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5일 금밤
김동민2023-12-15조회 275추천 33
2023년 12월 15일 금밤
찬송: 137장, 168장
본문: 전도서 7장
공과입니다. 제목이 지혜자와 우매자고 소제목이 아름다운 이름인데 다음이 성탄이고 성탄 공과가 되는 거 같고 성찬 공과가 될 거 같고 그 이후로도 전도서 7장은 계속 공부할 예정이라고 1번이 붙었습니다. 큰 제목이 지혜자와 우매자입니다. 크게 말하면 네 가지로 둘씩 비교해서 낫다고 합니다. 첫째, 무엇보다 무엇이 낫습니까.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것보다 낫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이 낫고, 슬픔이 웃음보다 낫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틀리고 안 맞습니다. 어떻게 아름다운 이름보다 보배로운 기름이라는 말은 금, 은, 다이아몬드, 현금 말하자면 부동산 재산, 건강한 몸입니다. 이런 걸 보배로운 기름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어떻게 이름보다 나을까. 이건 멀리볼 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결말까지 계산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현재만 보지않고 마지막까지 계산할 때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이름보다 낫다고 합니다. 억만금을 가져도 돈을 남기면 자식들끼리 싸워서 원수가 됩니다. 부모님이 인생을 잘 살아서 이름을 남기면 자손들에게 대대로 내려갑니다. 그 이름이 훌륭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상하게 탄핵돼서 실패한 대통령이지만 아버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그렇게 된 것도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 이름은 부모님 이름에게 많은 걸 남깁니다. 세상도 돈을 남기는 것은 자식들을 망칩니다. 이름을 남기면 큰 덕을 끼칩니다. 여러면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세종대왕의 후손, 이순신 장군의 직계들,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단편적으로 건실하게 보면 보배로운 기름이 나은데 벌리보고 결과까지 보면 아름다운 이름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지요. 성경이 말씀하신 건 옳다고 하고 믿고 결과를 지켜보면 그렇게 됩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옳은 것은 한 말이 반드시 서게 되고 감성적이고 말을 잘해도 진리가 틀린 것은 다 틀리게 되어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을까. 살아있는 사람을 보면 살날이 창창하고 죽는 날은 끝난건데, 살아갈 날이 많은건데 죽는 날이 뭐가 좋을까.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그 과정이 어마어마한 고생길입니다. 얼렁뚱땅 대충 대충 시집 장가가고 사고 팔고 이 세상 낙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는 날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하면 백층빌딩을 짓는데 설계하는 설계사가 짓는 이게 100층 즈음 되면 어마어마한 정밀한 기술들이 들어가야합니다. 그리고 1년에 걸쳐서 설계도를 다 끝냈습니다. 백지상태하고 다 끝내는 날하고 어느 날이 더 좋습니까. 설계도 하는 날이 좋습니까. 완성하는 날이 좋습니까. 완성하는 날이 비교 못할만큼 좋겠지요. 짓는 날입니다. 이게 제대로 올라갈 수 있을지 사고는 안 날지. 몇 년 걸립니다. 출발하는 그 날하고 완벽하고 롯데월드입니까. 다 지었습니다. 중공식으로 합니다. 그 건물주나 건축주나 어느 날이 좋겠습니까. 출발이 시작하는 그 날이 좋겠습니까. 완공되는 날이 좋겠습니까. 완공된 날이 죽는 날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날은 출생된 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과를 보면 나오는겁니다. 초상집은요 한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정리해서 보내는 날입니다. 송별식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앞서간 보내는 그분의 생애를 여러 면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잘 사는 사람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생애를 생각합니다. 초상집에도 옛날에 가면 술판이 벌어집니다. 결혼식도 초상집도 그렇고. 초상집은 고맙다고 음식 내놓고 그럽니다. 옛날에는요. 막 가는 사람들은 그런데 조금 생각있고 인생 아는 사람은 조심스럽고 경건하고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데 칼라풀한 울긋불긋한 옷 입고 가는 사람 있습니까. 하얀 옷 아니면 빨간 옷 입고 갔습니다. 결혼식장도 조심해야하고 옷차림부터 조심해야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환경에 따라 피동되는 것이고 사람이 마음이 정리 정돈 되고 차분하게 되어집니다. 밝아지고 맑아집니다. 잔치집에 가면 부어라 마셔라 그럽니다. 잔치집이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싶다. 잔치하는 집에 가서 혼자 앉아서 운다든지 명상을 하면 실례입니다. 명상을 하든지 슬프면 혼자 있어야지 즐겁게 잔치하는 그 집에 혼자 고요하게 가서 그러면 분위기 망쳐버립니다. 분위기 전체가 그러기 때문에 차분할 수가 없는 겁니다. 전체가 그러기 때문에. 잔치집에 가는 것이 나쁜 게 아니고 갈 때는 가야지요. 그런데 멀리 계산하고 인생을 계산하면 초상집이 낫다는 거지요.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지 못쓴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출생하면 안된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지 않음으로 그렇습니다.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슬프고 괴로우면 얼굴이 웃음이 잘 안 나옵니다. 기쁜 일 생기면 저절로 웃어집니다. 슬픈 집에 가서 좋은 일이 가서 뭘 해야합니까. 시험에 떨어진 사람하고 합격한 사람은 뭐해야합니까. 시험에 떨어진 사람에 대해서 표정 관리를 해야합니다. 표정관리 해야하는 겁니다. 경우입니다. 경우의 합당한 말은 그걸 말하는 겁니다. 수능 시험에 실패해서 낙심됐는데 점수좋다고 자랑을 하고 그런 것은 경우가 아닌 것입니다. 얼굴의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된다. 마음에 근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웃는 거 보다 마음이 낫습니다. 웃음도 슬픔도 또 기쁨도 근심도 항상 둘입니다.
하나님 뜻때로 하는 근심은 구원을 이루는 근심입니다. 근심도 많은 종류가 있는 중에서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그 근심은 좋은 겁니다. 사람이 마음 속에 근심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근심이 생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욕심 때문에 생긴 겁니다. 욕심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욕심 없는 사람은 근심도 없습니다. 욕심도 없는 근심은 좋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뼈와 살은 안 주시는가. 그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되는 근심은 고통스럽지 않아야합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모든 일을 두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다 그 말은 자기 원하는대로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욕심이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답을 정해놓고 이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되기를 원하는데 그래서 주님도 기도하셨죠.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다윗이 회개할 때 일주일을 밤낮으로 굶고 울기만 울었습니다. 마음이 좋겠습니까. 회개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기도대로 됐습니까. 안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데려가버렸습니다. 끝나고 나니까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슬퍼서 기절해서 죽었습니까 아니면 일어나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음식차리고 맛있게 먹고 마셨습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게 기도도하고 노력도 하지만 마지막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게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대로 맡긴다는 사람은 게으르고, 충성하는 사람은 맡기는 게 부족하고 문제는 문제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고 마음에 근심함으로 욕심에서 나오는 근심은 손해입니다. 근심이라는 것은 마음을 상하게 하고 굉장히 안 좋은 겁니다. 그래서 근심 걱정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결과는 내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맡겨두는 겁니다. 그래서 선을 계산할 때 어디까지 충성이고 맡겨야하는가 세밀하게 따져야하는 거지요. 뭘 할 수 있느냐, 따져보고 생각해서 봐야합니다. 내 범위로써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게 충성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두는 겁니다. 이게 되지 못하면 고통스럽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에 근심이 있습니다.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고 계산하게 만들고 정리 정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은 겁니다. 네 가지 비교했습니다. 어떤 각도에서 나왔냐면 원시적으로, 멀리 볼 때 지혜자의 각도에서 볼 때 낫다는 겁니다. 현재만 보면 반대가 되어집니다. 우매자의 눈에는 아름다운 이름보다 보배로운 기름이 더 낫습니다. 태어난 날이 낫고 잔치집이 낫습니다. 우매자는 웃음이 근심보다 낫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나 우매자나 현재 닥치는 아름다운 보배로운 기름, 물질, 우선순위 물질, 이걸 멀리 계산하면 더 낫게 계산하면 보니까 내 마음이 초상집을 싫어하고 잔치집을 좋아하는 거 보니 우매자구나. 인생을 보고 우습게 여기는 거 보니 우매자구나. 다시 돌아갑니다. 아름다운 이름이란 이력입니다. 아름다운 생애입니다. 아름다운 흔적입니다. 발자취입니다. 아름답게 걸어가야 남습니다. 비가 많이 왔고 강원도 쪽에 눈이 많을겁니다. 거기 아름답게 걸어가면 아름다운 발자국이 납고 엉망으로 걸으면 엉망이 됩니다. 그 마음 속에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처럼 되어집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그런 것을 말합니다. 흔적입니다. 이력입니다. 발 자취입니다. 이런 걸 이력이라고 합니다. 아름답다는 기준은 객관입니다. 자기가 볼 때 아름다운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안에 볼 때 아름다운 것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여인의 아름다움을 다른 남자가 볼 때 아름다우면 죄가 됩니다. 내 남편이 뭘 좋아하냐, 지혜있는 아내들은 어떤 여인상을 좋아하느냐 보고 그렇게 만듭니다. 남편 퇴근할 시간 즈음 되면 화장을 해서 입고 그래서 남편 회사 앞에 간답니다. 그래서 남편 회사 끝나면 팔짱끼고 들어온답니다. 참 고맙습니다. 참 지혜있는 여인입니다. 남편은 아내 눈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남의 눈에 소용 없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사장님 눈에 아름다워야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아름다워야한다는 겁니까. 하나님 보실 때 아름다워야합니다. 그리하면 중심이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기준이 잣대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소망이 하늘을 향하고 자타 구원을 위해서 희생하는 겁니다. 이름이 아름답게 되어집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다 그랬습니다. 이름으로 우리를 만들어야하는데 세월이 들어가야합니다. 발자취, 인생이고 생애기 때문에 아름다운 이름은 만들지 않습니다. 한 두달 만에 그 이름 만들지 않습니다. 3개월 살아서 아름답게 남지는 못합니다. 3년 정도 하면 아름답게 남을 겁니다. 귀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죽는 날은 모든 고생 다 끝나는 날입니다. 설계도 다 그렸고 집 다 지었고 이 세상은 고난의 바다입니다. 살기 쉬운 세상이 납니다.
그렇게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출생이 힘든 것이고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훨씬 나은 겁니다. 그리고 그 끝나고 하늘나라 가는 날입니다. 이런 공과를 가르칠 때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예수믿어야 천국갑니다.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 하면 사이비로 취급해버린답니다.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돌려서 가르치면 됩니다. 말 조심 합시다. 자기 학교 생활 잘 합시다. 도덕을 가르쳐놓고 왜 가르쳐야할지, 지금 지진이 나서 다 도덕이 깨져버렸습니다. 이 세상에 말하면 땅이 무너졌습니다. 요즘은 도덕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하는 거지요. 아름다운 이름과 보배로운 이름이 있는데 조심스럽게 가르치면 나을 겁니다. 부모님을 들을 때 그렇겠다. 인정이 되면 성공이 되는 겁니다.
공과를 돌아보면서 잘 돌아보도록 하십시다.
찬송: 137장, 168장
본문: 전도서 7장
공과입니다. 제목이 지혜자와 우매자고 소제목이 아름다운 이름인데 다음이 성탄이고 성탄 공과가 되는 거 같고 성찬 공과가 될 거 같고 그 이후로도 전도서 7장은 계속 공부할 예정이라고 1번이 붙었습니다. 큰 제목이 지혜자와 우매자입니다. 크게 말하면 네 가지로 둘씩 비교해서 낫다고 합니다. 첫째, 무엇보다 무엇이 낫습니까.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것보다 낫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이 낫고, 슬픔이 웃음보다 낫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보면 틀리고 안 맞습니다. 어떻게 아름다운 이름보다 보배로운 기름이라는 말은 금, 은, 다이아몬드, 현금 말하자면 부동산 재산, 건강한 몸입니다. 이런 걸 보배로운 기름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어떻게 이름보다 나을까. 이건 멀리볼 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결말까지 계산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현재만 보지않고 마지막까지 계산할 때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이름보다 낫다고 합니다. 억만금을 가져도 돈을 남기면 자식들끼리 싸워서 원수가 됩니다. 부모님이 인생을 잘 살아서 이름을 남기면 자손들에게 대대로 내려갑니다. 그 이름이 훌륭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상하게 탄핵돼서 실패한 대통령이지만 아버지 때문에 그렇습니다. 솔로몬이 그렇게 된 것도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 이름은 부모님 이름에게 많은 걸 남깁니다. 세상도 돈을 남기는 것은 자식들을 망칩니다. 이름을 남기면 큰 덕을 끼칩니다. 여러면으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세종대왕의 후손, 이순신 장군의 직계들,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단편적으로 건실하게 보면 보배로운 기름이 나은데 벌리보고 결과까지 보면 아름다운 이름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지요. 성경이 말씀하신 건 옳다고 하고 믿고 결과를 지켜보면 그렇게 됩니다.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옳은 것은 한 말이 반드시 서게 되고 감성적이고 말을 잘해도 진리가 틀린 것은 다 틀리게 되어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을까. 살아있는 사람을 보면 살날이 창창하고 죽는 날은 끝난건데, 살아갈 날이 많은건데 죽는 날이 뭐가 좋을까.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그 과정이 어마어마한 고생길입니다. 얼렁뚱땅 대충 대충 시집 장가가고 사고 팔고 이 세상 낙으로 사는 사람들은 사는 날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사람답게 살아가려고 하면 백층빌딩을 짓는데 설계하는 설계사가 짓는 이게 100층 즈음 되면 어마어마한 정밀한 기술들이 들어가야합니다. 그리고 1년에 걸쳐서 설계도를 다 끝냈습니다. 백지상태하고 다 끝내는 날하고 어느 날이 더 좋습니까. 설계도 하는 날이 좋습니까. 완성하는 날이 좋습니까. 완성하는 날이 비교 못할만큼 좋겠지요. 짓는 날입니다. 이게 제대로 올라갈 수 있을지 사고는 안 날지. 몇 년 걸립니다. 출발하는 그 날하고 완벽하고 롯데월드입니까. 다 지었습니다. 중공식으로 합니다. 그 건물주나 건축주나 어느 날이 좋겠습니까. 출발이 시작하는 그 날이 좋겠습니까. 완공되는 날이 좋겠습니까. 완공된 날이 죽는 날입니다. 이제 시작하는 날은 출생된 날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결과를 보면 나오는겁니다. 초상집은요 한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정리해서 보내는 날입니다. 송별식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앞서간 보내는 그분의 생애를 여러 면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잘 사는 사람은 존경하는 마음으로. 생애를 생각합니다. 초상집에도 옛날에 가면 술판이 벌어집니다. 결혼식도 초상집도 그렇고. 초상집은 고맙다고 음식 내놓고 그럽니다. 옛날에는요. 막 가는 사람들은 그런데 조금 생각있고 인생 아는 사람은 조심스럽고 경건하고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데 칼라풀한 울긋불긋한 옷 입고 가는 사람 있습니까. 하얀 옷 아니면 빨간 옷 입고 갔습니다. 결혼식장도 조심해야하고 옷차림부터 조심해야합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환경에 따라 피동되는 것이고 사람이 마음이 정리 정돈 되고 차분하게 되어집니다. 밝아지고 맑아집니다. 잔치집에 가면 부어라 마셔라 그럽니다. 잔치집이라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싶다. 잔치하는 집에 가서 혼자 앉아서 운다든지 명상을 하면 실례입니다. 명상을 하든지 슬프면 혼자 있어야지 즐겁게 잔치하는 그 집에 혼자 고요하게 가서 그러면 분위기 망쳐버립니다. 분위기 전체가 그러기 때문에 차분할 수가 없는 겁니다. 전체가 그러기 때문에. 잔치집에 가는 것이 나쁜 게 아니고 갈 때는 가야지요. 그런데 멀리 계산하고 인생을 계산하면 초상집이 낫다는 거지요.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지 못쓴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출생하면 안된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의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지 않음으로 그렇습니다.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슬프고 괴로우면 얼굴이 웃음이 잘 안 나옵니다. 기쁜 일 생기면 저절로 웃어집니다. 슬픈 집에 가서 좋은 일이 가서 뭘 해야합니까. 시험에 떨어진 사람하고 합격한 사람은 뭐해야합니까. 시험에 떨어진 사람에 대해서 표정 관리를 해야합니다. 표정관리 해야하는 겁니다. 경우입니다. 경우의 합당한 말은 그걸 말하는 겁니다. 수능 시험에 실패해서 낙심됐는데 점수좋다고 자랑을 하고 그런 것은 경우가 아닌 것입니다. 얼굴의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된다. 마음에 근심이 있다는 뜻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웃는 거 보다 마음이 낫습니다. 웃음도 슬픔도 또 기쁨도 근심도 항상 둘입니다.
하나님 뜻때로 하는 근심은 구원을 이루는 근심입니다. 근심도 많은 종류가 있는 중에서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 그 근심은 좋은 겁니다. 사람이 마음 속에 근심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다른 근심이 생긴 이유가 무엇입니까. 욕심 때문에 생긴 겁니다. 욕심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욕심 없는 사람은 근심도 없습니다. 욕심도 없는 근심은 좋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뼈와 살은 안 주시는가. 그건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되는 근심은 고통스럽지 않아야합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모든 일을 두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자기가 하나님이 된다 그 말은 자기 원하는대로 해야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욕심이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답을 정해놓고 이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되기를 원하는데 그래서 주님도 기도하셨죠.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다윗이 회개할 때 일주일을 밤낮으로 굶고 울기만 울었습니다. 마음이 좋겠습니까. 회개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기도대로 됐습니까. 안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데려가버렸습니다. 끝나고 나니까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슬퍼서 기절해서 죽었습니까 아니면 일어나서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음식차리고 맛있게 먹고 마셨습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게 기도도하고 노력도 하지만 마지막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게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뜻대로 맡긴다는 사람은 게으르고, 충성하는 사람은 맡기는 게 부족하고 문제는 문제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고 마음에 근심함으로 욕심에서 나오는 근심은 손해입니다. 근심이라는 것은 마음을 상하게 하고 굉장히 안 좋은 겁니다. 그래서 근심 걱정은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결과는 내 주여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나님께 맡겨두는 겁니다. 그래서 선을 계산할 때 어디까지 충성이고 맡겨야하는가 세밀하게 따져야하는 거지요. 뭘 할 수 있느냐, 따져보고 생각해서 봐야합니다. 내 범위로써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게 충성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겨두는 겁니다. 이게 되지 못하면 고통스럽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에 근심이 있습니다.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고 계산하게 만들고 정리 정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나은 겁니다. 네 가지 비교했습니다. 어떤 각도에서 나왔냐면 원시적으로, 멀리 볼 때 지혜자의 각도에서 볼 때 낫다는 겁니다. 현재만 보면 반대가 되어집니다. 우매자의 눈에는 아름다운 이름보다 보배로운 기름이 더 낫습니다. 태어난 날이 낫고 잔치집이 낫습니다. 우매자는 웃음이 근심보다 낫습니다. 그래서 지혜자나 우매자나 현재 닥치는 아름다운 보배로운 기름, 물질, 우선순위 물질, 이걸 멀리 계산하면 더 낫게 계산하면 보니까 내 마음이 초상집을 싫어하고 잔치집을 좋아하는 거 보니 우매자구나. 인생을 보고 우습게 여기는 거 보니 우매자구나. 다시 돌아갑니다. 아름다운 이름이란 이력입니다. 아름다운 생애입니다. 아름다운 흔적입니다. 발자취입니다. 아름답게 걸어가야 남습니다. 비가 많이 왔고 강원도 쪽에 눈이 많을겁니다. 거기 아름답게 걸어가면 아름다운 발자국이 납고 엉망으로 걸으면 엉망이 됩니다. 그 마음 속에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처럼 되어집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그런 것을 말합니다. 흔적입니다. 이력입니다. 발 자취입니다. 이런 걸 이력이라고 합니다. 아름답다는 기준은 객관입니다. 자기가 볼 때 아름다운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안에 볼 때 아름다운 것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여인의 아름다움을 다른 남자가 볼 때 아름다우면 죄가 됩니다. 내 남편이 뭘 좋아하냐, 지혜있는 아내들은 어떤 여인상을 좋아하느냐 보고 그렇게 만듭니다. 남편 퇴근할 시간 즈음 되면 화장을 해서 입고 그래서 남편 회사 앞에 간답니다. 그래서 남편 회사 끝나면 팔짱끼고 들어온답니다. 참 고맙습니다. 참 지혜있는 여인입니다. 남편은 아내 눈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남의 눈에 소용 없는 것입니다. 직원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사장님 눈에 아름다워야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아름다워야한다는 겁니까. 하나님 보실 때 아름다워야합니다. 그리하면 중심이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합니다. 기준이 잣대가 하나님을 중심하고 소망이 하늘을 향하고 자타 구원을 위해서 희생하는 겁니다. 이름이 아름답게 되어집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다 그랬습니다. 이름으로 우리를 만들어야하는데 세월이 들어가야합니다. 발자취, 인생이고 생애기 때문에 아름다운 이름은 만들지 않습니다. 한 두달 만에 그 이름 만들지 않습니다. 3개월 살아서 아름답게 남지는 못합니다. 3년 정도 하면 아름답게 남을 겁니다. 귀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죽는 날은 모든 고생 다 끝나는 날입니다. 설계도 다 그렸고 집 다 지었고 이 세상은 고난의 바다입니다. 살기 쉬운 세상이 납니다.
그렇게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출생이 힘든 것이고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훨씬 나은 겁니다. 그리고 그 끝나고 하늘나라 가는 날입니다. 이런 공과를 가르칠 때 시대가 그런 시대입니다. 예수믿어야 천국갑니다. 안 믿으면 지옥갑니다. 하면 사이비로 취급해버린답니다.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돌려서 가르치면 됩니다. 말 조심 합시다. 자기 학교 생활 잘 합시다. 도덕을 가르쳐놓고 왜 가르쳐야할지, 지금 지진이 나서 다 도덕이 깨져버렸습니다. 이 세상에 말하면 땅이 무너졌습니다. 요즘은 도덕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하는 거지요. 아름다운 이름과 보배로운 이름이 있는데 조심스럽게 가르치면 나을 겁니다. 부모님을 들을 때 그렇겠다. 인정이 되면 성공이 되는 겁니다.
공과를 돌아보면서 잘 돌아보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