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일 금밤
김동민2024-02-02조회 334추천 57
2024년 2월 2일 금밤
찬송: 80장
본문: 요한복음 11장 32절 ~ 35절
공과공부가 되겠습니다. 제목이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다른 걸로 말하면 눈물의 무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사람은 다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눈물의 동물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울음의 깊이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눈물의 무게를 가히 청량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도 비중있는 사람은 잘 울지 않고 만약 울면 보통이 아닌 겁니다. 오전에든 오후든 이건 가르치기가 좀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성에 속한 면에 없지 않아서 이성의 이치의 말씀인데 감정에 속한 것이 되니까 억지로 웃는 것도 어렵고 억지로 우는 것도 어렵습니다. 설교도 그렇고 예배시간 중에서 가장 힘든 예배가 언제라고 그럽니까. 설교 중에서 가장 어려운 설교가 언제입니까. 성찬식 설교가 가장 어렵습니다. 성찬식은 일종의 장례식 분위기고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교자와 침례자가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마귀가 틈을 타서 엉망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조심스러운게 성찬식이고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이번 말씀에서 다윗의 눈물이 있고 예레미야의 눈물이 있고 마리아의 눈물이 있고 베드로의 눈물이 있고 에서의 눈물이 있습니다. 에서의 눈물은 옳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억울하고 분했는데 그것이 아버지 축복을 아우에게 빼앗겼는데 아버지 축복의 무게를 몰랐습니다. 나한테 올 거 아우가 빼앗아갔다. 장자의 명분을 에서가 팔아먹었습니다. 얼마 받고 팔아먹었습니까. 얼마나 돈을 많이 받았는가요. 팥죽 한 그릇, 요즘 돈으로 만 원 정도. 장자의 명분은 천억도 넘을겁니다. 그걸 만 원에도 안되는 게 팔아먹는 게 에서입니다. 아버지 축복은 어마어마한건데 알면 안 빼앗기는 건데 모르는 걸 빼앗겼는데 그냥 내게 올 거 아우가 빼앗았다 그겁니다. 마음 속에서 괘씸해서 야곱을 해치려 했지만 그때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서 그렇게까지 아버지 속이고 뺏아았지만 그거 아니더라도 나는 부자가 되었다. 에서도 야곱만큼 부자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잘난 사람입니다. 통이 크고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잘난 사람인데 아우하고 한 곳에 살기 싫어서 아우한테 물려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양보를 하는 거지요. 그렇게 잘난 에서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한지 몰랐습니다. 아버지 축복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짐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그러기 때문에 잘났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몰라서 결국 버림받고 말았고 축복을 빼앗겼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간구했지만 얻지를 못했습니다. 회개할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에서의 눈물은 가치없는 후회의 눈물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때 아이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많이 기도하고 연구하고 그래서 말씀의 이치를 차분하게 전하는 겁니다. 많이 생각을 해서. 그 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감동시킬 수 있고 그런 것이고 인위적으로 말하자면 눈물 흘리는 그리 되기 쉽지 않지만 별로 도움되지 않는 것 같고, 설교는 말할 거 없고 충성을 하고 노력을 하지만 인위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해야하는 일,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선을 넘어가면 악을 쫓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도 충분히 준비를 하고, 도리를 차분하게 성경 그대로 간결하게 요즘 아이들은 수준이 높아서 설명하면 알아듣습니다. 담담하게 설명해 나가면 다윗의 눈물, 이번 공과 첫 번째가 다윗의 눈물인데, 벧스메스로 가는 암소 울음소리, 어미 소의 울음이 어떨까를 생각하면서 이 말씀이 거기에서 나왔습니다.
새끼를 낳아 기르는 어미 소가 새끼를 떼놓고 타지로 끌려간다. 멈추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걸어간다. 이건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께서 자연계시로 가르치시려고 그렇게 보내신 겁니다.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야하는거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물질은 말할 것이 없고 뗄 수 없는 정이 모정인데 사람은 더하겠지만 짐승도 사람못지 않습니다. 어미소가 새낄 두고 간다 안되는 건데 가도록하셔서 믿는 사람이 말씀의 인도 따라가는 것은 물질이 있어도 어떤 정이 있어도 붙들리지 않고 아이를 두고 사지로 가야하는 것도 말씀이 가라면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게 벧스메스로 가는 암소의 걸음입니다. 그런데 울면서 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말씀이 가라 그러는 곳은 막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미 소가 새끼를 떼놓고 가니까 울면서 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 눈물의 무게를 생각해보는겁니다. 다윗의 눈물을 생각한다면 장년반 시간에는 설교할 수 있는데 주일학교에서는 설교도 못하고 있는대로 설명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범죄라는 것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진노하셨는데 하나님이 아끼신 사람이기 때문에 징벌이 더 큰 겁니다. 옛날 어른들 말에 미운 자식은 떡하나 주고 이쁜 자식은 매 하나 때린다고 합니다. 매를 때려야 사람이 되니까. 부모님이 내 자식 남의 자식이 있으면 잘못해도 조심스럽게 책망할 수 있으면 하지만 함부로 못합니다. 사랑하면 부지런히 매를 때려라. 아버지 어머니가 매를 때리면 나를 사랑하는 거라는 뜻입니다. 미워서 그런 게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꾸지람하고 그러면 그만큼 사랑하시는 겁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런 죄를 많이 짓는데 그런 벌을 크게 유독 많이 주신겁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대서 많은 문제가 생겨지고 그 상황을 두고 슬프니까 슬퍼하고 괴로우니까 괴로워하는데 가장은 자신을 돌아보는 겁니다. 어떤 일이든지 방향을 그리 잡으면 해결되게 됩니다. 모든 은혜는 전부 다 나한테 있다. 내 잘못이다. 현실은 현실대로 헤쳐나가는 겁니다. 다른 데에서 원인을 찾으면 죽는 날까지도 그러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윗과 방향이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파서 죽어갈 때도 아버지한테 반역할 때도 자기를 쳤습니다. 죄를 지어 그랬습니다. 그게 전부 죄 때문입니다. 그렇게 돌아보니까 철저하게 해결을 한 겁니다. 세상 떠나는 날까지 참 그리되기까지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회의 눈물, 회개의 눈물입니다. 그게 감정적인 것이 아니고 시편이 150편까지인데 아마 다윗의 기도가 시편이 가장 많을 겁니다. 다윗은 용사인데 전쟁하는 군인인데 그렇게 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철저했다는 말입니다. 감성이 앞선 게 아닙니다. 잘못을 따지면서 죄 중에 잉태되었나이다. 다윗은 찾아서 해결했습니다. 그 다윗이 솔로몬으로 이어지면서 가장 이스라엘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마지막까지 가고 나중에 끝나지만 다윗의 왕국은 영원토록 이어져서 아브라함 다윗 예수 그리스도. 그렇게 됐습니다. 하늘나라가 다윗의 나라입니다. 예루살렘이고 시온 성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철저한 눈물의 역사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합니다. 자기를 살필 때 그러는 것이고 말씀은 가지고 자기를 살필 때 아는 것이고 보이는 것이지 다른 것이 들어가면 안보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 보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셔야합니다.
두 번째, 예레미야의 눈물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그게 예레미야의 눈물입니다. 자기 죄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의 전체 죄를 가지고 눈물을 흘립니다. 망해가는 나라를 위한 눈물이고 회개의 눈물인데 예레미야는 선지자고 그렇기 때문에 대표해서 대신 회개하고 그런 겁니다. 망해가는 나라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회복의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도 있고 다니엘도 있고 모르드개도 있고 모르드개와 함께했던 에스더도 있고 느헤미아도 있고 다니엘도 있고 이런 머리 되는 종들의 눈물의 그런 기도가 망한 나라를 회복시키는 거름이 되는 겁니다. 오늘날도 죄 없는 사람 없는데 누군가가 눈물을 흘릴 때 미래의 소망을 만드는 겁니다. 앞날에 기쁨의 영광의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종들을 통해서 그렇게 죄짓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기어코 부리고 나라가 절단나니까 외치다 외치다 마지막에 나라 망하니까 애가를 짓고 그렇게 한 겁니다. 이런게 다 모여서 앞날의 생활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이 자녀를 소망있게 하는 겁니다. 부모님의 회개의 눈물이 없으면 자녀들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이고 그 역사가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들의 눈물은 말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눈물을 주옵소서, 강팍한 심정을 녹여주옵소서, 눈물이 나야하는데 눈물이 안납니다. 눈물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눈물을 흘릴 이유를 찾아봐야합니다. 하늘나라 생각을 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을 하고 가지고 따져봐야합니다. 과거를 잘 살았고 얼마만큼 받아 되어있고 그래도 조심해야합니다. 욥은 시험 나가기 전에 동방에서 가장 나가는 부자였고 10남매였습니다. 그 아들딸들은 아버지만큼 신앙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벌벌 떨었습니다. 그래서 식사하고 나면 번제를 드렸습니다. 항상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사랑하시니까 인간의 차원을 넘었다 할만큼 욥에게 그런 시련을 주신 겁니다. 우리는 욥만큼 복을 받았습니까 잘 살았습니까. 강처럼 매일 울면서 살아야하는데 눈물이 안 나오는데 이게 강팍입니다.
마리아의 눈물은 섞였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구주입니다. 고대한 메시아가 왔으니까 구원받았구나 감히 앞에 서지 못하고 발을 붙들고 머리털을 가지고 향유를 붓고 주님의 가장 밑의 가치 적은 그쪽을 들고 가장 귀한 보배를 해서 이분이 이렇게 귀한 분이고 나는 천한 죄인이라며 감사해서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런 게 느껴져서 감사의 눈물을 흘린 사람이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의 죄를 사함받았다. 삼남매지요. 오라버니의 두 자매가 있고 사랑하셨다. 사랑스럽게 사니까 행동하니까 사랑을 받는 겁니다. 이런 회개와 그런 깨달음이 우리 속에 있는지 계속 되지 못해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해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베드로의 눈물은 통안의 눈물 회개의 눈물입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그 베드로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심한 통곡으로 울었습니다. 그 눈물이 베드로를 아낌없이 만들고 거꾸로 순교하는 그런 순교의 거름이 되는 눈물이 되어졌습니다. 이런 다윗의 눈물 예레미아의 눈물 그 무게가 보통이 아닌 겁니다. 이런 눈물을 가지려고 노력을 해야하는 겁니다. 건설구원에 속한 건데,
믿는 사람이 가만히 감나무 밑에 누워서 맛있는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어쩌다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토끼가 부딪혀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냥꾼이 사냥을 안하고 토끼가 나오다가 부딪혀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게 1년에, 10년에 한 번이겠습니까. 그걸 두고 토끼굴 앞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런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그런 사냥꾼은 나중에 굶어죽습니다.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은 힘을 쓰는 구원입니다. 성찬식때도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마셔라 그랬지 저절로 그런 게 아닌겁니다.
눈물이라는 것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기는데 평소에는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찾아들어가야합니다. 그래서 힘쓰고 애쓰지 않으면 눈물이라는 것은 저절로 생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눈물 흘리게 만들면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저절로 눈물이 나는데 고통의 눈물이 나게 됩니다. 그때는 되게 아픕니다. 평소에 조절 잘하고 그러면 주사 안 맞아도 되고 수술 안해도 되는데 평소에 먹고 싶은 것 단 거 마구 먹어재끼고 그렇습니다. 그거 먹으면 호기심에 한 번 정도 그러고 그러면 먹는 거 아닙니다. 요즘 그거 때문에 모두 당뇨병 때문에 난리입니다. 새파랗게 젊은 30대가 당뇨걸렸습니다. 그런 걸 먹어서 그러면 입에 맛있는 건 건강에 해롭습니다. 뭐라 그랬습니까. 입의 맛있는 음식은 몸에 안 좋고 쓴 약은 몸에 좋습니다. 홍삼은 몸에 좋은데 엄청 씁니다. 말도 듣기 좋은 말은 행동의 손해입니다. 평소에 건강관리 잘하고 음식조절 잘하고 그러면 오래토록 잘 쓰는데 자동차를 관리를 하면 못하는데 던져놔버리면 곰팡이 필만큼 그렇게 되는데 10년 쓸 거 5년도 못 씁니다. 평소에 하나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고 생활한 거 계속 생각하면서 회개하고 눈물흘리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눈물흘리지 않으면 팔 하나 쳐버리던지 그러면 눈물이 저절로 나버립니다.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시지 사람처럼 가볍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귀머거리가 그런 게 아니고 기회를 주신 겁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충분히 주시고 차고 넘치도록 주시고 안 그러면 벌을 주십니다. 평소에 눈물이 있으면 강제가 없는데 평소에 그러지 않으면 강제로 눈물이 나게 합니다.
주님의 눈물은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통분에 대해서, 마귀에 대해서. 사람 중에서 우리 교횐그런 사람이 없겠지요. 잘 믿는 사람들을 꼬아서 데려가버립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서 교회 데려가버립니다. 식구 잘 나오는데 데려가서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속에 귀신이 들어간 겁니다. 뭐 때문에 꼬아서 돈 몇 푼 준다고 빼앗아가는 것인거죠. 믿음 생활 잘하면 되는 거지요. 그게 통분의 눈물입니다.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을 꼬아내서 멸망시키는 그게 통분의 눈물, 인간에 대한 민망의 눈물, 이 눈물이 주님의 눈물입니다. 성전 보고 오신 눈물, 안 보이지만은 성전이 무너질거라고 안타까운 눈물입니다. 평소에 많이 울면 앞으로 없어지게 될 것이고 고요하면 앞으로 어떤 눈물이 올지 모릅니다. 지난 세월은 언제 올지 모릅니다. 앞날은 소망이 있게 되는 것이고 지난 인생도 잘못 살았는데 미래를 보장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돌아보고 눈물을 좀 흐르는 우리가 되도록하십니다. 주일학생들은 잘 가르쳐서 그리하고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다가 자유하십시다.
찬송: 80장
본문: 요한복음 11장 32절 ~ 35절
공과공부가 되겠습니다. 제목이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다른 걸로 말하면 눈물의 무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사람은 다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에 눈물의 동물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울음의 깊이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눈물의 무게를 가히 청량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도 비중있는 사람은 잘 울지 않고 만약 울면 보통이 아닌 겁니다. 오전에든 오후든 이건 가르치기가 좀 어렵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감성에 속한 면에 없지 않아서 이성의 이치의 말씀인데 감정에 속한 것이 되니까 억지로 웃는 것도 어렵고 억지로 우는 것도 어렵습니다. 설교도 그렇고 예배시간 중에서 가장 힘든 예배가 언제라고 그럽니까. 설교 중에서 가장 어려운 설교가 언제입니까. 성찬식 설교가 가장 어렵습니다. 성찬식은 일종의 장례식 분위기고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교자와 침례자가 준비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마귀가 틈을 타서 엉망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조심스러운게 성찬식이고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이번 말씀에서 다윗의 눈물이 있고 예레미야의 눈물이 있고 마리아의 눈물이 있고 베드로의 눈물이 있고 에서의 눈물이 있습니다. 에서의 눈물은 옳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억울하고 분했는데 그것이 아버지 축복을 아우에게 빼앗겼는데 아버지 축복의 무게를 몰랐습니다. 나한테 올 거 아우가 빼앗아갔다. 장자의 명분을 에서가 팔아먹었습니다. 얼마 받고 팔아먹었습니까. 얼마나 돈을 많이 받았는가요. 팥죽 한 그릇, 요즘 돈으로 만 원 정도. 장자의 명분은 천억도 넘을겁니다. 그걸 만 원에도 안되는 게 팔아먹는 게 에서입니다. 아버지 축복은 어마어마한건데 알면 안 빼앗기는 건데 모르는 걸 빼앗겼는데 그냥 내게 올 거 아우가 빼앗았다 그겁니다. 마음 속에서 괘씸해서 야곱을 해치려 했지만 그때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서 그렇게까지 아버지 속이고 뺏아았지만 그거 아니더라도 나는 부자가 되었다. 에서도 야곱만큼 부자가 되었습니다.
에서는 잘난 사람입니다. 통이 크고 그릇이 큰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잘난 사람인데 아우하고 한 곳에 살기 싫어서 아우한테 물려주고 그렇게 되는 겁니다. 양보를 하는 거지요. 그렇게 잘난 에서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한지 몰랐습니다. 아버지 축복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짐인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에서는 그러기 때문에 잘났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몰라서 결국 버림받고 말았고 축복을 빼앗겼을 때 눈물을 흘리면서 간구했지만 얻지를 못했습니다. 회개할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에서의 눈물은 가치없는 후회의 눈물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때 아이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많이 기도하고 연구하고 그래서 말씀의 이치를 차분하게 전하는 겁니다. 많이 생각을 해서. 그 속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감동시킬 수 있고 그런 것이고 인위적으로 말하자면 눈물 흘리는 그리 되기 쉽지 않지만 별로 도움되지 않는 것 같고, 설교는 말할 거 없고 충성을 하고 노력을 하지만 인위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해야하는 일, 할 수 있는 것을 하되 선을 넘어가면 악을 쫓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도 충분히 준비를 하고, 도리를 차분하게 성경 그대로 간결하게 요즘 아이들은 수준이 높아서 설명하면 알아듣습니다. 담담하게 설명해 나가면 다윗의 눈물, 이번 공과 첫 번째가 다윗의 눈물인데, 벧스메스로 가는 암소 울음소리, 어미 소의 울음이 어떨까를 생각하면서 이 말씀이 거기에서 나왔습니다.
새끼를 낳아 기르는 어미 소가 새끼를 떼놓고 타지로 끌려간다. 멈추지도 않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걸어간다. 이건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하나님께서 자연계시로 가르치시려고 그렇게 보내신 겁니다.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는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야하는거다. 어떤 일이 있어도 물질은 말할 것이 없고 뗄 수 없는 정이 모정인데 사람은 더하겠지만 짐승도 사람못지 않습니다. 어미소가 새낄 두고 간다 안되는 건데 가도록하셔서 믿는 사람이 말씀의 인도 따라가는 것은 물질이 있어도 어떤 정이 있어도 붙들리지 않고 아이를 두고 사지로 가야하는 것도 말씀이 가라면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게 벧스메스로 가는 암소의 걸음입니다. 그런데 울면서 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말씀이 가라 그러는 곳은 막힐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미 소가 새끼를 떼놓고 가니까 울면서 갈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 눈물의 무게를 생각해보는겁니다. 다윗의 눈물을 생각한다면 장년반 시간에는 설교할 수 있는데 주일학교에서는 설교도 못하고 있는대로 설명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범죄라는 것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진노하셨는데 하나님이 아끼신 사람이기 때문에 징벌이 더 큰 겁니다. 옛날 어른들 말에 미운 자식은 떡하나 주고 이쁜 자식은 매 하나 때린다고 합니다. 매를 때려야 사람이 되니까. 부모님이 내 자식 남의 자식이 있으면 잘못해도 조심스럽게 책망할 수 있으면 하지만 함부로 못합니다. 사랑하면 부지런히 매를 때려라. 아버지 어머니가 매를 때리면 나를 사랑하는 거라는 뜻입니다. 미워서 그런 게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꾸지람하고 그러면 그만큼 사랑하시는 겁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그런 죄를 많이 짓는데 그런 벌을 크게 유독 많이 주신겁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대서 많은 문제가 생겨지고 그 상황을 두고 슬프니까 슬퍼하고 괴로우니까 괴로워하는데 가장은 자신을 돌아보는 겁니다. 어떤 일이든지 방향을 그리 잡으면 해결되게 됩니다. 모든 은혜는 전부 다 나한테 있다. 내 잘못이다. 현실은 현실대로 헤쳐나가는 겁니다. 다른 데에서 원인을 찾으면 죽는 날까지도 그러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윗과 방향이 같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파서 죽어갈 때도 아버지한테 반역할 때도 자기를 쳤습니다. 죄를 지어 그랬습니다. 그게 전부 죄 때문입니다. 그렇게 돌아보니까 철저하게 해결을 한 겁니다. 세상 떠나는 날까지 참 그리되기까지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참회의 눈물, 회개의 눈물입니다. 그게 감정적인 것이 아니고 시편이 150편까지인데 아마 다윗의 기도가 시편이 가장 많을 겁니다. 다윗은 용사인데 전쟁하는 군인인데 그렇게 시를 많이 지었습니다. 철저했다는 말입니다. 감성이 앞선 게 아닙니다. 잘못을 따지면서 죄 중에 잉태되었나이다. 다윗은 찾아서 해결했습니다. 그 다윗이 솔로몬으로 이어지면서 가장 이스라엘에서 다윗의 자손으로 마지막까지 가고 나중에 끝나지만 다윗의 왕국은 영원토록 이어져서 아브라함 다윗 예수 그리스도. 그렇게 됐습니다. 하늘나라가 다윗의 나라입니다. 예루살렘이고 시온 성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철저한 눈물의 역사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가지도록 노력을 해야합니다. 자기를 살필 때 그러는 것이고 말씀은 가지고 자기를 살필 때 아는 것이고 보이는 것이지 다른 것이 들어가면 안보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안 보입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셔야합니다.
두 번째, 예레미야의 눈물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회개의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그게 예레미야의 눈물입니다. 자기 죄보다도 이스라엘 백성의 전체 죄를 가지고 눈물을 흘립니다. 망해가는 나라를 위한 눈물이고 회개의 눈물인데 예레미야는 선지자고 그렇기 때문에 대표해서 대신 회개하고 그런 겁니다. 망해가는 나라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회복의 소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도 있고 다니엘도 있고 모르드개도 있고 모르드개와 함께했던 에스더도 있고 느헤미아도 있고 다니엘도 있고 이런 머리 되는 종들의 눈물의 그런 기도가 망한 나라를 회복시키는 거름이 되는 겁니다. 오늘날도 죄 없는 사람 없는데 누군가가 눈물을 흘릴 때 미래의 소망을 만드는 겁니다. 앞날에 기쁨의 영광의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종들을 통해서 그렇게 죄짓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기어코 부리고 나라가 절단나니까 외치다 외치다 마지막에 나라 망하니까 애가를 짓고 그렇게 한 겁니다. 이런게 다 모여서 앞날의 생활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눈물이 자녀를 소망있게 하는 겁니다. 부모님의 회개의 눈물이 없으면 자녀들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습니다. 제 말이 아닙니다. 성경입니다. 성경이고 그 역사가 그렇고 다 그렇습니다. 어머니들의 눈물은 말할 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눈물을 주옵소서, 강팍한 심정을 녹여주옵소서, 눈물이 나야하는데 눈물이 안납니다. 눈물을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눈물을 흘릴 이유를 찾아봐야합니다. 하늘나라 생각을 하고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을 하고 가지고 따져봐야합니다. 과거를 잘 살았고 얼마만큼 받아 되어있고 그래도 조심해야합니다. 욥은 시험 나가기 전에 동방에서 가장 나가는 부자였고 10남매였습니다. 그 아들딸들은 아버지만큼 신앙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벌벌 떨었습니다. 그래서 식사하고 나면 번제를 드렸습니다. 항상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사랑하시니까 인간의 차원을 넘었다 할만큼 욥에게 그런 시련을 주신 겁니다. 우리는 욥만큼 복을 받았습니까 잘 살았습니까. 강처럼 매일 울면서 살아야하는데 눈물이 안 나오는데 이게 강팍입니다.
마리아의 눈물은 섞였습니다. 주님이 오셔서 구주입니다. 고대한 메시아가 왔으니까 구원받았구나 감히 앞에 서지 못하고 발을 붙들고 머리털을 가지고 향유를 붓고 주님의 가장 밑의 가치 적은 그쪽을 들고 가장 귀한 보배를 해서 이분이 이렇게 귀한 분이고 나는 천한 죄인이라며 감사해서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이런 복합적인 이런 게 느껴져서 감사의 눈물을 흘린 사람이 마리아였습니다. 마리아의 죄를 사함받았다. 삼남매지요. 오라버니의 두 자매가 있고 사랑하셨다. 사랑스럽게 사니까 행동하니까 사랑을 받는 겁니다. 이런 회개와 그런 깨달음이 우리 속에 있는지 계속 되지 못해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해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베드로의 눈물은 통안의 눈물 회개의 눈물입니다.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래서 그 베드로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심한 통곡으로 울었습니다. 그 눈물이 베드로를 아낌없이 만들고 거꾸로 순교하는 그런 순교의 거름이 되는 눈물이 되어졌습니다. 이런 다윗의 눈물 예레미아의 눈물 그 무게가 보통이 아닌 겁니다. 이런 눈물을 가지려고 노력을 해야하는 겁니다. 건설구원에 속한 건데,
믿는 사람이 가만히 감나무 밑에 누워서 맛있는 홍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면 어쩌다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토끼가 부딪혀서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냥꾼이 사냥을 안하고 토끼가 나오다가 부딪혀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그게 1년에, 10년에 한 번이겠습니까. 그걸 두고 토끼굴 앞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런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그런 사냥꾼은 나중에 굶어죽습니다.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은 힘을 쓰는 구원입니다. 성찬식때도 내 살을 먹어라, 내 피를 마셔라 그랬지 저절로 그런 게 아닌겁니다.
눈물이라는 것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기는데 평소에는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찾아들어가야합니다. 그래서 힘쓰고 애쓰지 않으면 눈물이라는 것은 저절로 생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눈물 흘리게 만들면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저절로 눈물이 나는데 고통의 눈물이 나게 됩니다. 그때는 되게 아픕니다. 평소에 조절 잘하고 그러면 주사 안 맞아도 되고 수술 안해도 되는데 평소에 먹고 싶은 것 단 거 마구 먹어재끼고 그렇습니다. 그거 먹으면 호기심에 한 번 정도 그러고 그러면 먹는 거 아닙니다. 요즘 그거 때문에 모두 당뇨병 때문에 난리입니다. 새파랗게 젊은 30대가 당뇨걸렸습니다. 그런 걸 먹어서 그러면 입에 맛있는 건 건강에 해롭습니다. 뭐라 그랬습니까. 입의 맛있는 음식은 몸에 안 좋고 쓴 약은 몸에 좋습니다. 홍삼은 몸에 좋은데 엄청 씁니다. 말도 듣기 좋은 말은 행동의 손해입니다. 평소에 건강관리 잘하고 음식조절 잘하고 그러면 오래토록 잘 쓰는데 자동차를 관리를 하면 못하는데 던져놔버리면 곰팡이 필만큼 그렇게 되는데 10년 쓸 거 5년도 못 씁니다. 평소에 하나님 앞에 자기를 돌아보고 생활한 거 계속 생각하면서 회개하고 눈물흘리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눈물흘리지 않으면 팔 하나 쳐버리던지 그러면 눈물이 저절로 나버립니다. 하나님은 때를 기다리시지 사람처럼 가볍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귀머거리가 그런 게 아니고 기회를 주신 겁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충분히 주시고 차고 넘치도록 주시고 안 그러면 벌을 주십니다. 평소에 눈물이 있으면 강제가 없는데 평소에 그러지 않으면 강제로 눈물이 나게 합니다.
주님의 눈물은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통분에 대해서, 마귀에 대해서. 사람 중에서 우리 교횐그런 사람이 없겠지요. 잘 믿는 사람들을 꼬아서 데려가버립니다. 그러면 얼마 지나서 교회 데려가버립니다. 식구 잘 나오는데 데려가서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속에 귀신이 들어간 겁니다. 뭐 때문에 꼬아서 돈 몇 푼 준다고 빼앗아가는 것인거죠. 믿음 생활 잘하면 되는 거지요. 그게 통분의 눈물입니다.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을 꼬아내서 멸망시키는 그게 통분의 눈물, 인간에 대한 민망의 눈물, 이 눈물이 주님의 눈물입니다. 성전 보고 오신 눈물, 안 보이지만은 성전이 무너질거라고 안타까운 눈물입니다. 평소에 많이 울면 앞으로 없어지게 될 것이고 고요하면 앞으로 어떤 눈물이 올지 모릅니다. 지난 세월은 언제 올지 모릅니다. 앞날은 소망이 있게 되는 것이고 지난 인생도 잘못 살았는데 미래를 보장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예수님 눈물이라는 제목으로 돌아보고 눈물을 좀 흐르는 우리가 되도록하십니다. 주일학생들은 잘 가르쳐서 그리하고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다가 자유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