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3일 수밤
김동민2025-09-03조회 39추천 5
2025년 9월 3일 수밤
찬송: 46장
본문: 레위기 1장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1절 2절 3절까지 월화수 복습을 했습니다. 1절은 하나님 전체를 두고 속죄를 계약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 하실 말씀을 모세를 부르셔서 하셨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개인개인에게 한 말씀으로 보면 신앙 양심의 하나로 찾아가셔서 말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거든, 제물을 드리는데 예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원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지을 때 예물을 받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받는 자들에게서, 좋아서 내는 것입니다. 좋아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즐거움이라는 것은 건강한 사람들은 웃다보면 건강해진다고 그러는데 진정한 웃음이라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라, 왜 즐거우냐 내 물질을 바치는데 내놓는데 즐거울까 서울대학교 의대 시험을 쳐 합격을 했습니다. 등록금을 내야합니다. 그런데 등록금을 내니까 은행 통장에 있는 돈이 나가야합니다. 그럴 때 자녀가 의대 서울대 합격 냈는데 억지로 내겠습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내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나라 모르기는 몰라도 우리나라 학부모 치고 서울대 의대나 법대에 합격했는데 그걸 자랑스럽게 낼 겁니다.
어제 선생님께서 공사를 하셨는데 땀흘려하셨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하셨을 겁니다. 정성도 예물이고 시간도 예물이고 예물이 되는 거지요. 제물도 제물이라는 것은 잡아서 죽이는 건데 어떻게 즐거운 마음이 될까, 즐거울 때 주님 오시는 마음 될 때 하는 겁니다. 이 땅에 오실 때 즐거운 마음으로 오셨고 대속으로 사실 때 즐겁게 사셨고 십자가 고난 앞으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내가 안 마셔도 된다면 지나가게 하소서, 그런데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너무 힘들어서 피한 거 아니냐 그런게 아니고 대속의 역사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혹시라도 하나님 아버지 보실 때 주님보다 그 일을 감당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맡기시고 제가 갈 거면 아버지께서 도와주셔야합니다. 그런 기도의 피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도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가 아니라 어찌하여 영광스러운 것으로 하셨나이까 환희의 찬 찬송이라고 그렇가 해석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예물입니다. 아직 수준은 못 미쳐서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나님께 징계받을까 싶어서 죄를 안지으려고 노력하지만은 올라가면 하나님과 교제가 되고 십자가 가장 좋기 때문에 지는 것이고 주님과 사귀는 교제가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게 예물이 되는 겁니다. 너희든지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거든 제사를 드리려면 오늘로 말하려면 무엇을하려거든, 너희 중에 누구에게든지 예물을 드리려거든. 오늘로 말하면 회개를 하려거든. 자기를 잡아넣는 게 회개입니다. 우리들이 전부 예비된 생축이고 그 중에서 소의 자세로 양의 자세로 충성으로 순종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 소의 번죄이면 자기 자신을 담아서 성령에게 붙들리는 그런 사람. 자기에게 잡으려면 흠없는 수컷으로 이번 공과 제목이지요. 제사고 귀한 것으로 그렇게 되어있는데 좋기는 제일 귀한 것으로 할려다가 귀한 것도 괜찮겠다 해서 했는데 제일 귀한 것으로 흠없는 수컷으로 귀한 것으로. 이것으로 양면을 생각해봤습니다.
어떤 걸 말한 것일까 바쳐 드릴 때는 필요한 겁니다. 나로써는 가장 제일 귀한 것, 물질도 가장 귀한 것 시간도 가장 귀한 것 가장 귀한 것으로 바쳐드리고 이걸 잡아드려야하는데 흠 없는 수컷인데 잡아드려야하니까 내게 있는 요소 중에서 잡아야할 그게 무엇인가. 잡는다는 그 말은 다른 말로 뭐지요. 죽인다는 말입니다. 내게 있는 요소 중에서 잡아 죽여야할 것은 귀한 것인데 잡아죽인다. 말씀에 맞는 겁니까 틀린 겁니까. 말씀으로 된 것을 잡습니까 안 된 것을 잡는 것입니까. 모든 구원의 실상은 현실에서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밤 기도할 때도 주일과 평일이 같게 해주옵소서. 주일과 평일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레위 지파를 따로 뗐습니다. 그 레위 지파는 특별한 지파가 되었습니다. 전했기 때문에 그 레위 지파를 분리시켰으니까 별종이고 특수한 사람이고 이스라엘 지파와 끊어진 사람입니까. 그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레위 지파의 모든 직책은 열 두 지파의 대표고 대신이라고 했습니다. 열 두 지파를 대신하는 것이 레위 지파다. 물질에 십일조를 냅니다. 한 달에 백 만워 벌었습니다. 십일조로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드리고 나머지는 제 겁니다. 그럽니까. 그러면 십일조가 틀린겁니다. 나와 전부가 다 주님의 것인데 그걸 알고 믿는 표로 드리는 게 십분지 일이고 주의 뜻대로 되겠나이다. 그게 십일조입니다. 에덴 동산 선악과는 너가 다스리지만은 너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에게 연결해준 대신 다스리는 거다. 그걸 따먹으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겁니다.
주일은 모든 날이 다 주일입니다. 모든 날이 다 주일인데 모든 날이 다 주일인데 하루를 딱 떼어서 이 날은 주의 날입니다. 모든 날이 주의 날임을 지키는 겁니다. 같은 원리로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주일과 평일이 차이가 없습니다. 백 목사님은, 주일은 예배드리고 설교하시고 평일에는 예배드리고 설교하시고 그럽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매일이 전부 주일입니다. 매 순간이 주님 앞에 사는 것이고 그게 정상적인 생활입니다. 우리 모든 현실 중에서 모든 생활은 전부 다 하나님 앞에 사는 생활입니다. 이렇게 살아야하는데 자라서 같아야하고 목사가 강단에 섰을 때 자세와 설교내용과 가정생활이 같아야지 정상입니다. 설교 강단에서는 천사고 가족으로 돌아가면 엉망이고 이중이 되는 거지요. 설교 은혜보다 능력보다 하나가 되었다는 거지요.
설교하는 그 설교와 자신이 같이 될 때 그 말씀의 능력이 함께해서 변화로 될 겁니다. 그런 설교라서 변화가 됩니다. 이상하게 변화됩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변해서 오니까 어디 있든지 지금도 변화가 됩니다. 능력입니다. 회막 문에서 연랍하시도록.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셔야하니까 준비되어있어야하고 과정있어야하고 절차 있어야하고 다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자기 형편따라 입장따라 예배도 주일 하는 것도 예배시간도 인간들에게 맞춰서 읽기 편하도록 성경 읽으실 때 세로쓰기 읽습니까 가로쓰기로 읽습니까. 그런데 백 목사님께서 사람 눈을 성경에 맞춰라. 그래서 성경은 줄줄줄 읽는 게 아닙니다. 한 자 한 자 읽는거지.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압니까.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글씨를 쓸 때 특히 남학생들 글씨 날아가지요. 글씨는 천천히 반듯하게 또박또박 쓰는 겁니다. 여학생들도, 또박또박 쓰는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글씨를 자꾸 쓰다보면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쓰면은 평생 악필이 됩니다. 저는 필기한다고 글씨를 빨리쓰게 한다고 반듯하게는 못 씁니다.
한창 할 때 공부는 많이 못하고 필기할 때 천천히 반듯하게 또박또박, 그게 늦어도 반듯하게 하는 겁니다. 대기 만성이라, 또박또박 해나가는 것이고 가로쓰기보다 세로쓰기가 더 낫습니다. 요즘에 공부하면 만화로 배운다고 하는데 늦어도 원칙대로, 원칙이 가장 빠르다고 합니다. 기본대로 하는 게 가장 빠르다. 회막 문에서 여호와와 함께 하심으로 4절 제사 절차 진행입니다. 안수합니다. 우리 세례받을 때 안수하지요. 목사 장로 할 때 안수합니다. 안수라는 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책임을 맡기는 겁니다. 목사직을 맡기고 장로직을 맡기고 세례 안수는 무서운겁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 죽으심을 따라가라, 그게 세례입니다. 무서운 겁니다. 평생을 주와 같이 살다가 죽는 거다. 깊이 들어가면 그렇습니다.
짐승에게 안수하는 것은 네 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겁니다. 네 죄를 네가 죽어야하는데 끝나버리니까 짐승이 대신 죽는 것이고 그 짐승이기 때문에 안수하는 것은 구약시대 죄를 맡기는 것이고 장차 오실 구주 예수님에게 내 죄를 떠맡기는 게 안수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안수는 어떻게 되나요. 오늘로 가져오면 안수는 어떤 게 가져오십니까. 구약의 안수는 오실 구주 메시아를 소망하고 짐승의 머리 안수해서 대속으로 하시는 겁니다. 지나가는 과거가 완성되었습니다. 주님 대속을 믿는 거지요. 믿음으로 자기 것을 삼는 겁니다. 보증으로 삼는 겁니다. 근거로 삼는 겁니다. 그래서 삼는 겁니다. 내 죄를 대신 죽어주심을 믿습니다. 그게 안수가 되는 겁니다. 믿으면 주의 대속은 안수가 되는 것입니다. 안수하면 속죄가 된다 짐승에게 대신 죽으니까 속죄가 된다. 주님이 대신 죽으신다. 주님 대속을 믿음으로,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모르고 지은 죄 약해서 지은 죄 이런 것은 주님 피에 고하며 사함을 받습니다. 사함받음으로 형벌은 없어집니다. 동시에 사함 받는 것은 앞으로 죄를 짓지 않는 그런 근거를 가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안수하는 겁니다.
잡는 것, 제물을 잡는 겁니다. 그 속에서 제사라는 것은 회개라고 했기 때문에 내가 회개할 때 뭐냐 이 순간 내가 제사를 드리는데 예물로 바쳐 드리는데 이게 뭐냐, 자기에게 회개할 그 요소입니다. 일단 잡아죽이는 겁니다. 세 번째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누구지요. 제물이 있고 제사장이 있고 오늘로 말하면 제사 지내는 사람도 나고 제물도 나고 제사장도 내가 되는 겁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그렇게 내가 내 속에 아론의 제사장을 잡으시는 것은 제사장의 자격으로 제사장의 자세로 그런 의미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제사장의 자세로.
세 번째지요. 짐승의 피입니다. 짐승의 피인데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만은 피를 뿌린다, 그것은 공과대로 가르치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설명한 것은 피를 사면에 뿌리라는 것은 주님 대속에 피를 의지해서 힘입어서 공로를 생각하는 겁니다. 단사면이라는 것은 자기 살아가는 현실에서 회개를 할려면 핏공로 없이는 안되기 때문에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하는 것인데 핏공로하는 것이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님 대속 없이는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그러하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 대속을 빼놓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6절 번제의 가죽을 벗기고 껍데기 자기에게 익어지고 만들어진 자기 자신의 것입니다. 그 겉모습은 자기를 보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껍데기 가죽은 약합니다. 손도 가냐르고, 두꺼워집니다. 세월 속에 그렇게 만들어놓은 자기가 되는 겁니다. 그 짐승을 보호하는 건데 평생을 살아서 만든 자기라는 그 습성 생활모습, 행동, 그게 사람을 보호하게 되는 게 그게 잘못된 그런 게 있습니다.
교통 사고 나면은 뭐부터 합니까. 사람들이 큰 소리부터 먼저합니다. 자기를 보호하는 겁니다. 목소리 크게 높여야하고 살아온 방법을 만들어야하고 익혀야하고 그게 잘못된 껍데기가 속에서부터 만들어진 그 생활의 것들은 탈피하고 벗어내야한다고 합니다. 말씀을 떠나서 된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생활방식 직장도 될 수 있습니다. 탈피해야한다, 각을 뜨고 자기 자신을 요소요소 해야합니다. 자기의 회개할 부분을 두고 하나하나 따지는 게 무서운 겁니다. 여섯 번째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 자리로 돌아가서 단 위에 불을 두고, 불은 태우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절대적인 요소가 불이지요. 불의 태우는 것이 번제이기 때문에, 성령의 힘입어서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버려놓고, 이거 설명을 드렸는데 불 위에 나무를 버려놓는 것은 왜 그런다고 했지요. 단 위에 나무를 왜 버려놓는다고요, 나무 사이사이에 공기가 들어가서 나무가 잘 탈 수 있도록. 공기 안 들어가면 불은 안 붙습니다.
머리와 기름을 잡은 요소요소 하나하나와 기름 값진 것 기름을 나무위에 버려놓고 태우려고 가장 중요한 것하고 값진 기름을 나무위에 불 위에 놓는 겁니다. 그리고 내장과 그런 것들을 씻을 것이고 제사장은 전부를 단 위에서 불태운다고 했습니다. 순서적으로 간단하게 짚어나가면 첫째, 안수합니다. 두 번째 잡습니다. 세 번째, 피를 단사면에 뿌립니다. 가죽을 벗깁니다. 조각조각 각을 뜹니다. 단 위에 불을 붙입니다. 불위에 나무를 버려놓습니다. 각과 머리와 기름을 뿌려놓습니다. 내장과 정강이는 씻습니다. 태웁니다. 성령의 자신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실제 적용도 어렵고 그렇지만은 이렇게 현실을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가시겠습니다.
찬송: 46장
본문: 레위기 1장 4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1절 2절 3절까지 월화수 복습을 했습니다. 1절은 하나님 전체를 두고 속죄를 계약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 하실 말씀을 모세를 부르셔서 하셨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개인개인에게 한 말씀으로 보면 신앙 양심의 하나로 찾아가셔서 말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거든, 제물을 드리는데 예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원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지을 때 예물을 받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받는 자들에게서, 좋아서 내는 것입니다. 좋아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즐거움이라는 것은 건강한 사람들은 웃다보면 건강해진다고 그러는데 진정한 웃음이라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근거가 있어야 되는 겁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라, 왜 즐거우냐 내 물질을 바치는데 내놓는데 즐거울까 서울대학교 의대 시험을 쳐 합격을 했습니다. 등록금을 내야합니다. 그런데 등록금을 내니까 은행 통장에 있는 돈이 나가야합니다. 그럴 때 자녀가 의대 서울대 합격 냈는데 억지로 내겠습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내겠습니까. 아마도 우리나라 모르기는 몰라도 우리나라 학부모 치고 서울대 의대나 법대에 합격했는데 그걸 자랑스럽게 낼 겁니다.
어제 선생님께서 공사를 하셨는데 땀흘려하셨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하셨을 겁니다. 정성도 예물이고 시간도 예물이고 예물이 되는 거지요. 제물도 제물이라는 것은 잡아서 죽이는 건데 어떻게 즐거운 마음이 될까, 즐거울 때 주님 오시는 마음 될 때 하는 겁니다. 이 땅에 오실 때 즐거운 마음으로 오셨고 대속으로 사실 때 즐겁게 사셨고 십자가 고난 앞으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내가 안 마셔도 된다면 지나가게 하소서, 그런데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너무 힘들어서 피한 거 아니냐 그런게 아니고 대속의 역사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혹시라도 하나님 아버지 보실 때 주님보다 그 일을 감당할 일이 있으면 그에게 맡기시고 제가 갈 거면 아버지께서 도와주셔야합니다. 그런 기도의 피하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 못박혀 죽으실 때도 어찌하여 버리시나이까가 아니라 어찌하여 영광스러운 것으로 하셨나이까 환희의 찬 찬송이라고 그렇가 해석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예물입니다. 아직 수준은 못 미쳐서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나님께 징계받을까 싶어서 죄를 안지으려고 노력하지만은 올라가면 하나님과 교제가 되고 십자가 가장 좋기 때문에 지는 것이고 주님과 사귀는 교제가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게 예물이 되는 겁니다. 너희든지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거든 제사를 드리려면 오늘로 말하려면 무엇을하려거든, 너희 중에 누구에게든지 예물을 드리려거든. 오늘로 말하면 회개를 하려거든. 자기를 잡아넣는 게 회개입니다. 우리들이 전부 예비된 생축이고 그 중에서 소의 자세로 양의 자세로 충성으로 순종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 소의 번죄이면 자기 자신을 담아서 성령에게 붙들리는 그런 사람. 자기에게 잡으려면 흠없는 수컷으로 이번 공과 제목이지요. 제사고 귀한 것으로 그렇게 되어있는데 좋기는 제일 귀한 것으로 할려다가 귀한 것도 괜찮겠다 해서 했는데 제일 귀한 것으로 흠없는 수컷으로 귀한 것으로. 이것으로 양면을 생각해봤습니다.
어떤 걸 말한 것일까 바쳐 드릴 때는 필요한 겁니다. 나로써는 가장 제일 귀한 것, 물질도 가장 귀한 것 시간도 가장 귀한 것 가장 귀한 것으로 바쳐드리고 이걸 잡아드려야하는데 흠 없는 수컷인데 잡아드려야하니까 내게 있는 요소 중에서 잡아야할 그게 무엇인가. 잡는다는 그 말은 다른 말로 뭐지요. 죽인다는 말입니다. 내게 있는 요소 중에서 잡아 죽여야할 것은 귀한 것인데 잡아죽인다. 말씀에 맞는 겁니까 틀린 겁니까. 말씀으로 된 것을 잡습니까 안 된 것을 잡는 것입니까. 모든 구원의 실상은 현실에서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밤 기도할 때도 주일과 평일이 같게 해주옵소서. 주일과 평일이 같습니까 다릅니까.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레위 지파를 따로 뗐습니다. 그 레위 지파는 특별한 지파가 되었습니다. 전했기 때문에 그 레위 지파를 분리시켰으니까 별종이고 특수한 사람이고 이스라엘 지파와 끊어진 사람입니까. 그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레위 지파의 모든 직책은 열 두 지파의 대표고 대신이라고 했습니다. 열 두 지파를 대신하는 것이 레위 지파다. 물질에 십일조를 냅니다. 한 달에 백 만워 벌었습니다. 십일조로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니까 드리고 나머지는 제 겁니다. 그럽니까. 그러면 십일조가 틀린겁니다. 나와 전부가 다 주님의 것인데 그걸 알고 믿는 표로 드리는 게 십분지 일이고 주의 뜻대로 되겠나이다. 그게 십일조입니다. 에덴 동산 선악과는 너가 다스리지만은 너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에게 연결해준 대신 다스리는 거다. 그걸 따먹으면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겁니다.
주일은 모든 날이 다 주일입니다. 모든 날이 다 주일인데 모든 날이 다 주일인데 하루를 딱 떼어서 이 날은 주의 날입니다. 모든 날이 주의 날임을 지키는 겁니다. 같은 원리로 이 모든 것이 전부 다 주일과 평일이 차이가 없습니다. 백 목사님은, 주일은 예배드리고 설교하시고 평일에는 예배드리고 설교하시고 그럽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매일이 전부 주일입니다. 매 순간이 주님 앞에 사는 것이고 그게 정상적인 생활입니다. 우리 모든 현실 중에서 모든 생활은 전부 다 하나님 앞에 사는 생활입니다. 이렇게 살아야하는데 자라서 같아야하고 목사가 강단에 섰을 때 자세와 설교내용과 가정생활이 같아야지 정상입니다. 설교 강단에서는 천사고 가족으로 돌아가면 엉망이고 이중이 되는 거지요. 설교 은혜보다 능력보다 하나가 되었다는 거지요.
설교하는 그 설교와 자신이 같이 될 때 그 말씀의 능력이 함께해서 변화로 될 겁니다. 그런 설교라서 변화가 됩니다. 이상하게 변화됩니다. 말씀의 사람으로 변해서 오니까 어디 있든지 지금도 변화가 됩니다. 능력입니다. 회막 문에서 연랍하시도록.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셔야하니까 준비되어있어야하고 과정있어야하고 절차 있어야하고 다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자기 형편따라 입장따라 예배도 주일 하는 것도 예배시간도 인간들에게 맞춰서 읽기 편하도록 성경 읽으실 때 세로쓰기 읽습니까 가로쓰기로 읽습니까. 그런데 백 목사님께서 사람 눈을 성경에 맞춰라. 그래서 성경은 줄줄줄 읽는 게 아닙니다. 한 자 한 자 읽는거지.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압니까.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글씨를 쓸 때 특히 남학생들 글씨 날아가지요. 글씨는 천천히 반듯하게 또박또박 쓰는 겁니다. 여학생들도, 또박또박 쓰는 겁니다. 그러면 나중에 글씨를 자꾸 쓰다보면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쓰면은 평생 악필이 됩니다. 저는 필기한다고 글씨를 빨리쓰게 한다고 반듯하게는 못 씁니다.
한창 할 때 공부는 많이 못하고 필기할 때 천천히 반듯하게 또박또박, 그게 늦어도 반듯하게 하는 겁니다. 대기 만성이라, 또박또박 해나가는 것이고 가로쓰기보다 세로쓰기가 더 낫습니다. 요즘에 공부하면 만화로 배운다고 하는데 늦어도 원칙대로, 원칙이 가장 빠르다고 합니다. 기본대로 하는 게 가장 빠르다. 회막 문에서 여호와와 함께 하심으로 4절 제사 절차 진행입니다. 안수합니다. 우리 세례받을 때 안수하지요. 목사 장로 할 때 안수합니다. 안수라는 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책임을 맡기는 겁니다. 목사직을 맡기고 장로직을 맡기고 세례 안수는 무서운겁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사는 것이기 때문에 주의 죽으심을 따라가라, 그게 세례입니다. 무서운 겁니다. 평생을 주와 같이 살다가 죽는 거다. 깊이 들어가면 그렇습니다.
짐승에게 안수하는 것은 네 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겁니다. 네 죄를 네가 죽어야하는데 끝나버리니까 짐승이 대신 죽는 것이고 그 짐승이기 때문에 안수하는 것은 구약시대 죄를 맡기는 것이고 장차 오실 구주 예수님에게 내 죄를 떠맡기는 게 안수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안수는 어떻게 되나요. 오늘로 가져오면 안수는 어떤 게 가져오십니까. 구약의 안수는 오실 구주 메시아를 소망하고 짐승의 머리 안수해서 대속으로 하시는 겁니다. 지나가는 과거가 완성되었습니다. 주님 대속을 믿는 거지요. 믿음으로 자기 것을 삼는 겁니다. 보증으로 삼는 겁니다. 근거로 삼는 겁니다. 그래서 삼는 겁니다. 내 죄를 대신 죽어주심을 믿습니다. 그게 안수가 되는 겁니다. 믿으면 주의 대속은 안수가 되는 것입니다. 안수하면 속죄가 된다 짐승에게 대신 죽으니까 속죄가 된다. 주님이 대신 죽으신다. 주님 대속을 믿음으로,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모르고 지은 죄 약해서 지은 죄 이런 것은 주님 피에 고하며 사함을 받습니다. 사함받음으로 형벌은 없어집니다. 동시에 사함 받는 것은 앞으로 죄를 짓지 않는 그런 근거를 가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안수하는 겁니다.
잡는 것, 제물을 잡는 겁니다. 그 속에서 제사라는 것은 회개라고 했기 때문에 내가 회개할 때 뭐냐 이 순간 내가 제사를 드리는데 예물로 바쳐 드리는데 이게 뭐냐, 자기에게 회개할 그 요소입니다. 일단 잡아죽이는 겁니다. 세 번째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누구지요. 제물이 있고 제사장이 있고 오늘로 말하면 제사 지내는 사람도 나고 제물도 나고 제사장도 내가 되는 겁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그렇게 내가 내 속에 아론의 제사장을 잡으시는 것은 제사장의 자격으로 제사장의 자세로 그런 의미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제사장의 자세로.
세 번째지요. 짐승의 피입니다. 짐승의 피인데 해석의 차이가 있습니다만은 피를 뿌린다, 그것은 공과대로 가르치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설명한 것은 피를 사면에 뿌리라는 것은 주님 대속에 피를 의지해서 힘입어서 공로를 생각하는 겁니다. 단사면이라는 것은 자기 살아가는 현실에서 회개를 할려면 핏공로 없이는 안되기 때문에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하는 것인데 핏공로하는 것이 피를 뿌리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님 대속 없이는 아무것도 안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그러하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이지 대속을 빼놓고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6절 번제의 가죽을 벗기고 껍데기 자기에게 익어지고 만들어진 자기 자신의 것입니다. 그 겉모습은 자기를 보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껍데기 가죽은 약합니다. 손도 가냐르고, 두꺼워집니다. 세월 속에 그렇게 만들어놓은 자기가 되는 겁니다. 그 짐승을 보호하는 건데 평생을 살아서 만든 자기라는 그 습성 생활모습, 행동, 그게 사람을 보호하게 되는 게 그게 잘못된 그런 게 있습니다.
교통 사고 나면은 뭐부터 합니까. 사람들이 큰 소리부터 먼저합니다. 자기를 보호하는 겁니다. 목소리 크게 높여야하고 살아온 방법을 만들어야하고 익혀야하고 그게 잘못된 껍데기가 속에서부터 만들어진 그 생활의 것들은 탈피하고 벗어내야한다고 합니다. 말씀을 떠나서 된 겁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 생활방식 직장도 될 수 있습니다. 탈피해야한다, 각을 뜨고 자기 자신을 요소요소 해야합니다. 자기의 회개할 부분을 두고 하나하나 따지는 게 무서운 겁니다. 여섯 번째 제사장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 자리로 돌아가서 단 위에 불을 두고, 불은 태우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절대적인 요소가 불이지요. 불의 태우는 것이 번제이기 때문에, 성령의 힘입어서 단 위에 불을 두고 불 위에 나무를 버려놓고, 이거 설명을 드렸는데 불 위에 나무를 버려놓는 것은 왜 그런다고 했지요. 단 위에 나무를 왜 버려놓는다고요, 나무 사이사이에 공기가 들어가서 나무가 잘 탈 수 있도록. 공기 안 들어가면 불은 안 붙습니다.
머리와 기름을 잡은 요소요소 하나하나와 기름 값진 것 기름을 나무위에 버려놓고 태우려고 가장 중요한 것하고 값진 기름을 나무위에 불 위에 놓는 겁니다. 그리고 내장과 그런 것들을 씻을 것이고 제사장은 전부를 단 위에서 불태운다고 했습니다. 순서적으로 간단하게 짚어나가면 첫째, 안수합니다. 두 번째 잡습니다. 세 번째, 피를 단사면에 뿌립니다. 가죽을 벗깁니다. 조각조각 각을 뜹니다. 단 위에 불을 붙입니다. 불위에 나무를 버려놓습니다. 각과 머리와 기름을 뿌려놓습니다. 내장과 정강이는 씻습니다. 태웁니다. 성령의 자신으로 받아들여야하는 것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실제 적용도 어렵고 그렇지만은 이렇게 현실을 살아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