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2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10-22조회 275추천 42
2023년 10월 22일 주일 오후
찬송: 12장, 14장
본문: 사무엘상 2장 17절
사람은 누구나 다 됨대로 모든 외부 존재를 상대하게 되어있습니다. 자기가 되었다 그 말은 자기 속에 그런 사람이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악취가 나는 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알든지 모르든지 원하든지 않든지 악취를 풍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들끼리 모인다고 합니다. 사람은 필연적입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으냐, 사람의 지식과 인식 인생과 가치관이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게 되는 겁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는데 성씨 중에서도 양반 계통의 성씨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워낙 많으니까 예를 들면 그런 분들 중에서 일부는 몸에 오만함이 베어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주변에도 좀 멀어졌지만 목사님 같이할 때 그런 분이 있었는데 남들을 부를 때 반말투로 말합니다. 입에 익었고 몸에 익었습니다. 아주 거만합니다. 아주 양반 집안입니다.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데 그런 게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접하고 아버지가 그렇고 아버지가 그러니까 신하들이 왕자인 자기한테 절절메니까 나이가 되어 왕이 되었는데 네 살 세 살에 왕이 되었는데 말을 놓을 수 있는 겁니다. 보고 듣고 익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 속에 인식 속에 겸손함이 있는 사람은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다윗은 출생이 목동입니다. 다윗은 기본적으로 겸손합니다. 실력이 있고 하나님께서 높이 보시는데 골리앗을 잡았으니까 어깨가 움찔거릴만도 한데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다윗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떨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기를 높인 것을 앎이라고 그랬습니다. 강아지들은 개들은 호랑이를 냄새로 알아서 저절로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옛날에 범이 동네에 들어오면 개들은 본능적으로 마루 밑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안 보이는데도 소리만 나도 그러고 온 마을의 개들은 반 죽어버린답니다. 먹이사슬처럼 그렇습니다.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알면 겸손하게 되고 하룻 강아지는 범 무서운줄을 모릅니다. 조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어린 아이들 같으면 신앙이 없는 사람이면 그럴 수 있는데 제사장이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제사장이니 아들도 제사장입니다. 엘리는 사사로 대제사장입니다. 사사는 양쪽으로 다 있다 그랬습니다. 막강합니다. 나라의 통치자입니다. 종교면서 세상 정치까지 하는 사람입니다. 나라가 약해도 다 통치하는 왕입니다. 왕정시대에는 왕과 제사장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사시대는 왕과 제사장을 같이 했습니다. 이런 제사장들이 말하자면 사사의 위치로 되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죠.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고 그 인식이 사고방식이 오래되어있었고 제사를 예사로 보는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버렸고 근본적으로 그리되었으니까 바로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질 못합니다. 백 목사님 집안은 유교에 철저한 집안이었습니다. 엄했는데도 불구하고 장남이 15살에 놀음을 해서 집안을 말아먹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그때 아버지 교육을 제대로 받아 순종했습니다. 차남이 장남 형이 저지른 죄를 수습하고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기른 책임을 치고 냉방에서 평생을 지냈다고 합니다. 냉방이라는 말 아십니까. 차디 찬 방입니다. 산골은 엄청 춥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알고 두려워하면 감히 멸시할 수가 없는 것이고 가볍게 여길 수가 없는 겁니다. 엘리 제사장은 위대한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위치가 그랬고 실제도 그랬습니다. 한나가 사무엘 낳을 때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엘리 제사장의 약점은 장점을 잡아먹을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죄인줄 알았고 막을 수 있는데 안 막았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늘 말씀드리면 사무엘의 아들들도 못된 것들입니다. 사무엘은 사사인데 거의 신정국가처럼 다스렸습니다. 다른 사사와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 주변 국가가 쳐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무엘의 아들들도 뇌물을 받고 사사가 되지 못한겁니다. 책임을 묻지 않았는데 엘리 제사장은 모든 책임을 물었습니다. 엘리 제사장 집안이 왜 파탄 났다고요.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에. 그게 오늘날 예배입니다. 이런 말씀이 어린 신앙 중에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러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런 분들은 하나님께서 관섭하지 않습니다. 오전만 오고 오후에는 안 오지 않습니까. 예배를 안다면 모르는 것이지요. 그 어린 것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영원토록 부끄러운 겁니다. 영원토록 어려라, 영원토록 젖을 먹어라. 영원토록 어른 노릇 못하는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좋은 건데 사람 사이에도 좋을 수 있는 건데 감사하지 않아도 되고 감사를 받아야할 위치 있는 사람이 감사를 하라고하면 비참한 겁니다. 1등해야하는 학생이 꼴찌하면, 중간만해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꼴찌하면 못견디는 것이지요. 서울대를 가니까 카이스트대를 가니까 중간이 되어버립니다. 초중고등학교 다 했는데 1등들만 모여있는 데 가니까 중간이 됩니다. 1등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엘리처럼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단정하는 것은 큰일납니다. 어찌될지 모르는 겁니다. 내가 엘리가 될 수 있고 내 자식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사람이 된 사람 없고 그 사람이 그렇게 될줄 몰랐습니다. 하나님 역사는 어찌될지 모릅니다. 앞날은 더 모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늘 겸손해야합니다. 그게 인간이고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이 인물들이 있습니다. 제사와 관련해서 보면 창세기 에덴 동산 타락해서 여인의 후손은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고 뱀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의 뒷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가죽옷을 입었습니다. 가죽옷은 짐승을 잡아야 가죽 옷입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죽여서 가죽 옷을 입었습니다. 이게 뭐냐 죽은 자를 다시 살려대서 대속의 예표물입니다. 에덴 동산 쫓겨나고 죄가 없습니다. 상황이 없습니다. 그러면 제사가 필요없는 겁니다. 그 죄는 드리는 겁니다. 예배는 드리는 게 아니고 형식은 드리는 건데 실상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습니다. 제사도 구원을 받는 게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재료들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걸로 뭘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셔서 뭐하시겠습니까. 형식입니다. 그 형식 속에 대속이 있습니다.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려면 누군가 대신 죽어야합니다. 그게 바로 제사고 예배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는 제사가 없습니다. 범죄하고 나서 하나님이 쫓아내시면서 가죽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그러면서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립니다. 원래 우리 위치는 에덴 동산이고 우리 고향이 거기고 우리 위치가 그런 곳이다.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아담은 전 인류를 멸망시킨 조상인데 아벨은 누가 드립니까. 멸망의 조상의 아들입니다. 아담이란 사람은 큰죄를 지었지만 구원 계통이 있는 것이 아담입니다.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담이 바로 됐으면 죄짓지 마라고 제사를 드려야한다고 이렇게 드리는 것이라고 많이 가르쳤고 실제로 했을 겁니다. 아담이 제사 안 드렸으면 가인과 아벨이 알겠습니까. 그래서 아담의 가르침을 아벨은 바로 배워가지고 직업도 목축으로 했고 바로 드렸습니다. 가인은 경솔히 했습니다. 제사도 자기 멋대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가인 제사를 안 받으니까 시기해서 죽였습니다. 그게 제사의 자손의 결과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또 반대이지요. 사울은 다윗의 아버지 뻘입니다. 나이가 그렇습니다. 사울에 비해 다윗은 벼룩이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대왕이었고 다윗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고 나니까 교만해졌습니다. 결정적으로 버림받게 된 것은 아말렉은 그 뒤고 약속한 그 기한안에 사무엘이 오지 않는다고 번제를 가지고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마치자마자 사울이 와서 한 말이 하나님이 왕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거 때문에 버림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할 때 벌벌 떨었습니다. 그게 바로 제사입니다. 그리고 더 지나가면 다윗의 자손 중에서 유다 왕 중에서 우시아라는 왕이 있습니다. 나름 잘 섬겼습니다. 복을 주셔서 나라가 잘됐습니다. 그래서 거만해져서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둥병이 생겼습니다. 그 밑에서 요시아라는 왕이 있습니다. 그 왕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잘 드립니다. 대표적으로 유월절입니다. 모든 제사의 핵심은 유월절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양을 잡아서 죽임으로 이스라엘에게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 유월절을 사무엘 이후로 요시아만큼 잘 지킨 사람이 없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게 핵심적인 제사입니다. 요시아 왕입니다. 다윗 이후로 가장 기뻐하시고 정치잘한 그 왕이 요시아 왕입니다. 종교 말년이 되고 예수님 시대를 종교 말년이라고 합니다. 종교의 끝입니다. 그때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제사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형식은 철저하게 갖췄는데 제사를 전부다가 외식이었습니다. 그 속에 의와 신앙을 버렸습니다. 인간중심으로 제사를 했고 세상 중심이었고 그 중에 제사가 없었습니다. 말도 잘하고 지식도 능하고 교리도 보고 흠과 정이 없는데도 표적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신령한 역사입니다. 이게 그때였고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승천하시고 남은 사도들은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입니다. 성경에는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초대 교회가 시작된 겁니다. 가인과 아벨, 그 다음 사울과 다윗이 있습니다. 우시아하고 요시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대제사장이 있고 사도들이 있습니다. 한쪽은 제사장을 실패했고 한쪽은 무서워하고 성공했습니다. 그 시작이 반복이 됩니다. 그 원인입니다. 제사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왜 하나님 앞에 백성들이 제사를 드려야합니까. 제사라는 것은 그 원인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범죄의 제사입니다. 그 내면에 들어가면 깊은 사랑이 있으니까 죄를 지어서 된 것이고 범죄에 사망한 인생이기에 필수적입니다. 제사의 목적은 구원이고 회복입니다. 에덴 동산의 지위를 회복하는 게 제사입니다. 그 방편은 과정은 대속입니다. 이렇게 제사를 정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속이 아니면 구원이 없는 것이고 대속의 예표, 그림자 그것이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가 예배하는 거처럼 예배를 하고 있는데 동기가 뭡니까. 한 분이 홈페이지에 글을 적었습니다. 예배가 엉망입니다. 그런데도 다 졸고 있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새벽기도 그날 오일밤 새벽기도는 긴장했는데 며칠 지나니 풀어집니다. 제사의 원인이 무엇이라고요. 범죄입니다. 제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이며 회복입니다. 대속의 근본, 주님 대속입니다. 그게 대속의 근본입니다. 모든 제사의 근본 근거 출발점 원동력, 그래야 다른 제사가 생겨집니다. 이 제사를 바탕으로 해서 모든 우리 제사가 되게 되는겁니다.
주님 대속을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고 소망하면서 구약의 제사를 드린겁니다. 그러니까 복 없는 사람은 될지 안될지 아나. 형식만 갖추게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자기 전부 다 바쳐 제사드린 사람들은 건설구원 이루신겁니다. 제사의 원인, 제사의 목적, 제사의 방편 다 기억해야합니다. 이게 신약으로 내려오면 예배로 되어집니다. 제사와 예배는 좋은 것입니다. 제사가 예배를 보고 제사입니다. 예배의 원인은 무엇인가 예배의 목적이 무엇인가 오전예배 오후예배 새벽예배 이것만 예배냐 이건 형식입니다. 예배는 예배인데 예배 목적은 제사와 같습니다. 구원과 회복입니다. 예배는 드리는 건데 실제로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게 예배입니다. 방편은 뭐냐, 같습니다. 예배의 방편은 형식과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형식이 있습니다. 예배 형식은 요소가 몇 가지입니까. 이 중에서 기도와 찬송이라는 것은 예배는 예배인데 말씀을 보조가 되어야합니다. 말씀이란 정치를 말하고 문화를 말하고 경제를 말하고 철학을 말하고 사상을 말하고 그런 것은 예배 시간에서 말하는 복음의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그 속에 대속이 들어가야합니다. 대속이 들어가야 참 말씀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것은 말하자면 당신을 작업하신 주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대속이 들어가야합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예배 말씀 속에 들어가야합니다. 그런 대속을 통해서 알아야하기 때문에 그게 복음입니다. 말씀 속에 대속이 없고 나를 잡아 바치는게 없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지식적으로 알고 말씀은 진리기 때문에 주님이 들어있고 대속이 들어있으면 그것은 함께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고 실제 생활에서 예배는 그때 그때 해당되는 자기를 잡아서 죽이는겁니다. 말씀에 어긋나는 것을 잡는 것이 제사입니다. 옆의 사람이 바가지를 긁고 내 속을 긁으면 바깥 공기가 이상해서 시간 전에 나가 보니까 복도를 다니면서 담배를 펴서 담배연기가 진동이 다 됩니다. 그 분을 보내면서 노숙자 차림입니다. 그런 외모를 가져도 조심스럽게 날이 많이 추우시죠. 그런데 애들이 많아서 좋게 말해서 그러면 될건데. 혹시라도 김집사님 전도 많이 하시니까 그분인가 싶어서 보니까 아니라고 합니다. 제 속에 옛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덜했다면 좋게 좋게 내보냈을텐데 이것도 내 속에 저를 잡지 못하면 백 목사님 말씀하시면 고쳐야한다. 이치영 너는 속아지 때문에 큰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잡아서 죽여야합니다. 못된 좁은 속아지 그게 바로 예배입니다. 산제사입니다. 속아지를 잡고 욕심을 잡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꺾어버리고 잡는 게 제사입니다. 이것을 잡을 수 있는 받쳐야하는 것이 예배시간이고 들어서 잡아서 꺾는게 예배시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강단이 부족할 때 강단 책임을 강조하는데 이건 원론입니다. 듣는 사람은 들으면 되고 자면 자면 되고 모든 게 내 책임, 그러면 복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맘속으로 감사하는게 제가 그리 적었으면 반발심 생길 수 있습니다. 듣는 분들이 복 없게 들으면 아무리 강단에 폭포수가 떨어져도 그분들이 모르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분에게 복이 안 갑니다. 반대로 전부 강단이 부족해서 은혜 못 받아도 심려를 통해 은혜를 받는 것이 성경입니다. 복없는 사람은 늘 복이 없습니다. 불행한 겁니다. 예배 방편은 형식입니다. 기도, 찬송, 말씀입니다. 그 속에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나를 잡아 바쳐야합니다. 이런 게 들어가면 말씀이 되고 문화 어떻고 경제는 어떻고 복음은 아닙니다. 복음이란 대속이 들어가야합니다. 이런 각도로 보면 예배다운 예배가 없어진지 오래되지 않았을까. 흔하진 않을 겁니다. 예배드리는 자세는 어때야할까. 형식은 신령과 진정이어야합니다. 그 신령을 내가 도달하는 것이 진정입니다. 진실과 충성입니다. 진실하고 충성하게 다칠 수가 있는거고, 전체적으로 엘리 집안을 통해서 엘리 집안이 위대한 집안인데 제사를 무시하다가 풍비박산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도 조심해야합니다. 가인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울과 다윗을 제사를 비교해봤습니다. 제사를 무시했기 때문에 다윗은 제사를 극히 두려워했습니다. 제사를 함부로 대하다가 가장 잘 드렸습니다. 이런 과정이 있습니다. 제사 원인은 뭐라고 했습니까 구원받은 도리입니다. 대속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기도 찬송 말씀인데 말씀 속에 제사 대속 나를 바치는 게 있어야 예배가 됩니다. 예배 자세는 형식의 예배 자세는 신령과 진정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 예배가 형식부터 바뀌고 제사를 잘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찬송: 12장, 14장
본문: 사무엘상 2장 17절
사람은 누구나 다 됨대로 모든 외부 존재를 상대하게 되어있습니다. 자기가 되었다 그 말은 자기 속에 그런 사람이 만들어졌다는 말입니다. 악취가 나는 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알든지 모르든지 원하든지 않든지 악취를 풍기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들끼리 모인다고 합니다. 사람은 필연적입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었으냐, 사람의 지식과 인식 인생과 가치관이 굉장히 중요한겁니다. 사람의 평생을 좌우하게 되는 겁니다. 다 그런 건 아니겠는데 성씨 중에서도 양반 계통의 성씨를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워낙 많으니까 예를 들면 그런 분들 중에서 일부는 몸에 오만함이 베어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주변에도 좀 멀어졌지만 목사님 같이할 때 그런 분이 있었는데 남들을 부를 때 반말투로 말합니다. 입에 익었고 몸에 익었습니다. 아주 거만합니다. 아주 양반 집안입니다.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데 그런 게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보고 듣고 접하고 아버지가 그렇고 아버지가 그러니까 신하들이 왕자인 자기한테 절절메니까 나이가 되어 왕이 되었는데 네 살 세 살에 왕이 되었는데 말을 놓을 수 있는 겁니다. 보고 듣고 익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마음 속에 인식 속에 겸손함이 있는 사람은 저절로 겸손해집니다. 다윗은 출생이 목동입니다. 다윗은 기본적으로 겸손합니다. 실력이 있고 하나님께서 높이 보시는데 골리앗을 잡았으니까 어깨가 움찔거릴만도 한데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다윗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떨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자기를 높인 것을 앎이라고 그랬습니다. 강아지들은 개들은 호랑이를 냄새로 알아서 저절로 두려워한다고 합니다. 옛날에 범이 동네에 들어오면 개들은 본능적으로 마루 밑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안 보이는데도 소리만 나도 그러고 온 마을의 개들은 반 죽어버린답니다. 먹이사슬처럼 그렇습니다.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알면 겸손하게 되고 하룻 강아지는 범 무서운줄을 모릅니다. 조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어린 아이들 같으면 신앙이 없는 사람이면 그럴 수 있는데 제사장이 그랬습니다. 아버지가 제사장이니 아들도 제사장입니다. 엘리는 사사로 대제사장입니다. 사사는 양쪽으로 다 있다 그랬습니다. 막강합니다. 나라의 통치자입니다. 종교면서 세상 정치까지 하는 사람입니다. 나라가 약해도 다 통치하는 왕입니다. 왕정시대에는 왕과 제사장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사시대는 왕과 제사장을 같이 했습니다. 이런 제사장들이 말하자면 사사의 위치로 되어야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죠. 아주 엉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고 그 인식이 사고방식이 오래되어있었고 제사를 예사로 보는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버렸고 근본적으로 그리되었으니까 바로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질 못합니다. 백 목사님 집안은 유교에 철저한 집안이었습니다. 엄했는데도 불구하고 장남이 15살에 놀음을 해서 집안을 말아먹었습니다. 백영희 목사님은 그때 아버지 교육을 제대로 받아 순종했습니다. 차남이 장남 형이 저지른 죄를 수습하고 아버지는 자식을 잘못 기른 책임을 치고 냉방에서 평생을 지냈다고 합니다. 냉방이라는 말 아십니까. 차디 찬 방입니다. 산골은 엄청 춥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알고 두려워하면 감히 멸시할 수가 없는 것이고 가볍게 여길 수가 없는 겁니다. 엘리 제사장은 위대한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위치가 그랬고 실제도 그랬습니다. 한나가 사무엘 낳을 때 그랬습니다. 그랬는데 엘리 제사장의 약점은 장점을 잡아먹을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무서운 죄인줄 알았고 막을 수 있는데 안 막았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늘 말씀드리면 사무엘의 아들들도 못된 것들입니다. 사무엘은 사사인데 거의 신정국가처럼 다스렸습니다. 다른 사사와 차원이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 주변 국가가 쳐들어온 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무엘의 아들들도 뇌물을 받고 사사가 되지 못한겁니다. 책임을 묻지 않았는데 엘리 제사장은 모든 책임을 물었습니다. 엘리 제사장 집안이 왜 파탄 났다고요.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에. 그게 오늘날 예배입니다. 이런 말씀이 어린 신앙 중에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더러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그런 분들은 하나님께서 관섭하지 않습니다. 오전만 오고 오후에는 안 오지 않습니까. 예배를 안다면 모르는 것이지요. 그 어린 것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영원토록 부끄러운 겁니다. 영원토록 어려라, 영원토록 젖을 먹어라. 영원토록 어른 노릇 못하는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좋은 건데 사람 사이에도 좋을 수 있는 건데 감사하지 않아도 되고 감사를 받아야할 위치 있는 사람이 감사를 하라고하면 비참한 겁니다. 1등해야하는 학생이 꼴찌하면, 중간만해도 억장이 무너지는데 꼴찌하면 못견디는 것이지요. 서울대를 가니까 카이스트대를 가니까 중간이 되어버립니다. 초중고등학교 다 했는데 1등들만 모여있는 데 가니까 중간이 됩니다. 1등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엘리처럼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식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단정하는 것은 큰일납니다. 어찌될지 모르는 겁니다. 내가 엘리가 될 수 있고 내 자식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사람이 된 사람 없고 그 사람이 그렇게 될줄 몰랐습니다. 하나님 역사는 어찌될지 모릅니다. 앞날은 더 모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늘 겸손해야합니다. 그게 인간이고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이 인물들이 있습니다. 제사와 관련해서 보면 창세기 에덴 동산 타락해서 여인의 후손은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고 뱀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의 뒷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가죽옷을 입었습니다. 가죽옷은 짐승을 잡아야 가죽 옷입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을 잡아 죽여서 가죽 옷을 입었습니다. 이게 뭐냐 죽은 자를 다시 살려대서 대속의 예표물입니다. 에덴 동산 쫓겨나고 죄가 없습니다. 상황이 없습니다. 그러면 제사가 필요없는 겁니다. 그 죄는 드리는 겁니다. 예배는 드리는 게 아니고 형식은 드리는 건데 실상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습니다. 제사도 구원을 받는 게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재료들 어디에 쓰겠습니까. 그걸로 뭘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맡으셔서 뭐하시겠습니까. 형식입니다. 그 형식 속에 대속이 있습니다.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려면 누군가 대신 죽어야합니다. 그게 바로 제사고 예배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에서는 제사가 없습니다. 범죄하고 나서 하나님이 쫓아내시면서 가죽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그러면서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립니다. 원래 우리 위치는 에덴 동산이고 우리 고향이 거기고 우리 위치가 그런 곳이다.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까요. 아담은 전 인류를 멸망시킨 조상인데 아벨은 누가 드립니까. 멸망의 조상의 아들입니다. 아담이란 사람은 큰죄를 지었지만 구원 계통이 있는 것이 아담입니다.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담이 바로 됐으면 죄짓지 마라고 제사를 드려야한다고 이렇게 드리는 것이라고 많이 가르쳤고 실제로 했을 겁니다. 아담이 제사 안 드렸으면 가인과 아벨이 알겠습니까. 그래서 아담의 가르침을 아벨은 바로 배워가지고 직업도 목축으로 했고 바로 드렸습니다. 가인은 경솔히 했습니다. 제사도 자기 멋대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가인 제사를 안 받으니까 시기해서 죽였습니다. 그게 제사의 자손의 결과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또 반대이지요. 사울은 다윗의 아버지 뻘입니다. 나이가 그렇습니다. 사울에 비해 다윗은 벼룩이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대왕이었고 다윗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왕이 되고 나니까 교만해졌습니다. 결정적으로 버림받게 된 것은 아말렉은 그 뒤고 약속한 그 기한안에 사무엘이 오지 않는다고 번제를 가지고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마치자마자 사울이 와서 한 말이 하나님이 왕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거 때문에 버림 받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할 때 벌벌 떨었습니다. 그게 바로 제사입니다. 그리고 더 지나가면 다윗의 자손 중에서 유다 왕 중에서 우시아라는 왕이 있습니다. 나름 잘 섬겼습니다. 복을 주셔서 나라가 잘됐습니다. 그래서 거만해져서 직접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문둥병이 생겼습니다. 그 밑에서 요시아라는 왕이 있습니다. 그 왕은 하나님에게 제사를 잘 드립니다. 대표적으로 유월절입니다. 모든 제사의 핵심은 유월절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양을 잡아서 죽임으로 이스라엘에게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 유월절을 사무엘 이후로 요시아만큼 잘 지킨 사람이 없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게 핵심적인 제사입니다. 요시아 왕입니다. 다윗 이후로 가장 기뻐하시고 정치잘한 그 왕이 요시아 왕입니다. 종교 말년이 되고 예수님 시대를 종교 말년이라고 합니다. 종교의 끝입니다. 그때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제사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형식은 철저하게 갖췄는데 제사를 전부다가 외식이었습니다. 그 속에 의와 신앙을 버렸습니다. 인간중심으로 제사를 했고 세상 중심이었고 그 중에 제사가 없었습니다. 말도 잘하고 지식도 능하고 교리도 보고 흠과 정이 없는데도 표적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신령한 역사입니다. 이게 그때였고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승천하시고 남은 사도들은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입니다. 성경에는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초대 교회가 시작된 겁니다. 가인과 아벨, 그 다음 사울과 다윗이 있습니다. 우시아하고 요시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대제사장이 있고 사도들이 있습니다. 한쪽은 제사장을 실패했고 한쪽은 무서워하고 성공했습니다. 그 시작이 반복이 됩니다. 그 원인입니다. 제사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왜 하나님 앞에 백성들이 제사를 드려야합니까. 제사라는 것은 그 원인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범죄의 제사입니다. 그 내면에 들어가면 깊은 사랑이 있으니까 죄를 지어서 된 것이고 범죄에 사망한 인생이기에 필수적입니다. 제사의 목적은 구원이고 회복입니다. 에덴 동산의 지위를 회복하는 게 제사입니다. 그 방편은 과정은 대속입니다. 이렇게 제사를 정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속이 아니면 구원이 없는 것이고 대속의 예표, 그림자 그것이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가 예배하는 거처럼 예배를 하고 있는데 동기가 뭡니까. 한 분이 홈페이지에 글을 적었습니다. 예배가 엉망입니다. 그런데도 다 졸고 있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새벽기도 그날 오일밤 새벽기도는 긴장했는데 며칠 지나니 풀어집니다. 제사의 원인이 무엇이라고요. 범죄입니다. 제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원이며 회복입니다. 대속의 근본, 주님 대속입니다. 그게 대속의 근본입니다. 모든 제사의 근본 근거 출발점 원동력, 그래야 다른 제사가 생겨집니다. 이 제사를 바탕으로 해서 모든 우리 제사가 되게 되는겁니다.
주님 대속을 바라보고 미래를 바라보고 소망하면서 구약의 제사를 드린겁니다. 그러니까 복 없는 사람은 될지 안될지 아나. 형식만 갖추게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자기 전부 다 바쳐 제사드린 사람들은 건설구원 이루신겁니다. 제사의 원인, 제사의 목적, 제사의 방편 다 기억해야합니다. 이게 신약으로 내려오면 예배로 되어집니다. 제사와 예배는 좋은 것입니다. 제사가 예배를 보고 제사입니다. 예배의 원인은 무엇인가 예배의 목적이 무엇인가 오전예배 오후예배 새벽예배 이것만 예배냐 이건 형식입니다. 예배는 예배인데 예배 목적은 제사와 같습니다. 구원과 회복입니다. 예배는 드리는 건데 실제로는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게 예배입니다. 방편은 뭐냐, 같습니다. 예배의 방편은 형식과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형식이 있습니다. 예배 형식은 요소가 몇 가지입니까. 이 중에서 기도와 찬송이라는 것은 예배는 예배인데 말씀을 보조가 되어야합니다. 말씀이란 정치를 말하고 문화를 말하고 경제를 말하고 철학을 말하고 사상을 말하고 그런 것은 예배 시간에서 말하는 복음의 말씀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그 속에 대속이 들어가야합니다. 대속이 들어가야 참 말씀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것은 말하자면 당신을 작업하신 주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 대속이 들어가야합니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예배 말씀 속에 들어가야합니다. 그런 대속을 통해서 알아야하기 때문에 그게 복음입니다. 말씀 속에 대속이 없고 나를 잡아 바치는게 없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예배 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지식적으로 알고 말씀은 진리기 때문에 주님이 들어있고 대속이 들어있으면 그것은 함께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고 실제 생활에서 예배는 그때 그때 해당되는 자기를 잡아서 죽이는겁니다. 말씀에 어긋나는 것을 잡는 것이 제사입니다. 옆의 사람이 바가지를 긁고 내 속을 긁으면 바깥 공기가 이상해서 시간 전에 나가 보니까 복도를 다니면서 담배를 펴서 담배연기가 진동이 다 됩니다. 그 분을 보내면서 노숙자 차림입니다. 그런 외모를 가져도 조심스럽게 날이 많이 추우시죠. 그런데 애들이 많아서 좋게 말해서 그러면 될건데. 혹시라도 김집사님 전도 많이 하시니까 그분인가 싶어서 보니까 아니라고 합니다. 제 속에 옛사람이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덜했다면 좋게 좋게 내보냈을텐데 이것도 내 속에 저를 잡지 못하면 백 목사님 말씀하시면 고쳐야한다. 이치영 너는 속아지 때문에 큰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잡아서 죽여야합니다. 못된 좁은 속아지 그게 바로 예배입니다. 산제사입니다. 속아지를 잡고 욕심을 잡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꺾어버리고 잡는 게 제사입니다. 이것을 잡을 수 있는 받쳐야하는 것이 예배시간이고 들어서 잡아서 꺾는게 예배시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강단이 부족할 때 강단 책임을 강조하는데 이건 원론입니다. 듣는 사람은 들으면 되고 자면 자면 되고 모든 게 내 책임, 그러면 복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맘속으로 감사하는게 제가 그리 적었으면 반발심 생길 수 있습니다. 듣는 분들이 복 없게 들으면 아무리 강단에 폭포수가 떨어져도 그분들이 모르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분에게 복이 안 갑니다. 반대로 전부 강단이 부족해서 은혜 못 받아도 심려를 통해 은혜를 받는 것이 성경입니다. 복없는 사람은 늘 복이 없습니다. 불행한 겁니다. 예배 방편은 형식입니다. 기도, 찬송, 말씀입니다. 그 속에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나를 잡아 바쳐야합니다. 이런 게 들어가면 말씀이 되고 문화 어떻고 경제는 어떻고 복음은 아닙니다. 복음이란 대속이 들어가야합니다. 이런 각도로 보면 예배다운 예배가 없어진지 오래되지 않았을까. 흔하진 않을 겁니다. 예배드리는 자세는 어때야할까. 형식은 신령과 진정이어야합니다. 그 신령을 내가 도달하는 것이 진정입니다. 진실과 충성입니다. 진실하고 충성하게 다칠 수가 있는거고, 전체적으로 엘리 집안을 통해서 엘리 집안이 위대한 집안인데 제사를 무시하다가 풍비박산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도 조심해야합니다. 가인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사울과 다윗을 제사를 비교해봤습니다. 제사를 무시했기 때문에 다윗은 제사를 극히 두려워했습니다. 제사를 함부로 대하다가 가장 잘 드렸습니다. 이런 과정이 있습니다. 제사 원인은 뭐라고 했습니까 구원받은 도리입니다. 대속입니다. 예배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기도 찬송 말씀인데 말씀 속에 제사 대속 나를 바치는 게 있어야 예배가 됩니다. 예배 자세는 형식의 예배 자세는 신령과 진정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 예배가 형식부터 바뀌고 제사를 잘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