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9일 수밤
김동민2024-10-09조회 101추천 13
2024년 10월 9일 수밤
찬송: 20장, 69장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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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세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신망애, 믿을 신, 바라볼 망, 사랑 애 신망애라고 합니다. 많이 들어보셨습니까. 아마 신망애라는 이름이 붙은 간판은 기독교 계열에서 뭘 하는 것일겁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다. 믿음은 영원하고 사랑도 영원하고 소망도 영원한데 그 중 제일은 사랑이다. 사랑이 무엇인가. 제일은 사랑이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으로 돌아간다.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전부는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으로 말미암고 사랑으로 돌아간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그게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동력입니다. 좀 더 붙이면 신앙의 동력 믿음 사랑 신망의 그래도 되겠습니다. 동력이란 무슨 뜻이라고요. 동력이 무슨 뜻입니까. 움직일 동 힘 력 자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청년들이 한문글자를 안 배워서 무식하답니다. 단어 뜻도 모른다고 합니다.
성경도 한자가 많습니다. 동력이란 무슨 뜻이라고요 움직일 동 힘 력입니다. 기계든지 개미든지 바퀴벌레도 사람도 그 안에 힘이 있어야합니다. 움직이려면 심장이 뛰는데 심장 뛰는 심이 있어야합니다. 숨을 쉬면 쉬는 거 같은데 힘이 없으면 숨을 못 쉽니다. 감기 걸리면 간질간질하고 기침이 나는데 해야하는 겁니다. 기침 못하면 죽습니다. 안의 나쁜 걸 밖으로 하는 거기 때문에 그런데 나이가 많으면 잘못하면 가버립니다. 숨 쉬는 것도 기침하는 것도 사람이 움직이려면 작은 개미 한 마리도 움직이려면 그 움직이는 힘을 가르켜서 동력이라고 합니다. 기계도 가전제품도 매일같이 휴대폰 뭐합니까. 학생들은 여기 없네, 장하네, 휴대폰 없습니까. 몇 학년입니까. 5학년이면 없으면 참 장하네, 요즘 다 가지고 난리일텐데. 중학생 되어도 휴대폰 없으면 참 실력 있는 겁니다. 시대를 거슬러가는 것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을 잘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가지고 노는데 그 학생은 휴대폰이 없어도 된답니다. 그러면 잘난 사람이다. 인물이라고 합니다. 친구들 전부 휴대폰 가지고 노니까 다른 사람 다 가졌는데 왜 나는 없어요 그런 사람을 못난 사람이라고 하는겁니다. 나는 없어도 되는 겁니다. 여기 다 가지고 계시는데 매일 같이 휴대폰을 충전시키지요. 왜 충전시킵니까. 배터리가 없으면 충전이 안 돌아가니까 그게 동력입니다. 배터리도 수명 다하면 못 씁니다.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덜 들어도 4 500키로 타면 기름 넣어야합니다. 차가 왜 이래, 기름이 떨어졌으니까. 그게 자체가 동력이라는 거지요.
사람이 아무리 힘이 센 청년 장사라도 힘이 빠집니다. 잘 못 움직일걸요. 왜, 동력이 없으니까 움직일 힘을 넣지 않았으니까 동력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동력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힘인데 만들어주는 게 음식이고 기름이고 그런 겁니다. 동력이라는 건 한 번 넣으면 되는 게 아니고 계속적으로 공급을 해야합니다. 밥도 하루 세 끼 먹어어하고 못 먹어도 두 끼, 도시가스는 가스통 없어도 됩니다만은 다 공곱을 해줘야합니다. 가스 공급이 안되면 공급이 안됩니다. 안에 에어컨 켜고 하는게 다 전기가 돌아갑니다. 계속 공급이 되니까 밝아지고 마이크도 나오고 그런 겁니다. 동력이라는 것은 다 채우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공급해 줘야합니다. 기계도 계속해서 넣어줘야하고 몸도 음식을 먹어줘야하고 마찬가지로 마음은 신비한 물질인데도 마음은 계속해서 마음도 동력을 공급해줘야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몸의 작용입니까. 마음의 작용입니까. 마음의 작용이지요. 믿음이 바탕입니다. 믿고 신앙이라는 것은 바라본다는 말이니까. 말에 따라서는 몸이 같이 움직이는 게 신앙이고 몸은 계속해서 먹어주면 되는데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몸이 튼튼해지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배가 부르지는 않습니다. 말씀대로 잘 살아도 영양소가 공급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경 많이 읽어도 배는 고픈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마음의 양식을 몸에 아무리 공급해도 상관 없습니다. 마음에는 영양소를 주지 못합니다. 마음은 마음의 동력이 있어야합니다. 그게 신앙으로 말하면 세 가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마음의 동력은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무엇이 마음의 양식입니까. 독서입니다. 좋은 책보다 나쁜 책이 천 배 백 배 더 많아서 안 읽어야합니다. 일반적으로 국어에 문학을 읽으면 쓰레기들입니다. 타락시킵니다. 이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서 독서가 마음의 독약이 되는 시대입니다.
원론적으로 그렇다 그 말이 되겠지요. 믿음의 양식 믿음의 동력이 뭐냐 믿음의 기본적인 양식은 성경입니다. 말씀입니다. 기도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고 주일 지키고, 신앙의 기본적인 양식입니다. 이런 생활들이 그 다음 단계에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생성에서 나오지만 기본적인 믿음이 있어도 자라가는거죠. 자라가야하는데 성경 안 읽고 기도 안 하고 주일 안지키면 기도하면 조심스럽게 연보생활 안 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동력이 공급되지 않는 겁니다. 그 다음 말하면 신앙의 동력이란 다음 단계를 말하는 겁니다. 신앙의 동력 세 가지를 말씀드리는데 믿음이 뭐냐, 일곱 가지 분석을 해봤습니다. 믿음이 다르고 소망이 다르고 사랑이 다르니까.
믿음이 뭐냐, 무엇이 무엇이냐 할 때 정의입니다. 그것의 의미가 뭐냐 정의라고 합니다. 여기 믿음의 정의다 생성이다 사원이다 방법이다 역사다 한자라면 뜻을 다 압니다. 생성이라는 말은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생겨나는 걸 생성이라고 합니다. 그 두 글자를 우리 말로 풀어쓰면 생겨나는 것 다섯 글자로 합니다. 두 글자로 생성입니다. 한문 글자를 좀 알면 안 써먹어도 내가 말해도 다른 사람 말해도 유식하게 보이지 않나요.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알아야 아주 기본적인 단어도 모르면 문제가 됩니다. 아는 사람들은 표를 안 냅니다. 굉장히 무섭습니다. 믿음의 정의, 믿음이라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앙세계 믿음은 말씀을 인정하고 내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을 그렇다고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는 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지구는 네모졌습니까 둥급니까. 중세에는 천주교가 평평하다고 했고 끝까지 가면 낭떠러지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는 둥근데 천주교에서 죽인다고 했으니까 둥글지 않다고 했고 지구는 둥글고 돈다고 했다고 하죠. 안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 아닌 겁니다. 내 마음이 받아들일 때 그걸 가르켜 믿음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이면 믿음이 되는 거고 성경 말씀이 내 마음에 안 받아들이고 인정이 안 되면 믿음이 없는 겁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겨지느냐,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헤입니다. 은혜란 그냥 주는 걸 말합니다. 왜 공짜배기로 줍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짜로 주시는 게 많습니다. 영아 아버지 어머니를 얼마 드리고 태어났습니까. 영서는, 공인이는, 아버지 어머니는 얼마나 드렸어요. 공짜로 태어났지요. 공짜로 태어났으니까 영아나 영서나 공인이나 주은이는 쌉니까. 얼마나 합니까. 우주보다 값이 더 비쌉니다. 한 생명이 우주보다 귀하다고 하면 여러 면이 있습니다만은 귀하고 비싼 사람을 부모님을 그냥 주셨느냐 너무 값이 비싸서 값을 낼 수가 없으니까. 반대로 자녀 하나는 그 값이 얼마인데 한 사람 생명이 우주보다 귀한다. 전부 은혜로 주시는 건데 부모님도 은혜지만 자녀 잉태도 출산도 은혜입니다. 믿음은 값이 크기 때문에 은혜로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무한테나 주지 않고 믿음은 택자한테만 줍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 대속을 입어서 중생된 사람들에게만 줍니다.
그래서 믿음의 생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생성으로 하는 겁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믿어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거는 연관되는데 전부 다 휴대폰을 다 가지고 놀고 그렇게 사면 따라가면 그 중에 하나 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전부 다 가졌는데 나는 안 가졌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는 너희들과 나는 다르다가 되는 거고 그게 잘난 겁니다. 성경 말씀은 나쁜 거라도 안 믿어집니다. 안 믿어지는데 우리는 믿어지거든요. 그게 은혜라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큰 거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믿음의 차원을 말하는 겁니다. 이 세상들이 말하는 믿음의 차원이 아닌 겁니다. 세상 믿음은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믿어지면 믿고 안 믿어지면 안 믿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세상 사람들의 차원의 믿음 가지고 가득 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 주신 것은 안 믿어지는 겁니다. 그게 귀한거지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우리 믿음이 그런 겁니다.
내가 성경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믿어지고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게 믿어지고 이것잉 보통 은혜가 아닌 겁니다. 그런데 성장성이 있어서 자라가는 겁니다. 이 믿음은 길러가야 자라갑니다. 길러가야 자랍니다. 길러가야 자랍니다.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믿음과 어떤 사람들의 믿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믿기는 믿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벌벌 떠는 분도 계십니다. 너무 멀리 있어서 믿기는 믿는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길러 가야하고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강해지고 깊어지고 뜨거워지는 거지요. 방법이 뭐냐, 방법은 한 말로 말하면 믿음입니다.
믿음을 길러가는 방법은 믿음. 믿음이 무엇이지요. 믿음의 종류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본 믿음이 있습니다. 그걸 길러가야합니다. 자라야합니다. 그 믿음을 길러가 자라가는 것이 건설믿음입니다. 한 번 들어서 모르면 재독해야지요. 그래서 신앙은 기본적으로 연습입니다. 공부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복습입니다. 어떤 공부든 다 그렇습니다. 한 번 읽으면 어떤 천재가 있는데 일본 도쿄 시내를 헬리콥터를 타고 뱅 돌았답니다. 그리고 한 번 보고 그림을 그리는데 정확하게 다 그려낸답니다. 그런 사람은 천재인데, 그런 사람은 대개 보면 장애자입니다. 그건 하는데 다른 건 못합니다. 장단점이 있겠죠. 차라리 덜 똑똑하고 일반적인 게 낫지요. 믿음이 자라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요. 길러가야합니다. 말씀을 알려면 성경을 읽어야하지요. 복습해야하지요. 물어봐야지요. 아는 그게 진짜인지 생각해봐야합니다. 기도해봐야하고 살아봐야하고.
내가 믿는지 안 믿는지 따져봐야하고. 그게 믿음이 자라가는 방법입니다. 자란 만큼 내 속에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믿음이 내 속에 있는데 그 믿음을 내가 길러서 그 믿음이 강한 만큼 깊은 만큼 밖으로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그게 믿음이 없으면 역사는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주일을 꼬박꼬박 지키고 신앙생활 하는 분들은 자랐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예사로 빼먹고 신앙생활 하는 둥 마는 등 믿기는 믿는 믿음이 그만큼 안 자란 겁니다. 믿음이 적으니까 주일 오전만 겨우 오는 거지요.
첫째 뭐가 약합니까. 아는 것이 적은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조금 밖에 모르는 겁니다. 인정도 작고 실행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실행하지 않고는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권세나 세상 선생님들은 자기가 어느정도 하고 난 다음에 앞서가지 않고 뒤에서 매를 때리든 돈을 주고 그러든 갑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앞서가지 않고는 양떼들이 결코 따라가지 않습니다. 부모가 따라가지 않는데 자녀가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 목사가 신앙이 좀 식어진다 싶으면 교인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애가 타서 굴러야합니다. 이런 면이 있는 겁니다. 믿음의 결과는 기적으로 빛으로 나타납니다. 덕스러운 생활입니다. 덕이 되는 생활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 소망, 소망은 무슨 뜻입니까. 소망이라는 글자 자체가 바라볼 소망, 바라볼 망이라는 겁니다. 한문으로 하면 바라본다는 겁니다.
미래를 보는 걸 소망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소망은 다 가지고 있는데 우리들이 가진 소망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은혜인데 예수님의 부활로 주신 게 근거가 됩니다. 이 소망의 차원은 하루 이 땅을 10만원 받는다. 15만원 받는다. 300만원 받는다 이것도 소망인데 우리의 소망은 그런 것이 아니고 믿음의 차원처럼 하나님을 닮아간다. 내가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된다. 천국을 내가 유업으로 받는다. 이게 우리 소망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릇이 커야하고 잘나야하지 못난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못한다고 합니다. 활동을 합니다. 소망을 가지면 활기차게 받아야합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축 쳐져버립니다. 불신이 있고 이런 것이 있으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쳐져버립니다. 불신이 없고 맑고 밝고 명량하면 드러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비타민을 먹으면 그런 역할을 합니다. 신앙 생활을 힘있게 만들어주는 게 소망입니다. 이게 소망의 활동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있기 때문에 찬송가 예배드릴 때 소망 찬송했지요. 그런 찬송하니까 힘이 나는 겁니다. 참 좋은 찬송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신앙 생활을 밝게 하는 겁니다. 두 가지라고 했지요. 주님 말씀 변치않는 말씀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말씀이라서 무슨 언약이라고 했던가요. 소금 언약이라. 소망이라는 것은 역사할 때 소망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전제될 때 됩니다. 기본적으로 사후 세계입니다. 죽음 너머 세계지만 우리들이 육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소망을 맛보기로 보여주십니다. 크게 세 번째 사랑입니다. 내 속에 이런 믿음이 있냐, 각자 우리 자신 한 번 들여다 봐야합니다. 사랑이란 사랑의 정의는 애매합니다만 성경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그러는데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란 세 가지입니다.
사랑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있다. 이번 주일 오는 주일 날 사랑 설교를 할련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게 사랑인지 생각해봐야합니다. 교회들도 인간 사랑을 하나님 사랑을 인간 사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타락을 하고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락하고 혈육 사랑으로 동족 사랑으로 인간 사랑으로 다 가버립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랑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 번째는 생성되어있는데 믿음의 생성, 소망의 생성처럼 이게 속성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생긴 건 속성이 닮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의 사랑의 뜻이 사랑이 있는 겁니다. 이 네 번째 차원 하나님의 차원은 세상과 달라서 인간 세상은 전부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 편의 조건인데 이 사람은 무조건적인 사람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게 사랑의 차원입니다.
이 사랑은 활동이 속성 자체 활동이 상대방을 좋게 복되게 하는 것이 활동입니다. 사랑의 방법은 하나님의 사람도 인간 사랑도 희생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는 인간 사랑은 전부 고통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은 영생을 사는 겁니다. 신앙의 동력으로 신망애, 7가지 씩 뜯어봤습니다. 어떤 차원이냐 어떤 활동이냐 활동이냐 결과냐 잘 생각해보고 어떻게 되어있는지 살펴봅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20장, 69장
본문: 고린도전서 13장 13절
오류 발생 시 첨부파일 참조 바랍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세 글자로 뭐라고 합니까. 신망애, 믿을 신, 바라볼 망, 사랑 애 신망애라고 합니다. 많이 들어보셨습니까. 아마 신망애라는 이름이 붙은 간판은 기독교 계열에서 뭘 하는 것일겁니다.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다. 믿음은 영원하고 사랑도 영원하고 소망도 영원한데 그 중 제일은 사랑이다. 사랑이 무엇인가. 제일은 사랑이다. 모든 것은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으로 돌아간다. 그런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모든 전부는 사랑에서 나왔고 사랑으로 말미암고 사랑으로 돌아간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그게 바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동력입니다. 좀 더 붙이면 신앙의 동력 믿음 사랑 신망의 그래도 되겠습니다. 동력이란 무슨 뜻이라고요. 동력이 무슨 뜻입니까. 움직일 동 힘 력 자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청년들이 한문글자를 안 배워서 무식하답니다. 단어 뜻도 모른다고 합니다.
성경도 한자가 많습니다. 동력이란 무슨 뜻이라고요 움직일 동 힘 력입니다. 기계든지 개미든지 바퀴벌레도 사람도 그 안에 힘이 있어야합니다. 움직이려면 심장이 뛰는데 심장 뛰는 심이 있어야합니다. 숨을 쉬면 쉬는 거 같은데 힘이 없으면 숨을 못 쉽니다. 감기 걸리면 간질간질하고 기침이 나는데 해야하는 겁니다. 기침 못하면 죽습니다. 안의 나쁜 걸 밖으로 하는 거기 때문에 그런데 나이가 많으면 잘못하면 가버립니다. 숨 쉬는 것도 기침하는 것도 사람이 움직이려면 작은 개미 한 마리도 움직이려면 그 움직이는 힘을 가르켜서 동력이라고 합니다. 기계도 가전제품도 매일같이 휴대폰 뭐합니까. 학생들은 여기 없네, 장하네, 휴대폰 없습니까. 몇 학년입니까. 5학년이면 없으면 참 장하네, 요즘 다 가지고 난리일텐데. 중학생 되어도 휴대폰 없으면 참 실력 있는 겁니다. 시대를 거슬러가는 것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을 잘난 사람이라고 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가지고 노는데 그 학생은 휴대폰이 없어도 된답니다. 그러면 잘난 사람이다. 인물이라고 합니다. 친구들 전부 휴대폰 가지고 노니까 다른 사람 다 가졌는데 왜 나는 없어요 그런 사람을 못난 사람이라고 하는겁니다. 나는 없어도 되는 겁니다. 여기 다 가지고 계시는데 매일 같이 휴대폰을 충전시키지요. 왜 충전시킵니까. 배터리가 없으면 충전이 안 돌아가니까 그게 동력입니다. 배터리도 수명 다하면 못 씁니다. 전기로 움직이는 자동차는 덜 들어도 4 500키로 타면 기름 넣어야합니다. 차가 왜 이래, 기름이 떨어졌으니까. 그게 자체가 동력이라는 거지요.
사람이 아무리 힘이 센 청년 장사라도 힘이 빠집니다. 잘 못 움직일걸요. 왜, 동력이 없으니까 움직일 힘을 넣지 않았으니까 동력이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동력이라는 것은 움직이는 힘인데 만들어주는 게 음식이고 기름이고 그런 겁니다. 동력이라는 건 한 번 넣으면 되는 게 아니고 계속적으로 공급을 해야합니다. 밥도 하루 세 끼 먹어어하고 못 먹어도 두 끼, 도시가스는 가스통 없어도 됩니다만은 다 공곱을 해줘야합니다. 가스 공급이 안되면 공급이 안됩니다. 안에 에어컨 켜고 하는게 다 전기가 돌아갑니다. 계속 공급이 되니까 밝아지고 마이크도 나오고 그런 겁니다. 동력이라는 것은 다 채우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공급해 줘야합니다. 기계도 계속해서 넣어줘야하고 몸도 음식을 먹어줘야하고 마찬가지로 마음은 신비한 물질인데도 마음은 계속해서 마음도 동력을 공급해줘야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몸의 작용입니까. 마음의 작용입니까. 마음의 작용이지요. 믿음이 바탕입니다. 믿고 신앙이라는 것은 바라본다는 말이니까. 말에 따라서는 몸이 같이 움직이는 게 신앙이고 몸은 계속해서 먹어주면 되는데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몸이 튼튼해지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배가 부르지는 않습니다. 말씀대로 잘 살아도 영양소가 공급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경 많이 읽어도 배는 고픈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마음의 양식을 몸에 아무리 공급해도 상관 없습니다. 마음에는 영양소를 주지 못합니다. 마음은 마음의 동력이 있어야합니다. 그게 신앙으로 말하면 세 가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마음의 동력은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뭐라고 합니까. 무엇이 마음의 양식입니까. 독서입니다. 좋은 책보다 나쁜 책이 천 배 백 배 더 많아서 안 읽어야합니다. 일반적으로 국어에 문학을 읽으면 쓰레기들입니다. 타락시킵니다. 이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서 독서가 마음의 독약이 되는 시대입니다.
원론적으로 그렇다 그 말이 되겠지요. 믿음의 양식 믿음의 동력이 뭐냐 믿음의 기본적인 양식은 성경입니다. 말씀입니다. 기도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성경 읽고 기도하고 주일 지키고, 신앙의 기본적인 양식입니다. 이런 생활들이 그 다음 단계에 동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생성에서 나오지만 기본적인 믿음이 있어도 자라가는거죠. 자라가야하는데 성경 안 읽고 기도 안 하고 주일 안지키면 기도하면 조심스럽게 연보생활 안 하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동력이 공급되지 않는 겁니다. 그 다음 말하면 신앙의 동력이란 다음 단계를 말하는 겁니다. 신앙의 동력 세 가지를 말씀드리는데 믿음이 뭐냐, 일곱 가지 분석을 해봤습니다. 믿음이 다르고 소망이 다르고 사랑이 다르니까.
믿음이 뭐냐, 무엇이 무엇이냐 할 때 정의입니다. 그것의 의미가 뭐냐 정의라고 합니다. 여기 믿음의 정의다 생성이다 사원이다 방법이다 역사다 한자라면 뜻을 다 압니다. 생성이라는 말은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생겨나는 걸 생성이라고 합니다. 그 두 글자를 우리 말로 풀어쓰면 생겨나는 것 다섯 글자로 합니다. 두 글자로 생성입니다. 한문 글자를 좀 알면 안 써먹어도 내가 말해도 다른 사람 말해도 유식하게 보이지 않나요.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알아야 아주 기본적인 단어도 모르면 문제가 됩니다. 아는 사람들은 표를 안 냅니다. 굉장히 무섭습니다. 믿음의 정의, 믿음이라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앙세계 믿음은 말씀을 인정하고 내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을 그렇다고 인정을 하고 받아들이는 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지구는 네모졌습니까 둥급니까. 중세에는 천주교가 평평하다고 했고 끝까지 가면 낭떠러지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는 둥근데 천주교에서 죽인다고 했으니까 둥글지 않다고 했고 지구는 둥글고 돈다고 했다고 하죠. 안 받아들이는 것은 믿음이 아닌 겁니다. 내 마음이 받아들일 때 그걸 가르켜 믿음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에 그대로 받아들이면 믿음이 되는 거고 성경 말씀이 내 마음에 안 받아들이고 인정이 안 되면 믿음이 없는 겁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겨지느냐,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헤입니다. 은혜란 그냥 주는 걸 말합니다. 왜 공짜배기로 줍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공짜로 주시는 게 많습니다. 영아 아버지 어머니를 얼마 드리고 태어났습니까. 영서는, 공인이는, 아버지 어머니는 얼마나 드렸어요. 공짜로 태어났지요. 공짜로 태어났으니까 영아나 영서나 공인이나 주은이는 쌉니까. 얼마나 합니까. 우주보다 값이 더 비쌉니다. 한 생명이 우주보다 귀하다고 하면 여러 면이 있습니다만은 귀하고 비싼 사람을 부모님을 그냥 주셨느냐 너무 값이 비싸서 값을 낼 수가 없으니까. 반대로 자녀 하나는 그 값이 얼마인데 한 사람 생명이 우주보다 귀한다. 전부 은혜로 주시는 건데 부모님도 은혜지만 자녀 잉태도 출산도 은혜입니다. 믿음은 값이 크기 때문에 은혜로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무한테나 주지 않고 믿음은 택자한테만 줍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 대속을 입어서 중생된 사람들에게만 줍니다.
그래서 믿음의 생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생성으로 하는 겁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이 믿어지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거는 연관되는데 전부 다 휴대폰을 다 가지고 놀고 그렇게 사면 따라가면 그 중에 하나 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전부 다 가졌는데 나는 안 가졌으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겁니다. 나는 너희들과 나는 다르다가 되는 거고 그게 잘난 겁니다. 성경 말씀은 나쁜 거라도 안 믿어집니다. 안 믿어지는데 우리는 믿어지거든요. 그게 은혜라는 겁니다. 이게 굉장히 큰 거입니다. 그래서 세 번째 믿음의 차원을 말하는 겁니다. 이 세상들이 말하는 믿음의 차원이 아닌 겁니다. 세상 믿음은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믿어지면 믿고 안 믿어지면 안 믿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세상 사람들의 차원의 믿음 가지고 가득 차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 주신 것은 안 믿어지는 겁니다. 그게 귀한거지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우리 믿음이 그런 겁니다.
내가 성경이 믿어지고 하나님이 믿어지고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신다는 게 믿어지고 이것잉 보통 은혜가 아닌 겁니다. 그런데 성장성이 있어서 자라가는 겁니다. 이 믿음은 길러가야 자라갑니다. 길러가야 자랍니다. 길러가야 자랍니다.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믿음과 어떤 사람들의 믿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믿기는 믿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벌벌 떠는 분도 계십니다. 너무 멀리 있어서 믿기는 믿는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길러 가야하고 자라가게 되는 겁니다. 강해지고 깊어지고 뜨거워지는 거지요. 방법이 뭐냐, 방법은 한 말로 말하면 믿음입니다.
믿음을 길러가는 방법은 믿음. 믿음이 무엇이지요. 믿음의 종류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본 믿음이 있습니다. 그걸 길러가야합니다. 자라야합니다. 그 믿음을 길러가 자라가는 것이 건설믿음입니다. 한 번 들어서 모르면 재독해야지요. 그래서 신앙은 기본적으로 연습입니다. 공부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복습입니다. 어떤 공부든 다 그렇습니다. 한 번 읽으면 어떤 천재가 있는데 일본 도쿄 시내를 헬리콥터를 타고 뱅 돌았답니다. 그리고 한 번 보고 그림을 그리는데 정확하게 다 그려낸답니다. 그런 사람은 천재인데, 그런 사람은 대개 보면 장애자입니다. 그건 하는데 다른 건 못합니다. 장단점이 있겠죠. 차라리 덜 똑똑하고 일반적인 게 낫지요. 믿음이 자라려면 어떻게 해야한다고요. 길러가야합니다. 말씀을 알려면 성경을 읽어야하지요. 복습해야하지요. 물어봐야지요. 아는 그게 진짜인지 생각해봐야합니다. 기도해봐야하고 살아봐야하고.
내가 믿는지 안 믿는지 따져봐야하고. 그게 믿음이 자라가는 방법입니다. 자란 만큼 내 속에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믿음이 내 속에 있는데 그 믿음을 내가 길러서 그 믿음이 강한 만큼 깊은 만큼 밖으로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그게 믿음이 없으면 역사는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주일을 꼬박꼬박 지키고 신앙생활 하는 분들은 자랐기 때문에 하는 겁니다. 예사로 빼먹고 신앙생활 하는 둥 마는 등 믿기는 믿는 믿음이 그만큼 안 자란 겁니다. 믿음이 적으니까 주일 오전만 겨우 오는 거지요.
첫째 뭐가 약합니까. 아는 것이 적은 겁니다. 하나님 말씀을 조금 밖에 모르는 겁니다. 인정도 작고 실행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실행하지 않고는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권세나 세상 선생님들은 자기가 어느정도 하고 난 다음에 앞서가지 않고 뒤에서 매를 때리든 돈을 주고 그러든 갑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앞서가지 않고는 양떼들이 결코 따라가지 않습니다. 부모가 따라가지 않는데 자녀가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 목사가 신앙이 좀 식어진다 싶으면 교인들이 간절히 기도하고 애가 타서 굴러야합니다. 이런 면이 있는 겁니다. 믿음의 결과는 기적으로 빛으로 나타납니다. 덕스러운 생활입니다. 덕이 되는 생활로 나타납니다. 두 번째 소망, 소망은 무슨 뜻입니까. 소망이라는 글자 자체가 바라볼 소망, 바라볼 망이라는 겁니다. 한문으로 하면 바라본다는 겁니다.
미래를 보는 걸 소망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소망은 다 가지고 있는데 우리들이 가진 소망은 어떻게 생겨났느냐 은혜인데 예수님의 부활로 주신 게 근거가 됩니다. 이 소망의 차원은 하루 이 땅을 10만원 받는다. 15만원 받는다. 300만원 받는다 이것도 소망인데 우리의 소망은 그런 것이 아니고 믿음의 차원처럼 하나님을 닮아간다. 내가 하나님 같은 사람이 된다. 천국을 내가 유업으로 받는다. 이게 우리 소망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릇이 커야하고 잘나야하지 못난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못한다고 합니다. 활동을 합니다. 소망을 가지면 활기차게 받아야합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은 축 쳐져버립니다. 불신이 있고 이런 것이 있으면 자신감이 없어지고 쳐져버립니다. 불신이 없고 맑고 밝고 명량하면 드러나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비타민을 먹으면 그런 역할을 합니다. 신앙 생활을 힘있게 만들어주는 게 소망입니다. 이게 소망의 활동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있기 때문에 찬송가 예배드릴 때 소망 찬송했지요. 그런 찬송하니까 힘이 나는 겁니다. 참 좋은 찬송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신앙 생활을 밝게 하는 겁니다. 두 가지라고 했지요. 주님 말씀 변치않는 말씀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말씀이라서 무슨 언약이라고 했던가요. 소금 언약이라. 소망이라는 것은 역사할 때 소망이 역사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전제될 때 됩니다. 기본적으로 사후 세계입니다. 죽음 너머 세계지만 우리들이 육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소망을 맛보기로 보여주십니다. 크게 세 번째 사랑입니다. 내 속에 이런 믿음이 있냐, 각자 우리 자신 한 번 들여다 봐야합니다. 사랑이란 사랑의 정의는 애매합니다만 성경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그러는데 이 세상이 말하는 사랑이란 세 가지입니다.
사랑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있다. 이번 주일 오는 주일 날 사랑 설교를 할련가 모르겠습니다. 어떤 게 사랑인지 생각해봐야합니다. 교회들도 인간 사랑을 하나님 사랑을 인간 사랑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타락을 하고 사랑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락하고 혈육 사랑으로 동족 사랑으로 인간 사랑으로 다 가버립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랑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세 번째는 생성되어있는데 믿음의 생성, 소망의 생성처럼 이게 속성입니다. 우리 속에 하나님이 생긴 건 속성이 닮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의 사랑의 뜻이 사랑이 있는 겁니다. 이 네 번째 차원 하나님의 차원은 세상과 달라서 인간 세상은 전부 조건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 편의 조건인데 이 사람은 무조건적인 사람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게 사랑의 차원입니다.
이 사랑은 활동이 속성 자체 활동이 상대방을 좋게 복되게 하는 것이 활동입니다. 사랑의 방법은 하나님의 사람도 인간 사랑도 희생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는 인간 사랑은 전부 고통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사랑은 영생을 사는 겁니다. 신앙의 동력으로 신망애, 7가지 씩 뜯어봤습니다. 어떤 차원이냐 어떤 활동이냐 활동이냐 결과냐 잘 생각해보고 어떻게 되어있는지 살펴봅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