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3일 금밤
김2026-03-13조회 16추천 2
2026년 3월 13일 금밤
찬송: 51장
본문: 에스겔 33장 12절 - 1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의 말씀 기억해야겠습니다. 그걸로 이어갈지 이걸로 갈지 모르겠으나 갓난아이같이,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갓난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비유로 하신 말씀이고 우리들에게 우리는 갓난아이가 아니지요. 갓난아이 아닌 우리들이 갓난아이처럼 되어야합니다. 생명에 속한 것이므로, 생명의 근본은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본입니다. 생명의 근본 뿐 아니고 모든 존재의 근본도 존재활동의 근본도 지능의 근본도 그래서 사람의 실력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끊어진 생명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영광도 소망도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끊어져 사는 사람은 신앙 생활입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고 일 잘하고 편안하게 잘 살아도 하나님과 끊어지면 그 사람의 끊은 저희를 매끄러운 곳에 두시고 파멸에 던진다고 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 세월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게 유한한 세상에서는 끝이 있고 오는 내세는 영원한데 오는 내세 준비가 유한한 세상에 사는데 하나님이 정하신 그게 끝날 때까지 영원토록 그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자라가려는 조건이 몇 가지 필요합니까. 몇 가지 필요한가요, 세월이 필요합니다. 생명 없는 것은 장비만 많이 투자하면 할 수 있습니다. 기술만 따라가면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의 생명도 두 번째는요 환경이 맞아야합니다. 세 번째는 양식을 먹어야합니다. 먹지 않고 자라는 생명은 없습니다. 생명존재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세월과 환경은 마련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주시는 겁니다. 내 생명이 자라갈 세월을 정하지 못합니다. 환경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한 거 같으나 하나님께서 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월을 주시고 그 환경 속에서 잘하게 되면 자라게 됩니다. 고깃덩어리는 먹으면 자라게 됩니다. 양서, 좋은 책은 많이 읽으면 잘 자란다, 이건 불신자라는 것이고 믿는 사람의 신앙이 자라는 것은 말씀입니다. 사모라는 것은 그리워하는 겁니다. 그리워하는 것은 노력으로 되는 건데, 저절로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갓난 아기, 우리 교회 누가 갓난아기지요. 경호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네요. 그 갓난아기는 엄마 품에서 엄마만 기다리고 생각하고 사모하는 겁니다. 본능적으로 하는 겁니다. 어른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려면 다섯 가지를 버려라, 다섯 가지를 버리고 사모하면 되는데 갓난 아기의 엄마 사모는 저절로 됩니다. 이걸 본능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걸 본능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만드는 본능이 있습니다. 저절로 그리 되는 겁니다. 잘못된 본능도 있고 좋은 본능도 있습니다. 만들어지는 본능은 연습으로 되는 겁니다. 축구 선수들이 공찰 때 그 스피드, 방어를 피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은 판단입니다. 스케이트타는 스케이트 선수들이 얼음판에서 빙빙돌고 춤을 추는 것은 본능입니다. 인지, 순간 판단을 넘어서 움직이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피나는 연습이 되는 겁니다. 타고난 본능이 있고 연습이 있습니다. 나쁜 것을 먹으면 담배, 술 같은 거 안 먹으면 좋은데 나중에 본능처럼 되어버립니다.
이건 연습으로 된 본능입니다. 갓난 아이가 엄마 젖을 사모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우리는 갓난 아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갓난 아이 아니죠, 그런데 갓난 아이들 같이, 그 말은 비유입니다. 너희들은 갓난 아이가 아니다. 그런데 갓난아이처럼 되어야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연습으로 되는 겁니다. 운동선수들이 피아노 치고 피아노 치는 분들, 찬송가 칠 때 이 다음에 솔이다 생각하고 칩니까 손이 저절로 갑니까. 악보보면서 생각하면 칩니까 저절로 칩니까. 손이 저절로 가지요, 그런데 처음에 피아노 배워보려면 도 레 미 하나하나 생각해야합니다. 처음에는 연습이 안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계산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연습이 되고 되고 하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글자가 또박또박 쓰는데 그런 겁니다. 타이핑 칠 때도 그렇지요. 연습으로 되어진 본닝이라고 합니다. 건설도 성화구원은 그렇게 만들어가는 거고 연습으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잘못 연습이 되면 굉장히 불리하고 바로 연습해나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도 연습으로 되는 겁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하라, 아니니까 되어야합니다. 어떻게 연습하면 될까요,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옳은 연습을 하는 게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공부할 때 영어단어 외우는 거 수학 공식 외우는 거 아이들이 말을 합니다. 말은 하면 저절로 됩니다. 그래서 어학 공부의 첫 번째는 뭐지요, 영어공부의 첫째는 듣는 겁니다. 그 다음에 말하고, 안 그러면 말 못하고 들어야 말하는 겁니다. 그래야 읽고 쓰고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고 들립니다. 말씀을 읽을 때 재미가 있습니까 말씀이, 말씀이 재미있으면 성자입니다. 그런데 어지간한 사람들은 말씀이 재미가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말씀이 재미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렇게 재미가 있습니다.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짝 노력하면 많이 들어갑니다. 읽고 또 읽고 일부러 생각하는 겁니다.
말씀 생각하려고 하면 드라마, 휴대폰 그러면 그게 마귀입니다. 다 끊어버리고 노력해서 하다보면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가 노력하는데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공자의 도덕을 계속 접하면 공자가 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자꾸 접촉하면 그런 사람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바닷가에 살면 바닷가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자꾸 접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평소 신앙 생활에서 반복되는 탄식이 되고 낙심이 되고 소망 주는 말씀, 이 말씀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은 죄를 지어서 죄에 빠져 죽는 걸 원치않습니다. 악인이 죄를 짓고 그거 때문에 죽는 것은 원하지 않고 악인이 돌이켜 사는 것은 원하신다. 자식이 애를 먹입니다. 너는 내 아들 아니다, 나가 죽어라,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녀는 그렇게 말하는데 옆집의 아이가 그런 짓 하면 무슨 짓을 해도 나가 죽어라 원수다 그런 말 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집 아들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식이 나가 죽어라, 죽기를 원합니까 회개하고 돌아오길 원합니까. 그런 겁니다. 둘째 아들 탕자가 아버지 살아생전에 나에게 나눠줄 유업을 미리 나눠주옵소서,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불효막심한 놈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애가 타서 매일 기다리는 겁니다. 아버지 재산 탕진하다가, 엉망이 되건말든 죽어라 그거 아닙니다. 어서 빨리 회개하고 돌아오길 바라는 거지요.
찬송가에 돌아와 돌아와 그게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인자야, 인자라는 것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의 인자는 가장 낮은 사람을 인자라고 합니다. 가장 말하자면 사람대접받지 못하는 사람을 인자라고 합니다. 인자라 그랬습니다. 이 선지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그렇게 봅니다. 인자야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를 하는 날에는, 의인은 어떤 사람이 의인이냐, 이건 교리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하기는 의인은 그게 아닙니다.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이건 의를 행해서 의롭게 사는 사람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의라고 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욕심대로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렇게 사는 걸 의라고 그러고 의인이라고 그러는데, 의인이 범죄를 한다, 의인이 번죄하는 날에는
마귀는 우리를 미혹할 때 천국에 두 발을 다 들어가도 미혹한다고 하지요. 문을 탁 닫아버려야 이제 실패했다고 돌아갑니다. 사람이 아무리 의를 행해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노아는 당시에 의인이고 완전한 자였고, 온 세상을 정죄하고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혼자 남았습니다. 노아에게 따르는 사람입니다. 노아 때문에 사는 사람이 일곱 명이고 노아 한 사람 때문에 일곱 명이 살았고, 수십억 중에서 한 명 남은 의인인데 그 노아가 홍수 끝나고 나서 농사 짓는데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고 드러누웠습니다. 그거 때문에 함이 나왔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평생을 씻지 못할 큰 죄였습니다.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다, 지난 날에 의가 나와도 현재 죄를 이걸 별개라고 합니다. 지난 날에 의행한 것이 천 개 의한 의는 없어져버리고 죄는 죄로 처리해버리는 겁니다. 빚을 짓는데 오늘 1억빚 졌으면 갚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세상 빚은 그러면 됩니다. 하나님 앞의 죄는, 어저까지 의를 천 개 했는데 하나 지었으냐, 오늘 지은 한 개 의를 없앨 수 있느냐, 못없앱니다.
믿는 사람은 이 세상 떠나기 까지 마음의 허리를 풀지 않습니다. 늘 긴장합니다. 참 어렵지요. 악인이 돌이켜 떠나는 날에는, 자기 중심의 사람이고 거기서 나오면 전부 다 죄입니다. 중심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자기 모든 활동의 원동이라는 겁니다. 그게 잘못되면 전부 잘못되는 겁니다. 그래서 악인이 오랜 세월에 자기 중심의 사람인데, 오늘부터 악을 중단하고 주의 뜻대로 삽니다. 어제까지 지은 그 모든 것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죽을 죄를 지었어도 의를 행하면 산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는 방법 회개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는 방법입니다. 어제까지 어떠할지라도 오늘은, 의인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지은 의가 현재의 죄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과거의 의가 현재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악인도 악인이지만 악인도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깊은 죄에 빠진 사람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에 대한 의를 없애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소망적인 죄, 소망적인 죄가 있고 후퇴적인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십니다. 이것도 조심해야하는데 열 가지 죄를 짓던 사람이 죄를 줄여서 일곱 가지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열 가지 의를 행하던 사람들이 의를 줄이면 진노하십니다. 전진적인 죄는 기뻐하시고 후퇴적인 의는 섭섭해하시고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나의 삶을 두고 염려하노니, 길에서 돌이켜 원한다, 이게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의를 믿고 죄를 지으면 용서받지 못합니다.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서면 어제까지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 번 지은 죄는 영원토록 지우지 못합니다. 소망적으로 의로나 가느냐, 죄로나 가느냐 이걸 말씀하시는 겁니다. 어제까지 하신 것은 두고 현재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겁니다 어제까지 이렇게 했으니까 좀 쉬고 죄 좀 지어도 되지 않을까. 그거 때문에 죽습니다 어제까지 아무리 의를 행해도 오늘 죄를 지으면 죽습니다 어제까지 어떤 죄를 지었어도 그때부터는 사는 겁니다. 지나간 과거는 행위의 결과도 바꾸지 못합니다. 오래 사는 게 중요하고 좋은데 오래 살면서 죄를 자꾸 지으면 문제가 많고 그러면 소망을 끊을 수 없는 것이고 발버둥을 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할 수 있는대로 의를 행하려고 하는, 발버둥 치다보면은 몸이 뜨는 거지요. 앞을 향해서 가다보면은 넘어지면 넘어지는대로 다치면 다치는대로, 주저 앉으면 평생 안되는 거지요. 의로 달려가는 이 생활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소망주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죄인이 죄로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서와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나쁜데에 빠져서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어서 돌아오면,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렇게 반긴겁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래서 죄인이 회개하면 그렇게 기뻐합니다. 좋아서 어깨 메고 오고 하늘에 있는 기쁨이 가장 기쁘댔습니다. 회개하고 그 기쁨 가장 기뻐하신다 그럽니다. 지나간 의가 오늘의 죄를 대신 할 수 없고 지나간 의가 오늘의 죄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고 계속 달려가는 만큼 우리는 의인이 되는 겁니다. 어느 새 가있습니다. 후퇴가 가장 나쁜 것이고 주저앉는 게 나쁜 것이고 달려가는 게 좋은 것입니다.
자기로써는 힘써 달려가는 게 좋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가시겠습니다.
찬송: 51장
본문: 에스겔 33장 12절 - 1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베드로전서의 말씀 기억해야겠습니다. 그걸로 이어갈지 이걸로 갈지 모르겠으나 갓난아이같이,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갓난아이들은 알아듣지 못합니다. 비유로 하신 말씀이고 우리들에게 우리는 갓난아이가 아니지요. 갓난아이 아닌 우리들이 갓난아이처럼 되어야합니다. 생명에 속한 것이므로, 생명의 근본은 하나님만이 생명의 근본입니다. 생명의 근본 뿐 아니고 모든 존재의 근본도 존재활동의 근본도 지능의 근본도 그래서 사람의 실력이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겁니다. 하나님의 끊어진 생명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영광도 소망도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과 끊어져 사는 사람은 신앙 생활입니다.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자고 일 잘하고 편안하게 잘 살아도 하나님과 끊어지면 그 사람의 끊은 저희를 매끄러운 곳에 두시고 파멸에 던진다고 했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 세월을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게 유한한 세상에서는 끝이 있고 오는 내세는 영원한데 오는 내세 준비가 유한한 세상에 사는데 하나님이 정하신 그게 끝날 때까지 영원토록 그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자라가려는 조건이 몇 가지 필요합니까. 몇 가지 필요한가요, 세월이 필요합니다. 생명 없는 것은 장비만 많이 투자하면 할 수 있습니다. 기술만 따라가면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의 생명도 두 번째는요 환경이 맞아야합니다. 세 번째는 양식을 먹어야합니다. 먹지 않고 자라는 생명은 없습니다. 생명존재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세월과 환경은 마련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주시는 겁니다. 내 생명이 자라갈 세월을 정하지 못합니다. 환경도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사람이 한 거 같으나 하나님께서 하신 겁니다. 하나님께서 세월을 주시고 그 환경 속에서 잘하게 되면 자라게 됩니다. 고깃덩어리는 먹으면 자라게 됩니다. 양서, 좋은 책은 많이 읽으면 잘 자란다, 이건 불신자라는 것이고 믿는 사람의 신앙이 자라는 것은 말씀입니다. 사모라는 것은 그리워하는 겁니다. 그리워하는 것은 노력으로 되는 건데, 저절로 되는 겁니다. 그래서 갓난 아기, 우리 교회 누가 갓난아기지요. 경호가 이제 막 태어난 갓난아기네요. 그 갓난아기는 엄마 품에서 엄마만 기다리고 생각하고 사모하는 겁니다. 본능적으로 하는 겁니다. 어른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려면 다섯 가지를 버려라, 다섯 가지를 버리고 사모하면 되는데 갓난 아기의 엄마 사모는 저절로 됩니다. 이걸 본능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걸 본능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만드는 본능이 있습니다. 저절로 그리 되는 겁니다. 잘못된 본능도 있고 좋은 본능도 있습니다. 만들어지는 본능은 연습으로 되는 겁니다. 축구 선수들이 공찰 때 그 스피드, 방어를 피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은 판단입니다. 스케이트타는 스케이트 선수들이 얼음판에서 빙빙돌고 춤을 추는 것은 본능입니다. 인지, 순간 판단을 넘어서 움직이는 겁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피나는 연습이 되는 겁니다. 타고난 본능이 있고 연습이 있습니다. 나쁜 것을 먹으면 담배, 술 같은 거 안 먹으면 좋은데 나중에 본능처럼 되어버립니다.
이건 연습으로 된 본능입니다. 갓난 아이가 엄마 젖을 사모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우리는 갓난 아이가 아닙니다. 우리는 갓난 아이 아니죠, 그런데 갓난 아이들 같이, 그 말은 비유입니다. 너희들은 갓난 아이가 아니다. 그런데 갓난아이처럼 되어야한다는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연습으로 되는 겁니다. 운동선수들이 피아노 치고 피아노 치는 분들, 찬송가 칠 때 이 다음에 솔이다 생각하고 칩니까 손이 저절로 갑니까. 악보보면서 생각하면 칩니까 저절로 칩니까. 손이 저절로 가지요, 그런데 처음에 피아노 배워보려면 도 레 미 하나하나 생각해야합니다. 처음에는 연습이 안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계산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연습이 되고 되고 하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글자가 또박또박 쓰는데 그런 겁니다. 타이핑 칠 때도 그렇지요. 연습으로 되어진 본닝이라고 합니다. 건설도 성화구원은 그렇게 만들어가는 거고 연습으로 만들어가는 겁니다.
잘못 연습이 되면 굉장히 불리하고 바로 연습해나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것도 연습으로 되는 겁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하라, 아니니까 되어야합니다. 어떻게 연습하면 될까요,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옳은 연습을 하는 게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공부할 때 영어단어 외우는 거 수학 공식 외우는 거 아이들이 말을 합니다. 말은 하면 저절로 됩니다. 그래서 어학 공부의 첫 번째는 뭐지요, 영어공부의 첫째는 듣는 겁니다. 그 다음에 말하고, 안 그러면 말 못하고 들어야 말하는 겁니다. 그래야 읽고 쓰고 외우고 외우고 또 외우고 들립니다. 말씀을 읽을 때 재미가 있습니까 말씀이, 말씀이 재미있으면 성자입니다. 그런데 어지간한 사람들은 말씀이 재미가 없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말씀이 재미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그렇게 재미가 있습니다. 살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짝 노력하면 많이 들어갑니다. 읽고 또 읽고 일부러 생각하는 겁니다.
말씀 생각하려고 하면 드라마, 휴대폰 그러면 그게 마귀입니다. 다 끊어버리고 노력해서 하다보면 사람이라는 것은 자기가 노력하는데 점점 가까워지게 됩니다. 공자의 도덕을 계속 접하면 공자가 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자꾸 접촉하면 그런 사람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바닷가에 살면 바닷가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자꾸 접하다보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평소 신앙 생활에서 반복되는 탄식이 되고 낙심이 되고 소망 주는 말씀, 이 말씀의 가장 핵심은, 하나님은 죄를 지어서 죄에 빠져 죽는 걸 원치않습니다. 악인이 죄를 짓고 그거 때문에 죽는 것은 원하지 않고 악인이 돌이켜 사는 것은 원하신다. 자식이 애를 먹입니다. 너는 내 아들 아니다, 나가 죽어라,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녀는 그렇게 말하는데 옆집의 아이가 그런 짓 하면 무슨 짓을 해도 나가 죽어라 원수다 그런 말 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집 아들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식이 나가 죽어라, 죽기를 원합니까 회개하고 돌아오길 원합니까. 그런 겁니다. 둘째 아들 탕자가 아버지 살아생전에 나에게 나눠줄 유업을 미리 나눠주옵소서,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불효막심한 놈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애가 타서 매일 기다리는 겁니다. 아버지 재산 탕진하다가, 엉망이 되건말든 죽어라 그거 아닙니다. 어서 빨리 회개하고 돌아오길 바라는 거지요.
찬송가에 돌아와 돌아와 그게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인자야, 인자라는 것은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의 인자는 가장 낮은 사람을 인자라고 합니다. 가장 말하자면 사람대접받지 못하는 사람을 인자라고 합니다. 인자라 그랬습니다. 이 선지자라고 말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그렇게 봅니다. 인자야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를 하는 날에는, 의인은 어떤 사람이 의인이냐, 이건 교리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입은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말씀하기는 의인은 그게 아닙니다.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이건 의를 행해서 의롭게 사는 사람 의롭게 된 사람입니다. 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의라고 합니다. 자기 생각대로 욕심대로 자기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렇게 사는 걸 의라고 그러고 의인이라고 그러는데, 의인이 범죄를 한다, 의인이 번죄하는 날에는
마귀는 우리를 미혹할 때 천국에 두 발을 다 들어가도 미혹한다고 하지요. 문을 탁 닫아버려야 이제 실패했다고 돌아갑니다. 사람이 아무리 의를 행해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노아는 당시에 의인이고 완전한 자였고, 온 세상을 정죄하고 그 많은 사람 중에서 혼자 남았습니다. 노아에게 따르는 사람입니다. 노아 때문에 사는 사람이 일곱 명이고 노아 한 사람 때문에 일곱 명이 살았고, 수십억 중에서 한 명 남은 의인인데 그 노아가 홍수 끝나고 나서 농사 짓는데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고 드러누웠습니다. 그거 때문에 함이 나왔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평생을 씻지 못할 큰 죄였습니다.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다, 지난 날에 의가 나와도 현재 죄를 이걸 별개라고 합니다. 지난 날에 의행한 것이 천 개 의한 의는 없어져버리고 죄는 죄로 처리해버리는 겁니다. 빚을 짓는데 오늘 1억빚 졌으면 갚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세상 빚은 그러면 됩니다. 하나님 앞의 죄는, 어저까지 의를 천 개 했는데 하나 지었으냐, 오늘 지은 한 개 의를 없앨 수 있느냐, 못없앱니다.
믿는 사람은 이 세상 떠나기 까지 마음의 허리를 풀지 않습니다. 늘 긴장합니다. 참 어렵지요. 악인이 돌이켜 떠나는 날에는, 자기 중심의 사람이고 거기서 나오면 전부 다 죄입니다. 중심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자기 모든 활동의 원동이라는 겁니다. 그게 잘못되면 전부 잘못되는 겁니다. 그래서 악인이 오랜 세월에 자기 중심의 사람인데, 오늘부터 악을 중단하고 주의 뜻대로 삽니다. 어제까지 지은 그 모든 것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죽을 죄를 지었어도 의를 행하면 산다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는 방법 회개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는 방법입니다. 어제까지 어떠할지라도 오늘은, 의인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 지은 의가 현재의 죄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과거의 의가 현재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악인도 악인이지만 악인도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깊은 죄에 빠진 사람도 그럴 수 있습니다. 오늘에 대한 의를 없애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소망적인 죄, 소망적인 죄가 있고 후퇴적인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다리십니다. 이것도 조심해야하는데 열 가지 죄를 짓던 사람이 죄를 줄여서 일곱 가지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열 가지 의를 행하던 사람들이 의를 줄이면 진노하십니다. 전진적인 죄는 기뻐하시고 후퇴적인 의는 섭섭해하시고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나의 삶을 두고 염려하노니, 길에서 돌이켜 원한다, 이게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의를 믿고 죄를 지으면 용서받지 못합니다. 악인이 회개하고 돌아서면 어제까지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토록 없어지지 않습니다. 한 번 지은 죄는 영원토록 지우지 못합니다. 소망적으로 의로나 가느냐, 죄로나 가느냐 이걸 말씀하시는 겁니다. 어제까지 하신 것은 두고 현재로부터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겁니다 어제까지 이렇게 했으니까 좀 쉬고 죄 좀 지어도 되지 않을까. 그거 때문에 죽습니다 어제까지 아무리 의를 행해도 오늘 죄를 지으면 죽습니다 어제까지 어떤 죄를 지었어도 그때부터는 사는 겁니다. 지나간 과거는 행위의 결과도 바꾸지 못합니다. 오래 사는 게 중요하고 좋은데 오래 살면서 죄를 자꾸 지으면 문제가 많고 그러면 소망을 끊을 수 없는 것이고 발버둥을 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할 수 있는대로 의를 행하려고 하는, 발버둥 치다보면은 몸이 뜨는 거지요. 앞을 향해서 가다보면은 넘어지면 넘어지는대로 다치면 다치는대로, 주저 앉으면 평생 안되는 거지요. 의로 달려가는 이 생활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본문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소망주는 게 아니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이 죄인이 죄로 죽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서와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나쁜데에 빠져서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어서 돌아오면,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렇게 반긴겁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래서 죄인이 회개하면 그렇게 기뻐합니다. 좋아서 어깨 메고 오고 하늘에 있는 기쁨이 가장 기쁘댔습니다. 회개하고 그 기쁨 가장 기뻐하신다 그럽니다. 지나간 의가 오늘의 죄를 대신 할 수 없고 지나간 의가 오늘의 죄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이고 계속 달려가는 만큼 우리는 의인이 되는 겁니다. 어느 새 가있습니다. 후퇴가 가장 나쁜 것이고 주저앉는 게 나쁜 것이고 달려가는 게 좋은 것입니다.
자기로써는 힘써 달려가는 게 좋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