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6일 수밤
김동민2023-12-06조회 328추천 35
2023년 12월 6일 수밤
찬송: 139장, 158장
본문: 이사야 53장 4절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대속의 고난이 제목입니다. 성찬과 관련된 말씀은 가장 어려운 말씀 중 하나입니다. 성찬 설교는 그 내용이 고난과 죽으심을 새기는 말씀이 되어서 예수님의 대속이 귀하지만 그런 면이 있습니다. 주님의 희생을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도성인신, 고난의 생애, 인성의 부활입니다. 도성인신은 일반적으로 무엇으로 말하자면은 지킨다면 애매한 표현인데 우리에게 어떤 말로 와닿아있습니까. 성탄절이지요. 대속의 권한은 어떤 날로 우리에게 인식이 되어있습니까. 고난의 생애는 성찬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찬식이라고 볼 수 있고 인성의 부활은 일반적으로 부활의 주님으로 되어있습니다. 주로 보통 매 주일마다 기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일은 성찬식을 기념하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일 성찬식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 출발이 바로 도성인신입니다. 그 세 가지 고난을 짚었는데 양이나 영향이나 어느 한 쪽이 크고 작고 그러지 않고 다 무거운 것이고 무한한 희생이라고 봐야합니다. 도성인신도 무한한 희생이고 고난의 생애, 인성의 부활도 그러합니다. 공화를 준비할때도 학생들이 표를 내지 않아도 강단에서 목사 설교하면서 은혜가 되면서 감정조절이 안돼서 눈물도 흘리고 그러는데 교인들 앉아서 혼자 은혜 다 받고 있다고 합니다. 교인들은 하나도 은혜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쨌든 마음을 가질 때 설사 나를 때리는 설교라고 할지라도 복되다 그렇게 받아들인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고 치는 말씀이구나 하면 복 없는 말씀입니다. 모든 복은 자기가 받습니다. 아무도 관섭하지 못합니다. 내 형제들아 원망하지 말아라 하늘을 탓하고 땅을 탓하고 오만 걸 다 탓하는데 원망하는 사람은 그거 회개하지 않으면 희망없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경우도 절대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도둑질하는데 간음죄 살인죄가 있는데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살인죄입니다. 우상섬기는 것보다 더 큰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내 형편이 어떠해도 하나님의 역사인데 원망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고 환경탓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입니다. 요즘에는 그런 비유를 잘 안하는데 고속도록 달리다가 상행선 하행선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붙어다녔는데 요즘은 8차선 16차선도 있습니다. 가운데 중앙 분리되어 있습니다. 반대쪽이 타이어가 빠졌든지 중앙 분리된 곳이 와서 사고가 났습니다. 보험사 사고로 내 잘못은 1프로도 없습니다. 100프로 저쪽 탓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볼 때는 왜 내가 상행선을 타는 도로에 그때 그 시간에 나를 치느냐 그 말이죠. 확률이 천분지일 넘는데 말이죠. 그게 나 따리냐 그게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에 뜻이 있다. 그게 성경적인 바른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주님 대속의 권한을 두고 주일학생들의 말씀을 가르칠 때 나 자신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한 것은 어디서 나오냐 사람의 행동은 마음에서 나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지식에서 챙겨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지식 없는 마음의 작용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이란 중요한 겁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만큼 부모님께 효도를 합니다. 요즘은 그런 걸 안가르치니 불효자식만 있습니다. 어른들 탓도 많죠. 안 가르쳤으니까. 부모에 대한 심정과 수고와 희생을 자식들이 함부로 하지 않는데 모르니까 왜 나 낳았어요. 왜 나 이렇게 낳았어요. 그런 말 합니다. 자기 지옥을 자기가 말하지요. 감사는 아는 은혜를 말합니다. 넓게 알면 넓게 감사 많이 알면 많이 감사 바르게 알면 바르게 감사. 받은 은혜를 아는 만큼 감사가 나옵니다. 죄송함이 생겨집니다. 그 고난을 알고 정도를 알고 강도를 알고 깊이를 알고 한 없는 죄송함과 은혜에 대한 감사를 볼 수 있는겁니다. 대속이라는 말은 우리를 대신했다는 말을 많이 드렸지요. 알기 쉽게 말하는데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신앙의 중심입니다. 우리 구원으 중심입니다. 대속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대속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대속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목적이 이루어지게 됐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전부고 우리의 전부고 신앙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대속입니다. 우리를 대신한 대속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희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전부를 다 드려서 우리를 대속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전부를 다 드려서 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대속의 고난인데 아이들에게 공과 그대로 전하는 게 중요하지만은 어떻게 설명을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연구를 많이 해야합니다. 그리고 간결하게 집어내야 합니다. 머리 속에 제목과 요절, 가르친 게 마리에 남아있어야합니다. 많이 가르쳤는데 안 그러면 수고했는겁니다. 하나라도 꽉 지워넣어야합니다. 오후 예배나 삼일예배 요절지 요약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요약할 때 요절지만 외우면 이번 공과 말씀 다 들어가도록 해야합니다. 중요할 때 요 자입니다. 공과 전체를 요약해서 요절만 외우면 요약이 되는 겁니다. 내용이 많으면 안됩니다. 성전은 예외적인 경우고 간결하면서도 과고 서영준 목사님 백목사님 다음으로 하신 분이 서영준 목사님인데 아이들에게 풀어서 쉽게 설명하려면 어렵습니다. 설교에서 가장 쉬운 설교는 뭐겠습니까. 성경 읽어주면 됩니다. 성경보다 더 좋은 설교 있습니까. 말하자면 생쌀을 떠먹이는 겁니다. 쌀을 가지고 밥을 할려면 시간도 걸리고 공도 들어갑니다. 그게 설교 준비하는 겁니다. 쌀은 성경이고 밥을하는게 설교 준비고 더하면 어린 신앙은 뭐해야합니까. 젖을 먹여야합니다. 엄마가 먹고 소화 시켜서 아이에게 맞게 나오는 게 젖입니다. 주일 학생들에게는 젖을 먹여야합니다. 그래 느끼고 그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는 게 아니고 간결하게 하고 요약 속에 들어가면서 요절지를 기록할 때는 그렇게 가르쳐야하고 가르치는 우리 자신들은 우리 앞에 참 죄송하다 어느 정도 느끼고 말씀을 정해야합니다. 지식도 없고 느낌을 가르켜 삼대절기에서 뭐라 했습니까. 빈손으로 오지 말아라. 돈들고 연보들고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르고 오지 말아라. 느낌없이 오지 말아라. 그냥 오는 거 연보만 가져오는 거 헛일입니다. 첫째 대속의 권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천국 건설입니다. 지난 주 말씀인데 이해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천국이란 어떤 곳이냐.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은혜가 많은 만큼 천국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고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을 지옥이라고 그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과 가까워지는 것이고 멀어지는 사람일수록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목적은 천국 건설입니다. 천국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나라 잃었다가 팔레스타인 나라에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하마스라는 그곳에 나라가 없습니다. 식민지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이스라엘을 전멸시키고 나라를 건국할려고 합니다. 그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씨를 말릴려는 겁니다. 그래야 나라가 되는 거니까. 나라 없는 백성은 나라를 세웁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신라가 삼국통일 하고 신라가 망하고 발해가 생겼답니까. 고구려쪽 사람이 잠깐 세웠다가 망해버립니다. 나라를 세울려는 그런 건설 우리나라도 잃었다가 건국을 했습니다. 천국 건설이 하나님께서 세운다 건설한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천국 건설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입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지옥에 하나님이 계시면 천국이 되고 천국에 하나님이 없으면 지옥이 됩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가까울수록 하나님과 닮았을수록 그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천국 건설은 다시 말하면 뭡니까. 무엇을 건설하는 게 되는 겁니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 천국 건설이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천국 건설이라는 말을 기억해야합니다. 천국 건설이란 세상 건국처럼 주권있고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만드는 게 천국입니다. 하나님 혼자 천국은 있으나 마나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하나님 닮은 사람 만들어서 퍼뜨리는 게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자니까 못하는 게 없습니다. 전부 그분에게서 나왔습니다. 필요한 거 다 주시고 사람에게 주시고 받아서 자기 밑에 사람에게 또 줘서 뻗어나가게 됩니다. 나무로 말하면 영양소를 뿌리가 받아서 줄기에게 주고 가지에게 주고 마지막으로 가면 잎사귀가 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이게 뻗어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주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하나님에게 받은 감사하고 찬송하고 영광돌리는 찬미하는 게 하늘나라입니다. 이 나를 건설하는 게 하나님 목적이고 자유성에 의해 생겨지는 나라이기 때문에 마찰이 없습니다. 시기 질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빛과 사랑으로 가득 찬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 건설하는데에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자유성의 나라고 자유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 나라 건설에는 필연적으로 희생이 필요하지 않고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희생하셨는데 그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도성인신 주님의 생애는 우리의 원형입니다. 주님의 낮아지심은 우리가 낮아져야하는겁니다. 우리 공회에서 인도하시는 목사님께서 가장 싫어하신달까요. 그게 자존심을 세우고 권위를 세우고 위신을 세우는 겁니다. 이거 있으면 목회자는 못합니다. 내가 목사인데, 내가 교역자인데 그러면 목회 못합니다. 다 깨버립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낮아지기를 힘들어하면 신앙생활을 모르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데 사람이 짐승이 되면 소가 되면은 한없이 낮아진거지요. 소보다 낮아지면 사람이 벌레가 되고 곤충이 됩니다. 그 중에 바퀴벌레가 되면 끔찍하겠습니다. 잡초가 되어버리면 돌멩이가 되면 어떻습니까. 사람이 소가 되고 돼지가 되고 바퀴가 되고 더 낮아져 돌멩이가 돼고 어느 틀에서 같은 종류가 됩니까. 사람도 피조물 돼지도 피조물 돌멩이도 피조물.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는 건데 이건 비유가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겁니다. 이건 말이 안되는 겁니다. 실제로 되신 게 도성인신입니다. 얼마나 낮아져서 그래서 믿는 사람이 주를 위해서 그 사람의 구원 때문에 말도 조심하고 어떨 때는 귄위도 세우는 척하는 것이지 어디까지든지 낮아져야합니다. 나는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늘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게 자존심입니다. 그게 미신이고 정체성이고. 그 대신에 하나님만 못줍니다. 신앙은 못 줍니다. 그게 자존심입니다. 그게 가치고. 나 자신이 낮아질 줄 알아야합니다.
두 번째 대속의 생애, 사람되신 주님이 33년 4개월을 사셨는데 어릴 때는 부모에게 공위의 법이다 할 수 있으니까 어린 주님인데 온유함이 있어 울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탈선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택자의 죄를 다 짊어진 것입니다. 한 발자국 갈 것도 없고 침 삼킬동안도 갈 거 없고 사람의 전부를 다하고 신성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당신의 전부를 다 바쳐서 33년 4개월을 이탈도 없이 비로소 말씀이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
10년 살아도 하루 산 것보다 못한 생애도 있고 하루를 살아도 10년보다 더한 생애는 없습니다. 한 달에 100억 받는 사람도 있고 한 달에 1000원도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의 하루는 같습니까. 천지 차이죠.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겁니다. 주님의 생애를 값으로 못따지겠지만 4백조개의 세포가 한 시간이 3600초입니다. 3600번을 한 번 빈틈없이 걸어가보지요. 이게 대속의 고난의 생애입니다. 인성의 부활입니다. 끝없는 고난, 그리고 네 번째는 앞설 줄 아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이 자타의 구원입니다. 주님가신 그 것음 우리도 오라고 이게 사명입니다. 모든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사명이 있고 탈을 위한 겁니다. 모든 사람들의 전부는 저만 위해 사는 존재는 없습니다. 자기 아닌 탈을 위해 하고 있습니다. 상호 보완 협조가 되고 공생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땅이든 생물이든 돌멩이든 바닷물이든 공기든 햇빛이든 하나님이 지으신 것에 선하고 그러는 것에 짓지 않았습니다. 맹장명 때문에 아이 때문에 맹장을 떼고 그러면 나중에 큰일납니다. 이 땅에 우주 가운데 만물이 모래알 하나도 필요하지 않은 건 없습니다. 그 전부다가 선을 이룬겁니다. 공생공존입니다. 우두머리 만물의 영장 사람입니다. 도태되고 마지막에 지옥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계산해서 하는 것이고 그런 것인데 만물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기는 자기 생활하는데 타를 위한 생활이 되어있습니다. 지렁이 없는 흙은 영양가가 없습니다. 모든 관계가 공생공존이 되어있습니다. 희생하기 싫은 사람은 신앙생활 못합니다. 천국에 가서 부끄러운 사람밖에 안되는거지요. 형제 위해서 내가 고난받고 죽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마지막은 무한한 영광입니다. 내가 영광을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고 내 갈길을 갔는데 그게 영광의 걸음이 되는 겁니다. 말씀을 잘 생각을 하고 준비해서 먼저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고 가르칩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하겠습니다.
찬송: 139장, 158장
본문: 이사야 53장 4절
공과 공부가 되겠습니다. 대속의 고난이 제목입니다. 성찬과 관련된 말씀은 가장 어려운 말씀 중 하나입니다. 성찬 설교는 그 내용이 고난과 죽으심을 새기는 말씀이 되어서 예수님의 대속이 귀하지만 그런 면이 있습니다. 주님의 희생을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봤습니다.
도성인신, 고난의 생애, 인성의 부활입니다. 도성인신은 일반적으로 무엇으로 말하자면은 지킨다면 애매한 표현인데 우리에게 어떤 말로 와닿아있습니까. 성탄절이지요. 대속의 권한은 어떤 날로 우리에게 인식이 되어있습니까. 고난의 생애는 성찬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찬식이라고 볼 수 있고 인성의 부활은 일반적으로 부활의 주님으로 되어있습니다. 주로 보통 매 주일마다 기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일은 성찬식을 기념하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일 성찬식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그 출발이 바로 도성인신입니다. 그 세 가지 고난을 짚었는데 양이나 영향이나 어느 한 쪽이 크고 작고 그러지 않고 다 무거운 것이고 무한한 희생이라고 봐야합니다. 도성인신도 무한한 희생이고 고난의 생애, 인성의 부활도 그러합니다. 공화를 준비할때도 학생들이 표를 내지 않아도 강단에서 목사 설교하면서 은혜가 되면서 감정조절이 안돼서 눈물도 흘리고 그러는데 교인들 앉아서 혼자 은혜 다 받고 있다고 합니다. 교인들은 하나도 은혜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쨌든 마음을 가질 때 설사 나를 때리는 설교라고 할지라도 복되다 그렇게 받아들인 사람은 복있는 사람이고 치는 말씀이구나 하면 복 없는 말씀입니다. 모든 복은 자기가 받습니다. 아무도 관섭하지 못합니다. 내 형제들아 원망하지 말아라 하늘을 탓하고 땅을 탓하고 오만 걸 다 탓하는데 원망하는 사람은 그거 회개하지 않으면 희망없는 사람이 됩니다. 어떤 경우도 절대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도둑질하는데 간음죄 살인죄가 있는데 마음으로 사람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살인죄입니다. 우상섬기는 것보다 더 큰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내 형편이 어떠해도 하나님의 역사인데 원망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고 환경탓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입니다. 요즘에는 그런 비유를 잘 안하는데 고속도록 달리다가 상행선 하행선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붙어다녔는데 요즘은 8차선 16차선도 있습니다. 가운데 중앙 분리되어 있습니다. 반대쪽이 타이어가 빠졌든지 중앙 분리된 곳이 와서 사고가 났습니다. 보험사 사고로 내 잘못은 1프로도 없습니다. 100프로 저쪽 탓이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볼 때는 왜 내가 상행선을 타는 도로에 그때 그 시간에 나를 치느냐 그 말이죠. 확률이 천분지일 넘는데 말이죠. 그게 나 따리냐 그게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가 아니면 안되기 때문에 뜻이 있다. 그게 성경적인 바른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주님 대속의 권한을 두고 주일학생들의 말씀을 가르칠 때 나 자신은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감사한 것은 어디서 나오냐 사람의 행동은 마음에서 나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지식에서 챙겨지는 게 일반적입니다. 지식 없는 마음의 작용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식이란 중요한 겁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만큼 부모님께 효도를 합니다. 요즘은 그런 걸 안가르치니 불효자식만 있습니다. 어른들 탓도 많죠. 안 가르쳤으니까. 부모에 대한 심정과 수고와 희생을 자식들이 함부로 하지 않는데 모르니까 왜 나 낳았어요. 왜 나 이렇게 낳았어요. 그런 말 합니다. 자기 지옥을 자기가 말하지요. 감사는 아는 은혜를 말합니다. 넓게 알면 넓게 감사 많이 알면 많이 감사 바르게 알면 바르게 감사. 받은 은혜를 아는 만큼 감사가 나옵니다. 죄송함이 생겨집니다. 그 고난을 알고 정도를 알고 강도를 알고 깊이를 알고 한 없는 죄송함과 은혜에 대한 감사를 볼 수 있는겁니다. 대속이라는 말은 우리를 대신했다는 말을 많이 드렸지요. 알기 쉽게 말하는데 기독교의 중심입니다. 신앙의 중심입니다. 우리 구원으 중심입니다. 대속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대속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대속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목적이 이루어지게 됐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전부고 우리의 전부고 신앙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대속입니다. 우리를 대신한 대속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희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전부를 다 드려서 우리를 대속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전부를 다 드려서 주셨습니다. 이런 것을 대속의 고난인데 아이들에게 공과 그대로 전하는 게 중요하지만은 어떻게 설명을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연구를 많이 해야합니다. 그리고 간결하게 집어내야 합니다. 머리 속에 제목과 요절, 가르친 게 마리에 남아있어야합니다. 많이 가르쳤는데 안 그러면 수고했는겁니다. 하나라도 꽉 지워넣어야합니다. 오후 예배나 삼일예배 요절지 요약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요약할 때 요절지만 외우면 이번 공과 말씀 다 들어가도록 해야합니다. 중요할 때 요 자입니다. 공과 전체를 요약해서 요절만 외우면 요약이 되는 겁니다. 내용이 많으면 안됩니다. 성전은 예외적인 경우고 간결하면서도 과고 서영준 목사님 백목사님 다음으로 하신 분이 서영준 목사님인데 아이들에게 풀어서 쉽게 설명하려면 어렵습니다. 설교에서 가장 쉬운 설교는 뭐겠습니까. 성경 읽어주면 됩니다. 성경보다 더 좋은 설교 있습니까. 말하자면 생쌀을 떠먹이는 겁니다. 쌀을 가지고 밥을 할려면 시간도 걸리고 공도 들어갑니다. 그게 설교 준비하는 겁니다. 쌀은 성경이고 밥을하는게 설교 준비고 더하면 어린 신앙은 뭐해야합니까. 젖을 먹여야합니다. 엄마가 먹고 소화 시켜서 아이에게 맞게 나오는 게 젖입니다. 주일 학생들에게는 젖을 먹여야합니다. 그래 느끼고 그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하는 게 아니고 간결하게 하고 요약 속에 들어가면서 요절지를 기록할 때는 그렇게 가르쳐야하고 가르치는 우리 자신들은 우리 앞에 참 죄송하다 어느 정도 느끼고 말씀을 정해야합니다. 지식도 없고 느낌을 가르켜 삼대절기에서 뭐라 했습니까. 빈손으로 오지 말아라. 돈들고 연보들고 오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르고 오지 말아라. 느낌없이 오지 말아라. 그냥 오는 거 연보만 가져오는 거 헛일입니다. 첫째 대속의 권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천국 건설입니다. 지난 주 말씀인데 이해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천국이란 어떤 곳이냐.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은혜가 많은 만큼 천국이 되어집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고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을 지옥이라고 그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사람이 하나님과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과 가까워지는 것이고 멀어지는 사람일수록 점점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목적은 천국 건설입니다. 천국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나라 잃었다가 팔레스타인 나라에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하마스라는 그곳에 나라가 없습니다. 식민지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이스라엘을 전멸시키고 나라를 건국할려고 합니다. 그게 목적입니다. 그래서 씨를 말릴려는 겁니다. 그래야 나라가 되는 거니까. 나라 없는 백성은 나라를 세웁니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신라가 삼국통일 하고 신라가 망하고 발해가 생겼답니까. 고구려쪽 사람이 잠깐 세웠다가 망해버립니다. 나라를 세울려는 그런 건설 우리나라도 잃었다가 건국을 했습니다. 천국 건설이 하나님께서 세운다 건설한다 이런 의미가 아닙니다. 천국 건설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입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지옥에 하나님이 계시면 천국이 되고 천국에 하나님이 없으면 지옥이 됩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가까울수록 하나님과 닮았을수록 그 사람이 가는 곳이 천국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목적은 천국 건설은 다시 말하면 뭡니까. 무엇을 건설하는 게 되는 겁니까. 하나님과 가까운 사람. 천국 건설이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우리의 구원입니다. 천국 건설이라는 말을 기억해야합니다. 천국 건설이란 세상 건국처럼 주권있고 그런 게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 곳이 천국이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을 만드는 게 천국입니다. 하나님 혼자 천국은 있으나 마나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하나님 닮은 사람 만들어서 퍼뜨리는 게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자니까 못하는 게 없습니다. 전부 그분에게서 나왔습니다. 필요한 거 다 주시고 사람에게 주시고 받아서 자기 밑에 사람에게 또 줘서 뻗어나가게 됩니다. 나무로 말하면 영양소를 뿌리가 받아서 줄기에게 주고 가지에게 주고 마지막으로 가면 잎사귀가 피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이게 뻗어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주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하나님에게 받은 감사하고 찬송하고 영광돌리는 찬미하는 게 하늘나라입니다. 이 나를 건설하는 게 하나님 목적이고 자유성에 의해 생겨지는 나라이기 때문에 마찰이 없습니다. 시기 질투가 있을 수 없습니다. 빛과 사랑으로 가득 찬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 건설하는데에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자유성의 나라고 자유의 나라이기 때문에 이 나라 건설에는 필연적으로 희생이 필요하지 않고 안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희생하셨는데 그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 도성인신 주님의 생애는 우리의 원형입니다. 주님의 낮아지심은 우리가 낮아져야하는겁니다. 우리 공회에서 인도하시는 목사님께서 가장 싫어하신달까요. 그게 자존심을 세우고 권위를 세우고 위신을 세우는 겁니다. 이거 있으면 목회자는 못합니다. 내가 목사인데, 내가 교역자인데 그러면 목회 못합니다. 다 깨버립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낮아지기를 힘들어하면 신앙생활을 모르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데 사람이 짐승이 되면 소가 되면은 한없이 낮아진거지요. 소보다 낮아지면 사람이 벌레가 되고 곤충이 됩니다. 그 중에 바퀴벌레가 되면 끔찍하겠습니다. 잡초가 되어버리면 돌멩이가 되면 어떻습니까. 사람이 소가 되고 돼지가 되고 바퀴가 되고 더 낮아져 돌멩이가 돼고 어느 틀에서 같은 종류가 됩니까. 사람도 피조물 돼지도 피조물 돌멩이도 피조물.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는 건데 이건 비유가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겁니다. 이건 말이 안되는 겁니다. 실제로 되신 게 도성인신입니다. 얼마나 낮아져서 그래서 믿는 사람이 주를 위해서 그 사람의 구원 때문에 말도 조심하고 어떨 때는 귄위도 세우는 척하는 것이지 어디까지든지 낮아져야합니다. 나는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늘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게 자존심입니다. 그게 미신이고 정체성이고. 그 대신에 하나님만 못줍니다. 신앙은 못 줍니다. 그게 자존심입니다. 그게 가치고. 나 자신이 낮아질 줄 알아야합니다.
두 번째 대속의 생애, 사람되신 주님이 33년 4개월을 사셨는데 어릴 때는 부모에게 공위의 법이다 할 수 있으니까 어린 주님인데 온유함이 있어 울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탈선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택자의 죄를 다 짊어진 것입니다. 한 발자국 갈 것도 없고 침 삼킬동안도 갈 거 없고 사람의 전부를 다하고 신성이 함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겁니다. 당신의 전부를 다 바쳐서 33년 4개월을 이탈도 없이 비로소 말씀이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
10년 살아도 하루 산 것보다 못한 생애도 있고 하루를 살아도 10년보다 더한 생애는 없습니다. 한 달에 100억 받는 사람도 있고 한 달에 1000원도 안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의 하루는 같습니까. 천지 차이죠.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겁니다. 주님의 생애를 값으로 못따지겠지만 4백조개의 세포가 한 시간이 3600초입니다. 3600번을 한 번 빈틈없이 걸어가보지요. 이게 대속의 고난의 생애입니다. 인성의 부활입니다. 끝없는 고난, 그리고 네 번째는 앞설 줄 아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이 자타의 구원입니다. 주님가신 그 것음 우리도 오라고 이게 사명입니다. 모든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사명이 있고 탈을 위한 겁니다. 모든 사람들의 전부는 저만 위해 사는 존재는 없습니다. 자기 아닌 탈을 위해 하고 있습니다. 상호 보완 협조가 되고 공생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땅이든 생물이든 돌멩이든 바닷물이든 공기든 햇빛이든 하나님이 지으신 것에 선하고 그러는 것에 짓지 않았습니다. 맹장명 때문에 아이 때문에 맹장을 떼고 그러면 나중에 큰일납니다. 이 땅에 우주 가운데 만물이 모래알 하나도 필요하지 않은 건 없습니다. 그 전부다가 선을 이룬겁니다. 공생공존입니다. 우두머리 만물의 영장 사람입니다. 도태되고 마지막에 지옥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계산해서 하는 것이고 그런 것인데 만물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자기는 자기 생활하는데 타를 위한 생활이 되어있습니다. 지렁이 없는 흙은 영양가가 없습니다. 모든 관계가 공생공존이 되어있습니다. 희생하기 싫은 사람은 신앙생활 못합니다. 천국에 가서 부끄러운 사람밖에 안되는거지요. 형제 위해서 내가 고난받고 죽어지는 그런 세상입니다. 마지막은 무한한 영광입니다. 내가 영광을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고 내 갈길을 갔는데 그게 영광의 걸음이 되는 겁니다. 말씀을 잘 생각을 하고 준비해서 먼저 우리가 이런 사람이 되고 가르칩시다. 기도하시다가 자유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