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4일 수밤
김동민2025-05-14조회 77추천 10
2025년 5월 14일 수밤
찬송: 81장, 82장
본문: 히브리서 11장 1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조상들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기록해놨습니다. 대표적으로 한 사람을 찍으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육적으로 외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어받은 사람이 이삭이고 이어받은 사람이 야곱이고 아브라함과 대표적으로 다윗이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계통으로 나오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손자 증손 중에서 대표적은 예수님을 어느 지파라고 합니까. 유다 지파입니다. 유다가 구원 계통인데 그런 면이 있다 읽어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인데 요셉과 유다를 수평적으로 보면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 계통을 이어갈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 이 세상을 살고 갈 믿음의 조상들은 어땠는가. 믿음을 따라 죽었다.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안고 믿는 상태에서 죽었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생전 이루지 못했지만은 의심할만도 한데, 믿음을 따라주었습니다. 약속을 받지 못했는데, 주신다 하셨는데 주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을 받지 못하였는데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길게 보고 멀리 봤다 그 말이지요 1년 안에 안 두시니까 10년 즈음 걸리나보다. 30년 걸리는가보다. 나 죽을 때야 되는가 보다 죽을 때도 안 주시니까 죽음 넘어의 세상을 주시려나보다.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그렇게 정거하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은 외국인이다. 우리가 일본에 가면 외국인이 됩니다. 일본은 한국 사람들에게 남의 나라입니다. 일본나라가 정치 경제가 엉망이 되든 상관없는거지요. 미국은 우리나라와 많은 연관성이 있어도 남의 나라입니다. 미국에 시민권 가지고 시민으로 사는 한국 사람이면 다른 문제가 됩니다. 세상은 다 그런 세상입니다.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셨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외국으로 살았습니다. 한국 사람이 일본에 사는 것처럼. 재일교포들은 오래 됐습니다. 몇 세대를 지나갔지 때문에 일본말만 하는 그런 사람은 차별이 있고 알게 모르게 일본 사람 아니라는 조심하는 기가 죽는 그런 게 있다 그럽니다. 재미교포들이 교포 2세들 3세들은 겉으로 부모님이 한국사람이기에 표가 나거든요. 그럼에도 한국 사람이라는 표를 안낸다고 합니다. 나는 미국사람이고 미국에서 태어났고 내 나라는 미국이랍니다. 대개는 다 그런거지요.
그런데 그들의 조상으로 올라가면 한국 사람이 미국 가서 살았기 때문에 좋은 나라니까, 그러겠지요. 만약에 한국보다 훨씬 못 사는 그런 나라에 갔다면 우리 나라는 한국입니다 그랬겠지요. 세상은 이러나 저러나 다 그런 것인데 우리 조상들은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남의 나라다, 내 나라가 아니다 남의 나라다 외국인이다. 나그네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자들을 나타냅니다. 나온 고향이 본향입니다. 이들이 떠나온 본향은 지역으로 말하면 하란이고 갈대아입니다. 하란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혼시킬 때 고향에 가서 며느리감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땅에 살고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어디서 살았던가요. 가나안 땅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으셨고 나그네로 우거하며 살았습니다. 네 며느리감은 고향 하란에서 구해와라고 했습니다. 교파를 초월해서 우리는 넓게 총공회니까 우리 공회 안에서 결혼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없으면 공회로 넓히면 됩니다. 공회 중에서 우리에 대상자가 없으면 총공회로 높이면 됩니다. 부공1이나 2나 대구공회가 다른 쪽보다 나은 겁니다. 그게 우리로 보면 하란 즈음이라고 보면 되는 겁니다. 그 안에 없다면 이왕이면 고신 쪽이 맞습니다. 그래서 고신이 우리 공회는 고신 떼고는 밑으로 내려가면 뿌리가 안되는 거지요.
아무리 그래도 천주교가 다른 종교인데 없애고 나면 뿌리가 없어져버립니다. 칼빈은 천주교에서 나왔습니다. 천주교가 밉다고 없애버리면 안되는 겁니다. 우리 조상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은 이완용이라는 사람이 매국노로 있다고 하는데 어느 이씨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씨 족보에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 조상이 싫으니까 빼버리자고 그러면 나온 게 없어져버린 겁니다. 나무를 심었는데 뿌리가 있고 가지가 있고 둥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둥치 중에서 1미터가 지저분하다고 잘라버리면 나무가 됩니까. 아무리 보기 흉해도 이어지는 겁니다. 돌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며느리를 구할 때 종에게 부탁을 했고 만약에 그 여자가 며느리감으로 구하는데 우리 원하는대로 잘 따라오면 좋겠는데 못온다고 그러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까요.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돌아가지 말아라고 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후퇴하는 게 아닙니다.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뜻을 따라 나왔으니까 귀한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그러나 이 세상적인 본향보다도 더 나은 본향을 상대했으니 나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때는 육체 형식 시대입니다. 보이는 것 위주였던 시대입니다. 방법도 전부 다 성전도 성전입니다. 구약이니까 예루살렘 가야하고 성전에 가야하고 모여서 거기서 소 양 짐승을 잡아야하고, 애굽에 들어갔다가 돌아가는 소망은 가나안입니다. 그러면 본향 소망은 어딥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소망은 애굽에 들어갔던 거기서 종 노릇하고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이 있다. 우리 본향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본향은 본향 찾는 걸 나타냄이라. 어딥니까. 하늘에 있는 것을 두고 신령한 거니까 두고 그거 말고 그들이 찾는 본향은 뭐가 되는 거겠습니까. 살고 있는 그 땅 가나안 땅입니다. 이걸 믿는거지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었다고 하니까 그런 겁니다. 자기들에게 죽지 않았으니까 자손들에게 주시겠구나. 그보다 더한 것은 보이는 가나안 땅보다 더 바라본 것은 안 주시니까 영원한 가나안, 더 죽음 넘어 세계의 것을 주시려나보다. 이걸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게 한 겁니다.
그 증거가 뭐냐. 하늘에 있는 성을 바란 그 증거가 뭐냐.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셨다는 겁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왔다가 430년 지나고 출애굽해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그 과정에 진짜 그들의 알맹이는 믿음의 조상이 바라봤던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게 더 맞는 겁니다. 그 내면에는 하늘 소망을 바라보는 게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회 말씀에서 첫 번째 이번 공과 제목이 잊지 말자입니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잊지 말자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한 받은 선민으로 공과에 보니까 성민도 맞고 거룩할 성자 하나님 백성이라는 거지요. 선민이라고 합니다. 가릴 선자입니다. 택할 선자입니다. 구별된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민입니다. 너희가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백성이고 구별된 백성이고 그러기 때문에 애굽에 살고 있지만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합니다. 돌아갈 마음을 가져야하고 가지고 생각해야하고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사는 겁니다.
모세는 기억을 했고 모세 외의 결과적으로 보면 여호수아 갈렙은 기억을 했겠고 나머지 200만명은 전부 다가 애굽에 살면서 가나안 땅은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굽나라가 외국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적국이 아닌 적국입니다. 민족을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살 수는 없을 것이고 살아선 안되는 곳입니다. 남의 나라입니다. 애굽에 사람처럼 그리 되어졌는가. 남의 나라인데 그리 되어졌는데 왜 그리 되어졌는가. 애굽에 살다 보니까. 별 사람이 없는 겁니다. 학교에 다니다 보니까 학생이 되는 거지요. 학교 생활을 하다보니 학생이 되는 겁니다. 그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학업의 사람이 되어버리면 믿는 사람으로써 문제가 있는 거죠. 직장 생활하다보니 직장의 사람이 된다. 사업을 하다보니 사업의 사람이 된다. 농사를 짓다보니 농업의 사람이 된다. 120년동안 방주를 만들고 온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의 의사가 된 노아가 홍수 후에 농업을 시작해서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를 수확했습니다.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나쁜 게 아닙니다. 취했습니다. 그걸로 함을 저주했고 대대로 내려갔습니다. 제 속에 있는 배은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주 받아 마땅하나 그렇게 만든 원인은 노아에게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니까 애굽의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학교에 다니다보니 학업의 사람이 됩니다. 직장을 다니다보니 직장의 사람이 됩니다. 직업이 목수인 사람들은 정확합니다. 목수는 잘못 잘라버리면 새로 잘라야합니다. 미장은 새로 바르면 됩니다. 직업이 사람을 만드는데 미장을 해도 그런 사람이 되면 안되는 겁니다. 환경에 영향받도록 환경에 피동되도록 환경에 적응하도록 환경의 사람이 되도록 지으셨습니다. 왜 그리지으셨습니까. 그렇게 바꾸어지도록 사람이 변화되도록 그렇게 지었습니다. 금도 안 변합니다. 생명있는 것은 안 변합니다. 사람은 잘 변합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변화되려고. 그래서 하나님같이 불변성을 가지면서 피조물 요소를 하나님 형상으로 성화되어가면서 불변의 사람이 되어가는 게 믿는 사람의 방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 되지 말아야합니다. 잊지말자. 남의 나라고 이 세상 지나갈 나그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하고 이걸 잊어버릴 때 자기 정체성을 사람이 잊어버리면 자기를 잊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이걸 살아있으나 죽은자라는 겁니다. 뭘 다 빼앗기고 손해봐도 자신은 지킵니다. 정체성을 지키는 겁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이 이 당 갔다 저 당 갔다 그 사람들은 철새들입니다. 인격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까 엉망이 되는 거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살아가다보니까 세상을 살다보니까 가정 생활하다보면은 아이를 기르다보면 엄마가 되는 건데 엄마가 되는 건 참 좋은 겁니다. 가정에 살다보니까 가정의 사람이 되고 이런 저런 세상에 살다 보니까 세상의 사람이 되면 실패하게 되는 겁니다. 교회라는 것은 세상에 있을 때 교회의 본분 교회라는 단체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현재 모습이 되어지게 된겁니다. 교회가 뭔지, 모르는지 알고도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1차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레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레위인 중에서도 제사장이 되어야겠고 하나님과 1대1로 대면하는 대제사장을 목표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만 더 합니다. 현실적으로 세상에 살다보니까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백성임을 잊지말자고 합니다. 자칫하면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이 세상이 되지 않고 해야하는데 쉽지 않지요. 거기서 우리가 구별할 것, 이 세상 속에 살면서 이 세상이 되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야하는데 이 세상을 버리면 됩니다. 세상과 상관없이 살아도 그게 안되는 거지요.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그런 종교가 대표적으로 불교입니다. 염세주의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과 끊어진 불교가 있습니까. 그 원래 세상이니까 그렇지만 처음부터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이 되지 않아야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우리 정체성을 기억을 하고 잊지않고 기억을 하면서 그러면서 알아야할 것은 이 세상을 바로 알아야하는 겁니다.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그래야 이 세상의 밥이 되지 않고 휩쓸려가지 않습니다. 알기는 알아야합니다. 교회는 교회고 세상은 세상이고 우리는 성도고 하나님 백성이고 이 세상 사람은 아니다. 구별해서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항상 두 길이고 오직 한 길입니다. 이렇게 구별해서 하는 겁니다. 내가 사는 세상 현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구별해서 살 수 있는 것이지 잊어버려도 문제고 내가 땅 딛고 공기 마시는 세상을 알지 못해도 문제가 되는 겁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 환경을 아는 겁니다. 유치원에 보내면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아야합니다. 선생님의 사상이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인지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학교를 함부로 보내기 조심스러운겁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학교 잘못된 사상 가진 교사들에게 교육 받으면 머리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릴 때 들어간 사상은 빼내지도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아는 거죠.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이 시대 사람들을 무엇이며 이게 아는 겁니다. 알아야 이 세상이 되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겁니다. 공과를 생각하시면서 믿음의 조상들은 이 세상을 외국인으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리 살아야합니다. 하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힘을 써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81장, 82장
본문: 히브리서 11장 13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들 믿음의 조상들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많은 믿음의 조상들을 기록해놨습니다. 대표적으로 한 사람을 찍으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육적으로 외인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어받은 사람이 이삭이고 이어받은 사람이 야곱이고 아브라함과 대표적으로 다윗이 나오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계통으로 나오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손자 증손 중에서 대표적은 예수님을 어느 지파라고 합니까. 유다 지파입니다. 유다가 구원 계통인데 그런 면이 있다 읽어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인데 요셉과 유다를 수평적으로 보면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 계통을 이어갈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 이 세상을 살고 갈 믿음의 조상들은 어땠는가. 믿음을 따라 죽었다.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안고 믿는 상태에서 죽었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살아생전 이루지 못했지만은 의심할만도 한데, 믿음을 따라주었습니다. 약속을 받지 못했는데, 주신다 하셨는데 주지 않으셨습니다. 약속을 받지 못하였는데 그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길게 보고 멀리 봤다 그 말이지요 1년 안에 안 두시니까 10년 즈음 걸리나보다. 30년 걸리는가보다. 나 죽을 때야 되는가 보다 죽을 때도 안 주시니까 죽음 넘어의 세상을 주시려나보다.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그렇게 정거하고 살았습니다. 이 세상은 외국인이다. 우리가 일본에 가면 외국인이 됩니다. 일본은 한국 사람들에게 남의 나라입니다. 일본나라가 정치 경제가 엉망이 되든 상관없는거지요. 미국은 우리나라와 많은 연관성이 있어도 남의 나라입니다. 미국에 시민권 가지고 시민으로 사는 한국 사람이면 다른 문제가 됩니다. 세상은 다 그런 세상입니다.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셨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외국으로 살았습니다. 한국 사람이 일본에 사는 것처럼. 재일교포들은 오래 됐습니다. 몇 세대를 지나갔지 때문에 일본말만 하는 그런 사람은 차별이 있고 알게 모르게 일본 사람 아니라는 조심하는 기가 죽는 그런 게 있다 그럽니다. 재미교포들이 교포 2세들 3세들은 겉으로 부모님이 한국사람이기에 표가 나거든요. 그럼에도 한국 사람이라는 표를 안낸다고 합니다. 나는 미국사람이고 미국에서 태어났고 내 나라는 미국이랍니다. 대개는 다 그런거지요.
그런데 그들의 조상으로 올라가면 한국 사람이 미국 가서 살았기 때문에 좋은 나라니까, 그러겠지요. 만약에 한국보다 훨씬 못 사는 그런 나라에 갔다면 우리 나라는 한국입니다 그랬겠지요. 세상은 이러나 저러나 다 그런 것인데 우리 조상들은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남의 나라다, 내 나라가 아니다 남의 나라다 외국인이다. 나그네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자들을 나타냅니다. 나온 고향이 본향입니다. 이들이 떠나온 본향은 지역으로 말하면 하란이고 갈대아입니다. 하란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혼시킬 때 고향에 가서 며느리감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땅에 살고 있었습니까. 아브라함은 어디서 살았던가요. 가나안 땅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으셨고 나그네로 우거하며 살았습니다. 네 며느리감은 고향 하란에서 구해와라고 했습니다. 교파를 초월해서 우리는 넓게 총공회니까 우리 공회 안에서 결혼하는 게 좋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없으면 공회로 넓히면 됩니다. 공회 중에서 우리에 대상자가 없으면 총공회로 높이면 됩니다. 부공1이나 2나 대구공회가 다른 쪽보다 나은 겁니다. 그게 우리로 보면 하란 즈음이라고 보면 되는 겁니다. 그 안에 없다면 이왕이면 고신 쪽이 맞습니다. 그래서 고신이 우리 공회는 고신 떼고는 밑으로 내려가면 뿌리가 안되는 거지요.
아무리 그래도 천주교가 다른 종교인데 없애고 나면 뿌리가 없어져버립니다. 칼빈은 천주교에서 나왔습니다. 천주교가 밉다고 없애버리면 안되는 겁니다. 우리 조상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은 이완용이라는 사람이 매국노로 있다고 하는데 어느 이씨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이씨 족보에 나라 팔아먹은 이완용 조상이 싫으니까 빼버리자고 그러면 나온 게 없어져버린 겁니다. 나무를 심었는데 뿌리가 있고 가지가 있고 둥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둥치 중에서 1미터가 지저분하다고 잘라버리면 나무가 됩니까. 아무리 보기 흉해도 이어지는 겁니다. 돌아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며느리를 구할 때 종에게 부탁을 했고 만약에 그 여자가 며느리감으로 구하는데 우리 원하는대로 잘 따라오면 좋겠는데 못온다고 그러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까요.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돌아가지 말아라고 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후퇴하는 게 아닙니다.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뜻을 따라 나왔으니까 귀한 사람이 되는 거지요.
그러나 이 세상적인 본향보다도 더 나은 본향을 상대했으니 나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때는 육체 형식 시대입니다. 보이는 것 위주였던 시대입니다. 방법도 전부 다 성전도 성전입니다. 구약이니까 예루살렘 가야하고 성전에 가야하고 모여서 거기서 소 양 짐승을 잡아야하고, 애굽에 들어갔다가 돌아가는 소망은 가나안입니다. 그러면 본향 소망은 어딥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소망은 애굽에 들어갔던 거기서 종 노릇하고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이 있다. 우리 본향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본향은 본향 찾는 걸 나타냄이라. 어딥니까. 하늘에 있는 것을 두고 신령한 거니까 두고 그거 말고 그들이 찾는 본향은 뭐가 되는 거겠습니까. 살고 있는 그 땅 가나안 땅입니다. 이걸 믿는거지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었다고 하니까 그런 겁니다. 자기들에게 죽지 않았으니까 자손들에게 주시겠구나. 그보다 더한 것은 보이는 가나안 땅보다 더 바라본 것은 안 주시니까 영원한 가나안, 더 죽음 넘어 세계의 것을 주시려나보다. 이걸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게 한 겁니다.
그 증거가 뭐냐. 하늘에 있는 성을 바란 그 증거가 뭐냐.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을 예비하셨다는 겁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왔다가 430년 지나고 출애굽해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그 과정에 진짜 그들의 알맹이는 믿음의 조상이 바라봤던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게 더 맞는 겁니다. 그 내면에는 하늘 소망을 바라보는 게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회 말씀에서 첫 번째 이번 공과 제목이 잊지 말자입니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잊지 말자는 겁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한 받은 선민으로 공과에 보니까 성민도 맞고 거룩할 성자 하나님 백성이라는 거지요. 선민이라고 합니다. 가릴 선자입니다. 택할 선자입니다. 구별된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민입니다. 너희가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백성이고 구별된 백성이고 그러기 때문에 애굽에 살고 있지만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야합니다. 돌아갈 마음을 가져야하고 가지고 생각해야하고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 사는 겁니다.
모세는 기억을 했고 모세 외의 결과적으로 보면 여호수아 갈렙은 기억을 했겠고 나머지 200만명은 전부 다가 애굽에 살면서 가나안 땅은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애굽나라가 외국이고 엄밀하게 말하면 적국이 아닌 적국입니다. 민족을 다 죽이려고 했습니다. 살 수는 없을 것이고 살아선 안되는 곳입니다. 남의 나라입니다. 애굽에 사람처럼 그리 되어졌는가. 남의 나라인데 그리 되어졌는데 왜 그리 되어졌는가. 애굽에 살다 보니까. 별 사람이 없는 겁니다. 학교에 다니다 보니까 학생이 되는 거지요. 학교 생활을 하다보니 학생이 되는 겁니다. 그건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학업의 사람이 되어버리면 믿는 사람으로써 문제가 있는 거죠. 직장 생활하다보니 직장의 사람이 된다. 사업을 하다보니 사업의 사람이 된다. 농사를 짓다보니 농업의 사람이 된다. 120년동안 방주를 만들고 온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의 의사가 된 노아가 홍수 후에 농업을 시작해서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를 수확했습니다.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나쁜 게 아닙니다. 취했습니다. 그걸로 함을 저주했고 대대로 내려갔습니다. 제 속에 있는 배은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주 받아 마땅하나 그렇게 만든 원인은 노아에게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니까 애굽의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학교에 다니다보니 학업의 사람이 됩니다. 직장을 다니다보니 직장의 사람이 됩니다. 직업이 목수인 사람들은 정확합니다. 목수는 잘못 잘라버리면 새로 잘라야합니다. 미장은 새로 바르면 됩니다. 직업이 사람을 만드는데 미장을 해도 그런 사람이 되면 안되는 겁니다. 환경에 영향받도록 환경에 피동되도록 환경에 적응하도록 환경의 사람이 되도록 지으셨습니다. 왜 그리지으셨습니까. 그렇게 바꾸어지도록 사람이 변화되도록 그렇게 지었습니다. 금도 안 변합니다. 생명있는 것은 안 변합니다. 사람은 잘 변합니다 하나님을 닮아서 변화되려고. 그래서 하나님같이 불변성을 가지면서 피조물 요소를 하나님 형상으로 성화되어가면서 불변의 사람이 되어가는 게 믿는 사람의 방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리 되지 말아야합니다. 잊지말자. 남의 나라고 이 세상 지나갈 나그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하고 이걸 잊어버릴 때 자기 정체성을 사람이 잊어버리면 자기를 잊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이걸 살아있으나 죽은자라는 겁니다. 뭘 다 빼앗기고 손해봐도 자신은 지킵니다. 정체성을 지키는 겁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이 이 당 갔다 저 당 갔다 그 사람들은 철새들입니다. 인격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까 엉망이 되는 거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살아가다보니까 세상을 살다보니까 가정 생활하다보면은 아이를 기르다보면 엄마가 되는 건데 엄마가 되는 건 참 좋은 겁니다. 가정에 살다보니까 가정의 사람이 되고 이런 저런 세상에 살다 보니까 세상의 사람이 되면 실패하게 되는 겁니다. 교회라는 것은 세상에 있을 때 교회의 본분 교회라는 단체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현재 모습이 되어지게 된겁니다. 교회가 뭔지, 모르는지 알고도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1차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레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그 레위인 중에서도 제사장이 되어야겠고 하나님과 1대1로 대면하는 대제사장을 목표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만 더 합니다. 현실적으로 세상에 살다보니까 세상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백성임을 잊지말자고 합니다. 자칫하면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데 이 세상이 되지 않고 해야하는데 쉽지 않지요. 거기서 우리가 구별할 것, 이 세상 속에 살면서 이 세상이 되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야하는데 이 세상을 버리면 됩니다. 세상과 상관없이 살아도 그게 안되는 거지요. 세상과 단절하고 사는 그런 종교가 대표적으로 불교입니다. 염세주의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과 끊어진 불교가 있습니까. 그 원래 세상이니까 그렇지만 처음부터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이 되지 않아야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우리 정체성을 기억을 하고 잊지않고 기억을 하면서 그러면서 알아야할 것은 이 세상을 바로 알아야하는 겁니다. 나를 알고 세상을 알고 그래야 이 세상의 밥이 되지 않고 휩쓸려가지 않습니다. 알기는 알아야합니다. 교회는 교회고 세상은 세상이고 우리는 성도고 하나님 백성이고 이 세상 사람은 아니다. 구별해서 하는 게 중요합니다. 항상 두 길이고 오직 한 길입니다. 이렇게 구별해서 하는 겁니다. 내가 사는 세상 현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에서 구별해서 살 수 있는 것이지 잊어버려도 문제고 내가 땅 딛고 공기 마시는 세상을 알지 못해도 문제가 되는 겁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 환경을 아는 겁니다. 유치원에 보내면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아야합니다. 선생님의 사상이 어떤 사상을 가진 사람인지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학교를 함부로 보내기 조심스러운겁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학교 잘못된 사상 가진 교사들에게 교육 받으면 머리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어릴 때 들어간 사상은 빼내지도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아는 거죠.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이 시대 사람들을 무엇이며 이게 아는 겁니다. 알아야 이 세상이 되지 않고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겁니다. 공과를 생각하시면서 믿음의 조상들은 이 세상을 외국인으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리 살아야합니다. 하늘의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힘을 써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