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7일 수밤
김동민2025-09-17조회 23추천 2
2025년 9월 17일 수밤
찬송: 176장, 177장
본문: 민수기 18장 2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참고하시고 본문에서 말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게서 약속의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아론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열 두 지파의 대표라고 했습니다. 아론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이르시되의 말은 말씀하시되의 말입니다. 계약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성경에 글로 기록되어서 우리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백 목사님의 설교가 타이핑을 해가지고 교정을 해서 설교록으로 나와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기록해서 타이핑해서 글로 만들어서 설교록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글로 기록해주셨습니다. 글인데 주인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소설이라든지 그런 글도 있는데 말로 하는 그런 글도 있습니다. 편지라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거리가 떨어져서 멀리 있어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직접 대면할 수가 없으니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게 편지입니다. 요즘은 편지를 주로 뭘로 합니까. 카톡으로 좀 길면 메일로 그렇게 보내지요. 카톡이 전부 뭐지요. 카톡은 말입니까 글입니까. 문자는 말입니까 글입니까. 글이지요. 글이 무슨 글입니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말씀하신 겁니다.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양심을 통했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기록이 되어있는데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예수님이 사람으로 말을 하니까 글로 썼습니다. 구약의 말들은 어떻게 했는지 밝은 분들은 아실텐데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아브라함의 청각에 울렸는데 양심을 통해 말씀하셨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청각으로 말씀하셨다면 아브라함만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면 아람 사람이니까 아브라함은 원래 아람사람입니다. 갈대아 사람입니다. 어디가 갈대아인지 아십니까. 바벨론입니다. 거기서 온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사람의 조상 아닌가,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첫 조상이죠. 그때부터 이스라엘 나라가 아브라함 자손부터 알려진거지 그 조상들은 이삭의 고향은 어딥니까. 이삭의 고향은 어디지요. 이삭의 고향은 가나안입니다. 야곱과 에서도 가나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셉의 아들들은 고향이 어딥니까. 애굽이 고향인데 이스라엘 사람이 없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하셨겠지요. 열 한 사도가 가롯 유다 빼고 오순절 성령 강림 때 그들은 유다 방언으로 말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각기 자기 지방 자기 나라 언어로 들었습니다. 성령의 방언의 능력이고 역사입니다. 제가 여기서 설교하는데 방언의 능력이 있다면 필리핀 사람들, 리칭 선생님 부모님 같은 분들이 있어도 들릴텐데 능력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해석을 하면은 한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사람마다 자기 처한 형편이 맞는데 각각 자기 형편에 해당하는 말로 그런 일들이 해결되어지는 게 방언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신령한 능력이고 그것도 반드시 되는 것이고 언어적으로도 한국 말로 하는데 한국말 모르는 외국사람이 해도 들려야 방언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아람사람이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소리를 들었는데 그 언어로 들렸을 수 있고 아브라함의 양심으로 들을 수도 있고.
아론에게 말씀하시리, 글과 기록된 글과 말이라는 것은 글을 말을 기록하면 뭐라고요, 글입니다. 8월 집회 때 재독을 하면서 텍스트를 글로 적어놨지요. 그러니까 시청각이 되기 때문에 잘 들어오는 겁니다. 과거 재독할 때 녹음을 들으면서 교재를 보면 시청이 되면서 들리는 게 되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냥 들었습니다. 그런데 힘들어서 교재를 만들어서 시청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설교를 자유롭게 못 듣지만 사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 설교는 녹화도 있고 녹음도 있습니다. 화면 테이프도 있고 녹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기록만이 아니고 음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의 주기도문 강의를 보면 굉장히 은혜로웠습니다. 말만 그런가 했는데 백목사님의 말씀 그대로 깊이가 딱 읽어보면 신본주의고 우리 공회 복음과 딱 같습니다. 못 느꼈는데 직접 읽어보니까 백 목사님 설교와 거의 그대롭니다.
신본주의고 전적 하나님 한 분 중심으로 설교 내용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음성은 없거든요. 주기도문 강의는 있는데 안타깝게 들을 수 없는 겁니다. 글은 있는데 음성은 없는겁니다. 실감의 차이라는게 차원이 다른 겁니다. 백 목사님이 안계시는데 영상이 남아있고 녹화가 남아있습니다. 계실 때와는 다르죠 가셨으니까 손 목사님은 더 일찍 가셨는데 그분의 음성도 있습니다. 사진만 남아있겠죠. 그러면 실감이 더 어렵습니다. 설교 자체가 귀하다 보니까 은혜가 되는 이야기는 하는데
아론에게 말씀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이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음성으로 했다고 보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아론에게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인데 우리에게는 음성이 아니고 글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글이 바로 음성으로 적어놓은 겁니다. 부모님의 편지 문자가 왔으면 부모님 보내신 글인데 하고싶은 말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하는 음성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고 글로 읽고 넘어갈 게 아는 것이지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일반적으로 말하면 뭐라고 합니까. 일반으로 말하면 말은 뭐지요. 수학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실감이 나고 초창기 은혜롭게 설교할 때는 이런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설교했습니다. 아론에게 이르시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 들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론에게 이르시되
아론은 제사장입니다. 아론에게 하신 말씀은 제사장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사장으로 살아갈 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으로 살 때 말씀입니다. 제사장으로 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제사장이므로 제사장이 하신 말씀 여러 말씀이 있는데 제사장의 무엇에 대한 말씀이지요. 첫째 제사장의 의미 두 번째 제사장의 세 가지 보배 세 번째 제사장의 성결 네 번째 제사장의 뭡니까, 큰 줄기로 첫 번째로 의미, 보배, 성결, 제사, 다섯 번째가 뭐였지요. 지도, 그리고 여섯 번째 분깃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분깃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때 그때가 분깃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제사장으로 살아왔는가, 제사장의 분깃이 이러한데 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계약하신 그것을 살아왔는가. 상관없이 살아왔는가 돌아볼 일입니다. 제사장은 분깃이 없고 기업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고 의지하고 내 몫은 세상에 두고 있는가. 전체적인 방향을 따라가겠습니다. 땅을 말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문답을 해야할 거 같아요. 이스라엘의 땅이 이때입니다. 가나안 땅, 지금 민수기에 기록할 이 시점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디서 살고 있습니까. 학생들 어디서 지내고 있나요, 민수기를 기록한 이 때 아론에게 말씀하실 때 그 장소가 뭡니까. 광야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광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땅이라고 하신 것은 기업으로 얻을 땅 분깃으로 얻은 땅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데 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을 때 열 두 지파를 분할해서 각지파마다 하나씩 떼어주는데 제사장 아론 지파는 없다 그 말입니다. 그걸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땅이라고 했으니까 그 가나안 땅이고 오늘 우리에게 가져오면 가나안은 믿는 사람들에게 어디라고 배웠습니까. 천국입니다. 천국이고, 출애굽에서부터 큰 줄기로 애굽은 세상입니다. 출애굽은 신앙 출발입니다. 세상에서 나와서 신앙생활을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홍해 바다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름을 불러서 물어보면 좋을텐데 자 같이 합니다. 홍해는 세례. 왜 세례입니까. 세례의 뜻이 뭔가요. 죽었다가 사는 겁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은 사는 겁니다. 홍해 바다에 가면 다 죽는데 하나님이 살려서 가는데 광야 생활 갑니다. 광야 생활은 교회 생활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강을 건넙니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천국입니다.
애굽은 무엇이라고요 세상, 출애굽은요 신앙 출발 홍해 바다는요. 세례 광야는 교회 생활, 요단강은 죽음 가나안은 천국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땅은 가나안 자손입니다. 오늘 이걸 우리에게 가져오면 가나안은 천국이라고 했으니까 기업과 분깃이 있으니까 우리에게 기업과 분깃이 있다는 뜻입니까.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분깃이 없다고 했습니다. 열 두 지파는 다 있는데 그런데 오늘은 우리대로 가져오면 가나안은 뭐라고요, 천국인데 천국의 제사장은 분깃이 없다. 그러면 말이 안되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의 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논리적으로 맞아야합니다. 믿는 사람의 천국이란 천국의 기업이란 믿는 사람의 하늘 나라의 영원한 기업, 어디서 마련하느냐, 어디서 마련합니까. 땅에서 마련합니다. 그리고 땅이라 그랬습니다. 땅의 반대는 하늘이지요. 하늘의 영원한 기업은 땅에서 마련하는데 그 땅을 해석하니까 세상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 땅에는 무엇이 가득 들어있다고요.
무엇이 가득가득 들어있습니까. 온갖 하늘의 보화가 가득 있습니다. 가져가면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이고 안 가져가도 아닌 것이 되는 것지요. 공부하는 세상 직장 가는 세상 가정이라는 세상 온갖 종류의 세상인데 하늘의 보화가 가득 들었는데 이걸 팽겨치고 세상에 푹 빠져살면 우리가 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땅에 기업이 없다 그 말은 이 세상에서 하늘에 것만 내 것이고 하나님만 너의 하나님이지 이 세상 자체 이 세상에는 자기 몫이 없다. 그렇게 살아야하는 걸 말하는 겁니다. 기업이 삶의 터전이라고 했지요. 일반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 단체를 기업이라고 합니다. 생산하고 유통하는 그래서 그런 조직 단체가 크면 대기업, 대기업 대기 전에 중견기업, 1000명 이상 되면 중견기업 정도 되겠죠. 대기업은 몇 명 이상입니까. 기업의 기 자가 꾀할 기 자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기업은 무슨 기자로요, 터, 기초, 그래서 성경의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그런 것은 없지 싶은데.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기업이란 그런 것이고 분깃이란 자기 몫입니다. 내 분량 내 것입니다. 제사장은 이 세상에 가나안 땅에 기업이 없고 분깃이 없는 겁니다.
믿는 세상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제사장 직으로 하는 교회 대표가 되는 교인들을 대신하는 대표인데 교회에서 한 사람이 나오면 되는 겁니다. 대표하는 그 일에 전념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직업을 가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 대표가 일반적으로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아야하는데 우리도 그런 절차는 있지만 실제로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병이 들어서 목회를 못하게 된다. 그러면 교인 중에서 한 분이 하면 되는 겁니다. 아무나 하면 인정이 안될 거니까 한 사람 대신 하면 되는 거지요. 목회자는 그리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말하자면은 다른 사람들이 못 하는 교인 전체를 대표하는 대신하는 것에 전념하기 때문에 목회자는 제사장이므로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 제사장도 사람인데 먹어야하고 입어야하고 자야하고 집이 있어야하고 옛날이니까 말도 타야하고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분깃인데 구약시대 말씀하신대로 기업도 없고 분깃이 없을 것이나 제사장 지파에게는 아무것도 안 줘야지요. 맞죠. 그래서 아무것도 안 줬습니다. 열 두 덩어리로 했고 레위 지파는 뺐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서 먹여 살리시겠죠. 내가 너의 기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유다 지파가 좀 떼줘라 시므온 지파가 좀 떼줘라. 다 주시거든요. 제사장의 것이 따로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할 때 가르치실 때 제사장들이 전념하나 제사장이면 각 지파에게서 성급과 제사장에게 떼서 주는데 이건 표면적으로 제사장 지파의 것입니다. 레위 지파의 것이고 그렇지만은 제사장의 것이 되면은 안되는 것지이요. 하나님의 것이니까, 제사장으로 있을 때 제사장 직분이 필요한 성읍입니다.
제사장직을 그만둔다면 성읍에서 나가야하고 내놔야죠. 표시로 먹고 살아야해서 주시지만은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아마 요즘 말하면 제사장 명의로 등기를 못하지 않았을까. 초창기에 교회가 개척할 때는 목사 이름으로 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자동차 몇 년 동안 제 이름으로 계약을 했거든요. 교회에서 돈은 다 내고. 소유권은 제 건데 교회거지요. 그러면 우리 자동차가 교회이름으로 나중에 법이 바뀌어서 다 되어있습니다. 재산 하나도 없습니다 하니까 제 이름으로 자동차가 세 대가 있는데요. 그게 제 것이 아니라 대표입니다. 쉽게 말하면 안 좋게 말하면 허수아비입니다. 좋게 말하면 대표는 높은 사람인데 실제 말하면 대표라는 것은 바지사장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대표가 진짜 대표일 수도 있고. 이건희 회장이 세상 떠날 때도 이재용 회장이 부회장으로 있다가 전부 바람막이 다 해놓고 회장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임원들 중에서 바지 임원으로 법적 책임을 주기 위해서 대표라는 사람은 다 짊어져야합니다. 그런데 그 대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대표 도장이 있는 겁니다. 대표일 뿐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성읍과 몫은 제사장 게 아닙니다. 그런데 목사가 교회가 내 거다 도둑놈입니다 그건. 정상적이면 그런 말 못합니다. 그래서 기업분깃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목사한테만 붙여놓을 게 아니고 우리가 모두 누구라고요, 나는 제사장 한 분 한 분 다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뭐가 없어야합니까. 자기 게 없어야합니다. 이렇게 실제 살기가 쉽습니까. 자기 거 없어야합니다. 자기 집도 자기 소유도 없어야합니다. 자기 이름으로 집도 있고 통장도 있고 그 재산 전부 내 겁니다 하면 도둑이다 불신자다 그럽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하는 게 십일조입니다. 그거 모르고 하면 돈만 내는 겁니다. 믿는 사람 이 세상에서 제사장 역할만 하는 건 목사만 그렇게 하듯이 믿는 사람은 세상 살아갈 때 어떤 것이든 내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직을 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주시는 겁니다.
우리 인식 자체가 이 세상은 내 것이 아니고 내 나라가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바꾸지 않으면 방향 전환하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은 게 됩니다.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끊어버리고 하나님으로 바꿔써라 이게 바로 제사장의 기업과 연결이 되는 겁니다. 기업도 분깃도 없습니다. 필요한 철학 뿐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고 제사장 직분에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립시다.
찬송: 176장, 177장
본문: 민수기 18장 20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참고하시고 본문에서 말씀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게서 약속의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아론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열 두 지파의 대표라고 했습니다. 아론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이르시되의 말은 말씀하시되의 말입니다. 계약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되. 성경에 글로 기록되어서 우리에게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백 목사님의 설교가 타이핑을 해가지고 교정을 해서 설교록으로 나와있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하신 그 말씀을 기록해서 타이핑해서 글로 만들어서 설교록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글로 기록해주셨습니다. 글인데 주인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소설이라든지 그런 글도 있는데 말로 하는 그런 글도 있습니다. 편지라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을 거리가 떨어져서 멀리 있어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직접 대면할 수가 없으니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게 편지입니다. 요즘은 편지를 주로 뭘로 합니까. 카톡으로 좀 길면 메일로 그렇게 보내지요. 카톡이 전부 뭐지요. 카톡은 말입니까 글입니까. 문자는 말입니까 글입니까. 글이지요. 글이 무슨 글입니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말씀하신 겁니다. 아론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양심을 통했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기록이 되어있는데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예수님이 사람으로 말을 하니까 글로 썼습니다. 구약의 말들은 어떻게 했는지 밝은 분들은 아실텐데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아브라함의 청각에 울렸는데 양심을 통해 말씀하셨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청각으로 말씀하셨다면 아브라함만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면 아람 사람이니까 아브라함은 원래 아람사람입니다. 갈대아 사람입니다. 어디가 갈대아인지 아십니까. 바벨론입니다. 거기서 온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라엘 사람의 조상 아닌가, 아브라함이 가나안의 첫 조상이죠. 그때부터 이스라엘 나라가 아브라함 자손부터 알려진거지 그 조상들은 이삭의 고향은 어딥니까. 이삭의 고향은 어디지요. 이삭의 고향은 가나안입니다. 야곱과 에서도 가나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요셉의 아들들은 고향이 어딥니까. 애굽이 고향인데 이스라엘 사람이 없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하셨겠지요. 열 한 사도가 가롯 유다 빼고 오순절 성령 강림 때 그들은 유다 방언으로 말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각기 자기 지방 자기 나라 언어로 들었습니다. 성령의 방언의 능력이고 역사입니다. 제가 여기서 설교하는데 방언의 능력이 있다면 필리핀 사람들, 리칭 선생님 부모님 같은 분들이 있어도 들릴텐데 능력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해석을 하면은 한 주제를 가지고 설교를 하는데 사람마다 자기 처한 형편이 맞는데 각각 자기 형편에 해당하는 말로 그런 일들이 해결되어지는 게 방언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신령한 능력이고 그것도 반드시 되는 것이고 언어적으로도 한국 말로 하는데 한국말 모르는 외국사람이 해도 들려야 방언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아람사람이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예를 들어서 하나님께서 소리를 들었는데 그 언어로 들렸을 수 있고 아브라함의 양심으로 들을 수도 있고.
아론에게 말씀하시리, 글과 기록된 글과 말이라는 것은 글을 말을 기록하면 뭐라고요, 글입니다. 8월 집회 때 재독을 하면서 텍스트를 글로 적어놨지요. 그러니까 시청각이 되기 때문에 잘 들어오는 겁니다. 과거 재독할 때 녹음을 들으면서 교재를 보면 시청이 되면서 들리는 게 되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냥 들었습니다. 그런데 힘들어서 교재를 만들어서 시청했습니다. 백 목사님은 설교를 자유롭게 못 듣지만 사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 목사님 설교는 녹화도 있고 녹음도 있습니다. 화면 테이프도 있고 녹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기록만이 아니고 음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의 주기도문 강의를 보면 굉장히 은혜로웠습니다. 말만 그런가 했는데 백목사님의 말씀 그대로 깊이가 딱 읽어보면 신본주의고 우리 공회 복음과 딱 같습니다. 못 느꼈는데 직접 읽어보니까 백 목사님 설교와 거의 그대롭니다.
신본주의고 전적 하나님 한 분 중심으로 설교 내용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음성은 없거든요. 주기도문 강의는 있는데 안타깝게 들을 수 없는 겁니다. 글은 있는데 음성은 없는겁니다. 실감의 차이라는게 차원이 다른 겁니다. 백 목사님이 안계시는데 영상이 남아있고 녹화가 남아있습니다. 계실 때와는 다르죠 가셨으니까 손 목사님은 더 일찍 가셨는데 그분의 음성도 있습니다. 사진만 남아있겠죠. 그러면 실감이 더 어렵습니다. 설교 자체가 귀하다 보니까 은혜가 되는 이야기는 하는데
아론에게 말씀하시되 하나님의 말씀이 이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음성으로 했다고 보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아론에게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인데 우리에게는 음성이 아니고 글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글이 바로 음성으로 적어놓은 겁니다. 부모님의 편지 문자가 왔으면 부모님 보내신 글인데 하고싶은 말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하는 음성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고 글로 읽고 넘어갈 게 아는 것이지요.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일반적으로 말하면 뭐라고 합니까. 일반으로 말하면 말은 뭐지요. 수학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실감이 나고 초창기 은혜롭게 설교할 때는 이런 말씀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렇게 설교했습니다. 아론에게 이르시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 들으면 참 좋겠습니다. 아론에게 이르시되
아론은 제사장입니다. 아론에게 하신 말씀은 제사장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사장으로 살아갈 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으로 살 때 말씀입니다. 제사장으로 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이 말씀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제사장이므로 제사장이 하신 말씀 여러 말씀이 있는데 제사장의 무엇에 대한 말씀이지요. 첫째 제사장의 의미 두 번째 제사장의 세 가지 보배 세 번째 제사장의 성결 네 번째 제사장의 뭡니까, 큰 줄기로 첫 번째로 의미, 보배, 성결, 제사, 다섯 번째가 뭐였지요. 지도, 그리고 여섯 번째 분깃에 대한 말씀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 분깃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때 그때가 분깃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제사장으로 살아왔는가, 제사장의 분깃이 이러한데 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계약하신 그것을 살아왔는가. 상관없이 살아왔는가 돌아볼 일입니다. 제사장은 분깃이 없고 기업이 없습니다.
우리는 믿고 의지하고 내 몫은 세상에 두고 있는가. 전체적인 방향을 따라가겠습니다. 땅을 말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문답을 해야할 거 같아요. 이스라엘의 땅이 이때입니다. 가나안 땅, 지금 민수기에 기록할 이 시점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디서 살고 있습니까. 학생들 어디서 지내고 있나요, 민수기를 기록한 이 때 아론에게 말씀하실 때 그 장소가 뭡니까. 광야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광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땅이라고 하신 것은 기업으로 얻을 땅 분깃으로 얻은 땅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데 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았을 때 열 두 지파를 분할해서 각지파마다 하나씩 떼어주는데 제사장 아론 지파는 없다 그 말입니다. 그걸 말씀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땅이라고 했으니까 그 가나안 땅이고 오늘 우리에게 가져오면 가나안은 믿는 사람들에게 어디라고 배웠습니까. 천국입니다. 천국이고, 출애굽에서부터 큰 줄기로 애굽은 세상입니다. 출애굽은 신앙 출발입니다. 세상에서 나와서 신앙생활을 출애굽이라고 합니다. 홍해 바다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름을 불러서 물어보면 좋을텐데 자 같이 합니다. 홍해는 세례. 왜 세례입니까. 세례의 뜻이 뭔가요. 죽었다가 사는 겁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은 사는 겁니다. 홍해 바다에 가면 다 죽는데 하나님이 살려서 가는데 광야 생활 갑니다. 광야 생활은 교회 생활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무슨 강을 건넙니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천국입니다.
애굽은 무엇이라고요 세상, 출애굽은요 신앙 출발 홍해 바다는요. 세례 광야는 교회 생활, 요단강은 죽음 가나안은 천국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땅은 가나안 자손입니다. 오늘 이걸 우리에게 가져오면 가나안은 천국이라고 했으니까 기업과 분깃이 있으니까 우리에게 기업과 분깃이 있다는 뜻입니까.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의 제사장과 분깃이 없다고 했습니다. 열 두 지파는 다 있는데 그런데 오늘은 우리대로 가져오면 가나안은 뭐라고요, 천국인데 천국의 제사장은 분깃이 없다. 그러면 말이 안되지요.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의 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논리적으로 맞아야합니다. 믿는 사람의 천국이란 천국의 기업이란 믿는 사람의 하늘 나라의 영원한 기업, 어디서 마련하느냐, 어디서 마련합니까. 땅에서 마련합니다. 그리고 땅이라 그랬습니다. 땅의 반대는 하늘이지요. 하늘의 영원한 기업은 땅에서 마련하는데 그 땅을 해석하니까 세상을 말합니다. 믿는 사람이 살아가는 이 세상 땅에는 무엇이 가득 들어있다고요.
무엇이 가득가득 들어있습니까. 온갖 하늘의 보화가 가득 있습니다. 가져가면 자기의 것이 되는 것이고 안 가져가도 아닌 것이 되는 것지요. 공부하는 세상 직장 가는 세상 가정이라는 세상 온갖 종류의 세상인데 하늘의 보화가 가득 들었는데 이걸 팽겨치고 세상에 푹 빠져살면 우리가 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땅에 기업이 없다 그 말은 이 세상에서 하늘에 것만 내 것이고 하나님만 너의 하나님이지 이 세상 자체 이 세상에는 자기 몫이 없다. 그렇게 살아야하는 걸 말하는 겁니다. 기업이 삶의 터전이라고 했지요. 일반적으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 단체를 기업이라고 합니다. 생산하고 유통하는 그래서 그런 조직 단체가 크면 대기업, 대기업 대기 전에 중견기업, 1000명 이상 되면 중견기업 정도 되겠죠. 대기업은 몇 명 이상입니까. 기업의 기 자가 꾀할 기 자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기업은 무슨 기자로요, 터, 기초, 그래서 성경의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그런 것은 없지 싶은데.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기업이란 그런 것이고 분깃이란 자기 몫입니다. 내 분량 내 것입니다. 제사장은 이 세상에 가나안 땅에 기업이 없고 분깃이 없는 겁니다.
믿는 세상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제사장 직으로 하는 교회 대표가 되는 교인들을 대신하는 대표인데 교회에서 한 사람이 나오면 되는 겁니다. 대표하는 그 일에 전념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직업을 가질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 대표가 일반적으로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아야하는데 우리도 그런 절차는 있지만 실제로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병이 들어서 목회를 못하게 된다. 그러면 교인 중에서 한 분이 하면 되는 겁니다. 아무나 하면 인정이 안될 거니까 한 사람 대신 하면 되는 거지요. 목회자는 그리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말하자면은 다른 사람들이 못 하는 교인 전체를 대표하는 대신하는 것에 전념하기 때문에 목회자는 제사장이므로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겁니다.
그러면 제사장도 사람인데 먹어야하고 입어야하고 자야하고 집이 있어야하고 옛날이니까 말도 타야하고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분깃인데 구약시대 말씀하신대로 기업도 없고 분깃이 없을 것이나 제사장 지파에게는 아무것도 안 줘야지요. 맞죠. 그래서 아무것도 안 줬습니다. 열 두 덩어리로 했고 레위 지파는 뺐습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서 먹여 살리시겠죠. 내가 너의 기업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유다 지파가 좀 떼줘라 시므온 지파가 좀 떼줘라. 다 주시거든요. 제사장의 것이 따로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기업이라고 할 때 가르치실 때 제사장들이 전념하나 제사장이면 각 지파에게서 성급과 제사장에게 떼서 주는데 이건 표면적으로 제사장 지파의 것입니다. 레위 지파의 것이고 그렇지만은 제사장의 것이 되면은 안되는 것지이요. 하나님의 것이니까, 제사장으로 있을 때 제사장 직분이 필요한 성읍입니다.
제사장직을 그만둔다면 성읍에서 나가야하고 내놔야죠. 표시로 먹고 살아야해서 주시지만은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아마 요즘 말하면 제사장 명의로 등기를 못하지 않았을까. 초창기에 교회가 개척할 때는 목사 이름으로 하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자동차 몇 년 동안 제 이름으로 계약을 했거든요. 교회에서 돈은 다 내고. 소유권은 제 건데 교회거지요. 그러면 우리 자동차가 교회이름으로 나중에 법이 바뀌어서 다 되어있습니다. 재산 하나도 없습니다 하니까 제 이름으로 자동차가 세 대가 있는데요. 그게 제 것이 아니라 대표입니다. 쉽게 말하면 안 좋게 말하면 허수아비입니다. 좋게 말하면 대표는 높은 사람인데 실제 말하면 대표라는 것은 바지사장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대표가 진짜 대표일 수도 있고. 이건희 회장이 세상 떠날 때도 이재용 회장이 부회장으로 있다가 전부 바람막이 다 해놓고 회장으로 올라가는 겁니다.
임원들 중에서 바지 임원으로 법적 책임을 주기 위해서 대표라는 사람은 다 짊어져야합니다. 그런데 그 대표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대표 도장이 있는 겁니다. 대표일 뿐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성읍과 몫은 제사장 게 아닙니다. 그런데 목사가 교회가 내 거다 도둑놈입니다 그건. 정상적이면 그런 말 못합니다. 그래서 기업분깃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목사한테만 붙여놓을 게 아니고 우리가 모두 누구라고요, 나는 제사장 한 분 한 분 다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뭐가 없어야합니까. 자기 게 없어야합니다. 이렇게 실제 살기가 쉽습니까. 자기 거 없어야합니다. 자기 집도 자기 소유도 없어야합니다. 자기 이름으로 집도 있고 통장도 있고 그 재산 전부 내 겁니다 하면 도둑이다 불신자다 그럽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하는 게 십일조입니다. 그거 모르고 하면 돈만 내는 겁니다. 믿는 사람 이 세상에서 제사장 역할만 하는 건 목사만 그렇게 하듯이 믿는 사람은 세상 살아갈 때 어떤 것이든 내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사장 직을 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주시는 겁니다.
우리 인식 자체가 이 세상은 내 것이 아니고 내 나라가 아니다. 이것은 아니다. 바꾸지 않으면 방향 전환하지 않으면 출발하지 않은 게 됩니다.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끊어버리고 하나님으로 바꿔써라 이게 바로 제사장의 기업과 연결이 되는 겁니다. 기업도 분깃도 없습니다. 필요한 철학 뿐입니다. 하나님의 것이고 제사장 직분에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