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9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5-02-09조회 78추천 12
2025년 2월 9일 주일 오전
찬송: 165장, 43장
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 ~ 16절
기독교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그런 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도다. 사랑의 도다. 소망의 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또 하나 중요하게 붙이면 진실의 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실이란 진짜 열매라는 뜻입니다. 껍데기만 있고 알멩이가 비어있는게 아니고 진짜를 말하는 게 진실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말세가 되면 요한계시록 17장에 온 세상에 일곱머리와 열 뿔이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일곱머리는 세상의 모든 지식들 그 지식에서 만들어진 사상들 모든 종교들 사람을 복되게한다는 모든 것을 일곱머리라고 했고 열 뿔이라는 것은 뿔을 말합니다. 무력의 힘 돈의 힘 언론의 힘 다수의 힘 이런 세력들을 다 열 뿔이라고 그랬습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고 지식도 힘도 많은데 나라마다 다 경계가 있고 족속이 다르고 살아온 풍속이 다르고 민족이 다 다른데 그 다른 전부가 말세가 되면 하나로 단합이 된다고 했습니다.
종교와 종교가 다 하나되고 이 민족 저 민족이 다 하나가 되는데 언론과 경제와 무력과 다수와 이게 하나로 통일이 되는데 그리 될 수 없는데 그리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로 다 된 것이 인본주의로 하나된다고 말합니다. 인본주의로 하나가 되는 것이가, 인본주의라는 말은 사람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먼저다. 사람이 우선이다. 어떤 것보다 사람이 먼저다. 모든 정치도 사람이 우선이다 경제도 종교도 사람이 우선이다 먼저다. 그래서 이런 인본주의가 되어지는 이 사상 이 정신 이런 주의 이런 걸로 주장이 되고 퍼져나가니까 만물의 영장이 사람이고 모든 것 중에 가장 최고 소위 포식자에 있는 영장이 있는 사람이 우선이 되니까 이론에 있지 않는 거지요. 어느 종교든 막론하고 사람이 중심이다. 여기에 토를 다는 사상이 없습니다. 사람이 우선이다. 이게 인본주의인데 나라와 민족과 족속과 경계 종교 문화 상관없이 하나로 통일됩니다. 그렇게 온 세상이 뭉쳐서 나라는 다르고 족속은 다른데 사람 중심으로 모이니까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통일이 다 되는 거지요. 그 속에 중심은 하나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여러 나라를 가서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전부 다 곳곳에 보면 경제게도 종교계도 교육계도 인간 중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중심으로 다 통일이 되는 것이 말세가 되면 되는데 인본주의라는 말은 사람이 첫째고 우선이고 그거인데 불교에 가서 갈 때 불교 믿는 사람이 부처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다. 부처보다 사람이 우선입니다. 공자도 사람이 먼저다 그럴 겁니다. 그래서 어떤 주의도 인본주의를 넘어서지는 못할겁니다. 지금 세상이 그렇게 되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기독교라는 것은 우선이 하나님이 우선이다. 하나님이 전부다 그렇게 진실한 기독교입니다. 이것과 반대되는게 인본주의인데 단합이 되어있는데 신본주의라는 것이니까 머리가 둘이 되는 거고 중심이 둘이 되는 거고 우선순위가 둘이 되어서 마찰이 생깁니다. 나라 국가와 상관없고 초월해서 종교를 넘어서 사상 철학을 넘어서 묻혔는데 하나님 중심이라 이러니 대립이 되겠지요.
눈에 보이는 게 아니고 신앙적인 것이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렵습니다만 모든 세상이 다 연결이 되어져서 현재 세상의 모습들입니다. 인간 중심의 세상 가정도 학교도 사회도 나라 전부도 인간 중심의 세상이 되어졌습니다. 인간을 뒤로하고 들을 수 없고 접촉할 수 없는 이걸 온 세상 전부 광신도라고 하는 것이고 종교도 지나쳤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투를 할 때 끌려가지 않고 기록되기를 진실한 자만 이긴다고 했습니다. 진실이 마지막에 승리하는 게 기독교라고 그랬습니다.
진실이란 인간 지식을 다 뒤로하고 인간 자체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자기 지식으로 삼고 자기 지식을 주관하는 주격지식이라고 합니다. 나의 모든 언행심사가 나라는 사람을 주격 지식이 하나님 말씀이 되고 끌려서 살아가고 바꾸어졌을 때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오실 때 이야기입니다. 많은 것을 다니시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이게 여론을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통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 복음을 전하셨고 워낙 드러나게 활동하시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았는데 예수님 자신을 누구라고 물어봤습니다. 예수님을 물어보신 것은 곧 하나님입니다. 응용하면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지내느냐입니다. 기독교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신앙이라는 게 무엇으로 알고있느냐. 믿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나님이 누구냐. 기독교가 무엇이냐. 생각이란 무엇이냐 예수님께서 누구라고 여론을 물어보신 겁니다.
여러 사람들의 생각 여러 사람들의 견해 여러 사람들의 의견 여러 사람들의 인식을 말하는 겁니다. 다수의 견해 다수가 보고 있는 시각, 어떻게 보고 있느냐 그런 뜻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도 생각해야합니다. 기독교란 무엇일까. 믿음이란 무엇일까. 신앙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우리 공회도 여론조사합니다. 집회 참석했던 분들의 느낀 바 의견을 다 물어가지고 발전된 집회를 하기 위해서 설명합니다. 나라에서 여론조사 많이하지요.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어있으나 예수님의 실제 모든 생활은 하나님과 100퍼센트 동거 동행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사를 물을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 생각보다 예수님 판단이 정확합니다. 여론을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물어보신 것은 우리 공회 우리 교회도 교인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의사를 물어보고 방향을 물어보는 것은 완전하기 못하기 때문에 참고하고 반영을 하는 겁니다.
동행이므로 여론을 참고할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제자들을 하시고 그게 그때 여론 조사들의 목적입니다. 다수라는 말은 많은 숫자고 다수 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다수가 결정해서 해악을 끼친 경우는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다수 이것은 중요한데 옳은 것은 반드시 다수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 아시는 상식이지만 독일 히틀러가 나치당을 만들 때 90퍼센트 이상이 절대 지지했습니다. 그게 다수라는 민주주의라는 그런 것을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모택동이라는 사람들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10대들은 홍위병을 만들어서 많이 죽였습니다. 역사 다수가 해서 폐를 끼친 적은 상당히 많습니다. 과거 광우병 사태 온 나라가 난리쳤는데 알고보니 다 속임수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다수들이 나와서 난리치는데 그 다수라는 건 페가 많은 겁니다. 여론이라는 것은 참가할 필요가 있으나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정치 사상도 이쪽 저쪽에 하는 것은 심히 안타깝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여런 물어보시는 것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니까 여론들이 답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레 요한,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 분은 세례 요한이다 선지자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맞았습니까 틀렸습니까. 다 틀렸습니다. 천 명 만 명들이 다 틀렸습니다. 백 만 명이 예수님은 세레 요한이다 다 틀린 겁니다. 이게 여론이고 다수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냐, 세례 요한, 위대한 선지자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어떤 사람인가요. 가장 큰 자가 세례요한입니다. 나쁜 겁니까. 예수님을 가르켜서 4대 인물을 뽑아라. 철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게 4대 성인 이렇게 자랑스럽게 여길지 모르겠지요. 그게 범성죄고 하나님을 인간으로 끌어내리는 큰 죄입니다. 예수님을 4대성인으로 끌어내리는 겁니다. 너무 훌륭한 사람한테 강아지가 이 강아지가 100억짜리다. 그 분은 100억짜리 강아지하고 비슷합니다 하면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그보다 비교못할만큼 되는 겁니다. 지금 여론도 그런 비슷한 게 있다는 걸 참고하셔야합니다.
예수님들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은 날 누구라고 그러냐. 친구도 있고 친척도 있는데 그들의 여론을 다 빼고 너희들은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리스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누가 가르쳤습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 존경하는 사람들 친한 사람들 따라가지 않고 직접 하는게 그리스도십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내가 그리스도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혈육이 아니다. 이건 하늘의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알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지식이 아닌 주님에게 직접 배운 지식을 가지고 받아들였습니다. 주의 말씀 그대로 듣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하시는 겁니다. 나는 베드로다. 원래 이름 시몬인데 이때부터 이름이 베드로가 되었지요. 반석이라는 뜻인데 그 역사 위에 교회를 세운다. 그 반석에 교회를 세울 것이니까 참된 교회는 친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인도 교회 가정도 교회입니다. 참된 개인이 옳은 말씀 붙들고 진실하게 실행해서 참된 교회가 되는 어떤 사람도 침해하지 못하게 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신 성령의 역사다.
자기가 직접 배운 그대로는 너는 베드로다. 교회를 세우겠다. 천국 열쇠를 주겠다 그랬는데 고난 받고 죽으신 다음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네가 사람 일을 생각한다. 이게 바로 인본주의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론에 따라서 하는데 배운 말씀 그대로 따라가는 게 반석이 되는 건데 인간적인 요소, 그리 마옵소서 그렇게 되는거라 넘어지게 하는거라고 하는 겁니다. 말씀에 붙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붙들리면 안된다 그런 겁니다. 24절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속에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요소 다 버리고 그리하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지니라.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주를 따라가는 생활은 죽어도 살고 살아도 죽는 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26절에 보니까 온 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살기 위해서 믿음을 져버리면 죽게 되버리는 겁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뭐라고 하느냐 우리에게 응용하면 교회란 뭐냐 이때 주님 계실 때 이스라엘은 그런 거니까 안 믿는 사람은 상관없고 우리들이 교회가 뭐냐, 믿음이란 뭐냐. 신앙생활은 예배생활입니다. 주일있고 예배 생활있고 그런 겁니다 예배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기도하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다른 사람 구원해서 전도하고 물질로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흔히 5대 의무라고 하지요. 어떻게 하는 것이냐. 안에 들어가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냐. 아내는 어떻게 하며 가정이란 무엇이냐. 경제생활은 어떻게 하느냐. 학교 생활은 어떻게 하느냐. 전부 다가 신앙생활이 되는 겁니다. 가짜 자기 위치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자기 위치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생활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심방전도하고 학교 다니고 가정생활하고 경제생활하고 전부 한 사람의 신앙생활인데 어떻게하느냐.
ktx가 달려드는데 철로가 있습니다. 그 철길에 따라서 가야하지 거기서 벗어나면 열차를 탈선이라고 합니다. 탈선하면은 대형사고가 납니다. 열차란 반드시 해야합니다. 자동차도 시내도로도 정해진 도로로 되었습니다. 달리다가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멈추고 파란 신호등이 켜치면 가야합니다. 그게 자동차의 속도 법칙입니다. 이걸 어기면 대형사고 일어납니다. 고속도로는 100키로 밑인데 200키로 가면 죽을 확률이 올라갑니다. 물고기가 법칙 어겨서 나오면 죽습니다. 식물이 밖에 나오면 죽습니다. 사람도 아무리 있어도 적당히 먹어라 탈이 생깁니다. 모든 존재 자체 존재 활동 모두 하는 동안에는 법칙이 되는 것입니다. 법칙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법칙이 있습니다. 주일을 어떻게 지키느냐 법이 있습니다. 주일을 예배당 왔다갔다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기도 법칙도 있고 법칙이 있습니다. 가정생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법칙이 있는데 그대로 해야 되는 겁니다.
실제로 그리 되지를 않는 겁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어떤 경우도 하지 말아야합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먹고 싶어도 안 먹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상황에 따라서 끊으라는 것은 끊어야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살아야하는 법칙에 법이 있는데 그대로 해야 신앙생활이되고 구원이 되지 세계 모든 교회가 주일 오전 예배를 11시에 드리고 3시에 드리고 5시에 드리고 그러니까 우리도 그래도 되겠네. 주일을 바꿀 때는 바꿔서 80년대 우리나라 그랬습니다. 목요일을 주일로 하자. 전기가 모자라니까 강단에서 회사마다 교대로 어느 쪽은 목요일로 주일을해라. 그래서 그 지역사람은 목요일을 시대를 지키고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도 예배 순서도. 그런 여론을 따라서 하는 것은 실패합니다. 베드로처럼 자기 생각대로하는 것인데 기도록 일상 생활 전부 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 있으니까 반드시 말씀 먹을 시간만 참된 주일입니다.
제자들 베드로가 여론에는 붙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틀려버렸습니다. 자기 주관 오판 착각 말씀도 법칙이기 때문에 진실되게 하면 성령이 역사해서 바로 행할 수 있도록 되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65장, 43장
본문: 마태복음 16장 13절 ~ 16절
기독교는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그런 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도다. 사랑의 도다. 소망의 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 또 하나 중요하게 붙이면 진실의 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실이란 진짜 열매라는 뜻입니다. 껍데기만 있고 알멩이가 비어있는게 아니고 진짜를 말하는 게 진실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말세가 되면 요한계시록 17장에 온 세상에 일곱머리와 열 뿔이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일곱머리는 세상의 모든 지식들 그 지식에서 만들어진 사상들 모든 종교들 사람을 복되게한다는 모든 것을 일곱머리라고 했고 열 뿔이라는 것은 뿔을 말합니다. 무력의 힘 돈의 힘 언론의 힘 다수의 힘 이런 세력들을 다 열 뿔이라고 그랬습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도 많고 지식도 힘도 많은데 나라마다 다 경계가 있고 족속이 다르고 살아온 풍속이 다르고 민족이 다 다른데 그 다른 전부가 말세가 되면 하나로 단합이 된다고 했습니다.
종교와 종교가 다 하나되고 이 민족 저 민족이 다 하나가 되는데 언론과 경제와 무력과 다수와 이게 하나로 통일이 되는데 그리 될 수 없는데 그리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로 다 된 것이 인본주의로 하나된다고 말합니다. 인본주의로 하나가 되는 것이가, 인본주의라는 말은 사람 중심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먼저다. 사람이 우선이다. 어떤 것보다 사람이 먼저다. 모든 정치도 사람이 우선이다 경제도 종교도 사람이 우선이다 먼저다. 그래서 이런 인본주의가 되어지는 이 사상 이 정신 이런 주의 이런 걸로 주장이 되고 퍼져나가니까 만물의 영장이 사람이고 모든 것 중에 가장 최고 소위 포식자에 있는 영장이 있는 사람이 우선이 되니까 이론에 있지 않는 거지요. 어느 종교든 막론하고 사람이 중심이다. 여기에 토를 다는 사상이 없습니다. 사람이 우선이다. 이게 인본주의인데 나라와 민족과 족속과 경계 종교 문화 상관없이 하나로 통일됩니다. 그렇게 온 세상이 뭉쳐서 나라는 다르고 족속은 다른데 사람 중심으로 모이니까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통일이 다 되는 거지요. 그 속에 중심은 하나로 이어지게 되는 겁니다. 여러 나라를 가서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전부 다 곳곳에 보면 경제게도 종교계도 교육계도 인간 중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 중심으로 다 통일이 되는 것이 말세가 되면 되는데 인본주의라는 말은 사람이 첫째고 우선이고 그거인데 불교에 가서 갈 때 불교 믿는 사람이 부처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다. 부처보다 사람이 우선입니다. 공자도 사람이 먼저다 그럴 겁니다. 그래서 어떤 주의도 인본주의를 넘어서지는 못할겁니다. 지금 세상이 그렇게 되어져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기독교라는 것은 우선이 하나님이 우선이다. 하나님이 전부다 그렇게 진실한 기독교입니다. 이것과 반대되는게 인본주의인데 단합이 되어있는데 신본주의라는 것이니까 머리가 둘이 되는 거고 중심이 둘이 되는 거고 우선순위가 둘이 되어서 마찰이 생깁니다. 나라 국가와 상관없고 초월해서 종교를 넘어서 사상 철학을 넘어서 묻혔는데 하나님 중심이라 이러니 대립이 되겠지요.
눈에 보이는 게 아니고 신앙적인 것이기 때문에 구별하기 어렵습니다만 모든 세상이 다 연결이 되어져서 현재 세상의 모습들입니다. 인간 중심의 세상 가정도 학교도 사회도 나라 전부도 인간 중심의 세상이 되어졌습니다. 인간을 뒤로하고 들을 수 없고 접촉할 수 없는 이걸 온 세상 전부 광신도라고 하는 것이고 종교도 지나쳤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투를 할 때 끌려가지 않고 기록되기를 진실한 자만 이긴다고 했습니다. 진실이 마지막에 승리하는 게 기독교라고 그랬습니다.
진실이란 인간 지식을 다 뒤로하고 인간 자체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자기 지식으로 삼고 자기 지식을 주관하는 주격지식이라고 합니다. 나의 모든 언행심사가 나라는 사람을 주격 지식이 하나님 말씀이 되고 끌려서 살아가고 바꾸어졌을 때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오실 때 이야기입니다. 많은 것을 다니시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이게 여론을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통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 복음을 전하셨고 워낙 드러나게 활동하시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았는데 예수님 자신을 누구라고 물어봤습니다. 예수님을 물어보신 것은 곧 하나님입니다. 응용하면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지내느냐입니다. 기독교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신앙이라는 게 무엇으로 알고있느냐. 믿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나님이 누구냐. 기독교가 무엇이냐. 생각이란 무엇이냐 예수님께서 누구라고 여론을 물어보신 겁니다.
여러 사람들의 생각 여러 사람들의 견해 여러 사람들의 의견 여러 사람들의 인식을 말하는 겁니다. 다수의 견해 다수가 보고 있는 시각, 어떻게 보고 있느냐 그런 뜻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리도 생각해야합니다. 기독교란 무엇일까. 믿음이란 무엇일까. 신앙이란 무엇일까. 그래서 우리 공회도 여론조사합니다. 집회 참석했던 분들의 느낀 바 의견을 다 물어가지고 발전된 집회를 하기 위해서 설명합니다. 나라에서 여론조사 많이하지요. 하나님 앞에 죄인이 되어있으나 예수님의 실제 모든 생활은 하나님과 100퍼센트 동거 동행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사를 물을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 생각보다 예수님 판단이 정확합니다. 여론을 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물어보신 것은 우리 공회 우리 교회도 교인들의 의견을 물어보고 의사를 물어보고 방향을 물어보는 것은 완전하기 못하기 때문에 참고하고 반영을 하는 겁니다.
동행이므로 여론을 참고할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서 제자들을 하시고 그게 그때 여론 조사들의 목적입니다. 다수라는 말은 많은 숫자고 다수 주의를 다른 말로 하면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다수가 결정해서 해악을 끼친 경우는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다수 이것은 중요한데 옳은 것은 반드시 다수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 아시는 상식이지만 독일 히틀러가 나치당을 만들 때 90퍼센트 이상이 절대 지지했습니다. 그게 다수라는 민주주의라는 그런 것을 그렇게 만드는 겁니다. 모택동이라는 사람들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10대들은 홍위병을 만들어서 많이 죽였습니다. 역사 다수가 해서 폐를 끼친 적은 상당히 많습니다. 과거 광우병 사태 온 나라가 난리쳤는데 알고보니 다 속임수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다수들이 나와서 난리치는데 그 다수라는 건 페가 많은 겁니다. 여론이라는 것은 참가할 필요가 있으나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정치 사상도 이쪽 저쪽에 하는 것은 심히 안타깝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여런 물어보시는 것은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니까 여론들이 답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레 요한,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 분은 세례 요한이다 선지자다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맞았습니까 틀렸습니까. 다 틀렸습니다. 천 명 만 명들이 다 틀렸습니다. 백 만 명이 예수님은 세레 요한이다 다 틀린 겁니다. 이게 여론이고 다수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냐, 세례 요한, 위대한 선지자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은 어떤 사람인가요. 가장 큰 자가 세례요한입니다. 나쁜 겁니까. 예수님을 가르켜서 4대 인물을 뽑아라. 철 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게 4대 성인 이렇게 자랑스럽게 여길지 모르겠지요. 그게 범성죄고 하나님을 인간으로 끌어내리는 큰 죄입니다. 예수님을 4대성인으로 끌어내리는 겁니다. 너무 훌륭한 사람한테 강아지가 이 강아지가 100억짜리다. 그 분은 100억짜리 강아지하고 비슷합니다 하면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그보다 비교못할만큼 되는 겁니다. 지금 여론도 그런 비슷한 게 있다는 걸 참고하셔야합니다.
예수님들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은 날 누구라고 그러냐. 친구도 있고 친척도 있는데 그들의 여론을 다 빼고 너희들은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말하기를 그리스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누가 가르쳤습니까.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 존경하는 사람들 친한 사람들 따라가지 않고 직접 하는게 그리스도십니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내가 그리스도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혈육이 아니다. 이건 하늘의 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알게 하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지식이 아닌 주님에게 직접 배운 지식을 가지고 받아들였습니다. 주의 말씀 그대로 듣고 믿을 때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하시는 겁니다. 나는 베드로다. 원래 이름 시몬인데 이때부터 이름이 베드로가 되었지요. 반석이라는 뜻인데 그 역사 위에 교회를 세운다. 그 반석에 교회를 세울 것이니까 참된 교회는 친애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개인도 교회 가정도 교회입니다. 참된 개인이 옳은 말씀 붙들고 진실하게 실행해서 참된 교회가 되는 어떤 사람도 침해하지 못하게 되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신 성령의 역사다.
자기가 직접 배운 그대로는 너는 베드로다. 교회를 세우겠다. 천국 열쇠를 주겠다 그랬는데 고난 받고 죽으신 다음에 주님 말씀하시기를 네가 사람 일을 생각한다. 이게 바로 인본주의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여론에 따라서 하는데 배운 말씀 그대로 따라가는 게 반석이 되는 건데 인간적인 요소, 그리 마옵소서 그렇게 되는거라 넘어지게 하는거라고 하는 겁니다. 말씀에 붙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붙들리면 안된다 그런 겁니다. 24절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속에 자기 생각 자기 감정 자기 요소 다 버리고 그리하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지니라. 십자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주를 따라가는 생활은 죽어도 살고 살아도 죽는 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26절에 보니까 온 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 살기 위해서 믿음을 져버리면 죽게 되버리는 겁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뭐라고 하느냐 우리에게 응용하면 교회란 뭐냐 이때 주님 계실 때 이스라엘은 그런 거니까 안 믿는 사람은 상관없고 우리들이 교회가 뭐냐, 믿음이란 뭐냐. 신앙생활은 예배생활입니다. 주일있고 예배 생활있고 그런 겁니다 예배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기도하는 생활이 신앙생활입니다. 다른 사람 구원해서 전도하고 물질로 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흔히 5대 의무라고 하지요. 어떻게 하는 것이냐. 안에 들어가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냐. 아내는 어떻게 하며 가정이란 무엇이냐. 경제생활은 어떻게 하느냐. 학교 생활은 어떻게 하느냐. 전부 다가 신앙생활이 되는 겁니다. 가짜 자기 위치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자기 위치에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생활고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드리고 심방전도하고 학교 다니고 가정생활하고 경제생활하고 전부 한 사람의 신앙생활인데 어떻게하느냐.
ktx가 달려드는데 철로가 있습니다. 그 철길에 따라서 가야하지 거기서 벗어나면 열차를 탈선이라고 합니다. 탈선하면은 대형사고가 납니다. 열차란 반드시 해야합니다. 자동차도 시내도로도 정해진 도로로 되었습니다. 달리다가 빨간 신호등이 켜지면 멈추고 파란 신호등이 켜치면 가야합니다. 그게 자동차의 속도 법칙입니다. 이걸 어기면 대형사고 일어납니다. 고속도로는 100키로 밑인데 200키로 가면 죽을 확률이 올라갑니다. 물고기가 법칙 어겨서 나오면 죽습니다. 식물이 밖에 나오면 죽습니다. 사람도 아무리 있어도 적당히 먹어라 탈이 생깁니다. 모든 존재 자체 존재 활동 모두 하는 동안에는 법칙이 되는 것입니다. 법칙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법칙이 있습니다. 주일을 어떻게 지키느냐 법이 있습니다. 주일을 예배당 왔다갔다 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기도 법칙도 있고 법칙이 있습니다. 가정생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법칙이 있는데 그대로 해야 되는 겁니다.
실제로 그리 되지를 않는 겁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어떤 경우도 하지 말아야합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먹고 싶어도 안 먹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상황에 따라서 끊으라는 것은 끊어야합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살아야하는 법칙에 법이 있는데 그대로 해야 신앙생활이되고 구원이 되지 세계 모든 교회가 주일 오전 예배를 11시에 드리고 3시에 드리고 5시에 드리고 그러니까 우리도 그래도 되겠네. 주일을 바꿀 때는 바꿔서 80년대 우리나라 그랬습니다. 목요일을 주일로 하자. 전기가 모자라니까 강단에서 회사마다 교대로 어느 쪽은 목요일로 주일을해라. 그래서 그 지역사람은 목요일을 시대를 지키고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도 예배 순서도. 그런 여론을 따라서 하는 것은 실패합니다. 베드로처럼 자기 생각대로하는 것인데 기도록 일상 생활 전부 다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 있으니까 반드시 말씀 먹을 시간만 참된 주일입니다.
제자들 베드로가 여론에는 붙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틀려버렸습니다. 자기 주관 오판 착각 말씀도 법칙이기 때문에 진실되게 하면 성령이 역사해서 바로 행할 수 있도록 되는 겁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