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4일 금밤
김동민2025-11-14조회 11
2025년 11월 14일 금밤
찬송: 90장
본문: 시편 128편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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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그 제목을 시편에 여러 군데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123편도 124편도 125편도 126편도 127편도 128편도 전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성전은 높은 곳에 있습니다. 산에 있으니 당연히 올라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니까 올라가는 게 맞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우러러 보는 겁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우러러 본다 그 말은 위를 본다는 말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과정에서, 깨닫고 느끼고 경험하고 고백하고 감사하는, 여러 가지 마음의 작용들을 글로 표현해서 시로 적었는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로 기록되어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인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단풍을 보면 여러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단풍이 붉다. 여러 가지 조화가 아름답다. 가을 하늘이 청명하다. 높은 산에 있는 칼 바위를 보니까 참 높이도 올라갔다. 여러 가지 마음의 사물을 보고 들으면서 마음 속에 느껴지는 깨달아지는 그런 글로 적으면 뭐가 된다고요. 시가 됩니다. 시라는 것은 감성의 표현이라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나쁜 것은 아닙니다. 백 목사님도 시를 많이 썼습니다. 신앙 생활은 이성이 있어야하고 감성은 따라가야하지 반대로 되면 많은 부작용이 되게 됩니다.
이성은 이치를 따지고 논리로 따지고 이걸 과연 그러하냐, 계산하는 것이고 살펴보는 것이고 그게 이성입니다. 계산하고 살펴보고 구별하고 따지는 게 이성이고 참 아름답다. 맑다, 깨끗하다 슬프다 기쁘다 이걸 가르켜서 감성이라고 합니다. 이성이 앞에 가고 감성이 뒤로 따라가야하지 감성이 따라가고 그러면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신앙 생활도 그러합니다. 몇 가지가 있습니까. 이성과 감성, 무엇이 앞서고 무엇이 뒤로 가야합니까. 이성은 무엇이 이성이라고요, 이것이 그러한가. 그렇게 따지는 것, 계산하는 것 구별하는 것 살펴보는 것 연구하는 것 이것을 가르켜서 이성이라고 합니다. 이치를 따지는 성품을 이치라고 합니다. 화가 난다, 기분이 나쁘다. 슬프다, 괘씸하다 이런 것입니다. 늦게 가야합니다. 이성에 따라서 아무리 화가 나도 먼저 이치가 따라가도 지금 화를 내면 안되겠구나. 그게 이성이 앞서고 감성이 따라가는 겁니다.
화가 나니까 때려놓고 왜 때렸지 안되는 겁니다. 이성이 뭐라고 이성은 뭐하는 겁니까. 생각하는 것, 계산하는 것, 살펴보는 것 그게 이성이고 감성은 기분이 나쁘네, 화가 나네, 마음이 좋네 슬프네 이게 감성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감성적인게 많이 나옵니다. 이치를 따져도 그런 감성적인게 나옵니다. 과연 그러하다. 이치로 하면서 감동이 생겨집니다. 그러면 괜찮은 겁니다. 시편은 그런 종류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혼자서 살 때도 있고 부모 형제와 함께 살고 자녀와 함께 살고 살아가다가 어떤 일을 만나고 공부를 하고 시험도 치고 좋은 일도 만나고 나쁜 일도 만나고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이런 것을 희로애락이라고 합니다. 그런 별별 일이 다 생깁니다. 그럴 때 희로애락의 작용이 생겨지고 그렇게 되는데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신앙생활도 생긴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생활, 주일 지키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은 올라가는 신앙 생활인데 성전에 올라가는 생활, 하나님을 찾아가는 생활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생활입니다. 그게 어디 올라가는 것입니까.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은 여러 가지 일이 생깁니다. 사건 사고 기쁨도 생기고 슬픔도 생기고 화도 나고 몰랐던 거 알게도 되고 뉘우치기도 하고 도움도 구하고 그럴 때 생겨지는 마음을 글로 쓰면 신앙의 시가 됩니다.
나아갈 때 기뻐서 시를 지으니까 기쁜 찬송이 됩니다. 회개를 해서 시를 쓰니까 회개해서 찬송이 됩니다. 기도의 찬송이 됩니다. 그래서 시로 지은 게 전부 다 찬송, 그래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입니다. 우리도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그건 참 좋은 일입니다. 학생들은 적어보는 게 좋습니다. 본문은 누군지는 모릅니다. 127편은 보니까 누가 성전에 올라가다가 지었습니까. 솔로몬이, 124편은 누가 지었습니까. 다윗, 122편도 다윗, 이런 분들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은 것이 시들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다 보니까 얼마나 크시고 높으신 분인지를 느꼈습니다. 높으신 분이니까 높이 모시는 게 마땅하다. 그래서 이렇게 높여 모셨고 두려우신 분이로구나. 어떤 존재보다도 크면서 강하면서 두려우신 분이구나를 깨닫고, 하나님은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안 보이면은 없는것인가.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죠. 마음도 안 보이는데 있습니다. 물질도 너무너무 작은 것은 사람 눈에 안 보입니다. 현미경으로 봐도 안 보입니다. 눈의 범위를 벗어나서 안 보이는데 역사란 활동 일 이걸 역사라고 합니다. 흔히 성경에 보면은 사람이 중생된 증거가 뭐냐, 중생된 증거가 무엇이냐. 사람이 거듭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거듭났다는 것이 무슨 뜻이죠. 하고 또 한다는 겁니다. 거듭 거듭, 네 번이 되는 겁니다. 몇 번이 되는 겁니다 새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래서 니고데모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하니까 다시 태어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모태에 들어갔다 새로 나옵니까 그럽니다. 지금이 어리석은 거 같은데 모를 때는 그런 겁니다. 뭐든 처음에는 신비하고 신기하고 모르면 어렵고 알고 나면 쉬운 것이고.
2 곱하기 2는 뭘까요. 안 배웠으니까 모르지. 이영아, 2 곱하기 2는 쉬워요 어려워요. 식은 죽 먹기지. 왜 쉽습니까. 알고 나니까 쉽지. 뭐든지 다 그런 겁니다. 어제 저는 저 산에 다녀왔습니다. 삼봉산 밑에 절이 있는데 그 절까지 갔었는데 거기서 드론을 띄어서 정말 칼처럼 생겼습니다. 드론을 띄어서 사진을 찍는데 지상으로부터 100미터 올라갑니다. 그러면 손바닥으로 큰 드론인데 안 보입니다. 그런데 조정기로 보니까 카메라로 보이는데 안 보이는 드론이 위를 떠서 다 찍고 있습니다. 말만 들었죠. 이거 드론을 어떻게 만들까. 모르는데 드론 만드는 사람이 100만원짜리라는데 식은 죽 먹기입니다. 드론 가지고 몇 백 키로 가지고 폭격을 하거든요. 드론이 비행기입니다. 사람 안 타는 무인 비행기. 배도 그런 거 있습니다. 무인함선. 그러니까 그런 것도 만드는데 잘 만드는 사람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모릅니다.
무엇이든지 모르면 어렵고 알고나면 쉽고 다 그런겁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물질 세계에서도 안 보이는 물질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 물질은 전부 다 작용적인 작용도 있고 타에 의한 작용도 있습니다. 원하든 원지않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전부 다 움직인다, 작용한다는 거지요. 이 세상 물질 중에서 무생물이라도 작용 안하는 무생물이 있습니까. 하물면 생명이면 자체적으로 꼼지락 겁니다. 시편 기자들은 무형의 하나님이 자존자며 완전자며 절대자며 창조주며 그런 하나님으로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감동도 역사입니다. 네 마음을 네 마음이 아닌 객관의 역사에 의한 작용, 그 사람이 견물생심은 이거는 자생적입니까. 타에 의한겁니까. 보니까 생겼습니다. 피동입니다. 뭔가를 봄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유기적이지만은 내가 하는 거 같으나 하나님의 역사인지 아는 겁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인데 알고, 모르고 그분이 가장 높으신 분이고 두려우신 분이고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니까 그분의 말씀 명령, 도, 법칙 이대로 행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벗어날 수가 없는, 아버지가 엄하면 탈선을 함부로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엄해야한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인자하고 그래서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은 엄하게만 해도 아버지가 하는 겁니다. 아버지 때문에 함부로 탈선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장성해서 깨닫고 나면은 원하고 원함으로 하는 건데, 어릴 때 복종입니다. 더 어릴 때는 맹종입니다. 아주 어릴 때는 우리 아이들도 부모님에게 맹종입니다. 그때 맹종은 좋은 겁니다. 어릴 때는 맹종해야하고 그런데 어린 것이 따져보면은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시절마다 맞도록 했습니다. 처음 믿을 때는 맹종이고 복종하고 순종이 되는 것이고 원하고 원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행하고 경외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이 시편 기자 뿐 아니고 솔로몬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복이 있다. 나아만 집에 팔려간 여종도, 보디발 집에 팔려간 요셉도, 목동 다윗도, 하나님을 순종하면 복을 주십니다. 시대를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해서 누구든지 예외 없이 그러면 복이 있습니다. 경외하는 자들이 자체 변화의 복입니다. 자체가 변화되고 형통한 사람들이 되는 복입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을 것이라. 늘 마음의 생각이 계산이 따지는 것이 욕심까지도 일처리하는 것도 두려우신 높으신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말씀의 법칙을 따라서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계산하고 구별하고 실행을 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그러하고 귀가 그러하고 판단이 그리 되고 철이 그러합니다. 그렇게 한 번 하고 두 번하고 또 하다 보니까 사람이 하고 또하고 또하면 뭐가 되지요. 하고 하고 하고 또하면 뭐가 됩니까. 연습이 됩니다. 나중에 연습이 자꾸 하나 둘 많아지고 그러면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연습이란 다른 말로 말하면 기능입니다. 네 심신에 익어져 있는 자신입니다. 빼어내는 방식이 있습니까. 우리 신풍 사모님은 사고나서 뇌에 문제가 생기셨는데 그 전까지는 암산을 몇 천만 단위까지 해버립니다. 지금도 숫자를 열 몇 개 불러주고 얼마 하면 답이 나옵니다. 전자 계산기보다 더 빠릅니다. 피아노 기능 남아있고. 몸에 익으면 안 빠져 나갑니다. 네 손이 수고한대로, 그 사람이 살아간대로 자체가 되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몇 가지로 살았지요. 경외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 말씀을 어길 수 없는 사람이 된 겁니다. 그렇게 되면은 그 사람은 형통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가사가 어떻게 되지요. 만사형통하리라. 만사형통, 이것도 인식을 바로 기준을 바로 가져야하지만은 이 말씀은 변함이 없는 거지만은 자체가 변화되고 형통하게 되는 사람 복입니다. 이 복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
두 번째 복은 내 집 내 실에 있는 내 아내는 이해가 쉽지는 않으나 부부라는 것은 결혼하고 나면 한 사람입니다. 세월 속에 니 꺼 내 꺼가 없는 겁니다. 임금님하고 거지 처녀하고 결혼하면 그때부터 왕비가 되고 임금님의 전부가 왕비 게 되는 겁니까. 바보 온달하고 누가 결혼했습니까. 누구랑 결혼했지요. 평강공주랑 결혼했습니다. 바보인데 그 바보의 전부가 공주 게 되고 공주의 모든 것이고 바보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가르쳐서 훌륭한 장군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그게 잠언에 나오는 현숙한 아내입니다. 그래서 남입니다. 상관없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입니다. 남편의 전부입니다. 남편의 전부는 전부 아내겁니다.
지금은 그런게 잘 없는데 결혼하면 조건부 다 쓰고 안 맞으면 이혼해버리고 짐승만도 못한겁니다. 아내가 뭘 잘못해서 매가 맞으면 남편이 가서 대신 맞습니다. 내 아내 잘못은 내가 대신합니다. 그게 남편입니다. 그 남자가 그 위험에 쳐했을 때 도망가면 비겁한 놈입니다. 그게 남편입니다. 부부는 하나님입니다. 내실에 있는 네 아내라고 하니까 남자를 기준으로 했으니까 그런 건데 남자는 가장 깊은 속에 뭐가 있지요. 영이 있습니다. 영의 집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영의 집이고 너의 집 네 아내는 내 몸 안에 있는 마음, 영,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자기 속에 속사람, 새사람 참사람. 눈으로 듣고 귀로 듣고 참사람 새사람이 결실맺는, 포도, 포도 결실같은, 포도 나무는 어쨌든 성경에서는 대표적으로 주님을 상징합니다. 포도열매는 피를 상징합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안 접할 수가 없는 건데 모든 세상 접촉하면서 바깥 세계에 피동이 되어버리면 엉망이 되어버립니다. 봄으로 나쁜 욕심이 생기고 나쁜 생각이 생기면 허물어지고 더러워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무엇을 접하든지 속이 대속의 사람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그래서 그런 복을 받게 된다.
3절까지 그렇고 네 상에 둘린 자식도 같은 의미입니다. 결국 자기 결실 자기 속이 결실되는 걸 말합니다. 4절이 강조하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시온에서 복을 준다. 예루살렘의 복을 본다. 시온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말하자면 독립해서 나라를 제대로 갖추는 시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랍 쪽에 이스라엘과 대적하는 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말할 때 시온주의자라고 하고 시오니즘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시온에서 복을 준다는 말은 천국에서 복을 준다는 말인데 이 세상에서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말하고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보게 된다. 그 말이지요. 천국 이룬다. 세상에서 천국 이룬다. 이 세상과 천국은 다른 세상이나 이 세상에서 천국은 이루어집니다. 세상에서 천국 건설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구원인데 천국의 모습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겁니다. 이 세상에 일어남에 따라 당연한건데, 하늘나라 천국이 이 세상에서 보이는 천국으로 나타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것도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천국의 모형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 세상에 건설된 모형,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의 모습 그게 뭐라고요. 참된 교회라는 겁니다. 참된 교회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물론 물질 세상이니까 가변적이고 유한합니다. 다윗이 가르치는 이 세상에는 전쟁이 많았지만 천국이 있었습니다. 천국이 변하니까 변해버리고 갈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것도 행하는 사람이고 그 예루살렘을 본다. 그 평생의 예루살렘을 본다. 천국을 이루고 천국을 이루는 그것을 천국 보는 복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 오시면 천국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기에 하는 사람은 천국이 되는 겁니다. 주님의 것이 되기 때문에, 6절에 내 자식의 자식을 볼 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자식의 자식을 봅니다. 우리만 봅니까 다 보지. 안 믿는 사람도 우리 공회만 이 길을 넷 다섯 낳는 게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도 드물고 넷 다섯 낳고 기뻐하는 게 나옵니다.
미국같은 곳에는 외국 이스라엘 이런 곳은 넷 다섯이 보통이고 예사입니다. 그런데 아합이 아들이 몇 명이었던가요. 칠십명, 그 아합의 아들 칠십명이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낳고 낳고 낳으면 복이겠습니까 저주겠습니까. 아합 같은 인간이 자식의 자식을 보면 복입니까 저주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그러면 복이라고 볼 수 없지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자식의 자식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야곱으로 이어지고 열 두 지파로 이어집니다. 옳은 신앙 계통에 해서 말할 수 없는 복입니다. 우리 공회에서 몇 대로 이어지는 가정들 참 여기 속한 복이 됩니다. 자식의 자식은 복일 지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평강일지어다. 축복을 합니다. 이것이 경외하는 자의 복입니다.
네 가지, 자체가 변화되고 형편한 사람이 됩니다. 외부 접축으로, 속사람, 신앙이 이어지는 복. 우리 다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힘을 써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거짓도 없고 불변도 없는 진리입니다. 이 말씀이 맞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 우리가 되야겠습니다.
찬송: 90장
본문: 시편 128편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제목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그 제목을 시편에 여러 군데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123편도 124편도 125편도 126편도 127편도 128편도 전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성전은 높은 곳에 있습니다. 산에 있으니 당연히 올라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니까 올라가는 게 맞는 겁니다. 신앙생활은 우러러 보는 겁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우러러 본다 그 말은 위를 본다는 말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과정에서, 깨닫고 느끼고 경험하고 고백하고 감사하는, 여러 가지 마음의 작용들을 글로 표현해서 시로 적었는데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로 기록되어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인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단풍을 보면 여러 가지 느낌이 있습니다. 단풍이 붉다. 여러 가지 조화가 아름답다. 가을 하늘이 청명하다. 높은 산에 있는 칼 바위를 보니까 참 높이도 올라갔다. 여러 가지 마음의 사물을 보고 들으면서 마음 속에 느껴지는 깨달아지는 그런 글로 적으면 뭐가 된다고요. 시가 됩니다. 시라는 것은 감성의 표현이라서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나쁜 것은 아닙니다. 백 목사님도 시를 많이 썼습니다. 신앙 생활은 이성이 있어야하고 감성은 따라가야하지 반대로 되면 많은 부작용이 되게 됩니다.
이성은 이치를 따지고 논리로 따지고 이걸 과연 그러하냐, 계산하는 것이고 살펴보는 것이고 그게 이성입니다. 계산하고 살펴보고 구별하고 따지는 게 이성이고 참 아름답다. 맑다, 깨끗하다 슬프다 기쁘다 이걸 가르켜서 감성이라고 합니다. 이성이 앞에 가고 감성이 뒤로 따라가야하지 감성이 따라가고 그러면 문제가 생깁니다.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신앙 생활도 그러합니다. 몇 가지가 있습니까. 이성과 감성, 무엇이 앞서고 무엇이 뒤로 가야합니까. 이성은 무엇이 이성이라고요, 이것이 그러한가. 그렇게 따지는 것, 계산하는 것 구별하는 것 살펴보는 것 연구하는 것 이것을 가르켜서 이성이라고 합니다. 이치를 따지는 성품을 이치라고 합니다. 화가 난다, 기분이 나쁘다. 슬프다, 괘씸하다 이런 것입니다. 늦게 가야합니다. 이성에 따라서 아무리 화가 나도 먼저 이치가 따라가도 지금 화를 내면 안되겠구나. 그게 이성이 앞서고 감성이 따라가는 겁니다.
화가 나니까 때려놓고 왜 때렸지 안되는 겁니다. 이성이 뭐라고 이성은 뭐하는 겁니까. 생각하는 것, 계산하는 것, 살펴보는 것 그게 이성이고 감성은 기분이 나쁘네, 화가 나네, 마음이 좋네 슬프네 이게 감성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감성적인게 많이 나옵니다. 이치를 따져도 그런 감성적인게 나옵니다. 과연 그러하다. 이치로 하면서 감동이 생겨집니다. 그러면 괜찮은 겁니다. 시편은 그런 종류입니다. 세상을 살아갈 때 혼자서 살 때도 있고 부모 형제와 함께 살고 자녀와 함께 살고 살아가다가 어떤 일을 만나고 공부를 하고 시험도 치고 좋은 일도 만나고 나쁜 일도 만나고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고. 이런 것을 희로애락이라고 합니다. 그런 별별 일이 다 생깁니다. 그럴 때 희로애락의 작용이 생겨지고 그렇게 되는데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신앙생활도 생긴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생활, 주일 지키고 성경 읽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은 올라가는 신앙 생활인데 성전에 올라가는 생활, 하나님을 찾아가는 생활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 생활입니다. 그게 어디 올라가는 것입니까. 그런 식으로 하다 보면은 여러 가지 일이 생깁니다. 사건 사고 기쁨도 생기고 슬픔도 생기고 화도 나고 몰랐던 거 알게도 되고 뉘우치기도 하고 도움도 구하고 그럴 때 생겨지는 마음을 글로 쓰면 신앙의 시가 됩니다.
나아갈 때 기뻐서 시를 지으니까 기쁜 찬송이 됩니다. 회개를 해서 시를 쓰니까 회개해서 찬송이 됩니다. 기도의 찬송이 됩니다. 그래서 시로 지은 게 전부 다 찬송, 그래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들입니다. 우리도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그건 참 좋은 일입니다. 학생들은 적어보는 게 좋습니다. 본문은 누군지는 모릅니다. 127편은 보니까 누가 성전에 올라가다가 지었습니까. 솔로몬이, 124편은 누가 지었습니까. 다윗, 122편도 다윗, 이런 분들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지은 것이 시들입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를 경외하며,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다 보니까 얼마나 크시고 높으신 분인지를 느꼈습니다. 높으신 분이니까 높이 모시는 게 마땅하다. 그래서 이렇게 높여 모셨고 두려우신 분이로구나. 어떤 존재보다도 크면서 강하면서 두려우신 분이구나를 깨닫고, 하나님은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안 보이면은 없는것인가. 안 보인다고 없는 건 아니죠. 마음도 안 보이는데 있습니다. 물질도 너무너무 작은 것은 사람 눈에 안 보입니다. 현미경으로 봐도 안 보입니다. 눈의 범위를 벗어나서 안 보이는데 역사란 활동 일 이걸 역사라고 합니다. 흔히 성경에 보면은 사람이 중생된 증거가 뭐냐, 중생된 증거가 무엇이냐. 사람이 거듭난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그러니까 거듭났다는 것이 무슨 뜻이죠. 하고 또 한다는 겁니다. 거듭 거듭, 네 번이 되는 겁니다. 몇 번이 되는 겁니다 새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래서 니고데모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하니까 다시 태어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모태에 들어갔다 새로 나옵니까 그럽니다. 지금이 어리석은 거 같은데 모를 때는 그런 겁니다. 뭐든 처음에는 신비하고 신기하고 모르면 어렵고 알고 나면 쉬운 것이고.
2 곱하기 2는 뭘까요. 안 배웠으니까 모르지. 이영아, 2 곱하기 2는 쉬워요 어려워요. 식은 죽 먹기지. 왜 쉽습니까. 알고 나니까 쉽지. 뭐든지 다 그런 겁니다. 어제 저는 저 산에 다녀왔습니다. 삼봉산 밑에 절이 있는데 그 절까지 갔었는데 거기서 드론을 띄어서 정말 칼처럼 생겼습니다. 드론을 띄어서 사진을 찍는데 지상으로부터 100미터 올라갑니다. 그러면 손바닥으로 큰 드론인데 안 보입니다. 그런데 조정기로 보니까 카메라로 보이는데 안 보이는 드론이 위를 떠서 다 찍고 있습니다. 말만 들었죠. 이거 드론을 어떻게 만들까. 모르는데 드론 만드는 사람이 100만원짜리라는데 식은 죽 먹기입니다. 드론 가지고 몇 백 키로 가지고 폭격을 하거든요. 드론이 비행기입니다. 사람 안 타는 무인 비행기. 배도 그런 거 있습니다. 무인함선. 그러니까 그런 것도 만드는데 잘 만드는 사람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모릅니다.
무엇이든지 모르면 어렵고 알고나면 쉽고 다 그런겁니다.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물질 세계에서도 안 보이는 물질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리고 그 물질은 전부 다 작용적인 작용도 있고 타에 의한 작용도 있습니다. 원하든 원지않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전부 다 움직인다, 작용한다는 거지요. 이 세상 물질 중에서 무생물이라도 작용 안하는 무생물이 있습니까. 하물면 생명이면 자체적으로 꼼지락 겁니다. 시편 기자들은 무형의 하나님이 자존자며 완전자며 절대자며 창조주며 그런 하나님으로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감동도 역사입니다. 네 마음을 네 마음이 아닌 객관의 역사에 의한 작용, 그 사람이 견물생심은 이거는 자생적입니까. 타에 의한겁니까. 보니까 생겼습니다. 피동입니다. 뭔가를 봄으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유기적이지만은 내가 하는 거 같으나 하나님의 역사인지 아는 겁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하나님인데 알고, 모르고 그분이 가장 높으신 분이고 두려우신 분이고 두려워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니까 그분의 말씀 명령, 도, 법칙 이대로 행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벗어날 수가 없는, 아버지가 엄하면 탈선을 함부로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엄해야한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인자하고 그래서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은 엄하게만 해도 아버지가 하는 겁니다. 아버지 때문에 함부로 탈선을 못합니다. 그러니까 장성해서 깨닫고 나면은 원하고 원함으로 하는 건데, 어릴 때 복종입니다. 더 어릴 때는 맹종입니다. 아주 어릴 때는 우리 아이들도 부모님에게 맹종입니다. 그때 맹종은 좋은 겁니다. 어릴 때는 맹종해야하고 그런데 어린 것이 따져보면은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시절마다 맞도록 했습니다. 처음 믿을 때는 맹종이고 복종하고 순종이 되는 것이고 원하고 원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행하고 경외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이 시편 기자 뿐 아니고 솔로몬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높이고 두려워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하기만 하면 복이 있다. 나아만 집에 팔려간 여종도, 보디발 집에 팔려간 요셉도, 목동 다윗도, 하나님을 순종하면 복을 주십니다. 시대를 초월하고 장소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해서 누구든지 예외 없이 그러면 복이 있습니다. 경외하는 자들이 자체 변화의 복입니다. 자체가 변화되고 형통한 사람들이 되는 복입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하는 대로 먹을 것이라. 늘 마음의 생각이 계산이 따지는 것이 욕심까지도 일처리하는 것도 두려우신 높으신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말씀의 법칙을 따라서 그렇게 합니다. 그렇게 계산하고 구별하고 실행을 합니다. 자기의 마음이 그러하고 귀가 그러하고 판단이 그리 되고 철이 그러합니다. 그렇게 한 번 하고 두 번하고 또 하다 보니까 사람이 하고 또하고 또하면 뭐가 되지요. 하고 하고 하고 또하면 뭐가 됩니까. 연습이 됩니다. 나중에 연습이 자꾸 하나 둘 많아지고 그러면 사람이 그런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연습이란 다른 말로 말하면 기능입니다. 네 심신에 익어져 있는 자신입니다. 빼어내는 방식이 있습니까. 우리 신풍 사모님은 사고나서 뇌에 문제가 생기셨는데 그 전까지는 암산을 몇 천만 단위까지 해버립니다. 지금도 숫자를 열 몇 개 불러주고 얼마 하면 답이 나옵니다. 전자 계산기보다 더 빠릅니다. 피아노 기능 남아있고. 몸에 익으면 안 빠져 나갑니다. 네 손이 수고한대로, 그 사람이 살아간대로 자체가 되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았습니까. 몇 가지로 살았지요. 경외하는 자로 살았습니다. 그 말씀을 어길 수 없는 사람이 된 겁니다. 그렇게 되면은 그 사람은 형통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가사가 어떻게 되지요. 만사형통하리라. 만사형통, 이것도 인식을 바로 기준을 바로 가져야하지만은 이 말씀은 변함이 없는 거지만은 자체가 변화되고 형통하게 되는 사람 복입니다. 이 복보다 더 큰 복이 있을까.
두 번째 복은 내 집 내 실에 있는 내 아내는 이해가 쉽지는 않으나 부부라는 것은 결혼하고 나면 한 사람입니다. 세월 속에 니 꺼 내 꺼가 없는 겁니다. 임금님하고 거지 처녀하고 결혼하면 그때부터 왕비가 되고 임금님의 전부가 왕비 게 되는 겁니까. 바보 온달하고 누가 결혼했습니까. 누구랑 결혼했지요. 평강공주랑 결혼했습니다. 바보인데 그 바보의 전부가 공주 게 되고 공주의 모든 것이고 바보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가르쳐서 훌륭한 장군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그게 잠언에 나오는 현숙한 아내입니다. 그래서 남입니다. 상관없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입니다. 남편의 전부입니다. 남편의 전부는 전부 아내겁니다.
지금은 그런게 잘 없는데 결혼하면 조건부 다 쓰고 안 맞으면 이혼해버리고 짐승만도 못한겁니다. 아내가 뭘 잘못해서 매가 맞으면 남편이 가서 대신 맞습니다. 내 아내 잘못은 내가 대신합니다. 그게 남편입니다. 그 남자가 그 위험에 쳐했을 때 도망가면 비겁한 놈입니다. 그게 남편입니다. 부부는 하나님입니다. 내실에 있는 네 아내라고 하니까 남자를 기준으로 했으니까 그런 건데 남자는 가장 깊은 속에 뭐가 있지요. 영이 있습니다. 영의 집은 마음입니다. 마음은 영의 집이고 너의 집 네 아내는 내 몸 안에 있는 마음, 영,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자기 속에 속사람, 새사람 참사람. 눈으로 듣고 귀로 듣고 참사람 새사람이 결실맺는, 포도, 포도 결실같은, 포도 나무는 어쨌든 성경에서는 대표적으로 주님을 상징합니다. 포도열매는 피를 상징합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이 세상을 안 접할 수가 없는 건데 모든 세상 접촉하면서 바깥 세계에 피동이 되어버리면 엉망이 되어버립니다. 봄으로 나쁜 욕심이 생기고 나쁜 생각이 생기면 허물어지고 더러워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고 무엇을 접하든지 속이 대속의 사람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그래서 그런 복을 받게 된다.
3절까지 그렇고 네 상에 둘린 자식도 같은 의미입니다. 결국 자기 결실 자기 속이 결실되는 걸 말합니다. 4절이 강조하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시온에서 복을 준다. 예루살렘의 복을 본다. 시온이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말하자면 독립해서 나라를 제대로 갖추는 시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아랍 쪽에 이스라엘과 대적하는 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말할 때 시온주의자라고 하고 시오니즘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시온에서 복을 준다는 말은 천국에서 복을 준다는 말인데 이 세상에서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말하고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보게 된다. 그 말이지요. 천국 이룬다. 세상에서 천국 이룬다. 이 세상과 천국은 다른 세상이나 이 세상에서 천국은 이루어집니다. 세상에서 천국 건설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구원인데 천국의 모습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겁니다. 이 세상에 일어남에 따라 당연한건데, 하늘나라 천국이 이 세상에서 보이는 천국으로 나타난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것도 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천국의 모형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이 세상에 건설된 모형,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의 모습 그게 뭐라고요. 참된 교회라는 겁니다. 참된 교회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물론 물질 세상이니까 가변적이고 유한합니다. 다윗이 가르치는 이 세상에는 전쟁이 많았지만 천국이 있었습니다. 천국이 변하니까 변해버리고 갈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것도 행하는 사람이고 그 예루살렘을 본다. 그 평생의 예루살렘을 본다. 천국을 이루고 천국을 이루는 그것을 천국 보는 복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 오시면 천국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기에 하는 사람은 천국이 되는 겁니다. 주님의 것이 되기 때문에, 6절에 내 자식의 자식을 볼 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자식의 자식을 봅니다. 우리만 봅니까 다 보지. 안 믿는 사람도 우리 공회만 이 길을 넷 다섯 낳는 게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도 드물고 넷 다섯 낳고 기뻐하는 게 나옵니다.
미국같은 곳에는 외국 이스라엘 이런 곳은 넷 다섯이 보통이고 예사입니다. 그런데 아합이 아들이 몇 명이었던가요. 칠십명, 그 아합의 아들 칠십명이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낳고 낳고 낳으면 복이겠습니까 저주겠습니까. 아합 같은 인간이 자식의 자식을 보면 복입니까 저주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그러면 복이라고 볼 수 없지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자식의 자식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야곱으로 이어지고 열 두 지파로 이어집니다. 옳은 신앙 계통에 해서 말할 수 없는 복입니다. 우리 공회에서 몇 대로 이어지는 가정들 참 여기 속한 복이 됩니다. 자식의 자식은 복일 지어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평강일지어다. 축복을 합니다. 이것이 경외하는 자의 복입니다.
네 가지, 자체가 변화되고 형편한 사람이 됩니다. 외부 접축으로, 속사람, 신앙이 이어지는 복. 우리 다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힘을 써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거짓도 없고 불변도 없는 진리입니다. 이 말씀이 맞으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런 우리가 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