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5일 수밤
김동민2025-03-05조회 99추천 8
2025년 3월 5일 수밤
찬송: 34장, 60장
본문: 예레미야 31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살펴봅니다. 먼저 신앙 평소 우리의 자세로 사람이 사는 세상에 세월이라는 것이 있고 피조물 중에 하나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데 흘러가는 겁니다. 시간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세월이 가는 그 거기에 세월을 타고 있는 겁니다. 세월을 멈추면 우리도 멈추는 건데 세월이 흘러가는고로 멈출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6000년 동안에 현재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 생명 가진 전부 다가 세월을 타고 가고 있고 한 번도 멈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월을 타고간다는 말은 세월에 따라서 노쇠해져간다는 뜻이고 종착점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길을 가면은 출발지가 있고 경우지가 있고 종착점이 있습니다. 인생의 종점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역사 시간을 재림이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실제적으로 안 늙어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죽음이라는 종점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러려니하고 다 그렇게 사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죽음이라는 종점을 맞이하면 주님 앞에 가야하고 주님 앞에 가면은 어떻게 살다 왔느냐, 내가 너를 세상에 보냈는데 보낸 목적이 있는데 내가 말씀으로 알려줬는데 어떻게 살다가 왔느냐, 펼쳐보고 나서부터 태어난 날부터 죽을 때까지 그렇게 쳐다보실 때 물질계를 보니까 다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요. 그럴 때 드러날 때 믿는 사람인데 살지 못하니까 문제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세상에 살면 현재만 보고 살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 것이 내일이 어떻게 되느냐. 배가 고파서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옛날 흉년에 먹을 게 없어도 농사짓는 사람이면 내년 봄 씻나락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건 까먹는 게 아닙니다. 그거 까먹으면 내년 굶어죽어야합니다. 이걸 방아찧어서 삶아먹으면 되는데 그러면 내년에 죽게 되니까 버티고 버팁니다. 그런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까먹어버리면 죽게 되는 거지요.
지금은 좋은데 이렇게 처신하면 화가나면 질러버립니다. 화난 말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나면요 화가 나면 상대방을 막 움직입니다. 처벌받아야합니다. 벌금 내면 감옥 가든지 해야합니다. 지성인들은 화가 나도 내 화난대로 했다가는 이 다음이 어찌 되냐 다음 다음을 계산하는 사람을 신사적이라고 하고 문화인이라고 하고 지성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순간 순간 살아가는 사람이 야만인이고 미개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신사적인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문화인이 되어야하고 지성인이 되어야합니다. 야만적인 사람이 되면 안되는 겁니다. 인생의 상식이고 인생의 기본입니다. 먼저 산 부모님들은 자라난 어린 아이들 때부터 때때로 주입을 시켜서 마시멜로 먹는 아이들 여러 번 말해서 알지요. 여러 명 있는데 마시멜로 이거 지금 먹는 거하고 나중에 있다가 먹으면 한 개 더 준다고 했던가요. 그 순간을 못 참아 먹은 아이들이 있고 3시간 참고 있는 아이들이 있고. 전자는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고, 후자는 다 성공했다고 합니다.
억만금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거 물려주는 게 큰 겁니다. 이거는 가르쳐줘야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내 절제력 끈기 이거 있으면 다 합니다. 이거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신앙도 꼭 같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인내를 만들고 인내를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을 만든다 그랬습니다. 신앙의 기본적인 자세, 지금을 살되 내일을 보고 미래를 보고 앞날 보고 사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본문 잠깐 보시겠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는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 속에 사람을 상대하시는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시기 때문에 상대하시는 것이지 사랑이 없으면 우리를 상대하지 않습니다. 많이 배우고 잘 살고 초 엘리트급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수준이 달라서 말단적인 사람을 자기를 이미지 관리 때문에 그럴지언정 진정으로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류 대학교를 다니는 그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식자체가 나는 너희들하고 모든 게 다르다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자기 교만하다 하고 욕먹을까 싶어서 상대를 해주지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상대하지 않습니다. 정말 잘난 사람들 중에서 진심으로 상대해주는 사람들은 참 드물고 좋은 사람입니다.
사장님이 되면 말단 직원은 잘 상대는 안하는겁니다. 권력가가 되면 우습게 그리 보게 되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회장님이면 그 자식은 상대 안 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상대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상대하실 때는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조건부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이름, 말하노라 사랑이 들었고 약속이 들었고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이 이름으로 우리를 상대하시는 그래서 나 여호와가 말한다는 것은 너희들과 약속으로 말한다. 조건으로 말한다 그런 뜻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내가 그때라는 것은 30장 24절이라고 몇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망했다가 회개한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매를 맞았다가 돌이켜 회개할 때라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매를 맞습니다. 절대 진리입니다. 회개하면 긍휼을 입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 지으면 망하고 그런 겁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이 회개한 때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선 때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인데 가족이라고 아버지가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책임지고 양육해주시겠다. 회개한 그들이기 때문에. 회개한 그들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길러주시고 천국 백성이 되어주시겠다. 구약 이스라엘은 우리들입니다. 회개하는 속도와 양에 따라서 절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돌아보면 가장 미련한 것이 사람입니다. 의지력 절제력 끈기 인내심을 말한다. 사람이 믿음이 없을지라도 인내가 있으면 내가 신앙이 어려도 그래도 되겠나. 인내심 있고 끈기있는 사람은 그 약속을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없는 사람들은 넘어지고 회개하고 뱅뱅 돕니다. 다람쥐 채바퀴 속에서 자라긴 자랍니다. 콩나물 물주면 됩니다. 물 주면 다 빠져나갑니다 밑으로 물을 주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데 그 물을 먹고 쑥쑥 자랍니다. 그래서 나중에 콩나물. 그런 가운데 자라듯이 죄 지었다가 회개하고 자라긴 자랍니다. 마지막 결산해보면 손해 많이보지만은. 회개 한 번 하면 좋고 진노하면은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받게 되고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 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칼에서 벗어났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이 된 것은 스스로 해방받지 못합니다.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고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라야하고 마귀를 못 이깁니다. 벗어난자.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죄로 인해서 종 되었던 우리가 중생된 우리들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벗어나서 광야로 나왔는데 애굽이 좋습니까 광야가 좋습니까. 잠마귀는 왕마귀입니다. 꼬집어서라도 깨어야합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았더라. 굉장히 살기 좋은 곳이지요. 그곳에서 광야로 나갔습니다. 메마른 사막입니다. 애굽에 살 때가 좋았는데 하나님께서 강제로 해방시켰습니다. 좋았는데 애굽에 살 때는 잡다한 그런 족속들이 따라나와서 악한 자들이 뒤에 가서 고기 먹고 싶다고 하나님 앞에 떼를 쓰고 원망할 때, 주업이 뭐였습니까. 광야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양과 소와 염소와 많았겠지요. 당연히 있었던 겁니다. 다 먹었죠. 고기를 많이 먹는데 왜 또 고기를 탐했을까. 악한 자들이 탐욕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만나 먹어도 되고 고기 먹어도 충분한데 파하고 마늘하고 부추를 많이 먹었는데 광야에는 없다 그랬습니다. 파 마늘 부추의 특성이 뭡니까. 채소인데도 톡톡톡 쏘는 독한 그런 것이지요. 그런 걸 탐하고 그런 겁니다. 그러다가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해방시켜 주셨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광야로 갑니다.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은혜를 얻었다.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백성으로 사는 겁니다. 만나 반석에서 물 광야에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 겁니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안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우리로 말하면 무슨 생활입니까. 애굽의 종노릇한 건 우리들의 중생 전입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걷는 것은 우리에게 중생입니다. 광야 생활은요 교회 생활입니다. 교회 생활은 광야 생활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보다 모든 면이 못한 거 같은데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으로 그랬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게 광야 생활이고 세상 중생 전에서 세상 조건으로 사니까 일주일에 7일이라고 7일 공부하는데 좋습니다. 돈도 더 많이 벌겠고. 조건이 불리한대도 불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신앙 중심으로 살면 그런 겁니다.
우리들이 그릇을 다 빼서 안 받는 겁니다. 우리들에게 하나씩 주시는데 다 끊어버리는 겁니다. 실력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권위가 끊어지는 것이니까 수치가 되게 되는 것이지요. 너나 할 것 없이 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 복 받고 인격의 복 받고 다 잘되고 어떤 사람은 왜 안되는 겁니까. 쓰는 그릇 차이가 있을찌라도 연탄집게로. 연탄집게가 없습니다만 수백억짜리 우주선이 폭발했을 때 부속품 하나가 문제가 있었는데 1만원 안되는 거 때문에 폭발해버렸습니다. 그러면 부속들이 수억원짜리가 있는데 몇백원짜리는 쓸모가 없는 겁니까. 그런 원리가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가볍게 여기지 못합니다. 사람 하나고 세분하면 사건하나입니다. 수백억 수천억짜리 우주선이 몇 백원짜리 때문에 폭발한다 그렇습니다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 나타나 이스라엘의 옛날이 언제라 그랬습니까. 열 두 지파고 그 옛날은 야곱이고 그 이전에는 이삭이고 그 이전은 아브라함이고. 너를 통해서 너의 백성을 그렇게 많게 하겠다. 내가 옛적에 이삭에게 야곱에게 나타내기를 이렇게 너를 사랑했다. 왜 사랑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했습니까. 동기는 근본은 하나님의 자존 사랑입니다. 자존 사랑으로 사랑했는데 사랑해보니까 자존 사랑으로 하고 보니까 잘됐다. 로또 복권을 샀는데 1등 당첨되어버렸다. 이러면 문제겠지요. 그게 다시 말하니까 택했는데 그 택함이 보니까 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원불변입니다. 왜 사랑해야하느냐 왜 우리는 사랑하시는데 동시에 우리에게 그 사랑을 받기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속성이 없으면 이건 일방적이고 아무 맛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인간이면 돌멩이보다 로봇보다는 식물이 나을 것이고 식물보다는 강아지가 나을 것이고 그래서 인간적이면 사람을 낳아야겠지요. 왜 사람과 사람은 교감이 없습니까. 하나님과 사랑은 창조주와 피조물로 다르지만은 넣어주셨는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유의 속성입니다. 사랑이라는 속성을 넣어주셔서 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도록 쌍방 사람. 상호간에 사랑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이런 존재로 우리를 만드신겁니다. 그래야 교감이 있고 맛이 있고 그런 겁니다. 부모 자녀간의 사랑이 사랑이 되는 거지요. 내 사랑이 안가는겁니다. 뜨거운 사랑이 다가 아니고 그 뜨거운 자식이 될 때는 부부간의 사랑 사랑의 교감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완전 사랑으로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셨으니까 그 사랑을 깨달을 사랑은 그 사랑을 깨닫고 그를 사랑하는 우리가 있어야하는데 주님을 사랑하는 거보다 억지로 사랑해보고 자라면 지식이 자라면서 경험이 자라는 겁니다. 맛을 보면서 자라면 점점 억지로 사랑하다가 흉내내보다가 책임감에 사랑하다가 나중에 맛을 보면은 좋아서 사랑하는 진짜 사랑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갈수록 점점 깊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본능 사랑이 되는 것이고 상대방 서로의 장단점을 해서 깊어져서 인격적인 사람이 되고 신앙적인 사람이 되면 부부사랑이 되게 되는 겁니다. 이번의 핵심은 이게 결론입니다. 어릴 때는 마지 못해서 자라고 나면 의무감 책임감에서 더 자라고 나면 깨달아서 좋아서 더 자라면 원하고 원함으로.
하루에 계단을 500개씩 틀립니다. 다리의 힘도 붙고 근육도 붙고 폐도 되고 다 좋은 겁니다. 몸이 좋으니까 하게 되는 거지요. 하면 자꾸 좋아지는 겁니다. 먹어보니까 좋더라 먹지 말라고 해도 그러는 겁니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겁니다. 주님 사랑하니까 좋더라 그러면 좋아서 하는 겁니다. 주님이 좋아서. 그래서 주님 만나는 게 좋으니까 한 시간 타고 가서 한참 걸어올라가서 텐트를 쳐놓고 주님을 만납니다. 교제하고. 그렇게 좋았는가보지요. 그게 진짜 신앙이 되는 것이지요. 하루 종일 산에서 무릎 꿇고하는데 성자들의 생애인데 그런 거지요. 그렇게 되는 게 신앙의 정상이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노력을 가진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자기 현실에서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34장, 60장
본문: 예레미야 31장 1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살펴봅니다. 먼저 신앙 평소 우리의 자세로 사람이 사는 세상에 세월이라는 것이 있고 피조물 중에 하나지요. 눈에 보이지 않는데 흘러가는 겁니다. 시간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세월이 가는 그 거기에 세월을 타고 있는 겁니다. 세월을 멈추면 우리도 멈추는 건데 세월이 흘러가는고로 멈출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6000년 동안에 현재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 생명 가진 전부 다가 세월을 타고 가고 있고 한 번도 멈춘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월을 타고간다는 말은 세월에 따라서 노쇠해져간다는 뜻이고 종착점을 향해서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길을 가면은 출발지가 있고 경우지가 있고 종착점이 있습니다. 인생의 종점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역사 시간을 재림이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실제적으로 안 늙어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죽음이라는 종점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이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안 믿는 사람들은 그러려니하고 다 그렇게 사는 것이고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죽음이라는 종점을 맞이하면 주님 앞에 가야하고 주님 앞에 가면은 어떻게 살다 왔느냐, 내가 너를 세상에 보냈는데 보낸 목적이 있는데 내가 말씀으로 알려줬는데 어떻게 살다가 왔느냐, 펼쳐보고 나서부터 태어난 날부터 죽을 때까지 그렇게 쳐다보실 때 물질계를 보니까 다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요. 그럴 때 드러날 때 믿는 사람인데 살지 못하니까 문제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세상 사람들도 세상에 살면 현재만 보고 살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 것이 내일이 어떻게 되느냐. 배가 고파서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옛날 흉년에 먹을 게 없어도 농사짓는 사람이면 내년 봄 씻나락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건 까먹는 게 아닙니다. 그거 까먹으면 내년 굶어죽어야합니다. 이걸 방아찧어서 삶아먹으면 되는데 그러면 내년에 죽게 되니까 버티고 버팁니다. 그런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까먹어버리면 죽게 되는 거지요.
지금은 좋은데 이렇게 처신하면 화가나면 질러버립니다. 화난 말을 해버립니다. 그리고 나면요 화가 나면 상대방을 막 움직입니다. 처벌받아야합니다. 벌금 내면 감옥 가든지 해야합니다. 지성인들은 화가 나도 내 화난대로 했다가는 이 다음이 어찌 되냐 다음 다음을 계산하는 사람을 신사적이라고 하고 문화인이라고 하고 지성인이라고 하는 겁니다. 순간 순간 살아가는 사람이 야만인이고 미개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신사적인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문화인이 되어야하고 지성인이 되어야합니다. 야만적인 사람이 되면 안되는 겁니다. 인생의 상식이고 인생의 기본입니다. 먼저 산 부모님들은 자라난 어린 아이들 때부터 때때로 주입을 시켜서 마시멜로 먹는 아이들 여러 번 말해서 알지요. 여러 명 있는데 마시멜로 이거 지금 먹는 거하고 나중에 있다가 먹으면 한 개 더 준다고 했던가요. 그 순간을 못 참아 먹은 아이들이 있고 3시간 참고 있는 아이들이 있고. 전자는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고, 후자는 다 성공했다고 합니다.
억만금을 물려주는 것보다 이거 물려주는 게 큰 겁니다. 이거는 가르쳐줘야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인내 절제력 끈기 이거 있으면 다 합니다. 이거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신앙도 꼭 같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인내를 만들고 인내를 이루면 온전하고 구비한 사람을 만든다 그랬습니다. 신앙의 기본적인 자세, 지금을 살되 내일을 보고 미래를 보고 앞날 보고 사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본문 잠깐 보시겠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 속에는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 속에 사람을 상대하시는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시기 때문에 상대하시는 것이지 사랑이 없으면 우리를 상대하지 않습니다. 많이 배우고 잘 살고 초 엘리트급의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수준이 달라서 말단적인 사람을 자기를 이미지 관리 때문에 그럴지언정 진정으로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류 대학교를 다니는 그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인식자체가 나는 너희들하고 모든 게 다르다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자기 교만하다 하고 욕먹을까 싶어서 상대를 해주지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상대하지 않습니다. 정말 잘난 사람들 중에서 진심으로 상대해주는 사람들은 참 드물고 좋은 사람입니다.
사장님이 되면 말단 직원은 잘 상대는 안하는겁니다. 권력가가 되면 우습게 그리 보게 되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회장님이면 그 자식은 상대 안 할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이 상대를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랑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상대하실 때는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조건부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이름, 말하노라 사랑이 들었고 약속이 들었고 조건이 붙어있습니다. 이 이름으로 우리를 상대하시는 그래서 나 여호와가 말한다는 것은 너희들과 약속으로 말한다. 조건으로 말한다 그런 뜻이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내가 그때라는 것은 30장 24절이라고 몇 번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은 망했다가 회개한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매를 맞았다가 돌이켜 회개할 때라고 합니다.
죄를 지으면 매를 맞습니다. 절대 진리입니다. 회개하면 긍휼을 입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 지으면 망하고 그런 겁니다. 그때에는 이스라엘이 회개한 때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선 때 그때에 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인데 가족이라고 아버지가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책임지고 양육해주시겠다. 회개한 그들이기 때문에. 회개한 그들이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길러주시고 천국 백성이 되어주시겠다. 구약 이스라엘은 우리들입니다. 회개하는 속도와 양에 따라서 절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사람이 스스로를 돌아보면 가장 미련한 것이 사람입니다. 의지력 절제력 끈기 인내심을 말한다. 사람이 믿음이 없을지라도 인내가 있으면 내가 신앙이 어려도 그래도 되겠나. 인내심 있고 끈기있는 사람은 그 약속을 잘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없는 사람들은 넘어지고 회개하고 뱅뱅 돕니다. 다람쥐 채바퀴 속에서 자라긴 자랍니다. 콩나물 물주면 됩니다. 물 주면 다 빠져나갑니다 밑으로 물을 주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데 그 물을 먹고 쑥쑥 자랍니다. 그래서 나중에 콩나물. 그런 가운데 자라듯이 죄 지었다가 회개하고 자라긴 자랍니다. 마지막 결산해보면 손해 많이보지만은. 회개 한 번 하면 좋고 진노하면은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받게 되고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 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칼에서 벗어났다.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이 된 것은 스스로 해방받지 못합니다.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고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라야하고 마귀를 못 이깁니다. 벗어난자.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죄로 인해서 종 되었던 우리가 중생된 우리들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벗어나서 광야로 나왔는데 애굽이 좋습니까 광야가 좋습니까. 잠마귀는 왕마귀입니다. 꼬집어서라도 깨어야합니다.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 같았더라. 굉장히 살기 좋은 곳이지요. 그곳에서 광야로 나갔습니다. 메마른 사막입니다. 애굽에 살 때가 좋았는데 하나님께서 강제로 해방시켰습니다. 좋았는데 애굽에 살 때는 잡다한 그런 족속들이 따라나와서 악한 자들이 뒤에 가서 고기 먹고 싶다고 하나님 앞에 떼를 쓰고 원망할 때, 주업이 뭐였습니까. 광야에서 제사를 드리려면 양과 소와 염소와 많았겠지요. 당연히 있었던 겁니다. 다 먹었죠. 고기를 많이 먹는데 왜 또 고기를 탐했을까. 악한 자들이 탐욕을 품었다고 했습니다. 만나 먹어도 되고 고기 먹어도 충분한데 파하고 마늘하고 부추를 많이 먹었는데 광야에는 없다 그랬습니다. 파 마늘 부추의 특성이 뭡니까. 채소인데도 톡톡톡 쏘는 독한 그런 것이지요. 그런 걸 탐하고 그런 겁니다. 그러다가 많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하나님께서 해방시켜 주셨는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광야로 갑니다.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은혜를 얻었다. 애굽에서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백성으로 사는 겁니다. 만나 반석에서 물 광야에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 겁니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안들어갔습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우리로 말하면 무슨 생활입니까. 애굽의 종노릇한 건 우리들의 중생 전입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홍해를 걷는 것은 우리에게 중생입니다. 광야 생활은요 교회 생활입니다. 교회 생활은 광야 생활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보다 모든 면이 못한 거 같은데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능력으로 그랬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는 게 광야 생활이고 세상 중생 전에서 세상 조건으로 사니까 일주일에 7일이라고 7일 공부하는데 좋습니다. 돈도 더 많이 벌겠고. 조건이 불리한대도 불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겁니다. 믿는 사람이 신앙 중심으로 살면 그런 겁니다.
우리들이 그릇을 다 빼서 안 받는 겁니다. 우리들에게 하나씩 주시는데 다 끊어버리는 겁니다. 실력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권위가 끊어지는 것이니까 수치가 되게 되는 것이지요. 너나 할 것 없이 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 복 받고 인격의 복 받고 다 잘되고 어떤 사람은 왜 안되는 겁니까. 쓰는 그릇 차이가 있을찌라도 연탄집게로. 연탄집게가 없습니다만 수백억짜리 우주선이 폭발했을 때 부속품 하나가 문제가 있었는데 1만원 안되는 거 때문에 폭발해버렸습니다. 그러면 부속들이 수억원짜리가 있는데 몇백원짜리는 쓸모가 없는 겁니까. 그런 원리가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함부로 가볍게 여기지 못합니다. 사람 하나고 세분하면 사건하나입니다. 수백억 수천억짜리 우주선이 몇 백원짜리 때문에 폭발한다 그렇습니다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 나타나 이스라엘의 옛날이 언제라 그랬습니까. 열 두 지파고 그 옛날은 야곱이고 그 이전에는 이삭이고 그 이전은 아브라함이고. 너를 통해서 너의 백성을 그렇게 많게 하겠다. 내가 옛적에 이삭에게 야곱에게 나타내기를 이렇게 너를 사랑했다. 왜 사랑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했습니까. 동기는 근본은 하나님의 자존 사랑입니다. 자존 사랑으로 사랑했는데 사랑해보니까 자존 사랑으로 하고 보니까 잘됐다. 로또 복권을 샀는데 1등 당첨되어버렸다. 이러면 문제겠지요. 그게 다시 말하니까 택했는데 그 택함이 보니까 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원불변입니다. 왜 사랑해야하느냐 왜 우리는 사랑하시는데 동시에 우리에게 그 사랑을 받기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속성이 없으면 이건 일방적이고 아무 맛이 없습니다. 제대로 된 인간이면 돌멩이보다 로봇보다는 식물이 나을 것이고 식물보다는 강아지가 나을 것이고 그래서 인간적이면 사람을 낳아야겠지요. 왜 사람과 사람은 교감이 없습니까. 하나님과 사랑은 창조주와 피조물로 다르지만은 넣어주셨는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유의 속성입니다. 사랑이라는 속성을 넣어주셔서 그 사랑을 받고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도록 쌍방 사람. 상호간에 사랑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도록 느낄 수 있도록 이런 존재로 우리를 만드신겁니다. 그래야 교감이 있고 맛이 있고 그런 겁니다. 부모 자녀간의 사랑이 사랑이 되는 거지요. 내 사랑이 안가는겁니다. 뜨거운 사랑이 다가 아니고 그 뜨거운 자식이 될 때는 부부간의 사랑 사랑의 교감이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완전 사랑으로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셨으니까 그 사랑을 깨달을 사랑은 그 사랑을 깨닫고 그를 사랑하는 우리가 있어야하는데 주님을 사랑하는 거보다 억지로 사랑해보고 자라면 지식이 자라면서 경험이 자라는 겁니다. 맛을 보면서 자라면 점점 억지로 사랑하다가 흉내내보다가 책임감에 사랑하다가 나중에 맛을 보면은 좋아서 사랑하는 진짜 사랑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갈수록 점점 깊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본능 사랑이 되는 것이고 상대방 서로의 장단점을 해서 깊어져서 인격적인 사람이 되고 신앙적인 사람이 되면 부부사랑이 되게 되는 겁니다. 이번의 핵심은 이게 결론입니다. 어릴 때는 마지 못해서 자라고 나면 의무감 책임감에서 더 자라고 나면 깨달아서 좋아서 더 자라면 원하고 원함으로.
하루에 계단을 500개씩 틀립니다. 다리의 힘도 붙고 근육도 붙고 폐도 되고 다 좋은 겁니다. 몸이 좋으니까 하게 되는 거지요. 하면 자꾸 좋아지는 겁니다. 먹어보니까 좋더라 먹지 말라고 해도 그러는 겁니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겁니다. 주님 사랑하니까 좋더라 그러면 좋아서 하는 겁니다. 주님이 좋아서. 그래서 주님 만나는 게 좋으니까 한 시간 타고 가서 한참 걸어올라가서 텐트를 쳐놓고 주님을 만납니다. 교제하고. 그렇게 좋았는가보지요. 그게 진짜 신앙이 되는 것이지요. 하루 종일 산에서 무릎 꿇고하는데 성자들의 생애인데 그런 거지요. 그렇게 되는 게 신앙의 정상이다. 그런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노력을 가진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자기 현실에서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