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4일 수밤
김동민2024-01-24조회 338추천 45
2024년 1월 24일 수밤
찬송: 176장, 179장
본문: 마태복음 4장 17절
지난 몇 주간 회개에 대한 말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은 회개와 천국을 연결시켜서 말씀을 생각해보고 구원 도리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이때부터라는 말은 어느 때인가 국어 문맥적으로는 새로운 면이 전재 될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시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대속의 생애인데 사생애와 공생애가 있습니다. 사생애의 기간은 예수님의 출생, 유아기, 유아기, 청년기를 거치며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 형제들과 함께 가정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죄와 불의와 불목을 다 수리하신 생애였습니다. 보이는 면에 여러 가지 희생보다 실제의 가정 생활 세상 생활에서 펼쳐지던 생활이 이겨내기 힘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의 생애의 절정인 십자가만을 위대하다고 생각하는데 공생애 뿐 아니라 사생애, 부활 이후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생애 전체가 천국 백성을 만드시려는 끝없는 사랑이 대속의 생애였습니다. 공회에서는 목회를 출발할 때에도 이미 교인 생활을 하는 중에 목회자 이상의 교인 생활을 하며 그런 사람에게 목회를 맡기면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본문을 구분을 하자면 사생애를 거치시고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에 승리하심으로써 메시아의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하시면서 착수하신 일이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었고 제자를 양육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천국 구원과 생각해보면 이제부터 우리도 본격적으로 할 일이 두 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파한다고 할 때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을 두고 복음 전파, 전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교계를 보면 전하는 데에만, 얼마나, 몇 명을 얼마나 멀리가서 전했는가. 요즘은 전도에서 더 나아가서 해외 선교라는 말을 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한다고 말을 합니다. 백목사님께서도 전도에 대해서는 특심이신 분이시기에 사람들이 세상을 기어들어가버리니까 잃어버린 양들을 기도할 때 숫자를 정해놓고 기도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숫자를 정해서 기도하시다가 어떤 교인이 그 숫자를 정해놓고 할 때에는 그것이 잘 안되더라 그런 말을 들으시고 미련하여 잘못 깨달았구나 하나님께서 깨우쳐주셨구나 하며 과거를 돌아보니 이전에는 그 한번도 하나님께 숫자를 정해놓고 기도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악령의 유혹에 빠져서 그렇게 수를 정해놓고서 하나님에게 기도한 일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해 주시도록 감동되도록 해 주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화가 되도록 그렇게 할 터인데 하나님께서 해주신다는 것에서는 관심이 허약했고 권찰일들이 열심히 하면 된다는 그 중점을 둔 것이 탈선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복음 전도는 하나님 앞에 명령이고 잃어버린 양의 이 일인 것이기에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잃어버린 양을 찾는데에만 애를 쓰고 찾는 방편이 무엇인가.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이렇게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수종들어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잃어버린 양을 찾는데에 전심 전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이 돌아오는 역사를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 전도의 본질은 말씀이 들려지지 않은 곳, 말씀의 효력이 미치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내 안에 아직 말씀으로 깨닫지 못한 부분, 알아도 그 말씀의 통치를 받지 못하고 있는 내 말과 내 행동과 습관과 요소가 전도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말씀을 전해서 변화된 것만치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으로 고치고 또 고치고 말씀으로 변화된 인격과 습성이 나타나 다른 이들이 예수의 제자인줄 알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하고 양육하며 이렇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것이 생명의 역사입니다. 제일 먼저 앞장서신 구원의 주님이 앞서가고 십자가를 진 사도들, 앞선 자의 희생과 형제의 멸망을 보고 애타고 탄식하는 심정과 다 바쳐 투자하는 십자가가 요구되는 일이 전도와 양육입니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해야하는 일입니다. 전도와 양육이 안되는 것이 순서도 방향도 목적도 없이 인간의 지혜와 요령으로 하는 것이 깨달았습니다. 다시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예수님은 천국을 운영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을 믿어야합니다. 천국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들이 있습니다. 천국은 기본적으로 죽음 이후에 될 일, 사후 세계에 관한 일입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종이 되어있는 죽음의 한계가 되어있는 인간들은 사후 세계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성이 있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논리적으로 추측을 해보고 체계화의 과정을 거쳐서 이론을 구성하고 용어를 만들어서 종교를 이루는데 이것을 이종교라고 합니다. 이종교에서도 내세를 말합니다. 불교는 죽음 이후에 환생을 한다고 합니다. 현세에서 덕을 쌓으면 내세에 환생을 한다고 합니다. 이슬람의 경전은 쿠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후세계는 따분하거나 지부함을 느끼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때의 33세의 나이로 되어 늙지 않고 알라를 위한 성스러운 전쟁을 마치면 72명의 처녀들을 소유하며 마음대로 할 권리가 생긴다고합니다.
입신이나 꿈이나 환상을 통해 사후 세계를 보고왔다는 것에 대해 매료가 되기도 합니다. 잘못된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부흥회 스타 강사가 되고 있으나 대부분 거짓이나 사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목표로 이용하거나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개인과 과정과 파탄에 이르기까지 하는게 잘못된 내세관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내세에 대해 이종교나 철학이나 개인적인 체험이나 간증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것에 대해 이 땅에서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줄 깨달아야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택자들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세상에서 마련한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신 하나님 동행의 실력과 믿음으로 모든 것이 재배치됩니다. 주님을 머리로 삼고 한 몸 속에 제 역할을 감당하며 움직입니다. 이런 모습을 교회라고 하고 주님의 몸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가족도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재배치가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2장에서는 부활 때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천사와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영계를 알려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가족 관계로 묶여있고, 엄마와 아빠와 아들과 딸과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 등 혈연으로 묶여있지만 모든 관계가 다 해체가 되어집니다. 이 땅에서 가장 가까운 부모라도 그 묶여진 끈은 세상에서 죽을 때에 전부 다 해체가 됩니다.
다만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끌어주고 도움받은 관계는 하늘나라에서도 지속되지만 신앙관계가 전혀 없던 부모자녀라면 남아있을 것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자녀가 부모를 사랑한다면 가장 가까운 관계가 되고 싶다면 신앙으로 가깝게 모시고 믿음으로 가깝게 길러야하는 것입니다.
이 땅위에 부부로 만나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었으나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족 관계로 하시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남들은 내 아내라 손을 잡고 사는데 그분들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며 하나님이 손을 잡으라고 하는 것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일반 부부와 별 것 없이 하지만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활 때에는 모든 관계가 사라지고 내 생활 근처에 있고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깝게 맺어진 신앙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로 인하여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 천국은 하나님 중심만으로 영원히 나가는 곳입니다. 그 외에는 전부 저 밑에 불타고 있는 것입니다. 전파하여 가라사대, 전파라는 것은 맞는지 안 맞는지 설득하고 토론하여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논쟁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이 바른 깨달음을 위해 할지 언정 토론의 대상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모든 것을 가감없이 전하는 것이 전하는 자의 기본입니다. 가감없이 정해놓고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도록 하여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여러 방편으로 하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회개하여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인가 자기가 회개하면 천국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못간다는 것은 자기의 회개의 여부에 따라 천국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지난날 기독교 역사에서 이렇게 잘못 깨달아 이렇게 천주교에서 방황의 시기가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가 나오고 죄가 나오고 또 지옥에 갈까봐 두렵고 그래서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애를 쓰고 또 써도 계속해서 수백번씩 나오니 하루에도 수백번씩 천국을 왔다갔다하면서 천주교는 이런 것을 이용해서 죄의 문제로 협박하고 죄를 면해주는 면죄부를 팔고 교황이 군림하여 타락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루터와 칼빈이 종교 개혁을 했는데 그 핵심이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며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이제는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가 구원받은 자는 저절로 회개하게 되는가. 이런 부분을 가지고 백영희 목사님은 연구를 하였고 기본 구원의 터 위에 그게 전부가 아니고 믿게한 것은 기본 구원이니 이건 시작이고 기본 구원을 받은 교회니 죽도록 충성하고 노력하며 노력할 부분이 있으니 이걸 건설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바로 힘쓰고 찾게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천국은 기본 구원에서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건설 구원에서 해당되는 천국입니다. 택자는 단번에 중생된 것은 영이고 몸과 마음은 회개를 반복하며 건설 중에 있는 것입니다. 천국 입성의 문제가 아니라 천국의 차이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결정짓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가 중생될 때 우리의 죄가 중생이 되어졌고 성경과 진리에 붙들린 영을 통해 몸과 마음에 순종함으로 하나씩 천국화 성화시킬 수 있는 자격과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 땅을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이 말씀을 순종했는가 고쳐졌는가 종류에 따라 성화의 차이 천국에서의 차이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설구원의 차이입니다. 이 회개 또한 열심히 보이나 전적인 은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택자가 회개하라고 힘쓸 때 회개의 능력으로 함께해주십니다. 이처럼 좋은 것입니다. 천국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은혜요 특권입니다. 불택자는 아무리 회개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걸 다 깨닫고 나면 택자는 무조건적인 은혜에 평생을 회개로 달려나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여이서 천국은 성경에 하나님 나라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천국은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죄가 없는 나라입니다. 죄가 없으니까 잘못이 없고 근심이나 걱정이나 죽는데나 망하는데나 사망에 속한 어떤 것도 천국에는 그런 나라가 천국입니다. 완전한 나라라, 우리가 죽고 나서 무궁 생애의 하늘나라를 말하는 것인가. 그게 아닙니다.
천국 하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속성적으로 이룰 수 없는 나라. 천국에 맞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온전한 인격이 될 수 있고 완전한 지혜와 완전한 능력과 기쁨과 성품이나 실력이나 명예나 영광이나 모든 것이 완전할 수 있는 천국이 눈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고 천국이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가까이 또 왔다는 것은 시급하다, 기회가 가까이 와있다. 속히 회개할 것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놓친 것이 많았다면 이제라도 붙잡으면 됩니다. 천국에 대한 욕심이 더 생겨야 천국에 대한 갈급이 생기는 것입니다. 욕심은 천국의 가치를 알고 깨달아야 더 가지고자 하는 갈급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가치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하나 마련해 가야겠습니다. 이제까지 세상일에 치우쳐 살았다. 몸도 시간도 마음도 썩어질 것만 마련하는데 힘을 많이 썼다. 좀 더 성경보는 시간도 늘려야겠다. 천국 준비할 수 있는 이 시간에 말씀에 귀 기울여야겠다. 필기도 해야봐야겠다. 전도해야겠다. 내 마음에 미움을 씻어버려야겠다. 세상의 욕심도 버려야겠다. 천국은 죄가 없는 나라인데 죄된 세상을 씻어야겠다. 하나님의 뜻대로 복된 마음 가진 거 행동한 거 썩어질 것을 심어서 거둘 일입니다. 천국은 보화 같아서 발견하는 자는 다 팔아서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사와도 같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4장 17절 본문을 통해 회개와 천국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바른 내세관과 소망을 가지고 전심전력하여 주신 현실에 회개의 현실을 놓치지 말고 자기 천국의 실상을 이루어나가면 좋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 자유하시겠습니다.
찬송: 176장, 179장
본문: 마태복음 4장 17절
지난 몇 주간 회개에 대한 말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늘은 회개와 천국을 연결시켜서 말씀을 생각해보고 구원 도리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이때부터라는 말은 어느 때인가 국어 문맥적으로는 새로운 면이 전재 될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시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대속의 생애인데 사생애와 공생애가 있습니다. 사생애의 기간은 예수님의 출생, 유아기, 유아기, 청년기를 거치며 어머니 마리아 예수님 형제들과 함께 가정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죄와 불의와 불목을 다 수리하신 생애였습니다. 보이는 면에 여러 가지 희생보다 실제의 가정 생활 세상 생활에서 펼쳐지던 생활이 이겨내기 힘든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속의 생애의 절정인 십자가만을 위대하다고 생각하는데 공생애 뿐 아니라 사생애, 부활 이후에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그 생애 전체가 천국 백성을 만드시려는 끝없는 사랑이 대속의 생애였습니다. 공회에서는 목회를 출발할 때에도 이미 교인 생활을 하는 중에 목회자 이상의 교인 생활을 하며 그런 사람에게 목회를 맡기면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본문을 구분을 하자면 사생애를 거치시고 세례를 받으시고 시험에 승리하심으로써 메시아의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하시면서 착수하신 일이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었고 제자를 양육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천국 구원과 생각해보면 이제부터 우리도 본격적으로 할 일이 두 가지입니다. 복음을 전파한다고 할 때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을 두고 복음 전파, 전도라고 합니다. 그러나 요즘 교계를 보면 전하는 데에만, 얼마나, 몇 명을 얼마나 멀리가서 전했는가. 요즘은 전도에서 더 나아가서 해외 선교라는 말을 하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한다고 말을 합니다. 백목사님께서도 전도에 대해서는 특심이신 분이시기에 사람들이 세상을 기어들어가버리니까 잃어버린 양들을 기도할 때 숫자를 정해놓고 기도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숫자를 정해서 기도하시다가 어떤 교인이 그 숫자를 정해놓고 할 때에는 그것이 잘 안되더라 그런 말을 들으시고 미련하여 잘못 깨달았구나 하나님께서 깨우쳐주셨구나 하며 과거를 돌아보니 이전에는 그 한번도 하나님께 숫자를 정해놓고 기도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악령의 유혹에 빠져서 그렇게 수를 정해놓고서 하나님에게 기도한 일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해 주시도록 감동되도록 해 주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화가 되도록 그렇게 할 터인데 하나님께서 해주신다는 것에서는 관심이 허약했고 권찰일들이 열심히 하면 된다는 그 중점을 둔 것이 탈선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복음 전도는 하나님 앞에 명령이고 잃어버린 양의 이 일인 것이기에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잃어버린 양을 찾는데에만 애를 쓰고 찾는 방편이 무엇인가.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이렇게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수종들어라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잃어버린 양을 찾는데에 전심 전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이 돌아오는 역사를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복음 전도의 본질은 말씀이 들려지지 않은 곳, 말씀의 효력이 미치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내 안에 아직 말씀으로 깨닫지 못한 부분, 알아도 그 말씀의 통치를 받지 못하고 있는 내 말과 내 행동과 습관과 요소가 전도입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말씀을 전해서 변화된 것만치 능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으로 고치고 또 고치고 말씀으로 변화된 인격과 습성이 나타나 다른 이들이 예수의 제자인줄 알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하고 양육하며 이렇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 것이 생명의 역사입니다. 제일 먼저 앞장서신 구원의 주님이 앞서가고 십자가를 진 사도들, 앞선 자의 희생과 형제의 멸망을 보고 애타고 탄식하는 심정과 다 바쳐 투자하는 십자가가 요구되는 일이 전도와 양육입니다.
이것이 본격적으로 해야하는 일입니다. 전도와 양육이 안되는 것이 순서도 방향도 목적도 없이 인간의 지혜와 요령으로 하는 것이 깨달았습니다. 다시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예수님은 천국을 운영하시고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천국을 믿어야합니다. 천국에 대해서는 많은 이견들이 있습니다. 천국은 기본적으로 죽음 이후에 될 일, 사후 세계에 관한 일입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종이 되어있는 죽음의 한계가 되어있는 인간들은 사후 세계를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성이 있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논리적으로 추측을 해보고 체계화의 과정을 거쳐서 이론을 구성하고 용어를 만들어서 종교를 이루는데 이것을 이종교라고 합니다. 이종교에서도 내세를 말합니다. 불교는 죽음 이후에 환생을 한다고 합니다. 현세에서 덕을 쌓으면 내세에 환생을 한다고 합니다. 이슬람의 경전은 쿠란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후세계는 따분하거나 지부함을 느끼지 않고 가장 아름다운 때의 33세의 나이로 되어 늙지 않고 알라를 위한 성스러운 전쟁을 마치면 72명의 처녀들을 소유하며 마음대로 할 권리가 생긴다고합니다.
입신이나 꿈이나 환상을 통해 사후 세계를 보고왔다는 것에 대해 매료가 되기도 합니다. 잘못된 신비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부흥회 스타 강사가 되고 있으나 대부분 거짓이나 사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치적인 목표로 이용하거나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을 위해서 종교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개인과 과정과 파탄에 이르기까지 하는게 잘못된 내세관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내세에 대해 이종교나 철학이나 개인적인 체험이나 간증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것에 대해 이 땅에서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줄 깨달아야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택자들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세상에서 마련한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신 하나님 동행의 실력과 믿음으로 모든 것이 재배치됩니다. 주님을 머리로 삼고 한 몸 속에 제 역할을 감당하며 움직입니다. 이런 모습을 교회라고 하고 주님의 몸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가족도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재배치가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2장에서는 부활 때는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고 천사와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영계를 알려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가족 관계로 묶여있고, 엄마와 아빠와 아들과 딸과 할아버지 할머니, 사촌 등 혈연으로 묶여있지만 모든 관계가 다 해체가 되어집니다. 이 땅에서 가장 가까운 부모라도 그 묶여진 끈은 세상에서 죽을 때에 전부 다 해체가 됩니다.
다만 부모님의 신앙을 본받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끌어주고 도움받은 관계는 하늘나라에서도 지속되지만 신앙관계가 전혀 없던 부모자녀라면 남아있을 것이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자녀가 부모를 사랑한다면 가장 가까운 관계가 되고 싶다면 신앙으로 가깝게 모시고 믿음으로 가깝게 길러야하는 것입니다.
이 땅위에 부부로 만나고 평범한 가정을 이루었으나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족 관계로 하시는 분들이 없지 않습니다. 남들은 내 아내라 손을 잡고 사는데 그분들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며 하나님이 손을 잡으라고 하는 것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일반 부부와 별 것 없이 하지만 하늘나라에서 살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활 때에는 모든 관계가 사라지고 내 생활 근처에 있고 함께 있었기 때문에 가깝게 맺어진 신앙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로 인하여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 천국은 하나님 중심만으로 영원히 나가는 곳입니다. 그 외에는 전부 저 밑에 불타고 있는 것입니다. 전파하여 가라사대, 전파라는 것은 맞는지 안 맞는지 설득하고 토론하여 논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논쟁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믿는 자들이 바른 깨달음을 위해 할지 언정 토론의 대상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신 모든 것을 가감없이 전하는 것이 전하는 자의 기본입니다. 가감없이 정해놓고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시도록 하여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여러 방편으로 하고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인가. 회개하여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인가 자기가 회개하면 천국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못간다는 것은 자기의 회개의 여부에 따라 천국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지난날 기독교 역사에서 이렇게 잘못 깨달아 이렇게 천주교에서 방황의 시기가 있습니다. 회개하고 죄가 나오고 죄가 나오고 또 지옥에 갈까봐 두렵고 그래서 계단을 무릎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애를 쓰고 또 써도 계속해서 수백번씩 나오니 하루에도 수백번씩 천국을 왔다갔다하면서 천주교는 이런 것을 이용해서 죄의 문제로 협박하고 죄를 면해주는 면죄부를 팔고 교황이 군림하여 타락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루터와 칼빈이 종교 개혁을 했는데 그 핵심이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며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이제는 회개하지 않아도 되는가 구원받은 자는 저절로 회개하게 되는가. 이런 부분을 가지고 백영희 목사님은 연구를 하였고 기본 구원의 터 위에 그게 전부가 아니고 믿게한 것은 기본 구원이니 이건 시작이고 기본 구원을 받은 교회니 죽도록 충성하고 노력하며 노력할 부분이 있으니 이걸 건설 구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바로 힘쓰고 찾게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천국은 기본 구원에서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건설 구원에서 해당되는 천국입니다. 택자는 단번에 중생된 것은 영이고 몸과 마음은 회개를 반복하며 건설 중에 있는 것입니다. 천국 입성의 문제가 아니라 천국의 차이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결정짓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우리가 중생될 때 우리의 죄가 중생이 되어졌고 성경과 진리에 붙들린 영을 통해 몸과 마음에 순종함으로 하나씩 천국화 성화시킬 수 있는 자격과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 땅을 살아가면서 몸과 마음이 이 말씀을 순종했는가 고쳐졌는가 종류에 따라 성화의 차이 천국에서의 차이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건설구원의 차이입니다. 이 회개 또한 열심히 보이나 전적인 은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택자가 회개하라고 힘쓸 때 회개의 능력으로 함께해주십니다. 이처럼 좋은 것입니다. 천국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은혜요 특권입니다. 불택자는 아무리 회개하려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걸 다 깨닫고 나면 택자는 무조건적인 은혜에 평생을 회개로 달려나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천국이 가까이 왔습니다. 여이서 천국은 성경에 하나님 나라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 천국은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죄가 없는 나라입니다. 죄가 없으니까 잘못이 없고 근심이나 걱정이나 죽는데나 망하는데나 사망에 속한 어떤 것도 천국에는 그런 나라가 천국입니다. 완전한 나라라, 우리가 죽고 나서 무궁 생애의 하늘나라를 말하는 것인가. 그게 아닙니다.
천국 하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속성적으로 이룰 수 없는 나라. 천국에 맞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온전한 인격이 될 수 있고 완전한 지혜와 완전한 능력과 기쁨과 성품이나 실력이나 명예나 영광이나 모든 것이 완전할 수 있는 천국이 눈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고 천국이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가까이 또 왔다는 것은 시급하다, 기회가 가까이 와있다. 속히 회개할 것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놓친 것이 많았다면 이제라도 붙잡으면 됩니다. 천국에 대한 욕심이 더 생겨야 천국에 대한 갈급이 생기는 것입니다. 욕심은 천국의 가치를 알고 깨달아야 더 가지고자 하는 갈급함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가치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하나하나 마련해 가야겠습니다. 이제까지 세상일에 치우쳐 살았다. 몸도 시간도 마음도 썩어질 것만 마련하는데 힘을 많이 썼다. 좀 더 성경보는 시간도 늘려야겠다. 천국 준비할 수 있는 이 시간에 말씀에 귀 기울여야겠다. 필기도 해야봐야겠다. 전도해야겠다. 내 마음에 미움을 씻어버려야겠다. 세상의 욕심도 버려야겠다. 천국은 죄가 없는 나라인데 죄된 세상을 씻어야겠다. 하나님의 뜻대로 복된 마음 가진 거 행동한 거 썩어질 것을 심어서 거둘 일입니다. 천국은 보화 같아서 발견하는 자는 다 팔아서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장사와도 같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4장 17절 본문을 통해 회개와 천국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바른 내세관과 소망을 가지고 전심전력하여 주신 현실에 회개의 현실을 놓치지 말고 자기 천국의 실상을 이루어나가면 좋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시다 자유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