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수밤
김동민2025-12-31조회 24추천 2
2025년 12월 31일 수밤
찬송: 86장
본문: 요한복음 9장 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은 전체를 읽어보면 많은 구원도리를 담아놓으셨습니다. 한 사람의 소경으로 나온 것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는데 네 가지만 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순서를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람으로 오셔서 살아갈 때 이 세상 살아가는데 길을 가는 겁니다. 성경에 길이라고 나오면 인생길, 나그네길 그걸로 생각하면 그런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 별별일이 다 있지요.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오만 사건을 다 만나고 예상했던 일도 있지만 예상 못했던 일도 있고 그래서 믿는 사람은 알고 보면 갑자기 또 돌발적으로 뜻밖에 이런 거는 없는 건데 약하기 때문에 돌발적으로 만나고 뜻밖에 예상치 못했던 욥이 그렇게 행복하게 다복하게 풍족하게 깨끗하게 영육의 모든 면으로 흠과 점이 없듯이 정직하여 세상 복을 다 누렸던 모든 면으로 남부럽지 않았던 어느날 하루 아침에 닫혀버렸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몰아쳐서 나 버린 겁니다.
우리는 그런 길을 안 만나기를 바라고 평안함을 주옵소서 그 기도는 갑작스러운 환란 만나면 겁이 나서 그런 기도를 하는 겁니다. 갑작스럽게 큰 사건 만나면 어떻게 감당을 할까, 겁이나서 평안함을 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뜻이면 기도는 그렇게 하나 무슨 일을 할지는 아무도 장담을 못하는 겁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났습니다. 소경으로 난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보면서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한겁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선입관 가지고 그렇게 물었는데 그게 잘못된 선입관이라는 겁니다. 그 선입관이 틀렸다는 겁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불행은 장애를 포함해서 사고를 포함해서 죽음까지 모든 불행은 죗값입니다. 아담부터 그렇게 되었고 죄를 안지었으면 그런 게 없을건데,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알 수는 없는 겁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소경이 소경으로 난 것으로 본 것은 잘못되었다 그 말입니다. 몰랐으니까 소경입니다. 바로 못봤으니까 소경이지요. 하나님과 끊어진, 생명과 끊어진 그것이 소경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전 인류를 소경입니다. 봐야할 것을 보지 못했다.
범죄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을 알았고 자기도 알았고 범죄하고 난 다음부터는 도망을 쳤습니다. 빛을 피해서 도망을 쳤고 떠지 말라는 눈을 떠버렸습니다. 띄워주신 눈으로 감겨버리고 뜨면 안되는 눈을 가지고 뜬 것입니다. 하나님과 천국과 구원도리와 사람이 살아 복된 길을 걷는 이런 것은 가려져버리고 욕심으로 인해서 그 눈만 잔뜩 떠버린 것입니다. 무저갱의 눈입니다. 별 하나가 무저갱 열쇠를 연 거처럼 인간은 선악과 먹고 온갖 욕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욕심이 종자가 되어서 6천년 세월 속에 수 많은 사람들이 치밀하게 노력을 했던지 이렇게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 발전이고 좋은 것인데 그 동기와 목적 자체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런 성격으로 발달된 것이기 때문에 그 문명의 이익이라는 것은 해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양면을 주셨으니까,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으로 하면 되는 반면에 하나님과 끊어지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 전부 다는 발전되고 발달된 모든 세월의 그들에게는 지옥에 가는 과정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이 세상은 암흑세상이고 인간은 소경이 다 되어졌다는 겁니다. 이것도 눈을 가지면 볼 수 있겠고, 암흑세상이다 어두운 세상이다. 세상의 암흑 세상이라는 것은 자체가 세상이라는 것이고 하나님과 끊어진, 4절에 보면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이 빛이다. 주의 대속이 있고 진리가 있으면 빛이 되는데 이 세상에서 주님 안 계시는 곳은 어디든 다 암흑이 되고 마는 겁니다. 갈수록 암흑은 더 짙어지게 되는 겁니다. 떠야할 눈을 뜨지 못했고 봐야할 눈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을 보느냐, 하나님을 보십니까. 천국을 보느냐, 보십니까. 지옥을 보느냐, 보십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본다면 보는 것과 아는 것과 실감과 합해지면은 보고 알고 느끼면 그 다음 단계는 믿음이 되는 겁니다. 느낌까지 갈 때 아는 것이고 믿음이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봤느냐, 우리의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 체험을 통해서 겪어봤습니다. 말씀이 있고 그걸 순종하니까 주시는 은혜가 있고 복이 있더라 징계하시면 징계가 있더라. 그걸 알고 보고아는 것이 그 정도 믿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은, 태양이 있는데 그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날이 춥습니다. 다시 계절이 바뀌어서 가까워지면은 더워집니다. 뜨거운 그런 열기 빛이지요 밝으면서 뜨겁게 되고 어두워지면 차갑게 식어지게 되는 겁니다. 과학이고 상식이지요. 사람이라는 것은 아는 만큼 느끼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저는 호랑이를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무서운 개가 있습니다. 큰 개가 있는데 그 개 주인이 보니까 안 막고 몰고다닙니다. 참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 거 보면 저는 겁이납니다. 그게 보는 것이고 아는 겁니다. 맹견이 보이니까 저게 무섭다는 거 아니까 느낌이 있는 거지요. 거기에 대한 믿음이 되는 겁니다. 법을 아는 사람들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글자 한 자 가지고 다툽니다. 법을 아는 사람들은 법을 두려워합니다. 대통령도 파면시키는 게 법입니다. 호랑이를 아는 사람은 큰 개들은 호랑이 소리가 나고 호랑이 냄새가 나면 마루 밑에 들어가서 반 죽어버린답니다. 어릴 때 들은 발입니다. 개들이 전부 다 들어가서 똥을 싸버린답니다. 하룻강아지는 범을 모르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런 감각이 없고 느낌이 없는 겁니다. 모르는 것은 뭐를 모르는 겁니까. 보지 못했으니까.
어느 정도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 생각해봐야합니다. 프란시스가 기도할 때 한달 내도록 그런 기도만 하더랍니다. 우리 선생님은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하니까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고 울더랍니다. 그리스도신 예수님은 누구고 나는 누구인가. 그렇게 하는거지요. 어떤 것입니까. 참 위대한 분이지요, 하나님을 만나본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가는 겁니다. 자기 본 정도로, 사도 요한이 주님 품에 엎드려서 선생님, 선생님은 누구지요. 그렇게 어리광부리던 사람이 사도 요한입니다. 그 사람이 복음 전하다가 주의 날을 만나 주님을 다시 만나고 기절해버렸습니다. 그런 분이구나. 내가 그렇게 했구나. 주님 품에 있던 그 사도 요한과 그 이후 사도 요한은 꼭 같은 사람인데, 눈이 밝아진겁니다. 그래서 주님을 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십니까. 하나님을 보면 어떻게 될까. 보는 것과 아는 것과 그 다음은요, 느낌과 믿음이 되는 겁니다. 그게 진짜 믿음입니다. 그러면 속에 반응이 나타나겠지요. 어떻게 두려워서 덜덜 떨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필연적입니다.
첬째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소경입니다. 우리는 소경입니다. 천국이 어떤 나라일까, 한도 없습니다. 우주를 가지고도 어떤 곳일까. 지구라는 곳은 샅샅히 살펴서 압니다만 땅 속 깊이 들어가다보면 해저 2만리, 바다 속 깊이 들어가면 그 속에 모릅니다. 우주의 수천억도 넘는 것중에 그것들을 다 모릅니다. 크기도 모르고 안에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소경입니다. 넓은 존재를 제대로 알고 넓은 세계를 아는 사람들은 자기가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걸 압니다. 많이 배워 아는 사람일수록 모르는 게 많다. 우리는 소경입니다. 눈으로 보니까 본다, 큰 착각입니다. 손톱 밑에 세균이 보입니까. 없으니까 안 보입니까. 자기 눈에 안 보인다고 없다는 것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옳은 게 문제고 사실이 문제고 실존이 문제지요. 우리는 소경입니다.
두 번째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은 원인이 뭐냐, 그 존재의 형성된 모습, 그로 파생된 눈에 보이는 결과, 이 전부의 원인이 뭐냐, 부모의 원인 현상세계에 눈 앞에 펼쳐진 모든 사람 모든 존재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뭐냐. 원인이 알고 원동을 바로 알 때 피동은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벽을 탁 고무로 던졌습니다. 통 튀어나옵니다. 밀가루 반죽으로 해서 튀어나옵니다. 튀어나옵니까 밀가루 반죽은 왜 딱 붙지요. 특성이 다르니까. 내 앞의 모든 존재, 그 존재와 존재들의 작용이 역사입니다. 활동작용, 그 역사가 있으면 파생되는 게 작은 겁니다. 바람이 부니까 나뭇잎이 흔들리고 가을이 된까 낙엽 잎이 떨어집니다. 내 앞에 매연이 풍깁니다. 그러면 차가 매연 풍긴 것은 뭐지요. 원동이고 냄새 나는 것은 피동이지요. 차에 내가 피동이 된 겁니다. 그 사람 운전하는 사람이 원동 행위에 말하는 사람은 내 마음이 안좋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알아야합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나는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원인이 무엇입니까. 어디서부터 발현되어 나왔습니까.
죄를 지은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는 겉으로 보는 것은 사람들 인식에 죄 때문인데 그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 사람이 부정하게 태어나서 왜 그렇게 하신 것인가, 이 사람이 태어나서 3절이지요, 이 사람이나 부모가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 사람을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많은 일을 듣고 있습니다. 이 소경을 통해서 암흑 세상이구나, 죄값만 있는 게 아니구나. 주님이 빛이구나, 그 뒤에 많은 사람들이 몰라봤습니다. 사람이 변화가 되면 몰라볼 수 있겠구나. 바리새인들은 시기가 나서 가라앉았습니다. 소경의 부모는 꺾였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아들인 건 맞고 소경으로 한 것은 맞는데 어떻게 눈이 떠졌는지는 모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사람은 바리새인들이, 파문입니다. 구원 없는 사람으로 쫓아냈으니까 사람 죽여도 살인죄가 아닌다. 황제가 교황에게 대들었다가 파문을 당해서 겁이 나서 교황한테 며칠을 싹싹 빌었다고 합니다. 실제 있었던 역사입니다.
원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소경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좋은 사람 만나면 좋겠고 요즘 사람은 꽃길만 걸으면 좋겠는데 험한 세상이 닥칩니다. 원인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원인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조심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 어쩔 수 있냐, 이게 문제입니다. 좋은 그런 상황, 꽃길같은 좋은 사람이 오면 좋은 상황을 만들어주시니까 그런 건데 죄가 없는가 그럴 때 더 돌아보고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을 해서 원하는 뜻을 찾아서 조심해야겠다. 그게 복이고 어려운 상황이 오면 원망 불편 낙망 낙심이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게 복입니다. 나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으면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돌아보는 겁니다. 다 그런 건 아닌데 백 목사님께서 문둥환자를 많이 만나보셨고 친구였다고 하고 좋아했는데 한 편으로는 나환자들은 그 사람이 나환자 안되면 안되는 그런 요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전부 다 그렇지 않았겠지요. 전부다 그렇게 복이 되는 겁니다. 좋은 상황 오면은 더 조심해서 기쁘시게 하고 고쳐서 깨끗하게 만들고 복되게 하는 겁니다.
사람이 배부르고 평안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고난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금이란 것은 연단할 때 마구 연단해야합니다. 쇠도 그렇고 사람도 귀하게 되는 사람은 험난합니다. 다 원인이 다 그런 겁니다. 세 번째는 주님만의 빛입니다. 이것도 오늘 새벽에 말씀드렸는데, 주님 오시면 계신 곳이 빛인데 가셨으니까 어디든 어떻게 모실 것인가,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겁니다. 이 사람 6절에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가 땅에 침을 뱉어서 진흙으로 반죽해서 바르고 씻으라고 하니까 밝은 눈으로 왔더라. 그걸 잘 순종하면 자기 눈이 밝아지게 되는 겁니다. 모든 상황에서 순종하면 눈이 밝아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 순종하면 밝아지고, 백 목사님은 처음부터 백 목사님이 아닙니다. 밝아져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범죄 후 모든 세상 암흑이고 소경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존재 하나님이시고 목적은 우리의 구원입니다. 주님 모신 곳이면 어디든 그게 빛입니다. 눈을 뜨는 방법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네 가지를 기억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86장
본문: 요한복음 9장 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은 전체를 읽어보면 많은 구원도리를 담아놓으셨습니다. 한 사람의 소경으로 나온 것을 통해서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는데 네 가지만 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순서를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사람으로 오셔서 살아갈 때 이 세상 살아가는데 길을 가는 겁니다. 성경에 길이라고 나오면 인생길, 나그네길 그걸로 생각하면 그런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 별별일이 다 있지요.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오만 사건을 다 만나고 예상했던 일도 있지만 예상 못했던 일도 있고 그래서 믿는 사람은 알고 보면 갑자기 또 돌발적으로 뜻밖에 이런 거는 없는 건데 약하기 때문에 돌발적으로 만나고 뜻밖에 예상치 못했던 욥이 그렇게 행복하게 다복하게 풍족하게 깨끗하게 영육의 모든 면으로 흠과 점이 없듯이 정직하여 세상 복을 다 누렸던 모든 면으로 남부럽지 않았던 어느날 하루 아침에 닫혀버렸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몰아쳐서 나 버린 겁니다.
우리는 그런 길을 안 만나기를 바라고 평안함을 주옵소서 그 기도는 갑작스러운 환란 만나면 겁이 나서 그런 기도를 하는 겁니다. 갑작스럽게 큰 사건 만나면 어떻게 감당을 할까, 겁이나서 평안함을 주옵소서, 그런 기도를 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뜻이면 기도는 그렇게 하나 무슨 일을 할지는 아무도 장담을 못하는 겁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났습니다. 소경으로 난 사람을 보고 제자들이 보면서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한겁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선입관 가지고 그렇게 물었는데 그게 잘못된 선입관이라는 겁니다. 그 선입관이 틀렸다는 겁니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불행은 장애를 포함해서 사고를 포함해서 죽음까지 모든 불행은 죗값입니다. 아담부터 그렇게 되었고 죄를 안지었으면 그런 게 없을건데, 그런데 그렇게 하면 알 수는 없는 겁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다. 소경이 소경으로 난 것으로 본 것은 잘못되었다 그 말입니다. 몰랐으니까 소경입니다. 바로 못봤으니까 소경이지요. 하나님과 끊어진, 생명과 끊어진 그것이 소경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전 인류를 소경입니다. 봐야할 것을 보지 못했다.
범죄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을 알았고 자기도 알았고 범죄하고 난 다음부터는 도망을 쳤습니다. 빛을 피해서 도망을 쳤고 떠지 말라는 눈을 떠버렸습니다. 띄워주신 눈으로 감겨버리고 뜨면 안되는 눈을 가지고 뜬 것입니다. 하나님과 천국과 구원도리와 사람이 살아 복된 길을 걷는 이런 것은 가려져버리고 욕심으로 인해서 그 눈만 잔뜩 떠버린 것입니다. 무저갱의 눈입니다. 별 하나가 무저갱 열쇠를 연 거처럼 인간은 선악과 먹고 온갖 욕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욕심이 종자가 되어서 6천년 세월 속에 수 많은 사람들이 치밀하게 노력을 했던지 이렇게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 발전이고 좋은 것인데 그 동기와 목적 자체가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런 성격으로 발달된 것이기 때문에 그 문명의 이익이라는 것은 해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양면을 주셨으니까,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으로 하면 되는 반면에 하나님과 끊어지고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 전부 다는 발전되고 발달된 모든 세월의 그들에게는 지옥에 가는 과정이 되고 마는 겁니다. 이 세상은 암흑세상이고 인간은 소경이 다 되어졌다는 겁니다. 이것도 눈을 가지면 볼 수 있겠고, 암흑세상이다 어두운 세상이다. 세상의 암흑 세상이라는 것은 자체가 세상이라는 것이고 하나님과 끊어진, 4절에 보면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이 빛이다. 주의 대속이 있고 진리가 있으면 빛이 되는데 이 세상에서 주님 안 계시는 곳은 어디든 다 암흑이 되고 마는 겁니다. 갈수록 암흑은 더 짙어지게 되는 겁니다. 떠야할 눈을 뜨지 못했고 봐야할 눈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을 보느냐, 하나님을 보십니까. 천국을 보느냐, 보십니까. 지옥을 보느냐, 보십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본다면 보는 것과 아는 것과 실감과 합해지면은 보고 알고 느끼면 그 다음 단계는 믿음이 되는 겁니다. 느낌까지 갈 때 아는 것이고 믿음이 생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얼마나 봤느냐, 우리의 믿음은 말씀을 통해서 체험을 통해서 겪어봤습니다. 말씀이 있고 그걸 순종하니까 주시는 은혜가 있고 복이 있더라 징계하시면 징계가 있더라. 그걸 알고 보고아는 것이 그 정도 믿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은, 태양이 있는데 그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날이 춥습니다. 다시 계절이 바뀌어서 가까워지면은 더워집니다. 뜨거운 그런 열기 빛이지요 밝으면서 뜨겁게 되고 어두워지면 차갑게 식어지게 되는 겁니다. 과학이고 상식이지요. 사람이라는 것은 아는 만큼 느끼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저는 호랑이를 만나보지는 못했습니다. 무서운 개가 있습니다. 큰 개가 있는데 그 개 주인이 보니까 안 막고 몰고다닙니다. 참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 거 보면 저는 겁이납니다. 그게 보는 것이고 아는 겁니다. 맹견이 보이니까 저게 무섭다는 거 아니까 느낌이 있는 거지요. 거기에 대한 믿음이 되는 겁니다. 법을 아는 사람들은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글자 한 자 가지고 다툽니다. 법을 아는 사람들은 법을 두려워합니다. 대통령도 파면시키는 게 법입니다. 호랑이를 아는 사람은 큰 개들은 호랑이 소리가 나고 호랑이 냄새가 나면 마루 밑에 들어가서 반 죽어버린답니다. 어릴 때 들은 발입니다. 개들이 전부 다 들어가서 똥을 싸버린답니다. 하룻강아지는 범을 모르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런 감각이 없고 느낌이 없는 겁니다. 모르는 것은 뭐를 모르는 겁니까. 보지 못했으니까.
어느 정도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을까. 생각해봐야합니다. 프란시스가 기도할 때 한달 내도록 그런 기도만 하더랍니다. 우리 선생님은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하니까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고 울더랍니다. 그리스도신 예수님은 누구고 나는 누구인가. 그렇게 하는거지요. 어떤 것입니까. 참 위대한 분이지요, 하나님을 만나본 사람들은 정신없이 달려가는 겁니다. 자기 본 정도로, 사도 요한이 주님 품에 엎드려서 선생님, 선생님은 누구지요. 그렇게 어리광부리던 사람이 사도 요한입니다. 그 사람이 복음 전하다가 주의 날을 만나 주님을 다시 만나고 기절해버렸습니다. 그런 분이구나. 내가 그렇게 했구나. 주님 품에 있던 그 사도 요한과 그 이후 사도 요한은 꼭 같은 사람인데, 눈이 밝아진겁니다. 그래서 주님을 봤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보십니까. 하나님을 보면 어떻게 될까. 보는 것과 아는 것과 그 다음은요, 느낌과 믿음이 되는 겁니다. 그게 진짜 믿음입니다. 그러면 속에 반응이 나타나겠지요. 어떻게 두려워서 덜덜 떨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은 필연적입니다.
첬째 기억하십시다. 우리는 소경입니다. 우리는 소경입니다. 천국이 어떤 나라일까, 한도 없습니다. 우주를 가지고도 어떤 곳일까. 지구라는 곳은 샅샅히 살펴서 압니다만 땅 속 깊이 들어가다보면 해저 2만리, 바다 속 깊이 들어가면 그 속에 모릅니다. 우주의 수천억도 넘는 것중에 그것들을 다 모릅니다. 크기도 모르고 안에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소경입니다. 넓은 존재를 제대로 알고 넓은 세계를 아는 사람들은 자기가 보잘 것 없는 것이라는 걸 압니다. 많이 배워 아는 사람일수록 모르는 게 많다. 우리는 소경입니다. 눈으로 보니까 본다, 큰 착각입니다. 손톱 밑에 세균이 보입니까. 없으니까 안 보입니까. 자기 눈에 안 보인다고 없다는 것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겁니다. 옳은 게 문제고 사실이 문제고 실존이 문제지요. 우리는 소경입니다.
두 번째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은 원인이 뭐냐, 그 존재의 형성된 모습, 그로 파생된 눈에 보이는 결과, 이 전부의 원인이 뭐냐, 부모의 원인 현상세계에 눈 앞에 펼쳐진 모든 사람 모든 존재 그 모든 것의 원인이 뭐냐. 원인이 알고 원동을 바로 알 때 피동은 전혀 달라지게 됩니다. 벽을 탁 고무로 던졌습니다. 통 튀어나옵니다. 밀가루 반죽으로 해서 튀어나옵니다. 튀어나옵니까 밀가루 반죽은 왜 딱 붙지요. 특성이 다르니까. 내 앞의 모든 존재, 그 존재와 존재들의 작용이 역사입니다. 활동작용, 그 역사가 있으면 파생되는 게 작은 겁니다. 바람이 부니까 나뭇잎이 흔들리고 가을이 된까 낙엽 잎이 떨어집니다. 내 앞에 매연이 풍깁니다. 그러면 차가 매연 풍긴 것은 뭐지요. 원동이고 냄새 나는 것은 피동이지요. 차에 내가 피동이 된 겁니다. 그 사람 운전하는 사람이 원동 행위에 말하는 사람은 내 마음이 안좋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알아야합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나는 것이 누구 때문입니까. 원인이 무엇입니까. 어디서부터 발현되어 나왔습니까.
죄를 지은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에는 겉으로 보는 것은 사람들 인식에 죄 때문인데 그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 사람이 부정하게 태어나서 왜 그렇게 하신 것인가, 이 사람이 태어나서 3절이지요, 이 사람이나 부모가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 사람을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많은 일을 듣고 있습니다. 이 소경을 통해서 암흑 세상이구나, 죄값만 있는 게 아니구나. 주님이 빛이구나, 그 뒤에 많은 사람들이 몰라봤습니다. 사람이 변화가 되면 몰라볼 수 있겠구나. 바리새인들은 시기가 나서 가라앉았습니다. 소경의 부모는 꺾였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아들인 건 맞고 소경으로 한 것은 맞는데 어떻게 눈이 떠졌는지는 모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사람은 바리새인들이, 파문입니다. 구원 없는 사람으로 쫓아냈으니까 사람 죽여도 살인죄가 아닌다. 황제가 교황에게 대들었다가 파문을 당해서 겁이 나서 교황한테 며칠을 싹싹 빌었다고 합니다. 실제 있었던 역사입니다.
원인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소경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 좋은 사람 만나면 좋겠고 요즘 사람은 꽃길만 걸으면 좋겠는데 험한 세상이 닥칩니다. 원인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원인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조심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으니까 어쩔 수 있냐, 이게 문제입니다. 좋은 그런 상황, 꽃길같은 좋은 사람이 오면 좋은 상황을 만들어주시니까 그런 건데 죄가 없는가 그럴 때 더 돌아보고 언제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을 해서 원하는 뜻을 찾아서 조심해야겠다. 그게 복이고 어려운 상황이 오면 원망 불편 낙망 낙심이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면서 자기를 돌아보는 게 복입니다. 나는 그런 죄를 짓지 않았으면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돌아보는 겁니다. 다 그런 건 아닌데 백 목사님께서 문둥환자를 많이 만나보셨고 친구였다고 하고 좋아했는데 한 편으로는 나환자들은 그 사람이 나환자 안되면 안되는 그런 요소가 있었다고 합니다. 전부 다 그렇지 않았겠지요. 전부다 그렇게 복이 되는 겁니다. 좋은 상황 오면은 더 조심해서 기쁘시게 하고 고쳐서 깨끗하게 만들고 복되게 하는 겁니다.
사람이 배부르고 평안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고난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금이란 것은 연단할 때 마구 연단해야합니다. 쇠도 그렇고 사람도 귀하게 되는 사람은 험난합니다. 다 원인이 다 그런 겁니다. 세 번째는 주님만의 빛입니다. 이것도 오늘 새벽에 말씀드렸는데, 주님 오시면 계신 곳이 빛인데 가셨으니까 어디든 어떻게 모실 것인가, 진리와 영감으로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겁니다. 이 사람 6절에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가 땅에 침을 뱉어서 진흙으로 반죽해서 바르고 씻으라고 하니까 밝은 눈으로 왔더라. 그걸 잘 순종하면 자기 눈이 밝아지게 되는 겁니다. 모든 상황에서 순종하면 눈이 밝아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 순종하면 밝아지고, 백 목사님은 처음부터 백 목사님이 아닙니다. 밝아져서 그렇게 되는 겁니다.
범죄 후 모든 세상 암흑이고 소경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존재 하나님이시고 목적은 우리의 구원입니다. 주님 모신 곳이면 어디든 그게 빛입니다. 눈을 뜨는 방법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네 가지를 기억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