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4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12-14조회 15추천 1
2025년 12월 14일 주일 오후
찬송: 162장, 165장
본문: 시편 62편 1절 ~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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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말 그대로 시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하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런 생활 속에서 인격자 다윗이고 인격의 근본되신 하나님이시고 그런 관계 생활 속으로 여러 가지 작용 느낌 깨달음 등이 있을 수 밖에 없어서 그걸 글로 쓴 것이 시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는 과정에서 죄도 지었고 대적도 많고 그런 가운데에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런 가운데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런 느낌을 기록한 것이고 그런 중에서도 대적들은 끝없이 흔들고 넘어트리는 게 3절 4절입니다. 잠잠히 고요히 말 없이 고요하게 잠잠하다는 말은 말 없이 고요하게,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자기 생활에 충실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니까 사람이 몰라져도 사람이 억울하게 만들어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마지막에 갚아주실 거니까, 자기 생활의 충실한 사람이 다윗이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해 보는 것은 믿는 우리들의 생활이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생활인데 그게 계속되다 보면은 의복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위치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사람 중에 가장 귀한 사람, 결혼 한 분 중에 가장 귀한 사람은 아내고 남편입니다. 그 귀한 자기 부부가 살다보니까 가장 편하고 귀한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사람들이 원수가 되어있습니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자기의 반쪽입니다. 애를 먹이고 못나고 속을 썩여도 자기 반쪽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계시는가요. 그렇게 알고 인식하고 대하면 그 부부는 천국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원수로 대합니다. 잘못된 겁니다. 살다가 보니까 예사로 취급하니까 빼앗긴겁니다. 없어진 것만 빼앗긴게 아닙니다. 귀한 사람이 귀하게 되지 않았으니까 뺏긴 거지요.
자기가 잊어버렸고 잃어버렸으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람도 그렇고 귀한 복된 일인데 그 일의 가치를 모르면 알멩이는 다 빼앗기고 마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그걸 중점을 두고 현재 우리에게 주신 현실인 한편 하나님을 섬기며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대속의 공로 힘입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기 분량만 다하면 얼마든지 귀하게 이루어질 것인데 자기에게 있는데, 사람이 볼 때 그게 어찌되든 모르는 겁니다. 눈에 원죄라는 콩깍지가 끼어있어서 귀합니다. 우리 모두 전부 그렇고 나는 몸이 약한데 병이 들었는데 부도가 나서 회사가 나버렸는데 허덕이고 있는데 자식들이 속을 썩이는데 늙어서 호락호락하는데 그게 에덴 동산입니다. 그게 가장 자기에게 귀한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 건설이 있고 좋은 복이 다 있는데 그걸 바꿔야겠습니다. 그게 바른 눈이고 그렇게 보지 못하면 잘못된 눈입니다.
오늘에 얼마든지 신앙 자유할 수 있고 주일 예배 밤 예배 새벽 예배, 새벽 예배 나갈려하면 경찰이 잡아가고 그러지요. 그러니까 못 나오겠지요. 얼마든지 새벽기도 나오라고 하고 자유가 있는데 매일은 못 나온다고 하더라도 한 두 번은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돌아보셔야합니다. 새벽 예배의 자유에서 그 자유를 지키지 못하면 나중에 나오고 싶어도 못합니다. 할 수 있는 걸 안하면 나중에 할 수 있는 것을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힘을 다해서 하면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이 그렇게 점점 자라가는 것이고 그렇게 믿음은 점점 자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집주인이 임금님이 집에다가 잔치상을 다 차려놓고 초대장 미리 다 보내놓고 음식 다 차려놓고 잔치날이 되어서 종들을 보내서 오십시오 준비되었나이다 하니까 하나는 밭을 샀고 장사하러, 장가하러, 집보러 그래서 다 핑계대고 안 옵니다. 주인이 사거리 나가서 다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그리고 전에 초대한 사람은 두 번 다시 못 올거다. 그렇게 하는데 못하는 거다.
새벽기도,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신앙자유가 있어서 새벽예배를 못 나오게 되고 밤예배도 못나오게 되고 안 나오는 것은 내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 먹어도 못하는 겁니다. 그때부터는 종입니다. 점점 할 걸 안하면 못하게 됩니다. 점점 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 원하는대로 해주마. 새벽기도 그렇게 싫으냐, 나가지 말아라.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못갑니다. 예배가 싫으냐, 가지 마라. 나중에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성경 읽고 싶어도 못 읽습니다. 그래서 죄 짓고 난 다음에 늙음을 주신 겁니다. 나쁘게 복없게 사는 사람에게는 저주고, 복된 사람에게는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축복이고 죄짓고 사는 사람에게는 저주고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러면 마지막에 심히 고통스러워서 성경에 기도하는 종은 백수가 될 때. 머리 하얗게 되면 백수입니다. 내가 백수가 될 때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늙었다는 뜻이고 기력이 빠져나갑니다. 구멍이 송송 생깁니다. 골다골증이라고 합니다. 온갖 고장이 다 생깁니다. 그러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늙었다고 늙게 살면 진짜 늙습니다. 늙었지만 젊게 살면 건강하게 삽니다. 말은 좋습니다. 늙었으면 늙은 줄 알고 조심히 살아야합니다. 60 70사람이 20 30처럼 살면 안되는 거지요. 현재 우리에게 주신 세월 얼마든지 주일 지키고 예배드리고 밤예배 새벽예배 얼마든지 드리고 전도하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게 복인줄 모르면 그 복은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버립니다. 예수를 30년 믿었는데 내가 받은 복이 뭐지. 부자가 되었나, 출세를 했나. 우리 교인들 처음 개척했을 때 그거 끌고 거창집회가고 지금은 차가 두 대씩 다 있습니다. 집이 한 채 두 채 다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 충성해서 부자됐다. 그렇지요. 맞습니까. 그런데 넓게 보면, 우리만 그런가요. 안 믿는 사람들은 더 부자 되었는데, 그런데 우리는 신앙 생활의 부자가 되었고 세상으로 죽음으로 그렇게 되었고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혼했고 아이 낳고 알뜰살뜰하게 서로 자기 일하고 충실하고 아내는 또 남편 챙기면서 가정 챙기면서 열심히 하고 소소한 일상이 그게 안 믿는 사람이고 그 자체 속에서 하는 것이 복인데, 알멩이 밥인데 그게 보배인데 자기 부모님이 최고인데 매일 보니까 다른 거 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권태라는 말이 붙으면 귀신입니다. 믿는 사람의 일상이 얼마나 그런지 그래서 아무런 품 변화가 없고 특별히 보이는 게 없을지라도 그렇게 살아나가다가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바른 중심가지고 바른 신앙의 방향으로 고요하게, 잠잠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감사하고 충성으로 계속하는 겁니다. 죽는 날까지 하더라도 그런 게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라며, 영에 붙들린 마음이 영혼입니다. 심령이 밝아집니다. 믿음이 생겨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고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잠잠히 하나님만이 붙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소망한다 의지한다 소망한다, 우리 가는 길이 그 길입니다. 사람의 이목을 생각을 하고 그러면 신앙 걸음은 걸어가지 못합니다. 어떤 걸 당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만 하면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올라갈 때 올라가고 던지면 던져지고 종으로 팔리면 팔리는 것이고 감옥 보내면 감옥 가는 것이고 총리로 세우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께 맡겨놓고 갈 길만 가는 겁니다.
차 나이가 사람 나이로 하면은 열 살도 안되었으니까 젊은 나이죠. 젊었는데 보니까 자동차가 뚫리고 그렇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느낀 게 뭐냐면 사람이라면 늙어야만 고장 생기는 게 아니구나. 자동차도 젊은 새 차인데 생기지 않습니까. 사람과 자동차는 비교도 못하지만은 원리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고 잡히는 것이라서 제대로 잡으면 문제가 안 생기거든요. 자동차 젊은 기계도 문제가 생겼다. 기계와 비교 못할 만큼 복잡합니다. 사람도 젊어도 고장 생깁니다. 세월을 주셨는데 그런데 그 세월은 우리에게 주신 세월은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바둑의 경우의 수가 많다고 하나는데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은 그만큼 머리가 좋다고 하지요. 인간의 머리로 시간을 멈춘다, 시간 자체를 거꾸로 하면 뭐라고 하지요. 과거로 돌아가고 미래로 가고, 타임머신이 그런가요. 과학적인 원리로 뭐 지정되면 시간이 멈추고, 그런데 백날 그래봐야 시간은 가는 겁니다. 되돌리는 법도 없습니다. 사람이 장기를 다 바꿔서 발명해서 만들어내서 그렇게 될지라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세월은 모두에게 다 주셨는데 성한 법이 없고 그 세월을 돌아가는 과정에서 지나느냐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결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벌어집니다. 이걸 느끼는 사람들이 위인입니다.
시간 속에서 세월을 살아가는데 어느정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참 귀하게 만들 수 있고 허무하게 보낼 수도 있습니다. 잠자는 거 뒤로 하고 노는 거 뒤로하고 자기를 만들어서 자기계발이라고, 그거 좋은 겁니다. 그런데 요셉이 17살에 팔려갔는데 30에 총리가 되었는데 요셉은 허수아비가 아닙니다. 실세 총리입니다. 그 말은 실력있는 총리라 그 말입니다. 애굽을 다스릴만한 실력을 13년 만에 가졌습니다. 인맥도 다 가졌습니다. 보디발을 압니다. 시위대장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했을 것이고 그랬을 겁니다. 감옥은 정치꾼들이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치인맥을 다 쌓은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요셉을 압니다. 결정적으로 바로가 보니까 껍데기가 아닙니다. 13년 만에, 김동건 선생님 16살인가요, 그렇게 살면 대통령될지도 몰라요. 김동건 대통령되면 안됩니까. 총리 국회의원 안되나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요셉의 자기 지식으로 그런 게 아니고 심리학으로 그런 게 되는 게 아닙니다.
주신 그 현실에서 살아나가보니까 하루 하루 그렇게 죄를 안 지어야겠다. 첫째 조건이 뭐지요. 죄를 안 지으려면 죄를 알아야하지요. 말씀을 알아야하지요. 말씀은 지식입니다. 성경 공부해야지. 성경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가는데 적용이 되는데 이치 원리를 알고 적용되는 실제 물질에 갖다대봐야 아는 겁니다. 써먹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입니다. 써먹어야하지요. 부딪혀봐야하지요. 그래야 죄지은 줄 알지요. 말씀은 현실과 부딪혀야합니다. 미국갔다온 어떤 우리 공회 큰 교회 목사님, 그분의 목회를 겪어본 사람의 말씀 버스비 쌀값 방세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셉이 그런 것은 말을 그렇게 한 겁니다. 현실을 살아갈 때 그렇게하고 그때그때 그 순간 죄가 많습니다. 죄라는 것은 성장의 것도 따라서 많습니다. 오래 믿는 사람의 죄와 오늘 믿은 사람의 죄와 다릅니다. 오늘 받은 깨끗한 새 옷은 먼지만 묻어도 표가 납니다. 깨끗한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평소 죄를 많이 짓고 살면 간섭 안합니다. 나중에 크게 손대시겠지만, 그래서 세월은 참 귀한 겁니다. 세월 속에 참 귀한 게 만들어져서 어리석은 짓 중 하나가 세월을 허비하는 겁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허비라는 것은 쓸데없는데 도움 안되는데 자기 신앙생활에 인격형성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것에 힘을 쓰면 허비가 됩니다. 바보같은 짓입니다. 그 귀한 세월을 보내고 돌아옵니다. 그 귀한 세월, 그 자가 붙었습니다. 그렇게 귀하고 귀한 세월을 허비하는 것, 우리는 남은 때라도 허비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좋든 나쁘든 우리 모두가 다 현재 자기 모습 저는 키가 작습니다. 이건 제 탓이 아닙니다. 키큰 분도 자기 잘난 게 아닌 것이고, 그런 거 말고 키가 커야 실력이 있습니까. 신앙의 실력 지능의 실력 사람의 환경 경제 환경 여러 여건들 좋든 나쁘든 아름답든 어쩌든 어떤 모습으로 되어있던지 그 형편이 바로 현실입니다.
오늘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만든 나의 살아온 흔적이고 이력이고 결과물입니다. 그 현실이라는 것이 지난 세월을 바로 살아올지라도, 그게 현실입니다. 그게 좋고 귀한 것입니다. 지난 세월 잘못살아서 앞으로 계속 살면되겠네, 지난세월 잘못 살아서 징계 받아서 가난해지고 그러면 오늘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귀한 겁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게 귀하고 안 좋은 거 만났으면 감사합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문제가 많은 겁니다. 현실은 귀하고 가장 좋은 것이고 그 현실을 과거와 연결시켜서 그 죄짓고 사니까 안 갈 때 주일인데 토요일에 발목이 부러져서 발병이 났습니다. 그러면 그 주일의 현실은 가장 좋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죄짓고 돌아다닌다고 다시는 그짓하지 말아야겠다 고치는 겁니다. 그래서 어제까지 잘못된 걸 고치는 겁니다. 그게 오늘입니다. 그러라고 주신 겁니다.
어제까지 제대로 살았씁니다. 더 잘 살아라고 주신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라는 건 중요한 겁니다. 이런 거 생각하면서 어제까지 살아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각자 현실인데 돌아보면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고요한 바다로 살고 있습니다. 신앙자유 양심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를 주셨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건 참 복이 있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서 사람이 어려운 것 중에서 큰 어려움 중에 하나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저하고 관계가 안 좋은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은 불행입니다. 신앙생활이 전부고 환경이 교회인데 이런데 문제가 생기면 큰일납니다. 공회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제가 아는대로는 평화롭게 신앙생활합니다. 공회랑도 함께 갑니다. 낙원이고 에덴동산입니다. 더욱더 감사하고 충성해나가면 어렵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충성해도 되는데 이걸 쉽게 생각을 하고 가볍게 생각을 하면 여기 대해서 일반 상대가 되게 되고 느슨하게 풀어지면 이걸 예사로 생각하게 되어지면 그 틈을 귀신같이 압니다.
하와는 사람 이름이고 하와는 여자입니다. 여자의 뜻이 뭡니까.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돕는 베필입니다. 남자에게 붙어있어야합니다. 자기에게는 잊어버리고 귀한 것을 잊어버리니까 남자하고 떨어졌습니다. 아담은 자기 몸에서는 반쪽을 풀어놔버렸습니다. 그 틈을 귀신이 노렸습니다. 마귀 귀신이 가장 한 것입니다. 복을 귀한 것을 예사로 생각하니까 미혹의 문을 열어놓은 겁니다. 가스라는 거, 이거는 들어가버리지요. 그러면 죽는 겁니다. 미세한 틈만 있어도. 뱀이 하와를 유혹해서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보니까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욕심이 들어가니까 반대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아름답던 아내 얼굴이 귀신이 남편 속에 들어서 인식을 바꿔버리면 꼴보기 싫어집니다.
그래서 부부 중에서 서로 보기 싫으면 귀신이 들어앉은 겁니다. 믿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하와가 선악과 쳐다보니까 미혹의 틈이 생겼고 인식이 바뀌어진 상태로 정반대가 되었고 무저갱이 열려버렸습니다. 주어진 그 현실에서 감사가 없고 충성이 없고 기쁨이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마귀는 들어와서 무저갱은 열리게 되고 무저갱이라는 것은 뭡니까. 욕심이 생기는 겁니다. 이거는 막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현실이나 그게 변하거나 동등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현실은 동등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이 세상이 아니고 피조물 상대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천국 구원이기 때문에 현실을 만들어주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그 가치는 동등이다. 우리는 뜻만 이루고 믿음으로 순종만 하면 되는 겁니다. 국어 문제를 주든 수학 문제를 주든 국어 수능 문제를 박사들이 풀어보더니 이건 수능이 아니고 사법고시 시험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국어 시험인데 무슨 물리쪽에 꼬아놓고, 모두 혀를 내두릅니다. 이건 수능이 아니라고, 그거 전부 장사 속입니다. 교수들 선생들 뒤에가서 모르겠지만 학원하는 사람하고 손 잡아서.
믿는 사람 어떤 것을 하든 그리 되는 겁니다. 본문에 그래서 나의 영혼이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를 건지는 분이 그분이니까 그분만 바라봅니다. 나의 기초가 됩니다. 나를 지키는 겁니다. 그분을 삼으면 흔들릴 리가 없습니다. 영향받을 리 없고 그리 되는 것이고 현실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하나님만 바라보면 그런 게 있습니다. 반석이시고 구원이시고 그런 겁니다. 흔들릴 일이 없다는 겁니다. 흔들릴 울타리처럼 담이라는 것은 경계고 보호막인데 무너져버리면 죄지은 것처럼 됩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자. 우리 할 일입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잠잠시 바라보고 주일지키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밤예배 새벽기도 예배생활 열심히 성경읽고 기도하고 말씀에 다 바치고 충실하고 그러면 그분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신앙에 힘쓰는 우리가 됩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62장, 165장
본문: 시편 62편 1절 ~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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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은 말 그대로 시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하나님을 닮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그런 생활 속에서 인격자 다윗이고 인격의 근본되신 하나님이시고 그런 관계 생활 속으로 여러 가지 작용 느낌 깨달음 등이 있을 수 밖에 없어서 그걸 글로 쓴 것이 시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섬기는 과정에서 죄도 지었고 대적도 많고 그런 가운데에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그런 가운데에서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런 느낌을 기록한 것이고 그런 중에서도 대적들은 끝없이 흔들고 넘어트리는 게 3절 4절입니다. 잠잠히 고요히 말 없이 고요하게 잠잠하다는 말은 말 없이 고요하게,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며 자기 생활에 충실한 겁니다.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니까 사람이 몰라져도 사람이 억울하게 만들어도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시고 마지막에 갚아주실 거니까, 자기 생활의 충실한 사람이 다윗이고 그것을 기록한 것이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생각해 보는 것은 믿는 우리들의 생활이 일상적으로 이어지는 생활인데 그게 계속되다 보면은 의복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위치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사람 중에 가장 귀한 사람, 결혼 한 분 중에 가장 귀한 사람은 아내고 남편입니다. 그 귀한 자기 부부가 살다보니까 가장 편하고 귀한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사람들이 원수가 되어있습니다.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자기의 반쪽입니다. 애를 먹이고 못나고 속을 썩여도 자기 반쪽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계시는가요. 그렇게 알고 인식하고 대하면 그 부부는 천국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원수로 대합니다. 잘못된 겁니다. 살다가 보니까 예사로 취급하니까 빼앗긴겁니다. 없어진 것만 빼앗긴게 아닙니다. 귀한 사람이 귀하게 되지 않았으니까 뺏긴 거지요.
자기가 잊어버렸고 잃어버렸으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람도 그렇고 귀한 복된 일인데 그 일의 가치를 모르면 알멩이는 다 빼앗기고 마는 겁니다. 오늘 말씀은 그걸 중점을 두고 현재 우리에게 주신 현실인 한편 하나님을 섬기며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대속의 공로 힘입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기 분량만 다하면 얼마든지 귀하게 이루어질 것인데 자기에게 있는데, 사람이 볼 때 그게 어찌되든 모르는 겁니다. 눈에 원죄라는 콩깍지가 끼어있어서 귀합니다. 우리 모두 전부 그렇고 나는 몸이 약한데 병이 들었는데 부도가 나서 회사가 나버렸는데 허덕이고 있는데 자식들이 속을 썩이는데 늙어서 호락호락하는데 그게 에덴 동산입니다. 그게 가장 자기에게 귀한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천국 건설이 있고 좋은 복이 다 있는데 그걸 바꿔야겠습니다. 그게 바른 눈이고 그렇게 보지 못하면 잘못된 눈입니다.
오늘에 얼마든지 신앙 자유할 수 있고 주일 예배 밤 예배 새벽 예배, 새벽 예배 나갈려하면 경찰이 잡아가고 그러지요. 그러니까 못 나오겠지요. 얼마든지 새벽기도 나오라고 하고 자유가 있는데 매일은 못 나온다고 하더라도 한 두 번은 나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돌아보셔야합니다. 새벽 예배의 자유에서 그 자유를 지키지 못하면 나중에 나오고 싶어도 못합니다. 할 수 있는 걸 안하면 나중에 할 수 있는 것을 없는 사람이 됩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힘을 다해서 하면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사람이 그렇게 점점 자라가는 것이고 그렇게 믿음은 점점 자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집주인이 임금님이 집에다가 잔치상을 다 차려놓고 초대장 미리 다 보내놓고 음식 다 차려놓고 잔치날이 되어서 종들을 보내서 오십시오 준비되었나이다 하니까 하나는 밭을 샀고 장사하러, 장가하러, 집보러 그래서 다 핑계대고 안 옵니다. 주인이 사거리 나가서 다 데려다가 내 집을 채워라. 그리고 전에 초대한 사람은 두 번 다시 못 올거다. 그렇게 하는데 못하는 거다.
새벽기도,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신앙자유가 있어서 새벽예배를 못 나오게 되고 밤예배도 못나오게 되고 안 나오는 것은 내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 먹어도 못하는 겁니다. 그때부터는 종입니다. 점점 할 걸 안하면 못하게 됩니다. 점점 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 원하는대로 해주마. 새벽기도 그렇게 싫으냐, 나가지 말아라.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못갑니다. 예배가 싫으냐, 가지 마라. 나중에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성경 읽고 싶어도 못 읽습니다. 그래서 죄 짓고 난 다음에 늙음을 주신 겁니다. 나쁘게 복없게 사는 사람에게는 저주고, 복된 사람에게는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축복이고 죄짓고 사는 사람에게는 저주고 고통스러운 겁니다. 그러면 마지막에 심히 고통스러워서 성경에 기도하는 종은 백수가 될 때. 머리 하얗게 되면 백수입니다. 내가 백수가 될 때 나를 버리지 마옵소서. 늙었다는 뜻이고 기력이 빠져나갑니다. 구멍이 송송 생깁니다. 골다골증이라고 합니다. 온갖 고장이 다 생깁니다. 그러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늙었다고 늙게 살면 진짜 늙습니다. 늙었지만 젊게 살면 건강하게 삽니다. 말은 좋습니다. 늙었으면 늙은 줄 알고 조심히 살아야합니다. 60 70사람이 20 30처럼 살면 안되는 거지요. 현재 우리에게 주신 세월 얼마든지 주일 지키고 예배드리고 밤예배 새벽예배 얼마든지 드리고 전도하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그게 복인줄 모르면 그 복은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버립니다. 예수를 30년 믿었는데 내가 받은 복이 뭐지. 부자가 되었나, 출세를 했나. 우리 교인들 처음 개척했을 때 그거 끌고 거창집회가고 지금은 차가 두 대씩 다 있습니다. 집이 한 채 두 채 다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 충성해서 부자됐다. 그렇지요. 맞습니까. 그런데 넓게 보면, 우리만 그런가요. 안 믿는 사람들은 더 부자 되었는데, 그런데 우리는 신앙 생활의 부자가 되었고 세상으로 죽음으로 그렇게 되었고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렇게 해서 결혼했고 아이 낳고 알뜰살뜰하게 서로 자기 일하고 충실하고 아내는 또 남편 챙기면서 가정 챙기면서 열심히 하고 소소한 일상이 그게 안 믿는 사람이고 그 자체 속에서 하는 것이 복인데, 알멩이 밥인데 그게 보배인데 자기 부모님이 최고인데 매일 보니까 다른 거 하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권태라는 말이 붙으면 귀신입니다. 믿는 사람의 일상이 얼마나 그런지 그래서 아무런 품 변화가 없고 특별히 보이는 게 없을지라도 그렇게 살아나가다가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바른 중심가지고 바른 신앙의 방향으로 고요하게, 잠잠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감사하고 충성으로 계속하는 겁니다. 죽는 날까지 하더라도 그런 게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하나님만 바라며, 영에 붙들린 마음이 영혼입니다. 심령이 밝아집니다. 믿음이 생겨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고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잠잠히 하나님만이 붙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소망한다 의지한다 소망한다, 우리 가는 길이 그 길입니다. 사람의 이목을 생각을 하고 그러면 신앙 걸음은 걸어가지 못합니다. 어떤 걸 당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만 하면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올라갈 때 올라가고 던지면 던져지고 종으로 팔리면 팔리는 것이고 감옥 보내면 감옥 가는 것이고 총리로 세우면 되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께 맡겨놓고 갈 길만 가는 겁니다.
차 나이가 사람 나이로 하면은 열 살도 안되었으니까 젊은 나이죠. 젊었는데 보니까 자동차가 뚫리고 그렇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느낀 게 뭐냐면 사람이라면 늙어야만 고장 생기는 게 아니구나. 자동차도 젊은 새 차인데 생기지 않습니까. 사람과 자동차는 비교도 못하지만은 원리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고 잡히는 것이라서 제대로 잡으면 문제가 안 생기거든요. 자동차 젊은 기계도 문제가 생겼다. 기계와 비교 못할 만큼 복잡합니다. 사람도 젊어도 고장 생깁니다. 세월을 주셨는데 그런데 그 세월은 우리에게 주신 세월은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바둑의 경우의 수가 많다고 하나는데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은 그만큼 머리가 좋다고 하지요. 인간의 머리로 시간을 멈춘다, 시간 자체를 거꾸로 하면 뭐라고 하지요. 과거로 돌아가고 미래로 가고, 타임머신이 그런가요. 과학적인 원리로 뭐 지정되면 시간이 멈추고, 그런데 백날 그래봐야 시간은 가는 겁니다. 되돌리는 법도 없습니다. 사람이 장기를 다 바꿔서 발명해서 만들어내서 그렇게 될지라도 그렇게 되는 겁니다. 세월은 모두에게 다 주셨는데 성한 법이 없고 그 세월을 돌아가는 과정에서 지나느냐에 따라서 만들어지는 결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벌어집니다. 이걸 느끼는 사람들이 위인입니다.
시간 속에서 세월을 살아가는데 어느정도로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참 귀하게 만들 수 있고 허무하게 보낼 수도 있습니다. 잠자는 거 뒤로 하고 노는 거 뒤로하고 자기를 만들어서 자기계발이라고, 그거 좋은 겁니다. 그런데 요셉이 17살에 팔려갔는데 30에 총리가 되었는데 요셉은 허수아비가 아닙니다. 실세 총리입니다. 그 말은 실력있는 총리라 그 말입니다. 애굽을 다스릴만한 실력을 13년 만에 가졌습니다. 인맥도 다 가졌습니다. 보디발을 압니다. 시위대장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했을 것이고 그랬을 겁니다. 감옥은 정치꾼들이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정치인맥을 다 쌓은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요셉을 압니다. 결정적으로 바로가 보니까 껍데기가 아닙니다. 13년 만에, 김동건 선생님 16살인가요, 그렇게 살면 대통령될지도 몰라요. 김동건 대통령되면 안됩니까. 총리 국회의원 안되나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요셉의 자기 지식으로 그런 게 아니고 심리학으로 그런 게 되는 게 아닙니다.
주신 그 현실에서 살아나가보니까 하루 하루 그렇게 죄를 안 지어야겠다. 첫째 조건이 뭐지요. 죄를 안 지으려면 죄를 알아야하지요. 말씀을 알아야하지요. 말씀은 지식입니다. 성경 공부해야지. 성경을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현실을 살아가는데 적용이 되는데 이치 원리를 알고 적용되는 실제 물질에 갖다대봐야 아는 겁니다. 써먹지 못하는 지식은 죽은 지식입니다. 써먹어야하지요. 부딪혀봐야하지요. 그래야 죄지은 줄 알지요. 말씀은 현실과 부딪혀야합니다. 미국갔다온 어떤 우리 공회 큰 교회 목사님, 그분의 목회를 겪어본 사람의 말씀 버스비 쌀값 방세도 모릅니다. 그런데 많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요셉이 그런 것은 말을 그렇게 한 겁니다. 현실을 살아갈 때 그렇게하고 그때그때 그 순간 죄가 많습니다. 죄라는 것은 성장의 것도 따라서 많습니다. 오래 믿는 사람의 죄와 오늘 믿은 사람의 죄와 다릅니다. 오늘 받은 깨끗한 새 옷은 먼지만 묻어도 표가 납니다. 깨끗한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평소 죄를 많이 짓고 살면 간섭 안합니다. 나중에 크게 손대시겠지만, 그래서 세월은 참 귀한 겁니다. 세월 속에 참 귀한 게 만들어져서 어리석은 짓 중 하나가 세월을 허비하는 겁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허비라는 것은 쓸데없는데 도움 안되는데 자기 신앙생활에 인격형성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것에 힘을 쓰면 허비가 됩니다. 바보같은 짓입니다. 그 귀한 세월을 보내고 돌아옵니다. 그 귀한 세월, 그 자가 붙었습니다. 그렇게 귀하고 귀한 세월을 허비하는 것, 우리는 남은 때라도 허비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좋든 나쁘든 우리 모두가 다 현재 자기 모습 저는 키가 작습니다. 이건 제 탓이 아닙니다. 키큰 분도 자기 잘난 게 아닌 것이고, 그런 거 말고 키가 커야 실력이 있습니까. 신앙의 실력 지능의 실력 사람의 환경 경제 환경 여러 여건들 좋든 나쁘든 아름답든 어쩌든 어떤 모습으로 되어있던지 그 형편이 바로 현실입니다.
오늘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만든 나의 살아온 흔적이고 이력이고 결과물입니다. 그 현실이라는 것이 지난 세월을 바로 살아올지라도, 그게 현실입니다. 그게 좋고 귀한 것입니다. 지난 세월 잘못살아서 앞으로 계속 살면되겠네, 지난세월 잘못 살아서 징계 받아서 가난해지고 그러면 오늘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귀한 겁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게 귀하고 안 좋은 거 만났으면 감사합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문제가 많은 겁니다. 현실은 귀하고 가장 좋은 것이고 그 현실을 과거와 연결시켜서 그 죄짓고 사니까 안 갈 때 주일인데 토요일에 발목이 부러져서 발병이 났습니다. 그러면 그 주일의 현실은 가장 좋은 겁니다. 하나님께서 죄짓고 돌아다닌다고 다시는 그짓하지 말아야겠다 고치는 겁니다. 그래서 어제까지 잘못된 걸 고치는 겁니다. 그게 오늘입니다. 그러라고 주신 겁니다.
어제까지 제대로 살았씁니다. 더 잘 살아라고 주신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라는 건 중요한 겁니다. 이런 거 생각하면서 어제까지 살아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각자 현실인데 돌아보면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고요한 바다로 살고 있습니다. 신앙자유 양심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를 주셨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건 참 복이 있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서 사람이 어려운 것 중에서 큰 어려움 중에 하나가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저하고 관계가 안 좋은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분은 불행입니다. 신앙생활이 전부고 환경이 교회인데 이런데 문제가 생기면 큰일납니다. 공회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제가 아는대로는 평화롭게 신앙생활합니다. 공회랑도 함께 갑니다. 낙원이고 에덴동산입니다. 더욱더 감사하고 충성해나가면 어렵습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충성해도 되는데 이걸 쉽게 생각을 하고 가볍게 생각을 하면 여기 대해서 일반 상대가 되게 되고 느슨하게 풀어지면 이걸 예사로 생각하게 되어지면 그 틈을 귀신같이 압니다.
하와는 사람 이름이고 하와는 여자입니다. 여자의 뜻이 뭡니까.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돕는 베필입니다. 남자에게 붙어있어야합니다. 자기에게는 잊어버리고 귀한 것을 잊어버리니까 남자하고 떨어졌습니다. 아담은 자기 몸에서는 반쪽을 풀어놔버렸습니다. 그 틈을 귀신이 노렸습니다. 마귀 귀신이 가장 한 것입니다. 복을 귀한 것을 예사로 생각하니까 미혹의 문을 열어놓은 겁니다. 가스라는 거, 이거는 들어가버리지요. 그러면 죽는 겁니다. 미세한 틈만 있어도. 뱀이 하와를 유혹해서 바꿔버렸습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보니까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욕심이 들어가니까 반대로 보였습니다. 그렇게 아름답던 아내 얼굴이 귀신이 남편 속에 들어서 인식을 바꿔버리면 꼴보기 싫어집니다.
그래서 부부 중에서 서로 보기 싫으면 귀신이 들어앉은 겁니다. 믿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하와가 선악과 쳐다보니까 미혹의 틈이 생겼고 인식이 바뀌어진 상태로 정반대가 되었고 무저갱이 열려버렸습니다. 주어진 그 현실에서 감사가 없고 충성이 없고 기쁨이 없으면 문제가 되는 겁니다. 마귀는 들어와서 무저갱은 열리게 되고 무저갱이라는 것은 뭡니까. 욕심이 생기는 겁니다. 이거는 막는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현실이나 그게 변하거나 동등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현실은 동등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이 이 세상이 아니고 피조물 상대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천국 구원이기 때문에 현실을 만들어주신 분이 하나님이니까. 그 가치는 동등이다. 우리는 뜻만 이루고 믿음으로 순종만 하면 되는 겁니다. 국어 문제를 주든 수학 문제를 주든 국어 수능 문제를 박사들이 풀어보더니 이건 수능이 아니고 사법고시 시험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국어 시험인데 무슨 물리쪽에 꼬아놓고, 모두 혀를 내두릅니다. 이건 수능이 아니라고, 그거 전부 장사 속입니다. 교수들 선생들 뒤에가서 모르겠지만 학원하는 사람하고 손 잡아서.
믿는 사람 어떤 것을 하든 그리 되는 겁니다. 본문에 그래서 나의 영혼이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를 건지는 분이 그분이니까 그분만 바라봅니다. 나의 기초가 됩니다. 나를 지키는 겁니다. 그분을 삼으면 흔들릴 리가 없습니다. 영향받을 리 없고 그리 되는 것이고 현실에 비바람이 몰아쳐도 하나님만 바라보면 그런 게 있습니다. 반석이시고 구원이시고 그런 겁니다. 흔들릴 일이 없다는 겁니다. 흔들릴 울타리처럼 담이라는 것은 경계고 보호막인데 무너져버리면 죄지은 것처럼 됩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보자. 우리 할 일입니다. 오늘의 현실에서 잠잠시 바라보고 주일지키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밤예배 새벽기도 예배생활 열심히 성경읽고 기도하고 말씀에 다 바치고 충실하고 그러면 그분에게 있습니다. 그렇게 신앙에 힘쓰는 우리가 됩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