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5일 수밤
김동민2023-11-15조회 369추천 56
2023년 11월 15일 수밤
찬송: 5장, 198장
본문: 열왕기상 8장 27절
22절부터 53절까지가 본문입니다. 지난주 말씀을 복습해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모신 집니다. 솔로몬 성전은 돌로 백향목으로 금으로 은으로 여러 가지로 실제 물질의 집으로 만들었습니다. 눈에 보인것이고 손으로 만든 것이고 예배당처럼 집을 지었습니다. 물질로 만드신 집으로 신령한 성전된 우리에 거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까, 하나님은 땅에 거할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땅에 사람이 지은 집에 거하실 수 없으나 거기 있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이를 매개체라고 하지요. 주님 대속을 근거해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접전이 성전이라 그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을 공부할 때는 성전을 생각하면서 성전의 모양과 이런 기구들의 기능들을 역할을 생각하면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과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를 이렇게 볼 때 이해가 쉬울 수도 있습니다.
성전이란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집은 성전이 아닌겁니다. 옛날에 왕보다 신하가 힘이 더 셀 때가 있습니다. 왕이 정통성이 약하던지 어리던지 그러면 신하가 더 강할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될 때 바로되고 바로되면 엉망이 되는 겁니다. 성경에 그런 적이 있었는데 아시나요. 요하스왕일 때입니다. 그 할머니가 아합의 딸이었습니다. 유다왕의 씨를 다 죽일 때 그때 대제사장이 막내아들을 숨겨서 길렀다가 어릴 때 왕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왕을 세우면서 아달랴를 죽이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섬기기로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건 있을 수가 있는 겁니다. 왕에 있는 궁궐보다 신하에게 있는 집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하집은 왕이 있는 그 집보다 화려해도 궁전이라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임진왜란 때 선조 왕이 도망을 쳤습니다. 그때는 왕이라도 별 수 없습니다. 밥도 겨우겨우 깡보리밥을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백성들은 굶어죽는데 왕이라서 보리밥이라도 주는 겁니다. 초가집이라도 왕이 머물면 왕궁이 됩니다. 집을 잘 지어놔도 하나님이 안 계시면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조건이 있는데 성전에 여러 기구가 있는데 마지막 제일 마지막에 성전의 제일 마지막의 직전에 법궤 언약궤, 그 위에 그룹이 있고 그 사이에 내가 너희를 만나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게 비로소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성전이 되는데 그러려면 법궤가 있어야합니다. 원래 그룹 사이에 계시는데 원래는 날개를 펴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위에는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말씀을 바로 모실 때 중심이 바로 되어질 때 동기목적이 될 때, 그때 비로소 성령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 그렇게 되어질 때 하나님은 그 나를 통해서 나를 만나시게 되는데 이게 영감이고 주의 뜻입니다. 이게 성전의 역할입니다. 성전의 자세는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라. 공과에 보면 절대 주권자 하나님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기 22절에 보니까 솔로몬이 사람이 하나님을 상대할 때 기본이면서 전제가 여호와의 단 앞에서 성전에 들어가기 전 뜰에 있는 겁니다. 그게 재단입니다. 기구들 중에 큰 거입니다. 거기서 모든 짐승을 태워드리는 재단, 제사를 드리는 곳이고 같은 말이고 피를 상징하는 것이고 대속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옛날에는 예표로 주님 대속을 소망하는 예표로 실제 짐승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하는 관계는 대속이 전제가 되어있다고 생각해야합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온 휘중을 마주서서 솔로몬은 대표고 이스라엘은 전부다가 하나님 향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 향하여 손을 폅니다. 크게 두 가지 의미라고 그랬죠. 하늘나라를 소망한다는 뜻이고 하나는 도우심 은혜를 간구하는 겁니다. 의지하고 이게 하늘을 향해 손을 펴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소망은 하늘입니다. 그 하늘나라는 우리가 모두 함께하는 겁니다. 마음이 함께하고 모든 것이 함께하는 우리라는 게 포함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난데 대아라고 그러는 겁니다. 함께하는 겁니다. 이런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대할 때가 되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구원이 먼저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주님 대속을 힘입고 하늘 향해서 나아가는 게 자세입니다. 하나님같은 신이 없나이다. 이 세상에 신은 없다. 귀신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귀신은 있습니다. 그런데 신은 없는데 하나님 외의 신은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말하는 다른 신들은 없다 말입니까 있다말입니까. 있다는 말이죠.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우상들이고 허상이고 가짜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있는 것을 착각한거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으면 귀신인데 그 귀신은 마귀입니다. 그 귀신은 있습니다. 천사는 마귀의 귀신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무인격입니까 인격입니까. 사람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천사는 영물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무인격입니까 인격입니까. 격위가 있는 존재, 무인격이라 그말은 말하자면 돌들이 소리 지르는 것으로 예를 드는데 돌이라는 형체가 있습니다. 돌은 인격체가 아니지만 돌들이 소리지르는 것은 만물 심판에 포함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진리는 사람이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인격입니다. 성령의 감동 없이는 진리만 가지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독잦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지요. 천사라는 것은 영물입니다. 실제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귀신 드라큘라, 강시, 처녀귀신 그런 귀신들은 없는겁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귀신은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마귀입니다. 높은 귀신은 사탄입니다. 실체가 있는 존재입니다. 귀신은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하고 당하는 게 귀신입니다. 타락한 천사이기 때문에.
밀히지면 그런 귀신을 사람들이 모르고 섬기는 겁니다. 전부 마귀고 사탄입니다. 그걸 들고 있는겁니다. 하나님같은 신은 하나님 뿐입니다. 유일신입니다. 하나님만 신이시고 다른 신은 없습니다. 미혹을 받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자존자 절대자 완전자 하나님인데 온 마음으로 주님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십니다. 말씀하신 계약입니다. 또 은혜를 계속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절대자기 때문에 가능한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지키고 싶어도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면을 가르켜서 너는 사람이다. 자기 앞날이든 주권이 없는거다. 약속을 하되 사람 범위에서 하는 것이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서도 쓰고 하지만 사람 살아가는 과정이니 하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못하게 하시면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 믿음의 절정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 약속하신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이 믿고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믿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 떠난 날 까지 안주셔도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는가보다. 살아생전에 있는 게 이삭의 부활의 깨달음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합니다. 인간의 경험과 믿음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세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걸 아나니,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도 사람의 관계나 물질의 관계는 참 믿으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내게 닥치게 하셨을 때 믿음으로 하면 알게되고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게 믿음의 능력입니다. 폭발능력이라고 합니다. 온 마음의 앞으로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된다고 그러면 되는 것이고 아닌 경우에는 아닌 것입니다. 예정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내게 준 현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좋은 언약입니다. 그 현실을 살아가는 게 온 마음으로 행하는 종입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아니더라, 자기 길을 버리고 이게 믿음이니까 믿음을 가지도록 해야합니다.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물질도 있고 지능도 있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언약을 지키는 데에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게 은혜입니다. 은혜를 주셔도 살피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아이들 귀여워하는데 아이 쳐다보고 웃으면 해로운 것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안 좋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아이에게 마음을 뺏기다니 좋아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여호와여 주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네가 네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다윗처럼만 하면 너에게 하겠다. 하나님은 차별이 없는 분입니다.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너의 자손이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의 구원의 계통입니다. 택한 백성, 주님 대속을 입은 사람이고 자기 길을 삼가서 하나님께서는 주지않은 걸 받으시고 알리지 않은 걸 심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강아지를 기르면 강아지와 사람은 존재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강아지는 개입니다. 강아지가 언어는 못해도 그런 방법을 써야 훈련이 됩니다. 사람이 강아지를 훈련 시키면서 사람에게 하는 언어로 교육방법으로 강아지 교육이 되겠습니까. 아이에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써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 자녀를 기르는 엄마의 모든 것은 희생이고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천사의 언어가 아니고 하늘의 언어가 아니고 인간을 통해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담아놓으셨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훈련시킨 건 알아듣겠지요. 인간이 못알아듣는데 인간의 언어로 써 놓은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서 내려온 것입니다. 이게 한없는 은혜고 희생이고 사람의 작용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까 땅에 거할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상대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걸 잊어버릴 때 많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있겠다고 하시고 성전은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게 바로 성전입니다. 우리가 주님 만나는 최소한의 조건 이게 성전입니다. 내가 성전 되지 않으면 주님 대속과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에다가 오케스트라를 갖다놓고 드럼치고 괴성을 질러대는 말씀이 뭔지 모르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어림도 없습니다. 다 헛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라는 게 드뭅니다. 예배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이게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거기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통해서 역사를 하겠다 하신 것입니다. 성전을 바라보고 성전 바라본다 그 말은 하나님 계신 곳 바라보고 바로 말하면 말씀을 통해서 말씀과 말씀대로 다 기록되어있지 않아도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위해 다니엘이 기도했는데 거기는 법궤가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성전 짓기 전에도 말씀대로 해서 그런 것입니다. 성전 통해서 역사하겠다. 주님 대속이고 성전 생활이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역사하겠다. 진리는 절대성을 가졌다고 합니다.
금식 안해도 고기만 먹고 살아도 말씀에 맞으면 하나님 맞게 해야합니다. 그게 진리으 ㅣ절대성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찬송하고 그래도 말씀에 맞으면 행해야합니다. 당신의 말 진리이기 때문에. 성전을 통한 것도 진리입니다. 크게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다. 절대 주권자 하나님 성전에 대한 약속을 기억하고 우리가 성전이니까 하나님 오실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 것인가. 내가 성전될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역사를 기억하십시다. 우리 자신을 가르칩시다. 기도하다가 자유하겠습니다.
찬송: 5장, 198장
본문: 열왕기상 8장 27절
22절부터 53절까지가 본문입니다. 지난주 말씀을 복습해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모신 집니다. 솔로몬 성전은 돌로 백향목으로 금으로 은으로 여러 가지로 실제 물질의 집으로 만들었습니다. 눈에 보인것이고 손으로 만든 것이고 예배당처럼 집을 지었습니다. 물질로 만드신 집으로 신령한 성전된 우리에 거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까, 하나님은 땅에 거할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땅에 사람이 지은 집에 거하실 수 없으나 거기 있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사이를 매개체라고 하지요. 주님 대속을 근거해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접전이 성전이라 그럴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전을 공부할 때는 성전을 생각하면서 성전의 모양과 이런 기구들의 기능들을 역할을 생각하면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과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를 이렇게 볼 때 이해가 쉬울 수도 있습니다.
성전이란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집은 성전이 아닌겁니다. 옛날에 왕보다 신하가 힘이 더 셀 때가 있습니다. 왕이 정통성이 약하던지 어리던지 그러면 신하가 더 강할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될 때 바로되고 바로되면 엉망이 되는 겁니다. 성경에 그런 적이 있었는데 아시나요. 요하스왕일 때입니다. 그 할머니가 아합의 딸이었습니다. 유다왕의 씨를 다 죽일 때 그때 대제사장이 막내아들을 숨겨서 길렀다가 어릴 때 왕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왕을 세우면서 아달랴를 죽이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섬기기로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건 있을 수가 있는 겁니다. 왕에 있는 궁궐보다 신하에게 있는 집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하집은 왕이 있는 그 집보다 화려해도 궁전이라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임진왜란 때 선조 왕이 도망을 쳤습니다. 그때는 왕이라도 별 수 없습니다. 밥도 겨우겨우 깡보리밥을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백성들은 굶어죽는데 왕이라서 보리밥이라도 주는 겁니다. 초가집이라도 왕이 머물면 왕궁이 됩니다. 집을 잘 지어놔도 하나님이 안 계시면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조건이 있는데 성전에 여러 기구가 있는데 마지막 제일 마지막에 성전의 제일 마지막의 직전에 법궤 언약궤, 그 위에 그룹이 있고 그 사이에 내가 너희를 만나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이게 비로소 성전이 됩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성전이 되는데 그러려면 법궤가 있어야합니다. 원래 그룹 사이에 계시는데 원래는 날개를 펴고 있다는 것은 인간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위에는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말씀을 바로 모실 때 중심이 바로 되어질 때 동기목적이 될 때, 그때 비로소 성령이 함께하시고 하나님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 그렇게 되어질 때 하나님은 그 나를 통해서 나를 만나시게 되는데 이게 영감이고 주의 뜻입니다. 이게 성전의 역할입니다. 성전의 자세는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을 대하는 자세라. 공과에 보면 절대 주권자 하나님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여기 22절에 보니까 솔로몬이 사람이 하나님을 상대할 때 기본이면서 전제가 여호와의 단 앞에서 성전에 들어가기 전 뜰에 있는 겁니다. 그게 재단입니다. 기구들 중에 큰 거입니다. 거기서 모든 짐승을 태워드리는 재단, 제사를 드리는 곳이고 같은 말이고 피를 상징하는 것이고 대속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예나 지금이나 옛날에는 예표로 주님 대속을 소망하는 예표로 실제 짐승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하는 관계는 대속이 전제가 되어있다고 생각해야합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온 휘중을 마주서서 솔로몬은 대표고 이스라엘은 전부다가 하나님 향하는 겁니다. 그리고 하늘 향하여 손을 폅니다. 크게 두 가지 의미라고 그랬죠. 하늘나라를 소망한다는 뜻이고 하나는 도우심 은혜를 간구하는 겁니다. 의지하고 이게 하늘을 향해 손을 펴는 겁니다. 믿는 사람의 소망은 하늘입니다. 그 하늘나라는 우리가 모두 함께하는 겁니다. 마음이 함께하고 모든 것이 함께하는 우리라는 게 포함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난데 대아라고 그러는 겁니다. 함께하는 겁니다. 이런 마음 자세가 하나님을 대할 때가 되었습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구원이 먼저고 다른 사람을 살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주님 대속을 힘입고 하늘 향해서 나아가는 게 자세입니다. 하나님같은 신이 없나이다. 이 세상에 신은 없다. 귀신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귀신은 있습니다. 그런데 신은 없는데 하나님 외의 신은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말하는 다른 신들은 없다 말입니까 있다말입니까. 있다는 말이죠.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우상들이고 허상이고 가짜입니다.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있는 것을 착각한거죠.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있으면 귀신인데 그 귀신은 마귀입니다. 그 귀신은 있습니다. 천사는 마귀의 귀신은 타락한 천사입니다. 무인격입니까 인격입니까. 사람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천사는 영물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무인격입니까 인격입니까. 격위가 있는 존재, 무인격이라 그말은 말하자면 돌들이 소리 지르는 것으로 예를 드는데 돌이라는 형체가 있습니다. 돌은 인격체가 아니지만 돌들이 소리지르는 것은 만물 심판에 포함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진리는 사람이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인격입니다. 성령의 감동 없이는 진리만 가지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 독잦적인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봤지요. 천사라는 것은 영물입니다. 실제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귀신 드라큘라, 강시, 처녀귀신 그런 귀신들은 없는겁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귀신은 다른 말로 뭐라고 합니까. 마귀입니다. 높은 귀신은 사탄입니다. 실체가 있는 존재입니다. 귀신은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하고 당하는 게 귀신입니다. 타락한 천사이기 때문에.
밀히지면 그런 귀신을 사람들이 모르고 섬기는 겁니다. 전부 마귀고 사탄입니다. 그걸 들고 있는겁니다. 하나님같은 신은 하나님 뿐입니다. 유일신입니다. 하나님만 신이시고 다른 신은 없습니다. 미혹을 받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께서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자존자 절대자 완전자 하나님인데 온 마음으로 주님의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십니다. 말씀하신 계약입니다. 또 은혜를 계속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절대자기 때문에 가능한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지키고 싶어도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 면을 가르켜서 너는 사람이다. 자기 앞날이든 주권이 없는거다. 약속을 하되 사람 범위에서 하는 것이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계약서도 쓰고 하지만 사람 살아가는 과정이니 하긴 하지만 하나님께서 못하게 하시면 못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 믿음의 절정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 약속하신 아브라함이고 아브라함이 믿고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믿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 떠난 날 까지 안주셔도 하나님의 다른 뜻이 있는가보다. 살아생전에 있는 게 이삭의 부활의 깨달음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합니다. 인간의 경험과 믿음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세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걸 아나니,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도 사람의 관계나 물질의 관계는 참 믿으면 하나님께서 환경을 내게 닥치게 하셨을 때 믿음으로 하면 알게되고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되고 느끼게 되는 게 믿음의 능력입니다. 폭발능력이라고 합니다. 온 마음의 앞으로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된다고 그러면 되는 것이고 아닌 경우에는 아닌 것입니다. 예정이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내게 준 현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좋은 언약입니다. 그 현실을 살아가는 게 온 마음으로 행하는 종입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아니더라, 자기 길을 버리고 이게 믿음이니까 믿음을 가지도록 해야합니다.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물질도 있고 지능도 있고 사람을 감동시키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언약을 지키는 데에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게 은혜입니다. 은혜를 주셔도 살피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아이들 귀여워하는데 아이 쳐다보고 웃으면 해로운 것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안 좋게 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에 아이에게 마음을 뺏기다니 좋아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여호와여 주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네가 네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다윗처럼만 하면 너에게 하겠다. 하나님은 차별이 없는 분입니다.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너의 자손이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의 구원의 계통입니다. 택한 백성, 주님 대속을 입은 사람이고 자기 길을 삼가서 하나님께서는 주지않은 걸 받으시고 알리지 않은 걸 심판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강아지를 기르면 강아지와 사람은 존재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강아지는 개입니다. 강아지가 언어는 못해도 그런 방법을 써야 훈련이 됩니다. 사람이 강아지를 훈련 시키면서 사람에게 하는 언어로 교육방법으로 강아지 교육이 되겠습니까. 아이에게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써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린 자녀를 기르는 엄마의 모든 것은 희생이고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천사의 언어가 아니고 하늘의 언어가 아니고 인간을 통해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담아놓으셨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훈련시킨 건 알아듣겠지요. 인간이 못알아듣는데 인간의 언어로 써 놓은 것이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서 내려온 것입니다. 이게 한없는 은혜고 희생이고 사람의 작용입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까 땅에 거할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상대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이걸 잊어버릴 때 많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있겠다고 하시고 성전은 하나님이 계실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게 바로 성전입니다. 우리가 주님 만나는 최소한의 조건 이게 성전입니다. 내가 성전 되지 않으면 주님 대속과 말씀이 없으면 하나님 만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배당에다가 오케스트라를 갖다놓고 드럼치고 괴성을 질러대는 말씀이 뭔지 모르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어림도 없습니다. 다 헛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라는 게 드뭅니다. 예배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이게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에 거기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 통해서 역사를 하겠다 하신 것입니다. 성전을 바라보고 성전 바라본다 그 말은 하나님 계신 곳 바라보고 바로 말하면 말씀을 통해서 말씀과 말씀대로 다 기록되어있지 않아도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위해 다니엘이 기도했는데 거기는 법궤가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성전 짓기 전에도 말씀대로 해서 그런 것입니다. 성전 통해서 역사하겠다. 주님 대속이고 성전 생활이 있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역사하겠다. 진리는 절대성을 가졌다고 합니다.
금식 안해도 고기만 먹고 살아도 말씀에 맞으면 하나님 맞게 해야합니다. 그게 진리으 ㅣ절대성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찬송하고 그래도 말씀에 맞으면 행해야합니다. 당신의 말 진리이기 때문에. 성전을 통한 것도 진리입니다. 크게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다. 절대 주권자 하나님 성전에 대한 약속을 기억하고 우리가 성전이니까 하나님 오실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할 것인가. 내가 성전될 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역사를 기억하십시다. 우리 자신을 가르칩시다. 기도하다가 자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