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0일 주일 오전
김동민2023-07-30조회 291추천 26
2023년 7월 30일 주일 오전
본문: 전도서 7장 1절 ~ 5절
지난 주간에 집사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셔서 장례식이 있으셨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시고 연세가 되셔서 불편하셔서 병원에 계셨습니다. 입관 예배 때는 누가복음 16장 홍포입은 부자의 세상에서의 시각과 음부에 가서 시각을 달라진 것을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몸이 약하면 마음이 밝아지게 되고 죽음이 임박하면 밝아지게 됩니다. 내세 실제를 보면 알게 되는겁니다.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지만 집적 보게 되면 얼굴과 얼굴을 보게 됩니다. 택자나 불택자나 고깃덩어리는 흙이 됩니다. 숨을 거두는 그 순간 낙원에 가고 불택자는 음부에 갑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천년왕국이 있고 무궁세계가 펼쳐지는데 그 기간을 택자의 낙원 음부에 대기소에 있습니다. 영과 혼은 택자는 낙원에 불택자는 음부에 있습니다. 고깃덩어리 인간입니다. 한문으로 하면 육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 고깃덩어리나 소의 고깃덩어리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 속에 있는 마음과 영이 다릅니다. 마음은 같은데 차이가 있습니다. 짐승도 생각을 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소도 눈물을 흘립니다. 송아지를 빼놓고 어미소를 쫓애나면 죽어간다고 합니다. 강아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소도 있습니다. 닭도 있습니다. 닭이 병아리 때부터 기르니까 어릴 때부터 밥상에 앉아 있으니까 김치를 안 주면 안 먹는다고 합니다. 그 닭은 치킨을 만들어서 삶아먹고 구워먹고 왜 그럽니까. 사람의 고깃덩어리는 말 그대로 고급적인 고깃덩어리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마음을 떼버리면 시체가 되어버립니다. 영과 몸이 나뉘는 것을 죽음이라고 그럽니다. 홍포입은 부자는 죽고난 다음 음부에 갔습니다. 가치관이 뒤집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사로에게 시켜서 형제 다섯이 있는데 죽어서 음부왔지만 형제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르치기를 나처럼 살라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그렇게 가르쳤고 그렇게 이끌었고 도와줬습니다. 와서 보니까 뒤집어졌습니다. 내 형제 다섯이 나처럼 살고 있는데 그들도 나처럼 살면 음부에 올거니까 나사로를 보내어 그렇게 가르쳐주십시오 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정확한 말입니다. 음부에 가서 말했는데 환하게 보이는겁니다. 그래서 안된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보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더 밝아집니다. 그것을 미리보고 가르치는게 홍보입은 부자의 기록입니다. 얼마든지 가르치는게 부자와 나사로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아무만 들어도 성경을 수도 없이 읽어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강팍이라고 합니다. 전도서 7장 6절에 보면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해놨습니다. 죽는 날과 출생하는 날, 초상집과 잔칫집을 놓고 비교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이해가 됩니다만은 일반적으로 볼 때 의미가 안되는 겁니다.
향유는 값이 굉장히 비쌉니다. 300데나리온이라고 하는데 10달치 월급하고 맞바꾸는 것입니다. 그게 보배로운 기름입니다. 가장 비싼 물질 귀하게 보이고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보배로운 기름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명예라고 합니다. 명예라는 말은 이름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명예보다는 물질을 취하는게 보통 사람입니다. 옛날로 말하면 좀 잘못된 사상으로 역시지만 양반 상놈이 있습니다. 양반은 명예가 있고 농사를 안합니다. 그 다음 일반 양민들은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나라 제1의 재벌이 뭐하는 것입니까. 장사꾼들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 돈을 많이 법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양반이 중요하지 농사를 안 짓습니다. 그래서 500년동안 나라를 말아 먹었습니다. 그래도 명예를 중시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명예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성경 기준으로 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 교회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데 많은 것을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를 생각을 하고 엄마도 생각을 하고 베경과 특성을 답아서 말합니다. 그냥 붙이면 되는데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붙여놓은 껍데기입니다. 성경적으로 따져서 이름이라는 것은 특성을 담아놓고 정체성을 담아놓는 게 이름입니다. 그 존재의 정체성을 담아놓은 게 이름이고 동시에 기본적인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의 성씨가 있고 이름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 이름이라는 것이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아오게 되면 점점 밑에 이름이라는 이름 아래 헌접이 쌓이게 됩니다. 그것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에 붙은 행적이 붙어다닙니다. 흔적이 따라다닙니다. 이걸 가르켜 아름다운 이름이 라고 말합니다. 보배로운 기름보다는 어떤 이름이 낫습니까. 그런데 이름이 고은데 어떤 같은 이름 김고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마구잡이로 살면 그 이름이 아름답습니까 추합니까. 이름이 아깝다고 합니다. 이름은 붙인다고 해서 다 아름다운 이름이 아닙니다. 행적이 아름다워야 아름답습니다. 세월 속에 살아온 곳에 행적이 있습니다. 행동 처신 관계 결정처리, 그게 아름다울 때 이름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명예입니다. 흰머리, 백발은 성경적으로 좋은 겁니다. 백발은 영화의 빛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가 백발이라고 다 영화롭지 않습니다. 인생길을 살면서 자기 주장으로 치우쳐서 마구잡이로 그렇게 사는 인생 머리 하얗다고 해서 영화로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백목사님도 백발입니다. 그리고 성이 백씨지 백파입니다. 백을 따르는 무리들. 다른 사람들은 백파라고 욕을 하려고 붙였는데 아름다운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백목사님께서 항창 다니실 때 머리 하얀 노인이 앉아서 졸고 있다고 합니다. 보니까 아는 목사님입니다. 노선이 평생을 다른 분이셨고 비판하는 분이셨는데 자기대로 깨달은 그 복음을 보고 피곤해서 졸고 있구나 해서 대화하고 좋게 동행을 하셨다고 그렇습니다. 백발은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의로운 것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죽하면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골치 덩어리입니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면 골치 덩어리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추한 이름을 가지면 안되겠고 보배로운 이름을 가져야겠습니다. 이름이 이름답게 될 때 그의 행적이 그렇게 되어서 제 머리 속에 서영준 목사님이라는 분은 항상 꼿꼿한 분이십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앞만 봅니다. 인사하고 보면 옆을 보지도 않습니다. 참 깨끗한 분입니다. 보기만해도 존경스럽습니다. 아름다운 이름, 그 이름은 어던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습니다. 두 번째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호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무슨 뜻이냐면 잘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살만큼 사시고 고생 안하시고 적당히 천수 누리고 돌아가실 때 그것을 호상이라고 합니다. 그게 알고보면 좋은 죽음, 아깝지 않은 죽음은 없지요. 아주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은 다 슬픈겁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그래서 초상집은 슬픈 것이고 죽는 것이니까 괴롭습니다. 아무리 돌아오고 싶어도 안됩니다. 동영상으로 찍어놓고 인공지능으로 목소리 가져오는데 그렇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그게 이해가 가십니까. 이 말씀이 사람이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이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니 어떻습니까. 그때부터 모르고 살지만 짐을 지고 갑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짐이 별로 없을 것이고 아기들은 짐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모르는 겁니다. 모르면 행복합니다. 알고나면 그때부터 괴롭습니다. 인생을 죄에 짐을 짓는 것이고 그 짐이라는 것은 점점 그 짐이 무거워집니다. 마음의 짐입니다. 의문의 짐, 무거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평생을 짐을 지고 갑니다. 주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평생을 통해서 지고 가야합니다. 어린이 집에 갈 아이들도 유치원 아이들도 짐을 집니다. 이랬던 저랬던 짐은 짐입니다. 철이 들어갈수록 짐입니다. 그 짐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육체로 지은 짐은 줄어드는데 마음으로 지는 짐은 줄어듭니다. 결혼 일찍해서 아들이 80입니다. 100세가 먼저 돌아가실지 차이가 없습니다. 그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 죽는 날입니다. 땅 위에 수고를 하고 죽는 날입니다. 모든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 세상 떠나는 날입니다. 그 짐을 지기 시작하는 날이 출생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감사하고 험한 세상을 어ᄄᅠᇂ게 살아갈까 마음이 애잔한 겁니다. 우리 공회 아이들이 많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짐을 지기 시작하는 때가 출생하는 날입니다.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이름 없는 사람을 무명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없는데 있는데 몰라보고 어쩌다 보게 되었는데 62년을 살았는데 어디 사느냐, 다리 밑에 침대 하나 가지고 침대라도 하긴 그런 데에서 먹고 자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이 없습니다. 주민등록없으면 우리나라에 없는 사람입니다. 어릴 때 자기 초등학교 때 어찌하다 보니까 그런 사람은 우리나라에 살아도 그런 사람이 없는데 인생 흔적은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이 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그게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세월이 붙어있고 흔적이 붙어있습니다. 그 살아온 흔적 행적 과정에 따라 이름이 붙습니다. 그 이름이 아는 게 있고 모르는 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이름 돌아볼 때 붙들어 메었다. 그 이름이 타고 갈 때 그게 나은겁니다. 어떤 기름보다 낫습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출생하는 날이 더 나을 수 있겠습니까. 출생하는 날이 죽는 날보다 낫습니다. 20키로를 메고 40~50키로를 다녀야하는데 도착한 사람이 탈진이 됩니다. 그리고 더위조차도 떠나게 됩니다. 도착한 사람이 훨씬 편합니다. 답이 나오지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초상집은 말 그대로 초상집입니다. 울을소리가 나도 마음이 같이 침울해 집니다. 고요합니다. 당사자 유족들은 말할 거 없고 조문객들까지 무겁습니다. 말도 조심합니다. 말 조심 행동조심이 됩니다. 나도 무겁고 슬프고 같이 괴로워집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고 합니다.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되니라. 웃음도 마음에서 나왔고 슬픔도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마음에 슬프면 근심되게 됩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얼굴이 근심이 있다는 말은 마음의 근심입니다. 얼굴이 슬픈 것은 마음의 근심입니다. 마음이 무것도 이성적입니다. 자기를 돌아봅니다. 모든 비판 평가 사리 판단이 사람의 슬픔, 금심입니다. 그런데 잔치집에가면 시끄럽습니다. 정신이 없고 웃는 집이 잔치집입니다. 그래서 계산이나 이런 것을 할 여력이 안되고 혼탁되게 됩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거 보다 낫다. 오전에 이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절대자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을 하고 이름을 아름답게 하십시다.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지금까지 짐을 지고 왔는데 마지막 생각하면서 오늘을 사십시다. 그러기 때문에 웃고 떠들고 그런 것보다 고요한 곳을 찾아서 자기를 돌아보는 우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
본문: 전도서 7장 1절 ~ 5절
지난 주간에 집사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셔서 장례식이 있으셨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시고 연세가 되셔서 불편하셔서 병원에 계셨습니다. 입관 예배 때는 누가복음 16장 홍포입은 부자의 세상에서의 시각과 음부에 가서 시각을 달라진 것을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몸이 약하면 마음이 밝아지게 되고 죽음이 임박하면 밝아지게 됩니다. 내세 실제를 보면 알게 되는겁니다.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지만 집적 보게 되면 얼굴과 얼굴을 보게 됩니다. 택자나 불택자나 고깃덩어리는 흙이 됩니다. 숨을 거두는 그 순간 낙원에 가고 불택자는 음부에 갑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천년왕국이 있고 무궁세계가 펼쳐지는데 그 기간을 택자의 낙원 음부에 대기소에 있습니다. 영과 혼은 택자는 낙원에 불택자는 음부에 있습니다. 고깃덩어리 인간입니다. 한문으로 하면 육체라고 합니다. 사람의 몸 고깃덩어리나 소의 고깃덩어리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조금 차이가 있지만 그 속에 있는 마음과 영이 다릅니다. 마음은 같은데 차이가 있습니다. 짐승도 생각을 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소도 눈물을 흘립니다. 송아지를 빼놓고 어미소를 쫓애나면 죽어간다고 합니다. 강아지만 있는 게 아닙니다. 소도 있습니다. 닭도 있습니다. 닭이 병아리 때부터 기르니까 어릴 때부터 밥상에 앉아 있으니까 김치를 안 주면 안 먹는다고 합니다. 그 닭은 치킨을 만들어서 삶아먹고 구워먹고 왜 그럽니까. 사람의 고깃덩어리는 말 그대로 고급적인 고깃덩어리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마음을 떼버리면 시체가 되어버립니다. 영과 몸이 나뉘는 것을 죽음이라고 그럽니다. 홍포입은 부자는 죽고난 다음 음부에 갔습니다. 가치관이 뒤집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나사로에게 시켜서 형제 다섯이 있는데 죽어서 음부왔지만 형제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르치기를 나처럼 살라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 그렇게 가르쳤고 그렇게 이끌었고 도와줬습니다. 와서 보니까 뒤집어졌습니다. 내 형제 다섯이 나처럼 살고 있는데 그들도 나처럼 살면 음부에 올거니까 나사로를 보내어 그렇게 가르쳐주십시오 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정확한 말입니다. 음부에 가서 말했는데 환하게 보이는겁니다. 그래서 안된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보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더 밝아집니다. 그것을 미리보고 가르치는게 홍보입은 부자의 기록입니다. 얼마든지 가르치는게 부자와 나사로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아무만 들어도 성경을 수도 없이 읽어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강팍이라고 합니다. 전도서 7장 6절에 보면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고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해놨습니다. 죽는 날과 출생하는 날, 초상집과 잔칫집을 놓고 비교합니다. 우리는 말씀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이해가 됩니다만은 일반적으로 볼 때 의미가 안되는 겁니다.
향유는 값이 굉장히 비쌉니다. 300데나리온이라고 하는데 10달치 월급하고 맞바꾸는 것입니다. 그게 보배로운 기름입니다. 가장 비싼 물질 귀하게 보이고 잘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보배로운 기름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명예라고 합니다. 명예라는 말은 이름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사람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명예보다는 물질을 취하는게 보통 사람입니다. 옛날로 말하면 좀 잘못된 사상으로 역시지만 양반 상놈이 있습니다. 양반은 명예가 있고 농사를 안합니다. 그 다음 일반 양민들은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나라 제1의 재벌이 뭐하는 것입니까. 장사꾼들입니다. 장사하는 사람들 돈을 많이 법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양반이 중요하지 농사를 안 짓습니다. 그래서 500년동안 나라를 말아 먹었습니다. 그래도 명예를 중시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습니까. 명예라고 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성경 기준으로 말합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합니다. 저도 우리 교회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데 많은 것을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를 생각을 하고 엄마도 생각을 하고 베경과 특성을 답아서 말합니다. 그냥 붙이면 되는데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붙여놓은 껍데기입니다. 성경적으로 따져서 이름이라는 것은 특성을 담아놓고 정체성을 담아놓는 게 이름입니다. 그 존재의 정체성을 담아놓은 게 이름이고 동시에 기본적인 이름이 있고 그 이름의 성씨가 있고 이름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그 이름이라는 것이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이 살아오게 되면 점점 밑에 이름이라는 이름 아래 헌접이 쌓이게 됩니다. 그것을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 이름에 붙은 행적이 붙어다닙니다. 흔적이 따라다닙니다. 이걸 가르켜 아름다운 이름이 라고 말합니다. 보배로운 기름보다는 어떤 이름이 낫습니까. 그런데 이름이 고은데 어떤 같은 이름 김고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마구잡이로 살면 그 이름이 아름답습니까 추합니까. 이름이 아깝다고 합니다. 이름은 붙인다고 해서 다 아름다운 이름이 아닙니다. 행적이 아름다워야 아름답습니다. 세월 속에 살아온 곳에 행적이 있습니다. 행동 처신 관계 결정처리, 그게 아름다울 때 이름이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은 명예입니다. 흰머리, 백발은 성경적으로 좋은 겁니다. 백발은 영화의 빛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가 백발이라고 다 영화롭지 않습니다. 인생길을 살면서 자기 주장으로 치우쳐서 마구잡이로 그렇게 사는 인생 머리 하얗다고 해서 영화로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백목사님도 백발입니다. 그리고 성이 백씨지 백파입니다. 백을 따르는 무리들. 다른 사람들은 백파라고 욕을 하려고 붙였는데 아름다운 이름이 되어버렸습니다. 백목사님께서 항창 다니실 때 머리 하얀 노인이 앉아서 졸고 있다고 합니다. 보니까 아는 목사님입니다. 노선이 평생을 다른 분이셨고 비판하는 분이셨는데 자기대로 깨달은 그 복음을 보고 피곤해서 졸고 있구나 해서 대화하고 좋게 동행을 하셨다고 그렇습니다. 백발은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영화의 면류관입니다. 의로운 것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오죽하면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골치 덩어리입니다.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면 골치 덩어리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그런 추한 이름을 가지면 안되겠고 보배로운 이름을 가져야겠습니다. 이름이 이름답게 될 때 그의 행적이 그렇게 되어서 제 머리 속에 서영준 목사님이라는 분은 항상 꼿꼿한 분이십니다.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앞만 봅니다. 인사하고 보면 옆을 보지도 않습니다. 참 깨끗한 분입니다. 보기만해도 존경스럽습니다. 아름다운 이름, 그 이름은 어던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습니다. 두 번째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호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무슨 뜻이냐면 잘 돌아가셨다는 것입니다. 살만큼 사시고 고생 안하시고 적당히 천수 누리고 돌아가실 때 그것을 호상이라고 합니다. 그게 알고보면 좋은 죽음, 아깝지 않은 죽음은 없지요. 아주 아끼는 자 없이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은 다 슬픈겁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그래서 초상집은 슬픈 것이고 죽는 것이니까 괴롭습니다. 아무리 돌아오고 싶어도 안됩니다. 동영상으로 찍어놓고 인공지능으로 목소리 가져오는데 그렇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그게 이해가 가십니까. 이 말씀이 사람이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이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니 어떻습니까. 그때부터 모르고 살지만 짐을 지고 갑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짐이 별로 없을 것이고 아기들은 짐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모르는 겁니다. 모르면 행복합니다. 알고나면 그때부터 괴롭습니다. 인생을 죄에 짐을 짓는 것이고 그 짐이라는 것은 점점 그 짐이 무거워집니다. 마음의 짐입니다. 의문의 짐, 무거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평생을 짐을 지고 갑니다. 주님이 대속하셨기 때문에 평생을 통해서 지고 가야합니다. 어린이 집에 갈 아이들도 유치원 아이들도 짐을 집니다. 이랬던 저랬던 짐은 짐입니다. 철이 들어갈수록 짐입니다. 그 짐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육체로 지은 짐은 줄어드는데 마음으로 지는 짐은 줄어듭니다. 결혼 일찍해서 아들이 80입니다. 100세가 먼저 돌아가실지 차이가 없습니다. 그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 죽는 날입니다. 땅 위에 수고를 하고 죽는 날입니다. 모든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 세상 떠나는 날입니다. 그 짐을 지기 시작하는 날이 출생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나면 감사하고 험한 세상을 어ᄄᅠᇂ게 살아갈까 마음이 애잔한 겁니다. 우리 공회 아이들이 많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짐을 지기 시작하는 때가 출생하는 날입니다.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이름 없는 사람을 무명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없는데 있는데 몰라보고 어쩌다 보게 되었는데 62년을 살았는데 어디 사느냐, 다리 밑에 침대 하나 가지고 침대라도 하긴 그런 데에서 먹고 자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이 없습니다. 주민등록없으면 우리나라에 없는 사람입니다. 어릴 때 자기 초등학교 때 어찌하다 보니까 그런 사람은 우리나라에 살아도 그런 사람이 없는데 인생 흔적은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만물이 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그게 이름입니다. 그 이름이 세월이 붙어있고 흔적이 붙어있습니다. 그 살아온 흔적 행적 과정에 따라 이름이 붙습니다. 그 이름이 아는 게 있고 모르는 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이름 돌아볼 때 붙들어 메었다. 그 이름이 타고 갈 때 그게 나은겁니다. 어떤 기름보다 낫습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습니다. 출생하는 날이 더 나을 수 있겠습니까. 출생하는 날이 죽는 날보다 낫습니다. 20키로를 메고 40~50키로를 다녀야하는데 도착한 사람이 탈진이 됩니다. 그리고 더위조차도 떠나게 됩니다. 도착한 사람이 훨씬 편합니다. 답이 나오지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낫습니다. 초상집은 말 그대로 초상집입니다. 울을소리가 나도 마음이 같이 침울해 집니다. 고요합니다. 당사자 유족들은 말할 거 없고 조문객들까지 무겁습니다. 말도 조심합니다. 말 조심 행동조심이 됩니다. 나도 무겁고 슬프고 같이 괴로워집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슬픔이 웃음보다 낫다고 합니다.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되니라. 웃음도 마음에서 나왔고 슬픔도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마음에 슬프면 근심되게 됩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얼굴이 근심이 있다는 말은 마음의 근심입니다. 얼굴이 슬픈 것은 마음의 근심입니다. 마음이 무것도 이성적입니다. 자기를 돌아봅니다. 모든 비판 평가 사리 판단이 사람의 슬픔, 금심입니다. 그런데 잔치집에가면 시끄럽습니다. 정신이 없고 웃는 집이 잔치집입니다. 그래서 계산이나 이런 것을 할 여력이 안되고 혼탁되게 됩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낫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거 보다 낫다. 오전에 이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말이라는 것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절대자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을 하고 이름을 아름답게 하십시다. 아름답게 살아야겠다. 지금까지 짐을 지고 왔는데 마지막 생각하면서 오늘을 사십시다. 그러기 때문에 웃고 떠들고 그런 것보다 고요한 곳을 찾아서 자기를 돌아보는 우리가 되어야하겠습니다. 통성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