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9일 수밤
김동민2025-03-19조회 106추천 7
2025년 3월 19일 수밤
찬송: 130장, 122장
본문: 이사야 40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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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요절입니다. 제목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표현이 좀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안 쓰는 표현입니다. 옛날에는 많이 쓴 말입니다. 양반들 글 꽤나 읽은 사람들이 쓸 때 쓰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글자 그대로 높여서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우러러 볼 앙 자입니다. 망 자는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높혀서 바라본다, 그 말은 소망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여호와를 앙망한다. 높은 산을 쳐다볼려면 고개를 들어야합니다. 앞을 바라볼려면 앞을 바라보면 됩니다. 높은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조심을 해야합니다. 말도 모든 태도도 옷차림도 조심해야겠지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 나라의 운명을 의논하는 일은 하러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한 나라 정상이 큰 나라의 정상 만나러 왔고 그것이 관계가 같은 대통령이라도 나라가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강함이 다르고 입장이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작은 나라에서 전쟁하는 나라에서 그러는 나라에 도움받지 못하면 망할 지경의 큰나라 대통령 강한 나라 대통령 많은 도움을 주는 큰 어른을 만나러 가려면 옷차림을 바로 하고 예의를 지키는 게 맞다. 그런 평판이 많이 있지요. 당연한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입장에서 갔는데 군복을 입고 갔지죠 말투도 네가 뭔데 이런 식으로 나오지요 그러니까 트럼프가 끊어버리니까 며칠 안 지나서 살려주옵소서 그랬지요. 진작에 그랬으면 창피는 덜 당했을건데.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대우하는 게 예의고 도덕이고 인간 관계고 인간이고 자기에게 좋은 겁니다. 대통령이 마구 짓밟으면 어느 사장이 대통령한테 욕을 하면 사원이 사장에게 욕하면 뭐라할건가요. 할 말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인간 관계가 그렇고 금은 비싼 겁니다. 비싼 금은 비싸게 관리하는 게 맞는 겁니다. 금을 돌멩이처럼 취급하면 갈겁니다. 뜨거운 물건은 뜨겁게 조심스럽게 다루는 겁니다. 아이 앞에 뜨거운 물을 가져다 놓으면 큰일나는거지요. 화상 입기 십상입니다.
물질도 사람도 상황도 그에 맞도록 상대하는 게 이게 옳은 것이고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 말씀에 질서고 순서입니다. 높은 사람을 높게 대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잘났다고 아주 못난 그거 고치기 전에는 희망이 없는 겁니다. 회사 다니는 사원이 사장님 욕하고 다니면 그 전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집안의 자녀가 자기 부모를 쉽게 대하면 고치기 전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어른은 어른 답게 가치있는 것은 가치있는 것 답게 조심스럽게 싼 것은 싸게 대하는 것이고 낮은 사람은 낮게 대하는 것입니다. 종을 자식처럼 대하면 나중에는 자식인 체 한다라고 했습니다. 종은 종처럼 대하여야합니다. 그게 맞습니다. 종도 자기가 종이면 종인데 주인이 너무 잘해주니까 미안하고 죄송해서 종답게 해야합니다. 천 원 짜리 옷이 있으면 입으면 됩니다. 천 원 짜리 티셔츠 같은 것을 주일 날 예배드리러 올 때 입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요. 그게 맞는 상대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한다. 우러러 바라본다. 높여서 바라본다.
그런데 하나님을 높여서 바라본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렇게 표현하신 겁니다. 하나님을 높여서 바라본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바라봐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믿고 바로 섬겨라는 말입니다. 금을 귀하게 취급해라 하고 금을 금같게 취급해라 하고 같은 말입니까. 둘이 다른 말입니까 같은 말입니까. 같은 말이지요. 금은 금이기 때문에 조심히 다루는 겁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은 크신 분이고 높은 분이기 때문에 사람은 낮은 사람이니까 우러러 보는 겁니다. 이게 옳은 것이고 바른 것입니다. 그래서 앙망한다는 말을 풀어 넣으면 바로 섬겨라입니다. 앙자를 바로 하시면 소망한다는 말은 믿는다는 말입니다. 믿지 않으면 바라볼 수 없습니다. 믿으면 의지하게 됩니다. 바라보고 바라본다는 말은 배경 삼는다는 말입니다. 자기 전부를 맡겨 놓는다 그런 말입니다.
젖먹는 아이가 어린 아이를 바라본다고 하는 것처럼 앙망하는 것처럼 바라봅니다. 오로지 아내가 남편만 전부 삼고 바라보는 겁니다. 엄마만 기다립니다. 엄마 보고 싶어 울고 엄마가 젖먹이에게는 하나님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잠자는 것도 안 자는 것도 전부 엄마에게 달렸습니다. 원래 아기와 엄마는 하나지요. 아기는 원래 어디서 나옵니까.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서 나옵니다. 있다가 나와야하니까 독립을 해야하기 때문에 탯줄을 자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은 분을 높은 분으로.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까지 앙입니다. 이걸 두 글자로 앙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야곱이고 이스라엘입니다.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황인종입니다. 양사람들은 백인종입니다. 혈통이 다 각각 다릅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백성은 특별한 백성들입니다. 천하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 구약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들, 아브라함은 신앙계통으로 내려가면 샘 족속이겠고 노아 자손이겠고 같은 노아 족속인데 샘 족속이고 야벳 족속도 있고 함 족속도 있고. 아브라함의 아들, 아브라함, 야곱,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아 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 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나를 관계가 있다 친밀하다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신부다. 이게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아들이고 신부고 굉장히 가깝지요.
안다 그러는데 그것이 얼굴만 아는 것 이름만 아는 것이 있는데 아는 정도가 서로 얼굴 알고 이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백성에서 더 올라가서 하나님 아버지 아들입니다 이러면 차원이 달라집니다. 아내입니다. 신분입니다. 백성이고 아들이고 그 분의 신부고 한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인데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우리가 피조물인 차원을 넘어서서 초월하여 행위적으로 활동적으로 인격적으로 이걸 초월하여 하나님같은 사람이 되는 입장과 이런 소망과 이런 배경과 이런 방편까지 다 가지고 있는 게 우리들입니다. 이게 야곱이고 이스라엘입니다. 여기 보면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나님이 나를 모른다하느냐. 내 사정 형편을 모른다고 하느냐. 모를 리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과 이런 관계고 맺어져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바로 믿어나가면 참 지난 세월이 안타깝고 적어도 말씀은 그렇고 저는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다니다가 낙심하고 고기 잡으러 가버립니다. 떠나갔을 때 주님이 심방으로 오셔서 베드로가 비웃습니다. 선생님이 말씀은 잘 아시겠지만 고기 잡는 걸 압니까. 어부는 내가 전공입니다. 지금은 헛일입니다. 그렇지만은 여기까지 찾아와서 시키니까 해보겠습니다만은 별 일 없을 것이고 책임주셔야할겁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서이다. 귀넘어 들었다 그렇게 들었다는 거지요. 그러니 낙심을 했고 돌아갔고 비웃었겠지요. 그런데 실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주님 따라다니면서 실행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건가, 그래서 억울해서 원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표현합니다. 다윗이 우리가 다윗이고 우리고 요셉인데 왜 다윗은 다윗이 되고 요셉은 요셉이 됐는데 왜 되었는가. 요셉은 13년 동안에 애굽나라를 정복해버렸습니다. 다윗도 서른 살에 왕이 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주신 분량은 다르지만 각자 자기에게 주신 위치에서 하나님과 여호와를 앙망해서 살아나가면 그 위치에서 하게 되는 겁니다.
사람 몸에 눈이 귀하지만 눈만 귀한가, 새끼 발가락의 발톱은 귀하지 않은가, 머리카락은 귀하지 않는가. 그런데 머리 없는 분들 말을 들어보니까 한 올 빠지면 스트레스 받을 겁니다. 머리카락 한 올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게 귀한 겁니다. 사람에 따라서, 사람 몸이라는 것은 머리부터 말끝까지 옛날 공자가 하는 말입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다. 사람 몸에 있는 털 하나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서 부모님이 세상 떠나고 나면 3년 상을 지낸답니다. 머리도 안 깎고 면도도 안하고, 그렇게 귀하다고. 그런 공자 가르침 아니더라도 다 귀한 겁니다. 교회의 모든 위치는 귀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목사만 귀한가 장로만 귀한가 집사만 귀한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그 집구조에서 중요한 게 뭡니까.
텔레비도 냉장고도 다 있습니다. 화장실이 중요할걸요. 화장실 없으면 사람이 못 살걸요 아마. 부엌도 중요하지만은 화장실 그거 참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쓰레기통 없으면 집안 전부가 쓰레기통 되는 거지요. 그래서 하이힐이 생겼다고 합니까. 저 고급의 프랑스 문화로 언어로 콧대높은 프랑스 하늘 찌르는 프랑스 그 사람들이 옛날에 화장실이 없어서 왕궁 마당에 화장실이었답니다. 그거 안 밟으려고 신발을 높여신은게 하이힐이랍니다. 뭐가 없어서요 화장실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믿는 사람이 드러나는 사람이 귀한 것이 아니고 숨어있는 사람도 귀한 겁니다. 믿는 사람이 앙망해 살면 그 사람은 귀하게 되는 겁니다. 가치있게. 문제가 많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의 사람의 지능을 초월할 수 있고 사람의 모든 행위를 언행심사를 초월할 수 있고 사람의 인격을 초월할 수 있고 하나님화 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자기대로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겁니다. 네가 이런 자인데 네가 알지 않느냐 그런 겁니다. 이런 우리들입니다. 이런 소년들은 하루종일 뛰어놀아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장정은, 서지훈 선생님 장정이지요. 20대, 10대 후반 20대 초중반 저런 분들은 30대도 장정이지요. 계산이 있습니다. 생각이 있고. 그래서 잘 안 넘어지고 잘 안 나빠집니다. 그래서 소년도 장정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가다 보면은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로 자빠지기도 하고 그렇게도 되는 게 사람입니다. 다 그리된다 그 말입니다.
우리 공회 목회자들은 다는 아니지만은 일반적으로 일반 교단의 목회자 목사님들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해서 목사를 받습니다. 성경을 알고 신학은 아는데 세상 물정은 잘 모른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니까 요즘은 저도 잘 모르지만은 쌀값이 얼마인지 물값이 어떻게 되는지 차비가 어떻게 되는지 아이들 심리가 어떤지 그런거지요. 공회의 목회자는 현장에서 막노동하는 거 이걸 거쳐서 교인 노릇을 잘하는 1등을 뽑아서 하는 것이니 전반적으로 알게 되는 겁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생활이 되게 되면 자기의 지능을 넘어섭니다. 자기의 모든 행동을 넘어서게 되고, 자기 인격을 넘어서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된다 그 말이지요. 새힘은 죄를 안 짓는 힘이고 이 신령한 힘이 지능입니다. 지혜과 지식 포함되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신앙생활에 쓰는데 세상과 연결이 되어지기 때문에 세상 지혜도 같이 나온다 이 말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말은 그런 사람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은 독수리 날개 올라가듯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앙망하는 걸로 공과에 나온 다섯가지, 스스로 팔린자로 살지 말고 종으로 살지말고 주권자로 살지말고, 자기 전부 다해서 진충으로 살아야겠고. 나태하고 게으름을 다 버리고 굳세게 살아야겠고, 어떤 경우도 낙망 포기 낙심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멀리 길게 보면서 후회하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지난 주 말씀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입장인지 야곱아 이스라엘아 우리를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아들로 하신 것을 여호와를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셨다. 영원 전부터 계셨고 현존하시며 전부를 지으셨으니 우리 개개인 가정과 다 속에 들어있다는 거지요. 그 속에 들어있는 우리들의 움직임 하나 다 관리하시고 알고계신다 그 말입니다. 이런 분이고 연결된 우리들이니까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질찌라도 이분과 연결된 우리들 때문이기 때문에 낙망하는 우리로 살기만 하면 독수리처럼 강하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실제 이렇게 살도록 노력하십십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30장, 122장
본문: 이사야 40장 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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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 요절입니다. 제목이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 표현이 좀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잘 안 쓰는 표현입니다. 옛날에는 많이 쓴 말입니다. 양반들 글 꽤나 읽은 사람들이 쓸 때 쓰는 표현 중 하나입니다. 글자 그대로 높여서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우러러 볼 앙 자입니다. 망 자는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높혀서 바라본다, 그 말은 소망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여호와를 앙망한다. 높은 산을 쳐다볼려면 고개를 들어야합니다. 앞을 바라볼려면 앞을 바라보면 됩니다. 높은 사람을 상대할 때에는 조심을 해야합니다. 말도 모든 태도도 옷차림도 조심해야겠지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러 갈 때 나라의 운명을 의논하는 일은 하러 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한 나라 정상이 큰 나라의 정상 만나러 왔고 그것이 관계가 같은 대통령이라도 나라가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강함이 다르고 입장이 완전히 다른 상황입니다. 작은 나라에서 전쟁하는 나라에서 그러는 나라에 도움받지 못하면 망할 지경의 큰나라 대통령 강한 나라 대통령 많은 도움을 주는 큰 어른을 만나러 가려면 옷차림을 바로 하고 예의를 지키는 게 맞다. 그런 평판이 많이 있지요. 당연한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입장에서 갔는데 군복을 입고 갔지죠 말투도 네가 뭔데 이런 식으로 나오지요 그러니까 트럼프가 끊어버리니까 며칠 안 지나서 살려주옵소서 그랬지요. 진작에 그랬으면 창피는 덜 당했을건데.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대우하는 게 예의고 도덕이고 인간 관계고 인간이고 자기에게 좋은 겁니다. 대통령이 마구 짓밟으면 어느 사장이 대통령한테 욕을 하면 사원이 사장에게 욕하면 뭐라할건가요. 할 말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인간 관계가 그렇고 금은 비싼 겁니다. 비싼 금은 비싸게 관리하는 게 맞는 겁니다. 금을 돌멩이처럼 취급하면 갈겁니다. 뜨거운 물건은 뜨겁게 조심스럽게 다루는 겁니다. 아이 앞에 뜨거운 물을 가져다 놓으면 큰일나는거지요. 화상 입기 십상입니다.
물질도 사람도 상황도 그에 맞도록 상대하는 게 이게 옳은 것이고 당연한 것이고 하나님 말씀에 질서고 순서입니다. 높은 사람을 높게 대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잘났다고 아주 못난 그거 고치기 전에는 희망이 없는 겁니다. 회사 다니는 사원이 사장님 욕하고 다니면 그 전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집안의 자녀가 자기 부모를 쉽게 대하면 고치기 전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어른은 어른 답게 가치있는 것은 가치있는 것 답게 조심스럽게 싼 것은 싸게 대하는 것이고 낮은 사람은 낮게 대하는 것입니다. 종을 자식처럼 대하면 나중에는 자식인 체 한다라고 했습니다. 종은 종처럼 대하여야합니다. 그게 맞습니다. 종도 자기가 종이면 종인데 주인이 너무 잘해주니까 미안하고 죄송해서 종답게 해야합니다. 천 원 짜리 옷이 있으면 입으면 됩니다. 천 원 짜리 티셔츠 같은 것을 주일 날 예배드리러 올 때 입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요. 그게 맞는 상대가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한다. 우러러 바라본다. 높여서 바라본다.
그런데 하나님을 높여서 바라본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모르니까 그렇게 표현하신 겁니다. 하나님을 높여서 바라본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바라봐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바로 믿고 바로 섬겨라는 말입니다. 금을 귀하게 취급해라 하고 금을 금같게 취급해라 하고 같은 말입니까. 둘이 다른 말입니까 같은 말입니까. 같은 말이지요. 금은 금이기 때문에 조심히 다루는 겁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은 크신 분이고 높은 분이기 때문에 사람은 낮은 사람이니까 우러러 보는 겁니다. 이게 옳은 것이고 바른 것입니다. 그래서 앙망한다는 말을 풀어 넣으면 바로 섬겨라입니다. 앙자를 바로 하시면 소망한다는 말은 믿는다는 말입니다. 믿지 않으면 바라볼 수 없습니다. 믿으면 의지하게 됩니다. 바라보고 바라본다는 말은 배경 삼는다는 말입니다. 자기 전부를 맡겨 놓는다 그런 말입니다.
젖먹는 아이가 어린 아이를 바라본다고 하는 것처럼 앙망하는 것처럼 바라봅니다. 오로지 아내가 남편만 전부 삼고 바라보는 겁니다. 엄마만 기다립니다. 엄마 보고 싶어 울고 엄마가 젖먹이에게는 하나님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잠자는 것도 안 자는 것도 전부 엄마에게 달렸습니다. 원래 아기와 엄마는 하나지요. 아기는 원래 어디서 나옵니까.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서 나옵니다. 있다가 나와야하니까 독립을 해야하기 때문에 탯줄을 자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겁니다. 그래서 앞에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은 분을 높은 분으로.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까지 앙입니다. 이걸 두 글자로 앙망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야곱이고 이스라엘입니다.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황인종입니다. 양사람들은 백인종입니다. 혈통이 다 각각 다릅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잘난 사람도 있고 못난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별별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백성은 특별한 백성들입니다. 천하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브라함의 자손들, 구약으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들, 아브라함은 신앙계통으로 내려가면 샘 족속이겠고 노아 자손이겠고 같은 노아 족속인데 샘 족속이고 야벳 족속도 있고 함 족속도 있고. 아브라함의 아들, 아브라함, 야곱,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아 이 말입니다. 이 세상에 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나를 관계가 있다 친밀하다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신부다. 이게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아들이고 신부고 굉장히 가깝지요.
안다 그러는데 그것이 얼굴만 아는 것 이름만 아는 것이 있는데 아는 정도가 서로 얼굴 알고 이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백성에서 더 올라가서 하나님 아버지 아들입니다 이러면 차원이 달라집니다. 아내입니다. 신분입니다. 백성이고 아들이고 그 분의 신부고 한 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인데 피조물인데 피조물인 우리가 피조물인 차원을 넘어서서 초월하여 행위적으로 활동적으로 인격적으로 이걸 초월하여 하나님같은 사람이 되는 입장과 이런 소망과 이런 배경과 이런 방편까지 다 가지고 있는 게 우리들입니다. 이게 야곱이고 이스라엘입니다. 여기 보면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하나님이 나를 모른다하느냐. 내 사정 형편을 모른다고 하느냐. 모를 리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과 이런 관계고 맺어져있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바로 믿어나가면 참 지난 세월이 안타깝고 적어도 말씀은 그렇고 저는 그렇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라다니다가 낙심하고 고기 잡으러 가버립니다. 떠나갔을 때 주님이 심방으로 오셔서 베드로가 비웃습니다. 선생님이 말씀은 잘 아시겠지만 고기 잡는 걸 압니까. 어부는 내가 전공입니다. 지금은 헛일입니다. 그렇지만은 여기까지 찾아와서 시키니까 해보겠습니다만은 별 일 없을 것이고 책임주셔야할겁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으로서이다. 귀넘어 들었다 그렇게 들었다는 거지요. 그러니 낙심을 했고 돌아갔고 비웃었겠지요. 그런데 실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주님 따라다니면서 실행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건가, 그래서 억울해서 원통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표현합니다. 다윗이 우리가 다윗이고 우리고 요셉인데 왜 다윗은 다윗이 되고 요셉은 요셉이 됐는데 왜 되었는가. 요셉은 13년 동안에 애굽나라를 정복해버렸습니다. 다윗도 서른 살에 왕이 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주신 분량은 다르지만 각자 자기에게 주신 위치에서 하나님과 여호와를 앙망해서 살아나가면 그 위치에서 하게 되는 겁니다.
사람 몸에 눈이 귀하지만 눈만 귀한가, 새끼 발가락의 발톱은 귀하지 않은가, 머리카락은 귀하지 않는가. 그런데 머리 없는 분들 말을 들어보니까 한 올 빠지면 스트레스 받을 겁니다. 머리카락 한 올 그거 아무것도 아닌데. 그런데 그게 귀한 겁니다. 사람에 따라서, 사람 몸이라는 것은 머리부터 말끝까지 옛날 공자가 하는 말입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다. 사람 몸에 있는 털 하나도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서 부모님이 세상 떠나고 나면 3년 상을 지낸답니다. 머리도 안 깎고 면도도 안하고, 그렇게 귀하다고. 그런 공자 가르침 아니더라도 다 귀한 겁니다. 교회의 모든 위치는 귀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목사만 귀한가 장로만 귀한가 집사만 귀한가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그 집구조에서 중요한 게 뭡니까.
텔레비도 냉장고도 다 있습니다. 화장실이 중요할걸요. 화장실 없으면 사람이 못 살걸요 아마. 부엌도 중요하지만은 화장실 그거 참 그러니까 말하자면은 쓰레기통 없으면 집안 전부가 쓰레기통 되는 거지요. 그래서 하이힐이 생겼다고 합니까. 저 고급의 프랑스 문화로 언어로 콧대높은 프랑스 하늘 찌르는 프랑스 그 사람들이 옛날에 화장실이 없어서 왕궁 마당에 화장실이었답니다. 그거 안 밟으려고 신발을 높여신은게 하이힐이랍니다. 뭐가 없어서요 화장실이 없으니까 그런 거지요.
믿는 사람이 드러나는 사람이 귀한 것이 아니고 숨어있는 사람도 귀한 겁니다. 믿는 사람이 앙망해 살면 그 사람은 귀하게 되는 겁니다. 가치있게. 문제가 많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의 사람의 지능을 초월할 수 있고 사람의 모든 행위를 언행심사를 초월할 수 있고 사람의 인격을 초월할 수 있고 하나님화 될 수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자기대로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겁니다. 네가 이런 자인데 네가 알지 않느냐 그런 겁니다. 이런 우리들입니다. 이런 소년들은 하루종일 뛰어놀아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장정은, 서지훈 선생님 장정이지요. 20대, 10대 후반 20대 초중반 저런 분들은 30대도 장정이지요. 계산이 있습니다. 생각이 있고. 그래서 잘 안 넘어지고 잘 안 나빠집니다. 그래서 소년도 장정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가다 보면은 넘어지기도 하고 실수로 자빠지기도 하고 그렇게도 되는 게 사람입니다. 다 그리된다 그 말입니다.
우리 공회 목회자들은 다는 아니지만은 일반적으로 일반 교단의 목회자 목사님들은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해서 목사를 받습니다. 성경을 알고 신학은 아는데 세상 물정은 잘 모른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니까 요즘은 저도 잘 모르지만은 쌀값이 얼마인지 물값이 어떻게 되는지 차비가 어떻게 되는지 아이들 심리가 어떤지 그런거지요. 공회의 목회자는 현장에서 막노동하는 거 이걸 거쳐서 교인 노릇을 잘하는 1등을 뽑아서 하는 것이니 전반적으로 알게 되는 겁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생활이 되게 되면 자기의 지능을 넘어섭니다. 자기의 모든 행동을 넘어서게 되고, 자기 인격을 넘어서는 그런 사람이 되게 된다 그 말이지요. 새힘은 죄를 안 짓는 힘이고 이 신령한 힘이 지능입니다. 지혜과 지식 포함되는 겁니다. 이걸 가지고 신앙생활에 쓰는데 세상과 연결이 되어지기 때문에 세상 지혜도 같이 나온다 이 말입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말은 그런 사람이 되어지는 겁니다. 그 사람은 독수리 날개 올라가듯이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가지고 앙망하는 걸로 공과에 나온 다섯가지, 스스로 팔린자로 살지 말고 종으로 살지말고 주권자로 살지말고, 자기 전부 다해서 진충으로 살아야겠고. 나태하고 게으름을 다 버리고 굳세게 살아야겠고, 어떤 경우도 낙망 포기 낙심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멀리 길게 보면서 후회하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지난 주 말씀이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입장인지 야곱아 이스라엘아 우리를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아들로 하신 것을 여호와를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셨다. 영원 전부터 계셨고 현존하시며 전부를 지으셨으니 우리 개개인 가정과 다 속에 들어있다는 거지요. 그 속에 들어있는 우리들의 움직임 하나 다 관리하시고 알고계신다 그 말입니다. 이런 분이고 연결된 우리들이니까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질찌라도 이분과 연결된 우리들 때문이기 때문에 낙망하는 우리로 살기만 하면 독수리처럼 강하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실제 이렇게 살도록 노력하십십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