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0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04-20조회 73추천 8
2025년 4월 20일 주일 오전
찬송: 97장, 32장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물질 홍수 시대에 빠져서 죽음과 재림과 부활과 심판, 무궁세계를 생각해봤습니다.
부활의 원리를 알 수 있을까. 사람이 부활하는 것은 어떻게 부활하게 될까. 그걸 생각해보는 겁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소망의 도입니다. 기독교 안에 많은 교리가 있습니다. 7개인가 8개인가,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을 빼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니고 부활이 없다면 믿는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지식, 인간의 상식 인간의 역사 통계 이런 걸 가지고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부활의 원리라고 말씀을 드렸으나 하나님께서 자연 계시를 통해서 다루나 아닌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 교리, 성경에 비롯된 대부분의 말씀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은혜고 믿어야 믿어지는 것이지 믿을 때 믿음은 자라고 안 믿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겁니다.
부활의 도리를 깨달은 사람이 누구지요.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명령 교리 그 모습 이 창은 못 뚫는 게 없습니다. 못 막는 창이 없습니까. 그러면 그 창으로 방패를 뚫어보시오. 모순입니다. 산에 가서 나중에 뭐가 됩니까. 솔로몬의 성전이 모리아 산에 가게 됩니다. 이삭의 몸에서 자손이 난다고 약속하셨는데 어린 이삭을 제물로 바치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주시는 약속은 모순이지요. 내가 이삭을 바치면 다시 살려주시겠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무도 몰랐던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다는 도리를 깨달았고 그 방법이 뭐냐 그게 바로 뭡니까 믿음으로, 무엇이 믿음입니까. 믿음이란 순종입니다. 그러니 깨달아지게 된 겁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입니다. 인간 상식으로 믿음으로 순종으로 깨달아지는 게 부활의 도리입니다.
이 부활은 영원 전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지만 그 근거가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마 근거가 되어집니다. 우리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셨으니까 3일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 다시 살아나는 산 소망을 근거가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했다. 심신의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는 걸 중생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주님 부활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없었다면 우리 부활도 없었을 것이고 주님 대속도 미완이 되었을 것이고.
미완성은 곧 실패입니다. 주님 대속이 죽으심으로 끝나고 부활이 없으면 사활 대속으로 완성이 되어진 겁니다. 주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겐 감사하고 한 편으로 부활한 인생이다. 감사하지만은 영원토록 하는 것입니다. 크게 세 번째. 부활의 몸에는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가. 사람이 죽어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 때는 어떤 몸으로 사는가. 믿는 사람은 사람의 죽음이란 믿는 사람에게는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양복을 입고 가면 참 보기 좋습니다. 옷이란 그런 겁니다.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으면 오래된 자동차를 폐차하고 새 자동차를 하는 것처럼 우리 젊은 분들은 나이가 60이 넘어가면 젊을 때는 좋은데 나이 들면 계속 까먹지요. 그래서 백목사님은 장년반은 헌 도구다 헌 기계다. 주일학생은 새기계다. 그래서 가정이든 사회든 이 교회는 미래가 있다. 주일학생은 새기계 장년반은 헌기계. 어린이는 나라의 기둥, 새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어린 아이도 살아가다보면 바스라집니다. 좀이 먹으면 바스라지는 것인데 그래서 숭숭 뚫려서 생기고 헌 옷이 되는 겁니다. 헌 도구가 되는 겁니다.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죽고나면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은 없습니다. 일단 잉태된 생명입니다. 필연입니다.
헌 옷 벗고 새 옷을 갈아입습니다. 헌 옷이 좋습니까 새 옷이 좋습니까. 새 옷을 입으면 좋지요. 앞으로 우리가 부활한 것은 병들었고 죽습니다. 넓고 병들고 죽음은 신령한 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40일 계시며 죽었다 살아나신다고 하지만 죽은 선생님이 나타니까 천사인가 그랬습니다. 영은 뭐가 없습니까. 영은 몸이 없습니다. 내 살은 만져봐라, 옆구리를 만져봐라. 영이란 천사는 몸이 없어서 살과 뼈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살과 뼈가 있습니다. 이게 부활의 요소입니다.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아시지요, 시간과 공간. 세계에서 가장 100미터 달리기 빠른 사람이 몇 초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1키로를 갈려고 하면은요, 2시간 얼마.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니까. 공간을 초월합니다.
죽을 때 그 모습으로 부활한다. 부활한 몸은 뭐를 초월한다고, 시공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잘났든 못났든 의미가 없는 겁니다. 장애가 있던 의미가 없는 겁니다. 믿어지십니까. 믿고 소망을 하십니까. 이런 말씀을 가지고 참 좋겠다. 그런 마음이 사람이면 지혜로운 사람이고 훌륭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부활의 말씀이 우리의 부활이 앞으로 부활하면 시공을 초월합니다. 이런 부활을 말씀 들을 때 참 얼마나 좋을까 그리만 되면 좋겠다. 그러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활이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건데 4000년 역사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 그런 적이 있나.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면 사후 세계에 다른 차원이고 실제 죽었다가 그렇진 않습니다. 실제 그런 사람 없으니까 당연한거지요. 죽은 자가 살아나는 원리가 뭐냐, 죽은 자가 살아나는 원리인 것처럼 어떻게 다시 살며 예수님 당시에 죽은 자는 부활이 없다고 예수님은 시험했던 파가 어디였지요. 형이 장가가서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형의 씨를 잇게합니다. 동생이 죽으면 셋째가 또 들어갑니다. 그래서 형제들의 집안이 끊어지지 않도록합니다. 그게 법이었습니다.
맏아들이 결혼했는데 아들이 죽었습니다. 다 죽었고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아내는 누구 아내입니까. 자식이 없는데 아무도 없으니까 누구 아내가 되어야합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지요. 너희가 하나님도 천국도 몰라서 오해를 했다. 그 나라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게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그런 나라다. 그러니까 입이 막혔고 예수님께 이의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 논리가 빈틈이 없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사냐. 일반적으로 상식입니다. 믿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믿으니까 36절에 어리석은자라고 하셨습니다 왜 어리석은 자입니까. 성경은 답하기를 어리석은자, 어리석은자. 그래서 어리석은자는 어떤 겁니까. 하나님과 끊어지면 하나님 말씀을 안 믿으면 박사 학위를 10개를 가져도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안 믿으면 안 받아들이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든 존재와 그 존재의 모든 활동이 어리석은 자인 것이고 말씀이 진리인데.
너의 뿌리는 씨다.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난다.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자연 계시를 통해서 알려줍니다. 농사가 있습니다. 어리석은자여, 콩나물을 심어보면 심으면 그 콩에서 싹이 납니다. 싹이 올라오면서 그래서 씨앗이 심으면 없어져서 싹이 되어야합니다. 이 원리를 가르치니까 죽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씨앗을 뿌릴 때 죽어야 새 생명이 나옵니다.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어야 부활입니다. 누구든지 죽으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 안 죽는 사람이 없고 부활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으면 반드시 부활하게 되어있습니다. 첫째 부활 생명부활 둘째 부활은 심판 부활이라고 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심을 때는 형체를 심는 게 아닙니다. 싹이 나서 자라서 사과나무가 생겨버립니다. 형체를 버리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형체에게 자라게 주시는 것입니다. 농사를 농부가 지은 것 같은데 자라는 건 하나님이 심으신겁니다. 아무리 심어봐야 하나님께서 안주시면 안 자랍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생명종자 하나입니다. 영원토록 형체가 있습니다. 이게 썩지 않을 때 부활합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말씀드린대로 부활의 모습은 시공을 초월한 상관이 없고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씨앗을 심으면 살아나게 되는 것처럼 형체로 나타날 때 이 땅에서 가졌던 것들을 비교 못할 영광될 것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오후에 계속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97장, 32장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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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대에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물질 홍수 시대에 빠져서 죽음과 재림과 부활과 심판, 무궁세계를 생각해봤습니다.
부활의 원리를 알 수 있을까. 사람이 부활하는 것은 어떻게 부활하게 될까. 그걸 생각해보는 겁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소망의 도입니다. 기독교 안에 많은 교리가 있습니다. 7개인가 8개인가,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을 빼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아니고 부활이 없다면 믿는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지식, 인간의 상식 인간의 역사 통계 이런 걸 가지고 이해할 수 없는 겁니다. 부활의 원리라고 말씀을 드렸으나 하나님께서 자연 계시를 통해서 다루나 아닌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 교리, 성경에 비롯된 대부분의 말씀이 그렇듯이 하나님의 은혜고 믿어야 믿어지는 것이지 믿을 때 믿음은 자라고 안 믿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겁니다.
부활의 도리를 깨달은 사람이 누구지요.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명령 교리 그 모습 이 창은 못 뚫는 게 없습니다. 못 막는 창이 없습니까. 그러면 그 창으로 방패를 뚫어보시오. 모순입니다. 산에 가서 나중에 뭐가 됩니까. 솔로몬의 성전이 모리아 산에 가게 됩니다. 이삭의 몸에서 자손이 난다고 약속하셨는데 어린 이삭을 제물로 바치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주시는 약속은 모순이지요. 내가 이삭을 바치면 다시 살려주시겠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무도 몰랐던 죽은 사람이 살아날 수 있다는 도리를 깨달았고 그 방법이 뭐냐 그게 바로 뭡니까 믿음으로, 무엇이 믿음입니까. 믿음이란 순종입니다. 그러니 깨달아지게 된 겁니다.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입니다. 인간 상식으로 믿음으로 순종으로 깨달아지는 게 부활의 도리입니다.
이 부활은 영원 전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지만 그 근거가 뭐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마 근거가 되어집니다. 우리 죄를 다 짊어지고 죽으셨으니까 3일만에 다시 부활하심으로 다시 살아나는 산 소망을 근거가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게 했다. 심신의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는 걸 중생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주님 부활입니다. 만약에 주님이 없었다면 우리 부활도 없었을 것이고 주님 대속도 미완이 되었을 것이고.
미완성은 곧 실패입니다. 주님 대속이 죽으심으로 끝나고 부활이 없으면 사활 대속으로 완성이 되어진 겁니다. 주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겐 감사하고 한 편으로 부활한 인생이다. 감사하지만은 영원토록 하는 것입니다. 크게 세 번째. 부활의 몸에는 어떤 몸으로 부활하는가. 사람이 죽어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 때는 어떤 몸으로 사는가. 믿는 사람은 사람의 죽음이란 믿는 사람에게는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갈아입는 것과 같습니다.
양복을 입고 가면 참 보기 좋습니다. 옷이란 그런 겁니다. 헌 옷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으면 오래된 자동차를 폐차하고 새 자동차를 하는 것처럼 우리 젊은 분들은 나이가 60이 넘어가면 젊을 때는 좋은데 나이 들면 계속 까먹지요. 그래서 백목사님은 장년반은 헌 도구다 헌 기계다. 주일학생은 새기계다. 그래서 가정이든 사회든 이 교회는 미래가 있다. 주일학생은 새기계 장년반은 헌기계. 어린이는 나라의 기둥, 새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아무리 어린 아이도 살아가다보면 바스라집니다. 좀이 먹으면 바스라지는 것인데 그래서 숭숭 뚫려서 생기고 헌 옷이 되는 겁니다. 헌 도구가 되는 겁니다. 죽음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죽고나면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은 없습니다. 일단 잉태된 생명입니다. 필연입니다.
헌 옷 벗고 새 옷을 갈아입습니다. 헌 옷이 좋습니까 새 옷이 좋습니까. 새 옷을 입으면 좋지요. 앞으로 우리가 부활한 것은 병들었고 죽습니다. 넓고 병들고 죽음은 신령한 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40일 계시며 죽었다 살아나신다고 하지만 죽은 선생님이 나타니까 천사인가 그랬습니다. 영은 뭐가 없습니까. 영은 몸이 없습니다. 내 살은 만져봐라, 옆구리를 만져봐라. 영이란 천사는 몸이 없어서 살과 뼈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살과 뼈가 있습니다. 이게 부활의 요소입니다. 시공을 초월하기 때문에 아시지요, 시간과 공간. 세계에서 가장 100미터 달리기 빠른 사람이 몇 초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1키로를 갈려고 하면은요, 2시간 얼마.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하니까. 공간을 초월합니다.
죽을 때 그 모습으로 부활한다. 부활한 몸은 뭐를 초월한다고, 시공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잘났든 못났든 의미가 없는 겁니다. 장애가 있던 의미가 없는 겁니다. 믿어지십니까. 믿고 소망을 하십니까. 이런 말씀을 가지고 참 좋겠다. 그런 마음이 사람이면 지혜로운 사람이고 훌륭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부활의 말씀이 우리의 부활이 앞으로 부활하면 시공을 초월합니다. 이런 부활을 말씀 들을 때 참 얼마나 좋을까 그리만 되면 좋겠다. 그러면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부활이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건데 4000년 역사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 그런 적이 있나.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면 사후 세계에 다른 차원이고 실제 죽었다가 그렇진 않습니다. 실제 그런 사람 없으니까 당연한거지요. 죽은 자가 살아나는 원리가 뭐냐, 죽은 자가 살아나는 원리인 것처럼 어떻게 다시 살며 예수님 당시에 죽은 자는 부활이 없다고 예수님은 시험했던 파가 어디였지요. 형이 장가가서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형의 씨를 잇게합니다. 동생이 죽으면 셋째가 또 들어갑니다. 그래서 형제들의 집안이 끊어지지 않도록합니다. 그게 법이었습니다.
맏아들이 결혼했는데 아들이 죽었습니다. 다 죽었고 아들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 아내는 누구 아내입니까. 자식이 없는데 아무도 없으니까 누구 아내가 되어야합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지요. 너희가 하나님도 천국도 몰라서 오해를 했다. 그 나라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게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그런 나라다. 그러니까 입이 막혔고 예수님께 이의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 논리가 빈틈이 없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사냐. 일반적으로 상식입니다. 믿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렇게 믿으니까 36절에 어리석은자라고 하셨습니다 왜 어리석은 자입니까. 성경은 답하기를 어리석은자, 어리석은자. 그래서 어리석은자는 어떤 겁니까. 하나님과 끊어지면 하나님 말씀을 안 믿으면 박사 학위를 10개를 가져도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안 믿으면 안 받아들이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든 존재와 그 존재의 모든 활동이 어리석은 자인 것이고 말씀이 진리인데.
너의 뿌리는 씨다.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난다.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자연 계시를 통해서 알려줍니다. 농사가 있습니다. 어리석은자여, 콩나물을 심어보면 심으면 그 콩에서 싹이 납니다. 싹이 올라오면서 그래서 씨앗이 심으면 없어져서 싹이 되어야합니다. 이 원리를 가르치니까 죽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씨앗을 뿌릴 때 죽어야 새 생명이 나옵니다.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어야 부활입니다. 누구든지 죽으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 안 죽는 사람이 없고 부활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으면 반드시 부활하게 되어있습니다. 첫째 부활 생명부활 둘째 부활은 심판 부활이라고 합니다.
죽어야 삽니다. 심을 때는 형체를 심는 게 아닙니다. 싹이 나서 자라서 사과나무가 생겨버립니다. 형체를 버리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 형체에게 자라게 주시는 것입니다. 농사를 농부가 지은 것 같은데 자라는 건 하나님이 심으신겁니다. 아무리 심어봐야 하나님께서 안주시면 안 자랍니다. 우리는 피조물이다. 생명종자 하나입니다. 영원토록 형체가 있습니다. 이게 썩지 않을 때 부활합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이게 부활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 소망의 도, 말씀드린대로 부활의 모습은 시공을 초월한 상관이 없고 의미가 없습니다. 마치 씨앗을 심으면 살아나게 되는 것처럼 형체로 나타날 때 이 땅에서 가졌던 것들을 비교 못할 영광될 것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오후에 계속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