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0일 주일 오후
김동민2023-07-30조회 285추천 29
2023년 7월 30일 주일 오후
찬송: 9장, 168장
본문: 전도서 7장 1절 ~ 4절
5절 끝에 연락이라는 말은 즐겁게 잔치한다는 말입니다. 연락이라는 말은 소식을 전한다는 말도 있지요. 여기는 즐겁게 잔치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기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합니다. 두 번째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 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다른 비교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름과 보배로운 이름을 비교하고 있고 죽는 날과 출생하는 날을 비교하고 초상집과 잔치집을 비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같이 됨이라. 초상집에 가는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게 되고 모든 사람이 결국이 세월 속에 쌓여서 마지막에 이름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재벌 회장이 평생을 살아서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제물이 남아있어봐야 없어집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남아있습니다. 백영희 연구소의 취지 중에 하나, 서부교회를 감당할 임자가 없을테니까 공교를 만들어놓고 책임자를 세워서 그 책임자가 그 지역의 목회자가 되어서 개척교회가 되어서 주변의 주일학생과 모이면 공회 교인들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렇게 분교를 30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시고 나니까 분교를 독립을 시켜서 개척을 시킬 그런 쪽으로 가야하는데 구역장부터 목사님까지도 자기 구역식구를 떼주어야하니까 없었습니다. 단 한 구역장도 분교를 개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분교는 지금도 있는데 서부교회 교인은 4천명이 있었는데 다 가버렸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안 따라가니까 욕심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때 부산에서 개척교회에 좀 허무하지만 있고 좌천동에 있지만 우리 교회가 있는 겁니다. 다른 곳은 다 없어졌습니다. 그때 백 목사님께서 분교를 세우시고 신풍목사님께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칼빈이 세운 교회는 없어졌습니다. 주일 날은 아예 술집은 없었습니다. 목회자이면서 그런 칼빈의 모습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칼빈이 세운 교회는 다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강요라는 책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연구소를 세워야한다고 하셔서 세운 것이 백영희 목회 연구소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조금 전에 드린 것을 생각을 했는데 잊어버렸는데,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그런 것이 되는 겁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그 뜻입니다. 노는데에만 주지말고 여기에 죽는 날에 세월이 지나가는 흔적이 있고 마지막에 흔적이 남는 게 살아가면 이름이 남습니다. 그래서 초상집에 여기에 마음을 두고 슬프니 웃음보다 나으니 슬픔이 낫습니까 기쁨이 낫습니까. 기쁨이 좋은것이지. 현실도 있지만 마지막 종착점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서는 되게 마지막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의 결국, 마지막을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이 이러기 때문에 마지막 종착점을 가는 것이 전도서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나을 수가 없는데 왜 그러냐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라. 사람들이 마음이 좋게 되는게 평안하게 잔잔하게 좋게 됩니다. 여기에 마음이 좋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웃음과 마음이 좋은 것을 생각하니까 그런데 여기는 얼굴에 근심하므로 마음이 좋게 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에 근심과 마음이 따로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마음이 좋으면 웃음이 나올 것이고,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웃음이 나옵니다. 근심이 없습니다. 마냥 행복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에 슬픔이 있고 근심이 있으니까 근심이 나타납니다. 이게 좋은 마음이라고 합니다. 슬픈 마음이 좋은 마음이고 근심하는 마음이 좋은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잔치집에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먹고 마시고 춤추는 데에 마음이 있습니다. 아이들 결혼식장은 안 보내더라도 장례식에 데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공회 결혼식을 벗어난 결혼식은 허영이 잔뜩 들었습니다. 세상 결혼식에 가면 점심이나 저녁에 축의금 내고 밥먹을련지요. 한 끼에 적어도 3만원 할 것이고 웬만하면 7~8만원 할 것인데 보통 300 400명 것을 준비합니다. 그러면 얼마입니까. 한끼 10만원짜리 점심 300명 3000만원입니다. 예식장 꾸미는 것도 몇 십만원 할걸요. 속으로 참 바보고 어리석다. 왜 그리 사람이 대다수는 다 학벌이 높은 사람입니다. 돈을 길바닥에 뿌리는 겁니다. 사진 한 번 찍으면 그 사진 평생에 얼마나 봅니까. 그냥 사진관에 찍으면 되는 거지. 학벌 좋아봐야 머리 좋아봐야 많이 배워봐야 사람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장사꾼들의 상술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결혼식 전부 허영입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돈 쏟아붇고 왜 그렇게 갖다 들이냐 그거라는 것이죠. 우리 공회 결혼식은 들리는 겁니다. 마음껏 들여봐야 백만원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결혼식을 어린 아이들은 보여주면 전부 속는 거다. 전부 장사꾼들의 상술에 농락을 당하는 것이다. 전부 허영과 허욕입니다. 그런 곳에 마음을 다는 사람을 우매자라고 합니다. 어리석고 둔하고 미련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결혼하는 그런 모습. 먹고 마시고 마음이 좋고 노래가락이 나오고 춤을 추고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고 춤추고 시끄럽게 떠드는 그곳에 있는 마음은 지저분합니다. 마음이 깨끗할 수가 없습니다. 좋긴 좋은데, 육신이 즐거우면 마음은 음란해집니다. 얼굴에 근심하고 이유가 어찌되었든 돈을 떼였든 사고가 났든 이유야 불문하고 마음에 근심이 생기면 마음이 좋아집니다. 마음이 침울하고 슬프고 괴롭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마음에 생각이 많아지면 정리정돈하면서 여러 가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특히 하나님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마치 드라크마 잃어버린 여인이 찾을 때 빗자루로 쓸어냅니다. 그런 마음이 좋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는 마음이 비판과 평가 사리 판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육이 죽고 영이 살고 나는 죽고 주님 살고. 초상집에 가는 것입니다. 슬픕니다. 돌아보면서 인생이란 이런 것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에 초상집이 있고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1절부터 4절까지가 이어집니다.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돌아봐야겠습니다. 내 마음은 어디 있는가 잔치집에 갈 일이 있으면 들배를 들썩입니다. 초상집에 가면 힘듭니다. 내 마음은 연락하는데 잔치집같은 환경을 좋아하는지 초상집같은 것을 좋아하는지 잔치집을 좋아하는 사람은 우매한 사람이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초상집을 즐겁게 찾는 자는 지혜있는 자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 해놨습니다. 그게 맞는 말인데 껍데기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존재마다 이름을 붙였습니다. 성경적으로 그 존재에 특성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존재에 정체성 그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남자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지는 거, 남자는 주인이다. 여자라는 이름은 무엇인가요.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 종속되고 남존여비가 되고 종이 되고 그러면 유교 사상이 되는 것이고, 결국 돕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다를 높다 그러십니다. 공간, 이런 의미를 담은게 하늘입니다. 바다, 바다는 이름의 뜻은 물이 많이 모여있다는 뜻입니다. 물이 많으니까 여러 가지 생물이 있겠지요. 늑대, 양을 잘 잡아먹는 맹수. 소라 그러면 무언의 헌신, 이런 것을 다 이름이라고 그럽니다. 진흙이라고 그러면 단단하게 뭍혀진 것입니다. 모든 존재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존재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존재의 특성을 말합니다. 사람도 모든 사람도 이름이 다 있습니다. 기본적인 이름이 있는데 이게 이름과 그와 살아가는 걸어가는 흔적, 쌓은 경력이 이름입니다. 모든 사람 예외 없이, 그 사람의 이름이란 그 사람의 생애의 흔적이 따라붙습니다. 이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름이 없어도 이력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자마자 무식한 집에는 이름을 지을 줄 몰라서 개똥이, 마당쇠 이렇게 붙였습니다. 유럽 쪽의 이름은 직업따라 짓는 것이지요. 구두만드는 사람, 대장장이, 농사짓는 사람 그렇게 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신발 만드는 사람, 저 집안은 기술자구나 그렇게 아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이라는 것은 옛날 이름을 보면 마당쇠라고 합니다. 여기서 각자 자기 이름 생각해보고 아는 분, 그분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여러 모양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하면 아름다운 이름, 아주 고약한 이름 이런 게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란 행적이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이력, 이게 있어야 아름다운 이름이 붙게 됩니다. 아름답지 못한 생애를 살았는데 없는 겁니다. 헌신적인 생애를 살았으면 헌신적인 이름이 붙는 겁니다. 충성적인 생애를 살았으면 충성적인 이름이 붙는 것입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귀한 것은 나시기 전에 지은 것 그 주의 이름 예수. 예수의 이름은 구주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에는 도성인신이 들었고 대속의 공로가 들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생애, 그분의 공로, 이름, 성령에는 아름다운 이름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에녹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이름입니다. 엘리사는 피동되지 않고 스승 따라가는 엘리사입니다. 다윗의 이름은 만왕의 왕입니다. 이런 이름들이 있습니다. 많은 이름들. 그러니까 이름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름이 다 있습니다. 모든 생물은 이름이 다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은 흔적을 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생애. 가난하고 친척 없고 건강 없고 비참하게 살아도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홍포입은 부자의 이름은 자기를 꾸몄고 아름답게 했고 그것입니다. 여기서 들어가서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세상 모든 존재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든 것입니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서로 공생한다는 말일까요, 상호협조 상호보완 이런 관계로 만드신 것입니다. 땅은 하늘이 있어야합니다. 완전히 다른데 땅이 없으면 하늘도 없는 것입니다. 바다와 육지라는 것은 거의 없는데 협조 보완을 해야합니다. 쉽게 말하면 흙은 식물을 내고 식물을 내지 못하는 흙은 가치가 없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흙이란 식물을 내고 그 식물은 흙을 먹고 삽니다. 그 식물을 먹는 초식 동물이 있습니다. 그 동물은 식물을 먹고 삽니다. 또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들의 배설물로 식물을 튀웁니다. 불교도 알고 유교도 알고 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없애버리면 사람들 다 죽습니다. 사람이 살려면 하늘 땅 바다 짐승 식물 다 필요합니다. 이게 상호보완하는 관계입니다. 이 세상이고 그 속에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회적이라고 합니다. 인간만 사회적 동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생애는, 독불장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아주 못된 말입니다. 지옥에 밑바닥에 갈 수 있는 말입니다. 혼자 태어나는 자존자 독존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지.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모든 사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뗄 수 없는 관계의 중요한 것은 내 생애에 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데 나의 이름으로 나와 연관된 선배와 혹은 선조와 내 자녀와 자손에 따라서 영향받고 결정적으로 내 이름은 모든 연관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결정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결정하는데 거기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 이름이 같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름에 무엇이 붙는다고요. 이새가 붙습니다. 이것만 알지 다윗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아픈 손가락이 있습니다. 아픈 손가락이 붙습니다. 뗄 수 없는 이름입니다. 압살론이 나쁜 짓을 했고 반역을 했고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밀었는데 그런 아들이 생겼는데 그 아버지가 다윗입니다. 압몬이라는 이름도 뗄 수 없습니다. 아픈 손가락. 다윗에게 그런 손가락이 없을 것이고 다윗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 생겼습니다. 좋은 이름 아름다운 이름 그 내면에 이런 이름도 들어갈 수 있는겁니다. 노아라는 역사를 새로 출발시킨 그 역사가 노인데 아픈 손가락 누굽니까. 함이라는 이름은 노아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게 노아의 이름에 붙은겁니다. 나라는 사람이 나의 생애에 내 이름보다 나은데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합이라는 이름에 이세벨이라는 이름이 따릅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에는 룻이 따라갑니다. 그곳에는 보아스가 따라갑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빛나는 것은 백영희라는 이름 때문에 그렇습니다. 백영희라는 제자 때문에 더 위대하게 되는겁니다. 백영희라는 생애에 주남선을 뺄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 되었을까, 그분은 거창에서 태어나서 자라서 그 교회에서 목사되고 돌아가셨습니다. 희귀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어렵습니다. 그게 위대한데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자기 제자가 백영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성경 깨달음도 있습니다. 제자가 올라오면서 그런 것이 없습니다. 백영희 집사가 나보다 설교를 훨씬 더 잘합니다. 세례 요한의 가장 특이한 장점 중 하나입니다. 가장 훌륭한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 생애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이름이 붙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되고 추한 이름이 됩니다. 혼자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아름답게 걸어가니까 이새까지 아름답게 되고 많은 조상이 그렇게 되고 압살론 때문에 다윗이 상처가 생기고 함 때문에 노아에게 상처가 생깁니다. 가신 분의 생애를 두고 남은 가족 마찬가지를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와 연관된 나의 부모님, 스승들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백영희 목사님의 제자라고 하는데, 우리가 잘못 살면 내가 잘못 살았는데 백영희가는 이름이 되는겁니다. 아픈 손가락이 되는겁니다. 연결되는 겁니다. 기억을 하십시다. 이름의 범위를 기억하십시다.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을 분별하는 것이 이름입니다. 혼자만의 이름이 아닙니다. 원치 않는 이름이 아니고 붙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안 좋은 행위로 통해서 내가 바로 되면 그 이름이 크게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개는 이새는 기억을 해도 압살론은 기억을 안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윗에 애타는 심정을 꺾어버린 자가 요압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의 현실의 생활은 나의 이름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 흔적이 되는 겁니다. 내 이름이라는 것은 나 혼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부모의 이름 형제의 이름 스승의 이름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운 이름이 남도록, 다름다운 이름이 남도록 기도 많이 하신 분 전도 많이 하신 분 헌신하신 분 그런 이름으로 많은 사람에게 남아있을 수 있을수록 주님앞에 가셨을 때 변치않도록, 실제 이름은 아름다운데 실제는 그리 되지 않기를 않도록.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어가는 생애를 만들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립니다.
찬송: 9장, 168장
본문: 전도서 7장 1절 ~ 4절
5절 끝에 연락이라는 말은 즐겁게 잔치한다는 말입니다. 연락이라는 말은 소식을 전한다는 말도 있지요. 여기는 즐겁게 잔치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기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합니다. 두 번째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 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다른 비교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름과 보배로운 이름을 비교하고 있고 죽는 날과 출생하는 날을 비교하고 초상집과 잔치집을 비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같이 됨이라. 초상집에 가는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게 되고 모든 사람이 결국이 세월 속에 쌓여서 마지막에 이름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재벌 회장이 평생을 살아서 많은 것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제물이 남아있어봐야 없어집니다. 그런데 그 이름은 남아있습니다. 백영희 연구소의 취지 중에 하나, 서부교회를 감당할 임자가 없을테니까 공교를 만들어놓고 책임자를 세워서 그 책임자가 그 지역의 목회자가 되어서 개척교회가 되어서 주변의 주일학생과 모이면 공회 교인들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렇게 분교를 30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가시고 나니까 분교를 독립을 시켜서 개척을 시킬 그런 쪽으로 가야하는데 구역장부터 목사님까지도 자기 구역식구를 떼주어야하니까 없었습니다. 단 한 구역장도 분교를 개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분교는 지금도 있는데 서부교회 교인은 4천명이 있었는데 다 가버렸습니다. 백 목사님께서 안 따라가니까 욕심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때 부산에서 개척교회에 좀 허무하지만 있고 좌천동에 있지만 우리 교회가 있는 겁니다. 다른 곳은 다 없어졌습니다. 그때 백 목사님께서 분교를 세우시고 신풍목사님께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칼빈이 세운 교회는 없어졌습니다. 주일 날은 아예 술집은 없었습니다. 목회자이면서 그런 칼빈의 모습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칼빈이 세운 교회는 다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강요라는 책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연구소를 세워야한다고 하셔서 세운 것이 백영희 목회 연구소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조금 전에 드린 것을 생각을 했는데 잊어버렸는데,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그런 것이 되는 겁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 그 뜻입니다. 노는데에만 주지말고 여기에 죽는 날에 세월이 지나가는 흔적이 있고 마지막에 흔적이 남는 게 살아가면 이름이 남습니다. 그래서 초상집에 여기에 마음을 두고 슬프니 웃음보다 나으니 슬픔이 낫습니까 기쁨이 낫습니까. 기쁨이 좋은것이지. 현실도 있지만 마지막 종착점을 두고 말씀하십니다. 전도서는 되게 마지막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의 결국, 마지막을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이 이러기 때문에 마지막 종착점을 가는 것이 전도서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나을 수가 없는데 왜 그러냐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라. 사람들이 마음이 좋게 되는게 평안하게 잔잔하게 좋게 됩니다. 여기에 마음이 좋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웃음과 마음이 좋은 것을 생각하니까 그런데 여기는 얼굴에 근심하므로 마음이 좋게 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에 근심과 마음이 따로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마음이 좋으면 웃음이 나올 것이고,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웃음이 나옵니다. 근심이 없습니다. 마냥 행복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씀하시기를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에 슬픔이 있고 근심이 있으니까 근심이 나타납니다. 이게 좋은 마음이라고 합니다. 슬픈 마음이 좋은 마음이고 근심하는 마음이 좋은 마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잔치집에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먹고 마시고 춤추는 데에 마음이 있습니다. 아이들 결혼식장은 안 보내더라도 장례식에 데려가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공회 결혼식을 벗어난 결혼식은 허영이 잔뜩 들었습니다. 세상 결혼식에 가면 점심이나 저녁에 축의금 내고 밥먹을련지요. 한 끼에 적어도 3만원 할 것이고 웬만하면 7~8만원 할 것인데 보통 300 400명 것을 준비합니다. 그러면 얼마입니까. 한끼 10만원짜리 점심 300명 3000만원입니다. 예식장 꾸미는 것도 몇 십만원 할걸요. 속으로 참 바보고 어리석다. 왜 그리 사람이 대다수는 다 학벌이 높은 사람입니다. 돈을 길바닥에 뿌리는 겁니다. 사진 한 번 찍으면 그 사진 평생에 얼마나 봅니까. 그냥 사진관에 찍으면 되는 거지. 학벌 좋아봐야 머리 좋아봐야 많이 배워봐야 사람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장사꾼들의 상술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결혼식 전부 허영입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서 돈 쏟아붇고 왜 그렇게 갖다 들이냐 그거라는 것이죠. 우리 공회 결혼식은 들리는 겁니다. 마음껏 들여봐야 백만원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결혼식을 어린 아이들은 보여주면 전부 속는 거다. 전부 장사꾼들의 상술에 농락을 당하는 것이다. 전부 허영과 허욕입니다. 그런 곳에 마음을 다는 사람을 우매자라고 합니다. 어리석고 둔하고 미련하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결혼하는 그런 모습. 먹고 마시고 마음이 좋고 노래가락이 나오고 춤을 추고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고 춤추고 시끄럽게 떠드는 그곳에 있는 마음은 지저분합니다. 마음이 깨끗할 수가 없습니다. 좋긴 좋은데, 육신이 즐거우면 마음은 음란해집니다. 얼굴에 근심하고 이유가 어찌되었든 돈을 떼였든 사고가 났든 이유야 불문하고 마음에 근심이 생기면 마음이 좋아집니다. 마음이 침울하고 슬프고 괴롭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마음에 생각이 많아지면 정리정돈하면서 여러 가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믿는 사람은 특히 하나님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마치 드라크마 잃어버린 여인이 찾을 때 빗자루로 쓸어냅니다. 그런 마음이 좋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는 마음이 비판과 평가 사리 판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 육이 죽고 영이 살고 나는 죽고 주님 살고. 초상집에 가는 것입니다. 슬픕니다. 돌아보면서 인생이란 이런 것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음에 초상집이 있고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1절부터 4절까지가 이어집니다. 우리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돌아봐야겠습니다. 내 마음은 어디 있는가 잔치집에 갈 일이 있으면 들배를 들썩입니다. 초상집에 가면 힘듭니다. 내 마음은 연락하는데 잔치집같은 환경을 좋아하는지 초상집같은 것을 좋아하는지 잔치집을 좋아하는 사람은 우매한 사람이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초상집을 즐겁게 찾는 자는 지혜있는 자입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 해놨습니다. 그게 맞는 말인데 껍데기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존재마다 이름을 붙였습니다. 성경적으로 그 존재에 특성을 나타냅니다. 다시 말하면 그 존재에 정체성 그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남자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지는 거, 남자는 주인이다. 여자라는 이름은 무엇인가요. 여자는 남자에게서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게 성경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에게 종속되고 남존여비가 되고 종이 되고 그러면 유교 사상이 되는 것이고, 결국 돕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다를 높다 그러십니다. 공간, 이런 의미를 담은게 하늘입니다. 바다, 바다는 이름의 뜻은 물이 많이 모여있다는 뜻입니다. 물이 많으니까 여러 가지 생물이 있겠지요. 늑대, 양을 잘 잡아먹는 맹수. 소라 그러면 무언의 헌신, 이런 것을 다 이름이라고 그럽니다. 진흙이라고 그러면 단단하게 뭍혀진 것입니다. 모든 존재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존재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존재의 특성을 말합니다. 사람도 모든 사람도 이름이 다 있습니다. 기본적인 이름이 있는데 이게 이름과 그와 살아가는 걸어가는 흔적, 쌓은 경력이 이름입니다. 모든 사람 예외 없이, 그 사람의 이름이란 그 사람의 생애의 흔적이 따라붙습니다. 이게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이름이 없어도 이력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자마자 무식한 집에는 이름을 지을 줄 몰라서 개똥이, 마당쇠 이렇게 붙였습니다. 유럽 쪽의 이름은 직업따라 짓는 것이지요. 구두만드는 사람, 대장장이, 농사짓는 사람 그렇게 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신발 만드는 사람, 저 집안은 기술자구나 그렇게 아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이라는 것은 옛날 이름을 보면 마당쇠라고 합니다. 여기서 각자 자기 이름 생각해보고 아는 분, 그분은 어떻게 태어났습니까. 여러 모양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하면 아름다운 이름, 아주 고약한 이름 이런 게 있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란 행적이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이력, 이게 있어야 아름다운 이름이 붙게 됩니다. 아름답지 못한 생애를 살았는데 없는 겁니다. 헌신적인 생애를 살았으면 헌신적인 이름이 붙는 겁니다. 충성적인 생애를 살았으면 충성적인 이름이 붙는 것입니다.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귀한 것은 나시기 전에 지은 것 그 주의 이름 예수. 예수의 이름은 구주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예수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에는 도성인신이 들었고 대속의 공로가 들었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로라는 뜻입니다. 그분의 생애, 그분의 공로, 이름, 성령에는 아름다운 이름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에녹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동행이라는 이름입니다. 엘리사는 피동되지 않고 스승 따라가는 엘리사입니다. 다윗의 이름은 만왕의 왕입니다. 이런 이름들이 있습니다. 많은 이름들. 그러니까 이름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름이 다 있습니다. 모든 생물은 이름이 다 있습니다. 모든 존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은 흔적을 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생애. 가난하고 친척 없고 건강 없고 비참하게 살아도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홍포입은 부자의 이름은 자기를 꾸몄고 아름답게 했고 그것입니다. 여기서 들어가서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세상 모든 존재라는 것은 하나님이 만든 것입니다. 사회적이라는 말은 서로 공생한다는 말일까요, 상호협조 상호보완 이런 관계로 만드신 것입니다. 땅은 하늘이 있어야합니다. 완전히 다른데 땅이 없으면 하늘도 없는 것입니다. 바다와 육지라는 것은 거의 없는데 협조 보완을 해야합니다. 쉽게 말하면 흙은 식물을 내고 식물을 내지 못하는 흙은 가치가 없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흙이란 식물을 내고 그 식물은 흙을 먹고 삽니다. 그 식물을 먹는 초식 동물이 있습니다. 그 동물은 식물을 먹고 삽니다. 또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들의 배설물로 식물을 튀웁니다. 불교도 알고 유교도 알고 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없애버리면 사람들 다 죽습니다. 사람이 살려면 하늘 땅 바다 짐승 식물 다 필요합니다. 이게 상호보완하는 관계입니다. 이 세상이고 그 속에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회적이라고 합니다. 인간만 사회적 동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두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의 생애는, 독불장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아주 못된 말입니다. 지옥에 밑바닥에 갈 수 있는 말입니다. 혼자 태어나는 자존자 독존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존자지. 사람은 먹어야 삽니다. 모든 사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뗄 수 없는 관계의 중요한 것은 내 생애에 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데 나의 이름으로 나와 연관된 선배와 혹은 선조와 내 자녀와 자손에 따라서 영향받고 결정적으로 내 이름은 모든 연관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결정하게 되는 겁니다. 내가 결정하는데 거기에 따라서 많은 사람들 이름이 같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이름에 무엇이 붙는다고요. 이새가 붙습니다. 이것만 알지 다윗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아픈 손가락이 있습니다. 아픈 손가락이 붙습니다. 뗄 수 없는 이름입니다. 압살론이 나쁜 짓을 했고 반역을 했고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밀었는데 그런 아들이 생겼는데 그 아버지가 다윗입니다. 압몬이라는 이름도 뗄 수 없습니다. 아픈 손가락. 다윗에게 그런 손가락이 없을 것이고 다윗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 생겼습니다. 좋은 이름 아름다운 이름 그 내면에 이런 이름도 들어갈 수 있는겁니다. 노아라는 역사를 새로 출발시킨 그 역사가 노인데 아픈 손가락 누굽니까. 함이라는 이름은 노아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게 노아의 이름에 붙은겁니다. 나라는 사람이 나의 생애에 내 이름보다 나은데 같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합이라는 이름에 이세벨이라는 이름이 따릅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에는 룻이 따라갑니다. 그곳에는 보아스가 따라갑니다. 주남선 목사님은 위대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빛나는 것은 백영희라는 이름 때문에 그렇습니다. 백영희라는 제자 때문에 더 위대하게 되는겁니다. 백영희라는 생애에 주남선을 뺄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 되었을까, 그분은 거창에서 태어나서 자라서 그 교회에서 목사되고 돌아가셨습니다. 희귀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어렵습니다. 그게 위대한데 그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자기 제자가 백영희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이 성경 깨달음도 있습니다. 제자가 올라오면서 그런 것이 없습니다. 백영희 집사가 나보다 설교를 훨씬 더 잘합니다. 세례 요한의 가장 특이한 장점 중 하나입니다. 가장 훌륭한 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 생애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이름이 붙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되고 추한 이름이 됩니다. 혼자만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아름답게 걸어가니까 이새까지 아름답게 되고 많은 조상이 그렇게 되고 압살론 때문에 다윗이 상처가 생기고 함 때문에 노아에게 상처가 생깁니다. 가신 분의 생애를 두고 남은 가족 마찬가지를 따라서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와 연관된 나의 부모님, 스승들 달라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백영희 목사님의 제자라고 하는데, 우리가 잘못 살면 내가 잘못 살았는데 백영희가는 이름이 되는겁니다. 아픈 손가락이 되는겁니다. 연결되는 겁니다. 기억을 하십시다. 이름의 범위를 기억하십시다. 이름이라는 것은 사람을 분별하는 것이 이름입니다. 혼자만의 이름이 아닙니다. 원치 않는 이름이 아니고 붙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안 좋은 행위로 통해서 내가 바로 되면 그 이름이 크게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개는 이새는 기억을 해도 압살론은 기억을 안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아픈 손가락이 있는 것입니다. 그 다윗에 애타는 심정을 꺾어버린 자가 요압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의 현실의 생활은 나의 이름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 흔적이 되는 겁니다. 내 이름이라는 것은 나 혼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부모의 이름 형제의 이름 스승의 이름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운 이름이 남도록, 다름다운 이름이 남도록 기도 많이 하신 분 전도 많이 하신 분 헌신하신 분 그런 이름으로 많은 사람에게 남아있을 수 있을수록 주님앞에 가셨을 때 변치않도록, 실제 이름은 아름다운데 실제는 그리 되지 않기를 않도록.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어가는 생애를 만들어야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