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21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4-01-21조회 209추천 33
2024년 1월 21일 주일 오후
찬송: 117장
본문: 사무엘상 6장 12절 ~ 15절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의 내용에 따라서 특정 개인이나 또는 특정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해당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 공통적으로 해당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말입니다. 신약시대를 나뉜 제사장들의 시대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에서는 레위 계파만 제사장이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모든 택함 받은 사람들이 제사장입니다.
목자는 목자의 자질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에게 택했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도 하나님의 종으로 쓰여질 사람들을 주신 재능이나 이런 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가 되었다고 해서 교회보다 구원을 잘 이룬다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목회자는 구원을 이루어가기에 유리한 입장이 되어갑니다. 목회자는 기도하고 성경읽고 성경 연구하고 말씀 연구하고 심방 전도하고 그게 목회이기 때문에 분명히 유리합니다. 백 목사님께서 언제 한 번 버스를 탔는데 바쁘게 살고 있는데 목사님은 목회자니까 기도하면 더 좋아하고 성경 읽으면 교인들이 더 좋아하고 깊이 들어가면 좋아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좋아하고 이런 복이 어딨나 마음 속으로 눈물 흘리며 감사했다는 것이 설교록에 있습니다.
목회자가 됐다고 해서 교권이나 가지고 게으르다고 그러면 죄는 더 크게 되는 겁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런 겁니다.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모든 말씀이 다 이러합니다. 읽을 때에는 나와 상관이 없고 특정 위치에 있는 것만 생각하면 힘들게 됩니다. 자기 복음으로 내가 걸어갈 말씀을 생각해보십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였습니다. 사사시대 끝물이었습니다. 뭐든지 새롭고 싱싱하고 좋고 막바지에는 개인의 인생도 과정도 직업도 학업도 전부다 마지막에 되는 게 일들입니다.
사사 시대 마지막 때가 되니까 많이 흐트러졌습니다. 표면적으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 엘리 제사장과 엘리 제사장들의 가족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행이 있다. 성경적으로 도리적으로 이치적으로 공평적으로 그 말이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성경 해석을 해야하는데 하나님의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구원적으로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분명히 틀린 말입니다.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봐야한다는 말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망한다? 말이 안됩니다. 원인을 찾아들어가봐야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이유가 있는 겁니까 없는겁니까. 왜 쓰러졌을까요. 사람들이 그렇지 쓰러질만한 이유가 있는겁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하는 건강검진말고 전부 다 검진을 다했습니다. 건강합니다. 연말에 검사해보니 암 말기입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전부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유없는데 엘리 제사장 한 사람 때문에 전쟁이 났겠는가. 이스라엘이 패전할 원인이 곳곳에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굉장히 크게 미칩니다. 이건 교리적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전체를 향하면서 전체 전부다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가 전체를 만든다는 뜻이지요. 한 사람의 잘못되면 그만큼 잘못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몸이란 것은 수많은 생명체들이 되어서 자주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중한겁니다. 어느하나도 소중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에게 모두를 다 쏟아붓습니다. 그래도 태양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에 있는 사람에게 다 비치지요. 막으면 안 비치는 것이고 여기 비추면 저기 못 비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전지전능자면서 단일성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몇 분입니까. 하나님은 한 분이지요. 하나님은 세분이지요. 이걸 삼위일체라고 하지요.
물질은 한군데 다 쏟으면 나눠야하는데 사람의 사랑이라는 것도 그럴 수 밖에 없는건가요. 사랑이란 속성, 아들이 다섯입니다. 첫째를 가장 사랑하면 둘째는 그만큼 덜 사랑합니까 아니면 첫째만큼 둘째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강도가 같을 수가 있습니까 다를 수밖에 없습니까. 다 사랑하는데 몸이 안되는 거지요. 하나님도 완전자이기 때문에 차별없이 다 쏟아붓습니다. 저에게 쏟아부으면 여러분에게 대한 것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하나님은 나 없이 못사실 거야. 일부러 화나님 비기게 하기도 하셨다는 겁니다. 그게 아가서의 연애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전부를 위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전부는 나에게 다 쏟아지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기대와 소망과 노력이 다 쏟아지기 때문에 이걸 두고 나를 두고 관섭을 하거나 먼저 챙긴다는 것은 이건 하나님 앞에 해당되지 않는 겁니다. 우리 공회의 설교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설교자와 같이 들어있고 서부교회 목사님 특이하게 느끼는 거는 여러분이라고 하십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자기는 이 말씀 포함이 안되는가. 기본적으로 설교는 우리입니다. 설교하는 자신도 포함되는 겁니다. 나는 회개해도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두는 전부 다 나에게 다 쏟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두고 다른 사람을 피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게 신앙세계입니다. 나 하나만 바로 잡고 바로 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챙겨주시는 게 역사입니다. 나 하나 만드는 속에 다른 사람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속에 나를 챙기는 게 있는 겁니다.
한 사람의 영향 이건 오전에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스라엘의 비중이 있습니다. 이걸 제가 어쩔지 모르겠는데 백영희와 총공회는 같다. 이걸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백영희라는 분이 생기기 전에는 그런 교파가 없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과 이스라엘의 비중은 같습니다.
사무엘이 사사가 되고나니까 나라에 전쟁이 없었습니다. 왕도 군대도 없는데. 이스라엘 그런 민족들이 있습니다. 말타고 다니는 그런 민족들은 그게 직업인데 바로 군인되고 그런 게 있나본데 한 사람 때문에 다 막았습니다. 사울이 세웠을 때 져버렸고 한 사람이 그만큼 영향을 두게 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세상에도 그런 거 많다고 했습니다.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에게 기록됐을 때 다를 것이가 보는데 물론 다른 게 있지만 칼빈은 하나 읽으면 다 외어버린답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사람들보면 고만고만하지 어릴 때보면 요셉이라던지 다윗이라던지 보면 남다른 요소 두 가지가 하나는 거룩이고 하나는 진실입니다. 거룩과 진실. 구별성과 충성입니다. 따져서 끝까지 가는 거 자라가니까 그런 사람이 되었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이 그리 될 줄이야 요셉이 그리 될 줄이야.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죠. 나이가 60된 사람은 신앙적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경우는 없는 겁니까. 60이 어때서 70이 어때서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늦게라도 하면 그때부터 하면 되는 겁니다. 어린 학생 중간반이야 소망있겠지만은 장년반은 참 강팍합니다. 세월 속에 지나면 아이들도 그렇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말씀 가지고 나라 전부를 다 흔들 수 있는 선한 악한 영향력 가진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무엘, 엘리가될 수도 있고 그런 겁니다. 원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는데 설교는 원래 하는 것이고 그래서 어린 아이들처럼 처녀성을 가지고 회개라는 말씀이 들릴 때 얼른 회개하는 사람이 복된 것처럼 나다. 이 소망 가져야겠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만 좋아하시나요 청년들만 좋아하시는 겁니까. 누구든지 그 사람을 찾으면 남자든 여자든 상관이 없는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다. 기억하십시다.
또 하나 중요한 것.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 중 이겼습니다. 법궤를 갖다놨는데 빼앗겨버렸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몰랐겠지만 법궤까지 빼앗을 일은 아니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좋았는데 이스라엘 신을 빼앗아와서 좋다고 했는데 신당에 놔뒀더니 그냥 생각해도 안 보이는 신이겠습니까 보이는 신이겠습니까. 안 보이는 사람하고 투명인간하고 보이는 사람하고 싸우면 투명인간이 이기지요. 그래서 비행기를 전부 스텔스기를 만들어서 안보이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안보입니다. 보니까 얼굴이 땅에 닿고 그리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보니까 머리가 끊어져버려서 그리 되어있습니다. 그 지방에 독종이 생겨서 엉망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법궤를 가드로 옮겨가니까 가드 지방에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이번에는 또 옮기니까 난리가 납니다. 지방 자치단체마다 좋지 않은 원자력 발전소라든지 쓰레기 처리장이라던지 있으면 난리인 것처럼 법궤를 가져가니까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떠올린 게 애굽사람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보다 블레셋 사람들이 지혜롭죠.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했습니다. 블레셋은 이방인이고 불신자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 없는가. 하나님의 간섭이 안 믿는 사람에게 없는가. 간섭하십니다. 이 세상 차원에서 간섭하십니다.
그래서 강대국에 많이지고 그런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당해보니까 우리 신보다 강하다 해서 최고의 정성을 다 드립니다. 그래서 금을 가지고 만들어서 쇠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보지 않은 젖소를 두 마리 데려다가 끌게 하고 송아지는 떼놓고 가두는 데에서 뭐가 생각납니까. 송아지가 엄마 따라가면 제대로 가겠습니까. 새끼를 데린 젖이 나는 암소입니다. 바로 가라고 그럽니다. 암소가 떼고 가니까 울지요. 새끼 송아지를 가진 암소가 울면서 가는 거지요. 그런데 멈추지 않고 치우치지 아니하고 그리 가는거지요. 그래가지고 이 암소가 갑니다.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첫째 블레셋 사람들이 준비한 건데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새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멍에 메어보지 않은 암소니까 새 소입니다. 두 번째, 젖이 나는 소입니다. 새끼를 길러야하니까 젖이 나는 소입니다. 두 마리입니다. 네 번째 새끼를 데렸는데 떼놓고 갑니다. 다섯 번째 울면서 갑니다. 울면서 가는데도 멈추지도 않고 돌아가지도 않고 끝까지 갑니다. 몇가지입니까. 첫째 멍에 메어보지 않는 소, 젖이 나는 소입니다, 새끼는 떼놓고 갑니다, 울고 갑니다, 울고 가면서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갑니다. 마지막에 일곱 번째 이 소는 잡아서 번제로 잡아버립니다. 주님이 가신 길이고 표면적으로 목회자들이가는 길이고 따라갈 우리의 길입니다.
멍에 메어보지 아니한 소다. 이 세상 때가 묻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명예욕도 없고 물질욕도 없고 세상을 향한 모든 것을 끊어버립니다. 말씀으로 현실을 살아가느냐 세상 욕심을 다 버려야겠습니다. 이 세상 욕심을 가지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젖이 나는 소입니다. 새끼를 기를 양식이 있는 겁니다. 새끼를 기르려면 어미가 먼저 건강해야합니다. 그래서 젖이라는 것은 엄마가 먹고 난 양식이지 먹고 나지 않으면 젖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깨달은 게 있는 그런 자세가 될 때 깨달음이 있어야합니다. 고친 자기를 다른 사람 두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서로 도와야하는 자세, 구별을 생각해봅니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말씀으로 사는 생활이 될 수 있다. 네 번째는 새끼는 떼놓고 갑니다. 말씀으로 살아갈 때는 세상 가족이나 세상 짐들은 끊어두고 가는 겁니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맞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사는 생활은 못합니다. 대표적으로 실패한 사람 누굽니까. 엘리 제사장입니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끊어놓고 가는 겁니다.
가족들 다 포기하고 새끼를 송아지를 가둬놓고 갑니다. 따가라서 방해되지 않도록 하면 되는데 갈 때 방해가 된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암소가 울면서 갑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울었을 것이고 믿음의 종들이 모르는 겁니다. 사람 속에 감정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울면서 걸어가는게 천국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가면서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슬퍼도 괴로워도 멈추지 않습니다. 끝까지 가는 겁니다.
법궤의 시련 그것 때문에 마지막에 자기를 제물로 바치는 게 암소의 마지막입니다. 주님의 가신 걸음이고 참된 종들의 걸음이고 목회자만 갈 걸음이 아니고 현실에서 이렇게 살아갈 것이 걸음입니다. 우리 모두 다 이런 길을 걸어가야합니다. 우리의 걸음입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을 기억하십시다. 이 세상의 모든 교회를 이기면 내 속의 불의가 의를 이기면 큰일납니다. 과정과정을 기억하고 마지막에는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내가 바로 갈 걸음이라. 기억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17장
본문: 사무엘상 6장 12절 ~ 15절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의 내용에 따라서 특정 개인이나 또는 특정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해당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다 공통적으로 해당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말입니다. 신약시대를 나뉜 제사장들의 시대라고 합니다. 구약시대에서는 레위 계파만 제사장이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의 모든 택함 받은 사람들이 제사장입니다.
목자는 목자의 자질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에게 택했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도 하나님의 종으로 쓰여질 사람들을 주신 재능이나 이런 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가 되었다고 해서 교회보다 구원을 잘 이룬다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목회자는 구원을 이루어가기에 유리한 입장이 되어갑니다. 목회자는 기도하고 성경읽고 성경 연구하고 말씀 연구하고 심방 전도하고 그게 목회이기 때문에 분명히 유리합니다. 백 목사님께서 언제 한 번 버스를 탔는데 바쁘게 살고 있는데 목사님은 목회자니까 기도하면 더 좋아하고 성경 읽으면 교인들이 더 좋아하고 깊이 들어가면 좋아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좋아하고 이런 복이 어딨나 마음 속으로 눈물 흘리며 감사했다는 것이 설교록에 있습니다.
목회자가 됐다고 해서 교권이나 가지고 게으르다고 그러면 죄는 더 크게 되는 겁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런 겁니다.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모든 말씀이 다 이러합니다. 읽을 때에는 나와 상관이 없고 특정 위치에 있는 것만 생각하면 힘들게 됩니다. 자기 복음으로 내가 걸어갈 말씀을 생각해보십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였습니다. 사사시대 끝물이었습니다. 뭐든지 새롭고 싱싱하고 좋고 막바지에는 개인의 인생도 과정도 직업도 학업도 전부다 마지막에 되는 게 일들입니다.
사사 시대 마지막 때가 되니까 많이 흐트러졌습니다. 표면적으로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이 엘리 제사장과 엘리 제사장들의 가족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로운 중에서 멸망하는 의인이 있고 악행 중에서 장수하는 악행이 있다. 성경적으로 도리적으로 이치적으로 공평적으로 그 말이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성경 해석을 해야하는데 하나님의 역사적으로 성경적으로 구원적으로 맞는 말입니까 틀린 말입니까. 분명히 틀린 말입니다. 그런데 내부를 들여다봐야한다는 말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망한다? 말이 안됩니다. 원인을 찾아들어가봐야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이유가 있는 겁니까 없는겁니까. 왜 쓰러졌을까요. 사람들이 그렇지 쓰러질만한 이유가 있는겁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하는 건강검진말고 전부 다 검진을 다했습니다. 건강합니다. 연말에 검사해보니 암 말기입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전부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유없는데 엘리 제사장 한 사람 때문에 전쟁이 났겠는가. 이스라엘이 패전할 원인이 곳곳에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굉장히 크게 미칩니다. 이건 교리적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전체를 향하면서 전체 전부다가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되어진 것입니다. 하나가 전체를 만든다는 뜻이지요. 한 사람의 잘못되면 그만큼 잘못이 되어지게 되는 겁니다.
몸이란 것은 수많은 생명체들이 되어서 자주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중한겁니다. 어느하나도 소중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에게 모두를 다 쏟아붓습니다. 그래도 태양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에 있는 사람에게 다 비치지요. 막으면 안 비치는 것이고 여기 비추면 저기 못 비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전자기 때문에 전지전능자면서 단일성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몇 분입니까. 하나님은 한 분이지요. 하나님은 세분이지요. 이걸 삼위일체라고 하지요.
물질은 한군데 다 쏟으면 나눠야하는데 사람의 사랑이라는 것도 그럴 수 밖에 없는건가요. 사랑이란 속성, 아들이 다섯입니다. 첫째를 가장 사랑하면 둘째는 그만큼 덜 사랑합니까 아니면 첫째만큼 둘째도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의 강도가 같을 수가 있습니까 다를 수밖에 없습니까. 다 사랑하는데 몸이 안되는 거지요. 하나님도 완전자이기 때문에 차별없이 다 쏟아붓습니다. 저에게 쏟아부으면 여러분에게 대한 것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하나님은 나 없이 못사실 거야. 일부러 화나님 비기게 하기도 하셨다는 겁니다. 그게 아가서의 연애하는 겁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영향력이라는 것은 전부를 위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전부는 나에게 다 쏟아지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기대와 소망과 노력이 다 쏟아지기 때문에 이걸 두고 나를 두고 관섭을 하거나 먼저 챙긴다는 것은 이건 하나님 앞에 해당되지 않는 겁니다. 우리 공회의 설교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설교자와 같이 들어있고 서부교회 목사님 특이하게 느끼는 거는 여러분이라고 하십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자기는 이 말씀 포함이 안되는가. 기본적으로 설교는 우리입니다. 설교하는 자신도 포함되는 겁니다. 나는 회개해도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두는 전부 다 나에게 다 쏟아지는 겁니다. 그래서 나를 두고 다른 사람을 피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게 신앙세계입니다. 나 하나만 바로 잡고 바로 되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챙겨주시는 게 역사입니다. 나 하나 만드는 속에 다른 사람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 속에 나를 챙기는 게 있는 겁니다.
한 사람의 영향 이건 오전에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스라엘의 비중이 있습니다. 이걸 제가 어쩔지 모르겠는데 백영희와 총공회는 같다. 이걸 누구에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백영희라는 분이 생기기 전에는 그런 교파가 없었습니다. 모세 한 사람과 이스라엘의 비중은 같습니다.
사무엘이 사사가 되고나니까 나라에 전쟁이 없었습니다. 왕도 군대도 없는데. 이스라엘 그런 민족들이 있습니다. 말타고 다니는 그런 민족들은 그게 직업인데 바로 군인되고 그런 게 있나본데 한 사람 때문에 다 막았습니다. 사울이 세웠을 때 져버렸고 한 사람이 그만큼 영향을 두게 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세상에도 그런 거 많다고 했습니다. 이런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에게 기록됐을 때 다를 것이가 보는데 물론 다른 게 있지만 칼빈은 하나 읽으면 다 외어버린답니다. 그런 사람이 있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사람들보면 고만고만하지 어릴 때보면 요셉이라던지 다윗이라던지 보면 남다른 요소 두 가지가 하나는 거룩이고 하나는 진실입니다. 거룩과 진실. 구별성과 충성입니다. 따져서 끝까지 가는 거 자라가니까 그런 사람이 되었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다윗이 그리 될 줄이야 요셉이 그리 될 줄이야.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죠. 나이가 60된 사람은 신앙적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경우는 없는 겁니까. 60이 어때서 70이 어때서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그것입니다. 늦게라도 하면 그때부터 하면 되는 겁니다. 어린 학생 중간반이야 소망있겠지만은 장년반은 참 강팍합니다. 세월 속에 지나면 아이들도 그렇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말씀 가지고 나라 전부를 다 흔들 수 있는 선한 악한 영향력 가진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무엘, 엘리가될 수도 있고 그런 겁니다. 원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는데 설교는 원래 하는 것이고 그래서 어린 아이들처럼 처녀성을 가지고 회개라는 말씀이 들릴 때 얼른 회개하는 사람이 복된 것처럼 나다. 이 소망 가져야겠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만 좋아하시나요 청년들만 좋아하시는 겁니까. 누구든지 그 사람을 찾으면 남자든 여자든 상관이 없는겁니다. 우리 모두가 다 그런 사람이 되도록 하십시다. 기억하십시다.
또 하나 중요한 것.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 중 이겼습니다. 법궤를 갖다놨는데 빼앗겨버렸습니다. 그런데 블레셋이 몰랐겠지만 법궤까지 빼앗을 일은 아니었다는 거지요. 그래서 좋았는데 이스라엘 신을 빼앗아와서 좋다고 했는데 신당에 놔뒀더니 그냥 생각해도 안 보이는 신이겠습니까 보이는 신이겠습니까. 안 보이는 사람하고 투명인간하고 보이는 사람하고 싸우면 투명인간이 이기지요. 그래서 비행기를 전부 스텔스기를 만들어서 안보이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안보입니다. 보니까 얼굴이 땅에 닿고 그리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에 보니까 머리가 끊어져버려서 그리 되어있습니다. 그 지방에 독종이 생겨서 엉망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법궤를 가드로 옮겨가니까 가드 지방에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이번에는 또 옮기니까 난리가 납니다. 지방 자치단체마다 좋지 않은 원자력 발전소라든지 쓰레기 처리장이라던지 있으면 난리인 것처럼 법궤를 가져가니까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떠올린 게 애굽사람을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애굽 사람보다 블레셋 사람들이 지혜롭죠.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그들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했습니다. 블레셋은 이방인이고 불신자입니다. 하나님 없는 세상에 없는가. 하나님의 간섭이 안 믿는 사람에게 없는가. 간섭하십니다. 이 세상 차원에서 간섭하십니다.
그래서 강대국에 많이지고 그런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 나름대로 당해보니까 우리 신보다 강하다 해서 최고의 정성을 다 드립니다. 그래서 금을 가지고 만들어서 쇠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보지 않은 젖소를 두 마리 데려다가 끌게 하고 송아지는 떼놓고 가두는 데에서 뭐가 생각납니까. 송아지가 엄마 따라가면 제대로 가겠습니까. 새끼를 데린 젖이 나는 암소입니다. 바로 가라고 그럽니다. 암소가 떼고 가니까 울지요. 새끼 송아지를 가진 암소가 울면서 가는 거지요. 그런데 멈추지 않고 치우치지 아니하고 그리 가는거지요. 그래가지고 이 암소가 갑니다.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첫째 블레셋 사람들이 준비한 건데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새 수레를 만들었습니다. 멍에 메어보지 않은 암소니까 새 소입니다. 두 번째, 젖이 나는 소입니다. 새끼를 길러야하니까 젖이 나는 소입니다. 두 마리입니다. 네 번째 새끼를 데렸는데 떼놓고 갑니다. 다섯 번째 울면서 갑니다. 울면서 가는데도 멈추지도 않고 돌아가지도 않고 끝까지 갑니다. 몇가지입니까. 첫째 멍에 메어보지 않는 소, 젖이 나는 소입니다, 새끼는 떼놓고 갑니다, 울고 갑니다, 울고 가면서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갑니다. 마지막에 일곱 번째 이 소는 잡아서 번제로 잡아버립니다. 주님이 가신 길이고 표면적으로 목회자들이가는 길이고 따라갈 우리의 길입니다.
멍에 메어보지 아니한 소다. 이 세상 때가 묻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명예욕도 없고 물질욕도 없고 세상을 향한 모든 것을 끊어버립니다. 말씀으로 현실을 살아가느냐 세상 욕심을 다 버려야겠습니다. 이 세상 욕심을 가지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젖이 나는 소입니다. 새끼를 기를 양식이 있는 겁니다. 새끼를 기르려면 어미가 먼저 건강해야합니다. 그래서 젖이라는 것은 엄마가 먹고 난 양식이지 먹고 나지 않으면 젖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깨달은 게 있는 그런 자세가 될 때 깨달음이 있어야합니다. 고친 자기를 다른 사람 두는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서로 도와야하는 자세, 구별을 생각해봅니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 말씀으로 사는 생활이 될 수 있다. 네 번째는 새끼는 떼놓고 갑니다. 말씀으로 살아갈 때는 세상 가족이나 세상 짐들은 끊어두고 가는 겁니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맞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사는 생활은 못합니다. 대표적으로 실패한 사람 누굽니까. 엘리 제사장입니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끊어놓고 가는 겁니다.
가족들 다 포기하고 새끼를 송아지를 가둬놓고 갑니다. 따가라서 방해되지 않도록 하면 되는데 갈 때 방해가 된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암소가 울면서 갑니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울었을 것이고 믿음의 종들이 모르는 겁니다. 사람 속에 감정이 없을 수가 있습니까. 울면서 걸어가는게 천국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가면서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슬퍼도 괴로워도 멈추지 않습니다. 끝까지 가는 겁니다.
법궤의 시련 그것 때문에 마지막에 자기를 제물로 바치는 게 암소의 마지막입니다. 주님의 가신 걸음이고 참된 종들의 걸음이고 목회자만 갈 걸음이 아니고 현실에서 이렇게 살아갈 것이 걸음입니다. 우리 모두 다 이런 길을 걸어가야합니다. 우리의 걸음입니다. 한 사람의 영향력을 기억하십시다. 이 세상의 모든 교회를 이기면 내 속의 불의가 의를 이기면 큰일납니다. 과정과정을 기억하고 마지막에는 제물로 바쳐졌습니다. 내가 바로 갈 걸음이라. 기억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