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2일 주일오전
김동민2023-10-22조회 302추천 63
2023년 10월 22일 주일 오전
찬송: 43장, 76장
본문: 사무엘상 2장 12절, 17절, 3장 12절
제사와 예배, 예배와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예배가 무엇인가 어떻게 드려야하는가 오늘의 예배와 구원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들으시는 분은 들으셨을텐데 주일학교 삼일예배에 학생들이 많이 드립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네 번 듣는데 어린 학생들은 일곱 번 드립니다. 참 좋은 것이고 장한 것입니다. 온 세계를 통틀어서 우리 공회를 빼놓고 일주일에 예배 일곱 번 드리는 곳이 없지 않을까 굉장히 귀한 겁니다. 그렇다고 잘못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 보이면 고치는 게 일입니다. 삼일예배를 드리는데 와보니까 앞에 남학생들 우리 교회 기둥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엉망이랍니다. 말씀도 안 들고 소리지르고 돌아다니고 그걸 홈페이지에 올려서 아주 심각하게 봤습니다. 아이들 문제도 있지만 어른들도 문제입니다. 어른들이 제대로 안하니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겁니다. 다른 각도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란 뭐냐 일주일에 대예배는 네 번입니다. 새벽 기도는 여섯 번입니다. 원래 일곱 번인데 실력이 부족해서 못합니다. 원래 열 한 번이 정상입니다. 한 번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매일같이 예배를 드리고 가정 예배 드리고 예배가 뭐냐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은 현재 예배 드리는 모습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학습세례 문답은 신앙을 본격적으로 출발하겠다는 건데 늦어도 3분 전에 착석을 하는 겁니다. 아무리 늦어도 3분 전에 앉아야합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겁니다. 신령이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진정은 사람에 속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받을 수 있도록 사람이 하는 겁니다.
구약에는 제사라고 했습니다. 엘리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엘리는 제사장입니다. 모세의 여호수아가 끝나고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끝나고 난 다음에 사사들을 세워서 종교와 정치를 함께 책임진 것을 사사라고 합니다. 요즘 세상의 의미가 판사같은 의미가 있는데 종교와 정치를 함께한 사람을 사사라고 합니다. 지도해 나가셨습니다. 마지막 사사가 사무엘이고 그 스승이 엘리 사사입니다. 엘리는 사무엘의 스승입니다.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 밑에서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이 사람이 아주 권위가 있는 사람이고 참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좋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사무엘 어머니 이름이 한나인데 아이가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대적이라 그러죠. 그 사람이 한나의 남편의 다른 아들이 많고 없으니까 긁어재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견디다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합니다. 여정을 돌아봐주시고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 앞에 바치겠습니다. 하고 울면서 기도하고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술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소리는 안내도 아무리 괴로워도 술 먹으면 되나 끊어라 하니까 기도를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축복 기도를 받고 태어난 게 사무엘입니다. 백목사님 해석이 그랬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아마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면 기쁠겁니다. 스승보다 제자가 나으면 그 제자를 보고 견디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제자가 스승보다 나으면 스승이 시기질투를 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스승보다 나라가 나오기 쉽지 않고 공산주의 세계는 1인자보다 2인자가 나으면 없애버립니다. 교회 안에도 그렇습니다. 우리 공회는 부목사가 없는데 부목사님이 목사님보다 앞서면 나쁘게 합니다. 일반적인 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반대로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의 손자뻘입니다. 그런 엘리 제사장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을 제쳐놓고 사무엘을 드렸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을 보러 오셨는데 세 번째도 있으니까 하나님이 이 아이인 걸 깨닫고 한 번 더 부르시거든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굉장한 장점입니다. 모두 자신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집안에서도 조카가 잘 되는 걸 사촌이 자랑하면 배가 아파 죽는 게 한국 사람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런 게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좋은 장점이 있는 엘리 제사장에게 약점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인물은 자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엘리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식들이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르는데 엘리 제사장이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3장 12절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늘같은 선배 엘리 제사장 집안을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망할건지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합니다.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서 어떻게 할거냐. 그럽니다. 어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러시겠다는데. 엘리 제사장은 아들이 둘 있습니다. 악명이 높습니다. 글자 그대로 말하면 좋지 않은 사람인데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멸시했습니다. 세상의 하나님의 제사를 멸심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다 나온 겁니다. 내 가정이 바로되고 생활이 바로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예배를 잘못 드리면 가정이 엉망이 됩니다. 성경적으로 따져갈겁니다. 하나님의 예배를 무시를 함으로 둘 다 죽었고 집안이 파탄이 됐습니다. 엘리 제사장 집안에 그러면 사사입니다. 목사입니다. 대통령입니다.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가장 높은 사람이니 자기 자식부터 철저하게 단속을 해야하는데 이게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제사에 대해서 잘못된 아들들이 잡지 못한게 책임입니다. 실수도하고 죄를 짓는데 반드시 잡아야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다 엘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제사가 무엇일까. 에덴 동산에서는 제사가 없었습니다. 죄가 없는 곳에는 제사가 없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제사가 없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가 필요없습니다. 언제부터 나왔느냐 선악과를 따먹고 쫓아내면서 여인의 후손이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인의 후손이라는 것은 앞으로는 메시아가 사람에 못 있고 성령의 잉태로 나시되 사람과 같이 오셔야되기 때문에 여인의 몸에서 나오게 할 것이, 구주 메시아가 여인의 몸에서 나와서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 이게 제사입니다 제사의 예언입니다. 아담 하와에게 가죽 옷을 만들었습니다. 죄를 짓고나니까 옷을 입었는데 무화가 나무로 잎을 엮어서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쫓아내시면서 가죽 옷을 입혔는데 짐승을 죽여야 얻을 수 있는 게 가죽입니다. 성경 기록에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 첫 기록은 가인과 아벨입니다. 세월이 지났다 그랬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의 아들들입니다. 많은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기록은 안 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몇세까지 갑니까. 930년을 살았으니까 천 년 동안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굉장히 많이 자손을 번식을 하지요. 그런데 제가 드린 기록은 없는데 가인과 아벨은 제사를 드립니다. 아담 하와가 제사를 드리고 가르쳤으니까 보고 배워서 아는 겁니다.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배울 수가 없는 겁니다. 가인 아벨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가 아벨은 바로 배워서 바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바로 드렸고 가인은 엘리 제사장 아들만큼은 아닐지라도 제사를 쉽게 봤습니다. 제사를 바로 드려서 죽은 사람이 아벨이고 자손 대대로 망한 사람이 가인입니다. 에덴 동산은 죄가 없는 곳입니다. 죄가 없으면 사망이 없습니다. 죄값은 무조건 사망입니다. 정녕 죽으리라 절대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걸 먹었기 때문에 죽어야합니다. 스스로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죽은 죄의 인생은 아무런 대가 없이 살려낼 수 없습니다. 공의의 법에 맞지 않습니다. 그 죽움에서 살리려면 어떻게하면 됩니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죽은 사람을 살리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누군가 대신 죽으면 됩니다. 대신 죽으면 죽을 거니까 살려줘라고 합니다. 그게 대속입니다. 그게 제사입니다. 범죄함으로 죽은 인생이 다시 살아나서 원래의 길을 회복할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제사는 예표라고 합니다. 미리 표시한다 이 말입니다.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죄를 지어서 영원히 죽은 인생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대신 죽여야하는데 그 대신 죽은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어야합니다. 이 사람 죄 때문에 죽었기 때문에 살리려면 죄 없는 사람이 와서 죽어야합니다. 구주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미리 표시한 것이 구약의 제사고 그 동안에 수 많은 예표 기간에 대속의 존재가 들어간 것이 전부 짐승들입니다. 양과 송아지를 수없이 잡아왔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속죄제 속건제 이런 제사를 드리는데 모두 짐승입니다. 죄값은 무조건 사망입니다. 내가 죽어야하는데 내 죽음을 대신해서,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 죽입니다. 한 사람이 지은 죄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죠. 주 직업이 그래서 목축입니다. 그 모든 짐승을 잡아죽인 것은 예표다 그 실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미리 예표했고 예수님이 오신 다음에 짐승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제물이기 때문에. 자신을 바쳐서 유월절 제물로 돌아가시고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는 겁니다. 어린 양이 직접 오셨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가 성령에 와서 짐승 잡아서 세밀하고 까다롭습니다. 형식인데 전부 다 잡아서 구원을 받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내가 가는 것이 제사다. 자기 구원을 스스로 포기하는 그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의 예배는 구약의 제사가 바로 예배입니다. 구약의 제사를 가지고 제사의 의미와 목적과 방편과 과정 이치를 가지고 맞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죄를 지어서 다시 살리는 짐승을 잡아들임으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구약의 제사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중심이 짐승잡아 드리는 것이고 오늘의 예배는 무엇을 잡아드린가 나를 잡아드렸습니다.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려라 이걸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나를 잡아서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형식의 3요소가 있습니다. 이건 많이 배웠습니다. 기도 찬송 말씀. 이게 예배의 3요소입니다. 기도와 찬송과 말씀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건 형식입니다. 외형으로 갖추는 겁니다. 먼저 기도로 해야하고 예배에 은혜를 주옵소서 그게 준비고 중심은 반드시 말씀입니다. 기도를 구하고 찬송을 준비하고 말씀이 예배 중심인데 무엇이 말씀이냐 대속이 들어가야합니다. 대속을 알리는 정하는 제사를 알리는 게 바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바치는 겁니다. 구약의 제사는 짐승을 잡아드리는 건데 이걸 예표라고 합니다. 그게 대속입니다. 내가 죽어야하는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대신 죽으신 겁니다. 우리에게 형식적으로 허락해주신 게 예배입니다. 기도와 찬송과 말씀입니다. 그 속에서 알맹이 주님이 당신을 나 대신 한 것처럼 그 대속의 힘입고 나를 바쳐드리는게 예배입니다. 이걸 가르치는 게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수많은 교회가 있고 찬양을 하고 손을 흔들고 기도를 하고 수 많은 찬양을 복음을 전하는데 그 속에 대속의 내용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사가 전하는 말씀이 들어가지 않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논리로 말을하고 무슨 말을 하고 사람을 감동 시켜도, 감동이 되면 사람이 뜨겁기도 하고 짠하기도하고 눈물도 납니다. 사람을 가장 울리는 것은 드라마 영화 극장 가면 연기하면 슬픕니다. 그래서 사람의 신앙 생활의 눈물이라는 것은 기가차서 울고 감사해서 울고 이건 괜찮은데 그냥 감동해서 우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설교 속에 세계를 말하고 일류를 말하고 모든 걸 다 말해도 제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대속이 들어가지 않으면 복음은 아닙니다. 수 많은 교회들이 예배가 없어지면 참 예배는 희미할 겁니다. 이게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예배 형식은 기도 찬송 말씀 모여서 함께 찬송하고 예배 시간을 정해서 10시에 드립니다. 9시에 드립니다. 사람이 예배를 드립니다. 형식입니다. 껍데기입니다. 껍데기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알맹이는 보호해야합니다. 껍데기 예배당은 껍데기입니다. 껍데기 없는 알맹이는 필요없는 겁니다. 껍데기만 없으면 가을 추수를 했는데 빈 껍데기입니다. 바람에 다 날아가버립니다. 수박을 잘랐는데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껍데기와 알맹이는 항상 있는 겁니다. 그 속에서 진짜 예배를 찾아야하기 때문에. 그게 진짜 예배입니다. 자기를 잡아드리는 제사의 말씀. 대속하셨으니까 이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죽으심으로 살려놨습니다. 기본 구원입니다. 너 스스로 살면서 영생을 하나, 그게 제사입니다. 모든 예배는 자신을 살려내는 겁니다. 육이 죽고 영이 살아서 이게 예배고 제사입니다. 예배는 아무리 늦어도 3분 전에 앉으셔야합니다. 예배 드릴 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아이들도 어린 젖먹이 아이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늘 기도 해야합니다. 울지 않도록 살펴주옵소서 눈물로 기르려합니다. 좀 자란 아이들은 자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과자를 먹여서 재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장난감을 주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펜을 주고 종이를 쥐여서 쓰게 하는 겁니다. 그게 아이들에게 종이와 펜을 줘서 글을 쓰게 하고 그게 장난감보다 낫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시켜서 자라게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예배와 구원입니다. 예배가 없으면 구원도 없다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1
찬송: 43장, 76장
본문: 사무엘상 2장 12절, 17절, 3장 12절
제사와 예배, 예배와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예배가 무엇인가 어떻게 드려야하는가 오늘의 예배와 구원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고 들으시는 분은 들으셨을텐데 주일학교 삼일예배에 학생들이 많이 드립니다. 어른들은 대부분 네 번 듣는데 어린 학생들은 일곱 번 드립니다. 참 좋은 것이고 장한 것입니다. 온 세계를 통틀어서 우리 공회를 빼놓고 일주일에 예배 일곱 번 드리는 곳이 없지 않을까 굉장히 귀한 겁니다. 그렇다고 잘못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 보이면 고치는 게 일입니다. 삼일예배를 드리는데 와보니까 앞에 남학생들 우리 교회 기둥될 사람입니다. 그런데 엉망이랍니다. 말씀도 안 들고 소리지르고 돌아다니고 그걸 홈페이지에 올려서 아주 심각하게 봤습니다. 아이들 문제도 있지만 어른들도 문제입니다. 어른들이 제대로 안하니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겁니다. 다른 각도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란 뭐냐 일주일에 대예배는 네 번입니다. 새벽 기도는 여섯 번입니다. 원래 일곱 번인데 실력이 부족해서 못합니다. 원래 열 한 번이 정상입니다. 한 번을 못하고 있는 겁니다. 매일같이 예배를 드리고 가정 예배 드리고 예배가 뭐냐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은 현재 예배 드리는 모습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학습세례 문답은 신앙을 본격적으로 출발하겠다는 건데 늦어도 3분 전에 착석을 하는 겁니다. 아무리 늦어도 3분 전에 앉아야합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겁니다. 신령이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진정은 사람에 속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받을 수 있도록 사람이 하는 겁니다.
구약에는 제사라고 했습니다. 엘리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엘리는 제사장입니다. 모세의 여호수아가 끝나고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끝나고 난 다음에 사사들을 세워서 종교와 정치를 함께 책임진 것을 사사라고 합니다. 요즘 세상의 의미가 판사같은 의미가 있는데 종교와 정치를 함께한 사람을 사사라고 합니다. 지도해 나가셨습니다. 마지막 사사가 사무엘이고 그 스승이 엘리 사사입니다. 엘리는 사무엘의 스승입니다. 사무엘이 엘리 제사장 밑에서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이 사람이 아주 권위가 있는 사람이고 참 겸손하고 하나님 앞에 좋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사무엘 어머니 이름이 한나인데 아이가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대적이라 그러죠. 그 사람이 한나의 남편의 다른 아들이 많고 없으니까 긁어재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견디다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합니다. 여정을 돌아봐주시고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 앞에 바치겠습니다. 하고 울면서 기도하고 애타게 기도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술을 먹었다고 생각하고 소리는 안내도 아무리 괴로워도 술 먹으면 되나 끊어라 하니까 기도를 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축복 기도를 받고 태어난 게 사무엘입니다. 백목사님 해석이 그랬습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아마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면 기쁠겁니다. 스승보다 제자가 나으면 그 제자를 보고 견디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제자가 스승보다 나으면 스승이 시기질투를 합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스승보다 나라가 나오기 쉽지 않고 공산주의 세계는 1인자보다 2인자가 나으면 없애버립니다. 교회 안에도 그렇습니다. 우리 공회는 부목사가 없는데 부목사님이 목사님보다 앞서면 나쁘게 합니다. 일반적인 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반대로 사무엘은 엘리 제사장의 손자뻘입니다. 그런 엘리 제사장이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엘리 제사장을 제쳐놓고 사무엘을 드렸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을 보러 오셨는데 세 번째도 있으니까 하나님이 이 아이인 걸 깨닫고 한 번 더 부르시거든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굉장한 장점입니다. 모두 자신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집안에서도 조카가 잘 되는 걸 사촌이 자랑하면 배가 아파 죽는 게 한국 사람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그런 게 없습니다.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위대한 좋은 장점이 있는 엘리 제사장에게 약점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인물은 자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엘리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식들이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르는데 엘리 제사장이 막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3장 12절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하늘같은 선배 엘리 제사장 집안을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망할건지 어린 사무엘에게 말씀합니다.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서 어떻게 할거냐. 그럽니다. 어쩌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러시겠다는데. 엘리 제사장은 아들이 둘 있습니다. 악명이 높습니다. 글자 그대로 말하면 좋지 않은 사람인데 악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멸시했습니다. 세상의 하나님의 제사를 멸심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거기서 모든 것이 다 나온 겁니다. 내 가정이 바로되고 생활이 바로됩니다. 반대로 말하면 예배를 잘못 드리면 가정이 엉망이 됩니다. 성경적으로 따져갈겁니다. 하나님의 예배를 무시를 함으로 둘 다 죽었고 집안이 파탄이 됐습니다. 엘리 제사장 집안에 그러면 사사입니다. 목사입니다. 대통령입니다.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가장 높은 사람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가장 높은 사람이니 자기 자식부터 철저하게 단속을 해야하는데 이게 안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제사에 대해서 잘못된 아들들이 잡지 못한게 책임입니다. 실수도하고 죄를 짓는데 반드시 잡아야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다 엘리가 될 수 있습니다. 제사가 무엇일까. 에덴 동산에서는 제사가 없었습니다. 죄가 없는 곳에는 제사가 없습니다. 에덴 동산에서는 제사가 없는 곳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사가 필요없습니다. 언제부터 나왔느냐 선악과를 따먹고 쫓아내면서 여인의 후손이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여인의 후손이라는 것은 앞으로는 메시아가 사람에 못 있고 성령의 잉태로 나시되 사람과 같이 오셔야되기 때문에 여인의 몸에서 나오게 할 것이, 구주 메시아가 여인의 몸에서 나와서 인간을 구원할 것이라 이게 제사입니다 제사의 예언입니다. 아담 하와에게 가죽 옷을 만들었습니다. 죄를 짓고나니까 옷을 입었는데 무화가 나무로 잎을 엮어서 입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쫓아내시면서 가죽 옷을 입혔는데 짐승을 죽여야 얻을 수 있는 게 가죽입니다. 성경 기록에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린 첫 기록은 가인과 아벨입니다. 세월이 지났다 그랬습니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의 아들들입니다. 많은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기록은 안 되어 있습니다. 아담이 몇세까지 갑니까. 930년을 살았으니까 천 년 동안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굉장히 많이 자손을 번식을 하지요. 그런데 제가 드린 기록은 없는데 가인과 아벨은 제사를 드립니다. 아담 하와가 제사를 드리고 가르쳤으니까 보고 배워서 아는 겁니다.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배울 수가 없는 겁니다. 가인 아벨은 아버지 어머니에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가 아벨은 바로 배워서 바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바로 드렸고 가인은 엘리 제사장 아들만큼은 아닐지라도 제사를 쉽게 봤습니다. 제사를 바로 드려서 죽은 사람이 아벨이고 자손 대대로 망한 사람이 가인입니다. 에덴 동산은 죄가 없는 곳입니다. 죄가 없으면 사망이 없습니다. 죄값은 무조건 사망입니다. 정녕 죽으리라 절대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걸 먹었기 때문에 죽어야합니다. 스스로 살아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죽은 죄의 인생은 아무런 대가 없이 살려낼 수 없습니다. 공의의 법에 맞지 않습니다. 그 죽움에서 살리려면 어떻게하면 됩니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죽은 사람을 살리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누군가 대신 죽으면 됩니다. 대신 죽으면 죽을 거니까 살려줘라고 합니다. 그게 대속입니다. 그게 제사입니다. 범죄함으로 죽은 인생이 다시 살아나서 원래의 길을 회복할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모든 제사는 예표라고 합니다. 미리 표시한다 이 말입니다. 앞으로 있을 일을 미리 나타내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는 죄를 지어서 영원히 죽은 인생이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대신 죽여야하는데 그 대신 죽은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어야합니다. 이 사람 죄 때문에 죽었기 때문에 살리려면 죄 없는 사람이 와서 죽어야합니다. 구주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미리 표시한 것이 구약의 제사고 그 동안에 수 많은 예표 기간에 대속의 존재가 들어간 것이 전부 짐승들입니다. 양과 송아지를 수없이 잡아왔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속죄제 속건제 이런 제사를 드리는데 모두 짐승입니다. 죄값은 무조건 사망입니다. 내가 죽어야하는데 내 죽음을 대신해서,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 죽입니다. 한 사람이 지은 죄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죠. 주 직업이 그래서 목축입니다. 그 모든 짐승을 잡아죽인 것은 예표다 그 실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미리 예표했고 예수님이 오신 다음에 짐승 잡아서 제사 드리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제사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제물이기 때문에. 자신을 바쳐서 유월절 제물로 돌아가시고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는 겁니다. 어린 양이 직접 오셨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가 성령에 와서 짐승 잡아서 세밀하고 까다롭습니다. 형식인데 전부 다 잡아서 구원을 받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내가 가는 것이 제사다. 자기 구원을 스스로 포기하는 그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신약의 예배는 구약의 제사가 바로 예배입니다. 구약의 제사를 가지고 제사의 의미와 목적과 방편과 과정 이치를 가지고 맞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죄를 지어서 다시 살리는 짐승을 잡아들임으로 내 죄를 대신해서 죽은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구약의 제사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중심이 짐승잡아 드리는 것이고 오늘의 예배는 무엇을 잡아드린가 나를 잡아드렸습니다.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려라 이걸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나를 잡아서 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자기 자신을 바치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의 형식의 3요소가 있습니다. 이건 많이 배웠습니다. 기도 찬송 말씀. 이게 예배의 3요소입니다. 기도와 찬송과 말씀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건 형식입니다. 외형으로 갖추는 겁니다. 먼저 기도로 해야하고 예배에 은혜를 주옵소서 그게 준비고 중심은 반드시 말씀입니다. 기도를 구하고 찬송을 준비하고 말씀이 예배 중심인데 무엇이 말씀이냐 대속이 들어가야합니다. 대속을 알리는 정하는 제사를 알리는 게 바로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바치는 겁니다. 구약의 제사는 짐승을 잡아드리는 건데 이걸 예표라고 합니다. 그게 대속입니다. 내가 죽어야하는겁니다. 그런데 주님이 대신 죽으신 겁니다. 우리에게 형식적으로 허락해주신 게 예배입니다. 기도와 찬송과 말씀입니다. 그 속에서 알맹이 주님이 당신을 나 대신 한 것처럼 그 대속의 힘입고 나를 바쳐드리는게 예배입니다. 이걸 가르치는 게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수많은 교회가 있고 찬양을 하고 손을 흔들고 기도를 하고 수 많은 찬양을 복음을 전하는데 그 속에 대속의 내용이 들어가지 않으면 제사가 전하는 말씀이 들어가지 않으면 복음이 아닙니다. 논리로 말을하고 무슨 말을 하고 사람을 감동 시켜도, 감동이 되면 사람이 뜨겁기도 하고 짠하기도하고 눈물도 납니다. 사람을 가장 울리는 것은 드라마 영화 극장 가면 연기하면 슬픕니다. 그래서 사람의 신앙 생활의 눈물이라는 것은 기가차서 울고 감사해서 울고 이건 괜찮은데 그냥 감동해서 우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설교 속에 세계를 말하고 일류를 말하고 모든 걸 다 말해도 제사가 들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대속이 들어가지 않으면 복음은 아닙니다. 수 많은 교회들이 예배가 없어지면 참 예배는 희미할 겁니다. 이게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예배 형식은 기도 찬송 말씀 모여서 함께 찬송하고 예배 시간을 정해서 10시에 드립니다. 9시에 드립니다. 사람이 예배를 드립니다. 형식입니다. 껍데기입니다. 껍데기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알맹이는 보호해야합니다. 껍데기 예배당은 껍데기입니다. 껍데기 없는 알맹이는 필요없는 겁니다. 껍데기만 없으면 가을 추수를 했는데 빈 껍데기입니다. 바람에 다 날아가버립니다. 수박을 잘랐는데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껍데기와 알맹이는 항상 있는 겁니다. 그 속에서 진짜 예배를 찾아야하기 때문에. 그게 진짜 예배입니다. 자기를 잡아드리는 제사의 말씀. 대속하셨으니까 이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죽으심으로 살려놨습니다. 기본 구원입니다. 너 스스로 살면서 영생을 하나, 그게 제사입니다. 모든 예배는 자신을 살려내는 겁니다. 육이 죽고 영이 살아서 이게 예배고 제사입니다. 예배는 아무리 늦어도 3분 전에 앉으셔야합니다. 예배 드릴 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아이들도 어린 젖먹이 아이들도 어쩔 수 없습니다. 늘 기도 해야합니다. 울지 않도록 살펴주옵소서 눈물로 기르려합니다. 좀 자란 아이들은 자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과자를 먹여서 재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장난감을 주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펜을 주고 종이를 쥐여서 쓰게 하는 겁니다. 그게 아이들에게 종이와 펜을 줘서 글을 쓰게 하고 그게 장난감보다 낫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시켜서 자라게 되는 겁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예배와 구원입니다. 예배가 없으면 구원도 없다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