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5일 수밤
김동민2025-10-15조회 22추천 1
2025년 10월 15일 수밤
찬송: 152장
본문: 에베소서 1장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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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수 없이 이 몸은 잠시도 못 사네 유재헌 목사님 찬송입니다. 예수 없이 이 몸은 잠시도 못 사네 그게 유재헌 목사님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다 해당되어야하는데 그런 느낌은 다 가져보시는지요, 주 동하면 나 동하고 주 정하면 나 정하네. 일보일보 주님으로 동행케 합소서.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고 해도 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다. 교리를 아는 것은 중요하고 그 아는 교리를 자기 속에 자기를 주장하는 주관의 지식으로 담아 놓으면 그 지식이 자기를 지배하게 되면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살지 못할 때 양심이 살아있지 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야하는데 살지 못하는 그 생활이 반복이 되는 것이 양심이 죽어버립니다. 살아야하는데 살지못하면 양심이 찔러대는데 양심을 무시하고 살지 않으니까 그 양심이 다 무디어져서 묻혀져 버립니다. 그러면 희망이 없게 되는 그렇게 되는데.
그런데 예수 없이 이 몸은 잠시도 못 산다고 하는데 소망은 가지고 노력을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교회의 근본, 교회의 근본은 언제부터 출발되어져있는가, 보이는 교회는 에덴 동산 거기서 출발합니다. 우리 구원의 근본이 교회의 출발입니다. 우리 교회의 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입니다.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의 유일무일한 역사를 하셨고 그 목적에 완성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역사 세계에서 일반 사람들이 알도록 그렇게 넓게 하면, 교회가 가장 넓은 건데, 교회 위에 공회가 있고 그렇게 있는데 공회 위에는 뭐가 있습니까. 개인 교회, 가정 교회가 있고 그 위에 사회 교회가 있고, 공회가 위로 있고, 총공회가 있는데 그 위로 기독교가 있습니다. 사람 생각에는 가장 큰 범위, 기독교가 가장 큰 범위가 되는데 목적과 연결시키면 기독교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죠. 기독교는 교회인데 이걸 가지고 예수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간판을 가졌는데 교회가 되지 못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것은 그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러셨고 단 하나, 하나만 뜻을 정하셨고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게 교회를 정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 성취 완성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늘과 땅과 바다와 영계까지 다 지으셨고 6000년 세월을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찾아본다는 게 못 찾았는데 불교는 대략 몇 년즘 되었습니까. 3000년 됩니까. 유교도 그 정도 되었을련가요. 기독교는 2000년이다.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고 기독교가 교회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6000년 지금부터 전이고 그 너머로 말하면 역사 세계가 있기 전 시공 세계 창조 세계가 있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게 교회의 역사고 출발입니다. 이것을 알아야하는 이유가 세상 집안으로 말하면 족보를 말하는 거지요. 상놈집안, 노예집안은 족보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 성씨는 과거 가짜베기가 많다고 합니다. 하도 상놈으로 멸시받다가 모르는 곳에 가서 자리 잡고 살다보면 들은 것이 있으니까 사람 사귀게 되고 성씨가 어떻게 되는가. 무슨 김씨입니다. 박씨입니다. 이씨입니다. 그런데 안된대서 어떻게 만들어서 양반집안 만든게 많답니다.
뼈대 있는 집안, 잘난 집안 똑똑한 집안은 족보를 만듭니다. 우리 집안은 뿌리있는 집안입니다. 세상에서 소위 방귀 꽤나 뀌는 집안은 만들던 조작을 했던 족보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자기 집안의 근본을 가지고 있는거지요. 그리고 어려울 때 붙드는 힘이 될 수도 있고 세상 살아가는 자부심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도 우리 이런 집안인데, 그런 것도 될 수 있는 것이고 교회에 근본을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우리들이 잘 모르고 믿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하지만 우리들의 교회의 역할이 에덴 동산부터고 올라가면 자존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참 많이 어려워진다고 해야할까요 복잡한다고 해야할까요. 그래서 아는 것은 중요하고 그런 교리를 가지고 있을 때 체계적으로 가지고 있으면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믿는 믿음으로 그 지식이 자기 지배아는 지식이 될 수 있을 때가 되기도 합니다.
본문을 복습합니다. 또 만물을 하나씩 복습해봅시다. 만물은 다른 말로 말하면 무엇이 만물입니까. 피조물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로 나눌 때 창조주와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피조물이냐, 백 목사님께서 젊었을 때 예수님의 인성인 피조물이라고 하니까 교회가 뒤집어진답니다. 장로님 한 사람이 그냥 나갈라 했다고 했던가요. 감히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라고, 그러면 창조주여야하는 건데 지극히 상식적인 것인데, 역사 통계 전통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붙들려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면 그것이 예수님을 못박아 죽이는 역할을 만들게 됩니다. 역사는 반복이 됩니다. 칼빈은 그 당시에 이단이었습니다. 루터도 그랬고. 그때 정통은 천주교입니다. 타락한 천주교. 칼빈은 개혁인데 그때는 이단입니다. 그때 천주교는 마녀 사냥으로 찍어버리면 황제도 절절맸습니다. 그래서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꿇고 빈 역사가 있죠. 그래서 신하들이 말을 듣습니까. 파문당해서 사람도 아니라고, 교황 앞에 가서 무릎 꿇고 빌었다고 하지요. 그게 그 당시 천주교입니다.
예수님 당시 전통은 바리새파들입니다. 그 정통들이 목박아 족였습니다. 삼분론 말하고 건설구원 말하니까 기름 준비 못한 열 처녀도 천국갔다고 하니까 정통 교단들이 죽여야한다고, 그게 예수님 못박고 옳은 길에서 탈선이 되지 않아야합니다. 우리 총공회 안에 믿는 것도 변해야하고 평생을 외쳐서 귀에 그렇게 들어도 꼭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세월 속에 그리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별 사람입니까. 아차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만물은 피조물인데 하나님 외에 전부 다 통틀어서 말할 때 만물이라고 말합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 가장 밑인데 주님 발 아래 그 말은 주님이 걸어가신 평생을 통해서 걸어가게 해주신 대속 역사 아래 그 속에는 하나님의 자존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한 무한한 희생이 들어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구원이 들어있습니다. 그 대속 역사 속에는 영원한 하늘의 소망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들었고 사람으로 인한 희생을 들었고 영원한 지옥을 건짐들었고 하나님 소망이 대속 역사 속에 들어있습니다. 천국가면 그 전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후 천국 올라가서 날 구속하신, 52장이지요. 하늘나라 가면 환하게 드러납니다. 빛의 나라라서 다 아는 겁니다. 피조물이라서 그 높이를 다 알련지 모르겠으나 어둠이 없습니다. 환하게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넓었던가 높았던가 그렇게 컸던가 백목사님에게 날지 모르겠습니다. 그 발아래 대속아래가 될 수 있습니다. 복종이 있고 강제가 힘에 의해서 눌리는 게 들어있으나 이때 복종은 눌리는 게 아니고 스스로 인정하는 겁니다. 그분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고 대속의 주님을 만물이 있고 그 위에 교회가 있습니다. 계급처럼 되어있는 거지요. 이 세상에는 공산주의자들은 평등한 사회를 만든다고 100년도 더 전부터 나와서 애를 쓰고 있는데 하나님이 안 되게 하신 세상을 만들려고하면 역행이 되는 거지요. 이 세상은 계급 없는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차별이 더 많답니다.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한데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하늘나라도 계급이 있고 무한합니다. 굉장히 있고 그 만물 위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도 층층이 있습니다. 같은 교회가 아니겠지요. 교회도 많은 층이 있을 겁니다.
그 교회에 머리로 주님을 주셨다. 그러면 몸이다 그랬습니다. 몸 밖에 없는데 머리를 박았습니다. 머리없는 몸 아십니까. 머리가 없다는 말은 생각과 연구가 없다는 말입니다. 판단이 없다 그 말이 되는 겁니다. 지도가 없고 인도가 없고 안내가 없으면 안되는 겁니다. 자동차 운전사가 없고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 머리가 없게 됩니다. 목사는 껍데기고 반사 선생님 한 분이 하나님과 가깝고 영안이 밝아서 목사에게 감언하든 청문하든 반사 선생님의 뜻댈 운영이 되면 그 사람이 그리 됩니다. 역사에 이스라엘이 대제사장 엘리가 나이가 90이 되었습니다. 그 밑에 어린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대스승같은 엘리 제사장을 남겨놓고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는 머리가 사무엘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전쟁나고 엘리 죽고 나서 그렇게 되는 거지요. 지금도 그런 역사가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만물은 머리로 주셨느니라.
온전한 한 몸이 되게 되어지는 거지요. 머리를 나타내는게 몸입니다. 이런 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어야합니다. 몸은 머리로 나타낸 게 몸입니다. 이게 맞습니까. 예배당 지하실에 화장실을 새로 할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위치를 어떻게하고 구조를 어떻게하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연구하지요. 누가 연구합니까. 연구는 머리가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철거를 해야합니다. 짐을 드러내야겠다. 머리에 든 것을 실행시키는 것은 몸입니다. 시험지를 받아보고 3번이네, 1번의 답은 3번이네 그 뭐가 찍어야하지요. 그게 몸입니다. 오십문제 나올 때는 답이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다 찍지를 못했습니다. 손이 없어서 못 찍으면 시험은 0점입니다. 머리 없는 몸은 문제가 몸 없는 머리도 아무것도 못하는거지요. 그래서 온전한 몸이 되는 겁니다. 사람이 개인도 그렇고 과정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머리신데 몸이 필요해서 목적을 정한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무 뿌리가 있고 주차장 새벽에 말했지요. 느티나무를 심어놨는데 자라고 보니까 쓸모가 없어서 잘라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자라올라옵니다. 나무는 가지 하나를 자르면 새로운 가지가 두 개가 올라옵니다. 압니까. 나무는 가지 자르면 그 가지에서 두 개가 새로 올라옵니다. 그거 다 자르면 4개 올라옵니다. 그러면 8개씩 올라옵니다. 그래서 나무모양 다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두 개가 나왔습니다. 네 개가 나왔습니다. 이번에 열 몇 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덮어놨습니다. 둥치는 그루터기 남아있지만 가지고 없으니까 모양이 흉합니다. 주차장에 집사님이 생각이 연락이 잘못되어서 나무를 잘랐는데 가지를 다 잘라놨습니다. 세상 보기 흉합니다. 그런데 오른쪽에 있는 가지는 제대로 잘라냈거든요. 그래서 오른쪽에 비교를 해보십시오.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아무리 뿌리가 좋고 나무가 좋아도 흉한 겁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몸이 부실하면 부실한 겁니다. 몸이 아무리 튼튼하고 좋아도 그러면 되는 것이지요. 몸은 뭐하는 거라고요. 몸은 머리를 나타내는겁니다. 그래서 기록되기를 다시 말하면 만물 안에서 만물과 떨어지지 않습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 그래서 교회는 마지막에 보면 충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근본, 출발 창세 전의 그리스도에서 출발해서 교회를 말하고 있고 충만이 결과입니다. 충만이 뭐냐, 가득 채운 겁니다. 콩이 담겨져 있습니다. 쌀자루 찌르면 쌀이 나오고 그렇게 검사를 하거든요. 콩에 가두던 자루는 어디가 나옵니까. 쌀이된 자루는 쌀만 나옵니다. 가스통에 가스를 충전시키면 가스입니다. 전기를 충전하면 전기입니다. 기름을 채우면 기름입니다.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면 하나님만 됩니다. 그게 교회고 성도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충만이라는 말은 그 가장 대표적인 말이 그 교회를 충만하게 하신 하나님의 충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과 거룩과 주권과 이런 것을 가득 들어있는게 교회입니다.
교회는 흔들면 흔들수록 하나님만 나오는 게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예수가 나오고 주님이 나오고 반대하는 정권 세력에 불로 지지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그래도 웃음이 안 떠나서 마지막에는 목을 잘라버렸답니다. 아마 그 얼굴도 웃음 밖에 안 나왔을겁니다. 그게 성자들의 생애입니다. 교회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모시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충만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내가 하나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성화고 구원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로 훑어보면 에덴 동산 교회입니다. 사람으로 바꾸면 아담과 하와로 그 장소에서 시대에서 아담이 첫 교회인겁니다. 에덴 동산 교회는 아담이 교회였다. 그리고 타락 후에는 개인적으로 생명으로 이어오기 때문에 그런 교회는 있어왔으나 타락 후에 교회가 노아의 방주 교회고 노아 후 자손들이 이어들어오면서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 계통으로 내려가면서 줄기로 가는 거지요. 아브라함 자손에서 이삭과 야곱 열 두 아들이 애굽에 들어가서 이런 역사를 많이 설명 드렸기 때문에 평소에 있어야합니다.
우리 모태신앙들이 복인 것은 설교 시간에 이런 성경 흐름을 많이 듣기 때문에 성경을 안 읽어도 윤곽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셉을 보내시고 요셉을 보내시고 애굽에서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되어서 그렇게 될려고 한 것입니다.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그 여정, 그 교회를 무슨 교회라고요. 출애굽해서 가나안까지 가는 것을 광야교회라고합니다. 성막을 만들어서 모셨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무너지는데 마지막에 솔로몬 출애굽한지 80년 만에 비로소 안정된 성전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고. 구약시대 끝나고 그렇게 되면서 성전이 되어진겁니다. 교회로 바뀌는 것이고. 이게 교회 역사 흐름이고 알지만은 교회와 예배당은 구분해야합니다. 교회는 예배당은 교리적으로 은밀하게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이지. 그래서 우리는 예배당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장소기에 조심하지만 50년대에 어떤 분은 파리채 들고 강단 위에 올라가서 설교했답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그렇게 경건했다고 합니다. 백 목사님이 인정하신 한국의 성자입니다.
예배당은 은밀하게 하나님을 믿는 그것이고 가정이 교회고 교회란 몇 가지가 되어야하지요,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받은 사람, 이 세 가지를 교회라고 합니다. 이 교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전, 하나님의 집, 말씀을 모신 곳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곳입니다. 알멩이로 네 번째 교회는 주님의 몸을 교회라고 합니다. 크게 세 번째 교회의 목적이 뭐냐 뭐하는 곳이냐 하나님을 모시는 곳입니다. 하나님 계신 곳 모시는 곳입니다. 사람이 있고 사람이 마음이 있고 마음 속에 하나님이 직접 관리하시는 양심이 있고 영이 있고 주님이 계시듯이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고 도성이 있고 궁전이 있듯이 사람도 그렇듯이 주님의 계신 것이 성전입니다. 순서적으로 맹종, 양처럼 복종, 종처럼, 순종, 일꾼처럼 더 잘하면 주님처럼. 주님을 따르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곳입니다. 생명의 존재입니다. 중생, 신앙이 자랍니다. 자라도 철도 없고 어린겁니다. 그 자라서 점점 10살 20살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그러는데 꺾어서 후계자가 되면 상속받는 게 되는 그게 교회입니다. 네 번째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이 몸이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이 속에 사랑이 들어있으면 부부가 되는 것이고,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알고 의미와 목적을 알고 교회가 되어서 잘 살고 예수님을 들고 이사야 54장에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했다. 교회를 가지고 살아서 된만큼 그 사람의 설교를 건설구원적으로 변화시키게 되는 겁니다. 교회로 살도록 애써야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52장
본문: 에베소서 1장 22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에수 없이 이 몸은 잠시도 못 사네 유재헌 목사님 찬송입니다. 예수 없이 이 몸은 잠시도 못 사네 그게 유재헌 목사님만 해당되는 게 아니고 다 해당되어야하는데 그런 느낌은 다 가져보시는지요, 주 동하면 나 동하고 주 정하면 나 정하네. 일보일보 주님으로 동행케 합소서.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고 해도 예수 떠난 심령은 사는 법이 없다. 교리를 아는 것은 중요하고 그 아는 교리를 자기 속에 자기를 주장하는 주관의 지식으로 담아 놓으면 그 지식이 자기를 지배하게 되면 그렇게 살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살지 못할 때 양심이 살아있지 못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야하는데 살지 못하는 그 생활이 반복이 되는 것이 양심이 죽어버립니다. 살아야하는데 살지못하면 양심이 찔러대는데 양심을 무시하고 살지 않으니까 그 양심이 다 무디어져서 묻혀져 버립니다. 그러면 희망이 없게 되는 그렇게 되는데.
그런데 예수 없이 이 몸은 잠시도 못 산다고 하는데 소망은 가지고 노력을 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교회의 근본, 교회의 근본은 언제부터 출발되어져있는가, 보이는 교회는 에덴 동산 거기서 출발합니다. 우리 구원의 근본이 교회의 출발입니다. 우리 교회의 근본은 자존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출발입니다. 하나님이 계셨고 하나님의 유일무일한 역사를 하셨고 그 목적에 완성 성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역사 세계에서 일반 사람들이 알도록 그렇게 넓게 하면, 교회가 가장 넓은 건데, 교회 위에 공회가 있고 그렇게 있는데 공회 위에는 뭐가 있습니까. 개인 교회, 가정 교회가 있고 그 위에 사회 교회가 있고, 공회가 위로 있고, 총공회가 있는데 그 위로 기독교가 있습니다. 사람 생각에는 가장 큰 범위, 기독교가 가장 큰 범위가 되는데 목적과 연결시키면 기독교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죠. 기독교는 교회인데 이걸 가지고 예수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간판을 가졌는데 교회가 되지 못하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것은 그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그러셨고 단 하나, 하나만 뜻을 정하셨고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게 교회를 정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 성취 완성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늘과 땅과 바다와 영계까지 다 지으셨고 6000년 세월을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찾아본다는 게 못 찾았는데 불교는 대략 몇 년즘 되었습니까. 3000년 됩니까. 유교도 그 정도 되었을련가요. 기독교는 2000년이다.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고 기독교가 교회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6000년 지금부터 전이고 그 너머로 말하면 역사 세계가 있기 전 시공 세계 창조 세계가 있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게 교회의 역사고 출발입니다. 이것을 알아야하는 이유가 세상 집안으로 말하면 족보를 말하는 거지요. 상놈집안, 노예집안은 족보가 없습니다. 우리 나라 성씨는 과거 가짜베기가 많다고 합니다. 하도 상놈으로 멸시받다가 모르는 곳에 가서 자리 잡고 살다보면 들은 것이 있으니까 사람 사귀게 되고 성씨가 어떻게 되는가. 무슨 김씨입니다. 박씨입니다. 이씨입니다. 그런데 안된대서 어떻게 만들어서 양반집안 만든게 많답니다.
뼈대 있는 집안, 잘난 집안 똑똑한 집안은 족보를 만듭니다. 우리 집안은 뿌리있는 집안입니다. 세상에서 소위 방귀 꽤나 뀌는 집안은 만들던 조작을 했던 족보를 가지고 있는 겁니다. 자기 집안의 근본을 가지고 있는거지요. 그리고 어려울 때 붙드는 힘이 될 수도 있고 세상 살아가는 자부심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래도 우리 이런 집안인데, 그런 것도 될 수 있는 것이고 교회에 근본을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우리들이 잘 모르고 믿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하지만 우리들의 교회의 역할이 에덴 동산부터고 올라가면 자존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 참 많이 어려워진다고 해야할까요 복잡한다고 해야할까요. 그래서 아는 것은 중요하고 그런 교리를 가지고 있을 때 체계적으로 가지고 있으면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믿는 믿음으로 그 지식이 자기 지배아는 지식이 될 수 있을 때가 되기도 합니다.
본문을 복습합니다. 또 만물을 하나씩 복습해봅시다. 만물은 다른 말로 말하면 무엇이 만물입니까. 피조물이라는 것은 모든 존재로 나눌 때 창조주와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나머지는 전부 피조물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이 피조물이냐, 백 목사님께서 젊었을 때 예수님의 인성인 피조물이라고 하니까 교회가 뒤집어진답니다. 장로님 한 사람이 그냥 나갈라 했다고 했던가요. 감히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인성을 피조물이라고, 그러면 창조주여야하는 건데 지극히 상식적인 것인데, 역사 통계 전통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붙들려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면 그것이 예수님을 못박아 죽이는 역할을 만들게 됩니다. 역사는 반복이 됩니다. 칼빈은 그 당시에 이단이었습니다. 루터도 그랬고. 그때 정통은 천주교입니다. 타락한 천주교. 칼빈은 개혁인데 그때는 이단입니다. 그때 천주교는 마녀 사냥으로 찍어버리면 황제도 절절맸습니다. 그래서 황제가 교황에게 무릎꿇고 빈 역사가 있죠. 그래서 신하들이 말을 듣습니까. 파문당해서 사람도 아니라고, 교황 앞에 가서 무릎 꿇고 빌었다고 하지요. 그게 그 당시 천주교입니다.
예수님 당시 전통은 바리새파들입니다. 그 정통들이 목박아 족였습니다. 삼분론 말하고 건설구원 말하니까 기름 준비 못한 열 처녀도 천국갔다고 하니까 정통 교단들이 죽여야한다고, 그게 예수님 못박고 옳은 길에서 탈선이 되지 않아야합니다. 우리 총공회 안에 믿는 것도 변해야하고 평생을 외쳐서 귀에 그렇게 들어도 꼭 그대로 답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세월 속에 그리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별 사람입니까. 아차하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만물은 피조물인데 하나님 외에 전부 다 통틀어서 말할 때 만물이라고 말합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 가장 밑인데 주님 발 아래 그 말은 주님이 걸어가신 평생을 통해서 걸어가게 해주신 대속 역사 아래 그 속에는 하나님의 자존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한 무한한 희생이 들어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구원이 들어있습니다. 그 대속 역사 속에는 영원한 하늘의 소망이 들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들었고 사람으로 인한 희생을 들었고 영원한 지옥을 건짐들었고 하나님 소망이 대속 역사 속에 들어있습니다. 천국가면 그 전부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후 천국 올라가서 날 구속하신, 52장이지요. 하늘나라 가면 환하게 드러납니다. 빛의 나라라서 다 아는 겁니다. 피조물이라서 그 높이를 다 알련지 모르겠으나 어둠이 없습니다. 환하게 드러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넓었던가 높았던가 그렇게 컸던가 백목사님에게 날지 모르겠습니다. 그 발아래 대속아래가 될 수 있습니다. 복종이 있고 강제가 힘에 의해서 눌리는 게 들어있으나 이때 복종은 눌리는 게 아니고 스스로 인정하는 겁니다. 그분의 역사를 인정하는 것이고 대속의 주님을 만물이 있고 그 위에 교회가 있습니다. 계급처럼 되어있는 거지요. 이 세상에는 공산주의자들은 평등한 사회를 만든다고 100년도 더 전부터 나와서 애를 쓰고 있는데 하나님이 안 되게 하신 세상을 만들려고하면 역행이 되는 거지요. 이 세상은 계급 없는 사회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차별이 더 많답니다.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모든 동물은 평등한데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하늘나라도 계급이 있고 무한합니다. 굉장히 있고 그 만물 위에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도 층층이 있습니다. 같은 교회가 아니겠지요. 교회도 많은 층이 있을 겁니다.
그 교회에 머리로 주님을 주셨다. 그러면 몸이다 그랬습니다. 몸 밖에 없는데 머리를 박았습니다. 머리없는 몸 아십니까. 머리가 없다는 말은 생각과 연구가 없다는 말입니다. 판단이 없다 그 말이 되는 겁니다. 지도가 없고 인도가 없고 안내가 없으면 안되는 겁니다. 자동차 운전사가 없고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으면 머리가 없게 됩니다. 목사는 껍데기고 반사 선생님 한 분이 하나님과 가깝고 영안이 밝아서 목사에게 감언하든 청문하든 반사 선생님의 뜻댈 운영이 되면 그 사람이 그리 됩니다. 역사에 이스라엘이 대제사장 엘리가 나이가 90이 되었습니다. 그 밑에 어린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대스승같은 엘리 제사장을 남겨놓고 사무엘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때는 머리가 사무엘이 되는 거지요. 그리고 전쟁나고 엘리 죽고 나서 그렇게 되는 거지요. 지금도 그런 역사가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만물은 머리로 주셨느니라.
온전한 한 몸이 되게 되어지는 거지요. 머리를 나타내는게 몸입니다. 이런 게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어야합니다. 몸은 머리로 나타낸 게 몸입니다. 이게 맞습니까. 예배당 지하실에 화장실을 새로 할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위치를 어떻게하고 구조를 어떻게하고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연구하지요. 누가 연구합니까. 연구는 머리가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철거를 해야합니다. 짐을 드러내야겠다. 머리에 든 것을 실행시키는 것은 몸입니다. 시험지를 받아보고 3번이네, 1번의 답은 3번이네 그 뭐가 찍어야하지요. 그게 몸입니다. 오십문제 나올 때는 답이 다 나왔습니다. 그런데 다 찍지를 못했습니다. 손이 없어서 못 찍으면 시험은 0점입니다. 머리 없는 몸은 문제가 몸 없는 머리도 아무것도 못하는거지요. 그래서 온전한 몸이 되는 겁니다. 사람이 개인도 그렇고 과정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은 머리신데 몸이 필요해서 목적을 정한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무 뿌리가 있고 주차장 새벽에 말했지요. 느티나무를 심어놨는데 자라고 보니까 쓸모가 없어서 잘라버렸습니다. 그런데 또 자라올라옵니다. 나무는 가지 하나를 자르면 새로운 가지가 두 개가 올라옵니다. 압니까. 나무는 가지 자르면 그 가지에서 두 개가 새로 올라옵니다. 그거 다 자르면 4개 올라옵니다. 그러면 8개씩 올라옵니다. 그래서 나무모양 다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두 개가 나왔습니다. 네 개가 나왔습니다. 이번에 열 몇 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덮어놨습니다. 둥치는 그루터기 남아있지만 가지고 없으니까 모양이 흉합니다. 주차장에 집사님이 생각이 연락이 잘못되어서 나무를 잘랐는데 가지를 다 잘라놨습니다. 세상 보기 흉합니다. 그런데 오른쪽에 있는 가지는 제대로 잘라냈거든요. 그래서 오른쪽에 비교를 해보십시오.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아무리 뿌리가 좋고 나무가 좋아도 흉한 겁니다.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몸이 부실하면 부실한 겁니다. 몸이 아무리 튼튼하고 좋아도 그러면 되는 것이지요. 몸은 뭐하는 거라고요. 몸은 머리를 나타내는겁니다. 그래서 기록되기를 다시 말하면 만물 안에서 만물과 떨어지지 않습니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 그래서 교회는 마지막에 보면 충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근본, 출발 창세 전의 그리스도에서 출발해서 교회를 말하고 있고 충만이 결과입니다. 충만이 뭐냐, 가득 채운 겁니다. 콩이 담겨져 있습니다. 쌀자루 찌르면 쌀이 나오고 그렇게 검사를 하거든요. 콩에 가두던 자루는 어디가 나옵니까. 쌀이된 자루는 쌀만 나옵니다. 가스통에 가스를 충전시키면 가스입니다. 전기를 충전하면 전기입니다. 기름을 채우면 기름입니다. 하나님으로 가득 채우면 하나님만 됩니다. 그게 교회고 성도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충만이라는 말은 그 가장 대표적인 말이 그 교회를 충만하게 하신 하나님의 충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과 거룩과 주권과 이런 것을 가득 들어있는게 교회입니다.
교회는 흔들면 흔들수록 하나님만 나오는 게 교회입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예수가 나오고 주님이 나오고 반대하는 정권 세력에 불로 지지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그래도 웃음이 안 떠나서 마지막에는 목을 잘라버렸답니다. 아마 그 얼굴도 웃음 밖에 안 나왔을겁니다. 그게 성자들의 생애입니다. 교회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모시면 그렇게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충만이 되는 것이고 그러면 내가 하나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성화고 구원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로 훑어보면 에덴 동산 교회입니다. 사람으로 바꾸면 아담과 하와로 그 장소에서 시대에서 아담이 첫 교회인겁니다. 에덴 동산 교회는 아담이 교회였다. 그리고 타락 후에는 개인적으로 생명으로 이어오기 때문에 그런 교회는 있어왔으나 타락 후에 교회가 노아의 방주 교회고 노아 후 자손들이 이어들어오면서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 계통으로 내려가면서 줄기로 가는 거지요. 아브라함 자손에서 이삭과 야곱 열 두 아들이 애굽에 들어가서 이런 역사를 많이 설명 드렸기 때문에 평소에 있어야합니다.
우리 모태신앙들이 복인 것은 설교 시간에 이런 성경 흐름을 많이 듣기 때문에 성경을 안 읽어도 윤곽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셉을 보내시고 요셉을 보내시고 애굽에서 생명의 은인이 된 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되어서 그렇게 될려고 한 것입니다. 출애굽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그 여정, 그 교회를 무슨 교회라고요. 출애굽해서 가나안까지 가는 것을 광야교회라고합니다. 성막을 만들어서 모셨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무너지는데 마지막에 솔로몬 출애굽한지 80년 만에 비로소 안정된 성전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고. 구약시대 끝나고 그렇게 되면서 성전이 되어진겁니다. 교회로 바뀌는 것이고. 이게 교회 역사 흐름이고 알지만은 교회와 예배당은 구분해야합니다. 교회는 예배당은 교리적으로 은밀하게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이지. 그래서 우리는 예배당을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장소기에 조심하지만 50년대에 어떤 분은 파리채 들고 강단 위에 올라가서 설교했답니다. 이해가 됩니까. 그런데 그렇게 경건했다고 합니다. 백 목사님이 인정하신 한국의 성자입니다.
예배당은 은밀하게 하나님을 믿는 그것이고 가정이 교회고 교회란 몇 가지가 되어야하지요,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받은 사람, 이 세 가지를 교회라고 합니다. 이 교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전, 하나님의 집, 말씀을 모신 곳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곳입니다. 알멩이로 네 번째 교회는 주님의 몸을 교회라고 합니다. 크게 세 번째 교회의 목적이 뭐냐 뭐하는 곳이냐 하나님을 모시는 곳입니다. 하나님 계신 곳 모시는 곳입니다. 사람이 있고 사람이 마음이 있고 마음 속에 하나님이 직접 관리하시는 양심이 있고 영이 있고 주님이 계시듯이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고 도성이 있고 궁전이 있듯이 사람도 그렇듯이 주님의 계신 것이 성전입니다. 순서적으로 맹종, 양처럼 복종, 종처럼, 순종, 일꾼처럼 더 잘하면 주님처럼. 주님을 따르는 곳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곳입니다. 생명의 존재입니다. 중생, 신앙이 자랍니다. 자라도 철도 없고 어린겁니다. 그 자라서 점점 10살 20살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그러는데 꺾어서 후계자가 되면 상속받는 게 되는 그게 교회입니다. 네 번째 교회라는 곳은 하나님이 몸이다.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이 속에 사랑이 들어있으면 부부가 되는 것이고,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 목적이다. 그래서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알고 의미와 목적을 알고 교회가 되어서 잘 살고 예수님을 들고 이사야 54장에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했다. 교회를 가지고 살아서 된만큼 그 사람의 설교를 건설구원적으로 변화시키게 되는 겁니다. 교회로 살도록 애써야합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