 하나씩 눈에 띄이게 된다면 그는 이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겸손하여, 내가 무슨 그런 사람이라고... 하다가 한방에 끝장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겸손하다가도 이런 곳에 이르러서는 두려워 그 무릎이 부들부들 떨려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나 무슨 평신도 지도자급 신앙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벌망아지처럼 돌아다니던 스물 중반의 청년이 어쩌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이제 처자식이 자기 어깨 위에 올라붙었습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 하나 자세 하나에다가 그 식구 전부의 먹고 사는 문제, 입원하고 퇴원하는 문제를 크게 올려놓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다윗 같지는 않아도 그래도 우리 나름대로는 과거와 달리 세월 속에 자꾸만 하나님께서 그 상대하는 정도와 깊이를 더하여 가시면서 점점 더 잘 믿지 않으면 안 되도록 기어코 그냥 두지 않고 지나친 사랑으로 우리를 압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③시1:1에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 죄인의 길을 다 넘어섰을지라도, 한 고비가 더 있습니다.
인간 사회의 수없는 자기 중심의 경영과 계획에 끌려들어가지 않고 전부 넘어섰을지라도, 죄악 세상 속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삐뚤어진 죄인의 길을 전부 이기고 의인의 길로 걸어갔을지라도,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마지막 숨 쉬는 순간까지도 또 한 고비가 항상 더 남아있고 늘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오만한 자의 자리'입니다.
이만하면 이제 좀 쉬도 될 만하겠지, 이렇게까지 했으니 숨 좀 한번 돌려보자 하게 되면 다윗과 같이 바로 사탄의 낚시에 걸려버립니다. 바울과 같이 죽고 또 죽고 주를 위해 죽는 그 고비가 끝이 없을지라도 살아있는 매 순간에는 끝까지 주를 위해 죽어드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랑에 몸부림치는 그 식지 않는 뜨거움이 끝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비록 육체는 죽을 때가 가깝게 되면 피가 식어져 손발이 차가울지라도 '예수' 이름 앞에서는 그 마음에 끓는 피가 늘 솟구쳐 주체할 수 없어야 합니다.
70대 전후에서는 연로함으로 멀리까지 기도가는 것이 어려워 주저했는데, 오히려 80세 마지막 죽을 나이가 되던 해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왕복 2시간 차량거리의 산으로 가서 30분에서 1시간이나 걸리는 산비탈을 기어 올라가며 주님 앞에 꿇어앉아 벌벌 떨며 살았던 종을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보고 있습니다. 그 살아 생전이 끝까지 순생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마지막 죽음을 그냥 둘 수 없어 순교로 포장하고 천국가는 수송차량에 태우려고 가슴에 칼도장을 찍었던 이 시대 우리 중에 있었던 선지자를 기억합니다. 이곳이 그 신앙노선을 집중으로 연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1년 수고했다고 공로상을 받고, 10년 수고했다고 기념식수 행사가 있고, 수십 년 수고하면 별별 축하 행사가 다 따르는 것이 그분이 살던 교계였는데, 그는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네 발로 벌벌 기어 주님 안면을 살피고 살았습니다. 그 분이 젊어서 또 나이 들면서도 늘 조심한 최종 고비를 '오만한 자의 자리' 곧 '자기 마음에 만족이 되고 성취감을 느끼는 그 위험성'을 미리 보았고 미리 조심을 했으며, 그는 마지막 숨 거두는 순간까지도 다윗의 역상21장을 기억하여 성공했던 분입니다.
④요압은, 신앙의 바른 노선에 소속은 두고 있으나 그 행동은 외부인의 대표적 경우입니다.
요압이 다윗의 실수를 막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이때의 요압은 다윗보다 나은 사람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요압은 그 소속을 평생 다윗에게 두었으니 정통이요 구원의 반열이며 교회 내부에 적(籍)을 두고 있는 사람인데 그 언행은 항상 반발이요 이견이었습니다. 참으로 복된 위치에 놓였는데,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경우입니다. 출애굽은 했으나 늘 애굽 땅에 살던 때를 노래 부르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다 죽어야 했습니다. 실은 하나님이 죽이셨습니다. 요압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이번에는 옳은 것을 옳다고 했는데, 역시 그 성향이 늘 야당이며 반란군입니다. 우리 속에 얼마나 찾아야 하고 또 얼마나 회개하여 그 뿌리를 파 버려야 할 요소인지 모릅니다.
한편으로, 다윗에게는 이 노년의 방심은 요압까지 나서서 반대할 정도였다는 점도 살펴두어야 할 일입니다. 귀신에게 씌이면 순간 암흑이 되어 보고도 보지 못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너무도 환하게 보면서도 그렇게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경우를 주변에서도 허다히 볼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놓으시면 그 순간 우리는 뱀같은 인간이 되고, 그러다가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구원에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⑤이렇게 살펴 나가려다 보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 주의하실 것은
성경 관련 질문은, 사실 어느 한 사안을 두고 구체적으로 질문하지 않으신다면 그 답변은 끝이 없게 됩니다. 역상21장에 대한 전반적 소개를 질문하셨기 때문에 일단 몇 가지만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다 소개하고 안내드리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다는 점을 양해하셨으면 합니다.
2.삼하24:1과 역상21:1을 비교한다면
①두 성구를 먼저 인용합니다.
삼하24:1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역상21:1에서는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②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 유혹 범죄케 하고 있습니다. 역상21:1입니다.
사단은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조물 중에서는 영물인 천사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사단은 타락한 천사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 중심으로 모아진 것은 그와 함게 영원한 불구렁텅이로 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단은 자기 실력껏 자기 재주껏 부지런히 자기 중심으로 모든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가장 주력하는 대상은 성도입니다.
다윗같은 성자 성군에게까지, 그런 성자의 절정기 신앙에까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 끊임없이 빈 곳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일반 성도와는 너무도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수십년을 기다려서 기회가 한번 올까 말까 하는 정도인데,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서 한 건밖에 못할 것 같으면 우리 일반인의 집념으로는 포기할 만 할 것인데, 그가 누굽니까? 천하를 끌어다 지옥으로 쓸고 갈 사단입니다. 귀신 중에서도 제일 대장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드디어 다윗의 빈곳을 찾았고 즉시 다윗을 충격시켜 하나님 나라를 대파하게 되었으니 요 재미 때문에 사단은 비록 평생을 죄없이 사는 성결한 사람이 있다 해도 마지막 숨거두는 순간까지 그 사람 턱밑에 같이 턱을 괴고 눈을 깜짝깜짝 거리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 얼마나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고속도로에 경찰차 하나만 보여도 수백대 차량이 슬슬 기고 다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난 마을에는 수년간을 전부들 꼼짝 못하고 기고 사는데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사단이 이렇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말에는 우리가 다 담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가 다윗만큼 되기는 어렵다는 말이겠습니다.
역상21:1은, 악령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록한 성구입니다.
③하나님은 사단의 그런 노력까지도 우리를 기르는 방편으로 삼습니다. 삼하24:1입니다.
현장 감독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성수대교가 무너졌지만 그 당시 대통령은 자기가 그 무너진 다리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경찰관 한 사람이 일을 잘해서 어느 동네가 평안한 것도 그 당시 대통령의 훌륭한 치적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무지 무능하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는 실제 연관성은 없으나 법적 주격책임의 선을 그렇게 계산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경우는 차원이 다릅니다. 실질적인 연결로 말하면 우주 만물의 모든 움직임을 직접 주권 섭리하십니다. 또한 우리 구원을 두고 그 법적 지위로는 사단과 우리 성도가 투쟁할 때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양면이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으로는 하나님께서 주권 절반, 방관 절반을 섞어가며 우리를 상대하시는 듯 합니다.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눈동자같이 아끼시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주신 자유성 자율성이 무시될 정도로 설치지는 않으십니다. 또한 우리가 스스로 하도록 지켜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관자가 되어 아주 사단이 다 해먹도록 놔두지도 아니합니다. 이 면을 잘못 이해한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 예정, 절대 주권'이 아니라 '상대 예정, 상대 주권'이라고 할 만큼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삼하24:1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사단을 통해 한번 혼을 내야 할 이유가 있고 그럴 만한 필요가 있어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 조사할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고 또 이 일에 사단을 적절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④따라서 삼하24:1은 내부 원인을, 역상21:1은 외부 나타난 현상을 각각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이 땅 위의 역사는 눈으로 볼 때, 외부로는 사단이 움직여 우리를 시험하는 것으로 움직여지지만, 궁극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순서일 뿐임을 양쪽 성구가 모처럼 양면을 다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시험 모든 타락 모든 범죄에 있어 이 원리가 꼭같이 적용이 됩니다만 다윗의 인구조사 하나를 두고 삼하24:1과 역하21:1에서 대표적으로 양면을 한번 기록했으니 다른 곳에는 일일이 이렇게 기록하지 않아도 모든 성경 모든 우리 사건 전부에 다 해당되는 진리로 새길 일입니다.
이번 질문에 대한 pkist 답변 내용을 살펴 보면서 크게 느낀 것은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믿은 세월이 오래고 맡은 직책이 있으면 하나님의 간섭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그 믿은 세월이 오래고 맡은 책임이 중할수록 하나님의 간섭은 더욱 철저하다는 것을 한 번 더 무서운 마음으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실감을 가질 수 있도록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좋은 질문을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발췌 내용을 하단에 첨부했습니다. 보시면 자세하고 깊은 내용들이 있습니다.
앞에서는 간단하게 몇 가지만 요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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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은 원인 없고 이유 없고 필요 없는 일을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하나님으로부터 발원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유 없는 일은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인데, 그 대상이 이스라엘이고 거기에 다윗이 주동을 했으니,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다윗에 인해서 건설되었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것은 단순히 많은 왕 중에 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한 다윗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곧 다윗이고 다윗은 곧 이스라엘 전체라고 할 수 있는 있습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모세와의 관계와 같습니다. 모세는 한 사람의 지도자이지만 이스라엘 전체의 운명은 모세 한 사람에게 달려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진노하실 수 있는 요소가 있는 것은 곧 다윗에게 그 요소가 있다는 말이고 그것이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수를 계수한 것으로 나타났으니, 짐작컨대 다윗에게 교만의 요소나 혹은 하나님보다 강대해진 이스라엘의 숫자를 의지할 수 있는 요소가 그 속에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의 통계 조사를 한 것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통치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고 난 다음 다윗이 하나님 앞에 심히 미련하게 큰 죄를 범했다고 자복했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크게 진노하시고 징계하신 것을 보면 다윗의 이 일은 단순히 통치 행위가 아닌 그 속에 다른 요소가 있었다고 스스로 자복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 요소가 더 커지기 전에 다윗을 감동시켜 이 일이 드러나도록 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당신과 가까울수록 더욱 세밀하고 철저하게 간섭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세밀하고 철저하게 간섭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을 계수한 이때의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절정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어릴 때의 목동 시절, 골리앗을 죽이고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고, 사울의 신하로 수많은 전쟁을 이기며 승승장구하다가 사울의 시기를 받아서 오랜 세월 쫓겨 다니던 시절, 사울이 죽고 갈라진 이스라엘을 통합하고 국내외의 수많은 적들을 다 물리치고 강대한 나라를 만들고, 우리아를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은 일, 그로 인하여 자식들 간, 부자지간의 골육상쟁이 있었던 시절 등 수많은 과정을 다 거치고 이제 모든 면으로 신앙의 최절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고 있던 다윗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은 세밀하고 철저할 수밖에 없고,
동시에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왕이기 때문에 다윗의 생각 하나는 곧 이스라엘 전체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생각 하나, 있을 수 있는 요소 하나에 대해서 이렇게 세밀하고 철저하게 징계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은 그 누구에게도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다윗의 이 행위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얼른 보면 그들의 죽음은 순전히 다윗 때문이고 그들은 잘못 없는 억울한 죽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 어떤 사람에게도 억울하게 하지 않는 분이시며, 실수도 없는 분이심을 생각한다면 그들의 죽음 역시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죄가 있었다고 볼 수 있고, 혹 그런 죄가 없는데 죽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억울한 것이 아니고 더 큰 수입을 보는 것이 될 것인데, 그 내용이 하나님의 진노로 죽은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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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ist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 감동시키사'라고 되어 있는 본문의 표현은, 앞뒤 사건 전개를 통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한 단어 단어의 뜻을 살피는 방법은, 원어로 된 원문을 살펴서 아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단순히 참고에서 그치는 것이 좋고, 차라리 그것보다는 그 사건 전체와 앞뒤 전개 내용을 살펴서 그 단어의 표현을 정의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호와께서 치시려고 다윗을 움직였습니다. 그것을 한자로는 '감동'이라고 표현합니다. 일반적으로 '감동'이라는 단어는 좋은 뜻으로 느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의 앞뒤 사건 전개는 '감동'이라는 그 단어가 비록 지워져서 오늘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그 곳에 어떤 단어가 있었는지를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다윗을 잡으려고 미끼를 던지고 덪을 놓았다가 걸려들어오니까 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미국이 월남전에 개입을 하기 위해 배를 월맹쪽에다 들이대어 공격을 유도해놓고, 적이 마지못해서 치니까 그다음부터는 수백대의 폭격기를 동원해서 거의 매일 월맹을 초토화시키던 것과 꼭같은 외형을 가졌습니다.
미국은 월맹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이기고 싶어 그렇게 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다윗에 대하여 조처한 것은 그 목적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닮도록 만드는 큰 구원 역사 중의 한 단계일 뿐입니다. 백목사님의 자녀 교육 중에 그런 전언이 있습니다. 제일 착해서 도무지 꾸지람 한 번도 할 기회가 없었던 아들이 있었답니다. 한번씩 매를 맞아야 사람이 되는데 매를 때릴 기회가 없으니까 일부러 건수를 만들어가지고 때리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맞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만일 그런 배경을 알았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도저히 그 아이로서는 알 수 없는 더 깊은 아버지의 목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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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대상21장 전체를 요약하면
①역대상21장에 이르게 되면, 그야말로 다윗대왕의 천하가 열렸던 때였습니다.
남다른 어려움과 역경이 많았던 다윗이었습니다. 부모도 버리다시피 했던 목동이었고, 골리앗을 죽여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였고, 사울왕의 미움을 받아 수없이 쫓겨다녔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음 사울집안이 다스리던 세력을 통합하였고 외국 정벌을 하여 이스라엘의 가장 대표적인 통치자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영원한 왕으로 다윗을 표시해 두고 있었습니다. 밧세바로 범죄하자 압살롬을 통해 징벌하여 세상 조롱이 되었으나 오직 하나님밖에 없었던 그 거룩과 진실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욱 기뻐했고 내 마음에 합한 다윗이라고 수도 없이 말씀했던 다윗이었습니다.
②더 이상 흠이 없는 때라 할 순간에도, 선 줄로 생각하면 바로 넘어지는 법입니다.
모든 과정을 다 겪으며 이제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최전성기에 올려놓았을 때 다윗은, 예수믿는 사람이 그 신앙생활에서 닥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상황을 다 알고 겪었고 다 초월할 수 있었던 때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다윗이 그렇게 큰 죄도 아니고 순간적인 생각 하나에서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 전체에 큰 죽음의 재앙이 닥치도록 했습니다.
신앙이 어릴 때는 큰 칼을 들고 수없는 사람을 죽여야 그것이 큰 죄가 되고 그로 인해 많은 고통이 있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장성하여 참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을 때는 남몰래 잠깐 손댄 것도 마구 밖으로 드러나고 천하가 요동치도록 난리가 났습니다. 신앙의 최전성기 가장 존귀한 자리에 있을 때에는 마음에 생각 한 번 해 본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또 자신이 여러 사람의 구원을 책임 맡는 자리에 나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빛이 제곱비례로 밝아지며 그 사람 속을 마구 들추어내게 됩니다. 이전에는 육안으로 검사하던 것을 이제는 X-ray검사로 속을 들여다보고 심지어 CT 촬영이나 MRI장비로 그 사람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습니다. 이전에는 팔이 부러져야 부상인 줄 알았던 사람에게 이제는 전자현미경으로도 보일까 말까 한 지극히 세미한 것으로 죽고 사는 문제가 되게 하십니다.
나무 밑둥치에서는 넘어져도 박이나 깨지고 말지만, 높이 올라간 나무 꼭대기에서는 찰나에 뼈도 못추리도록 낙하하게 됩니다. 500여명이 타고 있는 비행기 조종간을 붙든 사람의 손끝은 순간순간 움직임은 컴퓨터 게임하는 아이들의 손놀림과는 그 차원이 아주 다릅니다.
말씀하신 성구는 평소 그냥 읽을 때는 성경공부를 하면서 상식적으로 외워두고 또 익혀두는 기록들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그 성경에 묻어둔 이런 면 저런 면이 하나씩 눈에 띄이게 된다면 그는 이미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겸손하여, 내가 무슨 그런 사람이라고... 하다가 한방에 끝장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겸손하다가도 이런 곳에 이르러서는 두려워 그 무릎이 부들부들 떨려야 할 것입니다. 목회자나 무슨 평신도 지도자급 신앙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으로 알아서는 곤란합니다. 벌망아지처럼 돌아다니던 스물 중반의 청년이 어쩌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면, 이제 처자식이 자기 어깨 위에 올라붙었습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마음 하나 자세 하나에다가 그 식구 전부의 먹고 사는 문제, 입원하고 퇴원하는 문제를 크게 올려놓았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다윗 같지는 않아도 그래도 우리 나름대로는 과거와 달리 세월 속에 자꾸만 하나님께서 그 상대하는 정도와 깊이를 더하여 가시면서 점점 더 잘 믿지 않으면 안 되도록 기어코 그냥 두지 않고 지나친 사랑으로 우리를 압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③시1:1에서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 죄인의 길을 다 넘어섰을지라도, 한 고비가 더 있습니다.
인간 사회의 수없는 자기 중심의 경영과 계획에 끌려들어가지 않고 전부 넘어섰을지라도, 죄악 세상 속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삐뚤어진 죄인의 길을 전부 이기고 의인의 길로 걸어갔을지라도,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마지막 숨 쉬는 순간까지도 또 한 고비가 항상 더 남아있고 늘 옆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오만한 자의 자리'입니다.
이만하면 이제 좀 쉬도 될 만하겠지, 이렇게까지 했으니 숨 좀 한번 돌려보자 하게 되면 다윗과 같이 바로 사탄의 낚시에 걸려버립니다. 바울과 같이 죽고 또 죽고 주를 위해 죽는 그 고비가 끝이 없을지라도 살아있는 매 순간에는 끝까지 주를 위해 죽어드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사랑에 몸부림치는 그 식지 않는 뜨거움이 끝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비록 육체는 죽을 때가 가깝게 되면 피가 식어져 손발이 차가울지라도 '예수' 이름 앞에서는 그 마음에 끓는 피가 늘 솟구쳐 주체할 수 없어야 합니다.
70대 전후에서는 연로함으로 멀리까지 기도가는 것이 어려워 주저했는데, 오히려 80세 마지막 죽을 나이가 되던 해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왕복 2시간 차량거리의 산으로 가서 30분에서 1시간이나 걸리는 산비탈을 기어 올라가며 주님 앞에 꿇어앉아 벌벌 떨며 살았던 종을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보고 있습니다. 그 살아 생전이 끝까지 순생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 마지막 죽음을 그냥 둘 수 없어 순교로 포장하고 천국가는 수송차량에 태우려고 가슴에 칼도장을 찍었던 이 시대 우리 중에 있었던 선지자를 기억합니다. 이곳이 그 신앙노선을 집중으로 연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1년 수고했다고 공로상을 받고, 10년 수고했다고 기념식수 행사가 있고, 수십 년 수고하면 별별 축하 행사가 다 따르는 것이 그분이 살던 교계였는데, 그는 주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네 발로 벌벌 기어 주님 안면을 살피고 살았습니다. 그 분이 젊어서 또 나이 들면서도 늘 조심한 최종 고비를 '오만한 자의 자리' 곧 '자기 마음에 만족이 되고 성취감을 느끼는 그 위험성'을 미리 보았고 미리 조심을 했으며, 그는 마지막 숨 거두는 순간까지도 다윗의 역상21장을 기억하여 성공했던 분입니다.
④요압은, 신앙의 바른 노선에 소속은 두고 있으나 그 행동은 외부인의 대표적 경우입니다.
요압이 다윗의 실수를 막고 있었습니다. 이렇게만 본다면 이때의 요압은 다윗보다 나은 사람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요압은 그 소속을 평생 다윗에게 두었으니 정통이요 구원의 반열이며 교회 내부에 적(籍)을 두고 있는 사람인데 그 언행은 항상 반발이요 이견이었습니다. 참으로 복된 위치에 놓였는데,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 없는 경우입니다. 출애굽은 했으나 늘 애굽 땅에 살던 때를 노래 부르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다 죽어야 했습니다. 실은 하나님이 죽이셨습니다. 요압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이번에는 옳은 것을 옳다고 했는데, 역시 그 성향이 늘 야당이며 반란군입니다. 우리 속에 얼마나 찾아야 하고 또 얼마나 회개하여 그 뿌리를 파 버려야 할 요소인지 모릅니다.
한편으로, 다윗에게는 이 노년의 방심은 요압까지 나서서 반대할 정도였다는 점도 살펴두어야 할 일입니다. 귀신에게 씌이면 순간 암흑이 되어 보고도 보지 못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너무도 환하게 보면서도 그렇게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경우를 주변에서도 허다히 볼 것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놓으시면 그 순간 우리는 뱀같은 인간이 되고, 그러다가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구원에 지팡이가 되는 것입니다.
⑤이렇게 살펴 나가려다 보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 주의하실 것은
성경 관련 질문은, 사실 어느 한 사안을 두고 구체적으로 질문하지 않으신다면 그 답변은 끝이 없게 됩니다. 역상21장에 대한 전반적 소개를 질문하셨기 때문에 일단 몇 가지만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았습니다. 전반적으로 다 소개하고 안내드리기에는 그 양이 너무 많다는 점을 양해하셨으면 합니다.
2.삼하24:1과 역상21:1을 비교한다면
①두 성구를 먼저 인용합니다.
삼하24:1에서는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역상21:1에서는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②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시험 유혹 범죄케 하고 있습니다. 역상21:1입니다.
사단은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조물 중에서는 영물인 천사와 인간에게만 주어진 것입니다. 사단은 타락한 천사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 중심으로 모아진 것은 그와 함게 영원한 불구렁텅이로 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사단은 자기 실력껏 자기 재주껏 부지런히 자기 중심으로 모든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가장 주력하는 대상은 성도입니다.
다윗같은 성자 성군에게까지, 그런 성자의 절정기 신앙에까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또 끊임없이 빈 곳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다윗은 일반 성도와는 너무도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으므로 수십년을 기다려서 기회가 한번 올까 말까 하는 정도인데,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서 한 건밖에 못할 것 같으면 우리 일반인의 집념으로는 포기할 만 할 것인데, 그가 누굽니까? 천하를 끌어다 지옥으로 쓸고 갈 사단입니다. 귀신 중에서도 제일 대장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다가 드디어 다윗의 빈곳을 찾았고 즉시 다윗을 충격시켜 하나님 나라를 대파하게 되었으니 요 재미 때문에 사단은 비록 평생을 죄없이 사는 성결한 사람이 있다 해도 마지막 숨거두는 순간까지 그 사람 턱밑에 같이 턱을 괴고 눈을 깜짝깜짝 거리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 얼마나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살아야 할 것인지!
고속도로에 경찰차 하나만 보여도 수백대 차량이 슬슬 기고 다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난 마을에는 수년간을 전부들 꼼짝 못하고 기고 사는데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사단이 이렇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말에는 우리가 다 담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으니, 과연 우리가 다윗만큼 되기는 어렵다는 말이겠습니다.
역상21:1은, 악령의 활동을 중심으로 기록한 성구입니다.
③하나님은 사단의 그런 노력까지도 우리를 기르는 방편으로 삼습니다. 삼하24:1입니다.
현장 감독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성수대교가 무너졌지만 그 당시 대통령은 자기가 그 무너진 다리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경찰관 한 사람이 일을 잘해서 어느 동네가 평안한 것도 그 당시 대통령의 훌륭한 치적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은 무지 무능하기 때문에 그 현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하여는 실제 연관성은 없으나 법적 주격책임의 선을 그렇게 계산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경우는 차원이 다릅니다. 실질적인 연결로 말하면 우주 만물의 모든 움직임을 직접 주권 섭리하십니다. 또한 우리 구원을 두고 그 법적 지위로는 사단과 우리 성도가 투쟁할 때는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양면이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으로는 하나님께서 주권 절반, 방관 절반을 섞어가며 우리를 상대하시는 듯 합니다.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눈동자같이 아끼시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주신 자유성 자율성이 무시될 정도로 설치지는 않으십니다. 또한 우리가 스스로 하도록 지켜보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관자가 되어 아주 사단이 다 해먹도록 놔두지도 아니합니다. 이 면을 잘못 이해한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 예정, 절대 주권'이 아니라 '상대 예정, 상대 주권'이라고 할 만큼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따라서 삼하24:1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사단을 통해 한번 혼을 내야 할 이유가 있고 그럴 만한 필요가 있어 다윗으로 하여금 인구 조사할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셨고 또 이 일에 사단을 적절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④따라서 삼하24:1은 내부 원인을, 역상21:1은 외부 나타난 현상을 각각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이 땅 위의 역사는 눈으로 볼 때, 외부로는 사단이 움직여 우리를 시험하는 것으로 움직여지지만, 궁극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순서일 뿐임을 양쪽 성구가 모처럼 양면을 다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시험 모든 타락 모든 범죄에 있어 이 원리가 꼭같이 적용이 됩니다만 다윗의 인구조사 하나를 두고 삼하24:1과 역하21:1에서 대표적으로 양면을 한번 기록했으니 다른 곳에는 일일이 이렇게 기록하지 않아도 모든 성경 모든 우리 사건 전부에 다 해당되는 진리로 새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