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2일 금밤
김동민2023-12-22조회 281추천 43
2023년 12월 22일 금밤
찬송: 60장, 63장
본문: 누가복음 2장 10절
믿는 사람은 신앙이 자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교회 일을 많이 할수록 자라갑니다. 감당 못할 일은 맡기면 안되고 감당할 수 있으면 맡기면서라도 신앙은 자라게 됩니다. 특별히 안해도 되는 일들을 군인들이 많이 시킵니다. 안 그러면 나태하게 되니까 그렇습니다. 할 일 없으면 백목사님께서도 땅을 파라고 합니다. 다 파면 다시 묻어라고 합니다. 그래라도 일을 하면 사람이 되는 것이고 할 일 없다고 놀면 게으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지요.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게으른 죄입니다. 게으르면 평생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짝에도 못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부지러운 사람을 만들어야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만들면 안됩니다.
사람이 정직하고 부지런하면 사람은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도 힘들고 피곤해도 계속 하면은 신앙도 자라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니까 그리고 쓸데없는 자기 주장을 고집하면 사공이 산으로 가서 안되는데, 자기 주관을 고집하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의견을 내지 않으면 그 단체는 죽은 단체가 됩니다. 그렇다고 내 의견을 기어코 받아줘야한다. 이건 문제입니다. 나는 좋은 의견을 최대한 하고 내는 겁니다. 좋게, 그래서 서로 몰랐던 거 배우기도 하고 이런 의견이었는데 이런 저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문제가 있구나 사람이라는 것은 넓어지고 깊어지게 되는 겁니다. 사람은 점점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수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성탄을 맞이해서 관련된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구약은 날이 많았는데 신약은 형식은 세례성찬만 남았습니다. 성탄을 기념하라는 말씀은 없음에도 다 지내고 있고 신앙의 도움되고 유익되기 때문에 우리도 간단하게라도 하는 겁니다. 1년에 한 번 해야 대화도 잘 안하지요 차를 마시지도 않지요. 식사도 같이 안하지요. 교회가면 구역별로 모여서 식사도 하고 여행도 가고 그런게 신앙에 유익이 없어서 안하지만 식사 정도는 괜찮으니까 합니다.
성탄을 생각해봅니다. 한문 글자로 하면 거룩한 탄생이라는 거지요. 위대한 분이 태어났다는거지요. 거기서 조심할 것, 세계 4대 성인이 있습니다. 누구누구지요. 공자 석가모니 예수님 소크라테스인가요. 네 사람이라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세계 4대 성인이라고 합니다. 공자나 석가모니나 소크라테스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키도 작고 얼굴도 늙었고 그런 사람에게 사람취급 못 받는 사람에게 강아지 예쁘네 하면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그러면 아무리 못생겨도 사람이지 내가 강아지야. 예수님을 4대 성인에 집어넣는 건 그보다 더 치욕입니다. 석가모니를 만들었고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만든 분이 예수님이지요. 우리의 성탄은 성탄절만 성탄입니다. 다른 글자로 도성인신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사람의 몸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이루었다 사람의 몸을. 중국말이라서 어순이 그렇다지요. 말씀이 이루었다 사람의 몸을, 도성인신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되어 오셨다는 뜻이지요. 하나님은 희생이라 그렇습니다. 모를 때는 모르는 겁니다. 알고나면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고 모르면 아는 범위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기쁨이 슬픔이든 지식에 의해서 생겨지는 것이지 지식이 없는데 사람의 희로애락이 생길 수는 없는 겁니다.
주님 오신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목동들에게 말합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이 오늘날 다윗의 동네, 너희를 위하여 구주를 나셨다. 4000년 동안 고대하던 메시아가 나타나셨습니다. 기뻐할 일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기뻐할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모르는 사람에게 왜 모르냐 알아라 이건 문제고, 모든 기계라든지 그런 건 키우면 커지는데 생명은 억제로 강제로 늘어뜨릴 수 없는 게 생명입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반대로 다 자란 사람을 죽일 수도 없는 겁니다. 사람을 자로 재서 육척인가 작으면 살려놓고 높으면 죽여버립니다.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거지요. 이미 들어서 아는 지식을 떼버려서 망각해라 해도 안되는거지요. 성탄에 대한 기쁨과 함께 죄송함을 배웠습니다. 몰라도 좋은 것은 좋은 게 좋습니다.
에덴 동산 아담과 하와는 옷을 뭘 입었습니까. 안 입었는데 선악과 따먹기전에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그게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아 놓으면 보고도 안 보이는 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여주시는데 다른 방법으로 보게 되면 치명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몰라야할 것을 알게 되고 그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 굉장히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알아야할 것은 알아야합니다. 알려주셨는데 모를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일반 교계에 성탄이 죄송한 날이다, 주님의 부활이 한없는 희생이다 이걸 알고 계시는지 모르시겠습니다. 그것도 많이 알려졌다는게 됩니다. 생각으로 알 수는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말씀 처음 받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랑이 두 종류다. 그게 처음 받았습니다. 주님 대속이 다 진짜 사랑이다. 이거 충격받았고 주일학교 첫 설교를 그 설교를 했습니다.
성탄은 우리는 기쁜데 주님은 한 없는 희생입니다. 죄송한 마음이라는 것은 장성한 다음에 가지는 것입니다. 해버렸기 때문에 죄송한 마음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역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한 없는 죄송함을 가지는데 주님의 오심으로 기쁨에 대해 생각해봤는가. 이것도 생각할 일입니다. 넘어가서 죄송합니다. 순서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성탄의 기쁨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기쁨이라는 것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네가지 희로애락이라는 것은 지식에 의해서 생겨지는 겁니다. 그 지식의 범위 안에서 생겨지는 게 사람의 희로애락이라는 겁니다. 모르는 기쁨은 없고 모르는 슬픔은 없는 것입니다. 지식에 의해서 되어지는 겁니다. 왜 기쁘냐 그 말이지요. 당연히 기쁜데, 무엇이 기쁜가 얼마나 기쁜가, 거기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합니다. 슬픔도 울어야합니다. 왜 웁니까. 아무런 근거 없는데 울지는 않을겁니다. 성탄의 기쁨도 기쁠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는 겁니다. 오늘 밤에는 이걸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기쁨의 근거를 생각할 때 지식적이기 때문에 지식을 가지고 실제 그 기쁨이 되는데에는 자기 몫입니다. 그게 각자 자기에게 느껴져서 기쁨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그걸 사랑장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거처럼 희미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거처럼 된다. 천국 알아도 모릅니다. 구원도 모릅니다. 기쁨 슬픔도 잘 모릅니다. 상상도 못합니다.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모릅니다. 언제 알게 되는가. 가봐야 압니다. 한 번 겪어본 사람과 차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겁니다. 이가 아파본 사람과 안아파 본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을 것에 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과 보면 다릅니다. 본것과 말만 들은 것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지식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성탄의 은혜도 이건 다 희미합니다. 가봐야 비로소 느낍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봐야 실감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늙음을 말하면 못느끼는데 연세 많으신 분들에게 말하면 실상이니까 바로 느껴지지요.
성탄 기쁨의 근거, 그걸 말하면 두 가지입니다. 기본 구원의 은혜고 건설 구원의 터가 되는 겁니다. 이걸 보면 기뻐하신 이유가 뭐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우리를 우리 죄를 다 짊어지심으로 사죄를 주신 겁니다. 죄 없는자 만드신 것은 영원한 징벌을 면해주신 겁니다. 어느정도일까 못 느낍니다. 그래서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생각해서 유황불비가 타는 곳, 뜨거운 곳에 집어넣는데 마음을 집어넣으면 탑니까 안 탑니까. 마음은 불에 안 타지요. 시공을 초월하는 겁니다. 사람이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택자만 부활하는 게 아닙니다. 불택자도 부활합니다. 지옥 갈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몸입니다. 고통이 되겠습니까. 몸보다 더 고통스러운게 마음의 고통이지요. 신령한 몸으로 부활했는데 영원한 고통이 됩니다. 마음이 찢어진다, 마음이 갈갈이 찢어진다. 이순신 장군이 지은 시 이름이 뭡니다. 남의 애를 끗나니, 마음이 찢어지는 거.
택자는요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못 믿어 천국의 바닥을 가더라도 천국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죽는 날이 사는 날보다 나은 겁니다. 성탄의 은혜입니다. 모든 죄를 다 하심으로 지옥의 죄를 면해주셨습니다. 이게 뭔가, 생각해보셔야합니다. 우리는 의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시는 게 의입니다. 당신이 다 바쳐 우리를 이르시므로 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는 하나님의 은혜 축복을 다 가는 근거가 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가 되는 겁니다. 모든 죄 형벌을 면하게 되었고 영원한 천국에 영원한 하나님의 것을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원수되어 떨어진 우리를 주님이 화친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삼아주셨습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성탄으로 주신 은혜입니다. 원수되었는데 삼아주신 겁니다. 부활은 다른 거지만 성탄이란 대속의 생애며 성탄 이후의 은혜로 볼 수 있습니다. 희망없는 게 괴로운 겁니다. 성탄으로 은혜입니다. 다섯 번째는 대속의 은혜를 주시고 부활의 은혜로 연결되는데 죽었던 영을 살려서 살아갈수 있는 중생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는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셨고 이런 걸 주일에 살펴볼지 모르겠으나 여덟 번째는 대속공로 베푸심으로 진리를 주셨습니다. 하늘에 건설구원 준비할 수 있는 준비의 근거가 되었고 보정이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은혜를 주셨고 아홉 번째는 성화구원의 종자를 주셨으니까 우리의 구원으로 협조하게 되는 것이 되어졌습니다. 하늘에 할 때 바로만 가면 협조자가 되고 모든 만물은 우리의 적이 되게 되는 겁니다. 간단하게 아홉가지만 생각해봤습니다.
주님 성탄 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뺐습니다. 이거 하나하나가 무한한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큰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기쁨으로 가지는 겁니다. 왜 기쁜데 무엇이 기쁜데, 죄를 다 담당하시고 면해주셨으니까 의를 의롭다하셔서 모든 축복 다 받게 하셨으니까. 하늘의 소망을 주셨으니까. 죽었던 존재를 살리셨고 전부 우리 것이니까. 이런 생각하고 근거되고 이유가 되고 그 위에서 주님 오신 기쁨이 되어야 바른 기쁨이 되신 것이고 이런 큰 기쁨 안에 한 편으로 생각해보니까 주님의 사랑의 희생을 생각해야하니까 참 죄송하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서 사나 죽으나 기쁘나 즐거우나 나 자신도 아프게 되어버리고 그 뜻이 되었을 때 우리로 되게 해야겠다. 이런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
찬송: 60장, 63장
본문: 누가복음 2장 10절
믿는 사람은 신앙이 자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교회 일을 많이 할수록 자라갑니다. 감당 못할 일은 맡기면 안되고 감당할 수 있으면 맡기면서라도 신앙은 자라게 됩니다. 특별히 안해도 되는 일들을 군인들이 많이 시킵니다. 안 그러면 나태하게 되니까 그렇습니다. 할 일 없으면 백목사님께서도 땅을 파라고 합니다. 다 파면 다시 묻어라고 합니다. 그래라도 일을 하면 사람이 되는 것이고 할 일 없다고 놀면 게으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지요.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게으른 죄입니다. 게으르면 평생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짝에도 못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부지러운 사람을 만들어야하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만들면 안됩니다.
사람이 정직하고 부지런하면 사람은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도 힘들고 피곤해도 계속 하면은 신앙도 자라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하니까 그리고 쓸데없는 자기 주장을 고집하면 사공이 산으로 가서 안되는데, 자기 주관을 고집하면 배가 산으로 갑니다. 의견을 내지 않으면 그 단체는 죽은 단체가 됩니다. 그렇다고 내 의견을 기어코 받아줘야한다. 이건 문제입니다. 나는 좋은 의견을 최대한 하고 내는 겁니다. 좋게, 그래서 서로 몰랐던 거 배우기도 하고 이런 의견이었는데 이런 저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문제가 있구나 사람이라는 것은 넓어지고 깊어지게 되는 겁니다. 사람은 점점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수고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성탄을 맞이해서 관련된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구약은 날이 많았는데 신약은 형식은 세례성찬만 남았습니다. 성탄을 기념하라는 말씀은 없음에도 다 지내고 있고 신앙의 도움되고 유익되기 때문에 우리도 간단하게라도 하는 겁니다. 1년에 한 번 해야 대화도 잘 안하지요 차를 마시지도 않지요. 식사도 같이 안하지요. 교회가면 구역별로 모여서 식사도 하고 여행도 가고 그런게 신앙에 유익이 없어서 안하지만 식사 정도는 괜찮으니까 합니다.
성탄을 생각해봅니다. 한문 글자로 하면 거룩한 탄생이라는 거지요. 위대한 분이 태어났다는거지요. 거기서 조심할 것, 세계 4대 성인이 있습니다. 누구누구지요. 공자 석가모니 예수님 소크라테스인가요. 네 사람이라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세계 4대 성인이라고 합니다. 공자나 석가모니나 소크라테스는 영광입니다. 예수님에게는 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키도 작고 얼굴도 늙었고 그런 사람에게 사람취급 못 받는 사람에게 강아지 예쁘네 하면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그러면 아무리 못생겨도 사람이지 내가 강아지야. 예수님을 4대 성인에 집어넣는 건 그보다 더 치욕입니다. 석가모니를 만들었고 공자와 소크라테스를 만든 분이 예수님이지요. 우리의 성탄은 성탄절만 성탄입니다. 다른 글자로 도성인신이라고 합니다. 말씀이 사람의 몸을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이루었다 사람의 몸을. 중국말이라서 어순이 그렇다지요. 말씀이 이루었다 사람의 몸을, 도성인신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되어 오셨다는 뜻이지요. 하나님은 희생이라 그렇습니다. 모를 때는 모르는 겁니다. 알고나면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고 모르면 아는 범위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기쁨이 슬픔이든 지식에 의해서 생겨지는 것이지 지식이 없는데 사람의 희로애락이 생길 수는 없는 겁니다.
주님 오신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사가 나타나서 목동들에게 말합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합니다.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이 오늘날 다윗의 동네, 너희를 위하여 구주를 나셨다. 4000년 동안 고대하던 메시아가 나타나셨습니다. 기뻐할 일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기뻐할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이 모르는 사람에게 왜 모르냐 알아라 이건 문제고, 모든 기계라든지 그런 건 키우면 커지는데 생명은 억제로 강제로 늘어뜨릴 수 없는 게 생명입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반대로 다 자란 사람을 죽일 수도 없는 겁니다. 사람을 자로 재서 육척인가 작으면 살려놓고 높으면 죽여버립니다.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거지요. 이미 들어서 아는 지식을 떼버려서 망각해라 해도 안되는거지요. 성탄에 대한 기쁨과 함께 죄송함을 배웠습니다. 몰라도 좋은 것은 좋은 게 좋습니다.
에덴 동산 아담과 하와는 옷을 뭘 입었습니까. 안 입었는데 선악과 따먹기전에 알았습니까 몰랐습니까. 그게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막아 놓으면 보고도 안 보이는 게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여주시는데 다른 방법으로 보게 되면 치명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몰라야할 것을 알게 되고 그쪽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 굉장히 불행해집니다. 그런데 알아야할 것은 알아야합니다. 알려주셨는데 모를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일반 교계에 성탄이 죄송한 날이다, 주님의 부활이 한없는 희생이다 이걸 알고 계시는지 모르시겠습니다. 그것도 많이 알려졌다는게 됩니다. 생각으로 알 수는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말씀 처음 받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랑이 두 종류다. 그게 처음 받았습니다. 주님 대속이 다 진짜 사랑이다. 이거 충격받았고 주일학교 첫 설교를 그 설교를 했습니다.
성탄은 우리는 기쁜데 주님은 한 없는 희생입니다. 죄송한 마음이라는 것은 장성한 다음에 가지는 것입니다. 해버렸기 때문에 죄송한 마음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역으로 돌아가서 주님의 부활에 대해서 한 없는 죄송함을 가지는데 주님의 오심으로 기쁨에 대해 생각해봤는가. 이것도 생각할 일입니다. 넘어가서 죄송합니다. 순서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성탄의 기쁨을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면 기쁨이라는 것은 기쁨이든 슬픔이든 네가지 희로애락이라는 것은 지식에 의해서 생겨지는 겁니다. 그 지식의 범위 안에서 생겨지는 게 사람의 희로애락이라는 겁니다. 모르는 기쁨은 없고 모르는 슬픔은 없는 것입니다. 지식에 의해서 되어지는 겁니다. 왜 기쁘냐 그 말이지요. 당연히 기쁜데, 무엇이 기쁜가 얼마나 기쁜가, 거기에 대한 지식이 바탕이 되어야합니다. 슬픔도 울어야합니다. 왜 웁니까. 아무런 근거 없는데 울지는 않을겁니다. 성탄의 기쁨도 기쁠 근거가 있고 이유가 있는 겁니다. 오늘 밤에는 이걸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기쁨의 근거를 생각할 때 지식적이기 때문에 지식을 가지고 실제 그 기쁨이 되는데에는 자기 몫입니다. 그게 각자 자기에게 느껴져서 기쁨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그걸 사랑장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거처럼 희미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거처럼 된다. 천국 알아도 모릅니다. 구원도 모릅니다. 기쁨 슬픔도 잘 모릅니다. 상상도 못합니다.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모릅니다. 언제 알게 되는가. 가봐야 압니다. 한 번 겪어본 사람과 차원이 다르게 느껴지는 겁니다. 이가 아파본 사람과 안아파 본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을 것에 해본 사람과 아닌 사람과 보면 다릅니다. 본것과 말만 들은 것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지식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성탄의 은혜도 이건 다 희미합니다. 가봐야 비로소 느낍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어봐야 실감합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늙음을 말하면 못느끼는데 연세 많으신 분들에게 말하면 실상이니까 바로 느껴지지요.
성탄 기쁨의 근거, 그걸 말하면 두 가지입니다. 기본 구원의 은혜고 건설 구원의 터가 되는 겁니다. 이걸 보면 기뻐하신 이유가 뭐냐,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짊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우리를 우리 죄를 다 짊어지심으로 사죄를 주신 겁니다. 죄 없는자 만드신 것은 영원한 징벌을 면해주신 겁니다. 어느정도일까 못 느낍니다. 그래서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생각해서 유황불비가 타는 곳, 뜨거운 곳에 집어넣는데 마음을 집어넣으면 탑니까 안 탑니까. 마음은 불에 안 타지요. 시공을 초월하는 겁니다. 사람이 부활하고 난 다음에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택자만 부활하는 게 아닙니다. 불택자도 부활합니다. 지옥 갈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몸입니다. 고통이 되겠습니까. 몸보다 더 고통스러운게 마음의 고통이지요. 신령한 몸으로 부활했는데 영원한 고통이 됩니다. 마음이 찢어진다, 마음이 갈갈이 찢어진다. 이순신 장군이 지은 시 이름이 뭡니다. 남의 애를 끗나니, 마음이 찢어지는 거.
택자는요 이 세상이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못 믿어 천국의 바닥을 가더라도 천국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죽는 날이 사는 날보다 나은 겁니다. 성탄의 은혜입니다. 모든 죄를 다 하심으로 지옥의 죄를 면해주셨습니다. 이게 뭔가, 생각해보셔야합니다. 우리는 의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시는 게 의입니다. 당신이 다 바쳐 우리를 이르시므로 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는 하나님의 은혜 축복을 다 가는 근거가 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우리가 되는 겁니다. 모든 죄 형벌을 면하게 되었고 영원한 천국에 영원한 하나님의 것을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원수되어 떨어진 우리를 주님이 화친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 아들로 삼아주셨습니다. 그게 은혜입니다. 성탄으로 주신 은혜입니다. 원수되었는데 삼아주신 겁니다. 부활은 다른 거지만 성탄이란 대속의 생애며 성탄 이후의 은혜로 볼 수 있습니다. 희망없는 게 괴로운 겁니다. 성탄으로 은혜입니다. 다섯 번째는 대속의 은혜를 주시고 부활의 은혜로 연결되는데 죽었던 영을 살려서 살아갈수 있는 중생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생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는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하셨고 이런 걸 주일에 살펴볼지 모르겠으나 여덟 번째는 대속공로 베푸심으로 진리를 주셨습니다. 하늘에 건설구원 준비할 수 있는 준비의 근거가 되었고 보정이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은혜를 주셨고 아홉 번째는 성화구원의 종자를 주셨으니까 우리의 구원으로 협조하게 되는 것이 되어졌습니다. 하늘에 할 때 바로만 가면 협조자가 되고 모든 만물은 우리의 적이 되게 되는 겁니다. 간단하게 아홉가지만 생각해봤습니다.
주님 성탄 위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뺐습니다. 이거 하나하나가 무한한 은혜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큰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기쁨으로 가지는 겁니다. 왜 기쁜데 무엇이 기쁜데, 죄를 다 담당하시고 면해주셨으니까 의를 의롭다하셔서 모든 축복 다 받게 하셨으니까. 하늘의 소망을 주셨으니까. 죽었던 존재를 살리셨고 전부 우리 것이니까. 이런 생각하고 근거되고 이유가 되고 그 위에서 주님 오신 기쁨이 되어야 바른 기쁨이 되신 것이고 이런 큰 기쁨 안에 한 편으로 생각해보니까 주님의 사랑의 희생을 생각해야하니까 참 죄송하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가지면서 사나 죽으나 기쁘나 즐거우나 나 자신도 아프게 되어버리고 그 뜻이 되었을 때 우리로 되게 해야겠다. 이런 말씀을 기억하십시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