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0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5-04-20조회 78추천 10
2025년 4월 20일 주일 오후
찬송: 31장, 33장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35절 ~ 38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그날에 살아생전 평생을 바치는 것이 기독교 생활입니다. 그러나 만에하나 부활이 없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속는 거지요. 그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살았는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된다 그런 겁니다. 문제는 부활이란 죽음 넘어에 있고 죽으면 끝이었습니다. 죽었다가 돌아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게 한 번씩 있어도 잠깐 보고 그러지 죽음 넘어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고 그런 사람은 없기 때문에 죽음 넘어 세계는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니 믿기가 어렵고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죽음 너머의 전부를 거는 것인데 과거에 미개할 때는 모든 게 다 어렸으니까 그래서 하늘의 번개만 쳐도 하늘을 겁을 내고 천둥 소리 쳐도 놀라고 비행기 소리 듣고 아프리카에서는 혼비백산이라고 했지요. 생전 평생 수천년만에 본 일이기 때문에 난리났지요. 모든 게 다 밝혀진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과거는 어릴 때라서 죽음 넘어의 세계를 소망하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과학이 발달되어서 많은 것을 밝혀내다 보니까 바로 알아내고 바로 알아지게 되면 하나님이 더 좋아져야하는데 인간의 지능과 과학이 발달되니까 정작 그것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그런 시대가 지금 말세지말입니다. 인간은 잘났고 밟고 총명한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더 어리석어지고 그런 시대가 되어져 있습니다. 옛날 어두웠고 몰랐을 때는 부활은 모르는 게 많으니까 지금은 다 밝혀졌는데 죽음 넘어의 세계를 알 수 있으냐, 과학이 그게 됩니까. 달나라 보내고 화성 보내고 그러는데 넓게 보고 크게 보면 별 거 아닌 것이지요. 지구라는 게 작고 작고 작고 수 많은 모래알에 되는 것도 지구입니다. 아무리 죽었다해도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이것보다 더 작은 게 물질계 우주입니다. 이걸 발전 발달했다고 하는 게 인간이니까 못난 것이 되는 거지요.
마음 세계까지는 물질이므로 인간이 밝혀냅니다. 물질은 인간에게 맡겨놨기 때문에 그러나 영의 세계는 불가능합니다. 인공지능이 끝을 향해가도 영은 모릅니다.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건 성경 진리이므로 단정할 수 있는 겁니다. 영이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인간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부모가 나를 낳은 것은 마음과 몸이지 영이 아닙니다. 심신을 만드시고 그때 영을 넣은 게 하나님이시므로 사람에 속한 게 아닌 것이지요.
영이란 존재를 인간 과학이 알 수 없고 마찬가지고 죽음 넘어 세계로 인간 과학이 알 수 없습니다. 과학은 봐야하고 이치에 맞아야하고 통계에 맞아야하는데 여기 맞는 게 없는 게 죽음 넘어 상황이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까 기독교가 타락되니까 사기꾼 교회가 많이 생기고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사람이 하도 종교성 잃고 하니까 그리 되는 것이고 특정 지역에 따라서 지방성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 지방 사람은 그런 성향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종교성 가지고 하나님 은혜인데 백 목사님을 믿기 전에는 많은 종교를 살펴봤다고 합니다. 불교도 보고 뭐도 보고 하니까 그 끝이 환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끝이 보인다는 말은 인간의 안에 있다는 거지요. 사람이 만든 종교를 은밀하게 따지면 논리로 따져보면 그럴 수 있는 거지요, 저승을 모르는데 저승이 있다. 그런 경전을 만들어놓고 포장하나 정말히냐 양심을 두고 정말이냐 그럴 때는 우리가 볼 때는 거짓말이지요. 기독교 빼고 사기 아닌 종교가 있습니까. 마지막에 봐야 알지요. 우리는 그리 가는 겁니다. 불교에는 창세 전에 석가모니가 세상을 지었다 그런 말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파생된 잘못된 종교는 그럽니다만은 사람이 있기 전에 있는 종교가 기독교다 라고 합니다. 죽음 넘어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기는 믿는데 말세가 되어서 기독교도 죽음 넘어 가보지 못하고 믿기 보다는 좋은 성경 말씀 중에서 아름다운 말씀. 간음하지 말아라 도적질하지 말아라 이 세상적인 이웃을 구제하고 이 세상을 천국 만드는 그렇게 변질되는 것이 수 많은 기독교 교단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기독교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기둑교 교리의 무엇의 핵심이라고요 부활 도리가 가장 핵심입니다. 부활 교리를 빼면 기독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것이지요.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무엇으로만 부활이 믿어집니까. 부활이 믿어지는 것은 부활의 도입니다. 은혜가야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 부활은 근거가 무엇이냐 우리 부활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 부활의 근거가 무엇이지요. 주님 부활이 오셨다면 없는 겁니다.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 죽으셨습니까.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 그랬습니다. 없었다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지요. 주님 부활하심으로 완성이 되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부활이 없는 종교는 반쪽자리고 미완성이고 모든 미완성은 실패가 되는 겁니다. 마무리까지 되어야 그리 되는 겁니ᄃᆞ. 마지막에 양쪽에서 도장을 찍어야 진짜가 되는 겁니다.
우리 대속은 사활의 대속, 죽음과 살아나는 것 부활의 대속입니다. 부활의 몸 부활의 형체에서 원리를 찾아봤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모습으로 부활하시는데 그 부활의 형체의 모습은 신령한 몸이다. 신령이다 그 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100년이 가고 1000년이 가도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제자들이 예수님 돌아가시고 무서워하여 문을 꼭 닫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영인가. 그 마음을 아시고 천사는 무엇에 없다고요, 영은 무엇이 없다고요. 천사는 살과 뼈가 없느리라 나를 만져봐라, 나는 있느니라. 잡수셨습니다. 부활의 몸입니다. 그리 진작을 하는 겁니다. 죽을 때 모습으로 부활해서 살면 보기 좋은 모습이면 부활도 너무 좋겠다 죽을 때 다윗도 다윗왕이 늙으매 이불을 덮어서 따뜻하게 된지라.
백 목사님도 80세 때 계단 자유롭게 못 오르셨죠. 다섯 살 짜리 뛰어다니는데 나는 뒤뚱뒤뚱한다. 죽을 때 몸으로 부활하면 뭘 초월한다고요, 시공을 초월해서 먹지도 않고 살아 생전에 죽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지요. 이런 몸으로 부활한게 부활의 모습인데 오전에 생각해봤습니다. 누가 묻기를 묻는 건 왜 묻습니까. 묻는 거는 왜 묻죠. 질문은 왜 하지요. 누가 묻기를, 자기 딴에는 안다고 하니까 그런 겁니다. 100가지를 아는데 101가지가 나오면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박사의 박자가 넓은 박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박사를 모아서도 안되는 겁니다. 박사는 그래봐야 그쪽 면의 박사지 여기는 하나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1000가지 아는 박사인데 그 범위를 벗어나서 물으면 모를 수도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다 슬퍼하고 다시 산다고 그러니까 어떻게 다시 사냐, 어떤 과정 경로 묻습니다. 만약 살아간다면 뭐라고 묻습니까. 본문에 몇 가지 묻습니까. 어떻게 사냐 사는 원리가 뭐냐 이치가 뭐냐 어떤 과정 경로로 살아나냐. 살아나면 어떤 몸으로 살아가냐, 두 가지를 물어보니까 말씀 대답은 어리석은 자야, 어리석은 자는 누구를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불신자, 안 믿는 사람 세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불신자. 말씀에 대한 불신자. 그들은 다 잘났다고 합니다. 세상에 못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다보면 어리석은 자야,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안 믿고 진리 말씀을 안 믿는자야. 너거 사는 세상에 평생을 통해 밝고다는 땅에 부활을 가르쳤는데 저도 부활의 원리는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고백을 하는데, 어리석은 자야, 6000년 세월 속에 부활의 원리가 들었는데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어야 부활하니까 그러겠는데 씨를 심어보면 씨앗을 심어보면 싹이 나지요. 학생들 싹이 납니까. 지금 심으면 됩니다. 심게 해보십시오. 싹이 나면서 파보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씨앗이 죽어야 거기서 뭐가 나온다고요 새 생명이 만들어집니다. 그 새싹은 새 생명입니다. 이게 안 죽고 살아있으면 100날 기다려도 싹이 안납니다. 그게 벌어지고 그래야 싹이 나는 겁니다. 새 생명이 이게 부활의 원리 첫 번째입니다. 씨앗 하나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게 죽음으로 싹이 나서 죽은겁니까 더 많아집니까. 죽었는데 원래 생명없는 죽음이란 없어지는건데 살아나는 것이 천 배 만 배 되는 것이 부활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첫 번째는 어리석은 자야.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으면 사는 거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어있고 다 부활합니다. 어떤 악인도 어린 아이도 죄인도 다 부활합니다. 부활의 종류가 몇 가지 입니까. 첫째는요. 첫째 부활, 생명 부활 둘째 부활 사망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은 생명부활. 주님 재림하실 때 그럽니다. 그리고 1000년이 끝나고 난 다음 심판 부활이 있습니다. 죽으면 다 부활합니다. 그게 부활의 첫 번째.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절은 첫째는 살아나지 못하겠고 너의 뿌리는 것은 사과 나무를 심는 게 아니고 사과 씨앗을 심는 겁니다. 배추 심으면 배추 거름됩니다. 배추 씨앗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밀이나 다른 씨앗을 심는다 종자를 심는다 그 말인데 그거 하나 심을 뿐인데 이거 심어서 그 다음 어찌된다고요 심으면 그 다음에는 죽고 거기서 싹이 나고 그것에 형체가 되는데 하나님이 그 형체를 각 종자에게 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종자의 형태가 있습니다. 감나무 씨앗인데 감나무 씨앗이고 은행나무는 모든 종류의 식물들이 그리 됩니다. 종자를 심었을 뿐인데 죽음으로 자라면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가져옵니다. 적용시켜옵니다. 첫째 부활은 원리가 뭡니까. 죽어야 삽니다.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곡식 종자도 죽어야하고 땅 속에 있는 씨앗도 살아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내가 죽어야 신령함으로 그리 됩니다. 살아 생전에는 아무리 건강하고 좋아도 그 몸은 죄로 인한 저주와 사망 아래 있는 몸입니다. 사람의 몸이 건강하고 잘난 몸은 참 8등신이라 그리 되지만 아주 잘난 사람이라고 그러는데 세월 속에 다 썩어지고 낡아지고 바스라집니다. 그걸 다 초월한 죽지도 않는 몸으로 죽어야 산다고 했습니다.
이 부활의 것을 오늘 가져서 그때 주님 데려가시면 죽어야 사는데 부활 그날에 기준을 말씀합니다. 39절 보면은 하나님이 각 종자를 주신다. 육체라는 것은 형체라는 이름입니다. 모양을 가진 몸 덩어리, 모양을 가진 거 바닷가에 있습니다. 물고기도 종류에 따라 다르지마 고대로 형체가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형체가 있습니다. 사람도 형체가 있습니다. 형체를 가진 그 이름은 같은데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뭐가 더 비싸냐. 모래알 하나하고 물고기 하나하고 얼마나 비쌀까요. 공중의 새는 잘 모르겠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갖다대면 그런 거겠죠. 강아지보다 사람이 더 비싸겠지요. 형체는 형체인데 그 형체마다 정해놓으신 존재의 가치가 다르고 기능의 가치가 다르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가장 높은 것. 39절 육체는 다 같은 게 아니고 다 다릅니다.
하늘에 속하는 새도 있고 땅에 속하는 새도 있다. 해와 달은 꼭 같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기를 가치가 있습니다 .달은 해보다는 못하다. 별들도 많은데 해와 달이 다르고 달과 별이 많은데 수 없이 많아서 별과 별이 또 다르다고 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같다. 사람이 죽으면 부활하는데 죽은자의 부활은 부활 형체의 같이 기능의 차이가 해와 달과 별들의 차이처럼 사람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 차이처럼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을 말씀합니다.
죽어야하는데, 몸은 마지막에 죽는데 살아있을 때 죽어야하는 게 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면 죽어야할 게 있습니다. 153장 첫째 뭐가 죽지요. 육이 죽으니까 뭘 삽니까.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사시는 겁니다. 옛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이 사는 거지 옛사람이 살아있으면 결코 살아나지 않는 겁니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사는 겁니다. 내 안에 인간 사욕이 죽어야 성령의 사욕이 내 속에서 살아나게 됩니다. 인간 감정이 죽어야 영감이 삽니다. 내 체면 자존심이 죽어야 주님이 나타나시게 되는 겁니다. 악성과 악습이 죽어야 새 사람이 살아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기는 단언코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심었는데 죽었습니다.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이게 형체가 자라서 심는 그 알갱이와 비교 못할 만큼 되듯이 이것처럼 이 세상을 사는 죽는 나라는 사람은 고깃덩어리와 마음은 보잘 거 없는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백날 인류 발전 인류 생활에 한다고 해도 불탈 거니까 다 헛일이 되고 마는 거지요. 솔로몬이 말하길 다 헛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지요. 깊이 생각하고 명상하고 연구하고 많이 생각해서 인간을 복되게 만든 것이 사상가들 철학가들 참 좋은 그런 인성을 가진 인물들이 많은데 마지막에 헛되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누가 있을지 알 수 없는 거지요. 많은 사람은 미혹의 길로 인도했으니까.
부활의 원리 첫 번째 죽어야 사는 겁니다. 두 번째 심을 때는 알갱이 뿐입니다. 아무것도 아닌겁니다. 이걸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심었는데 영광스럽게 그런 겁니다. 화려하게 살아나는 겁니다. 영원토록 빛나는 겁니다. 누가 시험에 들었는데 기도하는 것 가서 심방하는 것 밥 한 그릇 사주는 것 죄를 이겨내는 것 그거 하나하나가 아가서에 주님이 있고 한 번 보는 것과 빼앗았다. 바른 중심으로 그리 되는 겁니다. 하늘나라가 다 빼앗아서 어떻게 영광스럽게 깨어날지 모르는 거지요. 과장입니까 위로하는 말입니까. 언제 우리가 그랬습니까. 주님이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나한테 한거다. 벌벌떨고 그게 나한테 한거다. 그렇게 주님 말씀 하셨습니다.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부활의 원리 몇 가지 말씀드렸지요. 죽어야 삽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부활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죽는 것은 썩어질 것입니다. 알맹이 하나입니다. 이게 비교 못할만큼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차이가 다른 건데 형체가 다르다. 그 날의 영광의 차이는 무한의 차이로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31장, 33장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35절 ~ 38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그날에 살아생전 평생을 바치는 것이 기독교 생활입니다. 그러나 만에하나 부활이 없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속는 거지요. 그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살았는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된다 그런 겁니다. 문제는 부활이란 죽음 넘어에 있고 죽으면 끝이었습니다. 죽었다가 돌아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게 한 번씩 있어도 잠깐 보고 그러지 죽음 넘어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보고 그런 사람은 없기 때문에 죽음 넘어 세계는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그러니 믿기가 어렵고 그리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죽음 너머의 전부를 거는 것인데 과거에 미개할 때는 모든 게 다 어렸으니까 그래서 하늘의 번개만 쳐도 하늘을 겁을 내고 천둥 소리 쳐도 놀라고 비행기 소리 듣고 아프리카에서는 혼비백산이라고 했지요. 생전 평생 수천년만에 본 일이기 때문에 난리났지요. 모든 게 다 밝혀진 그런 것이었기 때문에 과거는 어릴 때라서 죽음 넘어의 세계를 소망하는 것이 예사였습니다
과학이 발달되어서 많은 것을 밝혀내다 보니까 바로 알아내고 바로 알아지게 되면 하나님이 더 좋아져야하는데 인간의 지능과 과학이 발달되니까 정작 그것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그런 시대가 지금 말세지말입니다. 인간은 잘났고 밟고 총명한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더 어리석어지고 그런 시대가 되어져 있습니다. 옛날 어두웠고 몰랐을 때는 부활은 모르는 게 많으니까 지금은 다 밝혀졌는데 죽음 넘어의 세계를 알 수 있으냐, 과학이 그게 됩니까. 달나라 보내고 화성 보내고 그러는데 넓게 보고 크게 보면 별 거 아닌 것이지요. 지구라는 게 작고 작고 작고 수 많은 모래알에 되는 것도 지구입니다. 아무리 죽었다해도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이것보다 더 작은 게 물질계 우주입니다. 이걸 발전 발달했다고 하는 게 인간이니까 못난 것이 되는 거지요.
마음 세계까지는 물질이므로 인간이 밝혀냅니다. 물질은 인간에게 맡겨놨기 때문에 그러나 영의 세계는 불가능합니다. 인공지능이 끝을 향해가도 영은 모릅니다.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건 성경 진리이므로 단정할 수 있는 겁니다. 영이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인간에게 주지 않으셨습니다. 부모가 나를 낳은 것은 마음과 몸이지 영이 아닙니다. 심신을 만드시고 그때 영을 넣은 게 하나님이시므로 사람에 속한 게 아닌 것이지요.
영이란 존재를 인간 과학이 알 수 없고 마찬가지고 죽음 넘어 세계로 인간 과학이 알 수 없습니다. 과학은 봐야하고 이치에 맞아야하고 통계에 맞아야하는데 여기 맞는 게 없는 게 죽음 넘어 상황이므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다보니까 기독교가 타락되니까 사기꾼 교회가 많이 생기고 많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사람이 하도 종교성 잃고 하니까 그리 되는 것이고 특정 지역에 따라서 지방성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 지방 사람은 그런 성향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종교성 가지고 하나님 은혜인데 백 목사님을 믿기 전에는 많은 종교를 살펴봤다고 합니다. 불교도 보고 뭐도 보고 하니까 그 끝이 환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인간에게 끝이 보인다는 말은 인간의 안에 있다는 거지요. 사람이 만든 종교를 은밀하게 따지면 논리로 따져보면 그럴 수 있는 거지요, 저승을 모르는데 저승이 있다. 그런 경전을 만들어놓고 포장하나 정말히냐 양심을 두고 정말이냐 그럴 때는 우리가 볼 때는 거짓말이지요. 기독교 빼고 사기 아닌 종교가 있습니까. 마지막에 봐야 알지요. 우리는 그리 가는 겁니다. 불교에는 창세 전에 석가모니가 세상을 지었다 그런 말 없습니다. 기독교에서 파생된 잘못된 종교는 그럽니다만은 사람이 있기 전에 있는 종교가 기독교다 라고 합니다. 죽음 넘어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기는 믿는데 말세가 되어서 기독교도 죽음 넘어 가보지 못하고 믿기 보다는 좋은 성경 말씀 중에서 아름다운 말씀. 간음하지 말아라 도적질하지 말아라 이 세상적인 이웃을 구제하고 이 세상을 천국 만드는 그렇게 변질되는 것이 수 많은 기독교 교단입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기독교가 아니게 되는 겁니다.
기둑교 교리의 무엇의 핵심이라고요 부활 도리가 가장 핵심입니다. 부활 교리를 빼면 기독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앙꼬 없는 찐빵이 되는 것이지요.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 무엇으로만 부활이 믿어집니까. 부활이 믿어지는 것은 부활의 도입니다. 은혜가야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 부활은 근거가 무엇이냐 우리 부활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우리 부활의 근거가 무엇이지요. 주님 부활이 오셨다면 없는 겁니다.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 죽으셨습니까.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 그랬습니다. 없었다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지요. 주님 부활하심으로 완성이 되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부활이 없는 종교는 반쪽자리고 미완성이고 모든 미완성은 실패가 되는 겁니다. 마무리까지 되어야 그리 되는 겁니ᄃᆞ. 마지막에 양쪽에서 도장을 찍어야 진짜가 되는 겁니다.
우리 대속은 사활의 대속, 죽음과 살아나는 것 부활의 대속입니다. 부활의 몸 부활의 형체에서 원리를 찾아봤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모습으로 부활하시는데 그 부활의 형체의 모습은 신령한 몸이다. 신령이다 그 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100년이 가고 1000년이 가도 늙지 않고 죽지 않는.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제자들이 예수님 돌아가시고 무서워하여 문을 꼭 닫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영인가. 그 마음을 아시고 천사는 무엇에 없다고요, 영은 무엇이 없다고요. 천사는 살과 뼈가 없느리라 나를 만져봐라, 나는 있느니라. 잡수셨습니다. 부활의 몸입니다. 그리 진작을 하는 겁니다. 죽을 때 모습으로 부활해서 살면 보기 좋은 모습이면 부활도 너무 좋겠다 죽을 때 다윗도 다윗왕이 늙으매 이불을 덮어서 따뜻하게 된지라.
백 목사님도 80세 때 계단 자유롭게 못 오르셨죠. 다섯 살 짜리 뛰어다니는데 나는 뒤뚱뒤뚱한다. 죽을 때 몸으로 부활하면 뭘 초월한다고요, 시공을 초월해서 먹지도 않고 살아 생전에 죽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거지요. 이런 몸으로 부활한게 부활의 모습인데 오전에 생각해봤습니다. 누가 묻기를 묻는 건 왜 묻습니까. 묻는 거는 왜 묻죠. 질문은 왜 하지요. 누가 묻기를, 자기 딴에는 안다고 하니까 그런 겁니다. 100가지를 아는데 101가지가 나오면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박사의 박자가 넓은 박자입니다. 세상의 모든 박사를 모아서도 안되는 겁니다. 박사는 그래봐야 그쪽 면의 박사지 여기는 하나도 모를 수도 있습니다. 1000가지 아는 박사인데 그 범위를 벗어나서 물으면 모를 수도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이 다 슬퍼하고 다시 산다고 그러니까 어떻게 다시 사냐, 어떤 과정 경로 묻습니다. 만약 살아간다면 뭐라고 묻습니까. 본문에 몇 가지 묻습니까. 어떻게 사냐 사는 원리가 뭐냐 이치가 뭐냐 어떤 과정 경로로 살아나냐. 살아나면 어떤 몸으로 살아가냐, 두 가지를 물어보니까 말씀 대답은 어리석은 자야, 어리석은 자는 누구를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는 자가 어리석은 자입니다. 불신자, 안 믿는 사람 세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불신자. 말씀에 대한 불신자. 그들은 다 잘났다고 합니다. 세상에 못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다보면 어리석은 자야,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안 믿고 진리 말씀을 안 믿는자야. 너거 사는 세상에 평생을 통해 밝고다는 땅에 부활을 가르쳤는데 저도 부활의 원리는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고백을 하는데, 어리석은 자야, 6000년 세월 속에 부활의 원리가 들었는데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어야 부활하니까 그러겠는데 씨를 심어보면 씨앗을 심어보면 싹이 나지요. 학생들 싹이 납니까. 지금 심으면 됩니다. 심게 해보십시오. 싹이 나면서 파보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씨앗이 죽어야 거기서 뭐가 나온다고요 새 생명이 만들어집니다. 그 새싹은 새 생명입니다. 이게 안 죽고 살아있으면 100날 기다려도 싹이 안납니다. 그게 벌어지고 그래야 싹이 나는 겁니다. 새 생명이 이게 부활의 원리 첫 번째입니다. 씨앗 하나가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게 죽음으로 싹이 나서 죽은겁니까 더 많아집니까. 죽었는데 원래 생명없는 죽음이란 없어지는건데 살아나는 것이 천 배 만 배 되는 것이 부활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첫 번째는 어리석은 자야.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으면 사는 거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다 죽게 되어있고 다 부활합니다. 어떤 악인도 어린 아이도 죄인도 다 부활합니다. 부활의 종류가 몇 가지 입니까. 첫째는요. 첫째 부활, 생명 부활 둘째 부활 사망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은 생명부활. 주님 재림하실 때 그럽니다. 그리고 1000년이 끝나고 난 다음 심판 부활이 있습니다. 죽으면 다 부활합니다. 그게 부활의 첫 번째.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절은 첫째는 살아나지 못하겠고 너의 뿌리는 것은 사과 나무를 심는 게 아니고 사과 씨앗을 심는 겁니다. 배추 심으면 배추 거름됩니다. 배추 씨앗은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밀이나 다른 씨앗을 심는다 종자를 심는다 그 말인데 그거 하나 심을 뿐인데 이거 심어서 그 다음 어찌된다고요 심으면 그 다음에는 죽고 거기서 싹이 나고 그것에 형체가 되는데 하나님이 그 형체를 각 종자에게 주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종자의 형태가 있습니다. 감나무 씨앗인데 감나무 씨앗이고 은행나무는 모든 종류의 식물들이 그리 됩니다. 종자를 심었을 뿐인데 죽음으로 자라면 되는 것입니다. 그걸 가지고 가져옵니다. 적용시켜옵니다. 첫째 부활은 원리가 뭡니까. 죽어야 삽니다.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곡식 종자도 죽어야하고 땅 속에 있는 씨앗도 살아나는 겁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 내가 죽어야 신령함으로 그리 됩니다. 살아 생전에는 아무리 건강하고 좋아도 그 몸은 죄로 인한 저주와 사망 아래 있는 몸입니다. 사람의 몸이 건강하고 잘난 몸은 참 8등신이라 그리 되지만 아주 잘난 사람이라고 그러는데 세월 속에 다 썩어지고 낡아지고 바스라집니다. 그걸 다 초월한 죽지도 않는 몸으로 죽어야 산다고 했습니다.
이 부활의 것을 오늘 가져서 그때 주님 데려가시면 죽어야 사는데 부활 그날에 기준을 말씀합니다. 39절 보면은 하나님이 각 종자를 주신다. 육체라는 것은 형체라는 이름입니다. 모양을 가진 몸 덩어리, 모양을 가진 거 바닷가에 있습니다. 물고기도 종류에 따라 다르지마 고대로 형체가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도 형체가 있습니다. 사람도 형체가 있습니다. 형체를 가진 그 이름은 같은데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뭐가 더 비싸냐. 모래알 하나하고 물고기 하나하고 얼마나 비쌀까요. 공중의 새는 잘 모르겠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갖다대면 그런 거겠죠. 강아지보다 사람이 더 비싸겠지요. 형체는 형체인데 그 형체마다 정해놓으신 존재의 가치가 다르고 기능의 가치가 다르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가장 높은 것. 39절 육체는 다 같은 게 아니고 다 다릅니다.
하늘에 속하는 새도 있고 땅에 속하는 새도 있다. 해와 달은 꼭 같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기를 가치가 있습니다 .달은 해보다는 못하다. 별들도 많은데 해와 달이 다르고 달과 별이 많은데 수 없이 많아서 별과 별이 또 다르다고 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같다. 사람이 죽으면 부활하는데 죽은자의 부활은 부활 형체의 같이 기능의 차이가 해와 달과 별들의 차이처럼 사람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 차이처럼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을 말씀합니다.
죽어야하는데, 몸은 마지막에 죽는데 살아있을 때 죽어야하는 게 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면 죽어야할 게 있습니다. 153장 첫째 뭐가 죽지요. 육이 죽으니까 뭘 삽니까.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사시는 겁니다. 옛사람이 죽어야 새 사람이 사는 거지 옛사람이 살아있으면 결코 살아나지 않는 겁니다. 내가 죽어야 주님이 사는 겁니다. 내 안에 인간 사욕이 죽어야 성령의 사욕이 내 속에서 살아나게 됩니다. 인간 감정이 죽어야 영감이 삽니다. 내 체면 자존심이 죽어야 주님이 나타나시게 되는 겁니다. 악성과 악습이 죽어야 새 사람이 살아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기는 단언코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심었는데 죽었습니다.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이게 형체가 자라서 심는 그 알갱이와 비교 못할 만큼 되듯이 이것처럼 이 세상을 사는 죽는 나라는 사람은 고깃덩어리와 마음은 보잘 거 없는 것입니다. 이걸 가지고 백날 인류 발전 인류 생활에 한다고 해도 불탈 거니까 다 헛일이 되고 마는 거지요. 솔로몬이 말하길 다 헛된다는 것은 그런 것이지요. 깊이 생각하고 명상하고 연구하고 많이 생각해서 인간을 복되게 만든 것이 사상가들 철학가들 참 좋은 그런 인성을 가진 인물들이 많은데 마지막에 헛되다. 지옥의 가장 밑바닥에 누가 있을지 알 수 없는 거지요. 많은 사람은 미혹의 길로 인도했으니까.
부활의 원리 첫 번째 죽어야 사는 겁니다. 두 번째 심을 때는 알갱이 뿐입니다. 아무것도 아닌겁니다. 이걸 가지고 말씀을 가지고 심었는데 영광스럽게 그런 겁니다. 화려하게 살아나는 겁니다. 영원토록 빛나는 겁니다. 누가 시험에 들었는데 기도하는 것 가서 심방하는 것 밥 한 그릇 사주는 것 죄를 이겨내는 것 그거 하나하나가 아가서에 주님이 있고 한 번 보는 것과 빼앗았다. 바른 중심으로 그리 되는 겁니다. 하늘나라가 다 빼앗아서 어떻게 영광스럽게 깨어날지 모르는 거지요. 과장입니까 위로하는 말입니까. 언제 우리가 그랬습니까. 주님이 뭐라고 답하셨습니까. 지극히 작은 것 하나 나한테 한거다. 벌벌떨고 그게 나한테 한거다. 그렇게 주님 말씀 하셨습니다.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부활의 원리 몇 가지 말씀드렸지요. 죽어야 삽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부활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죽는 것은 썩어질 것입니다. 알맹이 하나입니다. 이게 비교 못할만큼 그렇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차이가 다른 건데 형체가 다르다. 그 날의 영광의 차이는 무한의 차이로 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