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7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12-17조회 277추천 38
2023년 12월 17일 주일 오후
찬송: 5장, 132장
본문: 전도서 7장 5절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알기 위해서고 아는 것은 아는대로 행하여 살기 위해서입니다. 모르면 행할 수 없고 알아도 행하지 않으면 아는게 교만하게 하고 정죄하는 율법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법이기 때문에 세상 법은 지키는 사람을 보호하기보다도 묘해서 손해보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것이 불완전한 법입니다. 세상 법은 참고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법은 참고만 하는 것입니다. 지키는 사람은 생명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는 겁니다. 법이 없으면 처벌이 없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도 법이 없으면 죄가 없고 처벌도 없습니다.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법의 종류는 여러 있어도 법치국가가 되어야하는 겁니다. 문화인이고 그러면 굳이 안하고 간섭법으로 해도 되는데 일반적으로 모두 법을 만들어서 정해놓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고 사람에 의해서 정죄하고 심판하기 때문에 보호를 받고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은 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게 되는 겁니다. 몰라도 문제고 알면서 행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는 것이고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보다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아는게 가장 우선입니다. 회개하면 되고 아는 게 우선입니다.
아는 것은 빛이고 모르는 것은 어둠입니다. 빛이란 말은 안다는 뜻이고 아는 것은 빛이란 뜻이고 하나님을 알면 모든 걸 다 알게 되는 겁니다. 말씀을 공부하면서 알아야하고 아는 그대로 기억을 하고 기억력은 참 중요합니다. 암기력와 기억력은 다른 겁니다. 암기력보다 기억력이 더 중요합니다. 암기력과 기억력을 같이 말씀하십니다. 외워라, 기념하라 기억하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을 만날 때 살아가도록 해야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이라는 것은 연습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꾸 보고 듣고 접하면 그쪽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없다고 자주 말씀드립니까. 사람은 별 사람이 없습니다. 대동소이합니다.
칼빈이라는 분은 언어능력이 탁월했다고 하지요. 백목사님은 조금 우월할까 그런데 조금 낫다는 정도지 이 정도면 나도 되겠다 싶은 분이신데 그분은 진실했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다. 하나 하나를 대충 넘어가지 않고 옳은 것이냐 세밀하게 살펴서 진실을 가졌습니다. 아는데 있는 힘을 가져서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차근 차근 밟아 올라가니까 어느새 그런 분이 되었습니다. 아는대로 기억을 하고 실행을 하면 그만큼 될지는 몰라도 아름답게 되는겁니다. 그리고 성경이라는 것은 모든 걸 기록한게 아니라 함축해서 요약해서 기록한 것이라는 것을 기록해야합니다. 한 문장 속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가 뜻만이 아닙니다. 역대상의 인물계통 공부할 때 아들은 아들도 되고 손자도 됩니다. 노래도 나오는데 곡을 붙여 노래 부른 게 아닙니다. 기쁘게 즐겁게 하는 것을 노래라고 합니다.
사람이란 첫째 믿는 사람, 택자들, 모든 사람. 그러면 사람이라 그랬으니까 소위말하는 애완동물은 해당이 안되겠지요. 그런 것들은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동물입니다. 성경가지고 믿는 사람처럼 하는 게 맞는 것이지 그걸 안하면 탈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몇 가지를 아는 사람입니까. 지혜자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 천하 유명한 석학이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지혜자는 없습니다. 천국을 아는 사람, 필연성으로 이어집니다. 영원을 아는 사람. 네 번째 창조주를 알며 피조물을 아는 사람.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면 모든 존재를 다 아는 겁니다. 위로는 창조주 하나님과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갈 때 하늘 보면서 사람과 접하면서 식물을 먹으면서 그러는 게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전부를 앎으로 현실에서 이런 존재가 있고 세계가 있고 미래가 있고 범위가 있어서 어떻게 살아야하냐.
적군은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전쟁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안되는 겁니다. 아는 게 중요한거지요. 알아야 현재 살아갈 대응책이 나오는 겁니다. 천지차이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우매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천국 모르는 사람이 세상을 바로 살지 못하는 겁니다. 영원이라는 것이 있는데 모르는 사람은 현재를 잘 살 수가 없는 겁니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로 갑니다. 북쪽에 서울은 있습니다. 북쪽인줄 알아야 가지요. 모르면 북쪽으로 가기만 가면 서울은 가까워지는 겁니다. 동쪽으로 가면 경주가고 포항갑니다. 남쪽에 있는가, 배타고 계속 가면 서울과 멀어집니다. 알아야 뭐든지 바로 가는 겁니다. 천국이 있다. 미래가 있다. 창조주 계시고 피조물있다. 주변사람들 있고 사람들이 많다. 많은 게 있다. 정확하게 바르게 되는 겁니다. 아는 사람을 가르켜 지혜자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지혜자다 이 말입니다.
책망을 듣는 것이 좋은 겁니다. 지혜자의 책망과 우매자의 노래를 비교해놨습니다. 둘 다 듣는데 사람에 따라 어떤 것을 듣는 게 좋으냐 이 말이지요. 물건을 보니까 뭐가 생깁니까. 마음에 생깁니다. 마음에 뭔가 생깁니다. 견물생심, 뭔가 보니까 마음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지혜자를 듣는 겁니다. 귀로 들으면 마음에 안 생깁니까. 귀로 들으면 아무 마음이 안 생기는가요. 아파트 층간소음이 심각합니다. 그거는 보는겁니까 드는 겁니까. 안 보이는데 들려서 괴롭습니다. 몇 달간 그래서 감옥갈뻔해서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걸 스토킹이라 그러는데 법적 용어로 뭐라하는 게 있던데 이렇게 처벌을 받았습니다.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듣는 것도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말씀을 가르쳐서 들어라 들어라. 말씀을 듣도록 해야합니다. 아무리 막혀도 생각이 있습니다. 이 세상 유행가라든지 노래 가락 들어서 없는 겁니다.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매자는 모른다는 뜻입니다. 모르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합니다. 빌붙어 찾아야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면 연구를 해야합니다. 길을 가야하는 줄 알고 뭔가 해야하는 줄 아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아는 게 우선입니다.
우매자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 모릅니까. 하나님을 모르니까. 하나님 모르고 천국 모르고 그러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주관대로만 사는 사람. 우매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국회의원들 보면 압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우매자 밖에 없습니다. 우매자는 그런 겁니다. 노래라는 것은 우매자의 노래입니다. 지혜자의 책망과 비교해놨습니다. 지혜자가 누군지를 아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고 우매자도 자기 나름대로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을 좋게하는 거니까 노래인데 사람의 귀에 듣기 좋은 말, 사람이 좋아하는 말, 그런 말을 하고 칭찬을 하고 그런 것을 보고 우매자의 노래라고 합니다. 그게 우매자의 노래입니다. 여기서 오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혜자와 우매자는 외부로 드러나는 나보다 저 지혜있는 사람이 책망을 듣고 우매자가 나에게 노래를 할 때 판단하는 건데 깊이 들어가면 내 안에 있는 걸 찾아야합니다.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이 있는데 그래서 여러 이름을 나오는 겁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이 다르고 친정집 시댁갈 때 다릅니다. 내 속에 둘이있다. 나같은데 내가 아니다. 로마서 7장에 세밀하게 기록해놨습니다. 내 안에 지혜자, 우매자 다 있습니다. 둘다 찾아봐야합니다. 내 안에 있는 지혜자는 참사람이고 중생된 영에 붙들린 사람이 우매자고 말씀에 붙들린 게 지혜자고 옛사람이 우매자고 충돌이 됩니다. 내 안에 있는 지혜자의 책망을 드는 것이고 우매자 옛사람에 들어서 점점 살아나가면 우매자가 되는 겁니다.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노래랑 같은 겁니다. 자기가 좋아서 웃고 떠듭니다. 상대방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듣기 좋은 말을 해줍니다. 앞에 우매자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나를 사람들에게 좋은 말하고 칭찬하고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 거지요. 지금아나 예나 열을 가해야 음식이 익습니다. 성경에 음식은 해석을 해보는 겁니다. 우매자의 웃음소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다섯가지를 모르는 사람이 나라고 노래부르고 솥 밑에서 밥이든 국이든 나물이든 뭐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걸을 말합니다. 그 역사가 솥 밑에 불을 떼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목적입니다. 사람 구원입니다. 인간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신 것인데 우매자가 노래부르고 웃는 이런 것들이 전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이용이 되는데 다 타고나면 밥은 익어집니다. 국도 끓여집니다. 그에 이용된 나무는 재가 됩니다. 우매자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이루는 재료만되고 남는 게 없다 이겁니다.
어떤 게 올지라도, 좁은 범위로 보면 물은 그릇의 모양을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그릇의 모양이 됩니다. 동그란 곳에 부으면 동그랗게 되고 주전자에 부워서 얼리면 주전자 모양이 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친구 따라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넓게 보면 믿는 사람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게 현실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권력자들이 백성들을 못살게 하는 게 성경 해석으로 말하면 왜 사람이 그렇게 되느냐, 그것이 지도자를 우매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말 안 들으니까 힘으로 눌러버립니다. 독재주의와 민주주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못합니다. 그런데 독재주의는 오래 못하고 민주주의는 오래 갑니다. 믿는 사람이 신앙 걸고 갈 때 그러는 게 탐학입니다. 따지고 따지고 따져서 쉬운 길을 가지 않으면 넓은 길을 가는 겁니다. 강하게 꺾는 걸 탐학이라고 합니다. 자기 속에 탐학을 해야합니다. 내 속에 우매자가 있습니다. 내 속에 뇌물도 있습니다. 내 속에 우매자가 탐학으로 나를 꺾어 누를 수도 있는 겁니다. 내 속에 있는 우매자의 탐학, 옛 사람의 욕심이 꺾어 누르면 탐학이 되는 겁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가르칠 때도 그런 것이고 우선에는 좋은데 진통제같은 거 먹고 신경안정제 자꾸 먹으면 멀리 보면 건강에 안 좋은 겁니다. 의지적으로 가면 자가 면역과 활동이 다 꺾어져서 몸이 아플 때 주사주고 약을 줍니다. 고쳐놓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약을 먹으면 안 아픕니다. 그런데 약을 계속 먹으면 안 먹어도 되는 인체에 스스로 활동이 있는데 꺾어버리는 겁니다.
밥을 해도 그냥 밥이야 먹으면 되는 거지 차이가 있겠습니다. 뭐든지 제대로 하는 사람은 끝이 낫습니다. 그래서 끝이 시작보다 나은 겁니다. 일을 하다가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오만 일이 다 있습니다. 그 일을 하다보면 괴롭고 슬프고 다 됩니다. 그럴 때 참는 마음이 있고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까 어떤 마음입니까. 비교를 해놨습니다. 교만한 마음의 반대는 겸손한 말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마음입니다. 참는 마음이 됩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하지 말아라. 교만한 마음은 급한 마음입니다. 그게 어디서 생겨지냐 보면 자기에서 생겨집니다. 여기서 교만한 마음과 급한 마음이 생겨집니다. 객관을 모르고 저만 알고 그런겁니다. 뭐든지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급하면 뭐가 생깁니까. 사고가 나는 겁니다. 급한 마음에 급하게 운전하면 또 사고 납니다. 2중 3중 사고 나면 급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 맡겨놓고 차근하게 대처해나가는 겁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바라지 말아라. 노는 밑바닥입니다. 바닥을 드러내는 게 노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노를 발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은 부자는 돈 때문에 화를 내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화내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 때인가 전 대통령 때인가 김대중씨인가를 가둬놨다 풀어놨습니다. 그때 풀어주고 나니까 좋게 보는 것 중에 하나가 여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풀어놔도 문제 없다 그 뜻입니다. 급한 것이 왜 생기느냐 교만하니까 하나님을 모르니까, 신앙이라는 말은 어디서 발현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발현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노는 우매자의 품에 노를 품고 있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바라지 마라. 쉽게 화를 내면 우매자구나 틀림이 없습니다. 노를 발하면 우매자구나, 작년이 옛날입니다. 금년의 12월입니다. 옛날이 나은가 오늘이 나은가, 경제적, 인간관계, 현재가 나으면 발전입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더 이상 후회하지 말아야합니다. 점점 더 나은 것이 되지 지난 날이 낫지 않도록 하겠다입니다.
우매자의 노래, 웃음소리 오늘의 제목이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5장, 132장
본문: 전도서 7장 5절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알기 위해서고 아는 것은 아는대로 행하여 살기 위해서입니다. 모르면 행할 수 없고 알아도 행하지 않으면 아는게 교만하게 하고 정죄하는 율법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법이기 때문에 세상 법은 지키는 사람을 보호하기보다도 묘해서 손해보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것이 불완전한 법입니다. 세상 법은 참고만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법은 참고만 하는 것입니다. 지키는 사람은 생명의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는 겁니다. 법이 없으면 처벌이 없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도 법이 없으면 죄가 없고 처벌도 없습니다.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법의 종류는 여러 있어도 법치국가가 되어야하는 겁니다. 문화인이고 그러면 굳이 안하고 간섭법으로 해도 되는데 일반적으로 모두 법을 만들어서 정해놓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고 사람에 의해서 정죄하고 심판하기 때문에 보호를 받고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은 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게 되는 겁니다. 몰라도 문제고 알면서 행하지 않아도 문제가 되는 것이고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보다 큰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아는게 가장 우선입니다. 회개하면 되고 아는 게 우선입니다.
아는 것은 빛이고 모르는 것은 어둠입니다. 빛이란 말은 안다는 뜻이고 아는 것은 빛이란 뜻이고 하나님을 알면 모든 걸 다 알게 되는 겁니다. 말씀을 공부하면서 알아야하고 아는 그대로 기억을 하고 기억력은 참 중요합니다. 암기력와 기억력은 다른 겁니다. 암기력보다 기억력이 더 중요합니다. 암기력과 기억력을 같이 말씀하십니다. 외워라, 기념하라 기억하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을 만날 때 살아가도록 해야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몸이라는 것은 연습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자꾸 보고 듣고 접하면 그쪽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없다고 자주 말씀드립니까. 사람은 별 사람이 없습니다. 대동소이합니다.
칼빈이라는 분은 언어능력이 탁월했다고 하지요. 백목사님은 조금 우월할까 그런데 조금 낫다는 정도지 이 정도면 나도 되겠다 싶은 분이신데 그분은 진실했습니다. 거룩하고 진실하다. 하나 하나를 대충 넘어가지 않고 옳은 것이냐 세밀하게 살펴서 진실을 가졌습니다. 아는데 있는 힘을 가져서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차근 차근 밟아 올라가니까 어느새 그런 분이 되었습니다. 아는대로 기억을 하고 실행을 하면 그만큼 될지는 몰라도 아름답게 되는겁니다. 그리고 성경이라는 것은 모든 걸 기록한게 아니라 함축해서 요약해서 기록한 것이라는 것을 기록해야합니다. 한 문장 속에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가 뜻만이 아닙니다. 역대상의 인물계통 공부할 때 아들은 아들도 되고 손자도 됩니다. 노래도 나오는데 곡을 붙여 노래 부른 게 아닙니다. 기쁘게 즐겁게 하는 것을 노래라고 합니다.
사람이란 첫째 믿는 사람, 택자들, 모든 사람. 그러면 사람이라 그랬으니까 소위말하는 애완동물은 해당이 안되겠지요. 그런 것들은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동물입니다. 성경가지고 믿는 사람처럼 하는 게 맞는 것이지 그걸 안하면 탈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혜자는 몇 가지를 아는 사람입니까. 지혜자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 천하 유명한 석학이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지혜자는 없습니다. 천국을 아는 사람, 필연성으로 이어집니다. 영원을 아는 사람. 네 번째 창조주를 알며 피조물을 아는 사람.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면 모든 존재를 다 아는 겁니다. 위로는 창조주 하나님과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는 사람이 살아갈 때 하늘 보면서 사람과 접하면서 식물을 먹으면서 그러는 게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전부를 앎으로 현실에서 이런 존재가 있고 세계가 있고 미래가 있고 범위가 있어서 어떻게 살아야하냐.
적군은 얼마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전쟁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안되는 겁니다. 아는 게 중요한거지요. 알아야 현재 살아갈 대응책이 나오는 겁니다. 천지차이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우매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천국 모르는 사람이 세상을 바로 살지 못하는 겁니다. 영원이라는 것이 있는데 모르는 사람은 현재를 잘 살 수가 없는 겁니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로 갑니다. 북쪽에 서울은 있습니다. 북쪽인줄 알아야 가지요. 모르면 북쪽으로 가기만 가면 서울은 가까워지는 겁니다. 동쪽으로 가면 경주가고 포항갑니다. 남쪽에 있는가, 배타고 계속 가면 서울과 멀어집니다. 알아야 뭐든지 바로 가는 겁니다. 천국이 있다. 미래가 있다. 창조주 계시고 피조물있다. 주변사람들 있고 사람들이 많다. 많은 게 있다. 정확하게 바르게 되는 겁니다. 아는 사람을 가르켜 지혜자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지혜자다 이 말입니다.
책망을 듣는 것이 좋은 겁니다. 지혜자의 책망과 우매자의 노래를 비교해놨습니다. 둘 다 듣는데 사람에 따라 어떤 것을 듣는 게 좋으냐 이 말이지요. 물건을 보니까 뭐가 생깁니까. 마음에 생깁니다. 마음에 뭔가 생깁니다. 견물생심, 뭔가 보니까 마음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지혜자를 듣는 겁니다. 귀로 들으면 마음에 안 생깁니까. 귀로 들으면 아무 마음이 안 생기는가요. 아파트 층간소음이 심각합니다. 그거는 보는겁니까 드는 겁니까. 안 보이는데 들려서 괴롭습니다. 몇 달간 그래서 감옥갈뻔해서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집요하게 따라다니면서 괴롭히는 걸 스토킹이라 그러는데 법적 용어로 뭐라하는 게 있던데 이렇게 처벌을 받았습니다.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듣는 것도 마음이 생깁니다.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에 말씀을 가르쳐서 들어라 들어라. 말씀을 듣도록 해야합니다. 아무리 막혀도 생각이 있습니다. 이 세상 유행가라든지 노래 가락 들어서 없는 겁니다.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낫습니다. 우매자는 모른다는 뜻입니다. 모르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모르면 가만히 있어야합니다. 빌붙어 찾아야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면 연구를 해야합니다. 길을 가야하는 줄 알고 뭔가 해야하는 줄 아는데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아는 게 우선입니다.
우매자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왜 모릅니까. 하나님을 모르니까. 하나님 모르고 천국 모르고 그러는 사람은 뭐하는 사람입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 주관대로만 사는 사람. 우매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국회의원들 보면 압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우매자 밖에 없습니다. 우매자는 그런 겁니다. 노래라는 것은 우매자의 노래입니다. 지혜자의 책망과 비교해놨습니다. 지혜자가 누군지를 아는 것이고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고 우매자도 자기 나름대로 다른 사람에게 그 사람을 좋게하는 거니까 노래인데 사람의 귀에 듣기 좋은 말, 사람이 좋아하는 말, 그런 말을 하고 칭찬을 하고 그런 것을 보고 우매자의 노래라고 합니다. 그게 우매자의 노래입니다. 여기서 오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지혜자와 우매자는 외부로 드러나는 나보다 저 지혜있는 사람이 책망을 듣고 우매자가 나에게 노래를 할 때 판단하는 건데 깊이 들어가면 내 안에 있는 걸 찾아야합니다. 한 사람 안에 여러 인격이 있는데 그래서 여러 이름을 나오는 겁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 마음이 다르고 친정집 시댁갈 때 다릅니다. 내 속에 둘이있다. 나같은데 내가 아니다. 로마서 7장에 세밀하게 기록해놨습니다. 내 안에 지혜자, 우매자 다 있습니다. 둘다 찾아봐야합니다. 내 안에 있는 지혜자는 참사람이고 중생된 영에 붙들린 사람이 우매자고 말씀에 붙들린 게 지혜자고 옛사람이 우매자고 충돌이 됩니다. 내 안에 있는 지혜자의 책망을 드는 것이고 우매자 옛사람에 들어서 점점 살아나가면 우매자가 되는 겁니다.
우매자의 웃음소리는 노래랑 같은 겁니다. 자기가 좋아서 웃고 떠듭니다. 상대방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듣기 좋은 말을 해줍니다. 앞에 우매자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나를 사람들에게 좋은 말하고 칭찬하고 어떤 사람이냐가 중요한 거지요. 지금아나 예나 열을 가해야 음식이 익습니다. 성경에 음식은 해석을 해보는 겁니다. 우매자의 웃음소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다섯가지를 모르는 사람이 나라고 노래부르고 솥 밑에서 밥이든 국이든 나물이든 뭐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걸을 말합니다. 그 역사가 솥 밑에 불을 떼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이 뭐냐,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목적입니다. 사람 구원입니다. 인간 구원을 위해서 역사하신 것인데 우매자가 노래부르고 웃는 이런 것들이 전부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이용이 되는데 다 타고나면 밥은 익어집니다. 국도 끓여집니다. 그에 이용된 나무는 재가 됩니다. 우매자의 모든 것은 하나님을 이루는 재료만되고 남는 게 없다 이겁니다.
어떤 게 올지라도, 좁은 범위로 보면 물은 그릇의 모양을 따라간다는 말입니다. 물이라는 것은 그릇의 모양이 됩니다. 동그란 곳에 부으면 동그랗게 되고 주전자에 부워서 얼리면 주전자 모양이 됩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친구 따라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넓게 보면 믿는 사람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게 현실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권력자들이 백성들을 못살게 하는 게 성경 해석으로 말하면 왜 사람이 그렇게 되느냐, 그것이 지도자를 우매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말 안 들으니까 힘으로 눌러버립니다. 독재주의와 민주주의 차이가 그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못합니다. 그런데 독재주의는 오래 못하고 민주주의는 오래 갑니다. 믿는 사람이 신앙 걸고 갈 때 그러는 게 탐학입니다. 따지고 따지고 따져서 쉬운 길을 가지 않으면 넓은 길을 가는 겁니다. 강하게 꺾는 걸 탐학이라고 합니다. 자기 속에 탐학을 해야합니다. 내 속에 우매자가 있습니다. 내 속에 뇌물도 있습니다. 내 속에 우매자가 탐학으로 나를 꺾어 누를 수도 있는 겁니다. 내 속에 있는 우매자의 탐학, 옛 사람의 욕심이 꺾어 누르면 탐학이 되는 겁니다. 부모님이 자녀를 가르칠 때도 그런 것이고 우선에는 좋은데 진통제같은 거 먹고 신경안정제 자꾸 먹으면 멀리 보면 건강에 안 좋은 겁니다. 의지적으로 가면 자가 면역과 활동이 다 꺾어져서 몸이 아플 때 주사주고 약을 줍니다. 고쳐놓는 겁니다. 그런데 그 약을 먹으면 안 아픕니다. 그런데 약을 계속 먹으면 안 먹어도 되는 인체에 스스로 활동이 있는데 꺾어버리는 겁니다.
밥을 해도 그냥 밥이야 먹으면 되는 거지 차이가 있겠습니다. 뭐든지 제대로 하는 사람은 끝이 낫습니다. 그래서 끝이 시작보다 나은 겁니다. 일을 하다가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오만 일이 다 있습니다. 그 일을 하다보면 괴롭고 슬프고 다 됩니다. 그럴 때 참는 마음이 있고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까 어떤 마음입니까. 비교를 해놨습니다. 교만한 마음의 반대는 겸손한 말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마음입니다. 참는 마음이 됩니다. 참을 수 있습니다.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하지 말아라. 교만한 마음은 급한 마음입니다. 그게 어디서 생겨지냐 보면 자기에서 생겨집니다. 여기서 교만한 마음과 급한 마음이 생겨집니다. 객관을 모르고 저만 알고 그런겁니다. 뭐든지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급하면 뭐가 생깁니까. 사고가 나는 겁니다. 급한 마음에 급하게 운전하면 또 사고 납니다. 2중 3중 사고 나면 급해서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께 맡겨놓고 차근하게 대처해나가는 겁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바라지 말아라. 노는 밑바닥입니다. 바닥을 드러내는 게 노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노를 발하지 않습니다.
돈이 많은 부자는 돈 때문에 화를 내지 않습니다.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은 화내지 않고 폭력을 쓰지 않습니다. 박 대통령 때인가 전 대통령 때인가 김대중씨인가를 가둬놨다 풀어놨습니다. 그때 풀어주고 나니까 좋게 보는 것 중에 하나가 여유가 있다는 뜻입니다. 풀어놔도 문제 없다 그 뜻입니다. 급한 것이 왜 생기느냐 교만하니까 하나님을 모르니까, 신앙이라는 말은 어디서 발현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발현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겁니다. 노는 우매자의 품에 노를 품고 있습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바라지 마라. 쉽게 화를 내면 우매자구나 틀림이 없습니다. 노를 발하면 우매자구나, 작년이 옛날입니다. 금년의 12월입니다. 옛날이 나은가 오늘이 나은가, 경제적, 인간관계, 현재가 나으면 발전입니다. 현재를 기점으로 더 이상 후회하지 말아야합니다. 점점 더 나은 것이 되지 지난 날이 낫지 않도록 하겠다입니다.
우매자의 노래, 웃음소리 오늘의 제목이 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