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10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3-12-10조회 353추천 41
2023년 12월 10일 주일 오전
찬송: 82장, 145장
본문: 전도서 7장 1절 ~ 4절
지난 주 말씀을 잠깐 복습을 해봅니다. 우리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 구주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되는 게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제자라고 해놨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을 수도 있고 제자가 스승을 닮을 수도 있는 건데, 배워서 스승처럼 되는 게 제자입니다. 주님의 가신 걸음을 간다는 그 말은 사신 생애를 그처럼 살면 된다는 겁니다. 주님처럼 살아가면 주님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고 주님같은 사람이 되어지는 겁니다. 주님같은 생애 거기에는 많은 것이 있는데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고 우리를 구원하게 해주셔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지극히 낮아지신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 되신 주님이 사람되어 이땅에 오셨습니다. 낮아지심은 성자 하나님의 자원의 역사입니다. 원하고 원하는 성부 하나님 아버지 뜻을 위해서 원하고 원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주님입니다. 그 사람되어 오신 주님에게 성부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신겁니다. 이사야 3장 56절에 보니까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성부 하나님이 못합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이 원하셔서 성부 하나님이 다 담당시킨겁니다. 그 사명은 우리의 대속입니다.
그 주님의 그리하신 것처럼 주님을 따라서 주와같은 대속의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입니다. 그 사명은 우리의 대속입니다. 우리 죄 되시는 대속입니다. 주님이 그리하신 거처럼 그 주님을 따라서 우리도 주와같은 대속의 생애를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사명입니다. 이 세상을 지으실 때 많은 존재를 지으셨죠 만물이라 그럽니다. 만물은 형체를 가진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모든 존재를 지으실 때는 어떤 존재도 그냥 보내지 아니하고 역할을 시켜서 보냈습니다. 먼지하나까지도 세균하나까지도 생각없이 그냥 살지만 잘 살펴보면 모든 만물 전부는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게 사람이든 짐승이든 식물이든 무생물이든 어떤 것이든 그 존재가 존재하게 되는 데에는 사명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가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들여다 보면 자기가 존재함으로 활동함으로 자기와 함께 타에게 유익이 되는 사명입니다. 그 존재가 있음으로 그 존재가 활동함으로 타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존재의 사명입니다. 여기에 어긋나게 되면 모든 만물과 대적이 되고 원수가 되어집니다. 모래알이 있음으로 다른 것에게 유익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있음으로 다른 존재에게 패가 되고 해가 되고 모든 존재가 다 싫어합니다.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지난 오일밤 예배일 때 천지창소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빛은 첫째에 지었습니다. 첫째날 지은 빛은 개념입니다. 무형의 존재입니다. 무형인데 있는 겁니다. 이것조차도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겁니다. 둘째 날은 귀찮기 때문에 지을 수 있습니다. 첫째날 지은 빛은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지으셨고 둘째날부터 짓는 것이 만물을 물질계 존재를 지을 수 있는 것을 해놓고 공간이 없는 물질계는 없는겁니다. 전부 하나 다 지음받았는데 공간부터 땅도 바다도 생물도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할 일입니다. 그게 바로 그 존재가 있음으로 타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이 되게 하는 겁니다. 세상에서 살펴보고 상호협조 상호보완이라고 말을 쓰고 공생 공존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게 물질계 우주고 최종이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에 나타낸 것이 사람의 몸입니다. 저만 생각하면 쓸모가 없어집니다. 온 몸은 지체를 보호하고 도와주면서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이런 곳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 그랬습니다. 사람의 몸과 원리가 같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유기체적인 곳입니다. 생명이 활동하는 곳이 교회다. 이게 전부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400조개의 생명이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세포 하나하나 난다고 하고 죽는다 그렇지 없어진다고 하지않습니다. 교회란 것은 모든 생명체가 한 몸을 이루는 겁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교회를 온전히 만들어가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모든 만물에게 다 사명을 보내셔서 주셨고 타락하지 아니한 만물은 다 잘 담당하고 있고 벗어나서 제가 하나님이 되려하는 그 타락한 천사는 쫓겨나서 마귀가 됐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악이란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가 왕이 되고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게 악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옥의 모습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이건 정치체제가 상관이 없고 사상이 상관없고 경제가 상관없습니다. 인간이 인간 욕심으로 만든 것은 나중에 지옥으로 타락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 대속을 의지해서 말씀으로 하늘을 소망하며 이 세상에 있어도 천국의 모습이 되게 되는 겁니다. 교회가 교회 다우면 천국의 모형이 되는 것이고 가정이 가정다우면 천국의 모형이 되는 것이고 믿는 사람이 바로 믿으면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거고 천국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내가 있음으로 내 주변 사람들의 신앙의 도움이 되고 유익을 주지 못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합니다. 만물도 싫어하고 도태되고 맙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면 유익이 되면 좋아하겠지요. 그게 사람의 영광입니다. 오늘 말씀도 연결된게 있을 수 있는데 본문 보시겠습니다. 이번 성탄에 주일학생들이 외울건데 저도 다 외웠습니다. 이걸 교독하면 소리가 커집니다. 어른들도 연세 많으신 분들도 외우면 치매예방되고 머리가 좋아집니다. 하면 되는 겁니다. 하면 된다는 말이 있지요. 성경을 외우면 무조건 좋습니다. 자꾸 외워보십시오. 1절부터 4절까지 봉독했는데 비교해서 더 낫다는 걸 말씀을 합니다. 네 가지를 비교해서 더 낫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세 번째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네 가지를 비교하면서 낫다고 합니다. 일반 세상 상식으로 해석하고 이야기하면 안 맞습니다. 성경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각도로 봐야 맞습니다. 하나님으 lrkreh로 구원 각도로 이 말씀은 해석이 되고 맞습니다. 첫 번째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두 번째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세 번째,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이해가 잘 안되지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관점으로 이해가 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뭔가 아름다운 이름과 보배로운 기름 많이 배워서 알겠지요. 아름다운 생애라 그 뜻입니다. 아름다운 이력이라 그 말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흔적이라 그 말입니다. 걸어가는 인생의 그 뜻입니다. 하얗게 눈이 왔습니다. 아주 아이들이 보기 좋게 아장아장 걸으면 예쁘게 날겁니다. 그런데 짐승이 뛰어다니면 흔적이 망쳐놓을 겁니다. 그게 흔적입니다. 무조건 사람이 살아간다고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살고 어떤 사람은 추하게 삽니다.
고슴도치 엄마에게 가장 예쁜 존재는 누굴까요. 고슴도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누굽니까. 고슴도치 새끼입니다. 독사가 가장 아름답게 보는 것은 독사 새끼입니다. 무슨 사자가 사자 눈에 가장 아름다운 짐승은 사자 새끼입니다. 엄마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기 아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우리가 독사를 보면 끔찍합니다. 고슴도치도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고슴도치 저는 제 새끼가 가장 예쁩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소용이 없는겁니다. 누가 볼 때 아름다워야합니까. 나를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아름다워야합니다. 내 인생의 흔적이 다른 사람에게 내 이력을 볼 때 아름답게 살았다 귀하게 살았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평가하면 그런 것이고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습니다. 최종 평가는 하나님이 아름답다 해야 아름다운 겁니다. 아벨의 생애는 아름다운 생애였습니다. 가인의 생애는 나쁜 생애였습니다. 추한 생애입니다. 에녹은 아름다운 생애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에 두실 필요가 없어서 365세에 데려가버렸습니다. 성경에 그런 아름다운 이름이 많습니다. 이게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이 아름다운 이름은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저만 좋게하고 기쁘게 하고 저를 만족 시키고 높이는 이건 다 싫어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될 수 없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와 나사로가 나옵니다. 부자는 호화롭게 잔치하며 살았습니다. 그게 해석을 해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 베푼 게 많다고 하는데 자기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니까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나사로는 아무것도 없는데 거지고 병들었고 외로웠는데 참 아름답다 해서 아브라함의 품에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생애는 자기를 중심하고 자기를 생각하면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타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것은, 나시기 전에 지은 것 그 이름 예수. 예수 이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역사 세계에 아담으로부터 수 많은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생애가 예수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 그 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찬송은 그렇게 깨닫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낮아지셨고 사람으로 사시면서 택자의 죄를 짊어지고 한 순간 찰나도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영원토록 찬양하게 되는겁니다. 예수 이름. 그분의 생애. 대속이라는 것은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인성의 부활이 있습니다. 출발과 과정과 결과까지. 그렇게 될 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이름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어머니라는 이름이 아름답습니다. 요즘 여성들이 이 가치를 모르고 꿈속에서 사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성에게 가장 여성스러운 이름이 어머니입니다. 남자들에게 가장 훌륭한 이름은 아버지입니다. 가치관 인생관을 바꿔야합니다. 우리나라가 저출산으로 나라가 없어진다고 하니까 한번씩 인식을 바꿔야합니다. 생각을 바꿔야합니다. 텔레비전 방송에 짐승들을 내놓을게 아니고 짐승들을 반려동물이라고 내놓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은 그런 거 할 때 아니고 젊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잘 사는 그런 걸 말하고 분위기를 그렇게 하면 돈 안써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아이를 낳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적응보다 많은 가정이 행복합니다.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행복합니다. 어머니의 모성애가 나와서, 이건 아이 낳기 전에 모르는 겁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여인 중에서 가장 예쁜 이름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손양원이라는 이름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죽인 원수를 회계시켜서 양자 삼아서 믿는 사람 만들어서 사랑의 원자탄이다. 그게 이름입니다. 백영희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다 바쳐서 교회를 공회를 이루었고 교리와 노선을 밝혔습니다. 중세로 칼빈과 루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생애와 어느 거 가치가 더 크겠습니까. 얼마전에도 말씀드렸던가 영화배우인데 원래 치과의사였는데 마지막에 많은 자선가하고 그랬는데 마지막에 관 속에 뭐 넣고 싶습니까 하니까 성경책 한 권이면 됩니다. 그랬습니다. 무식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깔보지 고차원의 세계는 대부분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높은 정치인이나 거물 급에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이 바보가 아닙니다. 살아보니까 천국밖에 없습니다. 실제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오늘까지 10년 20년 30년 살아왔는데 말하자면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이루었나 그랬죠. 수십년 살았는가 잘했겠지 뭐했느냐. 여기 계신 중에서도 수십년 살았는데 참 잘 사신다 분이 있습니다. 그게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금보다 다이아보다 어떤 보석보다 귀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사람이 죽으면 울음바다가 됩니다. 살만큼 살고 100세가 되어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00세인데 병이 노쇠해서 사는 게 힘든 게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 그럽니다. 다 슬픔이 되는건데 성경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는 날은 이 세상이 따나는 날입니다. 살아있는 것이 죽어서 지옥가는 것보다 못하는 게 낫습니다. 그에 날 바에는 안 나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택자는 죽으면 천국갑니다. 불택자는 죽으면 지옥을 가야합니다. 택자는 죽으면 천국갑니다. 아무리 금방석에 앉아도 천국의 가장 안 좋은 곳보다 못합니다. 그래서 죽는 날이 천국가기 때문에 좋은 겁니다. 또 하나, 죽는 날은 모든 고생을 다 끝내는 날입니다. 태어나는 사람은 고생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천리길을 걸어가야하는데 다 가서 있으면 끝나는 건데 천리길을 출발하는 사람은 언제부터 시작해서 뭘 해야할지 모릅니다. 감사한 일인데 그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험악하게 살아갈까를 한 편으로는 생각합니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믿음으로 갈아갈까. 저희 시대는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위대한 스승이 있어서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시대에 안 좋은 게 없다면 말라기 선지를 끝으로 400년을 선지자를 안 주셨습니다. 암흑시대입니다. 할 수 없이 고생스럽습니다. 개인적인 신앙은 있으니까 믿음으로 가는 사람은 재앙이 있으니까.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다. 그러려면 의로운 길에서 서야합니다. 의롭게 살 때 영화의 면류관이 됩니다. 지금 그때 연세가 80이 다 되어서 하야실 때 그 늙은 몸하고 20대 청춘인 몸하고 바꾸라면 바꿀까. 아마 억망장자라도 자기가 80이 되어도 그 몸을 20대로 바꾸라고 하면 안 바꿀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은 바꾸지 않겠다고 합니다. 20대 청년이 새로 살아서 살겠습니까. 그래서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쩌지 않아라 지혜가 아니다. 잘못한 사람은 옛날이 오늘보다 낫습니다. 잘못 산 사람은 늙음이 젊은보다 낫습니다. 여기계신 저를 포함해서 인생을 돌아보시고 돌아됐다고 생각되시면 안봐도 잘못 산 것입니다. 20대로 돌아가는 게 보다 지금 내가 살면 바로 사는 겁니다. 이게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아름다운 이름이 있고 보배로운 기름이 있습니다. 죽는 날이 있고 출생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살았다면 시험을 잘친 학생은 3년을 죽도록 공부해서 안 놀고 쳤는데 만점을 받았습니다. 3년전으로 돌아가라면 돌아가겠습니까. 죽도록 해서 3년 만점 받았는데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못합니다. 그게 죽는 날이고 출생하는 날입니다.
60대가 되니 50대가 그립습니다. 50대에서는 40대가 그립고 40대에는 30대가 그립습니다. 30대 때는요 20대 때가 그리웠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인생을 잘못살면 그렇게 됩니다. 10대가 그리운 20대는 잘못 산겁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고 하면 잘못 산겁니다. 오늘을 돌아볼 때 그때가 더 나아야합니다. 점점 나아지는 믿는 사람의 생애입니다. 이게 죽는 날의 출생하는 것보다 나은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초상은 한 사람의 이력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가신 그분의 생애를 생각합니다. 장래에 입관예배가 있으면 되돌아보고 그분의 생애를 생각합니다. 그분의 이력을 아름답다 그럴 때는 은혜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서 그 사람 흉을 볼 수는 없습니다. 아는대로 사람의 장점 없는 사람 없으니까. 장점만 봅니다. 그런데 그의 단점을 다 압니다. 끝났는데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까. 그렇게 둔 생애를 보고 그의 생애를 마음대로 생각하고 평가하는 게 초상집입니다. 성경에 여호사밧이라는 왕이 있고 뭘 잘못했다고요. 사람을 잘못 사셨습니다. 아합하고 친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의 딸을 여호사밧이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여호람은 장남이라서 왕이 되고 난 다음에 동생들 다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병이 들어서, 창자에 병이 들어서 2년 만에 다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8년만에 아끼는 자 없이 죽었다고 합니다. 여호람의 이름은 가장 추하고 그게 여호람이라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초상집에서 평가하고 생각합니다. 아몬의 아들이 있습니다. 히스기아의 아들은 므낫세고 아몬이 못됐는데 그 밑에서 요시아가 됩니다. 자녀는 어머니 따라간다고 배웠습니다. 요시아 왕은 다윗 다음으로 기뻐할 만큼 좋은 왕이었습니다. 죽었을 때 전 나라가 울었습니다. 마음이 울컥울컥하지 않고 차분해 집니다. 잔치집은 노래를 부릅니다. 자리도 아니고,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앞서간 사람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이 가면 보면서 사람이 젊은 사람도 가는구나, 어떻게 사셨는데 자기 인생 생애를 돌아봅니다. 나도 가겠구나. 살아야겠다.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생각을 하되 인생을 늙음과 생각하면 맑고 밝아집니다. 그게 초상집입니다. 잔치집은 먹고 마시고 떠들고 정신이 없습니다. 우선이 좋은데 우선은 기분이 좋은데 마음이 어두워지고 탁해집니다. 어느 게 낫겠습니다.
그래서 지혜라는 것은 미래를 보는 겁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이와같이 되리라. 여기에 마음을 두고 살아라. 오후에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82장, 145장
본문: 전도서 7장 1절 ~ 4절
지난 주 말씀을 잠깐 복습을 해봅니다. 우리 구원이라는 것은 우리 구주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되는 게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닮아서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을 제자라고 해놨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닮을 수도 있고 제자가 스승을 닮을 수도 있는 건데, 배워서 스승처럼 되는 게 제자입니다. 주님의 가신 걸음을 간다는 그 말은 사신 생애를 그처럼 살면 된다는 겁니다. 주님처럼 살아가면 주님 가는 길을 따라가는 것이고 주님같은 사람이 되어지는 겁니다. 주님같은 생애 거기에는 많은 것이 있는데 주님은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이고 우리를 구원하게 해주셔서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지극히 낮아지신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 되신 주님이 사람되어 이땅에 오셨습니다. 낮아지심은 성자 하나님의 자원의 역사입니다. 원하고 원하는 성부 하나님 아버지 뜻을 위해서 원하고 원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 주님입니다. 그 사람되어 오신 주님에게 성부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신겁니다. 이사야 3장 56절에 보니까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성부 하나님이 못합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이 원하셔서 성부 하나님이 다 담당시킨겁니다. 그 사명은 우리의 대속입니다.
그 주님의 그리하신 것처럼 주님을 따라서 주와같은 대속의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 믿는 사람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입니다. 그 사명은 우리의 대속입니다. 우리 죄 되시는 대속입니다. 주님이 그리하신 거처럼 그 주님을 따라서 우리도 주와같은 대속의 생애를 사는 것이 믿는 사람의 사명입니다. 이 세상을 지으실 때 많은 존재를 지으셨죠 만물이라 그럽니다. 만물은 형체를 가진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과 모든 존재를 지으실 때는 어떤 존재도 그냥 보내지 아니하고 역할을 시켜서 보냈습니다. 먼지하나까지도 세균하나까지도 생각없이 그냥 살지만 잘 살펴보면 모든 만물 전부는 하나님 앞에 사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게 사람이든 짐승이든 식물이든 무생물이든 어떤 것이든 그 존재가 존재하게 되는 데에는 사명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존재는 그 존재가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들여다 보면 자기가 존재함으로 활동함으로 자기와 함께 타에게 유익이 되는 사명입니다. 그 존재가 있음으로 그 존재가 활동함으로 타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존재의 사명입니다. 여기에 어긋나게 되면 모든 만물과 대적이 되고 원수가 되어집니다. 모래알이 있음으로 다른 것에게 유익이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있음으로 다른 존재에게 패가 되고 해가 되고 모든 존재가 다 싫어합니다.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지난 오일밤 예배일 때 천지창소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빛은 첫째에 지었습니다. 첫째날 지은 빛은 개념입니다. 무형의 존재입니다. 무형인데 있는 겁니다. 이것조차도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겁니다. 둘째 날은 귀찮기 때문에 지을 수 있습니다. 첫째날 지은 빛은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지으셨고 둘째날부터 짓는 것이 만물을 물질계 존재를 지을 수 있는 것을 해놓고 공간이 없는 물질계는 없는겁니다. 전부 하나 다 지음받았는데 공간부터 땅도 바다도 생물도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가 할 일입니다. 그게 바로 그 존재가 있음으로 타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이 되게 하는 겁니다. 세상에서 살펴보고 상호협조 상호보완이라고 말을 쓰고 공생 공존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게 물질계 우주고 최종이 하늘나라입니다. 이것에 나타낸 것이 사람의 몸입니다. 저만 생각하면 쓸모가 없어집니다. 온 몸은 지체를 보호하고 도와주면서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곳은 이런 곳입니다. 이렇게 성경에 교회는 주님의 몸이라 그랬습니다. 사람의 몸과 원리가 같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유기체적인 곳입니다. 생명이 활동하는 곳이 교회다. 이게 전부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400조개의 생명이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세포 하나하나 난다고 하고 죽는다 그렇지 없어진다고 하지않습니다. 교회란 것은 모든 생명체가 한 몸을 이루는 겁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교회를 온전히 만들어가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모든 만물에게 다 사명을 보내셔서 주셨고 타락하지 아니한 만물은 다 잘 담당하고 있고 벗어나서 제가 하나님이 되려하는 그 타락한 천사는 쫓겨나서 마귀가 됐고 영원한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악이란 자기 중심입니다. 자기가 왕이 되고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게 악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이 세상에서 지옥의 모습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이건 정치체제가 상관이 없고 사상이 상관없고 경제가 상관없습니다. 인간이 인간 욕심으로 만든 것은 나중에 지옥으로 타락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주님 대속을 의지해서 말씀으로 하늘을 소망하며 이 세상에 있어도 천국의 모습이 되게 되는 겁니다. 교회가 교회 다우면 천국의 모형이 되는 것이고 가정이 가정다우면 천국의 모형이 되는 것이고 믿는 사람이 바로 믿으면 하나님의 형상이 되는 거고 천국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내가 있음으로 내 주변 사람들의 신앙의 도움이 되고 유익을 주지 못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싫어합니다. 만물도 싫어하고 도태되고 맙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면 유익이 되면 좋아하겠지요. 그게 사람의 영광입니다. 오늘 말씀도 연결된게 있을 수 있는데 본문 보시겠습니다. 이번 성탄에 주일학생들이 외울건데 저도 다 외웠습니다. 이걸 교독하면 소리가 커집니다. 어른들도 연세 많으신 분들도 외우면 치매예방되고 머리가 좋아집니다. 하면 되는 겁니다. 하면 된다는 말이 있지요. 성경을 외우면 무조건 좋습니다. 자꾸 외워보십시오. 1절부터 4절까지 봉독했는데 비교해서 더 낫다는 걸 말씀을 합니다. 네 가지를 비교해서 더 낫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세 번째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네 가지를 비교하면서 낫다고 합니다. 일반 세상 상식으로 해석하고 이야기하면 안 맞습니다. 성경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각도로 봐야 맞습니다. 하나님으 lrkreh로 구원 각도로 이 말씀은 해석이 되고 맞습니다. 첫 번째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두 번째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세 번째,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이해가 잘 안되지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관점으로 이해가 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뭔가 아름다운 이름과 보배로운 기름 많이 배워서 알겠지요. 아름다운 생애라 그 뜻입니다. 아름다운 이력이라 그 말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의 흔적이라 그 말입니다. 걸어가는 인생의 그 뜻입니다. 하얗게 눈이 왔습니다. 아주 아이들이 보기 좋게 아장아장 걸으면 예쁘게 날겁니다. 그런데 짐승이 뛰어다니면 흔적이 망쳐놓을 겁니다. 그게 흔적입니다. 무조건 사람이 살아간다고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살고 어떤 사람은 추하게 삽니다.
고슴도치 엄마에게 가장 예쁜 존재는 누굴까요. 고슴도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누굽니까. 고슴도치 새끼입니다. 독사가 가장 아름답게 보는 것은 독사 새끼입니다. 무슨 사자가 사자 눈에 가장 아름다운 짐승은 사자 새끼입니다. 엄마의 눈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기 아기입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우리가 독사를 보면 끔찍합니다. 고슴도치도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고슴도치 저는 제 새끼가 가장 예쁩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소용이 없는겁니다. 누가 볼 때 아름다워야합니까. 나를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아름다워야합니다. 내 인생의 흔적이 다른 사람에게 내 이력을 볼 때 아름답게 살았다 귀하게 살았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평가하면 그런 것이고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습니다. 최종 평가는 하나님이 아름답다 해야 아름다운 겁니다. 아벨의 생애는 아름다운 생애였습니다. 가인의 생애는 나쁜 생애였습니다. 추한 생애입니다. 에녹은 아름다운 생애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에 두실 필요가 없어서 365세에 데려가버렸습니다. 성경에 그런 아름다운 이름이 많습니다. 이게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이 아름다운 이름은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저만 좋게하고 기쁘게 하고 저를 만족 시키고 높이는 이건 다 싫어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될 수 없습니다.
홍포 입은 부자와 나사로가 나옵니다. 부자는 호화롭게 잔치하며 살았습니다. 그게 해석을 해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 베푼 게 많다고 하는데 자기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니까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나사로는 아무것도 없는데 거지고 병들었고 외로웠는데 참 아름답다 해서 아브라함의 품에 보냈습니다. 아름다운 생애는 자기를 중심하고 자기를 생각하면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타를 위해서 나를 희생할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이 됩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것은, 나시기 전에 지은 것 그 이름 예수. 예수 이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역사 세계에 아담으로부터 수 많은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생애가 예수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 그 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찬송은 그렇게 깨닫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낮아지셨고 사람으로 사시면서 택자의 죄를 짊어지고 한 순간 찰나도 원하고 원하는 마음으로 했습니다. 영원토록 찬양하게 되는겁니다. 예수 이름. 그분의 생애. 대속이라는 것은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인성의 부활이 있습니다. 출발과 과정과 결과까지. 그렇게 될 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이름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어머니라는 이름이 아름답습니다. 요즘 여성들이 이 가치를 모르고 꿈속에서 사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성에게 가장 여성스러운 이름이 어머니입니다. 남자들에게 가장 훌륭한 이름은 아버지입니다. 가치관 인생관을 바꿔야합니다. 우리나라가 저출산으로 나라가 없어진다고 하니까 한번씩 인식을 바꿔야합니다. 생각을 바꿔야합니다. 텔레비전 방송에 짐승들을 내놓을게 아니고 짐승들을 반려동물이라고 내놓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은 그런 거 할 때 아니고 젊은 사람들이 결혼해서 잘 사는 그런 걸 말하고 분위기를 그렇게 하면 돈 안써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아이를 낳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적응보다 많은 가정이 행복합니다. 아이를 많이 낳을수록 행복합니다. 어머니의 모성애가 나와서, 이건 아이 낳기 전에 모르는 겁니다. 어머니라는 이름은 여인 중에서 가장 예쁜 이름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손양원이라는 이름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죽인 원수를 회계시켜서 양자 삼아서 믿는 사람 만들어서 사랑의 원자탄이다. 그게 이름입니다. 백영희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다 바쳐서 교회를 공회를 이루었고 교리와 노선을 밝혔습니다. 중세로 칼빈과 루터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아름다운 생애와 어느 거 가치가 더 크겠습니까. 얼마전에도 말씀드렸던가 영화배우인데 원래 치과의사였는데 마지막에 많은 자선가하고 그랬는데 마지막에 관 속에 뭐 넣고 싶습니까 하니까 성경책 한 권이면 됩니다. 그랬습니다. 무식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깔보지 고차원의 세계는 대부분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높은 정치인이나 거물 급에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이 바보가 아닙니다. 살아보니까 천국밖에 없습니다. 실제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오늘까지 10년 20년 30년 살아왔는데 말하자면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이루었나 그랬죠. 수십년 살았는가 잘했겠지 뭐했느냐. 여기 계신 중에서도 수십년 살았는데 참 잘 사신다 분이 있습니다. 그게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금보다 다이아보다 어떤 보석보다 귀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사람이 죽으면 울음바다가 됩니다. 살만큼 살고 100세가 되어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00세인데 병이 노쇠해서 사는 게 힘든 게 돌아가시면 호상이라고 그럽니다. 다 슬픔이 되는건데 성경은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는 날은 이 세상이 따나는 날입니다. 살아있는 것이 죽어서 지옥가는 것보다 못하는 게 낫습니다. 그에 날 바에는 안 나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죽는 것보다 살아있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택자는 죽으면 천국갑니다. 불택자는 죽으면 지옥을 가야합니다. 택자는 죽으면 천국갑니다. 아무리 금방석에 앉아도 천국의 가장 안 좋은 곳보다 못합니다. 그래서 죽는 날이 천국가기 때문에 좋은 겁니다. 또 하나, 죽는 날은 모든 고생을 다 끝내는 날입니다. 태어나는 사람은 고생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천리길을 걸어가야하는데 다 가서 있으면 끝나는 건데 천리길을 출발하는 사람은 언제부터 시작해서 뭘 해야할지 모릅니다. 감사한 일인데 그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험악하게 살아갈까를 한 편으로는 생각합니다.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믿음으로 갈아갈까. 저희 시대는 백영희 목사님이라는 위대한 스승이 있어서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시대에 안 좋은 게 없다면 말라기 선지를 끝으로 400년을 선지자를 안 주셨습니다. 암흑시대입니다. 할 수 없이 고생스럽습니다. 개인적인 신앙은 있으니까 믿음으로 가는 사람은 재앙이 있으니까.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다. 그러려면 의로운 길에서 서야합니다. 의롭게 살 때 영화의 면류관이 됩니다. 지금 그때 연세가 80이 다 되어서 하야실 때 그 늙은 몸하고 20대 청춘인 몸하고 바꾸라면 바꿀까. 아마 억망장자라도 자기가 80이 되어도 그 몸을 20대로 바꾸라고 하면 안 바꿀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 백 목사님은 바꾸지 않겠다고 합니다. 20대 청년이 새로 살아서 살겠습니까. 그래서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쩌지 않아라 지혜가 아니다. 잘못한 사람은 옛날이 오늘보다 낫습니다. 잘못 산 사람은 늙음이 젊은보다 낫습니다. 여기계신 저를 포함해서 인생을 돌아보시고 돌아됐다고 생각되시면 안봐도 잘못 산 것입니다. 20대로 돌아가는 게 보다 지금 내가 살면 바로 사는 겁니다. 이게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은 겁니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아름다운 이름이 있고 보배로운 기름이 있습니다. 죽는 날이 있고 출생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살았다면 시험을 잘친 학생은 3년을 죽도록 공부해서 안 놀고 쳤는데 만점을 받았습니다. 3년전으로 돌아가라면 돌아가겠습니까. 죽도록 해서 3년 만점 받았는데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못합니다. 그게 죽는 날이고 출생하는 날입니다.
60대가 되니 50대가 그립습니다. 50대에서는 40대가 그립고 40대에는 30대가 그립습니다. 30대 때는요 20대 때가 그리웠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인생을 잘못살면 그렇게 됩니다. 10대가 그리운 20대는 잘못 산겁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낫다고 하면 잘못 산겁니다. 오늘을 돌아볼 때 그때가 더 나아야합니다. 점점 나아지는 믿는 사람의 생애입니다. 이게 죽는 날의 출생하는 것보다 나은 것을 말합니다. 세 번째,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초상은 한 사람의 이력을 조심하는 것입니다. 가신 그분의 생애를 생각합니다. 장래에 입관예배가 있으면 되돌아보고 그분의 생애를 생각합니다. 그분의 이력을 아름답다 그럴 때는 은혜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서 그 사람 흉을 볼 수는 없습니다. 아는대로 사람의 장점 없는 사람 없으니까. 장점만 봅니다. 그런데 그의 단점을 다 압니다. 끝났는데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까. 그렇게 둔 생애를 보고 그의 생애를 마음대로 생각하고 평가하는 게 초상집입니다. 성경에 여호사밧이라는 왕이 있고 뭘 잘못했다고요. 사람을 잘못 사셨습니다. 아합하고 친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의 딸을 여호사밧이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여호람은 장남이라서 왕이 되고 난 다음에 동생들 다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병이 들어서, 창자에 병이 들어서 2년 만에 다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8년만에 아끼는 자 없이 죽었다고 합니다. 여호람의 이름은 가장 추하고 그게 여호람이라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초상집에서 평가하고 생각합니다. 아몬의 아들이 있습니다. 히스기아의 아들은 므낫세고 아몬이 못됐는데 그 밑에서 요시아가 됩니다. 자녀는 어머니 따라간다고 배웠습니다. 요시아 왕은 다윗 다음으로 기뻐할 만큼 좋은 왕이었습니다. 죽었을 때 전 나라가 울었습니다. 마음이 울컥울컥하지 않고 차분해 집니다. 잔치집은 노래를 부릅니다. 자리도 아니고,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앞서간 사람을 생각하면서 미래를 생각합니다. 젊은 사람이 가면 보면서 사람이 젊은 사람도 가는구나, 어떻게 사셨는데 자기 인생 생애를 돌아봅니다. 나도 가겠구나. 살아야겠다.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생각을 하되 인생을 늙음과 생각하면 맑고 밝아집니다. 그게 초상집입니다. 잔치집은 먹고 마시고 떠들고 정신이 없습니다. 우선이 좋은데 우선은 기분이 좋은데 마음이 어두워지고 탁해집니다. 어느 게 낫겠습니다.
그래서 지혜라는 것은 미래를 보는 겁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은 이와같이 되리라. 여기에 마음을 두고 살아라. 오후에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