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30일 수밤
김동민2025-07-30조회 52추천 7
2025년 7월 30일 수밤
찬송: 136장, 137장
본문: 열왕기상 19장 12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인데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왕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목회자가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천 명 교인의 천 명과 목회자 한 사람의 비중이 같습니다. 열 명 교인의 비중과 목회자 하나의 비중이 같습니다. 삼위일체는 가장 잘 표현한건데 삼위일체가 되면서 잘못 해석하면 전통에서 이단이라고 하게 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지만 가장 좋은 표현이라는 겁니다. 아버지의 자리는 아버지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자리는 감당하지 못하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자리가 있습니다.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고 본분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사장의 자리도 있고 목회자는 교회의 책임자입니다. 정상적인 교회고 목회자면 이겁니다. 책임을 지고 기도하고 그리 감당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래서 비중이 같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부족하면 교인이 그 자리를 채우면 됩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다 같은 목회자입니까. 백 목사님은 몇 세대에 한번 나올까말까하는데 그런 것만 목사로 취급하고 그러지 않으면 취급도 못하니까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안되면 교인들이 빈자리를 채우면 되는 겁니다. 가정의 아버지가 부족하면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이 딸이 자녀들이 그 자리를 채우면 되는 겁니다. 어머니가 부족하면 그런 거면 되고. 개인 회사 사장은 영리 문제라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나라의 지도자가 있습니다. 지도자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인식 자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왕이 좀 부족해도 인식이 있으면 보충이 될 수 있는데 왕이 악한 왕인데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가니까 엉망이 되고 희망이 없게 되는 겁니다.
거의 남북 남조 북조의 경계가 없어지만큼 되었는데 히스기야가 사람들을 보내서 예루살렘에 와서 회개하고 유월절을 지키자하고 사람을 보냈는데 대부분 비웃고 코웃음치고 그랬습니다. 몇몇 사람만 나와서 같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망해도 싼 나라가 되었지요. 어느 나라든 역사든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가정이 내려앉으면 이유가 있는겁니다. 그래서 핑계대고 하는 것은 안되는 겁니다. 자기 문제입니다. 아무도 나를 천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물어뜯습니다. 아합이 약한데 미혹받고 따라갔습니다. 625전쟁 때 그런 일화가 많지요. 수백명이 포승줄에 묶여서 끌려간답니다. 그런데 총을 든 공산군들은 수십명인데 수백명이 끌려갑니다. 총맞아 죽을까 싶어서 끌려가는 거지요.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런데 꼼짝없이 구덩이를 판다고 합니다. 잘파면 살려줄까 싶어서 살려줍니다. 그 다음에 들어가. 그 다음에 총 쏘아 죽이지. 막 뛰어 들어간답니다. 그러면 쏘아 죽는 거지요. 그게 인간이다 그 말이지요.
왕은 옛날부터 민란이라는 것은 왕들이 도망가는 겁니다. 아무리 폭군이라도 민란 일어나면 도망쳐갑니다. 교회도 꼭 같습니다. 교회의 문제 생기고 하소연 하면 꼭 같습니다. 당해도 싸지 그럽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렇게 하면 가만히 뒀냐 이겁니다. 교회의 주인은 교인들인데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교회만 있는 게 아니고 바로 말씀 있는 것이고 하면 되는 겁니다. 아합 때 이스라엘에 가장 악한 이세벨인데 그래서 나봇을 죽을 때 편지를 아합의 도장을 찍어서 편지 집어서 거짓을 만들어서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하고 죽이라고 하니까 그 사마리아 성의 장로라는 사람들이 나봇을 쳐죽이고 나봇이 죽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머리가 되어있으니까 나라가 망하는 거지요. 어찌될지 모르는 거지요. 멀리보고 길게보고 생각을 해야하는데. 신앙생활 상식으로 믿는 사람들은 사람이라면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대중들을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은 겁니다.
내 생각 내 판단을 왜 주고 팔려갑니까. 내 생각인데, 전부다 청소년들도 요즘 휴대폰도 우리 교회 다 가지고 있지요. 전부 다 가졌는데 중학생인데 휴대폰 없는 사람, 전화만 되는 사람 이 정도만 되면 보배가 되는 겁니다. 전부다 머리 염색을 하니까 나도 해야합니다. 왜 해야합니까. 전부다 귀걸이하니까 나도 해야겠다. 안하면 되는 거지. 왜 따라가야합니까. 내가 안 따라하면 되는 거지. 그걸 주체, 줏대, 자존심이라고 합니다. 쉽게 휘둘려지면은 당나귀 끌고가다가 빠트리는 사람이 되고 영혼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공회의 대표는 어찌되는지 압니까. 제가 이름 대표입니다 저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우리 부공3의 대표는 누굽니까. 다 아시잖습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깨달음에서 행정지도에서 변화에서 지도력에서 저절로 다 아는 거지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 은혜있는 분 그분이 대표가 되는 겁니다. 신앙적으로 그리 되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겁니다. 이스라엘의 엘리야가 투표해서 엘리야가 된 것이 아닙니다. 세워진 종이 되다 보니까 모든 면에 가장 탁월합니다. 그래서 대표가 되는 겁니다. 우리 교회 박철희 선생님이 찬송을 잘합니다. 찬송 인도자를 추천하십시오. 부탁이 와서 이분 어떻습니까. 하니까 이분이 가장 잘하니까 다른 사람들 말을 안합니다. 박철희 선생님보다 찬송 잘하는 분이 있으면 그리 되는 겁니다. 엘리야는 그런 위치를 말씀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보니까 올라가 있습니다. 저절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충성하다 보니까 가장 대선지가 되어있습니다. 거기서 자기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부 우상 이세벨에게 엉망이 되어있습니다. 징계 받아서 얼마동안 이 땅에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엘리야를 통해서 아합을 만나라.
바알 선지 다 죽이고 피를 주었습니다. 위치의 사명입니다. 특별하게 세밀한 일반적인 사명입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피신하는 겁니다. 엘리야가 자기 위치에서 감당했습니다. 할 일 했는데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해서 피신할려고 했습니다. 했는데 밤낮으로 가서 하나님 음성이 들렸습니다. 특별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나라에 징계를 내리셨고 우상 타파하고 비를 주셨고 우상 섬기는 선지자들 다 죽였고. 할 수 있는 게 없는거지요. 그 작은 소리가 어떤 소리냐,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 엘리야가 그때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감당해혼 자기 사명, 그걸 했는데 그 앞으로 앞날이 안 보이는데 그 다음을 나아가야하는데 안 보이기 때문에 간절히 기도한 거지요. 엘리야가 한 것은 큰 거였습니다. 더 깊이 작은 소리, 아주 깊은 더 깊이 음성으로 알려주신 겁니다. 일반적인 사명과 특별 사명은 다른 겁니다. 우리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야하는데 쉽지 않지요. 무형의 완전자. 무형이 무슨 뜻이지요. 형체가 뭡니까. 남학생들 무형의 완전자 형체가 뭐지요. 모양을 가진 몸 문체 제가 들고 있는게 뭐지요. 이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건 뭐지요. 손수건이지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뭐든 형체가 있는 게 있고 형체가 없는 게 있는데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으면 형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있는 걸 형체가 없는 거라고 합니다. 참 쉽지 않지요. 그 형체가 없는데 그게 어떻게 역사하실 수 있을까. 그분은 그래서 주의를 하는 겁니다. 실존, 실제로 계시는 분이 아니고 사람들이 생각해낸 그런 존재가 아닐까. 비유가 애매한데 손오공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손오공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거지요. 원숭이는 있어도 손오공은 없는 겁니다. 소설로, 그것처럼 하나님은 실제 없는데 사람들이 만든 거 아니야. 부처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불상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신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만든거지요.
하나님도 그렇게 오해합니다. 왜 무형의 형체가 없으니까. 또 계시기는 계셔도 하나의 형체가 없으니까 좀 역사를 하기는해도 뭔가 추상적인 이런 걸로 역사하지 사람들처럼 아픔 기쁨 슬픔 한문글자로 희로애락 이런 느낌이 있을까 없을까. 형체가 없는데 그러니 희로애락을 가진 분입니다. 격위. 어려운 말입니다. 인격할 때 격자입니다. 존재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완전자라서 사람들이 알기 어려워서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과정이 있으니까 일차로 했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일단계로 하셨을 때를 영감이라고 합니다. 진리라고 합니다.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을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알 수 있도록 글로 적은 것을 성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은 그겁니다. 그래서 내재적 영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무조건 성경으로 들어가야합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말씀으로 들어가다니요. 말씀을 읽고 듣고 생각하는 겁니다. 찬송가 74장 3절입니까. 주 오늘 여기 계시오니 다 와서 주의 말씀 듣게 듣기도 하며 생각하니 참 이치시로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걸 가르켜서 뭐라고 합니까. 누가 누구를 안다. 가장 정확하게 아는 건 만나보면 아는 거지요. 점점 많아지고 세밀해지는 만큼 알아가야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말은 보게된다는 말입니다. 만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멀수록 체험적으로 점점 가까이 갈수록 실감이 되고 말씀드리고 알게되는 겁니다. 그분이 자기가 하는 걸 아는 겁니다. 알게되는거지요. 성경 속에 다 들어있는 겁니다. 어릴 때는 글로 읽는데 뜻으로 읽고 알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서 점점 닮아가는 겁니다.
성경 말씀대로 준행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대면했다는 말은 얼굴 우리처럼 봤다는 게 아니고 가까이 접하니까 그 증표로. 엘리사가 보면은 이 사람들이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다 어두워지고 보게합니다. 아랍나라 왕이 몰래 작전회의를 하면 엘리사를 그렇게 알았는지 듣고 어디로 가면 막으십시오 하도 가는데마다 막히니까 뭐라고합니까. 내 측근 중에서 요즘 저 이란에 요원들이 숨어서 어느나라 장관 밑에 차관급 시리야인가 차관이 요원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차관인데 차관이 요원이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란에도 핵심 부분에 정보원들이 드러났고 그러듯이 스파이가 있다. 안 그러면 이렇게 까지 작전한 게 알려질 리가 없다. 그러니까 좀 아는 사람이 그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그럽니다. 엘리사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거지요. 만나는 과정들이라 할 수 있는 거지요. 8월 3일이 주일입니다.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기도해야합니까. 오전 예배 드리러 가야합니까. 그런 걸 일반 생활이라고 합니다. 기도 안해도 아는 겁니다.
직장에서 주일을 출근하라고 하고 집회 못가게 하고 이거 이 직장이 맞는지 안 맞는지 혼문스럽다 그럴 때는 기도해야합니다. 주일을 출근하라고 그러고 외국에 보내고 못 지키게 만들고 집회도 못가게 하고 가야합니까 말아야합니까. 섣불리 할 게 아닙니다. 직장 내올 수도 없고. 그러면서 다니면서 찾아보는거지요. 세밀한 음성을 들을 때는 이 소리는 외부에서 청각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고 내 양심을 통해 나오는 내면의 소리이기 때문에 주관이기 쉽습니다. 이걸 구별할 때는 두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하나는 뭐지요. 자기를 부인해야합니다. 자기 부인이라는 말은 감정 욕심 취미 소망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배제하고 십자가를 각오해야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가 들은 말이 증거가 왔던 길을 돌아가라, 죽음의 길로 다시 가라. 이건 주관을 불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그래서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하고 어려움 만날 때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36장, 137장
본문: 열왕기상 19장 12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인데 가장 악한 왕이었습니다. 왕이 중요합니다. 교회의 목회자가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천 명 교인의 천 명과 목회자 한 사람의 비중이 같습니다. 열 명 교인의 비중과 목회자 하나의 비중이 같습니다. 삼위일체는 가장 잘 표현한건데 삼위일체가 되면서 잘못 해석하면 전통에서 이단이라고 하게 되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지만 가장 좋은 표현이라는 겁니다. 아버지의 자리는 아버지의 역할이 있습니다. 그 자리는 감당하지 못하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 자리가 있습니다. 책임이 있고 의무가 있고 본분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사장의 자리도 있고 목회자는 교회의 책임자입니다. 정상적인 교회고 목회자면 이겁니다. 책임을 지고 기도하고 그리 감당하는 게 정상입니다. 그래서 비중이 같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부족하면 교인이 그 자리를 채우면 됩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다 같은 목회자입니까. 백 목사님은 몇 세대에 한번 나올까말까하는데 그런 것만 목사로 취급하고 그러지 않으면 취급도 못하니까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그게 안되면 교인들이 빈자리를 채우면 되는 겁니다. 가정의 아버지가 부족하면 큰 아들이 작은 아들이 딸이 자녀들이 그 자리를 채우면 되는 겁니다. 어머니가 부족하면 그런 거면 되고. 개인 회사 사장은 영리 문제라 그렇게 되지 않겠지만. 나라의 지도자가 있습니다. 지도자 역할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인식 자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왕이 좀 부족해도 인식이 있으면 보충이 될 수 있는데 왕이 악한 왕인데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따라가니까 엉망이 되고 희망이 없게 되는 겁니다.
거의 남북 남조 북조의 경계가 없어지만큼 되었는데 히스기야가 사람들을 보내서 예루살렘에 와서 회개하고 유월절을 지키자하고 사람을 보냈는데 대부분 비웃고 코웃음치고 그랬습니다. 몇몇 사람만 나와서 같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망해도 싼 나라가 되었지요. 어느 나라든 역사든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가정이 내려앉으면 이유가 있는겁니다. 그래서 핑계대고 하는 것은 안되는 겁니다. 자기 문제입니다. 아무도 나를 천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물어뜯습니다. 아합이 약한데 미혹받고 따라갔습니다. 625전쟁 때 그런 일화가 많지요. 수백명이 포승줄에 묶여서 끌려간답니다. 그런데 총을 든 공산군들은 수십명인데 수백명이 끌려갑니다. 총맞아 죽을까 싶어서 끌려가는 거지요. 이길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런데 꼼짝없이 구덩이를 판다고 합니다. 잘파면 살려줄까 싶어서 살려줍니다. 그 다음에 들어가. 그 다음에 총 쏘아 죽이지. 막 뛰어 들어간답니다. 그러면 쏘아 죽는 거지요. 그게 인간이다 그 말이지요.
왕은 옛날부터 민란이라는 것은 왕들이 도망가는 겁니다. 아무리 폭군이라도 민란 일어나면 도망쳐갑니다. 교회도 꼭 같습니다. 교회의 문제 생기고 하소연 하면 꼭 같습니다. 당해도 싸지 그럽니다. 어느 목사님이 그렇게 하면 가만히 뒀냐 이겁니다. 교회의 주인은 교인들인데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교회만 있는 게 아니고 바로 말씀 있는 것이고 하면 되는 겁니다. 아합 때 이스라엘에 가장 악한 이세벨인데 그래서 나봇을 죽을 때 편지를 아합의 도장을 찍어서 편지 집어서 거짓을 만들어서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하고 죽이라고 하니까 그 사마리아 성의 장로라는 사람들이 나봇을 쳐죽이고 나봇이 죽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머리가 되어있으니까 나라가 망하는 거지요. 어찌될지 모르는 거지요. 멀리보고 길게보고 생각을 해야하는데. 신앙생활 상식으로 믿는 사람들은 사람이라면 생각을 가져야합니다. 대중들을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은 겁니다.
내 생각 내 판단을 왜 주고 팔려갑니까. 내 생각인데, 전부다 청소년들도 요즘 휴대폰도 우리 교회 다 가지고 있지요. 전부 다 가졌는데 중학생인데 휴대폰 없는 사람, 전화만 되는 사람 이 정도만 되면 보배가 되는 겁니다. 전부다 머리 염색을 하니까 나도 해야합니다. 왜 해야합니까. 전부다 귀걸이하니까 나도 해야겠다. 안하면 되는 거지. 왜 따라가야합니까. 내가 안 따라하면 되는 거지. 그걸 주체, 줏대, 자존심이라고 합니다. 쉽게 휘둘려지면은 당나귀 끌고가다가 빠트리는 사람이 되고 영혼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 공회의 대표는 어찌되는지 압니까. 제가 이름 대표입니다 저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우리 부공3의 대표는 누굽니까. 다 아시잖습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깨달음에서 행정지도에서 변화에서 지도력에서 저절로 다 아는 거지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 은혜있는 분 그분이 대표가 되는 겁니다. 신앙적으로 그리 되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겁니다. 이스라엘의 엘리야가 투표해서 엘리야가 된 것이 아닙니다. 세워진 종이 되다 보니까 모든 면에 가장 탁월합니다. 그래서 대표가 되는 겁니다. 우리 교회 박철희 선생님이 찬송을 잘합니다. 찬송 인도자를 추천하십시오. 부탁이 와서 이분 어떻습니까. 하니까 이분이 가장 잘하니까 다른 사람들 말을 안합니다. 박철희 선생님보다 찬송 잘하는 분이 있으면 그리 되는 겁니다. 엘리야는 그런 위치를 말씀 드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보니까 올라가 있습니다. 저절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충성하다 보니까 가장 대선지가 되어있습니다. 거기서 자기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부 우상 이세벨에게 엉망이 되어있습니다. 징계 받아서 얼마동안 이 땅에 비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엘리야를 통해서 아합을 만나라.
바알 선지 다 죽이고 피를 주었습니다. 위치의 사명입니다. 특별하게 세밀한 일반적인 사명입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피신하는 겁니다. 엘리야가 자기 위치에서 감당했습니다. 할 일 했는데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해서 피신할려고 했습니다. 했는데 밤낮으로 가서 하나님 음성이 들렸습니다. 특별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합니까. 이나라에 징계를 내리셨고 우상 타파하고 비를 주셨고 우상 섬기는 선지자들 다 죽였고. 할 수 있는 게 없는거지요. 그 작은 소리가 어떤 소리냐,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 엘리야가 그때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감당해혼 자기 사명, 그걸 했는데 그 앞으로 앞날이 안 보이는데 그 다음을 나아가야하는데 안 보이기 때문에 간절히 기도한 거지요. 엘리야가 한 것은 큰 거였습니다. 더 깊이 작은 소리, 아주 깊은 더 깊이 음성으로 알려주신 겁니다. 일반적인 사명과 특별 사명은 다른 겁니다. 우리도 그런 겁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야하는데 쉽지 않지요. 무형의 완전자. 무형이 무슨 뜻이지요. 형체가 뭡니까. 남학생들 무형의 완전자 형체가 뭐지요. 모양을 가진 몸 문체 제가 들고 있는게 뭐지요. 이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건 뭐지요. 손수건이지요.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뭐든 형체가 있는 게 있고 형체가 없는 게 있는데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으면 형체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있는 걸 형체가 없는 거라고 합니다. 참 쉽지 않지요. 그 형체가 없는데 그게 어떻게 역사하실 수 있을까. 그분은 그래서 주의를 하는 겁니다. 실존, 실제로 계시는 분이 아니고 사람들이 생각해낸 그런 존재가 아닐까. 비유가 애매한데 손오공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손오공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는거지요. 원숭이는 있어도 손오공은 없는 겁니다. 소설로, 그것처럼 하나님은 실제 없는데 사람들이 만든 거 아니야. 부처는 있습니까 없습니까. 불상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는 신은 없습니다. 사람들이 만든거지요.
하나님도 그렇게 오해합니다. 왜 무형의 형체가 없으니까. 또 계시기는 계셔도 하나의 형체가 없으니까 좀 역사를 하기는해도 뭔가 추상적인 이런 걸로 역사하지 사람들처럼 아픔 기쁨 슬픔 한문글자로 희로애락 이런 느낌이 있을까 없을까. 형체가 없는데 그러니 희로애락을 가진 분입니다. 격위. 어려운 말입니다. 인격할 때 격자입니다. 존재를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형의 완전자라서 사람들이 알기 어려워서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신 과정이 있으니까 일차로 했는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일단계로 하셨을 때를 영감이라고 합니다. 진리라고 합니다.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을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알 수 있도록 글로 적은 것을 성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은 그겁니다. 그래서 내재적 영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무조건 성경으로 들어가야합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말씀으로 들어가다니요. 말씀을 읽고 듣고 생각하는 겁니다. 찬송가 74장 3절입니까. 주 오늘 여기 계시오니 다 와서 주의 말씀 듣게 듣기도 하며 생각하니 참 이치시로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걸 가르켜서 뭐라고 합니까. 누가 누구를 안다. 가장 정확하게 아는 건 만나보면 아는 거지요. 점점 많아지고 세밀해지는 만큼 알아가야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말은 보게된다는 말입니다. 만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멀수록 체험적으로 점점 가까이 갈수록 실감이 되고 말씀드리고 알게되는 겁니다. 그분이 자기가 하는 걸 아는 겁니다. 알게되는거지요. 성경 속에 다 들어있는 겁니다. 어릴 때는 글로 읽는데 뜻으로 읽고 알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서 점점 닮아가는 겁니다.
성경 말씀대로 준행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대면했다는 말은 얼굴 우리처럼 봤다는 게 아니고 가까이 접하니까 그 증표로. 엘리사가 보면은 이 사람들이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다 어두워지고 보게합니다. 아랍나라 왕이 몰래 작전회의를 하면 엘리사를 그렇게 알았는지 듣고 어디로 가면 막으십시오 하도 가는데마다 막히니까 뭐라고합니까. 내 측근 중에서 요즘 저 이란에 요원들이 숨어서 어느나라 장관 밑에 차관급 시리야인가 차관이 요원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차관인데 차관이 요원이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이란에도 핵심 부분에 정보원들이 드러났고 그러듯이 스파이가 있다. 안 그러면 이렇게 까지 작전한 게 알려질 리가 없다. 그러니까 좀 아는 사람이 그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그럽니다. 엘리사가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거지요. 만나는 과정들이라 할 수 있는 거지요. 8월 3일이 주일입니다.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기도해야합니까. 오전 예배 드리러 가야합니까. 그런 걸 일반 생활이라고 합니다. 기도 안해도 아는 겁니다.
직장에서 주일을 출근하라고 하고 집회 못가게 하고 이거 이 직장이 맞는지 안 맞는지 혼문스럽다 그럴 때는 기도해야합니다. 주일을 출근하라고 그러고 외국에 보내고 못 지키게 만들고 집회도 못가게 하고 가야합니까 말아야합니까. 섣불리 할 게 아닙니다. 직장 내올 수도 없고. 그러면서 다니면서 찾아보는거지요. 세밀한 음성을 들을 때는 이 소리는 외부에서 청각으로 들리는 것이 아니고 내 양심을 통해 나오는 내면의 소리이기 때문에 주관이기 쉽습니다. 이걸 구별할 때는 두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하나는 뭐지요. 자기를 부인해야합니다. 자기 부인이라는 말은 감정 욕심 취미 소망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배제하고 십자가를 각오해야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가 들은 말이 증거가 왔던 길을 돌아가라, 죽음의 길로 다시 가라. 이건 주관을 불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거지요. 그래서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야하고 어려움 만날 때는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