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7일 수밤
김동민2026-01-07조회 20추천 2
2026년 1월 7일 수밤
찬송: 63장, 60장
본문: 사도행전 3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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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은 예전에 집회 때 여러 번 복습했던 말씀이기도 하고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성전 문에 앉아 메다놓는 사람들이 되도록하고 그걸로 구걸해서 먹고 살고있었는데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앉은뱅이와 구걸을 거절하고 병고침을 받고 요한을 따라왔다는 뜻입니다. 본문에 다섯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두 종류의 행복된 사람이 나옵니다. 불행은 어떤 사람이 아닌가, 첫째로 불쌍한 사람은 메다놓은 사람입니다. 메다 놓은 사람은 앉은뱅이가 앉을 수 없으니 메어서 그 앉은뱅이가 구걸을 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너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날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 신구약 성경의 이치입니다. 왜 그런가, 자기에게 소속된 사람을 인도할 때 구걸을 가르치고 구걸만 소망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살았는데, 이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서 병고침을 받고 보니까 수고는 버림을 받았고 앉은뱅이는 일어서서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다니게 되었고 이후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베드로와 요한의 사람이 되었으니 수고는 많이 했을지 몰라도 마지막에 이 사람들이 버림을 받았으니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메다 놓는 사람은 여러 종류로 나옵니다. 오히려 메다놓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처럼 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사람은 몇 나오지를 않는데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이 어리석고 잘못이 많은 제사장인데, 엘리 제사장은 사람이 나약했기 때문이지 장점으로 보면 메다놓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사사로운 40년 가량 지내는 사사인데 엘리는 하나님이 직접 사무엘을 부르실 때에 사무엘과 하나님을 직접 연결 시키는 것을 질투하지 아니하고 바로 사무엘을 통해서 어떤 역사를 하실건가보다. 그래서 연결 시켜서 역사를 하시도록 그렇게 연결을 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마 엘리 평생에 가장 큰 업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덕에 하나님 사이에 밀접한 영접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사무엘은 평생 고마워했을 겁니다.
사랑이 없으면 메다놓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메다놓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잘되면 마치 자기가 잘된 것처럼 기뻐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잘 된다고 해서 시기나 질투하는 것은 없습니다.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은 부모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것이 진정한 부모라는 것입니다. 메다놓는 사람은 메다놓는 수고만 하고 먹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관계가 거래 관계가 되었든 수고비를 주고받는 관계든 수고는 앉은뱅이가 고쳐지는 그 순간은 더 이상 필요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오히려 메다놓는 사람입자에서는 앉은뱅이가 많아지고 더 앉은뱅이가 된다면은 메다놓는 사람들은 더 좋아질겁니다. 그래서 입장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메다 놓는 사람 되는 것은 경계해야합니다.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사람은 사람대로 떠나고 하나님조차 떠나고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앉은뱅이를 통해서 간접이었지만 구걸이었습니다. 자기가 구걸한 겁니다. 구걸을 도왔고 그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두고, 피조물의 혜택으로 피조물의 덕택으로 했다면 그 사람은 메다놓은 사람입니다.
백 목사님의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 주 목사님인데 주남선 목사님에게 부흥회 요청이 들어오면 계명교회에 백영희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에게 찾으면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메다 놓는 사람이 있는 것을 조심해야합니다. 메다놓는 사람이 되면 병고침의 소망이 절실한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구걸하는 사람으로 바꾸어서라도 안져버립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과 연결되면, 언제든지 지도할 수 있는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그 소망과 중심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쳤지만 앞서기를 바랬을 겁니다. 어린 학생들을 상대할 때도 마음에 가져야하는 자세가 이 아이는 지금 어리지만, 우리를 지도하고 가르칠 스승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어린아이 하나도 상대해야 메다놓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맡겨주신 아이가 입장이니 그렇지만은 이 중에 사무엘, 다윗이 나온다면 그분의 앞날을 위해서 거름이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평소에 다져놔야, 소망으로 깊이깊이 가지고 있어야, 다윗의 앞길을 막는 사람과 같이 메다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메다놓는 사람이 되고 나면은 그 사람이 앞길을 막는다고 해서 막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는 치십니다. 그리고 길을 열어서 하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불행한 사람이 구걸하는 앉은뱅이입니다. 병 고침의 소망은 잊어버렸고 어떻게 해야 잘 구걸할까 어떻게 해야 미문이라는 아름다운 문에 앉아 그 감동하는 사람 앞에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앉아있으면 불쌍하게 해야 더 나올 것이니 연구하고 발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소망은 잊어버린 채 성전 미문까지도 이용하여 노하우로 삼고 그 앉은뱅이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 속에 오랜 것을 포기한 악성과 악습의 요소가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했고 10년이 되었으니, 20년이 되었으니 그 면에 대해서는 그 사람은 앉은 뱅이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해서 살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되어야하지만 세월 속에 구걸하게 되어있습니다. 죽이지 못하는 죄의 요소를 다 있지 않습니까. 혹시 그런 요소를 두고 못 고치니 포기를 했다면 그 순간만큼은 오늘의 그 사람은 앉은뱅이 신앙이 되고 구걸하는 사람이 되고맙니다. 죄의 요소만이 앉은뱅이 신앙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야하는 것을 하지 않는 죄도 앉은뱅이입니다. 죄 안짓고 그래도 하나님과 동행을 안했다면 앉은뱅이입니다. 한 요소가 앉은뱅이가 된 것이 없는지 찾아봐야합니다.
세 번째는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앉은뱅이와 같은 병이 자기에도 들어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표적을 보니 신기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처럼 살고 싶은 소망도 없습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지, 병고침의 표적을 자기가 주저앉은만큼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앉은뱅이는 아닌데, 이 사람이 하늘을 향하여
찬송: 63장, 60장
본문: 사도행전 3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본문 말씀은 예전에 집회 때 여러 번 복습했던 말씀이기도 하고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간단하게 요약을 하면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는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성전 문에 앉아 메다놓는 사람들이 되도록하고 그걸로 구걸해서 먹고 살고있었는데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앉은뱅이와 구걸을 거절하고 병고침을 받고 요한을 따라왔다는 뜻입니다. 본문에 다섯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두 종류의 행복된 사람이 나옵니다. 불행은 어떤 사람이 아닌가, 첫째로 불쌍한 사람은 메다놓은 사람입니다. 메다 놓은 사람은 앉은뱅이가 앉을 수 없으니 메어서 그 앉은뱅이가 구걸을 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너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날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 신구약 성경의 이치입니다. 왜 그런가, 자기에게 소속된 사람을 인도할 때 구걸을 가르치고 구걸만 소망하는 사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평생을 살았는데, 이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서 병고침을 받고 보니까 수고는 버림을 받았고 앉은뱅이는 일어서서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다니게 되었고 이후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사는 베드로와 요한의 사람이 되었으니 수고는 많이 했을지 몰라도 마지막에 이 사람들이 버림을 받았으니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메다 놓는 사람은 여러 종류로 나옵니다. 오히려 메다놓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처럼 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사람은 몇 나오지를 않는데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이 어리석고 잘못이 많은 제사장인데, 엘리 제사장은 사람이 나약했기 때문이지 장점으로 보면 메다놓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사사로운 40년 가량 지내는 사사인데 엘리는 하나님이 직접 사무엘을 부르실 때에 사무엘과 하나님을 직접 연결 시키는 것을 질투하지 아니하고 바로 사무엘을 통해서 어떤 역사를 하실건가보다. 그래서 연결 시켜서 역사를 하시도록 그렇게 연결을 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아마 엘리 평생에 가장 큰 업적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덕에 하나님 사이에 밀접한 영접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사무엘은 평생 고마워했을 겁니다.
사랑이 없으면 메다놓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메다놓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잘되면 마치 자기가 잘된 것처럼 기뻐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잘 된다고 해서 시기나 질투하는 것은 없습니다.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라면은 부모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것이 진정한 부모라는 것입니다. 메다놓는 사람은 메다놓는 수고만 하고 먹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관계가 거래 관계가 되었든 수고비를 주고받는 관계든 수고는 앉은뱅이가 고쳐지는 그 순간은 더 이상 필요없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오히려 메다놓는 사람입자에서는 앉은뱅이가 많아지고 더 앉은뱅이가 된다면은 메다놓는 사람들은 더 좋아질겁니다. 그래서 입장이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메다 놓는 사람 되는 것은 경계해야합니다.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사람은 사람대로 떠나고 하나님조차 떠나고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앉은뱅이를 통해서 간접이었지만 구걸이었습니다. 자기가 구걸한 겁니다. 구걸을 도왔고 그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두고, 피조물의 혜택으로 피조물의 덕택으로 했다면 그 사람은 메다놓은 사람입니다.
백 목사님의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 주 목사님인데 주남선 목사님에게 부흥회 요청이 들어오면 계명교회에 백영희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에게 찾으면 은혜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메다 놓는 사람이 있는 것을 조심해야합니다. 메다놓는 사람이 되면 병고침의 소망이 절실한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을 구걸하는 사람으로 바꾸어서라도 안져버립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과 연결되면, 언제든지 지도할 수 있는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그 소망과 중심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쳤지만 앞서기를 바랬을 겁니다. 어린 학생들을 상대할 때도 마음에 가져야하는 자세가 이 아이는 지금 어리지만, 우리를 지도하고 가르칠 스승이 될 수도 있다는 그 어린아이 하나도 상대해야 메다놓는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 맡겨주신 아이가 입장이니 그렇지만은 이 중에 사무엘, 다윗이 나온다면 그분의 앞날을 위해서 거름이 되겠습니다. 이런 것을 평소에 다져놔야, 소망으로 깊이깊이 가지고 있어야, 다윗의 앞길을 막는 사람과 같이 메다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메다놓는 사람이 되고 나면은 그 사람이 앞길을 막는다고 해서 막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는 치십니다. 그리고 길을 열어서 하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불행한 사람이 구걸하는 앉은뱅이입니다. 병 고침의 소망은 잊어버렸고 어떻게 해야 잘 구걸할까 어떻게 해야 미문이라는 아름다운 문에 앉아 그 감동하는 사람 앞에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앉아있으면 불쌍하게 해야 더 나올 것이니 연구하고 발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소망은 잊어버린 채 성전 미문까지도 이용하여 노하우로 삼고 그 앉은뱅이가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우리 속에 오랜 것을 포기한 악성과 악습의 요소가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했고 10년이 되었으니, 20년이 되었으니 그 면에 대해서는 그 사람은 앉은 뱅이입니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해서 살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되어야하지만 세월 속에 구걸하게 되어있습니다. 죽이지 못하는 죄의 요소를 다 있지 않습니까. 혹시 그런 요소를 두고 못 고치니 포기를 했다면 그 순간만큼은 오늘의 그 사람은 앉은뱅이 신앙이 되고 구걸하는 사람이 되고맙니다. 죄의 요소만이 앉은뱅이 신앙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해야하는 것을 하지 않는 죄도 앉은뱅이입니다. 죄 안짓고 그래도 하나님과 동행을 안했다면 앉은뱅이입니다. 한 요소가 앉은뱅이가 된 것이 없는지 찾아봐야합니다.
세 번째는 구경하는 사람입니다. 앉은뱅이와 같은 병이 자기에도 들어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표적을 보니 신기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처럼 살고 싶은 소망도 없습니다.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지, 병고침의 표적을 자기가 주저앉은만큼 올라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앉은뱅이는 아닌데, 이 사람이 하늘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