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2일 수밤
김동민2025-02-12조회 83추천 8
2025년 2월 12일 수밤
찬송: 66장
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 ~ 1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진실한 신앙입니다. 진실이 뭔가 진실은 글자 그대로 말하면 진짜 열매를 말하는 거지요. 헛된 것이 없다 그런 뜻이겠습니다. 말은 있는데 실제가 없는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 이건 진실과 반대 외식입니다. 진실은 겉과 속이 같은 것입니다. 일반적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신 진실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백 목사님 해석은 말씀대로 되어진 걸 진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 말씀으로 된 것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의 도리.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바꾸어진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만들어진다.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형성되어져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고 말씀이고 이것을 법칙으로 삼고 도리로 삼아서 말씀을 인도로 삼아서 말씀이 하라는대로 하고 말씀이 금하라는 것은 금하고.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 마음의 모든 작용을 만들어지게 되는데 환경이라는 거는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를 만들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짐승도 그런 게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사육하냐에 따라서 고기 맛이 달라진다 그런 말도 하지요. 자연스럽게 더 자라면 고기 맛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무엇을 들으며 어떻게 행동을 하며 심신의 활동에 따라서 세월 속에 사람이 화 되는 거지요. 세상 사람 공자의 도덕을 듣고 읽고 공자의 도덕을 인생의 지표로 삼아서 가면 공자같은 사람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불경을 읽고 인생의 길로 삼아서 석가의 것으로 가면 석가같은 사람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으로 살아나가면 세월 속에 말씀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지식으로 삼아서 주격지식으로 나를 지배하면 진실한 지식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진 말이면 진실한 말입니다. 진실한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세월을 살아가지고 바꾸어지면 그만큼 진실한 사람이 되게 됩니다. 진실한 사람은 말씀의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말세가 되면 짐승이 하나 나오는데 땅에서 짐승이 올라오는데 머리가 7개고 뿔이 10개인데 세상이라고 해석합니다. 말세의 세상의 세상이 뿔이 10이고 머리가 7개다. 짐승의 모든 권세를 주지요. 말세가 되면 한 뜻을 가지고 어린 양을 대적하고 그 하나 된 사람들을 대적하게 됩니다. 온 세상이 말세가 되면 하나가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말세가 될수록 하나되기는커녕 조각조각이 납니다. 소련에서 독립 많이 됐지요. 제국주의 시대 그런 때에 비하면 제국에 속한 나라가 독립해서 나라를 이루고 민족들이 자기 민족을 찾게 되고 집안적으로 다 갈라지고 개인주의로 다 갈라지고 말세가 될수록 점점 개인주의적인 것이 됩니다. 개인도 안에 들어가면은 각 요소별로 나눠지게 됩니다. 말세가 되면 하나가 되기는커녕 조각이 되는데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상적으로 하나된다고 했습니다.
그 많은 것에 인간이 모든 존재의 중심이다. 사람이 우선이고 중심이다. 인본주의를 말로 하면 나라와 상관없이 민족과 상관없이 인종과 상관없이 어느 민족 어느 사회 가도 인본 주의를 뭐라하면 먹혀들어가게 되는 건데 인본주의를 말하면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한국과 일본이 합해질 것인가. 그건 아니지요. 온 세상이 일곱머리 열 뿔 모든 지식과 지식이 하나되고 종교가 하나되고 그게 무슨 말이냐. 현재가 말세지말인데 하나 되지 않고 흩어집니다. 하나된다는 말이 무엇인가. 어느 지역이든지 어느 사회든지 말씀을 하면 인본주의와 맞지 않는 인간 중심이라는 큰 틀. 역사적으로 그럴 겁니다. 인류역사는 처음부터 그랬을 것인데 인본에 주장되는 대립된 그런 게 중세대까지 1500년 종교개혁 이전에는 4500년 전에는 알든 모르든 정확하든 정확하지 않던 신본주의적이었습니다. 세상은 신본주의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원론적으로는 그런 게 있고. 종교 개혁 이후로 인간 중심으로 바꿔지게 된 게 1500년 즈음 그렇게 되었겠지요.
500년 전입니까. 말세가 되면 전부 인간 중심 인본주의로 하나가 되어져갑니다. 신본 신에게 속해있던 것에 탈피해서 인간이 중심이 되고 그것으로 하나가 되는데. 어떤 종교나 사상이나 철학이든지 예외가 없고 토를 달지 못하는데 유일하게 기독교만큼은 안되는 겁니다. 6000년 전부터 사상이 변해진 게 타락이 되는 것이고 참된 교회가 되는 건데 말세가 되면 신본주의 교회가 인본주의로 가면서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고 신본주의를 이어져오는 이 교회가 참된 교회가 이어져오는 건데. 정면으로 배치가 되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대립이 되게 되는 겁니다. 인본주의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사회마다 다 있는데 인종을 초월해서 북경을 초월해서 어느 곳에 가든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안 좋은 걸 들은 게 없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고싶다.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더라. 신본주의를 주장하는 참된 사상은 마지막에 대립이 됩니다. 모든 종교가 대립되고 모든 문화 사상과 대립이 됩니다. 어디들 가든지 박해받을 수 밖에 없고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못 박기 전에 헤롯과 빌라도는 원수였는데 예수님을 못박을 때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것 할 거 없이 옳은 길을 가는 곳은 항상 그 사람이나 그거 말고는 대립이 다 됩니다. 기이하게도 다른 것에는 하나가 안 되는데 참된 믿음의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박해하는 것이라고 하고. 온 세상 하나에서 참된 교회를 대적한다 그런 말이지요. 우리 학생들에게 세밀하게 가르치지 않아도 원리는 알아야합니다. 또는 그런 싸움이 일어날 때 온 세상이 인본주의로 하나 되어서 진실한 사람은 이기는데 그 진실한 사람은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고 그 중에 진실한 사람이 이기는데 이긴다는 말은 이 세상식으로 점령해서 차지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세가 되면은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했습니다. 진실한 신앙으로 잡고 가는 것은 무엇이 진실이냐. 진실은 말씀대로 되어진 걸 진실이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말씀대로 되지 않는 것은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게 되는 겁니다. 가이사나 빌립보에서 여론을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오늘로 말하면 교회를 두고 안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시각 생각 인식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치 둘 게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인자를 누구라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로마 사람들에게 물어본 게 아닙니다. 오늘로 말하면 교회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느냐. 신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일반 사람들의 생각 인식 보는 시각 견해 느낌 그들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물어본 것입니다.
어떠냐 하는 상태보다도 정체성을 물어본거지요.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론을 물어보셨고 성경에 기록했기 때문에 여론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생각에 따라 전부 여론은 달라지기 때문에 교회보는 여론도 그렇습니다. 아마 안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말하면 교인과 가까운 사이고 좋은 사이라면 교회에 대한 인식은 좋을겁니다. 가족 중에서 믿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인식이 안 좋으면 인식이 나쁠겁니다. 여론은 참고만 하는 겁니다. 물어보셨는데 그 여론들이 다 틀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라, 엘리야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다 틀렸죠.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 여론을 따라가지 않았죠.
믿는 사람들이 신아이란 무엇이냐. 주일이 무엇이냐. 성경이 뭐냐 어떻게 믿느냐. 성경은 정말 하나님 말씀으로 믿느냐. 아니면 성경을 사람들이 가감할 수 있도록 믿느냐. 이 차이는 생과 사의 차이가 되는 겁니다. 모든 교계가 신학자들 중에서 성경 믿는 신학자 못봤다. 성경을 정말 그대로 믿는 신학자들을 못봤다. 백 목사님께서 미국에 양성하시려고 학생을 유학보냈습니다. 가서 신학가서 유명한 신학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토록하다가. 다른 신학교 교수에게 얼마나 읽었는지 물어보니까 신학교는 성경 공부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게 신학교 일반 교계의 여론입니다. 이게 여론이기 때문에 여론을 따라가면 안 읽는 사람이 되는 거지요. 주일을 어느정도 지켜야하느냐. 전하고 배우면 직장 위에 떨어져도 큰 거래에 거래처가 떨어져도 감옥에 갈지라도 순교를 할 지라도 배웁니다. 그렇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으나 그 교계가 없지싶이 합니다. 그게 여론입니다. 현실에 주일에 대한 여론입니다.
그런 여론을 따라가면 신앙과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세상에 당나귀 팔려가는 것처럼 주격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여론은 중요하지만 참고는 하는 겁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럴 때 주는 그리스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양심대로 고백을 했고 성령의 감동이 되어진겁니다. 이게 진실된 신앙이라는 것이지요. 알았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이 베드로에게 주님에게 한 대답이 진실의 대답입니다. 모든 신앙이 그렇게 되어야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주님이 가르치실 때 인간으로 돌아와버립니다. 말씀대로 고백을 했는데 자기 주관대로 해서 말씀 잊어버리고 주관에 붙들려서 베드로는 다시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존재 하나도 그 속에 질서적이고 체계적입니다. 원리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모래알 하나도 모래되게 된 것은 그런 이치가 있습니다. 가을에 뒹구는 낙엽 하나도 낙엽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전부 법칙이 있습니다. 그 존재의 활동의 법칙 생명의 법칙 번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말씀의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는 거지요.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교회를 다녀도 예배를 드려도 믿는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자기의 언행심사 관계 활동 자체 이게 된 만큼 신앙이고 된만큼 구원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믿어도 구원이 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진실한 신앙은 아니라말이지요. 여호사밧을 말하는 것이고 히스기야를 말하는 겁니다. 여호사밧의 신앙과 충성과 해악을 생각하면 온전히 절단되어버립니다. 여호사밧의 며느리가 누구라고요? 이세벨의 딸입니다. 아합의 딸. 세상에 그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여호사밧이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받았습니다. 아달랴가 이스라엘 왕족의 집안을 씨를 다 말려버립니다. 히스기야도 그랬고 잘한 건 잘한 것이고 말씀에 어긋난 건 다 깨지고 마는 것이지요.
말씀대로 할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말씀으로 된 신앙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언행심사도 그렇고 살아가면서 말씀대로 된 것은 구원이 된 것이고 아닌 것은 다 불타없어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좀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66장
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 ~ 16절
오류 발생 시 첨부 파일 참조 바랍니다.
진실한 신앙입니다. 진실이 뭔가 진실은 글자 그대로 말하면 진짜 열매를 말하는 거지요. 헛된 것이 없다 그런 뜻이겠습니다. 말은 있는데 실제가 없는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 이건 진실과 반대 외식입니다. 진실은 겉과 속이 같은 것입니다. 일반적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신 진실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백 목사님 해석은 말씀대로 되어진 걸 진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 말씀으로 된 것은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원의 도리.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바꾸어진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만들어진다.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되어가는 형성되어져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고 말씀이고 이것을 법칙으로 삼고 도리로 삼아서 말씀을 인도로 삼아서 말씀이 하라는대로 하고 말씀이 금하라는 것은 금하고.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 마음의 모든 작용을 만들어지게 되는데 환경이라는 거는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를 만들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짐승도 그런 게 있습니다. 어떤 환경에서 사육하냐에 따라서 고기 맛이 달라진다 그런 말도 하지요. 자연스럽게 더 자라면 고기 맛이 좋아진다고 합니다. 무엇을 들으며 어떻게 행동을 하며 심신의 활동에 따라서 세월 속에 사람이 화 되는 거지요. 세상 사람 공자의 도덕을 듣고 읽고 공자의 도덕을 인생의 지표로 삼아서 가면 공자같은 사람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불경을 읽고 인생의 길로 삼아서 석가의 것으로 가면 석가같은 사람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말씀으로 살아나가면 세월 속에 말씀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지식으로 삼아서 주격지식으로 나를 지배하면 진실한 지식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진 말이면 진실한 말입니다. 진실한 생활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세월을 살아가지고 바꾸어지면 그만큼 진실한 사람이 되게 됩니다. 진실한 사람은 말씀의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이 이루어졌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말세가 되면 짐승이 하나 나오는데 땅에서 짐승이 올라오는데 머리가 7개고 뿔이 10개인데 세상이라고 해석합니다. 말세의 세상의 세상이 뿔이 10이고 머리가 7개다. 짐승의 모든 권세를 주지요. 말세가 되면 한 뜻을 가지고 어린 양을 대적하고 그 하나 된 사람들을 대적하게 됩니다. 온 세상이 말세가 되면 하나가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말세가 될수록 하나되기는커녕 조각조각이 납니다. 소련에서 독립 많이 됐지요. 제국주의 시대 그런 때에 비하면 제국에 속한 나라가 독립해서 나라를 이루고 민족들이 자기 민족을 찾게 되고 집안적으로 다 갈라지고 개인주의로 다 갈라지고 말세가 될수록 점점 개인주의적인 것이 됩니다. 개인도 안에 들어가면은 각 요소별로 나눠지게 됩니다. 말세가 되면 하나가 되기는커녕 조각이 되는데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상적으로 하나된다고 했습니다.
그 많은 것에 인간이 모든 존재의 중심이다. 사람이 우선이고 중심이다. 인본주의를 말로 하면 나라와 상관없이 민족과 상관없이 인종과 상관없이 어느 민족 어느 사회 가도 인본 주의를 뭐라하면 먹혀들어가게 되는 건데 인본주의를 말하면 미국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한국과 일본이 합해질 것인가. 그건 아니지요. 온 세상이 일곱머리 열 뿔 모든 지식과 지식이 하나되고 종교가 하나되고 그게 무슨 말이냐. 현재가 말세지말인데 하나 되지 않고 흩어집니다. 하나된다는 말이 무엇인가. 어느 지역이든지 어느 사회든지 말씀을 하면 인본주의와 맞지 않는 인간 중심이라는 큰 틀. 역사적으로 그럴 겁니다. 인류역사는 처음부터 그랬을 것인데 인본에 주장되는 대립된 그런 게 중세대까지 1500년 종교개혁 이전에는 4500년 전에는 알든 모르든 정확하든 정확하지 않던 신본주의적이었습니다. 세상은 신본주의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원론적으로는 그런 게 있고. 종교 개혁 이후로 인간 중심으로 바꿔지게 된 게 1500년 즈음 그렇게 되었겠지요.
500년 전입니까. 말세가 되면 전부 인간 중심 인본주의로 하나가 되어져갑니다. 신본 신에게 속해있던 것에 탈피해서 인간이 중심이 되고 그것으로 하나가 되는데. 어떤 종교나 사상이나 철학이든지 예외가 없고 토를 달지 못하는데 유일하게 기독교만큼은 안되는 겁니다. 6000년 전부터 사상이 변해진 게 타락이 되는 것이고 참된 교회가 되는 건데 말세가 되면 신본주의 교회가 인본주의로 가면서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고 신본주의를 이어져오는 이 교회가 참된 교회가 이어져오는 건데. 정면으로 배치가 되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대립이 되게 되는 겁니다. 인본주의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사회마다 다 있는데 인종을 초월해서 북경을 초월해서 어느 곳에 가든지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안 좋은 걸 들은 게 없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고싶다. 가는 곳마다 핍박을 받더라. 신본주의를 주장하는 참된 사상은 마지막에 대립이 됩니다. 모든 종교가 대립되고 모든 문화 사상과 대립이 됩니다. 어디들 가든지 박해받을 수 밖에 없고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못 박기 전에 헤롯과 빌라도는 원수였는데 예수님을 못박을 때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것 할 거 없이 옳은 길을 가는 곳은 항상 그 사람이나 그거 말고는 대립이 다 됩니다. 기이하게도 다른 것에는 하나가 안 되는데 참된 믿음의 사람을 박해하는 것은 박해하는 것이라고 하고. 온 세상 하나에서 참된 교회를 대적한다 그런 말이지요. 우리 학생들에게 세밀하게 가르치지 않아도 원리는 알아야합니다. 또는 그런 싸움이 일어날 때 온 세상이 인본주의로 하나 되어서 진실한 사람은 이기는데 그 진실한 사람은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고 그 중에 진실한 사람이 이기는데 이긴다는 말은 이 세상식으로 점령해서 차지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말세가 되면은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했습니다. 진실한 신앙으로 잡고 가는 것은 무엇이 진실이냐. 진실은 말씀대로 되어진 걸 진실이라고 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말씀대로 되지 않는 것은 구원과 상관이 없는 게 되는 겁니다. 가이사나 빌립보에서 여론을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오늘로 말하면 교회를 두고 안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보는 시각 생각 인식 이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치 둘 게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인자를 누구라하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로마 사람들에게 물어본 게 아닙니다. 오늘로 말하면 교회들입니다.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느냐. 예수 믿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보느냐. 신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일반 사람들의 생각 인식 보는 시각 견해 느낌 그들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물어본 것입니다.
어떠냐 하는 상태보다도 정체성을 물어본거지요.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 그래서 예수님께서 여론을 물어보셨고 성경에 기록했기 때문에 여론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 생각에 따라 전부 여론은 달라지기 때문에 교회보는 여론도 그렇습니다. 아마 안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말하면 교인과 가까운 사이고 좋은 사이라면 교회에 대한 인식은 좋을겁니다. 가족 중에서 믿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인식이 안 좋으면 인식이 나쁠겁니다. 여론은 참고만 하는 겁니다. 물어보셨는데 그 여론들이 다 틀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라, 엘리야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다 틀렸죠.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 여론을 따라가지 않았죠.
믿는 사람들이 신아이란 무엇이냐. 주일이 무엇이냐. 성경이 뭐냐 어떻게 믿느냐. 성경은 정말 하나님 말씀으로 믿느냐. 아니면 성경을 사람들이 가감할 수 있도록 믿느냐. 이 차이는 생과 사의 차이가 되는 겁니다. 모든 교계가 신학자들 중에서 성경 믿는 신학자 못봤다. 성경을 정말 그대로 믿는 신학자들을 못봤다. 백 목사님께서 미국에 양성하시려고 학생을 유학보냈습니다. 가서 신학가서 유명한 신학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토록하다가. 다른 신학교 교수에게 얼마나 읽었는지 물어보니까 신학교는 성경 공부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게 신학교 일반 교계의 여론입니다. 이게 여론이기 때문에 여론을 따라가면 안 읽는 사람이 되는 거지요. 주일을 어느정도 지켜야하느냐. 전하고 배우면 직장 위에 떨어져도 큰 거래에 거래처가 떨어져도 감옥에 갈지라도 순교를 할 지라도 배웁니다. 그렇게 가르치는지 모르겠으나 그 교계가 없지싶이 합니다. 그게 여론입니다. 현실에 주일에 대한 여론입니다.
그런 여론을 따라가면 신앙과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지막 세상에 당나귀 팔려가는 것처럼 주격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여론은 중요하지만 참고는 하는 겁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럴 때 주는 그리스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양심대로 고백을 했고 성령의 감동이 되어진겁니다. 이게 진실된 신앙이라는 것이지요. 알았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이 베드로에게 주님에게 한 대답이 진실의 대답입니다. 모든 신앙이 그렇게 되어야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뒤에 주님이 가르치실 때 인간으로 돌아와버립니다. 말씀대로 고백을 했는데 자기 주관대로 해서 말씀 잊어버리고 주관에 붙들려서 베드로는 다시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존재 하나도 그 속에 질서적이고 체계적입니다. 원리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모래알 하나도 모래되게 된 것은 그런 이치가 있습니다. 가을에 뒹구는 낙엽 하나도 낙엽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전부 법칙이 있습니다. 그 존재의 활동의 법칙 생명의 법칙 번성의 법칙이 있습니다. 말씀의 신앙은 신앙이 아니라는 거지요. 아무리 신앙생활을 해도 교회를 다녀도 예배를 드려도 믿는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 자기의 언행심사 관계 활동 자체 이게 된 만큼 신앙이고 된만큼 구원이 되는 것이지 아무리 믿어도 구원이 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진실한 신앙은 아니라말이지요. 여호사밧을 말하는 것이고 히스기야를 말하는 겁니다. 여호사밧의 신앙과 충성과 해악을 생각하면 온전히 절단되어버립니다. 여호사밧의 며느리가 누구라고요? 이세벨의 딸입니다. 아합의 딸. 세상에 그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여호사밧이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받았습니다. 아달랴가 이스라엘 왕족의 집안을 씨를 다 말려버립니다. 히스기야도 그랬고 잘한 건 잘한 것이고 말씀에 어긋난 건 다 깨지고 마는 것이지요.
말씀대로 할려고 애를 쓰는 겁니다. 말씀으로 된 신앙입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언행심사도 그렇고 살아가면서 말씀대로 된 것은 구원이 된 것이고 아닌 것은 다 불타없어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만들려고 노력을 좀 해야겠습니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